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2-18 00:07:36

김광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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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광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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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72v3jpgxR1sqk8veo8_r2_500.png 1997 황금사자기 전국고교야구대회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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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KBO 퓨처스 북부리그 다승왕

LG 트윈스 등번호 52번
이상우(1998) 김광삼(1999~2001) 강필선(2002)
강필선(2002)
| → 김광삼(2003~2008) 김용의(2009)
LG 트윈스 등번호 7번
김상현(2007~2008) 김광삼(2009) 오지환(2010~2011)
LG 트윈스 등번호 22번
서승화(2009) 김광삼(2010~2016) 김현수(2018~)
LG 트윈스 등번호 99번
류택현(2015~2016) 김광삼(2017~)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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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자 시절
LG 트윈스 No.99
김광삼(金光三/ Gwang-sam Kim)
생년월일 1980년 8월 15일 ([age(1980-08-15)]세)
출신지 경기도 성남시[1]
학력 쌍문초[2]-신일중-신일고
포지션 투수(1999~2007) → 외야수(2008~2009) → 투수(2010~2016)
투타 우투좌타[3]
프로입단 1999년 고졸우선지명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9~2016)
등장곡 린킨 파크- New Divide[4]
응원가 이지연-Love for Night[5][6]
지도자 LG 트윈스 육성군 재활코치 (2017~2018)
LG 트윈스 육성군 투수코치 (2019)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 (2020~ )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선수 시절
2.2.1. 데뷔 후~2010년2.2.2. 2011 시즌2.2.3. 2012 시즌2.2.4. 2014 시즌2.2.5. 2015 시즌2.2.6. 2016 시즌
3. 지도자 시절4.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LG 트윈스의 육성군 재활코치이자 2019년 육성군 투수코치로, 투수로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인하여 2007년 시즌 후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했지만, 눈에 띄는 활약을 보이지 못하고 2010년 다시 투수로 전환하여 은퇴할 때까지 투수로 뛰었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서울수유초, 신일중을 거쳐 고교시절부터 장래가 촉망받는 투수 유망주였다. 신일고등학교 시절 봉중근-안치용-김광삼 그리고 현재윤은 국내 4개 대회에서 신일고의 3관왕을 이끌었고 세명은 최우수타자, 최우수선수, 최우수투수, 대회MVP 등 각종 상을 휩쓸었다. 투수 뿐만 아니라 타자로서의 재능도 뛰어나 봉중근-안치용-김광삼의 신일고 클린업 트리오는 당대의 무적이었고, 이 때문에 김광삼의 입단 당시 LG는 그를 타자로 키워야 하나, 투수로 키워야 하나 행복한 고민을 잠시 하기도 했었으나 결국 투수로 키우기로 결정하였다.

2.2. 선수 시절

2.2.1. 데뷔 후~2010년

1999년 고졸우선지명을 받아 입단하여 신인이던 1999년 스프링캠프 때 구단 최고참인 김용수의 방을 찾아가 은퇴하면 41번을 물려달라고 요구하는 당돌함과 배짱도 갖추고 있었다. 김용수도 김광삼의 당돌함과 용기를 높게 사서 은퇴하면 등번호를 물려주겠다고 약속했으나, 김용수의 등번호는 7개월후 LG구단에 의해 영구결번으로 지정. 그래서 초기에 단 번호는 52번이었다.

그러나 부상 때문에 결국 2007년 투수를 포기하고 외야수로 포지션을 변경. 2009년에는 기대치에 못 미치던 활약을 보인[7] 김상현이 내놓은 등번호 7번을 달면서 완전히 야수로 정착하는 듯 했으나….[8]

2010년에는 다시 투수로 전향한다. 타자를 하면서 부상 부위의 통증이 없어졌기 때문이라고 한다. 서승화가 내 놓고 간 22번을 달았다. 그리고 2009 시즌에 가지고 있었던 등번호 7번은 오지환으로 넘어갔다.

그가 등판하려는 날에는 비가 많이 내려서 경기 취소가 많아 우비소년이라 불렸다.

포텐셜 자체는 당대 LG 투수 유망주 중 가장 뛰어났던 기아의 김진우, 한화의 류현진처럼 15승~20승의 에이스로 성장할 재목이었으나 이순철 강점기 당시 개판 오분전 이었던 팀상황과 부상으로 인해 기대만큼 성장하지는 못했다.

이러한 굴곡을 딛고 2010시즌에는 드디어 첫 완봉승을 기록하게 된다. 그리고 어쨌거나 풀타임을 소화하면서 선발투수로 좋은 모습을 보여줬다.

동료들 또는 해설자들의 말을 들어보면 엘지에서 가장 성실한 선수중에 하나. 투수에서 타자, 타자에서 다시 투수로 전향할 때마다 노력에 노력을 거듭했다고 한다. 타자로 활약할 당시의 경험이 후에 투수로서 던질 때 많이 도움이 된다고 밝혔다. 역시 인생은 새옹지마.

