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8 20:08:25

홍성흔

홍성흔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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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시리즈 우승 반지
2001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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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1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2004 포수 부문 골든글러브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dywc2m8WK1sqk8veo4_r1_540.png
2008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1] 2009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 2010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 2011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

파일:5p4rcEr.png KBO 포스트시즌
2004 준플레이오프 MVP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1999 KBO 리그 신인왕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80px-KBO_League.svg.png
2004 KBO 리그 최다 안타왕

파일:5p4rcEr.png 2006,2010 KBO 올스타전 미스터 올스타

보유 기록
230개 통산 최다 병살타
109경기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경기 출장
429타석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타석
376타수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타수
101안타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안타
42점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타점
149루타 포스트시즌 통산 최다 루타
4개 통산 최다 지명타자 부문 골든글러브[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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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의 역대 등번호 / 직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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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131230> 파일:attachment/doosan_bears.png OB·두산 베어스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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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현재
1982 1983 1984 1985 1986~1987
김우열 윤동균 이홍범 이홍범
이종도(임시 주장)
이종도
1988~1990 1991 1992~1993 1994 1995~1997
김광수 김형석 ? 김상호 이명수
1998~2000 2001~2002 2003 2004 2005
김태형 안경현 김민호 안경현 김동주
2006~2007 2008~2009 2010~2011 2012 2013~2014
홍성흔 김동주 손시헌 임재철
이종욱(임시 주장)
홍성흔
2015 2016 2017 2018~ 현재
오재원 김재호 김재호
김재환(임시 주장)
오재원(임시 주장)
오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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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002955> 파일:Lotte_Giants_newlogo.png 롯데 자이언츠
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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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년 ~ 현재
1982~1994 1995 1996 1997 1998
?? 한영준 김응국 이종운 공필성
1999 2000 2001 2002 2003
박정태 강성우 강상수 조경환 박현승
2004 2005 2006 2007 2008~2010
김대익 염종석 손인호 손민한 조성환
2011 2012 2013 2014 2015
홍성흔 김사율 조성환 박준서 최준석
2016 2017~2018 2019 2019.07~현재
강민호 이대호 손아섭 민병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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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 베어스 등번호 22번
최기문(1998) 홍성흔(1999~2008) 성영훈(2009~2010)
성영훈(2009~2010) 홍성흔(2013~2016) 이용호(2017)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49번
마해영(2008) 홍성흔(2009~2012) 홍성민(2012~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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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구회[3]
회원번호 기록 가입년도 비고
10 2,046안타 2015년 우타자 최초 2000안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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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최고 전성기였던 롯데 자이언츠 시절
파일:성흔두산2.jpg 파일:성흔두산1.jpg
자신의 선수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고, 선수생활로서의 데뷔, 은퇴를 함께했던 두산 베어스 시절
파일:홍블럼.png
AZL 파드레스 2 No.22
홍성흔(洪性炘 / Seong-Heun Hong)
생년월일 1976년 12월 12일[4] ([age(1976-12-12)]세)
출신지 강원도 횡성군[5]
학력 서울공릉초[6] - 중앙중 - 중앙고 - 경희대[7]
포지션 포수[8], 지명타자 좌익수, 1루수[9],장인어른
가족 배우자 김정임[10], 딸 홍화리, 아들 홍화철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9년 1차지명 (두산 베어스)
소속팀 두산 베어스 (1999~2008)
롯데 자이언츠 (2009~2012)
두산 베어스 (2013~2016)
지도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루키팀 필드코치 (2018~)
응원가 입장시 : Diana Boncheva 《Beethoven Virus》[11][12][13]
타격시 : 싸이《챔피언》[14]
4 Non Blondes 《What's up[15][16]
종교 불교

1. 개요2. 응원가3. 선수 경력
3.1. 두산 베어스 1기(1999-2008)3.2. 롯데 자이언츠 시절(2009-2012)
3.2.1. 2009 시즌3.2.2. 2010 시즌3.2.3. 2011 시즌3.2.4. 2012 시즌3.2.5. 롯데 시절 총평
3.3. 두산 베어스 2기(2013-2016)
4. 은퇴식과 은퇴 후5. 지도자 경력
5.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5.1.1. 2018 시즌
6. 플레이 스타일7. 특이사항
7.1. 친목7.2. 별명7.3. 두산은 내 운명7.4. 병전드7.5. 욕먹는 레전드?
7.5.1. 부산 레전드 발언
7.6. 포지션
8. 여담9. 연도별 성적

1. 개요

두산 베어스, 롯데 자이언츠에서 뛰었던 前 야구선수이자 現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루키팀의 코치.

1999년 1차 지명으로 두산 베어스의 유니폼을 입게 되었다. 데뷔 후 바로 신인왕을 수상하고 계속해서 활약을 이어나가며 팀의 주전포수로 도약하였고, 훈훈한 외모와 특유의 쾌활한 성격으로 인기도 어마어마했다. 그렇게 두산과 당대 리그를 대표하는 정상급 포수로 활약하였으며, 포수를 그만둔 뒤 FA로 롯데로 이적, 2010년대 최고의 지명타자로 활약하였다. 롯데 시절 엄청난 활약을 펼치며 4년간 롯데 팬들의 열렬한 사랑을 받았다.

그 후 다시 친정 두산으로 돌아왔다. 롯데에서 선수 생활 커리어 전성기를 보냈지만, 이적 전 두산에서도 주전 포수로서 포수 부문 골든 글러브를 2회나 수상 할 정도로 활약했으며, 선수생활 말년 팀의 캡틴으로 활약하였다. 이러한 점으로 미루어보아 홍성흔은 그간의 공을 인정받으며 두산에서 은퇴식까지 치르면서 선수생활을 마무리 하게 된 두산프랜차이즈 선수이자 레전드이다.[17] 선수 시절 별명으로는 홍턱, 홍포(洪砲), 오버맨 등이있다.

2. 응원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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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성흔 응원가

3. 선수 경력

3.1. 두산 베어스 1기(1999-2008)

파일:external/dimg.donga.com/6791582.1.jpg
풋풋했던 신인 시절
파일:external/36.media.tumblr.com/tumblr_nwww75v86f1sqk8veo4_400.jpg 파일:192875-2-153640.jpg
팀의 주장이였던 2006년~2007년 당시

서울공릉초, 중앙중학교, 중앙고등학교를 거쳐 경희대학교 체육학과(1995학번) 졸업 시즌이던 1998년에 방콕 아시안 게임에서 제3의 포수로서 금메달을 땄다.[18] 이듬해인 1999년 1차 지명을 받아 두산 베어스에서 데뷔, 그 해 역대 포수로서는 두 번째로 신인왕을 수상하며[19] 김태형, 진갑용 등과의 주전경쟁에서 승리, 2007시즌까지 두산의 주전 포수로 자리잡으며 2008시즌까지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다.

포수지만 준수한 타격으로 대표적인 공격형 포수로 꼽혔다. 또한 평균 이상의 수비력과 파이팅 넘치는 모습, 그리고 잘생긴 얼굴로 인해 두산의 프랜차이즈 스타로 자리매김했다.

하지만 2003년 부상을 당하며 포수 수비 능력이 떨어지기 시작, 2003, 2004 시즌에는 지명타자 출전 빈도가 상대적으로 높았고 동시에 김동주 역시 그 시즌에 잔부상이 있어서 지명타자를 두 선수가 번갈아 소화하였다. 자연스럽게 포수 내구력 문제가 수면으로 떠올랐으나 그래도 2006년까지는 수비 능력에 아주 큰 금이 가지는 않았고, 정상적으로 주전 포수를 소화했다. 이 과정에서 2004년에는 정규 시즌 133경기 전 경기에 출장하여 165안타로 최다안타 타이틀을 수상,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20] 2006년 올스타전에서 미스터 올스타에 오르는 영광을 누리기도 했다.[21] 2007년 개막전을 포함하여 시즌 초반까지는 채상병과 번갈아가면서 포수를 소화를 하였으나, 2007년 초 김주찬의 타구가 영 좋지 않은 곳에 맞아 고간허벅지 부상으로 인해 주전으로 출전하지 못하게 되고,[22]# 이때 이대호에게 도루를 허용할 정도로 포수능력이 떨어지고[23][24] 그 이후 데드암 증세가 온 것으로 추측된다. 정상적으로 2루에 송구를 하지 못하게 되었고,[25] 결국 채상병에게 밀려 주전 포수 자리에서 완전히 멀어지고 지명타자로 출전하게 되었다.

그리고 2008년 시즌이 시작하자마자 김경문 감독은 포수로서의 홍성흔은 부상 이후 예전의 기량을 되찾지 못한다고 판단, 포수에서 지명타자1루수로 전향하여 타격능력을 살리겠다고 말했으나[26] 포수에 대한 애착이 남달랐던 홍성흔이 이에 반발한다.[27] 이후 트레이드설까지 제기되었고[28] 행선지를 놓고 온갖 설이 나돌았다. 이 때 꽤 진지하게 홍성흔을 원하는 팀이 나왔던 것으로 알려졌는데 두산이 터무니없는 요구를 했다는 보도[29]가 나오면서 당시 야구팬들 사이에는 '염치가 없고 뻔뻔하다'의 동의어로 '두산스럽다.'라는 말이 유행하기도 했다(…)

결국 홍성흔 스스로 지명타자로 전환하여 3할 3푼 8홈런 63타점이라는 뛰어난 타격을 보이며 두산이 2위자리에 오르는데 큰 보탬이 되었다. 그것도 초반에 훈련을 제대로 못해 거의 한 달을 날렸음에도 말이다. 시즌 중반에 채상병이 부상으로 잠시 이탈했을 때 몇 경기 잠깐 포수 마스크를 쓴 적도 있었지만 그다지 좋은 모습을 보여주진 못했다.[30]

그 뒤론 예전처럼 포수로 복귀하겠다고 강하게 주장한 적이 없었는데, 아마 부상으로 인해 약해진 허벅지와 그 동안의 공백으로 인해 더이상 실전에서 포수를 보긴 어렵다고 본인도 느낀 듯하다. 근데 포수를 포기한 이후 타자로서의 성적을 보면 오히려 포수자리에 대한 미련을 좀 더 빨리 버렸더라면 두산 타선은 정말 후덜덜해졌을 듯도 하다. 2009년이나 2010년 기준의 김현수-김동주-홍성흔이라면.[31] 하지만 어쩌면 이후 포텐이 터져버린 최준석이나 이성열의 모습을 볼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신인 시절 주전이었던 김태형을 은퇴시키고 진갑용삼성 라이온즈로 보냈으며 이도형마저 한화 이글스로 보낸 장본인이다. 자기도 결국 롯데 자이언츠로 갔다 만약 진갑용과 이도형이 두산의 주전 포수로 자리잡았더라면 프로야구판의 전체 역사가 바뀌었을지도 모른다[32]. 다만 최기문은 홍성흔과 관련이 없다. 최기문은 1998 시즌 종료 뒤에 차명주와 트레이드로 이적했는데, 이때는 홍성흔이 입단하기 전. 물론 당시에도 포수 자원이 넘쳤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이적했다고 볼 수 있다. 최기문을 밀어냈더니 홍성흔이 나타났다

이후 2015년 1월, 딸하고 출연한 해피투게더에서 블래스 신드롬 때문에 포수를 관두고 타자로 전향했었다고 밝혔다. #

3.2. 롯데 자이언츠 시절(2009-20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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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시즌이 끝난 후 FA를 선언한 후 가장 마지막에 롯데 자이언츠와 4년간 최대 30억원, 두산 시절보다 50% 인상된 연봉 2억 7,900만 원에 계약했다.[33] 두산에선 '당연히 남을 줄 알았는데 당황스럽다' 라고 말했지만 홍성흔과의 계약 문제로 인한 기사가 없었던 점을 보면 잡을 팀이 없으리라 생각하고 싸게 계약하려다 놓쳐버렸다. [34] 또 다른 프랜차이즈 선수 안경현과 더불어 홍성흔마저 사라지자 분노한 두산팬들이 대거 달까(김경문 안티)로 돌아섰다. 안 그래도 김경문 감독과의 불화설을 비롯하여 각종 음모론이 나돌던 판에 의혹을 증폭시킬만한 사태가 터진 셈. 물론 두산 베어스 갤러리에서는 2011년 현재 홍성흔 김경문 모두 배신의 아이콘으로 등극하여 둘 다 까고 있다.[35] 그리고 또 하나는 홍성흔이 팀 분위기메이커여서 선수들이 김경문보다 홍성흔을 더 좋아했다. 그래서 김경문이 내쫓았다는 이야기도 있다.

