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06 23:57:31

박철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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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 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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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신
(1986.08.16.)
박철순
(2002.04.05.)
선수명 하단 일자: 은퇴식 및 영구 결번식 진행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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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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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1990 1991
박철순 장호연 김진욱 장호연 김진욱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장호연 이진 김상진 장호연 진필중
1997~1998 <rowcolor=#FFD700> 1999 2000~2001 2002~2003 2004
김상진 강병규 조계현 박명환 키퍼
<rowcolor=#FFD700> 2005 2006~2007 2008 2009 2010
랜들 리오스 레스 김선우 히메네스
<rowcolor=#fff> 2011~2014 2015 2016~2017 2018~2019 2020
니퍼트 마야 니퍼트 린드블럼 알칸타라
<rowcolor=#fff> 2021 2022 2023~2024
로켓 스탁 알칸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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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철순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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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1.svg파일:두산 베어스 우승 엠블럼 V2.sv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82 19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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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MV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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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dba628> 1982 1983 1984 1985 1986
박철순
OB 베어스 / 투수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포수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 투수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투수·내야수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투수
<rowcolor=#dba628> 1987 1988 1989 1990 1991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외야수
김성한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투수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투수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내야수
<rowcolor=#dba628> 1992 1993 1994 1995 1996
장종훈
빙그레 이글스 / 내야수
김성래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내야수
김상호
OB 베어스 / 외야수
구대성
빙그레 이글스 / 투수
<rowcolor=#dba628> 1997 1998 1999 2000 2001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우즈
OB 베어스 / 내야수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박경완
현대 유니콘스 / 포수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rowcolor=#dba628> 2002 2003 2004 2005 2006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이승엽
삼성 라이온즈 / 내야수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투수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투수
류현진
한화 이글스 / 투수
<rowcolor=#dba628> 2007 2008 2009 2010 2011
리오스
두산 베어스 / 투수
김광현
SK 와이번스 / 투수
김상현
KIA 타이거즈 / 내야수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내야수
윤석민
KIA 타이거즈 / 투수
<rowcolor=#dba628> 2012 2013 2014 2015 2016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박병호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내야수
테임즈
NC 다이노스 / 내야수
니퍼트
두산 베어스 / 투수
<rowcolor=#dba628> 2017 2018 2019 2020 2021
양현종
KIA 타이거즈 / 투수
김재환
두산 베어스 / 외야수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투수
로하스
kt wiz / 외야수
미란다
두산 베어스 / 투수
<rowcolor=#dba628> 2022 2023 2024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외야수
페디
NC 다이노스 / 투수
김도영
KIA 타이거즈 / 내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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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 KBO 리그 베스트 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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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다승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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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박철순
OB 베어스 / 24승
장명부
삼미 슈퍼스타즈 / 30승
최동원
롯데 자이언츠 / 27승
김시진·김일융
삼성 라이온즈 / 25승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4승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23승
윤학길
롯데 자이언츠 / 18승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1승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22승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9승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송진우
빙그레 / 19승
조계현
해태 타이거즈 / 17승
이상훈
LG 트윈스 / 18승
조계현
해태 타이거즈 / 18승
이상훈
LG 트윈스 / 20승
구대성
한화 이글스 / 18승
주형광
롯데 자이언츠 / 18승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김현욱
쌍방울 레이더스 / 20승
김용수
LG 트윈스 / 18승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20승
김수경·임선동·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18승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15승
신윤호
LG 트윈스 / 15승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키퍼
KIA 타이거즈 / 18승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17승
레스
두산 베어스 / 17승
리오스
KIA 타이거즈 / 17승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17승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18승
류현진
한화 이글스 / 18승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리오스
두산 베어스 / 22승
김광현
SK 와이번스 / 16승
로페즈
KIA 타이거즈 / 14승
윤성환
삼성 라이온즈 / 14승
조정훈
롯데 자이언츠 / 14승
김광현
SK 와이번스 / 17승
윤석민
KIA 타이거즈 / 17승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장원삼
삼성 라이온즈 / 17승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14승
세든
SK 와이번스 / 14승
밴헤켄
넥센 히어로즈 / 20승
해커
NC 다이노스 / 19승
니퍼트
두산 베어스 / 22승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양현종·헥터
KIA 타이거즈 / 20승
후랭코프
두산 베어스 / 18승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20승
알칸타라
두산 베어스 / 20승
뷰캐넌
삼성 라이온즈 / 16승
요키시
키움 히어로즈 / 16승
<rowcolor=#fff> 2022 2023 2024
켈리
LG 트윈스 / 16승
페디
NC 다이노스 / 20승
곽빈
두산 베어스 / 15승
원태인
삼성 라이온즈 / 15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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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박철순
OB 베어스 / 1.82
하기룡
MBC 청룡 / 2.33
장호연
OB 베어스 / 1.58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70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99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89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21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17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13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1.55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염종석