투수로서 수비력이 상당히 좋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투수는 던지는 것도 중요하지만 타자가 치는 순간 투수 역시 수비하는 야수가 되는데 김광삼의 경우 수비력만 놓고 보면 리그 탑이라고 평가하는 사람들이 많다.

2.2.2. 2011 시즌

시즌초에 컨디션 난조로 2군에서 가다듬은 뒤에 16일 처음으로 롯데 자이언츠 전에서 선발등판했다. 5.2이닝 83투구수 5피안타 2볼넷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고 첫승을 기록했다.

선발과 중간을 오가는 스윙맨의 역할이 주어졌는데 봉중근의 복귀 후에는 LG의 중간에서 큰 역할이 기대되는 선수이다.

4월 22일 KIA 타이거즈 전에서도 호투를 보여주며 승리투수가 되었는데 상대 투수가 좌완에이스 트레비스 블랙클리였음을 생각한다면 1승 이상의 값어치가 있는 승리였다. 김선빈의 2루 도루 후 실점한 게 아쉬웠는데 타이밍은 아웃인 듯 했지만 태그에 혼이 실리지 않는 바람에 심판이 세이프를 선언했고 그 후 안타를 맞아 1실점했다. 앞으로 LG 내야수들의 혼이 실린 태그가 필요하다.

22일 경기에서 6.2이닝 투구수 84개 4피안타 1볼넷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을 기록했다. 수창아 너 내일 못던지면 계투로 떨어지겠다. 긴장타라

여담이지만 22일 경기에서 호투 이외에도 기가 막힌 호수비를 여러 번 선보였다. 한 마디로 북 치고 장구 치는 수준이었다. 자기가 2루 가까이까지 가서 타구를 처리하고 날아다니면서 안타성 타구를 땅볼로 만들어버렸는데 네이버 중계댓글에서는 김광삼의 새 별명으로 투루수 라고 칭할 정도였다. 경기 후 인터뷰에서 "안용완 트레이너[9]에게 승리를 바칩니다"라고 인터뷰를 해 다시 한 번 훈남임을 인증하였다[10]

불같은 새털 직구를 던져대던 심수창을 2군으로 밀어내버리고 5선발로 정착한 김광삼이다. 6일 삼성 라이온즈 전에 선발 등판해 장원삼과 맞대결이 기대된다.

봉중근이 팔꿈치 부상으로 시즌아웃된 상황에서 다시 4선발로 올라선 김광삼은 22일 롯데 자이언츠전에 선발 등판해서 6.0이닝 투구수 97개 볼넷 2개 탈삼진 2개 4실점 1자책점을 기록하면서 퀄리티를 성공했다. 1회에 정신 없는 실책으로 비자책이 3점이나 되었지만 그 이후 아주 잘 막아줬다. 완급조절도 좋았고 직구구속도 148km까지 나오며 롯데 타자들을 요리했다.

6월 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2회에 타구를 손으로 막는 괴력을 발휘하다가 손가락에 충격이 왔고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에다 안타를 많이 허용하면서도 꿋꿋이 막아내는 투혼피칭을 선보였다. 손가락 부상이 우려되는 상황에서 꿋꿋이 버티며 5.0이닝 투구수 82개 피안타 8개 사사구 2개 탈삼진 1개 2실점 2자책점 호투를 했으나 불펜진의 분식회계로 승을 날리고 말았다. 8일 경기에서 가장 칭송을 받을 것! 으로 예상했으나 8일 경기에서의 임찬규 보크 오심 때문에 폭풍같이 관심이 그 쪽으로 쏠리면서 오늘 김광삼이 손으로 막아낸 투혼이 있었는지도 모르는 상황까지 묻혀버리고 말았다. 제2의 들쿠달스가 되고만 김광삼만 지못미. 6월 15일 삼성 라이온즈전에서는 4.2이닝 4실점으로 아쉽게 패전투수가 되지만, 6월 21일 넥센 히어로즈전에서는 6이닝 1실점의 쾌투로 한 달만에 승리투수가 된다.

하지만 이후 계속된 장마로 1,2,3선발만 주구장창 돌리는 야석박종훈 감독 때문에 실전등판이 한달 동안 없다시피 해서인지 페이스가 떨어지며 부진했다. 물론 이 1,2,3선발이 11박현준, 11주키치, 11리즈.. 누구라도 이정도는 아니더라도 11시즌 꼬라지 생각하면 굴린다

2.2.3. 2012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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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래 김광삼 선발에 팬들은 상당히 부정적이였지만 2012년 프로야구 승부조작 사건으로 인해 선발에 문제가 생기면서 선발진에 무난히 합류하였다.

