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27 05:42:13

최진행

최진행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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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일구상 로고.jpg 2010 일구상 의지노력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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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빙그레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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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000000> 1986~1990 1991~1993 1994~1995 1996 1997~2000
유승안
이강돈
강정길 장종훈 강석천
<rowcolor=#ffffff> 2001 2002 2003 2004 2005~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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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29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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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진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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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8최진행.png
최진행
崔鎭涬 | Choi Jinhaeng
출생 1985년 8월 17일 ([age(1985-08-17)]세)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現 서울특별시 중랑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서울동원초(노원리틀) - 청량중 - 덕수정보고[1] - (우송대)
신체 188cm, 100kg
포지션 좌익수, 지명타자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2004년 2차 2라운드 (전체 10번, 한화)
소속팀 한화 이글스 (2004~2020)
지도자 서산시 리틀야구단 감독 (2021~)
병역 경찰 야구단
(2006년 1월 19일 ~ 2008년 1월 17일)
등장곡 Bruno Mars - Marry You
응원가 Bruno Mars -《Marry You[가사][3][4]
박보영 -《선물[가사2]
구단 자작곡 (2019)[가사3]
가족 배우자 송수경(2012년 결혼)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
3.1. 서산시 리틀야구단 감독
4. 플레이 스타일5. 연도별 주요 성적6. 여담7.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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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화 이글스의 외야수.

김태균과 함께 한화의 암흑기에서 빛을 발휘한 선수이다. 한때 김태균을 대체할 거포로까지 평가받았지만 기대만큼의 성적을 유지하지 못하였다. 선수생활중에 도핑이 적발되기도 하였다.현재는 서산시 리틀야구단 감독을 맡고있다.

2. 선수 경력

최진행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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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최진행/선수 경력
파일:KBO 리그 로고(엠블럼/영문, 2013~2021).svg
2010년 2011년 2012년
2013년 2014년 2015년 2016년
2017년 2018년 2019년 2020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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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은퇴 후

3.1. 서산시 리틀야구단 감독

2군 시절에 종종 돕던 서산시 리틀야구단에 감독으로 공모한 후 선임되었다. # 전 감독이자 선후배 관계인 이송영 감독을 도우면서 리틀야구단과 인연을 맺었고, 이 감독이 중학교 야구부 감독으로 옮기게 되자 공석이 된 리틀야구단 감독직에 지원하며 새 커리어를 시작하게 되었다. 버스도 직접 몬다고 한다.

2021년 3월 19일 지상파 뉴스에 서산시 리틀야구단 감독으로의 근황이 나왔다. #

2021년 도미노 피자기 리틀 야구대회에서 최진행감독이 이끄는 서산시 리틀야구단이 예선탈락을 해서 심수창이 디스하기도 했다.

2024년 현재의 근황도 나왔다. #

4. 플레이 스타일

파일:최진행타격폼.gif

먼저 밝혀야 할 것은 금지약물 복용자이기 때문에 어디까지 실력이고 어디까지 약빨인지 판단하기 어렵다는 것이다.[7]

20~30홈런을 칠 수 있는 장타력을 가진 선수라고 평가받지만 커리어에서 20홈런을 넘긴건 2010년 한 시즌뿐이다.[8] 20대 시절에도 파워는 좋지만 컨택이 좋지 않아 떨어지는 변화구에 굉장히 약했다. 수비에선 좌익수에서도 수비능력이 떨어지는 편이며 발이 빠르지 않아 주루에서의 생산성 역시 크게 기대할 수 없다. 그렇다면 가장 명쾌한 답은 지명타자로 출전해 타격으로 만회하는 것인데 떨어지는 변화구에 약하다는 단점을 극복하지 못했고 서른을 넘긴 이후에는 배트 스피드마저 떨어져 삼진이 크게 늘어나며 고전했다. 게다가 고질적인 무릎부상을 달고있어 풀타임 출전 역시 어렵고 기복도 심하다.

