최근 수정 시각 : 2024-12-12 06:33:31

이현곤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ea0029>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KIA 타이거즈
2025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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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68 손승락 · 71 이범호 [[틀:KIA 타이거즈 감독|
]] · 72 김상훈 · 73 정재훈
74 김주찬 · 75 조재영 · 77 홍세완 · 80 이현곤
83 타케시 · 85 이동걸 · 99 김민우'''
2군
'''70 진갑용 [[틀:KIA 타이거즈 2군 감독|
]] · 78 최희섭 · 79 이정호 · 86 남원호
87 이해창 · 90 박효일 · 97 이상화'''
잔류군
81 윤해진 · 91 김석연 · 93 서덕원
트레이닝 파트
1군 박창민 · 정영 · 정상옥 · 조희영
박준서 · 황종현

2군 김민기 · 조준회 · 백승훈 · 김동후
노민철 · 박정욱 · 김덕신
프런트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군 입대 선수등록 선수육성선수
타 KBO 리그 구단 명단 보기 }}}}}}}}}
이현곤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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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1차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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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1983년 1984년 1985년 1986년
김용만(2) 장진범
조종규
(4명)
강정남
김윤환
조도연
문희수
(7명)
김기철
김태업
선동열
신태순
이순철
최상주
허세환(1)
(10명)
강상진
김경호
김대현
김정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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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재우(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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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1988년 1989년 1990년 1991년
백인호
박철우
김만후
송영복(1)
조계현
한경수(1)
이광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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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회열
이호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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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년 1993년 1994년 1995년 1996년
박재홍 이종범 최재영 김동호 김종국
(고졸)
김상훈
김상진
서재응(1)
1997년 1998년 1999년 2000년 2001년
오철민
(고졸)
김병현(1)
김원(1)
김준희(1)
최희섭(1)
(고졸)
강철민
김정진(1)
이현곤
정성훈
(고졸)
류찬
김성호 정원
2002년 2003년 2004년 2005년 2006년
김진우 고우석 김주형 곽정철 한기주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정영일(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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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태현 정성철 심동섭(2) 한승혁(2)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박지훈(2) 손동욱(2) 차명진 이민우 김현준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2021년
유승철 한준수 김기훈 정해영 이의리
2022년 2023년 2024년 2025년
김도영 윤영철(2) 조대현(2) 김태형(2)
(1) 지명 후 미입단 / 지명 거부
(2) 1차 지명 미시행 연도 (1라운드 지명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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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현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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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KIA 타이거즈 우승 엠블럼 V10.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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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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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타율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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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백인천
MBC 청룡 / 0.412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69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0.340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73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29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87
김상훈
MBC 청룡 / 0.354
고원부
빙그레 이글스 / 0.327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0.334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0.348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0.360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341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0.393
김광림
쌍방울 레이더스 / 0.337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346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337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342
마해영
롯데 자이언츠 / 0.372
박종호
현대 유니콘스 / 0.340
양준혁
LG 트윈스 / 0.355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장성호
KIA 타이거즈 / 0.343
김동주
두산 베어스 / 0.342
브룸바
현대 유니콘스 / 0.343
이병규
LG 트윈스 / 0.337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336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이현곤
KIA 타이거즈 / 0.337
김현수
두산 베어스 / 0.357
박용택
LG 트윈스 / 0.372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364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357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363
이병규
LG 트윈스 / 0.348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0.370
테임즈
NC 다이노스 / 0.381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0.376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김선빈
KIA 타이거즈 / 0.370
김현수
LG 트윈스 / 0.362
양의지
NC 다이노스 / 0.354
최형우
KIA 타이거즈 / 0.354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0.360
<rowcolor=#fff> 2022 2023 2024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0.349
손아섭
NC 다이노스 / 0.339
에레디아
SSG 랜더스 / 0.3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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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최다안타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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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백인천
MBC 청룡 / 103개
박종훈
OB 베어스 / 117개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117개
홍문종
롯데 자이언츠 / 112개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133개
이광은
MBC 청룡 / 124개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124개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131개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137개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146개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160개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152개
김형석
OB 베어스 / 147개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196개
최태원
쌍방울 레이더스 / 147개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151개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170개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156개
이병규
LG 트윈스 / 192개
이병규
LG 트윈스 / 170개
장원진
두산 베어스 / 170개
이병규
LG 트윈스 / 167개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마해영
삼성 라이온즈 / 172개
박한이
삼성 라이온즈 / 151개
홍성흔
두산 베어스 / 165개
이병규
LG 트윈스 / 157개
이용규
KIA 타이거즈 / 154개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이현곤
KIA 타이거즈 / 154개
김현수
두산 베어스 / 168개
김현수
두산 베어스 / 172개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174개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174개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 158개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 172개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201개
유한준
넥센 히어로즈 / 188개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195개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손아섭
롯데 자이언츠 / 193개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 190개
페르난데스
두산 베어스 / 197개
페르난데스
두산 베어스 / 199개
전준우
롯데 자이언츠 / 192개
<rowcolor=#fff> 2022 2023 2024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193개
손아섭
NC 다이노스 / 187개
레이예스
롯데 자이언츠 / 202개
* 최다안타왕은 1990년부터 공식적으로 수상. }}}}}}}}}