4월 12일 잠실 야구장에서 열린 롯데와의 홈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해서 다양한 변화구를 구사하여 맞춰 잡는 피칭을 펼치며 6이닝 70투구수 4피안타 1사사구 1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이 0:4로 승리하여 승리 투수가 되었다.

4월 18일 청주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원정 경기에서 선발 투수로 등판, 1회말에 안타 1개, 볼넷 3개로 1실점을 했지만 더 이상의 추가 실점을 막고 5회까지 꾸역꾸역 버티면서 5이닝 86투구수 3피안타 4사사구 3탈삼진 1실점 1자책점으로 호투했다. 팀이 0:1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내려왔지만 팀이 6:1로 역전승을 하여 패전을 기록하지는 않았다. 승리투수가 되지 못했지만 이날 팀 승리의 주역 중 한 명이 됨과 동시에 2경기 연속 호투를 하여 선발 자리를 완전히 꿰찬 것으로 보였다.

파일:Screenshot_20171001-233952.png
최동수의 굴욕[11] 7월 7일 두산전 1-2로 뒤진 연장 11회말 LG의 공격. 1사 1,3루에서 3루 최동수와 교체, 프로 데뷔 이후 처음으로 대주자로 뛰었다. 1득점 성공. 이로써 프야매 12김광삼 타자 3성 확정.

시즌이 끝난 뒤인 10월 17일 미국 LA의 조브 클리닉에서 오른쪽 팔꿈치 인대접합수술과 뼈조각 제거 수술을 받았다. 재활에는 1년이 소요되어 2013시즌에는 그의 모습을 볼 수 없게 됐다.

2.2.4. 2014 시즌

팬들은 돌아와서 선발의 한 축을 맡아주길 기대했지만 수술 부위에 뼛조각이 떨어져나와 다시 수술을 받게 되었고 퓨처스리그에서 4월에 2번 등판을 한 이후 시즌을 접게 되었다.

2.2.5. 2015 시즌

3월 22일 쇼핑호스트와 결혼하였다.

7월 31일 SK와의 경기 전에 1군으로 콜업되었다. 2012년 9월 8일 잠실 기아전 이후 1056일만의 콜업으로 이 날 선발투수로 나오게 되었다. 1회부터 홈런을 맞으며 불안하게 시작했지만 4이닝 2실점으로 평범한 성적을 내고 교체되었다. 팀은 그대로 패배하여 패전투수가 되었다. 경기 후에 다시 2군으로 내려갔다.[12]

8월 11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시즌 2번째로 선발 등판하게 되었다. 5회 2사까지 0실점으로 막았고 팀도 1점을 뽑아서 1아웃만 잡으면 승리투수 요건을 갖출수 있었으나 역전타를 맞으면서 강판되고 만다. 4.2이닝 2피안타 2볼넷 3실점 0자책. 팀이 재역전하며 패전은 면하게 됐으며 팀도 승리하였다.

8월 16일 기아전에서 시즌 3번째로 선발 등판하였다. 1회부터 후드려 맞으면서 1실점하고 1사 만루의 위기에 몰려지만 폭우가 쏟아지며 노게임이 선언되었다.

8월 19일 롯데전에서 다시 시즌 3번째로 선발 등판하였다. 5회말 2사까지 2대 1로 앞서 있어서 이번에도 승리투수 요건을 갖출수 있었으나 손아섭에게 동점타를 맞으면서 또 강판되고 만다. 이 날 기록은 4.2이닝 2실점. 팀은 패배하고 만다.

8월 30일 삼성과의 경기에서 4번째로 선발 등판하였다. 3회까지 타자들이 9점이나 지원해 주면서 기분좋게 시작했으나, 2.1이닝 6실점으로 와르르 무너지면서 조기 강판당했다. 결국 이 날 경기는 830 대첩으로 등재되었다. 동점을 허용한 유원상이 패전의 멍에를 썼다. 경기가 끝난 후 1군에서 말소 되었다.

나이도 있고 잘해줘야 하는데.. 안쓰럽다..

2.2.6. 2016 시즌

개막 엔트리에 들지 못했고, 퓨처스에서 시즌을 시작했다.

4월 22일 기준으로 3경기 3승 18이닝 무실점을 기록하였으나, 8월 28일 이천에서 열린 삼성 라이온즈와 경기에 선발 투수로 등판했다가 4회초 삼성 이성규의 직선 타구에 머리를 직격당하여 쓰러지고 말았다.[13] 그 와중에도 김광삼은 "공 어딨어! 공 어딨어!"를 외치며 공을 찾아 1루로 던지려 했고, 덕아웃으로 실려 와서도 "계속 던지겠다" 라고 의지를 보였지만, 이 날 같이 경기를 뛴 선배 이병규"야 김광삼! 너 정신이 있는 놈이야 없는 놈이야! 당장 병원부터 가야 할거 아냐!!" 라고 불같이 화를 내며 빨리 병원에 가라고 설득하여 결국 김광삼은 병원으로 이송되었다.

