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15 20:06:56

계형철

계형철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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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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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코치
199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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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SK 와이번스 시절 포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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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초대 2대 3대 4대 5대
김충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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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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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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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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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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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
20대부터 22대까지는 총괄코치 직함 사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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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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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대
계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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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2021)
2대
유영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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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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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fffff [[OB 베어스|OB 베어스]] 등번호 11번}}}
팀 창단 계형철
(1982~1991)
이광우
(1992~2001)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71번}}}
최준호
(1991)
계형철
(1993~1998)
결번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3번
박승호
(1994~1998)
계형철
(2000~2001.7.1.)
강성우
(2006~2009)
SK 와이번스 등번호 73번
김경기
(2003~2005)
<colbgcolor=#ff6600><colcolor=#fff> 계형철
(2007~2011)
성준
(2012~2014)
LG 트윈스 등번호 93번
김영직
(1997~2012)
계형철
(2013~2014)
장진용
(2019~)
한화 이글스 등번호 83번
오대석
(2013~2014)
계형철
(2015~2017)
이재우
(2018)
}}} ||
파일:계영철.jpg
계형철
桂瀅鐵 | Gye Hyung-Cheol
출생 1953년 4월 3일 ([age(1953-04-03)]세)
경기도 인천시 송림동
(현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인천송림초등학교 (졸업)
동인천중학교 (졸업)
중앙고등학교 (졸업)
성균관대학교 경상대학 (경영학 / 학사)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롯데 자이언트 (1976, 1980~1981)
OB 베어스 (1982~1991)
지도자 쌍방울 레이더스 1군 투수코치 (1993~1998)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1999)
삼성 라이온즈 1군 투수코치 (2000)
삼성 라이온즈 잔류군 투수코치 (2001)[1]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01~2004)[2]
중앙고등학교 감독 (2005~2006)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07~2010)[3]
SK 와이번스 1군 수석코치 (2010)[4]
SK 와이번스 2군 감독 (2010)[5]
SK 와이번스 2군 재활코치 (2011)
LG 트윈스 잔류군 책임코치 (2013)
LG 트윈스 1, 2군 순환 투수코치 (2014)
한화 이글스 순회코치 (2015)
한화 이글스 육성군 총괄코치 (2016)[6]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 (2016)[7]
한화 이글스 에릭 서캠프 전담코치 (2016)[8]
한화 이글스 1군 투수보조코치 (2017)
고양 위너스 감독 (2018~2021)
병역 성무 야구단 (1977~1979)
본관 수안 계씨[9]

1. 개요2. 생애3. 선수 경력4. 연도별 주요 성적5. 지도자 경력
5.1. 쌍방울-한화-삼성 코치 및 중앙고 감독 시절5.2.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5.3. LG 트윈스 코치 시절5.4. 한화 이글스 코치 2기 시절
6. 기타7.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KBO 리그투수이자 코치.

현역 시절에는 OB 베어스에서만 선수 생활을 했던 초창기 프랜차이즈 투수. 현역 시절 그의 트레이드마크인 덥수룩한 수염은 특유의 포스를 자랑했다. 현역 시절 등번호는 11번였다. 지도자로서는 대표적인 김성근 사단으로 유명하다.[10]

2. 생애

1953년 4월 3일 경기도 인천시 송림동(현 인천광역시 동구 송림동)에서 실향민인 아버지 계승수(桂承秀)와 어머니 충주 석씨 석경애(石敬愛)[11] 사이의 3형제 중 막내 아들로 태어났다.

3. 선수 경력

중앙고등학교성균관대학교 경영학과를 졸업하고 공군과 롯데 자이언트(실업 팀)에 입단하였고, 81년의 우승때 멤버로 있었다.[12] 1982년 한국프로야구 창설과 함께 OB 베어스의 창단 멤버로 입단하였다. 아마추어 시대였던 1978년에는 노히트노런을 기록하기도 한 에이스급 투수였으나, 한국프로야구 창설 당시에는 이미 우리나이로 30살의 노장[13]이었기 때문에 프로야구 진출과 은퇴를 놓고 갈등하기도 했다고 한다.

1982년 OB의 원년 우승 멤버로 박철순, 박상열 등과 함께 선발진의 한 축을 담당했다. 전성기는 1984년으로 이 해 방어율 2위(2.06), 다승 6위(14승), WHIP 5위(1.13)으로 박철순이 부상으로 빠진 팀의 에이스 역할을 완수했다. 1985년(11승 11패 ERA 2.78)과 1988년(10승 12패 ERA 3.75)에도 두자릿수 승수를 올렸으며 1980년대 말까지 베어스의 에이스급 투수로 활약했다.
파일:KHC_1.jpg
바야바를 연상시켰던 현역 시절 모습. 산적같이 덥수룩한 수염이 트레이드마크였다.