롯데 자이언츠 / 2.33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78
정민철
빙그레 이글스 / 2.15
조계현
해태 타이거즈 / 1.71
구대성
한화 이글스 / 1.88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김현욱
쌍방울 레이더스 / 1.88
정명원
태평양 돌핀스 / 1.86
임창용
삼성 라이온즈 / 2.14
구대성
한화 이글스 / 2.77
박석진
롯데 자이언츠 / 2.98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엘비라
삼성 라이온즈 / 2.50
바워스
현대 유니콘스 / 3.01
박명환
두산 베어스 / 2.50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2.46
류현진
한화 이글스 / 2.23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리오스
두산 베어스 / 2.07
윤석민
KIA 타이거즈 / 2.33
김광현
SK 와이번스 / 2.80
류현진
한화 이글스 / 1.82
윤석민
KIA 타이거즈 / 2.45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나이트
넥센 히어로즈 / 2.20
찰리
NC 다이노스 / 2.48
밴덴헐크
삼성 라이온즈 / 3.18
양현종
KIA 타이거즈 / 2.44
니퍼트
두산 베어스 / 2.95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피어밴드
kt wiz / 3.04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2.88
양현종
KIA 타이거즈 / 2.29
요키시
키움 히어로즈 / 2.14
미란다
두산 베어스 / 2.33
<rowcolor=#fff> 2022 2023 2024
안우진
키움 히어로즈 / 2.11
페디
NC 다이노스 / 2.00
네일
KIA 타이거즈 / 2.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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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승률 1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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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박철순
OB 베어스 / 0.857
이길환
MBC 청룡 / 0.682
황규봉
삼성 라이온즈 / 0.833
김시진
삼성 라이온즈 / 0.833
윤석환
OB 베어스 / 0.833
최일언
OB 베어스 / 0.826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875
윤석환
OB 베어스 / 0.813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875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786
선동열
해태 타이거즈 / 0.826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오봉옥
삼성 라이온즈 / 1.000
정민철
빙그레 이글스 / 0.813
김홍집
태평양 돌핀스 / 0.800
이상훈
LG 트윈스 / 0.800
구대성
한화 이글스 / 0.857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김현욱
쌍방울 레이더스 / 0.909
김수경
현대 유니콘스 / 0.750
김용수
LG 트윈스 / 0.750
문동환
롯데 자이언츠 / 0.810
송진우
한화 이글스 / 0.867
갈베스
삼성 라이온즈 / 0.714
손민한
롯데 자이언츠 / 0.714
신윤호
LG 트윈스 / 0.714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김현욱
삼성 라이온즈 / 1.000
정민태
현대 유니콘스 / 0.895
배영수
삼성 라이온즈 / 0.895
오승환
삼성 라이온즈 / 0.909
전준호
현대 유니콘스 / 0.778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리오스
두산 베어스 / 0.815
채병용
SK 와이번스 / 0.815
김광현
SK 와이번스 / 0.857
차우찬
삼성 라이온즈 / 0.833
윤석민
KIA 타이거즈 / 0.773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탈보트
삼성 라이온즈 / 0.824
류제국
LG 트윈스 / 0.857
소사
넥센 히어로즈 / 0.833
해커
NC 다이노스 / 0.792
니퍼트
두산 베어스 / 0.880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헥터
KIA 타이거즈 / 0.800
후랭코프
두산 베어스 / 0.857
린드블럼
두산 베어스 / 0.870
알칸타라
두산 베어스 / 0.909
수아레즈
LG 트윈스 / 0.833
<rowcolor=#fff> 2022 2023 2024
엄상백
kt wiz / 0.846
쿠에바스
kt wiz / 1.000
박영현
kt wiz / 0.83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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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전드 올스타 40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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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위 2위 3위 4위
선동열 최동원 이종범 이승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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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위 12위 24위 25위
박철순 이만수 백인천 김성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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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불굴의 의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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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위 32위 33위 35위
이상훈 박정태 니퍼트 배영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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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위 20위 28위 31위
장효조 김시진 한대화 김재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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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위 13위 18위 26위
이강철 정민철 정민태 조계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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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균 박재홍 박경완 홍성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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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스포츠 선정 프로야구 40주년 기념 포지션별 올스타
2022. 01. 03. 일간스포츠 발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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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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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시진
(1983~1992)
1987년 / 124승
최동원
(1983~1990)
1990년 / 103승
선동열
(1985~1995)
1990년 / 146승
장호연
(1983~1995)
1993년 / 109승
윤학길
(1986~1997)
1994년 / 117승
정삼흠
(1985~1996)
1996년 / 106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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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f> 1982 1983 1984 1985 1986
박철순
OB / 2400만원
장명부
삼미 / 1억 8000만원(1)
장명부
삼미 / 2500만엔
장명부
삼미 / 1억 400만원
최동원
롯데 / 5800만원
<rowcolor=#fff> 1987 1988 1989 1990 1991
최동원
롯데 / 8910만원
최동원
롯데 / 8910만원(2)
최동원
삼성 / 9000만원(3)
선동열
해태 / 9000만원
선동열
해태 / 1억 500만원
<rowcolor=#fff> 1992 1993 1994 1995 1996
선동열
해태 / 1억 2000만원
선동열
해태 / 1억원
선동열
해태 / 1억 3000만원
선동열
해태 / 1억 3000만원
김용수
LG / 1억 1000만원
<rowcolor=#fff> 1997 1998 1999 2000 2001
김용수
LG / 1억 2200만원
양준혁
삼성 / 1억 4000만원
정명원
현대 / 1억 5400만원
이승엽
삼성 / 3억원
이승엽
삼성 / 3억원
<rowcolor=#fff> 2002 2003 2004 2005 2006
이종범
KIA / 4억 3000만원
이승엽
삼성 / 6억 3000만원
정민태
현대 / 7억 4000만원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rowcolor=#fff> 2007 2008 2009 2010 2011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심정수
삼성 / 7억 5000만원
김동주
두산 / 7억원
김동주
두산 / 7억원
김동주
두산 / 7억원
<rowcolor=#fff> 2012 2013 2014 2015 2016
김태균
한화 / 15억원
김태균
한화 / 15억원
김태균
한화 / 15억원
김태균
한화 / 15억원
김태균
한화 / 16억원
<rowcolor=#fff> 2017 2018 2019 2020 2021
이대호
롯데 / 25억원
이대호
롯데 / 25억원
이대호
롯데 / 25억원
이대호
롯데 / 25억원
추신수
SSG / 27억원
<rowcolor=#fff> 2022 2023 2024
김광현
SSG / 81억원
구자욱
삼성 / 20억원
류현진·박동원
한화·LG / 25억원
(1) 당시 언론에 발표된 금액은 계약금 4000만원, 연봉 4000만원을 합쳐 총 8000만원이었다.
실제로는 계약금 1500만엔(약 4500만원), 연봉 2500만엔(약 7500만원), 부대 비용 6000만원을 합쳐 총 1억 8000만원이었다.
(2) 실제 연봉 계약은 시즌 중이었던 6월 29일에 이루어져서 실수령액은 35,862,750원이다. 최동원 90만원 사건 참조.
(3) 실제 연봉 계약은 시즌 중이었던 6월 23일에 이루어져서 실수령액은 47,400,000원이다. 항목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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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유 기록
최다 연승 22연승[1]