병원을 3군데나 옮기며 정밀 검진을 받은 결과 두개골 골절, 뇌출혈, 뇌외출혈 등등 5가지 증상이 동시에 나타났다. 라뱅이 아니었으면 일이 커질 뻔했다 전치 8주가 걸릴 것으로 예상되며, 복귀고 뭐고 간에 후유장애까지 걱정해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한 위키러가 윤세호 기자에게 페이스북으로 문의한 결과, 무사히 퇴원했다고 한다. 다행히 특별한 후유증은 남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부상 후유증으로 선수 본인이 은퇴를 원한다는 소문이 있었고, 결국 시즌 후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류택현을 대신해 육성군 투수코치를 맡게 된다는 이야기가 있었으나, 재활코치로 선임됐다.

3. 지도자 시절

2017년 시즌부터 재활군 코치로 활동한다. 재활을 오래 경험해(...) 선수들을 잘 이해해줄 것 같다는 게 구단 측의 설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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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년 10월 1일 홈경기에서 경헌호와 함께 짧게 은퇴식을 치렀다. 많은 팬들이 10:3 대패로 인해 먼저 경기장을 나갔지만, 남아있는 팬들은 큰 환호성을 보내줬다.

여담으로, 은퇴식 중간중간에 김광삼의 아이들이 계속 그라운드로 튀어나오며(...) 김광삼의 아버지가 잡으러 다니는 진풍경이 벌어지기도 했다.

2018년 12월 5일 육성군 투수코치로 보직 이동되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투수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이닝 ERA 피안타 피홈런 사사구 탈삼진
1999 LG 11 31⅔ 10.23 1 4 0 0 52 5 29 18
2000 12 18 7.50 0 0 0 0 27 5 9 10
2001 군복무(상무 피닉스 야구단)
2002
2003 25 111 4.46 7 9 0 0 115 7 63 69
2004 31 151 4.41 8 7 0 1 164 9 87 109
2005 23 103⅓ 4.96 7 7 0 0 115 13 61 76
2006 6 17⅔ 4.08 0 2 0 0 19 0 16 10
2007 4 7⅓ 12.27 0 0 0 0 12 0 8 3
2008 1군 기록 없음 (타자 기록은 있음)
2009
2010 24 111 5.68 7 6 0 0 125 10 64 60
2011 22 93 4.74 4 5 0 0 108 8 45 41
2012 20 104⅓ 4.92 7 9 0 0 114 3 47 46
2013 1군 기록 없음
2014
2015 4 15.2 5.74 0 1 0 0 16 2 10 11
2016 1군 기록 없음
KBO 통산
(11시즌)
182 764 5.21 41 50 0 1 867 62 434 453
역대 타자 기록
연도 소속팀 출장 경기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볼넷 사구 삼진 출루율 장타율
2003 LG 1 - 0 0 0 0 0 0 0 0 0 0 - -
2004 1 - 0 0 0 0 0 0 0 0 0 0 - -
2008 13 0.385 5 1 0 0 1 0 0 0 0 3 0.385 0.462
2009 1 0.000 0 0 0 0 0 0 0 0 0 0 0.000 0.000
2012 1 - 0 0 0 0 0 1 0 0 0 0 - -
KBO 통산
(5시즌)
17 0.294 5 1 0 0 1 1 0 0 0 3 0.294 0.353


[1] 링크[2] 원래 하원초등학교에 입학하여 축구선수로 활약하다 서울 도봉구로 이사오면서 부친께서 야구를 좋아하는 터라 전학가는 동시에 야구선수로 전향되었다.[3] 우투좌타이지만 왼손잡이이다.[4] 트랜스포머 2의 테마곡이다.[5] 김광삼! 날려라 날려버려(X3) 안타! 김광삼![6] 타자 시절 응원가다. 잠시 박용근이 썼다가 kt로 트레이드되며 현재는 주인이 없는 상태.[7] 어디까지나 시즌 개막 전 기준. KIA와의 트레이드 후에는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8] 1번을 제외한 한자리수 등번호는 투수가 거의 달지않는 번호. 최근에는 투수들이 0번을 달기도 한다.[9] LG 1군 트레이너, 며칠 전에 쓰러져서 중환자실에 입원[10] http://m.news.naver.com/read.nhn?mode=LS2D&sid1=107&sid2=213&oid=111&aid=0000232213[11] xtm의 해설위원이 이렇게 말했다[12] 허나 1군 선수들과 동행 중이다.[13] 이 경기에서 6이닝 무실점을 기록했다면 퓨처스 평균자책점 1위을 확보할 수 있었는지라 더욱 아쉬운 점 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