이럼에도 불구하고 꾸준하게 기용받은 이유는 김인식 시절 형편없는 육성시스템 때문에 빅뱃 유망주들을 쌓아만 놓고 키우지 못해서 후임 한대화 시절부터 한화에 장타툴을 갖춘 홈런타자가 없어졌기 때문이기도 하며, 최진행 본인도 시궁창인 이미지[9]에 비해서 실제로는 굉장히 준수한, 실력에 비해 저평가를 받는 타자이기 때문이기도 하다. 기복이 심한 편이라 못할 땐 아주 바닥을 긁어대서 저평가당하기 일쑤지만, 시즌 끝나고 보면 언제나 평균 이상의 괜찮은 스탯이 찍혀있는 타입이다.

2010년 희대의 플루크로 30홈런을 넘겨버린지라 기대치가 거기에 맞춰져 있어서 그렇지, 어깨 부상으로 스윙스피드가 확 죽어버린 18시즌 이전까지는 꾸준히 wRC+ 120 내외 준수한 생산성을 보여주는 타자로 2010년~2013년 잘 나갈 때는 wRC+ 130대를 기록하기도 했었다. 알기 쉽게 비교하자면 나지완이나 구자욱 정도의 생산성으로, 비록 짧은 기간이지만 전성기 2~3년간은 정말로 크보 10손가락 안에 들만한 타자였다. 재미있는 것은 타고투저였던 2010년에 비해 2011년, 2012년은 투고타저였기 때문에 플루크 시즌으로 평가받는 10시즌보다 11, 12시즌의 wRC+를 비롯한 세이버스탯은 오히려 낫다.

그 이후 2014~2017시즌 정도까지는 거듭된 부상과 먹어가는 나이로 인해 그 시절의 생산성은 보여주고 있지 못하지만, 일단 나오면 wRC+ 120 정도는 기록해주는 여전히 좋은 타자로, 타격만으로 1군 주전 자리를 차지할 정도는 되는 모습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2017년의 부상 이후로는 배트 스피드가 죽어서 컨택이 처참한 수준으로 떨어졌고, 1군 레벨 이하의 타자로 전락하였다.

수비도 나이를 먹으면서 경험이 쌓여 여전히 못하지만 도저히 글러브를 낄 수 없을 정도는 아닌 정도까지는 올라왔다. 중견수는 불가능하지만 좌익수 자리에는 서 있을 수는 있을 정도.

그리고 높은 순출루율로 '떨공삼 이미지와 다르게 은근히 볼을 잘 고르는 타자 아닐까?'라고 생각하게 되는데, 실상은 선구안이 좋다기 보다는 슬럼프 시기에 아니다 싶으면 루킹삼진을 먹어도 휘두르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최진행은 BB%로는 높은 순위를 기록한적이 있지만 볼넷과 삼진의 비율을 따지는 BB/K에서는 잘해봤자 20위 위로는 절대 가지 못했다. 더군다나 어깨부상 이후로 배트스피드가 현저하게 떨어져 2016년 전까지 풀시즌을 치르면 50~60개 정도 볼넷을 얻어낸 것과는 반대로 볼넷 갯수가 확 떨어지고 대신 삼진 비율이 더 증가한 것은 덤.

타석 대비 홈런수도 좋아 30홈런은 플루크였다고 해도 풀타임 출장만 가능하다면 20홈런은 충분히 가능한 파워를 여전히 보유하고 있고 실제로 나올 때마다 좋은 생산성으로 그것을 증명해왔다. 심지어는 완전히 망해버린 2018, 2019시즌조차 타석당 홈런수는 꽤 좋았을 정도.

sWAR 기준 통산 17 정도로 빙그레-한화 역대 야수 10위권 전후에 위치하는 생각보다 누적도 좋은 타자. 준수한 주전급 야수로 인정받는 송광민보다도 차이가 제법 있다.

초 슬로우 스타터이다. 보통 한화가 시즌 초에 성적이 좋지 않을 때 삽을 푸며 욕을 먹다가 가을야구는 이미 물건너가고 지쳐버린 한화팬이 야구 시청을 끊었을 즈음 페이스가 올라와서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홈런을 뻥뻥 치며 고춧가루 부대로 활약하는 게 매년 반복되는 패턴이다. 이런 점도 저평가에 영향이 있을 듯 하다.