롯데에서는 합류 전부터 팬들이 응원가까지 새로 만들어주며[36] 큰 환영을 받았다.(당시 응원가 #) 이 모든 사태의 원인이 김주찬임을 감안할 때 홍성흔 이적의 일등공신은 김주찬일지도...(응?)그리고 둘은 롯데를 떠날때도 같이 떠났다.

3.2.1. 2009 시즌

09 시즌 롯데에서의 시작은 생각한 것처럼 뛰어난 활약을 못해줬다. 그 원인은 제리 로이스터의 노피어 정신에 따른 큰 궤적의 홈런 스윙시도. 원래 똑딱거리던 양반을 보고 큰 스윙을 하라니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37] 거기다 잘 맞은 타구는 계속 야수 정면으로 날아가는 등 불운이 겹쳐셔 마음이 급해지자 근성있는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등으로 어떻게든 커버를 하려고 했다. 그러나 지나친 근성플레이로 허벅지에 부상을 당한 이후에 잠시 엔트리에서 빠져야 했다.

그러나 다시 복귀한 이후로는 다시 예전처럼 똑딱거리면서 어느 사이엔가 다시 3할 타율을 찍는 모습을 보여주더니, 2009년 8월에는 타율 1위까지 올라왔다. 롯빠들은 이번 FA는 대성공이라면서 좋아하고 있다. 현재까지 KBO 역사상 가장 성공한 타자 FA [38][39]

이후에도 활약은 계속 이어져 8월말까지 3할 8푼대의 경이적인 성적을 내며 드디어 또다시 4할 타자가 나오는 것 아닌가 하는 기대를 불러일으켰다. 또한 마찬가지로 3할 8푼 타율을 찍은 LG 트윈스박용택 선수와의 타격왕 경쟁이 불붙으며 시즌 후반의 점입가경이었다. 허나….

2009 정규시즌은 타율 0.371(리그 2위), 홈런 12, 타점 64 (근데 이타점이 어느 미친페이스를 달리던팀의 규정타석 타율꼴지인 포수보다 1타점이 더 적다. 심지어 둘의 홈런갯수는 같다.), OPS 0.968(리그 7위)로 데뷔 후 최고의 성적을 거두었고, KBO 골든글러브 지명타자 부문도 수상.

3.2.2. 2010 시즌

윤석민의 사구로 부상을 당하기 전까지 타점 부문에서 리그 선두를 달리고 있었다. 워낙에 페이스가 좋았다. 심지어 역대 타점 최고 기록인 이승엽의 144타점(당시기준)에도 도전할 만하다는 이야기도 나왔다. 나머지 기록도 홈런갯수를 제외하면 이대호와 꾸준하게 타이틀 경쟁을 해왔다.

해당 문서 참조.

3.2.3. 2011 시즌

2011시즌부터 조성환의 뒤를 이어 롯데 자이언츠의 주장을 맡았다.#

이대호의 발목부상이 완쾌되지 않은 이유로 이대호가 지명에 들어갈 경우가 생김에 따라 좌익수로의 출장도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나왔고 2월 15일 두산과의 연습경기에 첫 좌익수 출장 예정이었다.관련기사 ...이었으나 시범경기 전 교통사고가 났었다. 자세한건 롯데 자이언츠/사건사고 문서의 홍성흔 교통사고 문단 참조.

시범 경기에서는 좌익수로 선발 출장하여서도 전혀 녹슬지 않은 타격감을 선보였다. 시범경기 타율 0.514(1위), 타점 11(1위), 안타 19(1위), 출루율 0.550(1위), 장타율 0.676(1위)으로 시범경기이긴 하지만 5관왕을 달성하기도 했다. 이벤트전에서 1위를 하는것은 의 전통

거기다 왠지 모르게 김주찬이나 손아섭보다 더 나은 수비를 보여주기도 했다. 일부 팬들 사이에서는 이렇게 된거 마무리 투수도 한번 시켜보는게 어떻겠냐는 말도 나왔다. 그러나 개막이후 수비에서 약점이 확연히 드러났는데 실책만 없을 뿐 그냥 잡기 어려울거 같으면 바운드 처리하는 등, 큰 실책만 없다 뿐이지 외야의 폭탄이 될 소지는 아주 컸다. 더군다나 당시 김주찬이라는 외야진의 폭탄이 있는데 양사이드에 폭탄을 달고 있는 셈이었기에 다시 외야로 돌아간 전준우만 이리뛰고 저리뛰고 개고생했다.

거기다 문제는 애초에 시즌 시작 전 양승호 감독은 주전이 아니라 간간이 백업 수준으로 나올 것이라고 했는데 현실은 주전 좌익수로 계속 나오고 있다. 이런 탓인지는 몰라도 10시즌 때와 다르게 장타율이 급감하였다. 실제로 좌익수로 뛴 11시즌 들어서 체중이 8kg 정도 빠졌다고 한다. 이 때문인지 5월 17일에서야 첫 홈런을 쳐냈다. 게다가 장타율은 0.340. 장타율이 급격히 올라간건 롯데로 이적한 이후라고는 하나 그래도 두산에서 있을때도 장타율이 4할을 넘었다는걸 생각하면....

다행이도 손아섭이 복귀하면서 좌익수는 안 갈수 있겠거니 했는데 이번에는 김주찬이 다치는 바람에 어떻게 될지는 두고 봐야 할 듯.

롯데 vs. LG 경기가 있었던 네이버 중계댓글에서 롯데팬들이 이병규가 좌익수 수비보면서 라면수비한다고 공격을 했으나, 되레 "홍성흔 좌익 수비하는거 보다가 이병규가 수비하는 걸 보니 "니네가 할 소리가 아니지", 눈이 정화된다고 역공당했다.이병규는 수비를 잘한다

5월 17일, 문학 SK 전에서 전준호의 직구를 받아쳐서 시즌 첫 홈런을 드디어 신고했다! 그라운드를 돈 직후 홍성흔은 어찌나 감격스러웠으면 덕아웃에 들어가 김무관 코치와 포옹을 했다. 이날은 박종윤이 만루홈런을 친 날이기도 했다.

6월 9일 삼성전에서 이우선의 공을 받아쳐서 그랜드슬램을 기록했다. 결국 롯데는 이날 장원삼이우선을 털어버리면서 13:7로 이겼다.

시즌이 지나면서 조금씩 살아나는지 슬금슬금 3할 타율 가까이 올라갔지만 장타율은 완벽히 망하고 말았다.

7월 23일 타율 0.301, 홈런 4, 타점 38, OPS 0.754을 기록하여 드디어 3할대 타율로 복귀했다. 아마추어 하나 때문에 여기까지 오는데도 참 많이 걸렸다.

김주찬과 손아섭이 조원우 외야수비코치의 조련덕분에 수비가 일취월장한 터라 이제 남은 건 홍성흔 차례라고 칭찬을 들었다. 근데 홍성흔은 성흔스키에서 탈출하기 힘들지도

2011시즌 타율 .306을 기록, 4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했다.

SK 와이번스와의 2011년 플레이오프에서 19타수 7안타 3볼넷 2도루 1타점 3득점 타율 .368, 장타율 .474, 출루율 .455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떨어졌다.

3.2.4. 2012 시즌

3월 17일 두산 베어스와의 경기에서 새로운 타법을 보였다.

그리고 3월 31일 SK 와이번스 전에서 드디어 4번 타자로서의 첫 홈런을 쳤다! 하지만 롯데는 스코어 2:3으로 패배해 버리고 말았다.

시즌전 이대호라는 핵우산이 사라진 것[40]4번 타자로의 부담을 떨칠수 있겠냐는 우려가 있었지만 시즌이 개막되자 그런 거 없다를 보여주며 맹타를 휘둘렀다. 하지만 이후 미친듯한 삽질로 강민호한테 4번타자 자리를 내주고 5번타자로 밀려나게 되었다.

6월 9일 미세골절 부상으로 문규현과 함께 1군에서 말소되었다.

7월 5일, 7월 6일 연속으로 우천으로 결장되었다. 대신 7일에는 3타점으로 MVP가 되었다. 4일날에는 황재균에게 우천 세레머니를 시키고 선수들을 피신, 호탕하게 홍낄낄거리는 장면을 보여주었다.

7월 24일 화요일. 한밭 야구장에서 한화 이글스와의 주중 3연전 첫경기에서 류현진에게 4타석 연속 삼진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8월 21일 대구구장 삼성 라이온즈전에서 5월 27일 잠실 두산전 이후로 오랜만에 장원삼을 상대로 4회초 솔로 홈런과 8회초 만루 홈런을 때려내며 승리의 주역이 되었다. 팀은 5:3으로 승리.

9월 8일 한화 이글스전에서 솔로홈런 포함 2득점으로 전준우와 함께 이날 롯데 자이언츠 60승의 주역이 되었다. 결과는 0:3으로 승리.

포스트시즌에 진출한 이후 두산 베어스와의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1차전 때 강민호가 부상으로 입원하면서, 남은 포수 자원이 용덕한밖에 없는 상황이라 급하게 백업 포수로 뛸 준비를 하게 되었다.홍성흔, 4년 만에 포수 마스크 쓴다 다행히도 준플레이오프에서 홍성흔이 포수로 출장할 일은 없었고 홍성흔은 2012 팔도 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지명타자 겸 4번타자로 출장하여 15타수 6안타 1득점 1도루 3볼넷, 타율, 장타율 .400, 출루율 .500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1패로 플레이오프에 진출했다.

홍성흔은 SK 와이번스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 전 경기에서 선발 지명타자 겸 4번타자로 출장하여 18타수 4안타 2홈런 3볼넷 3타점 3득점, 타율 .222, 장타율 .556, 출루율 .333를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3패로 탈락했다.

홍성흔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33타수 10안타 2홈런 6볼넷 1도루 3타점 4득점, 타율 .303, 장타율 .485, 출루율 .410을 기록했다.