OB 베어스 등번호 21번
팀 창단 박철순
(1982~1996)
영구 결번
OB 베어스 등번호 90번
이광환
(1984~1985)
박철순
(1997~1998)
김현수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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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arkcheolsun21doo.jpg
<colbgcolor=#131230><colcolor=#C8AB37> 두산 베어스 No.21
박철순
朴哲淳 | Park Cheol-Sun[2]
출생 1954년 3월 12일[3] ([age(1954-03-12)]세)
경상남도 부산시 중부출장소
(現 부산광역시 중구)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부산동광초등학교 (졸업)[4]
경남중학교 (졸업)
배명고등학교 (졸업)[5]
연세대학교 정법대학 (법학 / 중퇴)[6][7]
신체 182cm, 72kg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0년 국제 아마추어 자유계약 (MIL)
1982년 OB 베어스 창단멤버
소속팀 밀워키 브루어스 산하 마이너 (1980~198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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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톡턴 포츠 (1980) / A+
엘패소 디아블로스 (1980~1981) / AA
OB 베어스 (1982~1996)
지도자 OB 베어스 플레잉코치 (1987, 1989, 1992)
OB 베어스 2군 투수코치 (1997~1998)[8]
스리랑카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5)
해설위원 olleh tv 야구 해설위원 (2012)
등장곡 권인하 - 에이스를 위하여[9]
프랭크 시나트라 - My Way
종교 개신교[10]
병역 성무 야구단[11]] (1976~1978) [12]

1. 개요2. 선수 경력
2.1. 수상 내역
3. 플레이 스타일4. 은퇴 이후
4.1. 야구 외 활동4.2. 방송 및 코치 활동
5. 어록6. 박철순에 대한 말말말7. 논란 및 사건사고8. 기타9.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팬 여러분 저는 이제 떠나가지만, 영원히 여러분들 곁에 남아 있을 것입니다. 팬 여러분 사랑합니다.[13]
2017년 KBO 플레이오프 1차전 시구 中

대한민국의 전 야구선수이자 OB 베어스에서만 뛰었던 투수. KBO 리그 원년부터 활약했고 OB-두산 베어스의 첫 번째 프랜차이즈 스타였으며, 한국프로야구 원년을 빛낸 선수로 베어스의 첫 번째 우승을 이끌었다. 특히 그가 기록한 단일 시즌 22연승은 백인천의 시즌 타율 0.412와 더불어 [age(1982-03-27)]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깨지지 않는 한국프로야구 원년의 대기록이기도 하다.

소위 'OB 아재'로 불리는 베어스 올드 팬들의 압도적인 지지를 받고 있으며, 박철순에 매료돼 야구에 빠져들고 골수 베어스 팬이 됐다는 이들이 적지 않다.[14] 오죽하면 "박철순의 OB, OB의 박철순"이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붙을 정도였다. 다만 시대가 흘러가면서 박철순을 기억하는 팬들의 숫자는 다른 베어스 프랜차이즈 스타들의 팬덤보다 줄고 있지만[15] 그래도 OB-두산 베어스의 역사에서 결코 빼놓을 수 없는 슈퍼스타라는 사실은 부정할 수 없다.

사실 박철순의 성적은 원년에만 화려했을 뿐 나머지는 보통 이하의 수준인 적이 많았고 부상으로 1년을 통으로 쉰 기간도 있었다. 그럼에도 박철순이 오랫동안 팬들로부터 사랑받은 것은 원년부터 그를 괴롭혔던 수많은 부상들을 스스로 이겨내며 끝내 재기에 성공하는 인간 승리의 모습을 여러 번 보여줬기 때문이다. 그래서 얻은 현역 시절 별명은 '불사조'였다. 그는 베어스의 맏형으로서 팀 통산 두 번째 우승까지 함께하고 1996년을 끝으로 은퇴했다.

KBO 리그 통산 네 번째로 영구 결번에 지정된 선수이자 영구 결번식과 은퇴식을 모두 경험한 최초의 KBO 리그 선수이기도 하다.[16][17] 더불어 그는 한국프로야구 원년부터 21번을 등번호로 사용했으니 베어스 역사상 유일하게 21번을 단 선수가 되었다.[18]

전용 응원가는 권인하'에이스를 위하여'. 이 노래가 나오면서 노장 박철순이 마운드 위에 오르는 순간의 감동은 OB 팬들에게 추억으로 남아있다. 은퇴식에서 울려퍼진 프랭크 시나트라My Way도 그를 상징하는 노래로 남아있다.

2. 선수 경력

박철순의 선수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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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합 선수 경력: 박철순/선수 경력
MILB
미국 시절
파일:KBO 리그 로고(1982~2012).svg
아마추어 시절 1982년 1983~1984년
1985~1986년 1987~1994년
1995~199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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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 수상 내역

수상 한국시리즈 우승 2회 (1982, 1995)
MVP (1982)
승리 1위 (1982)
평균자책점 1위 (1982)
승률 1위 (1982)

3. 플레이 스타일

파일:박철순투구폼.gif
박철순의 역동적인 투구폼[19]

데뷔 시즌의 임팩트만 놓고 보면 최동원이나 선동열의 아성에 견줄 만한 수준이었다. sWAR 기준 데뷔 시즌 성적 2위이자 국내 선수로는 1위이다.[20] 불꽃같은 첫 해의 임팩트에 선수 생활의 모든 것을 갈아넣었던 투수.

