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6:12:04

김경태(1975)

{{{#!wiki style="margin: -10px -10px; word-break: keep-all"<tablebordercolor=#c30452>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LG 트윈스
202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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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군
'''73 김일경 · 80 박경완 · 83 정수성 · 85 염경엽 [[틀:LG 트윈스 감독|
]]
· 93 장진용 · 94 김재율 · 97 모창민 · 99 김광삼
· # 송지만'''
2군
'''71 김경태 · 75 김용의 · 76 윤진호 · 79 손지환
· 81 김정준 [[틀:LG 트윈스 2군 감독|
]] · 82 최경철 · 86 신재웅 · 89 양원혁'''
잔류·재활군
67 이종운 · 77 정주현 · 78 양영동 · 92 최상덕
트레이닝 파트
69 양희준 · 87 안영태 · 88 김용일 · 91 이권엽
· 95 고정환 · 96 배요한 · 98 박종곤
· 유현원 · 최재훈 · 김종욱
인스트럭터
퓨처스 황병일 · 투수 최일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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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태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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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LG 트윈스 우승 엠블럼 V3.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2023

파일:KBO 퓨처스리그 엠블럼.svg
2004 KBO 퓨처스 북부리그 최우수 평균자책점

LG 트윈스 등번호 28번
신동수
(1995~1997)
<colbgcolor=#000><colcolor=#fff> 김경태
(1998~2001)
최만호
(2002~2006)
두산 베어스 등번호 36번
강규철
(2000~2001)
김경태
(2002~2003)
김만윤
(2004~2004. 4. 10.)
SK 와이번스 등번호 42번
정상호
(2001~2003)
김경태
(2004~2005)
김종민
(2006)
SK 와이번스 등번호 17번
김종민
(2004~2005)
김경태
(2006~2008)
박현준
(2009~2010. 7. 27.)
LG 트윈스 등번호 64번
김준호
(2008~2009)
김경태
(2009)
유경국
(2010~2011)
SK 와이번스 등번호 71번
이광길
(2007~2011)
김경태
(2012~2020)
손지환
(2021~2023)
LG 트윈스 등번호 71번
최일언
(2019~2020)
김경태
(2021~)
현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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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김경태 LG.png
<colbgcolor=#c30452><colcolor=#fff> LG 트윈스 No.71
김경태
金京泰 | Kim Kyeongtae
출생 1975년 11월 6일 ([age(1975-11-06)]세)
서울특별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서울구암초 - 성남중 - 성남고 - 경희대[1]
신체 178cm, 75kg
포지션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98년 2차 1라운드 (전체 7번, LG)
소속팀 LG 트윈스 (1998~2001)
두산 베어스 (2002~2003)
청타이 타이양 (2003)
SK 와이번스 (2004~2008)
LG 트윈스 (2009)
카가와 올리브 가이너스[2] (2010)
지도자 SK 와이번스 2군 재활코치 (2012~2014)
SK 와이번스 루키군 투수코치 (2015)[3]
SK 와이번스 1군 불펜코치 (2015)[4]
SK 와이번스 루키군 투수코치 (2016)
SK 와이번스 2군 투수코치 (2017~2020)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 (2021~2022)
LG 트윈스 1군 투수코치 (2023~2024)[5]
LG 트윈스 2군 투수코치 (2024~)[6]
등장곡 다이나믹 듀오 - 〈고백〉
종교 개신교
파일:LG 트윈스 엠블럼.svg
1. 개요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2.2. LG 트윈스 1기2.3. 두산 베어스2.4. 청타이 타이양2.5. SK 와이번스2.6. LG 트윈스 2기2.7. 일본 독립리그 시절
3. 지도자 경력
3.1. SK 와이번스3.2. LG 트윈스
4.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인.

LG 트윈스, 두산 베어스, SK 와이번스 소속 좌완 투수.

대한민국에서 마일영과 같이 너클볼을 던졌던 선수였다.