3.2.5. 롯데 시절 총평

홍성흔의 롯데 시절은 길게 말할거 없이 대박 그 자체이다. FA로 팀을 이적해서 4시즌 중 3번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고 4년 모두 포스트시즌에 오른 선수가 또 있겠는가. 2009년에 개인 최고 타율 0.371을 기록하며 두산시절인 2008시즌에 이어 2년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10년에 리그 WAR 순위에서 개인 커리어에서 가장 높은 6위를 기록했고[41] 처음으로 OPS 1을 넘겼으며[42] 116타점을 쓸어담았고 처음으로 20홈런 이상을 때려냈다. 2004년에 버금가거나 뛰어넘는 커리어하이 시즌을 보내며 3년 연속이자 롯데에서 뛴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하게 된다. 2011년에는 의문의 좌익수 변신으로 타격 수치가 감소했으나 여전히 3할 100안타 60타점의 준수한 스탯을 찍으며 개인 4년 연속이자 롯데에서 뛴 3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3.3. 두산 베어스 2기(2013-2016)

냉정히 말해 홍성흔의 두산으로의 리턴은 본인으로서나, 팀에게나, 팬들에게나 큰 실수였다고 보면 된다.

성적으로만 놓고 봐도, 롯데에서는 마지막 시즌인 2012년을 제외하고는 매년 지명타자 부문 KBO 골든글러브를 싹쓸이 했던 것에 비해근데 2010년을 빼면 나머지 시즌들은 모두 논란이 많은 수상이라는게 함정 두산으로 돌아온 뒤엔 아무런 상도 수상하지 못했다. 그나마 2014년 시즌은 송일수 종신감독 만들기 위한 비갈임무커리어하이를 찍었으나 팀 성적이 바닥이었던지라 별 의미가 없었고, 두산이 한국시리즈 2연패를 달성한 2015년과 2016년 시즌은 홍성흔의 활약과는 거리가 멀었다. 애초에 롯데가 홍성흔에게 3년 계약을 제시한 이유도 나이가 나이인지라 점점 노쇠화가 뚜렷이 드러났기 때문이었다. 결과적으로 홍성흔이 두산으로 돌아온 뒤 그나마 제 몫을 한 시즌이 2013~2014년 첫 두 시즌뿐이었고, 나머지 두 시즌은 먹튀급 성적을 찍은 것을 감안한다면 롯데의 선택이 옳았던 셈. 결국 부전드임을 자신이 입증한셈...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했다. 구단은 최종 3년 25억 원(보장 22억 원, 옵션 3억 원)을 제시한 반면, 홍성흔은 4년에 34억 원을 원하여 협상이 결렬. 홍성흔이 4번타자로 분발하긴 했으나 역할을 다했는지에 대해선 이견이 있고, 나이를 생각해보면 4년 계약 만료시 2016시즌 홍성흔은 40세가 된다.

거기다 정현욱을 영입한 LG, 김주찬을 영입한 KIA 등은 물론이고 선수 영입이 없었던 한화나 SK, 삼성 등의 구단도 시장 시작 하루가 채 지나기도 전에 모두 FA 영입 종료를 사실상 선언했고 NC 역시 이호준을 영입해서 홍성흔의 자리가 마땅찮아졌다. 지난 시즌 무리한 넥센은 당연히 영입할 리가 없고 막상 시장에는 나왔는데 갈 곳은 하필 두산밖에 없는 상황. 롯데 팬들은 홍성흔이 두산에 가든 다시 돌아와서 헐값으로 계약하든 차라리 잘 됐다는 의견인 반면, 두산 팬들은 김태룡 단장이 홍성흔 영입에 뛰어든 것에 대해 부정적인 반응을 보였다.

결국 4년간 총액 31억원의 계약으로 두산에 복귀하였다. 김진욱 감독은 타선의 구심점이 될 선수가 필요했다고 하면서, 홍성흔을 주장에 임명하겠다 밝혔다. 김동주는 어쩌고...[43]

홍성흔의 보상 선수로는 김승회가 지명되었다.

3.3.1. 2013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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친정 복귀 후 맞은 첫 번째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성흔/2013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2. 2014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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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의 주장, 팀내 최다 홈런타자로서 준수한 활약을 펼치다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성흔/2014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3. 2015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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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BO 우타자 최초 2000안타를 달성한 후 두산팬들에게 인사하는 장면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성흔/2015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3.3.4. 2016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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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역 마지막 시즌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홍성흔/2016년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4. 은퇴식과 은퇴 후

박찬호의 소개로 2017년 2월 미국으로 건너가서 지도자 연수를 받고 있다.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루키 팀의 인턴 코치를 맡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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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인의 데뷔시절 두산 베어스 유니폼을 입고 은퇴식을 치르는 장면

두산 측에서 선뜻 성대한 은퇴식을 마련해주었다.
홍성흔 본인으로서도 이 부분에 대해서 두산에서 ‘많은 배려를 해주었다’는 생각을 했다고 하며, 솔직히 껄끄러울 수도 있는 상황인데 더더욱이 이렇게 롯데와 같이 경기를 하는 시기에 은퇴식을 마련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리고, 솔직히 은퇴식은 하지 못할 걸로 생각했다고한다. 다른 팀의 유니폼을 입은 적도 있기에 그런 부분이 인정받지 못 할 거란 생각도 했었다고. 그런데 두산에서 뛰면서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뤘던 부분 등에 대해 내 기여를 더 인정해 주셨던 것 같아 감사한 마음뿐이다라며 두산 구단과 두산 베어스 팬들에 대한 감사한 마음을 표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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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식을 위해 일시 귀국, 2017년 4월 30일 잠실구장에서 2009 시즌부터 4년 간 몸담았던 롯데 자이언츠와의 홈 경기 전에 공식 은퇴식을 치렀다.
기념행사의 일환으로 딸 화리, 아들 화철이 각각 시구와 시타를 담당하고, 본인은 시포를 했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는 롯데 자이언츠에게 6:0으로 패했다. 또한, 이날 은퇴식의 일환으로 홍성흔이 카퍼레이드를 하였다. 1루 두산 홈 관중석 쪽 부터 시작하여 3루 롯데 관중석쪽으로 한 바퀴 돌았다. 두 팀 팬 모두 팀 명만 다른 똑같은 응원가를 각자의 응원석측으로 갈 때 불러 주었으며 [44] 몇몇 팬들은 기립해 박수를 보내기도 하며 역시 양팀 팬들에게는 잊을 수 없는 최고의 선수 중 한명임을 알 수 있었다. 영상

5. 지도자 경력

5.1.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17년 9월 19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제의를 받아 정식 프로 코치가 되기 위한 본격적인 걸음이 시작됐다. # 아직 잘 지내는 듯 하다. 홍성흔에 대한 안 좋은 여론도 어느정도 희석되는 는 중... #. 결국 샌디에이고 정식코치가 됐다. #

이는 이만수 전 SK 감독에 이은 두번째.[45] 다만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메이저리그 코치가 아니라 산하 마이너리그 루키팀 코치다.

5.1.1. 2018 시즌

포지션은 배터리 코치 혹은 타격 코치중 하나가 될 예정 이라고 한다. 루키 리그 인턴 당시엔 둘을 병행했다고.

6. 플레이 스타일

컨택형 교타자지만 홈런을 10개 중반 정도는 충분히 쳐줄 장타력을 겸비하고 있다. 다만 IsoP(절대장타율)이 낮은 편이라 2사 이후에는 투수에게 큰 부담이 되지 못한다는 단점이 있다. 적극적인 타격을 선호하고 타고난 선구안이 그리 좋은 편이 아니어서 이병규와 함께 대표적인 배드 볼 히터로 꼽힌다.

워낙 공격력이 좋았던 탓에 수비가 묻힌 감이 있지만, 위에서 언급했듯 국가대표에 포수로 수차례 차출되는 등 괜찮은 수비력을 가지고 있었다. 김태형, 진갑용, 최기문, 이도형 등등 걸출한 포수자원이 넘쳐났던 포수왕국 두산에서 살아남은 선수다. 물론 박경완, 김동수보다는 한 수 아래라는 평가를 받았다.

다만 부상으로 2008시즌 이후로 포수로서의 기량은 완전히 쇠퇴했고, 1루수좌익수 등의 포지션으로 이동해보기도 했지만 실패하여 지명타자로만 나오게 되었다. 빅터 마르티네즈와 비슷한 케이스. 가끔 크게 이기고 있거나 크게 지고 있던 경기에서 1루수로 포지션을 바꾸고 뛴적은 있지만, 1루수로 선발 출장한 경기는 단 1경기밖에 없다.[46] 발은 느린 편이지만 그렇다고 이대호김태균같은 뚱보 선수들 수준은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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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1루 수비. 공격일변도의 야구를 추구했던 로이스터 감독조차 이 한 경기 쓰고 바로 봉인했다. 그 와중에 아웃된 김민재지못미

타격자세에 들어가기 전에 양팔을 흔들흔들 거리면서 어깨가 열리지 않게 하기 위한 일종의 자기 암시를 거는 행동을 하는데 롯데에 들어와서 시도했기 때문에 반 자동적으로 갈매기 타법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홍성흔 하면 빠지지 않는 트레이드 마크. 그러나 박진감 있는 경기를 위한 스피드룰(12초룰)이 도입됨에 따라 갈매기 타법을 자주 보기는 힘들어졌다.

커리어 하이는 2010 시즌으로[47] 이대호와 함께 팀 타선을 이끌며 5개 부문에서 2위를 차지했다. 이해 장타율과 OPS가 무지막지하게 올라갔으며, 절대장타율도 2009시즌 대비 0.109 상승한 0.271로 리그 2위인 리그 최강의 타자로 발돋움했다. 이해에는 눈야구도 가능해져서 1.19의 BB/K, 0.435의 훌륭한 출루율을 기록했다. 2011년부터 성적이 다시 떨어졌다는 점에서 플루크라고 의견이 많지만, 2011년부터 외야수 훈련을 병행해 타격 훈련량이 떨어진데다 노쇠화가 겹쳤기 때문이라는 반론도 있다.

실제로 2013시즌이 종료된 시점에서 2012, 2013년의 기록을 보면 2010시즌은 타격의 변화를 통한 브레이크아웃 시즌이자 커리어하이 시즌일 뿐 플루크라고까지 몰아붙이기는 어렵다. 홍성흔의 커리어는 그게 플루크 소리 들을 정도로 형편없지 않다. 즉, 2011시즌의 급격한 장타력 감소는 난생 처음하는 외야수 훈련 탓이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갖는다. 2012년은 부상으로 기복이 있었지만 시즌 초에는 날아다녔으며, 장타력은 명백히 2011년에 비하면 좋아졌다. 2013년 역시 노쇠화와 친정팀 잠실구장의 영향 등으로 전반기의 부진에도 불구하고 후반기에 제대로 부활하며 여전히 중심타자의 역할을 수행할 수 있음을 증명했다. 2014년에도 5월에 그야말로 폭주하며 2012년 초반을 넘어 2010시즌을 떠올리게 하는 활약을 했으나 이후 다시 부진. 2010시즌을 재현하기에는 나이 탓에 시즌 내내 꾸준함을 보여주지 못한다는 것이 많이 아쉽지만 10시즌 이전의 홍성흔과 이후의 홍성흔은 완전히 다른 유형의 타자라고 보아도 무방하다.

은근히 묻힌 사실이지만, 2010시즌 김현수와 함께 3시즌 연속 타율 0.330 이상 기록에 도전하는 단 둘뿐인 선수였는데, 사구로 인한 부상과 복귀 끝에 시즌 타율을 .350으로 마감하게 되면서 이 전무후무한 기록을 확정지었다.[48] 참고로 한국 프로야구에서 3시즌 연속 타율 0.330 이상은 이전까지 단 한 번도 존재하지 않았다.[49] 2016년과 2017년, 역대급 타고투저가 2시즌 연속 이어지며 선수들의 평균 타율이 높아진 덕에 2018년에는 이 기록에 박건우와 박민우, 박용택과 최형우가 도전하게 된다. 이 중 박용택과 최형우는 3시즌 이상 0.330을 기록한 적이 있으나 역시 3시즌 연속 타율 0.330에는 실패했었던 전력이 있다.