박찬호의 아마추어 시절처럼 젊을 때부터 볼은 빠르지만 제구력이 형편없는 장단점이 뚜렷한 투수였다. 그의 제구력이 좋지 못한 이유는 나쁜 시력 때문이라고 하는데 일설에는 어느날 경기 중 볼 데드 상황에서 포수가 없는 상황에 홈플레이트를 향해 볼을 던져 심판이 맞았다고 한다. 심판과 포수를 헷갈릴 정도로 눈이 나빴다는 얘기로 보인다. 그러나 프로에 들어와서는 구속을 늦추고 제구력을 향상시키면서 기교파에 가깝게 변신하면서 당시 투수로는 드물게 38세까지 롱런할 수 있었다. 1991년 마지막 시즌에는 만 38세 5개월의 나이로 LG 트윈스를 상대로 완투승을 기록해 한화 이글스의 '회장님' 송진우가 2005년 기록을 깨기 전까지 국내파 선수 최고령 완투승 기록을 보유하고 있었다.

통산 성적은 1286.2이닝을 던져 69승 89패 9세이브. ERA 3.43. 29세의 나이로 프로에 데뷔했고 1980년대 말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OB의 전력이 좋지 못했다는 점을 고려하면 준수한 성적이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 진한 표시는 리그 5위 내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82 OB 21 90⅓ 4 4 0 0.500 4.88 73 6 78
(4위)
42 59 49 1.65
1983 29 193⅓ 9 12 0 0.429 3.44 190 11 85
(4위)
86
(공동 5위)
97
(2위)
74
(4위)
1.36
1984 29 174⅔ 14 4 0 0.778
(2위)
2.06
(2위)
135 8 70 92 44 40 1.13
1985 34 194 11 11 2 0.500 2.78 165 17 70 84 71 60 1.18
1986 22 111 5 7 0 0.417 3.16 94 8 52 47 48 39 1.30
1987 25 148⅓ 8 12 0 0.400 2.61 122 3 80
(공동 4위)
53 59 43 1.32
1988 33 129⅔ 10 12 2 0.455 3.75 121 7 64 48 59 54 1.41
1989 20 87⅔ 5 8 2 0.385 3.59 88 5 36 38 40 35 1.40
1990 27 114⅔ 2 13 2 0.133 5.42 123 7 64 43 74 69 1.59
1991 14 43 1 6 1 0.143 5.86 56 1 22 14 35 28 1.79
KBO 통산
(10시즌)
254 1286⅔ 69 89 9 0.437 3.43 1167 73 621 547 586 491 1.35
완투, 완봉 기록
연도 완투 완봉
1982년 3완투 1완봉
1983년 9완투 3완봉
(4위)
1984년 6완투 1완봉
1985년 8완투 0완봉
1986년 3완투 1완봉
1987년 5완투 0완봉
1988년 2완투 0완봉
1989년 1완투 1완봉
1990년 1완투 1완봉
1991년 2완투 0완봉
통산 40완투 8완봉

5. 지도자 경력

5.1. 쌍방울-한화-삼성 코치 및 중앙고 감독 시절

파일:external/image.chosun.com/2014110302371_0.jpg
한화 이글스 코치 1기 시절

은퇴 이후 쌍방울 레이더스-한화 이글스-삼성 라이온즈 등을 거치면서 유능한 투수코치로서도 열심히 활약하였다. 특히 1995년 말 스승 김성근이 쌍방울 감독으로 영입되면서부터 그의 코칭 능력이 제대로 빛을 보기 시작했다. 투수 부문을 책임지는 김성근-계형철 콤비 체제가 이 때부터 가동된 셈이다. 1990년대 말 쌍방울 특유의 벌떼야구를 설계한 사람이 김성근이라면 각 투수들을 적재적소에 맞게 조련한 사람은 계형철이었다. 사실 쌍방울에서는 코치로서의 평가가 아주 좋을 정도로 일을 잘 하고 있었으나 외환 위기의 영향으로 쌍방울 구단이 선수단 규모를 축소하고 운영비를 줄이는 과정에서 잘렸다고 한다.

여담으로 쌍방울 코치 시절 전주 야구장에 야구를 보러 온 한 초등학생이 계형철 코치에게 "방망이 하나만 주세요"라고 연거푸 조른 일이 있다. 장난기가 발동한 계형철은 이 초등학생에게 "집에 강아지 키우니? 키우면 한 마리 코치님 줘라. 그러면 방망이 줄게"라고 했고 계 코치의 말을 믿은 이 학생은 할머니 몰래 키우던 강아지를 계 코치에 줬다. 문제는 온전한 방망이를 선물로 준 게 아니라 부러진 조각(...)을 줬다고 한다. 계형철에게 강아지를 주고 방망이 조각을 받아온 이 어린이는 2009년 프로야구 선수가 돼 계형철과 같은 팀 유니폼을 입게 되지만 희대의 승부조작 사건에 휘말려 불명예스럽게 야구계를 떠났다.