KIA 타이거즈 등번호 6번
정성훈
(1999~2001)
이현곤
(2002)
서동욱
(2003~2004)
{{{#fff [[KIA 타이거즈|KIA 타이거즈]] 등번호 31번}}}
이병석
(1998~2002)
이현곤
(2003~2004)
결번
결번 이현곤
(2006~2012)
이대환
(2013~2014)
{{{#fff [[NC 다이노스|NC 다이노스]] 등번호 31번}}}
노진혁
(2012)
이현곤
(2013~2014)
이승재
(2015~2015,3,15,)
{{{#fff [[NC 다이노스|NC 다이노스]] 등번호 85번}}}
진종길
(2014)
이현곤
(2015~2019)
김범준
(2020)
KIA 타이거즈 등번호 80번
김창희
(2013~2019)
이현곤
(2020~)
현역
}}} ||
A대표팀 참가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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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bordercolor=#fff>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모자 로고.svg2007 야구선수권 대회
김경문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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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fff><colcolor=#09539D> 투수 13 장원삼 · 14 류택현 · 17 전병호
19 정대현 · 22 한기주 · 47 권혁
51 류제국 · 61 박찬호 · 99 류현진
포수 26 박경완 · 44 조인성
내야수 2 김민재 · 3 고영민 · 7 박진만 · 8 정근우
10 이대호 · 18 김동주 · 31 이현곤
외야수 1 장성호 · 9 이병규 · 29 이택근
39 이종욱 · 53 이대형 · 69 민병헌
'''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4''' 김경문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88 김기태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77 김광수
코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90 선동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 역대 로스터 }}}}}}}}}
}}} ||
파일:이현곤 2024 정면 프로필.png
<colbgcolor=#ea0029><colcolor=#ffffff> KIA 타이거즈 No.80
이현곤
李賢坤 | Lee Hyun-Gon
출생 1980년 2월 21일 ([age(1980-02-21)]세)
전라남도 광주시
(現 광주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송정동초 - 무등중 - 광주제일고 - 연세대[1]
신체 183cm, 83kg
포지션 3루수[2], 유격수[3]
2루수[4], 1루수[5]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8년 고졸우선지명 (해태)
소속팀 KIA 타이거즈 (2002~2012)
NC 다이노스 (2013~2014)
지도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연수코치 (2015)
고양 다이노스 수비코치 (2015~2016)
NC 다이노스 1군 수비코치 (2017~2018)
NC 다이노스 2군 타격코치 (2019)
KIA 타이거즈 1군 주루코치 (2020)
KIA 타이거즈 1군 수비코치 (2021~2022)
KIA 타이거즈 1군 작전코치 (2023~2024)
KIA 타이거즈 2군 코치 (2025~)
병역 공익근무요원 (2005.3.~2006.4.)[6]
응원가 KIA 타이거즈 시절: 김종국 - 〈따줘[7][8]
노브레인 - 〈Make It Big〉[9][10]
Cliff Richard - 〈Early in the Morning〉[11][12]
The Fans - 〈Ole Ole Ole〉[13][14][15]
NC 다이노스 시절: 산울림 - 〈기타로 오토바이를 타자〉[16]
파일:KIA 타이거즈 엠블럼.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KIA 타이거즈 시절2.3. FA2.4. NC 다이노스 시절
2.4.1. 2013 시즌2.4.2. 2014 시즌
3. 지도자 경력
3.1. NC 다이노스 코치 시절3.2.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4. 광고소환본능
4.1. 2009년4.2. 2010년4.3. 2011년4.4. 2012년4.5. 2013년
5. 여담6. 연도별 주요 성적7. 수상8.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KIA 타이거즈의 작전코치.