그리고 이대호, 김현수와 함께 2년 연속 타율 0.350 이상을 기록한 선수이기도 하다. 이게 얼마나 굉장한 것인지 설명하자면, 한국프로야구에서 한 시즌이라도 .350 이상 쳐본 선수는 30년 역사에서 역대급 타고투저가 이어지는 2014~2017시즌까지 포함해도 30명이 채 되지 않는다.[50]

2013년 만 36의 나이로 통산 1,800안타 고지를 넘었고 2014년 5월 1,000타점, 9월 12일 200홈런을 돌파했다. 그리고 2015년 6월 14일 KBO에서 2,000안타를 돌파한 최초의 우타자가 됨과 동시에 양준혁, 장성호에 이어 3번째로 2000안타-200홈런-1000타점을 기록한 선수가 되었다.

이런 타격능력과 데뷔시절부터 공격력만은 못했다고 평가받는 수비실력을 고려했을때 처음부터 포수가 아닌 코너 외야수(좌익수, 우익수)나 1루수였다면 양준혁, 김동주에 버금가는 전설적인 대 타자가 되어 있지 않았을까 하고 아쉬워하는 사람도 있다. 물론 지금 커리어로도 일세를 풍미한 훌륭한 타자다.병살타만 뺀다면

7. 특이사항

7.1. 친목

기자들과 유난히도 친한관계를 유지하기에, 기자단 투표에 의해 결정되는 상, 대놓고 말하면 골든글러브에서 객관적인 지표의 차이를 뒤엎고 상당한 표차로 수상을 하는 경우가 유독 잦다. 2001년 포수로서 20-20을 해낸 박경완을 제치고 수상을 한다든지, 2004년 홈런왕[51][52]인 박경완을 제치고 수상을 한다든지왠지 희생자가 반복되는 것 같으면 눈의 착각, 2011년 골든글러브에서 주요 지표[53]에서 앞선 김동주를 162표 차이로 누르고 수상을 한 예가 좋은 사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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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뱅과도 잘 논다. 만사마를 하고 있다 그 뒤의 김태균신경현의 표정 주목 문학에서 열린 2005년 올스타전이다.[54] 공교롭게도 11년 후 두 선수는 같은 달에 은퇴를 선언했다.

7.2. 별명

보통 팬들에겐 포지션을 뒤에 붙여 홍포라는 별명으로 불리지만 오버를 많이 떤다고 하여 오버맨, 홍오바. 그리고 돌출된 으로 인해 홍턱, 턱성흔 등의 별명도 보유하고 있다. 그리고 그 턱은 밭을 갈 때 쓴다 카더라.# 두 특징을 모두 합친 '오버 더 턱'이란 별명도 있다. 지명타자로 전업한 뒤에는 타격력으로 인해 '홍포'로 잠깐 불리우기도 했지만 곧 뻥카가 되는 바람에...

턱돌이#만 합류하면 턱 삼신기가 모여서 롯데가 우승할 것이라는 개그가 떠돌았다. 하지만 일본산 턱돌이 카도쿠라 켄이 등장해서 다시 안개속으로 빠져 들기도 했다.

아무튼 2008년, 2009년, 2010년 연속 타격 2위를 하는 바람에 타격왕 부문 콩라인 가입이 확정됐다.[55]콩성흔 심지어 2010년에는 타율-장타율-타점 트리플 달성했다.

영웅 스윙이라는 별명도 생겼다. 히어로즈의 턱돌이와는 관련 없고 SK 와이번스 김성근 감독이 성균관대 강연에서 홍성흔은 영웅심리가 있다는 말을 하게 되었는데 처음엔 롯데팬들은 반발하였으나 결국 현실임을 깨닫고는 항목 보면 이견이 있다 오버할 때나 어이없는 스윙, 과도한 주루플레이 등을 할 때 놀리는 용도로 주로 쓰인다. 자세한 내용은 영웅 스윙 문서 참조.

2010년 준플레이오프 미디어데이에서 히든카드가 되겠다고 했으며, 5차전 이전에 "뻥카인지 히든카드인지 보여주겠다."란 발언을 했으나 5차전에서조차 부진하여 병살타도 1개 기록하면서 '홍뻥카'라는 굴욕스런 별칭도 얻었다. 이후 나온 기사를 보면 본인 스스로 개뻥카라며 자조하는 듯했다.#해당기사

2011년 시즌 개막 전에 부산에서 운전중 유턴을 하다, 오토바이와의 사고가 있었다. 오토바이측의 과실이라고는 하지만 이로 홍턴이라는 불명예 별명이 생겨버렸고, 2012년 시즌 종료 후 두산으로 '유턴'했다. 이래저래 '턴'에 사연이 많은 선수….

외야수로 출장하고 난후 불암콩콩코믹스 에서 롯데 외야진을 발레리노로 묘사한 장면이 나왔는데 거기서 홍성흔의 명칭은 성흔스키 라는 별칭이 붙기도 했다.

2012년 올스타전 투표와 관련해서 '국민타자' 이승엽에 빗대 자신을 '시민타자'라고 비유하면서 (부산)시민타자라는 별명이 붙었다. 하지만 삼성 라이온즈두산 베어스 팬들은 까는 의미로 사용하였다. 여담으로 2013년에 이승엽이 한국시리즈에서도 부진하면서 '읍민타자', '리민타자'라고 까이며 홍성흔보다 격하당했다.

두산 베어스 복귀 이후로는 언제나 지명타자 자리를 철밥통처럼 차지하고 있다 하여 홍무원이라는 별명도 얻었다. 사실 2014시즌 이후로는 홍무원이라는 말이 엠팍에서도 공공연히 보일 정도로 많이 쓰인다. 특히 김동주가 없는 이 시점에서는 더더욱... 그런데 홍무원이라는 권투선수가 실제로 있다(...)안 그래도 안좋은 별명인데 여기에 스윙까지 합쳐 풀무원이라 불리기도 한다(...) 게다가 이 홍무원과 풀무원은 기사까지 나오면서 공식별명으로 확인사살 당했다. #

2014년 5월 그가 4경기 연속 홈런을 쏘아올리는 등 맹타를 휘두르자 돡갤 등지에서는 홍제폐하, 고위 홍무원, 주장님, 홍통령, 그가 야구 그 자체라는 뜻으로 더 베이스볼(...) 등의 별명으로 불리고 있다.3,4월만 해도 주구장창 까이더만

하지만 그야말로 극심한 부진을 겪고 있는 2015년에는 모두가 홍씨발(...)로 부르는 중이다. 꼴갤에서는 두산으로 다시 이적한 직후에는 그가 해운대에서 식당을 운영했던 점 등을 가지고 홍식당 등의 별명으로 부르곤 했으나, 이후엔 과거 롯데에서 보여준 활약, FA 보상 선수로 데려온 김승회의 활약, 평소에 롯데 전에서 부진했던 점이나, 2015년 9월 이종운호를 격침시키는 만루홈런 포를 쏘아 올린 점 등 그의 여러가지 활약(?) 덕분에 비밀갈매기, 속칭 비갈이라고 불린다. 나오기만 하면 개념글에 가는 꼴갤의 치트키

그리고 후술한 부산 레전드 발언 이후로 부전드라고 불린다.

사실 롯데시절 홍성흔은 4년간 성적만 본다면 롯데에서 충분히 은퇴식은 치러줄 수 있는 성적이다. 단지 프런트와의 말년이 안좋아서 문제지만...

7.3. 두산은 내 운명

부진에 부진을 거듭한 2015년을 시작으로 지금까지도 몇몇 두산팬들에게 지금까지도 여론이 좋지 못하지만, 그것과는 별개로 두산과 뗄래야 뗄 수 없는 인연을 가진 선수이기도 하다.
  • 여러 의미로 베어스 역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인물이기도 한데, 무엇보다도 두산(+OB) 베어스 31년 역사상 최초의 외부 FA 영입 선수다. 다만 원래 두산에서 10년간 뛰었던 프랜차이즈 스타인지라 친정 팀 복귀의 느낌이 강하다. 완전히 순수한 외부 FA 영입의 정의에는 장원준이 여기에 일치한다.
  • 2016년 기준으로 두산 베어스의 2001년 우승 멤버 중 유일하게 2015년 우승을 맛 본 인물이자 유일한 현역 선수였다.[56]
  • 두산 베어스의 우승도 2차례(2001, 2015)[57]나 경험했다. 하지만 야구를 최소 10년도 더 전부터 보던 팬이 아니라면 홍성흔하면 롯데 자이언츠를 떠올릴 경우도 많다. 4년간 롯데 자이언츠에서 매년 커리어하이 수준의 뛰어난 성적을 올렸고 열광적인 부산팬들과도 잘 맞았다. 또 홍성흔이 뛰던 2009~2012 시즌은 롯데 자이언츠 창단 이래 최전성기여서 더욱 기억에 많이 남는다. 홍성흔이 2013년 두산 컴백 이후 롯데시절과 같은 맹활약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는 점도 한몫하는 듯 하다.
  • 그래도 은퇴식도 두산에서 성대하게 치루어 줬고, 18년 신인선수 입단식 및 부모 초청행사에서 멘토로 방문했다. 각종 베어스데이 때 나누어주는 기념 굿즈도 홍성흔의 캐리커쳐 굿즈도 많이 나누어 주는 편이다. 정작 팬들에게 최고의 레전드로 평가받고 있는 김동주의 굿즈는 없다

7.4. 병전드

워낙 공격적인 스윙을 하는데다 주력이 떨어지는 편이라 병살타 숫자가 어마어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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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의 레전드 3인방 김동주, 홍성흔, 안경현

그런데 위 3명 모두 병살타 숫자가 상당하다.

2010시즌까지 통산병살타가 154개로 두산의 두목곰과 함께 유력한 1위 후보였다. 당시 1위는 172개의 안경현(은퇴), 2위 양준혁(은퇴) 166개, 3위 마해영(은퇴) 157개, 김동주(은퇴) 157개, 홍성흔 5위 154개[58]

통산 병살 순위 5위중 3명이 두산 프랜차이즈 출신이라는 점이... 병살베어스의 위엄

2011년 9월 3일 LG전에서 역사에 남을 3연속 병살타를 달성하며 통산 1위에 등극했다.[59]

9월 8일 종전 김기태 KIA 감독이 가지고 있던 5경기 연속 병살타기록[60]을 넘어서 8월 30일~9월 8일 7경기 연속 1개 이상 병살타 기록라는 신기록을 달성했다.

2012시즌이 종료후 통산병살타 1위는 홍성흔(186개), 2위는 김동주(은퇴, 182개), 3위는 안경현(은퇴, 172개)...[61] 거기에 포스트시즌만으로 계산해도 2011 시즌 플레이오프에서까지 적립한 병살타를 포함해 10개로 포스트시즌 통산 1위다. [62] 물론 두산의 두목곰 역시 무시무시한 페이스로 병살을 치고 계신 관계로 두산 프렌차이즈 출신 두 선수의 병살왕 경쟁이 과연 어떻게 끝나게 될지는 아무도 모를...줄 알았지만 김동주가 부진으로 2군에서 올라오지 못하는 동안 홍성흔이 전인미답의 200병살을 달성하고 병살왕 자리를 확고히 지켰다(...). 2013시즌 종료 기준으로 통산 병살타 201개로 병살타 부문 단독 1위에 등극하셨다. 그리고 2014시즌 종료 기준 214개 병살타 기록으로 아웃카운트로 환산하면 428아웃, 15.8게임을 삭제시켰다. 김동주의 186병살타와 합하면 아웃카운트는 딱 800개, 둘이 합쳐서 29.6게임을 삭제시켰다.(...) 지못미 두산바보

2014 시즌 종료 후 김동주가 은퇴하면서 정성훈과 병살왕 경쟁을 이어갔다.