프로야구 초창기엔 스피드건이 드물었기 때문에 정확한 구속 기록은 남아있지 않지만 전성기에는 최고 150km/h 초반의 빠른 패스트볼을 던졌다는 증언이 많다. 또한 커브, 슬라이더, 역회전 볼도 잘 구사했다고 한다. 패스트볼의 무브먼트가 굉장히 좋아서 당시 해설자들은 그의 몸쪽 패스트볼을 역회전 공이라고 표현하기도 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박철순이 던졌던 구질에 관해서는 꽤 설왕설래가 많았는데 80~90년대에는 한국에서 너클볼을 최초로 던진 투수로 널리 알려졌으나 본인의 회고에 의해 실제로는 미국 시절 배워온 팜볼로 밝혀졌다. 그럼에도 너클볼 투수라는 인식이 워낙 강했던 탓에 2020년대 들어와서도 박철순하면 너클볼을 떠올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21] 박철순 이후로 KBO 리그에서 팜볼을 던진 투수는 단 한 명도 없었다는 걸[22] 감안하면 지금도 그렇지만 당시 한국 야구에서는 더더욱 생소했던 구질들을 던졌던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다.

흔히 너클볼이 희귀 구종의 대명사로 알려져있지만 실제로 KBO에서 간간히 너클볼을 던진 투수가 있었다는 점을 감안하면 팜볼 쪽이 더 희귀 구종이라고 할 수 있다. 팜볼은 손바닥 전체로 공을 감싸고 던져야 하는데 제구가 매우 어려운 구종으로 알려져 있어 일본[23]이나 미국에서도 잘 구사하지 않는 구종이다.

한편 공의 무브먼트와 빠른 구속을 위해 상당한 하이키킹의 투구폼을 구사했는데 이것이 만성적인 허리 부상의 원인이 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다만 은퇴할 때까지 투구폼을 거의 수정하지 않고 이 폼을 고수했다.

특이사항으로 부상이 잦았던 데 비해 신기할 정도로 선수 커리어 내내 구속은 잘 유지된 편이다. 선수 생활 내내 허리가 좋지 않았던 데다가 아킬레스건 부상은 수술을 한다고 해도 고질병처럼 지속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부상을 내내 달고 다니면서도 구속이 유지되었다는 것은[24] 이 선수가 얼마나 열심히, 그리고 진지하게 훈련을 해 왔는지 알 수 있는 부분이다.

4. 은퇴 이후

4.1. 야구 외 활동

은퇴한 이후에는 OB 베어스에서 투수코치를 맡기도 했으나, 1998년 시즌 중 후술할 사건으로 인해 사임하고 1999년 이후로는 야구계를 떠나 '알룩스포츠'라는 스포츠 용품 회사와 '모든테크'라는 디스플레이 장치 제조사의 회장을 역임하였다.# 한때 연매출 100억 가량의 우량기업으로 성공적인 사업가로 자리잡았으나, 2007년도 대장암으로 투병중이라는 사실이 언론에 공개되었다. 이 암 투병이 계기가 되어 건강상의 문제로 사업가 생활도 정리하고 완전히 은퇴하여 요양과 소일거리를 하며 지내는 듯.

사업가로 활동할 당시 사업을 경기도 의왕시에서 했던 인연으로 박철순을 의왕시 홍보대사로 위촉한 적이 있었다.

4.2. 방송 및 코치 활동

그 후로는 인터넷 방송이나 olleh TV에서 야구 해설을 맡는 등의 소일거리 정도를 하며 지내고 있다. 기아자동차의 광고 나레이션으로도 주목받고 있다. 다만 예전 2군 코치 시절의 흑역사 때문인지 지도자로 나설 생각은 없다고 한다.

KBS의 다큐멘터리에 따르면 유소년 야구 코치도 하고 있는 듯.
파일:2009년박철순시구.jpg
2009년 시구하는 모습

하지만 본인이 몸 담았던 두산 구단이 초청하는 시구는 꾸준히 수락하고 있다. 2007년과 2009년 시구로 모습을 비추었으며, 2011 시즌 개막전에서는 팀의 레전드인 김우열, 김경문과 함께 시구 시타 시포를 하여 명장면을 연출했다.

그러다가 2015년 3월말에 갑자기 스리랑카 야구 코치가 되었다. 5월에 열린 동아시안컵 야구대회에서 3승 2패를 기록했다. 당초 대한야구협회에서 스리랑카 야구협회에 감독을 보내주기로 했으나 박철순의 젊은 후배 감독들이 모두 거절해서 박철순에게 까지 제의가 들어온 것이었고 협회의 제안을 박철순이 받아들여 이루어졌다. 경비나 체류비 지원이 있는게 아니라서 어려운 자리임에도 응했고 실질적으로 재능기부 형태로 스리랑카에 가는 것이었다. 코치로 부임한다고 되어 있으나 현지 일본인 코치들에 비해 경력이나 스펙으로 보나 월등하기 때문에 사실상 총감독으로 갔다. 이때 스리랑카 대표팀은 2015년 동아시안컵 야구대회를 겨냥한 것이라서 그 대회만 코치로 활동하는 한달여 정도의 단기간 지도였다.
2015년 두산의 한국시리즈 우승 후 축하 인사를 남겼다.
파일:2017플옵시구박철순.jpg
2017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시구하는 모습

2017년 플레이오프 1차전에서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시구를 했다. 공교롭게도 3루 덕아웃에서 그의 시구를 지켜본 사람이 원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함께 했던 동료 포수 김경문 감독. 김경문 감독이 두산 베어스 감독이던 시절인 2007년 6월 박철순이 시구, 김경문 감독이 시포를 한 뒤 마운드에서 서로 포옹한 적이 있다.시구영상 참고로 이날 경기는 두산이 패했지만 2, 3, 4차전을 전부 이겨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파일:박철순니퍼트2.jpg
파일:박철순니퍼트1.jpg
니퍼트의 데뷔전, 그리고 2017 플레이오프 1차전 시구자가 모두 박철순이였다.[25]

니퍼트는 박철순 본인이 "니퍼트라면 기꺼이 21번을 양보하겠다" 라는 말까지 꺼낸 선수다. 그런 선수의 데뷔전과 두산에서의 마지막 가을야구 무대의 시작에서 시구자가 모두 박철순이었다는 점이 뭉클함을 자아낸다.