아마시절 손꼽히는 유망주였으며 특히 1군에서 즉시 활용이 가능한 수비를 지녔다는 평가를 받았다. 신인 때부터 1군 멤버로 활약하였지만 리그 평균에 못 미치는 타격을 보였고, 결과적으로도 타격에서 확실한 모습을 보여주진 못하였다.[17] 그럼에도 불구하고 10여년간 KIA의 내야에서 주전과 백업을 오가며 감초 역할을 했고, 2009년 우승 당시 주전 유격수로 활약하기도 하였다. 무엇보다 아무도 기대하지 않았던 2007년도 타격왕의 주인공으로 역대 프로야구 미스터리에 어김없이 이름을 올리곤 하는 선수이기도 하다.[18] 광고 소환의 밈을 가지고 있는 대표적인 선수이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파일:NJQfUbR.jpg
1995년 청룡기 우승 후. 유니폼을 입은 윗줄에서 네번째가 최희섭, 앞줄에서 세번째가 이현곤이다.

광주일고에서 1루수 최희섭 - 2루수 송원국 - 유격수 정성훈 - 3루수 이현곤이라는 충격과 공포의 내야진[19]을 구성했으며, 1998년 고졸우선지명으로 해태 타이거즈에 지명된 후 연세대학교로 진학했다. 연세대학교 시절에는 제2의 이종범이라는 찬사를 받았다. 1999년에는 권윤민 등과 함께 대륙간컵 국가대표로 출전한 적이 있다.

2.2. KIA 타이거즈 시절

파일:external/pds.joins.com/200904252021251101_1.jpg

연세대학교를 졸업하고 2002년 KIA 타이거즈에 입단했다. 계약금은 3억 5천만원. 타이거즈 역대 야수 최고액으로 2022년 김도영이 4억으로 기록을 깰 때까지 20년간 깨지지 않은 기록이었다. 당시 대학리그를 제패했던 이현곤에 대한 기대가 얼마나 컸는지 알 수 있는 부분.

신인 시절부터 1군 백업으로 출전하였으며, 본격적으로 주전으로 발돋움한 시기는 2년차인 2003년. 김성한 감독은 그를 믿고 3루수로 발돋움하기 시작했던 정성훈현대박재홍을 상대로 트레이드하는 강수를 두었으며, 자연스레 그 자리를 꿰차게 된다. 2003 시즌 성적은 1군 129게임에서 .263 5홈런 43타점.[20] 허나 아마추어 시절의 명성에 걸맞지 않게 프로에서는 좀 헤매는 모습을 보여 주다가 2004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되었고, 2005년에 입대했다가 고질적인 갑상선 질환[21]으로 2006년 4월 의병 제대하게 된다. 의병 제대 후 팀에 복귀해 부상 중이던 홍세완의 공백을 메우며 쏠쏠하게 활약해줬다.



그리고 2006년 10월 9일 광주 무등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2006년 준플레이오프 2차전은 이현곤의 인생 경기 중 하나이며 본격적으로 유명해진 계기가 되었다. 때는 6회말 1:1 동점 상황, 만루 찬스에서 타석에 들어선 이현곤은 한화 선발 류현진의 4구째 직구를 받아쳐서(!) 만루 홈런을 만들어냈다.[22]
파일:KBO 리그 로고(영문/다크모드).svg
2007 KBO 리그 타율 1위
2007시즌에는 심각한 물타선으로[23] 팀은 그야말로 개발살이 났지만, 이현곤은 서정환 감독에게 망치 타법이라는 타법을 전수받아 타율 .338, 안타 153개의 안타로 타격왕과 최다안타 타이틀을 거머쥐었다. 그러나 3루수 KBO 골든글러브 골든글러브는 타율 0.322, 19홈런, 78타점을 기록한 두산 베어스의 김동주에게 밀려 수상에 실패했는데, 이는 2홈런이라는 낮은 홈런수와 더불어 부진했던 KIA테이블 세터 덕에 48타점밖에 기록하지 못했던 점이 크다. 다만 투승타타의 희생자로 보기엔 곤란한 것이, 김동주는 당해년도 출루율 1위에 야수 sWAR* 1위를 달성하고 wRC+ 184.7를 찍으며 단순 골글이 아니라 이대호, 양준혁과 함께 리그 MVP를 논할정도의 엄청난 세부스탯을 찍었기에 출루율 4할을 못넘기고 OPS 0.8을 겨우 넘기는 이현곤과는 비교가 불가능한 수준이었다. 오히려 김동주야말로 투승타타 논리에서 가장 저평가받는 완성형 OPS 괴물이었고 이현곤은 투승타타로 과대평가되는 대표적 케이스인 '타율만 그럴듯한 똑딱이'였다.