현역 시절은 좋지 못한 커리어에 방출, 부상의 신화로 기억된다. 위의 소속 팀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참 이것저것 많다. LG에 입단했다가 4시즌 만에 방출, 두산에서 방출, SK 신고선수 불합격, SK 방출, LG 재입단 후 방출로 같은 팀에서 2번 방출당한 선수이기도 하다. 그 정도면 아무도 기억하지 않을 평범하게 지나갈 중간계투 투수였지만, 그나마 기억되는 이유가 바로 그 너클볼 때문이다.

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성남고등학교경희대학교 시절에는 팀의 에이스로 성남고를 2개 대회 준우승으로 이끈 선수이고, 그와 같이 경희대 때도 상당한 좌완투수로 이름을 날렸다. 하지만 좋은 건 그걸로 끝.

2.2. LG 트윈스 1기

1998년 2차 1순위 지명을 받아 계약금 2억 원을 받고 LG에 입단하여 투수 유망주가 되었으나, 성적은 평균자책점 7점대-6점대-10점대로 좋지 못했고 결국 2001년을 끝으로 방출되었다.

2.3. 두산 베어스

이렇게 흘러 간 투수가 되는가 했지만, 그는 두산 베어스신고선수로 이적했다. 그리고 또 망했다. 10경기에 등판하여 8이닝 평균자책점 15.75에 4피홈런 2패에 그쳤다.

2.4. 청타이 타이양

그리고 시원하게 방출되어 해외 진출을 타진, 대만 프로리그 청타이 타이양에서 1년 간 단 한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13.50의 평균자책점만을 남기며 대한민국으로 돌아와서 잠정 은퇴했다. 사실 애초에 최고 구속이 140km/h 언저리에 불과했고, 구위가 좋지 못하다 보니 한 번 맞으면 정말 시원하게 쳐맞을 수밖에 없는 투수 유형이었다.

2.5. SK 와이번스

파일:external/www.sksports.net/2006061311353463926_3617.jpg

하지만 김태한이 망한 뒤 은퇴하고, 이상훈은 마음이 떠나 에이스 이승호 말고는 쓸 만한 좌완투수가 없다시피했던 SK 와이번스에서 그를 2004년 5월에 데리고 간다. 이 때 좌완 스페셜리스트 불펜으로 활약하며 커리어 하이를 기록한다. 의외로 생각 이상으로 대활약하며, 후반기에는 SK의 불펜을 이끈다. 21경기에 등판해 연승을 기록하여 무려 5승을 가져가는 등 승승장구했다.

하지만 SK에서 김경태의 활약은 그것뿐이었고, 2005년과 2006년에는 다시 평균자책점 5점대로 리셋되는 등 영 좋지 않았다. 그러다가 김성근 감독이 부임한 2007년 다시 뭔가 되기 시작해, 평균자책점 2점대를 찍으며 원포인트로 활약했다.

하지만 부상으로 말아먹고 또 방출되었다. 그가 또 부상을 당하지 않았으면 좌완 왕국인 SK에 또다른 좌완으로 기억되었을 것이나, SK와 프로야구가 팬이 늘기 바로 전에 방출되어 그저 아쉬울 뿐이다.

2.6. LG 트윈스 2기


커리어의 황혼에 이른 그에게 너클볼이 찾아온다. 사실 커리어의 대부분은 너클볼을 던지지 않았지만, 2009년 LG에 2번째 입단을 하기 전에 불완전한 너클볼을 습득했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도 기삿거리가 되고 기억이 되었으며 이 항목이 작성될 이유가 되었다. 하지만 단순히 던졌다 뿐이지, 그 너클볼로 똑딱이 이종욱에게 홈런을 맞았고, 역시 똑딱이인 이인구에게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서 대형 홈런을 허용하는 등, 성적은 좋지 않아 또 방출되었다.