2016년 은퇴하면서 통산 230병살로 커리어를 마감했다. 혼자서 460아웃을 만들었는데 산술적으로 거의 17경기를 혼자서 삭제시켰다.

한일 통산 기록으로 확장한다면 라지에타가 터지신 백인천 전 감독이 일본에서 225병살타, 한국에서 11병살타를 기록해서 도합 236병살타로 홍성흔보다 많은 병살을 기록하긴 했으나, 백인천의 프로 경력은 23년이나 되기 때문에 홍성흔과의 단순비교는 어렵다.

물론 그렇게 불명예스러운 기록은 아니다. 그만큼 경기를 많이뛰었다는뜻이기도 하니깐.

7.5. 욕먹는 레전드?

비록 롯데에서 커리어하이를 찍었지만, 홍성흔은 두산에서 10년이상 선수생활을 하며 두 개의 우승반지를 낀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인터넷에서 보이는 홍성흔에 대한 두산 팬들의 여론은 썩 좋지 않은데, 2009년 FA로 롯데로 이적하면서 한 언론플레이와 이후 두산과 롯데를 비교하는 인터뷰 등으로 많은 팬들이 돌아섰다. 하지만 2013년 두산으로 돌아와선 주장을 맡아 활약했고, 2014년에도 장타력을 과시해 사랑을 받았고, 홍성흔에 대한 비난이랄 것은 지명타자 슬롯을 차지하면서 꼬이는 경기운용과 꾸준히 쌓아나가는 병살타 정도였을 뿐 경기 외적인 내용은 거의 없었다.

문제는 2015년 이후 성적이 폭망하면서도 꾸준히 자리를 지키며 삼진과 병살을 적립하자 홍무원, 비밀갈매기, 홍발 등으로 불리우며 본격적으로 욕을 먹기 시작했다. 이 와중에 사람되라며 오재원을 죽도록 때렸다는 인터뷰[63][64]가 뒤늦게 발굴되면서, 사실상 김동주 국그릇급 미담이다 자랑스럽게 얘기하는 것도 똑같다 야구도 못하는 주제에 팀 분위기만 해치는 게 아니냐 하고 경기 외적인 쪽으로도 욕할 거리를 찾는 팬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후 빈궁게이트, 이종욱 빵 사건[65], JTBC 우리집 출연[66]과 같은 과거의 오점들이 다시 재조명되고, 오재원에게 하기 싫다는 주장을 억지로 떠넘기고 기자들에게는 본인이 하고 싶어해서 넘겨줬다고 인터뷰한 사실이 드러나고, 그래놓고 2015 한국시리즈 우승했을 때는 2014년 주장복을 입었다... 유희관의 야구점퍼를 기자에게 마음대로 가져다가 선물했다는 사실일명 잠바게이트이 알려지는 등 파도 파도 괴담만 나오면서 인성 논란과 함께 '홍성흔이 팀 분위기를 좀먹고 있다'는 주장이 인터넷 상에서 힘을 얻고 있는 상황.

이에 따라 2015년 이후 여러 팬덤에서 홍성흔의 은퇴를 주장하는 목소리가 끊이지 않았고, 2016년 시즌 초반 홍성흔이 햄스트링 부상으로 1군에 올라오지 못하자 ‘갓스트링 찬양’ , '김현수의 공백은 홍성흔의 공백으로 메꾼다'등의 드립이 흥하기도 했다. 이후 홍성흔의 콜업 뒤 거짓말처럼 홍성흔이 선발출장한 경기에서 전패하자[67] 홍성흔에 대한 시선은 더 냉랭해졌고, 심지어 5월 1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주루 중 부상을 당하자 잘됐다고 비웃는 개념 댓글들이 여럿 올라오기도 했다. 하지만 돡갤에서는 대놓고 개념으로 가는 졸렬한 치트키였다

그러던 8월...

7.5.1. 부산 레전드 발언

2016년 8월 7일, 롯데 자이언츠와의 원정 3연전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두산 유튜브 채널 베어스포티비에서 라이브 스트리밍을 하던 도중, 홍성흔의 발언이 크게 문제가 되었다.
"내가 서울에서는 욕먹지 여기에서는 전설이잖아" 관련영상

이른바 부전드 드립. 가뜩이나 15년부터 성적을 미친듯이 말아먹고 있는 데다 정치질 논란, 인성 논란이 겹치며 이미지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던 홍성흔인데, 이 발언으로 그를 쉴드치면서 지지하던 소수의 팬들까지 전부 등을 돌렸다. 이 사건 이후로 홍성흔과 관련된 기사는 그렇게 사랑하는 부산에 가셔서 뛰시지 왜 여기 있으면서 민폐나 끼치냐는 비난 댓글들이 점령하기에 이르렀다. 이로써 송일수노경은에 대한 여론 이후로, 대야베∙곰대돡갤엠팍∙3대 SNS 등에서 상주하던 모든 두산 팬들의 대통합을 이루어냈다.[68]

참고로 이 사건 이후로 두산 팬이 조금이라도 모인 커뮤니티에서 파이어가 났을 때 이 정도로 팬덤 전원의 생각이 일치한 사례는 2018 시즌 후 FA가 되는 주전 포수 양의지를 반드시 잡아서 종신두산을 시켜야 한다는 의견과 2019년 신인 선수인 김대한의 포지션에 대한 의견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된다.

사실 이 발언이 라이브 스트리밍으로 송출되기 직전 한 돡갤 유저가 홍성흔이 저런 말을 했다고 목격담을 올렸었는데,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설마 그랬겠냐, 아무리 홍성흔이 싫어도 이런 주작질은 너무한 거 아니냐"는 반응이 주를 이룰 정도로 팬들은 이 발언을 믿기 힘들어했다. 당장 목격담이 처음 올라왔던 두산 베어스 갤러리 같은 경우는 위에 열거한 두산 팬들이 모인 집단 중에서도 홍성흔에 대해 제일 적대적인 여론이 주를 이루던 곳이다.[69] 그럼에도 초기 반응은 "주작 의심"이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목격담이 올라온 직후 라이브 스트리밍에 그 장면이 바로 잡혀버리면서 목격담은 사실로 드러났고, 순식간에 모든 두산 팬들의 뚜껑을 열어버렸다. 당연히 저 글은 성지가 되었다

그동안 홍성흔이 여러 부분에서 논란을 자초하며 까이긴 했으나 과하게 까인 부분도 있었고, 그렇게 하루가 멀다 하고 홍성흔을 까던 팬들 중 상당수도 이성을 다잡고 생각했을 땐 그래도 김동주처럼 야구 외적인 부분이 심각하게 문제된 적도 없었고, 그간 쌓아온 통산 성적 역시 훌륭했으니 구단으로부터 그에 상응하는 대우를 받는 것에 대해서는 태클을 걸 일이 아니라고 생각했다. 잡음이 있었다지만 팀 최초의 외부 FA[70]로 영입하면서까지 다시 잡아온 베어스의 레전드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이기도 했고, 그간의 공로나 팀에서 세운 업적들을 감안하면 충분히 할 수 있는 생각이었다. 선수 본인의 커리어하이 시즌은 분명 롯데 시절이지만, 두산과 선수생활 대부분의 시간을 함께하고 두 번의 우승컵을 함께 들어올렸다. 두산 시절의 통산기록만 봐도 훌륭한 성적을 쌓은 것 역시 맞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런 사람이 홈 팬들은 본인을 가소롭게 여기고 다른 팀에서나 자기를 알아준다는 소리를 하고 있으니, 팬들 입장에서는 정말 어이가 없고 한심할 뿐이다. 그럴거면 자길 아끼고 사랑해 주는 롯데에서 은퇴하든지, 이 정도의 입지를 가진 선수가 팀 1군 엔트리의 발목을 잡으면서 팀의 결속력까지 흐리는 망발까지 시전하고 있으니 어떤 팬들이 홍성흔을 두둔해 주겠나. 훨씬 어린 선수들의 팀 충성도와 깨알같은 팬서비스를 생각해 보면 이건 나잇값을 해도 해도 너무 못하는 거다.[71]

더욱이 이 발언은 지난 몇년 동안 홍성흔 쉴드의 핵심이 되었던 리더∙분위기메이커 역할 설과 정면으로 부딪히고 있다. 사실 같은 해 4월에 오재원이 14구 승부 끝에 홈런을 치고 베이스를 돈 뒤 덕아웃에 들어왔을 때 "야 칠 거면 빨리 쳐!!"라 하면서 짜증투로 말을 하고, 7월에도 김재환이 수비하다가 실수를 한 뒤 그 이닝이 끝나고 덕아웃으로 들어올 때 수비도 안 하는 홍성흔이 "내가 나갈까?"라면서 떠드는 장면이 나와서 팀 케미에 도움이 안 된다는 주장이 꾸준히 제기되기는 했다.[72] 같은 상황에서 김재호는 이닝이 끝나고 들어올 때 김재환에게 수비 관련 조언을 해 주는 모습이 베어스포티비 스케치에 포착되어 비교되면서 더 까였다.

하지만 그간 프런트 및 귀가 밝은 선수들이 홍성흔에 대한 팬들의 여론을 미리 인지하고 "홍성흔이 덕아웃 분위기를 띄우고 선수들을 응원하면서 팀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로 자리잡고 있다"는 일관적인 주장을 펴 왔고, 그러다보니 홍성흔이 마음에 들지 않는 팬들도 "선수들이 선배를 믿고 따른다는데 뭐 어쩔 수 없지" 하는 태도로 못마땅하게 지켜보고 있던 것이다. 그러다가 후배들 앞에서 리더이자 분위기 메이커라는 대선배가 모범을 보이지는 못 할 망정 저런 소리를 하는 게 잡혔는데, 어떤 팬이 선수단에서 홍성흔을 좋아할 거라고 마냥 믿어주겠는가? 참고로 2016시즌 두산 선수단에서 투수진에는 정재훈, 김성배, 이현승 등 고참급 선수들이 그래도 포진해 있는 편이지만, 야수진의 경우에는 1군급 선수들 중 최고참이 홍성흔보다 8살이나 젊은 1985년생 오재원일 정도로 리그에서 손에 꼽히게 젊다. 참고로 투수진 중 최고참이던 정재훈도 홍성흔보다는 4살이 적다. 이 젊은 선수단에서 압도적으로 연차가 쌓인 선수가 저러고 다니는데, 홍성흔 본인은 스스로가 분위기를 띄워 준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도 선수단에서는 볼썽 사납게 설치고 다니는 불편한 선배로 생각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라는 심증을 상당 부분 확인시켜준 발언이라 할 수 있다.

특히 비슷한 시기에 오른팔에 타구를 맞고 뼈가 부러지자 왼손으로 송구를 하려고 했던 투수조 최고참 정재훈과 그 태도가 비교되면서 안 그래도 까여 마땅한 일을 두세 배로 더 까였다. 사실 정재훈의 골절상에 대한 선수단의 반응을 생각해 봐도 그렇다. 홍성흔이 햄스트링 부상을 당했을 때는 별 움직임이 없던 선수단이 정재훈의 골절상 이후 일제히 그의 등번호인 41번을 분필로 모자에 쓰고 경기를 치르고 있다.[73] 결국 후배 선수들이 믿고 따르는 대선배 역할을 하고 있는 건 정재훈이지 홍성흔이 아니란 소리다.