쌍방울에서 잘린 후 한화에서 이희수 감독과 호흡을 맞추며 1999년 한국시리즈 우승 반지를 끼었다. 그리고 2000년 스승 김성근이 삼성 2군 감독이 되자 그를 따라 삼성 2군 투수코치로 갔으나 김성근이 2000년 말 삼성에서 잘린 뒤에는 다시 한화로 돌아가서 이광환, 유승안 감독과 함께 2004년까지 1군 메인 투수코치로 활동했다. 일각에서는 한화 코치로 있던 시기에 투수조장인 한용덕과 계형철 사이에 불화가 있었다는 썰이 있으나 확인된 바는 없다.[14]

그러다 한화 감독으로 김인식이 등장하자 모교인 중앙고로 가서 자신의 야구 인생 중 처음으로 감독을 맡았다.[15] 스승 김성근이 제자였던 본인을 코치로 중용했던 것처럼 계형철도 중앙고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쌍방울 시절 제자인 고형욱을 투수코치로 영입했다. 계형철은 2006년 말 중앙고 감독을 그만 두고 SK 와이번스 퓨처스팀 감독으로 근무지를 옮길 때 고형욱에게 중앙고 감독 자리를 물려줬다.

5.2. SK 와이번스 코치 시절

김성근 감독이 2007년 SK 와이번스에 부임하면서 함께 입단하여 고향 팀의 2군 감독을 맡았다. 김성근 감독의 최측근 인맥으로 2010년 6월에 이만수 1군 수석코치와 자리를 맞교대하여 2개월간 1군 수석코치를 맡았다가 다시 자리를 바꾸며 2군 감독으로 복귀했다.

다만 2군 감독 시절 의 성적은 퓨처스리그에서 하위권에 맴도는 등 성적은 그닥 좋지 못했다. 이는 1군 감독이었던 김성근 감독 특성상 2군 유망주가 보이면 1군에 동행시켜 배팅볼 투수를 시키거나 포텐이 터지거나 하면 군 입대를 최대한 연기시키고 본인 재임 기간동안 최대한 기용하는 특성 때문. 또한 2군 자체도 김성근이 숱하게 간섭하다 보니 막상 2군 선수진을 가지고 경기를 꾸리기 힘들었던 것도 한 몫 했다.

2011년이 되면서 이만수 수석코치가 다시 2군 감독이 되면서 계형철 2군 감독은 재활코치가 되는 등 코칭 스태프에 대대적인 인사이동이 있었다.

파일:/image/111/2010/07/21/1279703463121_1.jpg

결국 김성근 감독이 경질된 상황에서 김성근 감독의 최측근인지라 구단을 떠날지도 모른다는 추측이 나왔고, 결국 이홍범, 박상열, 김정준, 강성인, 홍남일 코치와 같이 SK 구단을 떠났다.

이 시기 다행이었던 것은 2군 감독을 하면서 선수들과 같이 숙소에서 지냈는데 사건사고가 전혀 발생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관리 및 매니지먼트 면에서 좋은 평가를 받고 있다.[16]

5.3. LG 트윈스 코치 시절

2012 시즌 종료 이후 LG 트윈스가 영입했다는 기사가 나왔다. 보직은 잔류책임코치.

LG 진주서 마무리훈련, 김민호-계형철 코치 영입 그러나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브레이크 도중, 2군 코치 개편 과정에서 LG 트윈스로부터 해임 통보를 받았다. 다만 계형철 코치의 경우 평소 건강 상태가 좋지 않다는 이야기가 있어, 이 문제 또한 해임 결정에 고려가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5.4. 한화 이글스 코치 2기 시절

파일:/image/410/2014/11/06/20141106_1415226358.jpg_99_20141106145224.jpg

"김성근 사단"의 일원이라 김성근 감독을 따라서 한화 이글스로 갈 가능성이 조금 있었고, 예상대로 팀을 옮겼다. 다만, 건강이 좋지 못하다는 게 문제. 일단 한화 이글스에서는 고양 원더스의 메인 투수코치였던 박상열을 영입했으며, 얼마 지나지 않아 11월 3일, 대대적인 코치 영입 과정 속에서 이홍범 코치와 함께 한화 이글스에 합류했다.

파일:/image/410/2014/11/03/20141103_1414991039.jpg_99_20141103140710.jpg

한화에서의 보직은 당초 알려진 바와 달리 순회코치이다. 순회코치의 구체적은 역할은 이 기사를 참조.