그 이유로 다음 시즌에도 활약이 기대되었으나, 고질적인 갑상선 문제와 족저근막염, 간염 등의 지병으로 성적 하락과 함께 풀타임 출장조차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온갖 잔부상과 지병을 달고 사는 몸 덕에 3할은 커녕 2할 8푼도 넘어본 적 없는 방망이였던지라 타격왕 타이틀을 거머쥐었던 2007년은 일명 이현곤 미스터리라 불리며 KBO 리그 역사상 가장 미스터리한 사건 중 하나로 꼽힌다. 더더욱 미스터리한것은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선수가 "전경기 출장"으로 타격왕에 오른 것이다. 심지어 신문에서도 언급했을 정도. 이해는 흔히 포수였던 송산이 4번치던 시절로 불리며 전년도까지 주축으로 활약했던 선수들이 부상이나 부진으로 공격면에서 최악을 달리던 시기였다. 이때 이현곤의 활약은 그야말로 암흑기 한줄기 빛이였고 침체된 타선의 활력소였다.

그리고 2007년을 제외한 모든 시즌에서 3할은 커녕 그 근처도 가지 못했다. 이후 세이버메트릭스의 스탯 중 하나인 BABIP를 계산해본 결과 이현곤의 2007년 BABIP는 .379로, 개인 커리어 평균이었던 .308, 리그 평균 .311에 비해 터무니없이 높았다. 쉽게 말해서 세이버메트리션들의 입장은 천운을 타고난 시즌

2009년 한국시리즈에서는 7게임 모두 출전, .316 1홈런 1타점의 시리즈 성적을 남겼다. 특히 4차전에서 4타수 3안타로 맹활약했으며, 이 장면을 보고 기아팬들은 "타격왕 시절로 귀환하는 것이냐" 라며 행복해하기도...

2010 시즌에는 잔부상 때문인지 타선은 물론 수비에서도 불안한 모습을 노출..주전유격수 자리를 김선빈에게 사실상 내주고 3루수로 다시 돌아섰다. 김상현이 부상에서 복귀한 후로는 대수비 혹은 대주자로 뛰었다.

2010 시즌을 마치고 제법 몸을 만들었다고 한다.

그러나 2011 시즌에는 최단신 선수로 인하여 경기에 자주 출전하지 못하였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준플레이오프에서 1차전은 대타로, 2, 3, 4차전에서는 선발 9번타자로 출장하여 8타수 2안타 1볼넷 타율&장타율 .250, 출루율 .33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1승 뒤 3연패로 탈락했다.

2012 시즌에는 좋지 않은 몸 상태 때문인지 거의 2군에만 있었다.

2.3. FA

2012 시즌이 끝난 후 FA를 신청했지만, NC 다이노스의 20인 보호선수 외 선수 지명을 피하기 위한 전략 이상의 의미는 없어 보였다. 하지만 내야 전 포지션이 가능한 수비력 좋은 베테랑이란 점에서 NC에게는 굉장히 매력적인 선수였고, 게다가 NC는 FA 영입시 보상선수를 주지 않고 보상금으로 원 소속팀에 연봉의 3배만 지불하면 되는데, 이현곤은 연봉도 비싼 편이 아니라 3억 1500만원만 지불하면 영입할 수 있었다.

결국 주전 자리를 확보하기 위해 FA시장으로 나가게 되었다. 11월 18일 예상대로 NC 다이노스와 3년간 총액 10억 5천만원[24]계약을 마쳤다.

2.4. NC 다이노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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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1. 2013 시즌

그저그런 타격에다가 신인인 노진혁이 유격수 주전 자리를 꿰차고, 3루수 자리에는 모창민이 고정이 되면서 주전 자리를 못잡고 대타나 대수비 등 백업 요원으로 출전하고 있다.

그러나 7월 14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3연전에서 노진혁이 무릎 부상으로 결장하자 선발 출장했고, 무려 11타수 8안타 4타점 타율 0.727이라는 활약을 펼쳤다. 특이하게도 초구를 많이 노려 쳤지만, 그것이 거의 안타로 연결되었다.