덕분에 원본 영상은 삭제되고 시간이 지났는데도, 내려가기 전 해당 부분만 편집한 유튜브 영상과 두산 페이스북 페이지의 베댓은 홍성흔 부전드 관련 드립으로 도배되고 있다.

이 발언 이후 홍성흔이 8월 11일 2군으로 내려가고 나서 거짓말처럼 팀이 5연승을 달리며 8월 2주차를 맞이하자, 그를 찾는 사람은 아예 없어졌다. 홍성흔이 없으면 두산이 1위가 된다고 하던 팬들의 반장난이 가미된 비웃음과 농담이 이제는 웃음기 싹 빠지면서 차갑고 날선 성토로 바뀌어 버렸다.

8월 17일에 후반기 들어 두산의 발목을 잡던 수요일 연패 행진을 무참히 깨버린데다가, 다음날인 8월 18일은 69승에서 아홉수마저 한번에 무너뜨리면서 두산은 7연승을 달리고 있다. 결국 홍성흔은 과학이다라는 기사가 나왔다. 사이흔스 홍성흔 등록시 승률은 47.25%, 말소시 승률은 80%라고(...)

여튼 이 부전드 발언 때문에 팬들로부터 굉장한 질타를 받았고, 이는 본인으로서도 큰 흑역사로 인식하고 있는 듯 하다. 은퇴식 당일에도 기자회견 때 기자들이 먼저 물어본 게 아니었음에도 본인이 먼저 이 발언을 언급하며 후회하고 반성한다는 말을 남겼고, 심지어 은퇴 결심 또한 떨어진 기량과 더불어 저런 사고를 쳤는데도 더 이상 선수생활을 하면 그나마 남은 두산 팬들의 성원마저 다 떨어져 나갈 것 같아서 결심하게 되었다고.

하지만 말한 사람이 홍성흔 본인이라서 그렇지 말 자체는 맞는 말이라는 견해도 존재한다. 두산 팬들에게는 충분히 기분이 상할 수 있는 발언이지만 다른팀 팬, 특히 롯데팬들의 입장에서는 홍성흔의 부전드 언급은 틀린 말이 아니라고 느껴질 수도 있다. FA로 이적해서 롯데에서 뛴 4년 중 3번이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4년 모두 롯데를 가을야구로 이끈 주축이며 롯데를 떠나고 6년이나 지난 현재에도 롯데팬들은 홍성흔을 가장 좋아하는 선수 중 한 명으로 기억하고 있으니 이런 면에서는 부산 레전드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다만 홍성흔에 대한 롯데 팬들의 의견은 나뉘어져 있는 것이 현실. 홍성흔을 좋아하지 않는 팬들의 가장 큰 이유는 롯데와의 FA 원소속팀 협상 마지막 날 부산에 남아 직접 협상에 응하지 않고 붕어빵 촬영을 위해 서울로 갔기 때문. 롯데 팬들은 홍성흔이라는 선수가 팀에 애정이 있었으면 적어도 협상 마지막 날 까지는 부산에 남아 성의있게 협상에 응하기를 바랬기 때문에 홍성흔의 두산 이적 당시 홍성흔 본인이 놀랬을 만큼 분노를 표한 롯데 팬들이 많았다. http://ilyo.co.kr/?ac=article_view&entry_id=48163 그랬던 선수가 두산 팬들로 부터 비난을 받기 시작하니 다시 아무렇지도 않게 부산 팬들에게 다시 기댈려고 했으니 그 어느 롯데 팬이 좋아하겠는가? 홍성흔보다 성적이 부족했고 불명예스럽게 은퇴했지만 롯데 소속으로 유니폼을 벗고 선수 시절이나 은퇴 후에도 부산 팬들에 대한 애정을 보인 정수근을 좋아하는 롯데 팬들이 홍성흔을 좋아하는 롯데 팬들보다 많은 게 현실이다. 아직도 인터넷 게시판에 '홍성흔은 어느 팀 레전드인가?'라고 물어보는 글이 올라오면 롯데와 두산팬은 각자 상대팀 레전드라고 홍성흔을 칭하는 경우가 잦다. 이러한 분위기는 '흐니흐니'라는 밈화가 되기도.

다만 홍성흔 본인으로선 두산에서 타격 되는 포수로서 최다안타 1위까지 먹어보는 등 국대급 선수로서 이적하기 전까지 두산에서 8년을 기여한 주축 선수이자 프랜차이즈 스타였고, 롯데를 갔다 와서도 2014년엔 20홈런을 달성하며 클린업으로 좋은 활약을 했는데 고작 1년 반 못했다고 다른 팬도 아니고 자팀 팬들로부터 패드립까지 들어먹으니 프랜차이즈를 대하는 팬의 태도가 지나친 것도 맞고 홍성흔이 서운한 것은 당연하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현재 여론을 주도하는 젊은 두산팬의 대부분은 베이징 올림픽 이후로 유입된 팬들인데, 이들이 본격적으로 야구를 보기 시작한 때 홍성흔은 이미 롯데의 클린업으로 두산과 포스트시즌에서 맞붙는 선수였고, 당연히 원래 자팀 선수였다는 인상이 흐릿할 수밖에 없다. 이들에게 두산의 4번 지명타자이자 팀의 상징은 어디까지나 김동주였던 것. 그런데 이런 김동주를 알 수 없는 이유로 2군에 박아버리고 리더십이 필요하다는 어처구니없는 이유로[74] 홍성흔을 데려왔으니, 베이징 뉴비가 대부분인 두산팬으로서는 돌아온 프랜차이즈가 아닌 알 수 없는 이유로 두목곰의 자리를 빼앗은 타팀 FA선수로밖에 보일 수밖에 없었던 것.

처음부터 시선이 곱지가 않았으니 뭐 건수 하나라도 잡히면 죽어라 물어뜯으려 할 것은 뻔했고 2015년 성적이 급락하고 잠바게이트 등 본인의 실책이 겹치며 프랜차이즈 선수라고는 상상도 못할 만큼 욕을 먹었다. 실제로 김동주는 간통으로 실제 가정법원에 서기까지 했고 후일 밝혀진 국그릇 사건 등 홍성흔이 귀엽게 보일 정도의 사람이었지만, 합법갑이니 버비오빠니 놀리는 것은 타팀 팬이 주축이지 자팀 팬은 그래도 선수로서는 좋은 선수였다 식으로 쉴드를 치거나 아예 인성이 너무 안좋았다 정도로만 언급하고 넘어가며 자세하게는 언급을 하지 않는 식으로 최대한 건드리지 않으려 하고 있다. 아주 심심풀이 땅콩처럼 온갖 창의적인 드립으로 조롱을 당했던 홍성흔과는 크게 대조되는 부분이다. 당장 이 위키의 홍성흔 항목과 김동주 항목의 두 선수가 현역 시절 작성된 내용들을 보면 온도차가 확 느껴진다.

10년을 넘게 뛰며 각종 기록을 세우고 오래 활약했던 자팀 팬은 고작 1년 정도의 부진으로 정말 개처럼 욕하는데 4년 뛴 부산에선 좋은 기억으로 자신을 맞아주니, 저런 생각을 가지는 것도 당연하다. 부전드 발언이 안 그래도 욕을 먹는 선수 본인의 입에서 나와서 문제였을 뿐이지 홍성흔에 대한 두산 팬덤의 태도는 김동주에 대한 그리움이 그대로 홍성흔에 대한 미움으로 바뀌어 유독 홍성흔에게 비이성적으로 가혹했다. 그런 팬덤의 비상식적인 비난을 한 몸에 받으며 한 것에 비해 지나친 비난을 들어야 했던 홍성흔은 꽤 심적으로 힘들었을 것이다. 그렇다고 해서 대놓고 프로선수가 자 팀 팬덤을 비아냥거린 것은 경솔한 발언이었지만. 그 심정 자체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말이다.

7.6. 포지션

앞에서 언급됐듯 포수로 데뷔해 지명타자로 전업했다. 2008년에 지명타자로 완전히 전업한 이후 간간히 타 포지션으로 수비를 소화했다.
연도 포지션 출전경기 선발출전 수비이닝 실책 자살 견제사 보살 병살 수비율
2008 좌익수 2 0 3 0 1 0 0 0 1.000
2009 1루수 4 1 13 0 11 0 1 2 1.000
2010 수비기록 없음
2011 좌익수 22 16 133 0 34 0 1 0 1.000
의외로 정규리그에서 실책은 없었다. 단지 볼때마다 모두가 불안불안하게 수비했을 뿐이다

8. 여담

  • 신인 시절부터 상당히 밝고 쾌활한 이미지를 유지해왔지만 알고 보면 어린 시절이 꽤나 불우했다. 중학생 시절 홍성흔의 부모님이 갑작스럽게 이혼을 했고 아버지, 형과 함께 살았다. 아버지가 홀로 개인택시 운전을 하면서 홍성흔의 뒷바라지를 했다고 한다.
  • 트위터를 하지 않는 몇 안 되는 롯데 선수였다.[77] 오히려 선수단의 트위터 등 SNS 이용을 금지시켰던 주장이었다.
  • 파일:VoKa4wZ.jpg
    모 홈런타자와 트레이드 됐다 카더라 이렇게 됐다면 한국프로야구 역사가 달라질 수도(...)[78]
  • 스포츠 스타 여럿[79]을 보내버린 치명적인 온라인게임 리니지를 아내와 즐겨한다고 알려졌다.엔전드 직접 NC소프트를 방문 했을 정도. 그럼에도 최고의 타자로 군림한 걸 보면 자기관리 하난 정말 철저한 듯하다. 다만 게임 내에서 평판은 그다지 좋지 않다고 알려졌다.
  • 40대의 초반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염색한 머리를 고수하고 있다.
  • 1남 1녀의 아버지이며, 본인의 미남 유전자를 고대로 받은 장녀 홍화리는 상당히 큐트하고 예쁜 외모를 가지고 있어 팬들로부터 화리여신으로 추앙받고 있다.긔엽긔덤으로 턱은 절대 아빠를 닮지 말라고 염원하고 있다. 홍화리 양은 2014년 2월 22일부터 왕가네 식구들 후속으로 방영되는 참 좋은 시절에서 강동주 역으로 출연, 아역 배우로써 커리어를 시작했다.홍성흔의 노후연금계획중 하나라 카더라 2014년 12월 31일 열린 KBS 연기대상에서, 강동주 역으로 청소년 연기상 여자 부문을 수상했다. 홍성흔도 직접 관객석에 앉아 딸의 수상을 지켜봤다. 2014년 5월 30일 롯데와 두산 경기에서 시구를 맡았는데 그야말로 베테랑 투수급의 포스를 뿜는다.홍드로 언니, 보고 있어요? 아들 홍화철 군도 광진구 소속으로 리틀야구단에 소속되어 있다.[83]
  • 2011년 9월 6일 MBC FM4U 정오의 희망곡에 문자사연을 올린 게 당첨이 되면서 전화연결까지 했다. DJ인 현영은 홍성흔의 부인과 친분이 있던지라 이야기하는 동안 홍성흔을 형부라고 지칭했다. 롯데 팬들에게 감사하는 마음을 표하면서 우승하는 데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하는 등 유창하게 멘트를 날리고. 현영에게 자기 응원가를 가르쳐주고 퇴장. 청취자들은 병살타왕 등극에 대한 말을 많이 한 것 같은데 아마 기분 탓이겠지
  • 2013년 올스타 브레이크 기간에 SBS ESPN에서 특별기획으로 방송한 김성근의 돌직구에서 제대로 디스당했다. 두산의 전반기 결산을 언급하는 과정에서 홍성흔의 이야기가 나오자 김성근이 "홍성흔은 자기 할 일이나 똑바로 했으면 좋겠다"라고 정면으로 디스한것.그리고 뉴스 댓글은 잘깠다는 두산팬들의 환호로 가득찼다 그 방송 덕분이었는지는 몰라도 후반기엔 비교적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85][86]
  • 2014년부터 홈런을 친 후 손 대신 턱(...)으로 하이파이브를 하는 세레머니를 보여주고 있었는데 10호 이후로 평범하게 하이파이브하는 것으로 바뀌었다. 5월 19일 라디오볼 인터뷰에서 그 이유를 밝혔는데, 부인이랑 딸이 가정교육에 문제가 된다면서(...) 턱 세레머니를 금지시켰다고 한다.
  • 딸 홍화리의 주장에 의하면, 같은 팀 외국인 선수를 많이 데려온다고 한다. 이유는 불쌍해서. (...)
  • 영화 오늘의 연애에서 문채원의 아역 역할이었던 딸 홍화리와 함께 자이로 드롭을 탄 남자로 등장했다. 심지어 대사도 있다. 대사 내용은 이승기 아역에 괜찮냐고 말한 거. 덤으로 이승기 아역은 자이로드롭을 타고 오줌을 지리고선 홍화리(문채원아역)에게 현실의 홍화리아빠(홍성흔)(...)가 쏟았다고 변명했다가 당연히 차였다. 자세한 상황은 같이 자이로드롭타면 사귀어주겠다고 했는데 그때 이승기 아역이 바지에다 오줌을 지렸다(......)안습.
파일:external/67.media.tumblr.com/tumblr_ogoucoHOZ91sqk8veo2_r1_1280.jpg
* 전준우와 함께 KBO 리그 대표적인 어깨깡패로 유명하다. 문제는 저 떡대를 해놓고서 어좁이에 빵셔틀 체형인 송신영한테 한방에 골로 갔다는건 안비밀
  • KBO 리그 통산 230개의 병살타를 쳤으며, 이 부문 1위에 올라있다.