약물 문제를 제외하고도 커리어에 운이 없었기도 했던 편. 2010년 30홈런을 넘긴 후 계속되는 고질적인 무릎부상도 있었지만 최진행의 전성기에 하필 그를 제외한 대부분의 한화 타자들의 장타력이 실종되어버린 탓에 사실상 홀로 장타를 책임져야 했고, 자연스레 집중 견제를 받아 홈런수를 깎아먹었다. 2011~12년이 극심한 투고타저였던 것은 덤. 그리고 약물 적발 이후에도 스탯은 어느정도 찍었지만 어깨 부상 이후 배트스피드가 처참하게 떨어졌고, 실제로 2017년부터 BB%는 10%를 넘지 못하는 타자로 떨어졌다.

5.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2004 한화 79 209 .206 43 10 0 9 28 28 2 27 .383 .297
2005 1 1 .000 0 0 0 0 0 0 0 0 .000 .000
2006 군 복무 (경찰 야구단)
2007
2008 3 4 .000 0 0 0 0 0 0 0 0 .000 .000
2009 28 55 .200 11 3 0 2 8 6 0 9 .364 .313
2010 129 464 .261 121 22 0 32
(2위)
92
(5위)
66 5 56 .515 .340
2011 127 434 .276 120 11 1 19
(5위)
85
(5위)
63 3 74 .438 .380
2012 120 395 .248 98 26 0 17 55 59 6 72 .443 .361
2013 106 367 .300 110 27
(4위)
0 8 53 39 0 53 .439 .387
2014 99 299 .261 78 16 0 12 45 32 1 26 .435 .317
2015 109 333 .291 97 17 0 18 64 55 0 69 .505 .410
2016 28 70 .329 23 2 0 1 9 4 0 13 .400 .434
2017 89 258 .306 79 21 0 13 50 29 0 29 .539 .375
2018 57 136 .213 29 3 0 7 13 14 0 18 .390 .305
2019 45 117 .231 27 6 0 6 19 10 0 11 .436 .295
2020 84 214 .234 50 5 0 8 30 23 0 23 .369 .304
KBO 통산
(15시즌)
1104 3356 .264 886 169 1 152 551 429 17 480 .451 .354

6. 여담

파일:e4rl3ka.jpg
  • 박노민과 함께 슈렉과 피오나로 불렸다. 실제로 팀에서 둘을 묶어 부른 별명(...). 게다가 이 둘은 1985년생 동갑내기다. 심지어 생일마저도 최진행은 8월 17일, 박노민은 18일로 단 하루 차이다.[10]
  • 가끔 김광현 등 에이스 상대로 홈런을 치는 등 소위 긁히는 날이면 '우리 약' 내지는 '드신 날'이라고 불린다. 물론 못하면 '마무리타자 내지 '서산의 심장'.
  • 인상이 강한 편인데 의외로 팬서비스 관련 괴담은 적은 편이라 연쇄사인마, 칰쿠자 등으로 불리며 약물 복용 사실을 까기 위해 약쿠자로 부르는 사람도 있는 모양이다.
  • 복귀 과정에서 나온 쉴드성 기사, 이에 따른 한화 구단의 대처,[11] 결정적으로 선수 본인이 끝까지 실수라고 일관하는 태도[12][13]에 실망한 팬들이 많다. 이 과정에서 타팀 팬은 물론 한화 팬 내에서도 최진행 안티가 급증했으며, 약을 먹었음에도 처참한 성적까지 더해져 이미지가 매우 안 좋아졌다. 한화 팬 내에서도 서산[14]으로 가라는 뜻에서 서산진행, 더 나아가 논산[15][16] 으로 가라는 뜻에서 논산진행, 논진행 등으로 불리기도 한다.
  • 고교 시절엔 중견수를 보기도 했다고 한다.
  • 떨어지는 변화구에 삼진을 자주 당했다. 특히 2스트라이크 이후 떨어지는 변화구에는 거의 무조건 스윙을 하며 삼진을 당해 지켜보는 팬들의 어이를 앗아가서 삼진행, 떨공삼 등의 별명이 생겼다. 물론 홈런 타자(?)에게 삼진은 세금같은 것이긴 하지만... 특히 2사 득점권에서 삼진을 당할 때는 이닝 종결자, 마무리 타자(...)라는 웃지 못할 별명이 붙기도 했다.
  • 2021년 5월 29일 김태균 선수의 은퇴식에 참여했다.