그 후 이제 나이로 인해 건강상의 문제에 유의하며 유소년 야구 지도나 각종 사회인야구 행사 등등에 참석하여 사인회 및 팬들과 조용히 시간을 보내고 있다.

그 후, 두산 베어스에서 팀 창단 40주년을 기념으로 2022년 4월 2일 개막전에서 80년대 박철순, 90년대 김형석, 00년대 홍성흔[26], 10년대 니퍼트 등의 레전드를 전부 초정하여 시구를 갖게 됨으로써 다시 오랜만에 잠실 야구장을 밟게 되었다.

그러나 시대의 변화와 함께 최동원 구타사건이 재발굴, 재평가되며 후에 후배 위대한, 안우진, 김유성 등과 엮여 비판하는 여론이 늘어났다. 2022년 스톡킹 채널 출연논란은 덤. 시대상을 감안하더라도 그 당시에 중징계를 받을 정도면 오죽했을까 하는 반응. 그래서 스톡킹 동영상 중에 어느정도 실드 댓글이라도 있는 안경현 편과는 달리 실드 조차도 거의 없이 반응은 굉장히 험악한 편이다. 또한 프로야구 40주년 레전드 올스타 40인에 상당히 높은 순위인 11위에 선정되었을 때에도 여론은 싸늘했으며, 더 나아가서 1982년 이후의 성적이 이전보다 못하고 통산 기록도 대단한 수준까진 아니라는 점을 들어 두산이면 모를까 KBO 레전드로는 인정할 수 없다는 의견도 나오고 있다.

5. 어록

그 당시에는 그 때 그 순간이 제일 중요했었어요. OB 베어스라는 팀. 1년 동안 같이 동고동락하고 고생했던 팀. 선수 전원.. 꼭 우승해서 팀 선수들하고 기쁨을 나누고 싶었죠. 그런 욕심 밖에 없었어요.
1982 한국시리즈 허리 부상투혼 당시를 되돌아보며
그래도 오랫동안 잊지 않고 사랑해주시고 기억해주시는 팬들이 있다는 것은..
행복한 놈이죠. 행복한 야구선수였죠.
첫사랑이고 목숨 바쳐 사랑했던 여인하고의 첫 키스보다 더 진하게 했다면 상상이 가시겠어요?
1997년 본인의 은퇴식에서 마지막으로 마운드에 입맞춤 한 당시를 회고하며 했던 말. 그만큼 박철순이 야구에 진심이었음을 방증한다.

6. 박철순에 대한 말말말

당시 미국 야구는 TV에서나 볼 수 있다, 사람이 아니라 짐승들이 야구하는 것이다. 이런것으로만 상상했을 때에요. 그런데 그 미국에 박철순 선수가 혼자, 그것도 최초로 진출해서 선수생활을 했을 때 얼마나 두려웠겠어요.
이병훈 해설위원.
특히 박철순 선배는 작은 것이라도 본인이 마운드에 섰을 때 야수들이 도움을 줬다면 항상 야수들한테 와서 행동이나 말로 고맙다는 표현을 했던 선수였어요.
김광수 코치
단순히 야구에 소질이 있거나, 야구의 주무기나 구질만 가지고 연승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고 22연승을 한다는 것은 그만큼 강한 정신력이 뒷받침이 안된다면 안 되는 것이죠.
하일성 해설위원.
철순이가 아픈데도 진통제를 맞고 나가는 것을 선수들 다 압니다. '우리 한 번 해보자! 이기자!' 이렇게 팀이 하나로 뭉칠 수 있었던 것은 철순이가 아픈데도 던져준 것에 선수들이 감동했기 때문이었고..
1982년 당시 김영덕 OB 베어스 초대 감독.
박철순 선배가 얼마나 팀에서 비중을 차지하시고, 존경받는 선배님이셨는지는 목말을 태워드린 그 장면을 보면 알 수 있죠. 누가 하랄 것도 없이 자동으로 그게 된 거에요.
1995 한국시리즈 우승 후 박철순을 목마를 태운 세리머니가 어떻게 나올 수 있었냐는 질문에 당시 OB 선수 김상호
다른 선배님들이 열 마디 하는 것보다 박철순 선배님은 말보다 행동으로 보여주시고 솔선수범해주셨기 때문에 그냥 옆에 계시다는 것 하나만으로도 큰 힘이 됐습니다. 저희 후배들한테.
1995년 당시 OB 베어스 선수 이도형
박철순 선배님, 저희 선수들에게 항상 우상이자 존경의 대상이었습니다.
송진우 #

7. 논란 및 사건사고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박철순/논란 및 사건사고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그동안 프로 원년 시절의 대기록, 부상 극복이라는 신화에 가려졌지만, 아마 시절 후배 선수들에게 기합과 폭력을 일삼았던 과거가 드러나 뒤늦게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말하자면 '학폭 가해자'였던 셈이니까. 특히 연세대 시절의 후배였던 최동원은 박철순이 대학 시절에 저지른 구타 때문에 선수생활 내내 허리부상에 시달렸고, 그의 팬들에게 두고두고 원성을 들었다.