9.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팀명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병살타
1999두산 111 353 .258 91 14 1 16 63 47 3 25 .439 .304 10
2000 127 438 .290 127 13 2 10 59 55 10 35 .397 .340 12
2001 122 408 .267 109 18 1 8 48 50 9 32 .375 .318 13
2002 127 432 .289 125 17 0 18 70 51 5 42 .454 .350 17
(1위)
2003 73 241 .290 70 12 0 7 36 20 2 15 .427 .326 8
2004 133 501 .329
(3위)
165
(1위)
27 2 14 86
(5위)
62 10 46 .475 .384 8
2005 115 394 .272 107 17 0 11 74 41 2 32 .398 .324 17
(2위)
2006 119 390 .287 112 16 0 10 56 36 1 30 .405 .336 10
2007 80 231 .268 62 11 0 5 39 21 0 34 .381 .354 10
2008 114 423 .331
(2위)
140
(4위)
19 2 8 63 45 8 29 .442 .370 16
(2위)
연도 팀명 경기수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병살타
2009롯데 119 426 .371
(2위)
158
(4위)
33
(1위)
0 12 64 71 9 54 .533 .435
(5위)
15
2010 111 431 .350
(2위)
151
(2위)
28 1 26
(4위)
116
(2위)
88
(3위)
2 61 .601
(2위)
.427
(3위)
18
(2위)
2011 132 474 .306 145 24 2 6 67 70 2 56 .403 .376 22
(1위)
2012 113 390 .292 114 20 0 15 74 48 4 49 .459 .369 10
연도팀명경기수타수타율안타2루타3루타홈런타점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병살타
2013두산 127 469 .299 140
(5위)
21 0 15 72 61 5 63 .439 .379 15
(5위)
2014 124 447 .315 141 19 1 20 82 63 5 68 .497 .405 13
2015 93 301 .262 79 12 0 7 46 39 8 47 .372 .362 13
2016 17 40 .250 10 2 0 0 5 4 0 5 .300 .333 3
통산(18시즌) 1957
(9위)
6789
(6위)
.301 2046
(4위)
323 12 208 1120
(6위)
872 85 723 .444 .366 230
(1위)