7. 관련 문서



[1] 이용규와 더불어 2004년 드래프트에서 뽑힌 둘밖에 없는 덕수정보고 출신 선수 중 한 명. 여담으로 2014년부터는 이용규와 같은 팀에서 뛰었다.[가사] 이글스 파워히터~ 한화의 최진행~ 워어어어~ 한화의 최진행(X2)[3] 단 타격 시에는 등장곡(F)보다 반음 낮춰서(E) 부른다.[4] 한 때 응원가 BEST로 꼽히기도 했으나 2017년부터 저작권 문제로 응원가가 짤리고 등장곡만 사용 중인데, 팬들이 그냥 등장곡에 맞춰서 떼창을 한다(...). 실제로 경기장에서 들으면 또 다른 장관이다.[가사2] 한화 최진행 한화 최진행 워어어어 홈런 진행중(X3)[가사3] 이글스의~ 파워히터~ 워어 최진행~ 이글스의~ 파워히터~ 워어 최진행~ 워어어~ 워어어어어~ 한화의 최진행 홈런! 워어어~ 워어어어어~ 한화의 최진행 홈런![7] 다만 2010시즌에 32홈런을 친 시즌에 약물 검사를 분명 받았을 것이고, 홈런 자체가 적지는 않은 중장거리 타자라서 약물검사를 한 두번 받지 않았을 텐데 안 걸린 것을 보면, 최소한 32홈런은 실력이 맞아 보인다. 뽀록이라고 쳐도 약물과는 관계없다.[8] 2010시즌 32홈런[9] 약물 문제, 소속팀 한화의 나쁜 성적, 한번 크게 플루크가 터졌다가 다시는 그에 근접한 성적을 찍지 못한 사실 등으로 인해 최진행의 이미지는 시궁창이다.[10] 다만 박노민은 음력이다.[11] 도핑 사실을 미리 알았으면서도 불구하고 1주일 넘게 경기에 출장을 시킨데다가 보통 사고 쳐서 출장정지 징계를 받은 선수의 경우 징계 기간이 끝나도 근신 혹은 자숙하라는 의미로 곧바로 1군에 올리지 않고 조금 지나고 나서 1군에 올리거나 아예 1군에 올리지 않는 게 관습인데 한화 구단은 징계 기간이 끝나자마자 그 다음날 바로 최진행을 1군에 등록시켰다.[12] 가장 유명한 보충제인 Xtend에서 스타노조롤이 검출된 이상 불가능한 얘기는 아니지만, 최진행이 먹었다고 하는 프로웨이라는 보충제는 현재도 정상적으로 생산중이다.[13] 프로웨이가 종류가 굉장히 다양한데다가 미국 내수품 중에서는 스타노조롤이 함유된 제품이 존재하며 이 제품은 식약처 승인을 받지 못해 한국에서는 유통되지 않고 있다. 즉, 금지약물 자체가 아닌 그 프로웨이가 금지된 성분을 함유한 것을 알고 먹었을 가능성도 높다는 것.[14] 2군행을 의미.[15] 원래 모 커뮤니티에서 서산과 논산을 헷갈린 한 팬이 잘못 사용한 말인데, 안티들이 2군행을 넘어 아예 야구를 접으라는 뜻으로 사용했다.[16] 논산 하면 군필들에게 딱 떠오르는 그곳 탓에 병역문제로 생각할 수도 있는데, 병역은 경찰청 야구단에서 복무하여 이 문제에선 자유롭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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