김성근 사단의 상당수가 갈려 나가는 데에도 살아남았다.[17]

2016년 8월 13일 한화 이글스 육성군 총괄코치에서,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로 보직변경이 되었다.

2016년 8월 18일 한화 이글스 1군 투수코치에서, 한화 이글스 에릭 서캠프 전담코치로 보직변경이 되었다.

2017년부터 1군 투수보조코치를 역임하게 됐다.#

그러나 이런저런 내통을 겪은 끝에 팀을 떠나게 된 김성근 감독을 따라 2017년 5월 24일 부로 한화 이글스의 코치직에서 사퇴했다.

6. 기타

  • 딸이 굉장한 미인이라고 한다.
  • 오상민박명환야구TV에서 풀어낸 일화에 따르면 쌍방울 시절 계형철이 오상민의 곁을 지나가며 "너 선발" 한 마디만 하고 지나갔는데[18] 무슨 뜻인지 모르던 오상민은 스파이크도 안 신고 쉬고 있다가 경기 시작 1시간 전 전광판에 선발투수로 이름이 올려진 걸 뒤늦게 알고 부랴부랴 등판 준비를 해서 승리를 거뒀다고 한다. 승리를 거두고 난 후 며칠 뒤에 계형철 코치가 또 "너 선발"이라고 그러길래 장난이겠거니 싶었는데 또 선발로 등판했다고 한다.
  • 위의 한화 재임 시절 사진도 그렇고 나이가 들수록 김기현 성우를 닮아가고 있다.

7. 관련 문서



[1] ~7월 1일[2] 7월 21일~[3] ~6월 17일[4] 6월 18일~8월 15일[5] 8월 16일~[6] ~8월 12일[7] 8월 13일~8월 17일[8] 8월 18일~[9] 강계파 23세 형(瀅) 항렬.[10] 계형철 감독은 현역이었던 OB 베어스 시절에 김성근 감독과 처음으로 인연을 맺었고, 이후 지도자가 된 후로는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부터 삼성 라이온즈 2군, SK 와이번스, 한화 이글스 시절까지 총 4개의 팀에서 감독과 코치로 함께 했다.[11] 석용림(石龍林)의 차녀이다.[12] 그해는 최동원이 다 해먹었다.참고로 코리안 시리즈에 나와서 2차전 패전투수가 되었다.[13] 실업야구 시절에는 체계적인 체력훈련, 재활 시스템이 없어서 e스포츠계처럼 20대 후반이면 노장 소리 듣고, 30이 넘으면 무조건 은퇴였다. 지금보다 선수 생명이 대략 10년 정도 짦았다고 보면 된다. 은퇴 이후에는 대부분 소속 기업의 사무직으로 일하고 극소수만 감독이나 고교/대학팀 지도자로 가곤 했다. 일례로 당시 실업야구 최고의 선수였던 김성근은 31살, 김응용은 32살에 은퇴하고 바로 소속팀 감독이 되었다.[14] 공교롭게도 한용덕은 한화 코치와 감독대행으로 있던 2014년 말 한화 새 감독으로 김성근이 부임하고 계형철이 투수코치로 오자 두산 투수코치로 자리를 옮겼다. 물론 계형철과의 관계보다는 김성근 때문에 옮긴 게 더 크다.[15] 훗날 한화에서 같이 뛰게 된 송주호는 계형철이 중앙고 감독 시절 가르친 제자였다. 송주호가 SK 와이번스에서 입단 테스트를 볼 수 있었던 것도 계형철이 SK 프런트에 송주호를 소개해준 덕분이었다. 다만 송주호는 SK 입단 테스트에서 탈락했고 고양 원더스에서 김성근을 만났고 이후 한화에 입단하게 된다.[16] 그 당시의 모습은 불타는 그라운드에서 감상할 수 있으며, 신인 선수들에게 짜장면과 탕수육을 사 주기도 했다.[17] 다만 이홍범, 박상열 코치는 대리운전 사건이 컸다는 것이 문제. 일본인 코치들은 김성근과의 야구관 차이로 물러났다.[18] 1997년까지 KBO 리그에서는 선발투수 예고제라는 것이 없었다. 1990년대 중반에 일부 구단만 이를 시행했을 뿐이었고 김성근이 지휘봉을 잡던 쌍방울은 선발투수 예고제를 비웃듯 위장선발을 밥먹듯이 쓰던 팀이었다. 요즘처럼 선발투수 로테이션제나 분업화가 제대로 이뤄진 시절도 아니었기에 그냥 감독이나 코치 마음 내키는대로 선발투수를 기용하던 시절의 일이다. 특히 쌍방울과 경기를 하면 위장선발의 등장이 워낙 잦았던 탓에 KBO 측이 나서서 선발투수 예고제 시행을 의무화한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