2.4.2. 2014 시즌

6월 17일 기준으로 단 2경기 출장이 전부다. 박민우가 포텐이 터지고 손시헌이 들어오고 지석훈도 한층 기량을 올리면서 사실상 자리가 없어졌다. 6월 4일에 등록되었지만 출장을 거의 못하다 박민우의 10일 등록제한이 딱 풀리는 날짜인 14일이 되자 말소되었다.

결국 8월 21일, 선수 은퇴 후 코치 전향을 선언한다. 단, 바로 전향하는 건 아니고, 9월 확대엔트리 때 1군에서 몇 경기 더 뛰어서 통산 1,000 경기는 채우고 은퇴한다고. 다만 다소 이른나이에 은퇴한다는 점이 아쉬운 점이다.

9월 9일 삼성 라이온즈 전에서 1,000번째 경기를 출장함으로써 현역 마지막 경기를 치렀다. 김경문 감독의 배려로 대주자, 대수비가 아닌 선발로서 출장했고, 중간교체 없이 연장 11회까지 모든 이닝을 다 뛰었다.#. 다행히 이종욱이 11회말 끝내기 만루홈런을 치면서 나름 유종의 미를 거두었다. 시즌 최종 타율은 .091.

3. 지도자 경력

3.1. NC 다이노스 코치 시절

은퇴 후 구단 지원을 통해 메이저리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산하 마이너 팀에서 코치 연수를 받았고, 귀국한 이후 고양 다이노스 수비코치를 맡았다.

2017 시즌부터는 1군 수비코치로 활동하고 있다. 허나 NC 팬들에게 좋은 평은 듣지 못하고 있다.

결국 이동욱 감독 부임 후 코칭스태프 개편이 이뤄지면서 2019 시즌부터는 2군 타격코치로 보직이 변경되었다. 하지만 시즌 종료 후 김상엽, 정진식 코치와 함께 재계약 불가 통보를 받으면서 팀을 떠나게 되었다.

3.2. KIA 타이거즈 코치 시절

2019년 10월 23일, 친정팀 KIA 타이거즈의 코치로 영입되면서 7년 만에 고향으로 복귀하게 되었다. 보직은 1군 주루코치.

2022시즌을 앞두고는 1군 수비코치로 임명되었다.

2023 시즌부터 작전코치로 옮겼다.

4. 광고소환본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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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까지만 본다면 2007시즌 한해 반짝한 그저 그런 유리몸 선수에 불과하겠지만, 이현곤의 진가는 따로 있다.

4.1. 2009년

2009 시즌 초반, 이현곤은 극심한 타격 부진에 시달렸다. 그런데 타이밍이 좋게도(?), 이현곤이 타격을 할 경우 투아웃 상황이거나, 원아웃에서 병살을 치거나, 살아나가기라도 하면 투수교체 타이밍에 걸리는 경우가 제법 있었다.[25] 쓰리아웃이 되고 이닝 종료가 될 경우나 투수교체시에 케이블에서는 얄짤없이 광고를 봐야하기 때문에, 기아팬들 및 타팀팬들 사이에서 광고니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의 별명이 광고니라고 들은 이현곤은 처음엔 廣告니가 아니라 고니인줄 알았다고 인터뷰했다.

다음은 이현곤의 광고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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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정도면 광고를 부르는 사나이라고 봐도 무방.

참고로 이현곤의 광고 소환 기술은 상상의 범주를 벗어난다. 2사에 안타를 쳐도 선행주자가 주루사하면서 광고를 소환할 정도.[26]

4.2. 2010년

2010 시즌 들어서도 광고본능에 충실한 모습을 보였다. 2사에 주자 나가있으면 100% 보는 듯. 5월 8일 잠실 LG전에서는 타석 앞뒤 광고라는 신기원(?)을 이룩하고, 5월 23일 광주 넥센전에서는 안타를 치고도 광고를 소환하더니, 심지어 주자로 나가 있어도 견제사로 광고를 소환하기도 한다. 8월 6일 9회말 2사 2, 3루의 찬스에 나와 광고를 적립했다. 그러나 8월 8일 9회 2:5로 지고 있는 상황에서 폭풍 3점 홈런으로 이용찬을 강판시키며 광고를 적립한다.