박철순은 이 같은 내용들에 대해 한 마디의 사과, 반성 등을 한 적이 없다. 오히려 “선배가 후배를 좀 때릴 수 있는 거 아니냐?” 등의 태도를 보이고 있다. 심지어 프로야구 초창기의 슈퍼스타라는 명성과는 어울리지 않게, 팬들에게 불친절한 태도를 보였던 점도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디.

물론 위의 비판점들이 박철순 혼자만의 잘못은 아닐 것이고, 동시기 한국 스포츠계의 공통된 악습을 반영한 측면이 강하다. 하지만 당대 야구계를 대표했던 스타로서, 박철순이 특히 더 많은 비판의 대상이 되는 것은 감안해야 할 것이다.

8. 기타

  • 대학생 시절(호적상 나이 20세)에 결혼을 했지만 1986년 이혼한 경력이 있다. 이혼의 이유가 박철순의 잘못이 아니라 전 부인의 빚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전처의 빚 때문에 빚쟁이들에게 시달리는 통에 마음고생이 심했는데, 이를 보다못한 당시 OB 베어스 감독이던 김성근이 어느 날 무작정 박철순을 데리고 은행으로 가서 당시 기준으로 엄청난 거금인 2천만원을 자신의 명의로 대출받아 빌려주고 추가로 본인 통장에서 2천만원을 인출하여 도합 4천만원을 주면서 "철순아, 이걸로 빚 갚아라" 라고 했다 한다. 참고로 그 당시 9급 공무원 초봉이 20만원 조금 넘던 시절이다. 그래서 박철순은 김성근을 인생의 큰 스승님이자 은인으로 존경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 일찍 결혼한 덕분에 50대 중반 나이에 손자를 둘이나 본 할아버지이기도 하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상을 극복한 사연은 유명한 이야기인데, 지금의 부인인 채수정 씨와의 만남과 그녀의 도움도 컸다.
  • 선발 22연승 기록에 대해, 박철순 본인은 자신의 기록이 아닌 팀의 기록으로 생각하며 자신의 선발경기에 야수들의 득점지원 호수비가 있었기에 가능한 기록이라 생각한다고 한다. 최동원이 그때 자신 대신 던졌다면 22연승보다 훨씬 높은 기록을 찍었을 것이라고 밝혔다
  • 투수 출신임에 불구하고 야구는 타자놀음이라고 생각하는 케이스다. 전술한 22연승 기록과 맞물려 말하길, 투수가 아무리 잘해봤자 퍼펙트 게임, 노히트 노런에 불과하며 이걸 평생에 몇 번이나 해볼 수 있냐고 반문하며 완봉승도 야수가 점수를 내주지 않으면 할 수 없다고 한다. 박철순 본인의 생각으로는 결국 야구는 타자놀음, 야수놀음이라고 생각한다고 한다. 선동열 감독 등 대부분의 야구인들과 비교하면 상당히 대조적이다.
  • 1988년 속옷광고 빅맨의 모델로 나선 적이 있다. 그러나 한강 둔치에서 CF를 찍다가 아킬레스건을 다쳐서 시즌 아웃을 당했다.박철순 빅맨 광고
  • 1989년 이광환 감독 재임 당시 1년동안 1군 투수코치(플레잉코치)로 활약했는데 구동우, 김동현 등의 신인투수들을 육성하고 팀 방어율 역시 중상위권을 기록하면서 나쁘지 않은 능력을 보여 주었다. 1997~1998년 리빌딩기에도 이혜천, 김유봉, 최용호 등의 신인투수들을 지도한 경력으로 볼 때 투수코치로는 의외로 괜찮은 능력자였을지도. 이미 야구계를 떠난 지 10년이 넘은지라 별 의미없는 가정이긴 하다.
  • 던진 구종중 무회전 체인지업때문에 유난히 이야기가 자주 회자되는 편이다. 왜 무회전 체인지업이라고 애매모호하게 적냐면 박철순선수 본인이 너클볼이라고도 할때도 있고 팜볼이라고 할때도 있기 때문. # 같은 인터뷰를 하고 적은 기사들을 보면 너클볼이라고 언급되는데, 인터뷰 기사인 # 에서만 봐도 팜볼이라고 언급하고, 두 기사를 근거로 정리하면 81년 당시 미국에서 직접 인터뷰했을 때는 너클볼이라 밝혔지만 근래엔 팜볼이라고 하는 듯. 두 변화구 다 구질이 비슷한 무회전 계통인데 박철순 본인의 사용 방식이 체인지업과 같았기 때문에 팜볼이라 정의한 것 같다. 마구마구나 프로야구 매니저에선 박철순 카드가 팜볼과 너클볼 둘 다 가지고 있으며, 마구매니저에서는 너클볼설을 채택하였다. 나무위키에서도 근래 인터뷰를 따라 체인지업의 팜볼 문단에 박철순이 팜볼을 썼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2016 넥센 히어로즈 용병인 로버트 코엘로만 봐도 포크볼을 팜볼형태로 무회전에 가깝게 던지는 등 던지는 방식이나 그립, 구질명을 떠나 무회전에 가까운 공을 던졌다 자체가 중요한 부분이기도 하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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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젊은 시절 굉장한 장발 미남이었다. 요즘처럼 열광적이지는 않았지만 박철순 좋아서 야구 본다는 젊은 여성팬들이 적지 않았다. 그러나 30대 들어서 조금 일찍 탈모가 찾아왔고 세월의 풍파와 암투병, 탈모의 영향으로 그 외모를 오래 유지하진 못했다.
  • 선동열이 1989년 시즌 후 지금의 아내가 된 김현미 씨와의 첫 맞선 자리를 가졌는데, 당시 김현미 씨가 나는 이름을 아는 야구선수가 박철순밖에 없다고 말해서 선동열을 무안하게 만들기도 했다.[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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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영화 슈퍼스타 감사용에서는 공유가 1982년 당시 박철순 역을 맡았는데, 젊은 시절 박철순과 굉장히 싱크로율이 높다는 평가를 받았다.[28]
선수 박철순, 감독 김용희
  • 김용희롯데 자이언츠-SK 와이번스 감독과는 초등학교 동창이다. 때문에 아주 재미있는 장면이 나온 적이 있다. 김용희가 처음으로 롯데 감독을 맡았던 1994년 4월 12일, OB 베어스와의 홈 개막전에서 있었던 일이다. 스코어 4:4로 맞선 연장 11회 말 OB의 투수 강길용이 2루타와 실책, 고의사구로 무사 만루를 만들어 놓은 상황에서 OB는 투수 교체를 단행했다. 당시 대부분의 팬들은 지난 해(1993년) 데뷔하자마자 평균자책점 1.11 (이는 선동열을 제외한 다른 선수가 기록한 가장 낮은 평균차책점이다), 9승에 23세이브라는 엄청난 기록을 세운 마무리 김경원이 마운드에 오를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았다. 그러나 그들의 예상과는 달리, 마운드로 올라온 투수는 그가 아니었다. 다름 아닌 박철순이 등판한 것. 당연히 조금이나마 사직 야구장에 응원을 왔던 OB 팬들은 난리가 났고, 롯데 팬들마저도 그의 등판에 기립박수를 보냈다. 홈 팀의 감독과 초등학교를 같이 다닌 선수가 마운드에 오르는 장면 자체부터가 너무나도 희귀한 상황이었고, 등판한 상황도 매우 긴박한 순간이었다. 그렇게 마운드에 올라온 박철순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공을 던졌고, 8번 타자 홍순기와 9번 타자 공필성을 모두 삼진으로 잡아내며 2사 만루를 만들었다. 하지만 그 다음 타자였던 1번 타자 전준호에게 끝내기 중전 안타를 내주면서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
  • 마무리 투수의 재능도 있어서 1992년에는 9세이브로 세이브 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 나이가 든 지금은 잘 모르겠지만 한창 시절 기억력, 특히 이전 경기에 대한 복기에 굉장히 능했다. 큰 게임 뿐 아니라 정규시즌 중 사소한 상황에 대해서 상당한 시간이 흐른 뒤에도 기억하여 회고할 정도였다. 현역시절 말년에 이종남 기자와의 인터뷰 때, 1982년 시즌 막판 롯데 자이언츠김용철에게 끝내기 안타를 맞고 22연승 행진을 마감하던 상황을 아래와 같이 얘기한 바 있다.
    박철순: 2루에 주자를 둔 상황에서 투수가 안타를 맞으면 보통 어디로 가죠?