2.7. 일본 독립리그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서 독립리그 팀에 입단하여 활동했다. 이 때 찍은 기록은 31경기에 등판해 1승 2패 3세이브 14홀드, 평균자책점 1.09. 하지만 그걸 끝으로 독립 리그를 나와 또 한국프로야구 팀 입단을 재시도했으나 실패했고, 이후 멕시코로 이동하여 무려 7번째 입단을 타진한다. 하지만 레퍼런스에 별다른 자료가 없는 걸로 보아(KBO 때 자료 뿐이다) 실패한 것으로 보인다.

결국 선수 생활에서 완전히 은퇴했다. 저렇게 파란만장한 생활을 했음에도 나이는 김재현보다 적어서,[7] 조금 일찍 은퇴했다는 생각이 들 만하다.

3. 지도자 경력

3.1. SK 와이번스

한 때 몸담았던 팀이자 코치진이 초토화된[8] SK 와이번스의 2군 재활코치로 영입되어 지도자 생활을 시작하였다. 그의 재활코치 영입에 대하여 SK 팬들은 대부분 호의적인 반응이었다.

정영일SK 와이번스에 입단한 후 병역 문제로 인해 상무행을 결정하자, 에 차린 SK의 재활 캠프에서 정영일이 입소를 위해 조기 귀국할 때까지 투구 밸런스를 잡아 주기도 했다.

2015년 8월 15일 부로 김상진 1군 투수코치가 재활군으로 내려가면서 김원형이 1군 투수코치로 이동하자, 1군 불펜 투수코치로 승격되었다.

2015 시즌 후 3군 투수코치로 이동했고, 2017 시즌부터는 2군 투수코치를 맡고 있다.

2020 시즌 후 재계약이 불발되며 팀을 떠났다. SK 팬들은 대체로 아쉬워하는 분위기다. 최근 SK의 주축 투수로 성장한 대부분 선수들의 신인 시절에는 김경태 코치의 지도력이 큰 역할을 했기 때문이다.[9] SK의 고위 관계자도 능력 문제 때문에 재계약이 불발된게 아니라 팀 분위기 쇄신 차원이라고 밝혔다.

3.2. LG 트윈스

SK와 결별한 후 친정팀인 LG 트윈스로 12년 만에 코치로서 다시 돌아왔다. SK에서 맡았던 보직과 그동안의 성과를 고려할 때 2군 투수코치를 맡을 가능성이 높다. 그리고 예상대로 2군 투수코치로서 지도 업무를 맡게 됐다. 커리어 내내 제구가 말썽이었던 이우찬의 밸런스를 잡아 2022년부터 1군에서 없어서는 안될 투수로 만든 점으로 호평을 받았다. 142→149㎞…'구속 혁명' LG 이우찬에게 무슨 일이 있었나

2023년부터는 LG의 1군 불펜코치를 맡는다. 그러나 1군 투수코치인 경헌호 코치가 건강 문제로 휴식을 취하게 되면서 경 코치의 복귀 전까지 메인 투수코치를 맡게 되었다.

시즌 초반에는 메인 투수코치로서의 평가는 안 좋은 편이었다. WBC의 여파인진 몰라도 고우석이 부상, 정우영, 김윤식이 심각하게 부진한 데다 투수들이 죄다 전년과 달리 구속도 떨어진 모습을[10] 보이고 있으며 투수 교체도 영 신통치 않아 작년 불펜 왕국을 구축하며 운용면에서 강점을 보였던 경헌호와 비교돼서 까이고 있다. 더 나아가 염경엽 감독이 같이 데려온 허수아비 수석코치 김정준, 작년 수비 1위 팀을 실책 1위 팀으로 만들어버린 수비코치 김일경과 묶여 삼김이라고 까이며 아예 당장 감독이랑 손잡고 나가라는 극단적인 말까지 나오는 판이었다.