4.3. 2011년

2011 시즌 4월 14일 경기, 3회말 원아웃 2루에서(병살이나 아웃카운트 등으로는 무리) 안타를 치고 투수교체로 인해 광고를 할 뻔도 했으나 투수가 그냥 던지겠다고 하면서 무산될 것 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음타자의 희생플라이 이후 히트앤드런 작전으로 보이는 것의 실패로[27] 광고를 소환.

5월 8일 SK와의 경기에서는 11회말 2사 1루에서 안타를 치고 출루하여 광고를 소환하지 않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다음 타자 김주형의 중견수 앞 적시타 때 무리하게 3루까지 주루플레이를 하다가 아웃당해서 광고를 적립. 삼중살로 경기가 마무리되어서 다행이지 만약 역전당했으면 역적취급을 당할 뻔 했다.

6월 2일 지명타자로 나왔다. 4회 투아웃에서 유격수 땅볼 아웃이야 뭐 그렇다고 치더라도 6회 투아웃 1,2루에서 볼넷을 골라 나가서 광고를 회피하나 싶었으나... 투수교체로 광고를 소환. 이쯤되면 본능이다.

7월 1일 8회 투아웃 1,2루에서 대타. 그리고 광고 후 9회초로 이어집니다.

7월 6일 넥센전에서 김선빈의 부상으로 인해 교체선수로 투입 4회 2사 만루에서 광고소환, 7회 2사에 적시타를 날렸으나 이용규의 주루사로 또 광고소환. 이젠 점점 광고 소환하는 스킬이 발전하였다! 김선빈이 장기결장이 불가피해졌기 때문에 당분간은 선발라인업에 올라올 것 같은데...

전반기 마지막 즈음까지 유격수 수비에서 안정감을 보여주며 수비부분에서 김선빈의 공백을 잘 메꿔주었다. 공격시에는 주로 하위타선에 위치하고 있고 투아웃 상황에서도 곧잘 안타를 쳐낸다.

8월 19일 충격적인 수비 2개로 팀을 5연패에 빠뜨렸다. 공, 수 모두 처참한 모습으로 왜 한참어린 김선빈의 백업인지 여실히 보여주었다.

9월 17일 LG전에서 김광삼을 상대로 시즌 첫 마수걸이 투런 홈런을 쳤다. 그리고 김광삼은 바로 교체되면서 광고 클라스는 여전하다는걸 보여주었다.

4.4. 2012년

3월 17일 SK와의 첫 시범경기에서 지명타자로 출장. 6번 타자로 나와 첫 타석부터 1구에 깔끔하게 병살광고를 불러오더니, 8회초 1사 만루 후 나지완이 아웃된 상황에서 또다시 타석 앞뒤 광고를 불러오면서 4타수 5광고로 마무리.

3월 18일 세번째 타석 1아웃에서 안타를 치고 나갔다. 다음 타자가 삼진으로 물러난 후 견제사로 광고.

5월 11일 두산 베어스와의 홈 경기에서 0:0 2회말 2사 만루 득점 찬스 상황에서 2루수 땅볼로 또 광고를 불렀다. 하지만 여전히 점수가 나지 않은 5회말 1사 1루 상황에서 뜬금없이 안타를 터뜨렸다.

좋지 않은 몸상태 때문이었는지 5월 중순경 2군으로 내려갔고, 그대로 시즌을 마감했다. 그리고 FA로 NC 다이노스로 이적.

4.5. 2013년

NC에서는 처음에는 주전 유격수로 나왔으나 3루수인 모창민이 내야 수비 안정을 목적으로 1루수로 나가게 됨에 따라 3루수로 나오기도 했다.

4월 3일 롯데전에서 김태군의 안타때 홈을 밟으며 팀의 창단 첫 득점을 기록했다. 같은 경기에서 9회 말 1사 3루에서 좌익수 쪽에 플라이를 날렸으나 3루 주자가 김문호의 정확한 홈 송구와 용덕한의 적절한 위치선정 때문에 홈에서 아웃, 끝내기를 하지 못하고 말았다. 다만, 광고 소환은 이뤄지지 않았다. 별도의 광고 없이 바로 10회초 방송으로...

이후 팀 내 주전 유격수인 노진혁의 수비가 상당히 안정해짐에 따라 주로 3루수나 유격수 백업으로 나오는 중.

7월 13일. 5회 타석에 들어서자 투수교체 광고, 7회 타석에 있었을 뿐인데 주자가 도루 실패로 광고.