    이종남: 그야 포수 뒤쪽이지.

    박철순: 맞아요. 저도 (김용철에게 안타를 맞고) 바로 (포수)경문이 뒤로 백업을 갔다가 "아이고 이 멍청이!" 라는 생각이 듭디다. 투수가 포수 뒤를 받치는 건 공이 빠졌을 때 주자가 추가로 진루하는 걸 막는게 목적인데, 그 때는 동점에 끝내기 상황이니까 포수 뒤로 송구가 빠지던 말던 주자 한 명만 들어오면 끝이잖아요? 그건 말도 안 되는 플레이 였습니다. 그 때 저는 홈과 3루 사이에서 중계를 했어야 맞는 거예요.

    참고로 선동열도 현역으로 뛸 때 박철순처럼 비상한 기억력을 자랑하던 선수였다. 역시 야구도 머리 좋은 사람이 잘 하는 모양이다.[29]
  • 박명환야구TV에서 정수근이 밝힌 일화로, 츠쿠미 전지훈련 당시 의욕이 넘쳤던 신인 정수근을 상대하러 마운드에 박철순이 있었고 안타-도루-득점을 뽑아냈는데 경기 후 중간급 선배들이 정수근을 불러내어 박선배님께서 던지시는 데 감히 도루를 해?하면서 크게 혼냈다고 한다.
  • 농구선수 출신 방송인 서장훈이 어린 시절부터 박철순의 열렬한 팬이었다. 박철순의 피칭에 매료되면서 서울학동초등학교 야구부에 들어가 이도형과 함께 야구선수 생활까지 했다. 현재도 박철순에 대한 존경심을 피력하고 있으며 두산 베어스의 열성팬임을 자부하고 있다.
  • 그런가 하면, 씨름의 달인이자 MC인 강호동 역시 박철순과의 짤막한 추억이 담긴 일담을 1박 2일에서 밝힌 적이 있다. 해당 방송은, 2008년 3월 2일 방송된 1박2일 시즌 1 31회 제주도 편으로, 우연히 종이비행기 복불복에서 꼴등을 하여 벌칙으로 비행기를 주우러 간 강호동이 제주도로 여행을 온 가족 여행객들을 만난다. 자신을 만나고 행운이며 반가웠다 말하는 그들에게 감동을 받았고, 만남 후에 강호동 본인이 자신이 초등학교 시절 동네에서 어쩌다 박철순을 만나 싸인을 받았다고 전했다.[30]