후반기 들어서는 긍정적인 평가로서 박명근, 유영찬 등 신예들의 발굴과 서건창과 함께 까임 순위 1위였던 함덕주의 부활, 백승현의 투수 정착이 완벽히 이루어졌다는 평을 받았다. 이와 함께 부진에 빠진 작년 필승조의 구멍을 메우고 있어 불펜진의 수준과 운용이 아주 답이 없는 수준은 아니란 것 정도이다. 하지만 이마저도 이 신흥 필승조를 이기든 지든 점수차만 적으면 등판시키는 백정짓을 하고 있는지라 알아서 욕을 수집하고 있다.[11] 여러모로 전임 투수코치인 경헌호에 비하면, 이용훈같이 운용보다는 육성 쪽이 어울리는 듯 하다.

한국시리즈에서는 전반기에 받았던 평가와는 상반되는 신들린 투수교체에 힘입어[12] 팀이 우승을 차지하면서 선수때 껴보지 못한 우승반지를 코치로써 끼게 되었다.

2024 시즌엔 고우석의 메이저 진출, 이정용의 상무 입대, 정우영함덕주가 수술을 받고 재활하는 관계로 전년 필승조가 거의 전부 도려내진 상태에서 시즌을 시작하는 바람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것으로 예상되었다. 엎친데 덮친 격으로 김윤식이 언제나 그랫듯이 전반기에 컨디션 난조를 호소하고 백승현이 예상치 못하게 부진하자 필승조가 거의 궤멸한 상태로 전반기를 이끌게 되었다. 때문에 득점권에서 부진한 타선과 겹쳐 하루하루 진땀나는 야구를 보여주고 있다. 그나마 위안이라면 김진성이 건재한 것과 김유영이 작년의 안식년을 만회하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고, 손주영선발 투수로서 예상보다 더 잘해주고 있어 작년 전반기보단 선발진은 약간 낫다는 것.

7월 16일 최상덕과 교대하여 2군으로 내려갔다. 사유는 스트레스로 인한 건강 악화.[13] 정작 최상덕도 욕이란 욕을 다 듣고 다시 김광삼과 교대했다는 건 함정.

4. 관련 문서



[1] 1994학번[2] 일본 독립리그 팀[3] ~8월 14일[4] 8월 15일~[5] ~7월 15일[6] 7월 16일~[7] 김재현은 프로필상 1975년생으로 김경태와 동갑이지만, 김재현 문서에도 나와 있듯이 김재현의 실제 나이는 1974년생으로 김경태보다 1살이 많다.[8] 2011 시즌이 끝나자마자 김정준부터 시작하여 김성근 감독과 인연이 있는 박상열, 이홍범, 계형철, 가토 하지메, 김태균, 이철성 등의 코치들이 줄줄이 SK에 사표를 내고 만다.[9] 특히 시즌 중에는 아예 서울의 집을 떠나 강화도 퓨처스 파크에서 숙식을 해결하며 선수들의 육성에 매달렸다. SK 구단에서도 그의 성실성과 지도력에 매우 높은 점수를 줬다고 한다. 그랬던 그가 SK를 떠난다고 하자 퓨처스 파크에서 일하던 분들이 아쉬움의 눈물을 흘렸을 정도.[10] 이민호이정용은 150 가까이 나오던 직구가 141 수준으로 추락했으며 정우영은 평속이 150을 찍던 괴물 사이드암이었는데 최고 구속이 150을 넘지가 않고 있으며 김윤식은 평속이 140초반은 나왔었는데 최고 구속이 딱 140이 나오는 폐급 투수가 되었다.[11] 이건 일장일단이 있다. 신흥 필승조가 지는 상황에서도 점수차가 벌어지지 않게 잘 막아준 덕에 리그 1위에 빛나는 LG 타선이 역전을 만들어 역전승 1위라는 기록을 달성했기 때문이다.[12] 2차전 투수 운용에 관한 뒷이야기를 본인이 직접 풀어놓았다.[13] 실제로 김민수의 호수비 때 비춰진 표정도 그렇고 시즌 내내 안색이 좋지 않아 보인다는 의견이 있었던 점 때문에 납득한다는 반응이 주를 이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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