5. 여담

  • 잘 안 알려져 있지만 B형 간염 보균자다. KIA 타이거즈 시절의 팀 동료였던 김원섭이 A형 간염 보균자인지라 간염 보균자 2명이 한꺼번에 한 팀에 있었던 것.
  • 아마추어 시절 국제대회 참가전 도핑테스트를 거부한 적이 있다. 이유는 아직도 미스테리....정황 상 타고난 지병이 많아 여러 약을 복용해서 괜한 덤터기를 쓸것같아 그런게 아닌가 싶다. 향간에는 조용준과 둘이 도핑 테스트인지 모르고 테스트 전날까지 신나게 노는 바람에 도핑 테스트 당일 거부했다는 루머도 있다. 조용준 항목에 좀 더 자세한 사유가 서술되어 있으니 궁금하면 그쪽을 참조. 일단 이현곤이 경기력 향상 약물을 했을 가능성은 0퍼센트다. 안그래도 갑상선 질환에다 간 기능이 안 좋은 간염 환자에게 PED는 그냥 자살행위나 다름없기 때문. 종합병동이라 불릴정도로 몸이 안좋은 그에게 이런 행위는 야구 이전에 진짜 목숨이 위험해진다.
  • 아버님께서 여전히 일을 하시는 모양. 아들에 대한 자부심이 느껴지는 경험담이 모 사이트에 올라와있다.

6.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02 KIA 52 113 .257 29 7 1 3 12 11 3 9 .312 .416
2003 129 350 .263 92 15 0 5 43 42 8 28 .316 .349
2004 68 116 .276 32 9 0 1 10 17 3 16 .364 .379
2005 공익근무요원 복무
2006 77 247 .243 60 14 1 5 27 27 2 14 .281 .368
2007 126[28] 453 .338
(1위)
153
(1위)
31
(2위)
0 2 48 63 4 46 .393 .419
2008 112 393 .257 101 19 2 2 40 33 5 33 .312 .331
2009 120 363 .253 92 15 0 2 33 35 11 44 .329 .311
2010 108 260 .262 68 13 1 2 28 27 0 22 .314 .342
2011 104 222 .266 59 10 1 1 17 24 1 22 .329 .333
2012 6 5 .200 1 0 0 0 0 0 0 1 .333 .200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출루율 장타율
2013 NC 91 139 .273 38 7 0 0 9 10 2 19 .361 .324
2014 7 11 .091 1 0 0 0 0 0 0 0 .091 .091
KBO 리그 통산
(12시즌)
1000 2672 .272 726 140 6 23 267 289 39 254 .332 .354

7. 수상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2009)
타율 1위 (2007)
안타 1위 (2007)