9. 관련 문서


[1] 2013년 다나카 마사히로에게 깨지기 전까지 아시아 연승 기록이기도 했다. 물론 리그가 달라서 별 의미는 없지만.[2] 미국 진출 당시 등록명[3] 호적상 출생년도는 1956년이지만, 분명히 학교는 1954년생들과 똑같이 다녔다고 본인이 밝혔다. 롯데 자이언츠김용희와 초등학교 동창이었다고 밝혔다. 근데도 진짜 1956년생으로 오해받은 건 학창시절 유급을 하여 늦게 고등학교를 졸업했기 때문이다. 실제로는 중3때까지 1954년생들과 학교를 다니다가 감독의 권유(고등학교 야구부 진학이 불가능하던 상황)로 처음 유급을 하면서 학년이 달라지게 된 것이라고 한다. 똑같은 부산 출신의 장효조도 1954년 생이지만 호적상으론 1956년생이다.[4] 현재의 광일초등학교. 1998년 남일초교와 동광초교가 통합되어 광일초등학교가 되었다.[5] 부산고등학교에 진학했다가 대전 대성고등학교로 전학했으나, 야구부 사태로 팀이 해체된 후 상경하여 배명고등학교로 다시 전학했다.[6] 1975학번[7] 최동원 폭행 파문으로 도피성 미국 진출을 하면서 자퇴하였다. 공부가 안 돼서 학교를 그만두고 군대를 갔다는 루머가 있으나, 군 복무가 먼저이고 학교를 그만둔 게 나중이므로 사실이 아니다. 군 전역 후 복학했다가 최동원 폭행 사건이 터지고 나서 그만두었다.[8] ~7월 27일[9] 박철순 헌정곡으로 구단에서 제작한 응원곡이다.[10] 모태신앙이다.[11] 당시 공군 야구단으로 나중에 상무에 합병[12] #[13] 이 말은 박철순이 지난 1997년 본인의 은퇴식에서 한 말인 "팬 여러분 이제 저는 마운드를 떠나가지만 언제나 여러분 옆에 남아있을 것입니다."를 2017년 플레이오프에서 그대로 말한 시구 멘션이었다.[14] 대표적인 케이스가 바로 서장훈이다. 박철순이 너무 멋있어 보여서 초등학생 때 야구부를 하여 야구에 빠져들었고, 중학생이 되기 전까지 야구선수로 뛰기도 했다. 현재도 두산 베어스의 열렬한 팬이라고 한다.[15] 박철순이 은퇴식을 거행한 때가 1997년이고 마지막 등판 시점이 1996년이다. 그의 마지막 등판을 직접 본 것을 기억하는 팬은 아무리 어려도 2020년대 기준으로 30대 중반을 넘겼다. 더구나 과거 박철순의 전성기 시절 그에게 열광했던 어린이 팬들은 어느새 40대~50대의 중년이 됐고 OB 아재라고 불리던 올드 팬들은 고령층에 접어들었다. 두산 베어스 팬덤의 핵심 연령층이 20~40대 중심인 것을 고려하면 중심과는 살짝 멀어졌다고도 볼 수 있다. 또한 박철순의 여러 논란이 수면 위로 떠오르면서 박철순의 팬이 더 줄어들게 되었다.[16] KBO 리그 통산 첫 번째 영구 결번도 역시 OB 베어스가 가지고 있으며, 안타깝게 자살로 생을 마감했던 김영신이다. 참고로 KBO 리그 통산 첫 영구 결번식 수혜자는 LG 트윈스김용수.[17] 박철순의 은퇴식은 1997년 4월 29일에 열렸고 영구 결번식은 두산으로 팀명이 변경된 2002년 4월 5일에 열렸다.[18] 은퇴식으로부터 영구 결번식까지 5년 기간 동안 21번을 달은 선수가 없기 때문이다.[19] 메이저리그 전 야구 선수인 모데카이 브라운의 폼과 상당히 유사하다.[20] 데뷔 시즌 성적 1위는 다시는 나와서는 안 될 혹사를 당한 장명부. 참고로 최동원은 데뷔 시즌에는 기대보다 조금 못한 편이며, 선동열은 데뷔를 시즌의 절반밖에 안 남았을 때 하는 바람에 그런 것치고는 엄청난 성적이었지만, 박철순보다 WAR이 낮다. 물론 그 성적도 sWAR 5~6 이상으로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자면 훌륭했다.[21] 그래서 야구 게임마다 박철순의 구종을 팜볼로 표기한 게임도 있고, 너클볼로 표기한 게임도 있는 등 다 다르게 나온다. 근데 프로야구 매니저는 아예 너클볼과 팜볼을 둘 다 달아놓았고, 이사만루2019는 아예 슬라이더-커브-포크볼만 달아놓았다(...).[22] 2011년 즈음 윤석민이 한 번 강민호를 상대로 던졌는데 그 이후로는 다시 사장되었다가, 2021년에 정찬헌이 팜볼을 구사한 적이 있다.[23] 키시 타카유키의 세이부 시절 주무기이기도 했다. 그외에 주니치에서 뛰던 아사오 타쿠야도 고속 포크볼에 밀려 자주 쓰진 않았으나 가끔 결정구로 던졌다.[24] 선수 생활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6년에도 당시 잠실 야구장 스피드건 기준으로 140km/h 초반대의 구속을 어렵지 않게 찍었다. 고질적인 부상에다 당시 실제 나이가 만 42세였음을 감안하면 대단한 스터프.[25] 2017시즌은 니퍼트의 두산에서의 마지막 시즌이라는 점에서 시작과 끝을 팀의 레전드와 함께하는 장면이 뭉클함을 자아낸다.[26] 다만, 이 부분에서는 팬들과에서 논란이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고. 참고로 박철순은 김동주가 저 자리에 끼지 못한 것에 안타까움을 느꼈다고 밝혔다.[27] 1995년에 발간된 선동열 본인의 저서 중.[28] 단, 사인 장면은 명백한 고증오류인데, 박철순은 현역 시절 욕까지 퍼부으며 사인을 거절할 정도로 팬 서비스가 좋지 않은 선수였다. 그와 달리 영화 장면에서 사인을 받는 엑스트라들의 후기에서는 공유 본인의 실제 사인을 해줬다고 한다.[29] 어찌 보면 당연한 말이다. 타자를 상대할 때 '예전에 이 타자한테 이런 공을 던졌다가 맞았지' 라고 기억을 되살려서 투구 패턴에 참고하면 도움이 안 될 리가 없다. 이것은 당장 포수부터 해당되는 얘기이다.[30] 강호동이 마산에서 성장해 초중고를 나왔음을 감안하면 롯데와의 마산구장 원정을 왔다가 만나게 된 것으로 추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