8. 관련 문서


[1] 체육교육학과 98학번.[2] 2009년 우승 시절 주전 유격수였던지라 유격수 이미지가 강하지만, 실제로는 3루수 출전이 훨씬 많은 편이다. 통산 630경기(495선발) 4,384.2이닝을 출전하며 프로에서 가장 많이 소화한 포지션이다. 신인 시절에는 3루와 유격을 오갔으나 2003년부터 2008년까지는 주로 3루수로 출전했고, 타격왕도 이 시절에 기록했다. 2009년 이후로는 상대적으로 유격수로 출전이 많았으나 NC 이적 후에는 다시 3루수를 많이 봤다.[3] 통산 329경기(255선발) 2,281.2이닝을 출전했으며, 의외로 풀타임 유격수로 시즌을 치른 해는 우승 시즌인 2009년이 유일하다. 군 복무 전에는 신인 시절 2002년을 빼면 유격 출전이 상대적으로 적었으나, 제대 후에는 홍세완의 잦은 부상과 김선빈의 불안한 수비 등 팀 유격수 자리에 구멍이 자주 뚫려서 유격수로도 간간이 출전했으며 김상현, 박기남, 이범호 등이 합류한 2009~2011년에는 유격수 출전이 많았다. NC 시절에도 간간이 유격수로 출전했다.[4] 2002년과 2003년 각각 1경기 4이닝씩 잠깐 출전했고, 2004년 5경기 34이닝을 나온 이후 6년 동안 2경기 1.2이닝 소화에 그쳤다가 2011년 11경기 63이닝으로 꽤 출전했고, 2013년에도 2경기 4이닝 정도 출전했다. 통산 22경기(10선발) 110.1이닝 출전.[5] KIA 말년 2011~2012년에 잠깐 출전했다. 통산 7경기(4선발) 36이닝 출전.[6] 2004년 말 병역비리 사건에 연루된 뒤 공익근무요원으로 입대했지만 지병인 갑상선 질환으로 인해 복무기간 1년을 조금 넘긴 2006년 4월 의병 제대했다.[7] 오오오 이현곤 안타 이현곤 안타 날려버려 이현곤~ 이현곤 안타 이현곤 안타 날려버려 이현곤.[8] 문우람의 넥센 히어로즈 시절 응원가와 같다.[9] 이현곤! 이현곤! 이현 곤!곤!곤! Everybody! 이현곤! 이현곤! 이현곤! 이현 곤!곤!곤! 타이거즈 워우워[10] 이현곤이 NC로 간 이후 이 응원가를 쓰지 않았다가 2014 시즌 이종환이 이 곡을 다시 쓰게 되었다가 이종환한화 이글스로 이적한 후, 박찬호가 물려받게 되었다.[11] 오오 KIA 타이거즈 워워워워 이현곤 이현곤 워어어어 내야의 종결자 워어어어 이!현!곤![12] 박경태의 응원가로도 사용되었다.[13] 나나~나 나나나나나 날려라~ 이현곤~ 나나~나 나나나나나 날려라~ 이현곤~[14] 축구 응원가로 쓰는 그 응원가 맞다. 하지만 이 응원가만 틀면 이현곤 본인이 집중이 안 돼서 성적이 잘 나오지 않는다고 하여 잘 쓰이지 않게 되었다.[15] 홍현우의 LG 트윈스 시절 응원가와 똑같다.[16] 이현곤! 안타안타치자!(이!) 이현곤! 안타안타치자!(현!) 이현곤! 안타안타치자(곤!) 이현곤! 안타안타치자치자![17] 더불어 온갖 잔부상과 질병을 달고 사는 일명 '걸어다니는 종합병원'인 선수였다.[18] 2017년 김선빈이 타격왕을 차지할 때까지 10년이 넘는 기간 동안 타이거즈의 마지막 타격왕이었다.[19] 서재응(3학년), 김병현(2학년,빠른 1979년생이다.), 최희섭(1학년)의 광주일고는 50회 청룡기 우승을 달성했다. 이 내야진은 해체 후 각양각색의 야구인생을 보냈다. 먼저 졸업 후 최희섭은 고대 중퇴 후 메이저 진출해 끝내 형저메가 됐고, 송원국은 OB로 지명, 데뷔 첫 타석 대타 끝내기 만루홈런으로 큰 인상을 주었으나 부상으로 이른 나이에 은퇴했다. 이현곤은 후술. 그나마 2000안타도 치고 성적도 꾸준한 정성훈만이 프로에 길게 살아남았다.[20] 그 해 정성훈은 .343 17홈런, 부상이 있었지만 규정타석과 큰 차이가 없었으며 장외타격왕에 등극한다.[21] 갑상선이 제 기능을 못 한다. 박명환도 가지고 있는 질환으로, 특히 여름철에 체력 문제가 심각해지는 게 특징. 이시찬갑상선 질환을 가지고 있다.[22] 여담이지만 이 홈런과 이후 도하 참사 동안 맞은 일명 '택배포' 등으로 인해 류현진은 베이징 올림픽에서 맹활약을 하기 전까지 한동안 큰 경기에 약하다는 오명을 썼다.[23] 타격 30걸 안에 든 선수는 타격왕인 1위 이현곤과, 22위의 장성호(0.281), 24위의 이용규(0.280) 셋으로 팀 당 대체로 3~4명 정도가 30걸에 들어간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그리 심각해보이지 않을 수 있지만, 홈런의 경우 공동 22위의 장성호(11개)빼곤 30위안에 든 선수가 없었다! 오죽하면 한화 이글스 팀타율이 KIA 타이거즈 장타율과 맞먹는다는 농담이 나왔을까...[24] 계약금 3억, 연봉 1억5천, 옵션 3억 (1년씩 1억)[25] 보통 이현곤이 9번타자인데 우타자고, 좌타자인 이용규가 1번타자로서 나오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좌완 원포인트 릴리프나 좌타자에 강한 투수로 교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26] 위 8월 22일자 5타수 4안타 3광고라는 기록도 있다.[27] 타석에서는 스윙을 했다[28] 커리어중 유일한 전 경기 출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