[1] 2008 시즌은 두산 베어스에서 뛰었으나 골든글러브 시상식 전 FA를 통해 롯데 자이언츠로 이적하여 롯데 소속으로 수상.[2] 김기태과 타이 기록이다[3] 이 기록은 두산 베어스 최초의 성구회 가입기록이다.[4] 양력 기준. 음력으로는 10월 21일이다. 여담으로 부인은 5월 21일, 장녀 홍화리는 2월 21일생으로 장남을 뺀 가족들의 생일이 모두 21일이다.(장남은 9월 23일생). 주민등록상 생일은 1977년 2월 28일.[5] 태어난 곳은 강원도였지만 학창시절은 서울특별시 강북구에서 보냈다. 홍성흔이 자라던 당시에는 도봉구였다.[6] 어린 시절 서울 도봉구 리틀야구단(현 강북구 리틀야구단)에서 야구를 배웠다고 한다.[7] 체육학과 (1995학번)[8] 아마시절 및 2007년까지[9] 2008년 이후. 하지만 좌익수1루수는 사실상 포수를 그만두고 난 후의 형식적 포지션에 불과했고, 실제로는 거의 지명타자로만 출장했다.[10] 부산광역시 출신으로 홍성흔보다 세 살 연상이다. 결혼 전에는 모델 활동을 했다.[11] 롯데로 가기 전의 두산 시절에는 Suvivor의 Eyes of Tiger[12] 롯데 이적전 2008년 플레이오프 6차전부터 Beethoven Virus를 등장음악으로 쓰기 시작했다. 두산으로 돌아온 2013년에도 이 음악을 등장음악으로 쓰고 있다.[13] KIA 타이거즈의 라인업 송도 이 곡인지라 홍성흔이 등장시에 KIA 팬들은 라인업 송을 부르며, 두산팬들은 KIA 타이거즈 라인업 송이 나오면 홍성흔을 외친다.[14] 두산 컴백 후 사용하는 응원가. 샘플링된 원곡은 Harold Faltermeyer의 Axel F. 참고로 롯데 이적 전까지 두산에서 쓰던 원래 응원가는 동요 '꼬부랑 할머니'였다.[15] 롯데 자이언츠 시절부터 불리던 응원가. 원래 가사는 홍~성~흔~ 홍~성~흔~ 화이팅! 롯데의 홍성흔!이고, 이적 후 응원가가 위의 것으로 바뀌었지만 2013년 여름부터 롯데 조지훈 응원단장으로부터 사용허가를 받고 뒷부분만 "두산의 홍성흔"으로 바꿔서 다시 사용하고 있다. 우주게이 히맨?[16] 하지만 가끔 롯데 팬들이 잠실 야구장에서 홍성흔 타석에 들어서면 롯데의 홍성흔이라고 비아냥대서 두산 팬들이 이 응원가를 굉장히 싫어한다.[17] 대부분의 누적스탯에서 역대 두산 타자들 중 김동주, 김현수와 같이 탑을 달리고 있는 두산 베어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이자 레전드이지만 본인 커리어의 전성기를 FA 이적 후 롯데 자이언츠에서 보냈다는 점과 부산 레전드 발언등으로 인해 두산으로 돌아온 이후에도 몇몇 두산팬들의 여론은 좋지 않은 편이다. 하지만 두산 베어스의 각종 이벤트 데이(미스터두데이 레전드 열쇠고리 증정 등)때 홍성흔의 캐리커쳐 굿즈도 매년 등장하고 있으며, 매년 신년이 되면 두산 신인 선수들에게 멘토링과 강연을 해주는 등 두산의 레전드로서 행보를 이어가고있다.[18] 홍성흔은 당시 국가대표로 뽑혔던 야수들 중에서는 신명철이나 강봉규에 비해 살짝은 낮은 평가를 받았으나 결과적으로 이 둘보다 월등한 커리어를 쌓았다. 한편 신명철과 강봉규는 오랫동안 유망주 딱지가 붙어있다 삼성 라이온즈에서 뒤늦게 만개하는 듯 했으나 사실 이 두명의 20-20은 1년 반짝 수준이었고 결국 백업행과 방출행.[19] 첫번째 신인왕 포수는 1990년 김동수.[20] 사실상 이 시즌만 홍성흔이 포수로서 순수 성적으로 그나마 골든글러브를 수상한 시즌이라고 보는 게 옳다. 포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던 나머지 시즌은 절대 받아서는 안 됬어야할 시즌들이었고 2004년 시즌마저도 홈런 1위에 OPS가 10할을 넘긴 박경완이 받았어야 했다는 시선이 아주 많다. 나머지 시즌은 논란이 굉장히 심하고, 특히 2001년은 역대급 막장 수상으로 아직도 회자되고, 지금도 그러고 있다. 보통 홍성흔을 싫어하는 사람들의 경우 골든글러브 수상횟수는 2010년 단 한번 뿐이라는 생각을 갖고 있다. 성적으로 보자면 그게 맞고.[21] 이 시즌에는 타고투저 시즌 속 최고의 타격 능력을 지녔던 박경완이 크게 부진하는 바람에 포수로서는 클래식, 세이버 성적이 가장 뛰어났으나 삼성의 우승 프리미엄으로 골든글러브는 수상하지 못했다.[22] 그래도 기능에 손상은 없었던 모양인지 이 부상 이후에 화철이를 가지게 됐다고. 참고로 이전 버전에서는 화리여신으로 기재되어 있었으나, 2005년생이다. 따라서 화철이라고 해야 정답.[23] 물론 단독 도루는 아니고 풀카운트 상황에서의 히트&런 작전이었던 상황에서 잡지 못한 것이었는데, 공이 안 좋게 왔고 타자가 스윙하면서 방해했다곤 해도 홍성흔 자신도 충분히 주자를 잡을수 있다고 생각했는지 황당해 하는 장면이 카메라에 잡히긴 했다.[24] 영상. 2회부터 보면 된다.[25] 이후 방송에 출연해서 블래스 신드롬이 있었다고 고백했다.[26] 사실 김경문 감독 부임 이후부터 제기되었던 문제이다. 김경문 감독의 부임 첫해인 2004년, 홍성흔은 2003년에 당했던 부상 후유증으로 경기의 절반 가량은 지명타자로 나서게 되는데, 결과적으로 당시 본인의 커리어 하이를 찍게 되고 3년 만에 포수부문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였다. 하지만 이후 포수로서 경기 출장 시간이 늘어나면서 고질적인 발목 부상으로 고생하고 2006년 시즌 후에는 발목수술을 받았다. 주전 포수가 경기에 꾸준히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답답하고 홍성흔의 타격 재능이 부상에 발목잡히는 것이 안타까웠던 김경문 감독은 홍성흔에게 지명타자 전향을 제의한다. 구체적인 제안은 2006년에 이미 있었으나 홍성흔의 완강한 반대로 무산되었다.[27] 실제로 홍성흔은 2008년에 다시 포수 복귀를 타진하였고, 결국 이 문제로 김경문과의 관계가 많이 틀어지고 말았다. 이 문제는 결국 홍성흔이 롯데로 이적하는 빌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28] 이 때문에 전지훈련도 못 가서 학교 등지에서 홀로 연습을 했다고 한다.[29] 이미 포수로 전성기가 끝난 홍성흔을 주면서 10승 투수를 원했다는 카더라가 무성했다.[30] 포수로 복귀 첫 경기 상대가 당시 정근우를 비롯해 달리는 야구의 선두주자 중 하나였던 SK였는데 도루 저지를 두번이나 했다. 그래서 혹시나? 하는 말도 나왔지만 그 경기 다음부턴 역시나(…) 도루 5개를 허용했다. 그 중 2번이 발이 빠르지도 않은 이범호...[31] 2009 시즌 이 세 타자는 모두 3할5푼이상의 타율을 기록했다.[32] 물론 반론도 있다. 병살타로 악명높았던 이도형은 그 후로도 공인된 뜬금포였고 진갑용은 두산에서 내쳐질때만해도 수비 잘하는 포수가 아니었다. 지금의 강민호가 가지고 있는 문제점은 전부 젊은 시절 진갑용이 지적받았던 부분이었다. 그리고 진갑용은 삼성으로 이적하고 이듬해인 2000년 이후 조뱀을 만나 만개했다. 진갑용은 두산을 떠나면서 이악물고약빨고 훈련에 매진해 지금의 경지에 오른 것인데 만약 두산에 계속 남았다면?[33] 엄밀히 말하면 표면상의 액수. FA 제도가 이상한 덕분에 벌어지는 촌극인데 절대로 저 연봉일리가 없다.[34] 정황상 홍성흔이 배신을 했다기보다는 그 당시 FA 시장에서 과하게 짠손으로 통했던 두산의 계약조건이 너무 낮았다는게 중평[35] 롯데로 이적하는 과정에서 구단측과 마찰이 있었고, 김경문 당시 감독, 김현수를 깎아내리는 태도로 인해 두산 베어스 팬들은 이적 후 홍성흔을 흑역사 취급 중. 그리고 다시 두산으로 돌아온 뒤 까임의 강도는 더욱 심해졌다. 심지어 우승을 해도 욕을 쳐먹으니. 우리흔[36] 영입 확정한 그날 새벽에 열혈롯빠가 작곡하고 미디찍고 보컬넣어서 완성해서 올렸다 -_-;;;; 롯데의 홍성흔 오오오오~ 홍성흔 오오오오~ 라는 가사. 경기장에서 다 같이 부르기에는 좀 빨라서 응원단장이 <What's Up>에 입힌 홍~성~흔~ 홍~성~흔~ 화이팅! 롯데의 홍성흔!으로 바뀌었다.[37] 결국 10 시즌에는 장타 포텐셜까지 터트린다.[38] 물론 타자 FA로서 성공한 케이스는 정성훈. 이진영, 최준석 등도 있지만 이들 중 어느 누구도 홍성흔만큼의 임팩트는 보여주지 못했고, 홍성흔과 달리 골든글러브도 수상하지 못했다.[39] 2017년 시즌에 KIA 타이거즈김주찬이 데뷔 후 첫 골든글러브를 수상하면서 홍성흔에 이은 2호 이적생 FA출신 골든글러브를 수상자라는 타이틀을 차지하긴 했으나, 홍성흔과 달리 김주찬은 KIA 이적 후 부상을 하도 많이 당해 영양가가 별로 없었다는걸 감안하면 홍성흔이 아직까지도 이적생 타자 FA로는 최고의 자리를 지키고있다.[40] 반대로 최형우최진행은 적절한 핵우산을 얻었다.[41] WAR 5.15[42] OPS 1.028[43] 다만 김동주가 은퇴하면서 팀케미 관련 구설수를 남기면서, 이 영입은 재평가를 받았다. 게다가 팀의 구심점을 다지기 위해서는 필요했던 선택이였다는 평이 대다수. 두산 역사를 보아도 항명 파동을 일으켰지만 후배들의 존경을 받았던 불사조 박철순이나, 여러 팀을 전전했지만 두산에서 주장 완장을 찬 임재철을 보면 이해가 쉽다.[44] 사실 두산 복귀 후 롯데시절 응원가를 가지고 온거라 롯데 ←→ 두산 단어만 바꾸면 나머지 가사는 동일[45] 시카고 화이트삭스의 불펜포수였지만 시카고 화이트삭스를 비롯한 몇몇 구단에서는 불펜포수를 제 2의 배터리 코치라는 의미로 정식 코치로 인정해준다. 실제로 화이트삭스의 2005년 월드시리즈 우승 페이지에 접속하면 코치명단에 '불팬캐처' 이만수가 정식코치로 들어가 있다.[46] 2009년 6월 28일, 한화와의 경기에서 7이닝 동안 1루수로 뛰었다.[47] 스탯티즈에서의 커리어 하이는 최다안타 1위를 기록한 2004년.[48] 그리고 상기됐듯 이해 전무후무한 5개 부문 2위를 차지했다. 타율 타점 최다안타 장타율 OPS 2위이며 득점은 3위.[49] 역사상 이 기록에 가장 근접했던 선수는 단 두 명, 전설적인 교타자 장효조와 2009년 홍성흔과 타격왕을 두고 다툰 라이벌이었던 LG의 레전드 박용택밖에 없었다. 장효조 : 0.369, 0.324, 0.373, 0.329, 0.387(1983년~1987년) / 박용택 : 0.328, 0.343, 0.326, 0.346, 0.344(2013년~2017년)[50] 백인천(1982년), 장효조(1983년, 1985년, 1987년), 김종모(1983년), MBC 김상훈(1988년), 이정훈(1992년), 이종범(1994년), 마해영(1999년), 양준혁(2001년), 김현수(2008년, 2009년), 김동주(2009년), 정근우(2009년), 박용택(2009년), 홍성흔(2009년, 2010년), 이대호(2010년, 2011년), 김태균(2012년,2014년,2016년),서건창(2014년),손아섭(2014년),강정호(2014년),최형우(2014년), 에릭 테임즈(2015년), 유한준(2015년),최형우(2016년),이용규(2016년),김선빈(2017년).박건우(2017년),박민우(2017년), 양의지(2019년)[51] 홈런왕이 골든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한 사례는 위에 서술된 2004년 홈런왕 박경완을 포함해 역대 세 차례가 있다. 한번은 MVP가 골든글러브를 타지 못한 초유의 경우인 1998년의 타이론 우즈다. 나머지 하나는 2015년 53홈런으로 홈런왕에 오른 박병호. 다만 경쟁자인 어느 괴물급 털보용병성적이 괴물급이었기에...[52] 물론 두산의 팀 성적이 SK보다 좋고 홍성흔이 타율과 안타는 박경완보다 높았지만 출루율은 5푼 장타율은 1할 2푼이나 차이가 난다.게다가 홍성흔은 당시 지명타자로 많이 나왔기 때문에 '포수' 골든글러브를 받을 수 있는가에 대한 논란이 많았다.[53] 타율에서 2푼차이로 홍성흔이 낫지만, OPS는 0.090이 차이가 나는 상황. 심지어 도루에서도 김동주가 앞선다[54] 2005년 프로 아마 모두 한국야구 100주년 패치를 달았다.[55] 심지어 이말년에 황신과 같이 출연했다!![56] 2014년도까지는 김동주도 있었으나 은퇴했고, 타팀 선수 중 NC의 박명환이 2015년을 마지막으로 은퇴하고 이혜천도 KBO 리그 은퇴&호주리그 진출을 선언, 강봉규(삼성)도 방출되고 독일로 진출하면서 홍성흔만 남았다. 그러다 결국 홍성흔도 은퇴[57] 2016년은 엔트리 제외[58] 2011 시즌 전지훈련 인터뷰에서 해설자로 데뷔한 안경현 위원은 홍성흔 선수에게 경기 결과에 상관 없을 때는 병살타 좀 쳐서 자기 기록을 깨달라는 부탁을...[59] 첫번째 병살은 매우 일반적인 상황이었다고 볼 수 있지만... 두번째와 마지막 상황을 보면 우주적인 기운이 돕고 있는게 아닌가 싶을 정도로 아스트랄한 병살을 연출했다. 특히 세번째의 경우 이대호를 대주자 정훈으로 바꾸는 초강수를 썼음에도 불구하고 결과는...[60] 1997년 5월 31일 군산 삼성전~6월 6일 사직 롯데전[61] 3명 다 두산 출신이다..병살베어스[62] 참고로 2011년 시즌 병살타 1,2,3위는 홍성흔, 강민호, 이대호... 다 롯데 자이언츠 선수...[63] 잘 보면 경희대 후배 정대현도 엄청 맞았다는 내용이 있다. 그 때를 생각하면 치가 떨린다고...[64] 아닌게 아니라 정대현은 대학 시절 홍성흔이 쓰는 방의 방졸이었으며 특히 나이 차이가 크지 않은 후배다.[65] 이종욱의 생일 때 팬들이 빵을 여러 박스 조공했는데, 상당한 양이 남았다고 한다. 문제는 남은 빵을 당사자인 이종욱이 아닌 홍성흔이 싹 다 챙겨 집으로 가져갔다는 것. 조공 당사자도 차라리 덕아웃에 두고 후배들 먹게 놔두는 게 낫지 않았겠냐고 SNS로 아쉬움을 표시했다고 전해진다. 사실 그렇게 대단한 사건은 아니지만 그의 물욕(?)의 예시로 돡갤이나 엠팍에서 가끔 언급되곤 한다. 홍성흔의 팀 동료이자 선배인 김동주도 비슷한 사례가 있다. 시즌 때 배트 스폰서에서 나오는 배트 티켓 여유분이 꽤 많았던 적이 있었다. 그래서 주위에서 티켓을 좀 나눠줄 수 있는지 묻자 김동주가 나서서 현금화해야 한다며 매몰차게 거절했다.[66] 해당 프로그램은 어려운 형편의 시청자들의 사연을 주로 받아 집을 고쳐줬는데, 홍성흔은 고액의 연봉을 받으면서도 출연해 무료로 리모델링을 받아 비난을 받았다.[67] 홍성흔 콜업 전까지 2016년 두산은 단 한 차례의 연패도 기록하지 않으며 승승장구 중이었다.[68] 각 사이트별로 친목 위주의 카페인 대야베, 4~50대 이상의 올드팬들이 주류인 곰대, 30대 층이 대부분인 엠팍, 20대 중심의 강성 팬들이 모여 있는 돡갤, 일명 찍덕 활동이 제일 활발한 인스타, 라이트 팬층이 두터운 페북, 마이웨이를 지향하는 경우가 많은 트위터 등으로 갈라져 있다. 이렇게 다른 성향의 사람들의 의견이 완전히 일치하기엔 당연히 어렵다. 사소하게는 소속 선수들을 부르는 별명부터가 다르며, 소속 선수가 못 했을 때 까는 정도 역시 다르고 물론 돡갤은 못하면 그냥 다 깐다, 소속 선수의 SNS를 커뮤니티에 퍼오는 것 같은 사항에서도 의견이 다르다. 그런데 홍성흔이 그걸 해냈다는 것.[69] 두산 선수로 취급을 하지 않을 정도였다. 원래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면 감독과 주장 두 명만이 제일 앞에 나서서 우승 트로피를 드는 세리머니를 하는데, 15시즌 KS 우승 직후 감독 김태형과 주장 오재원에 끼여서 우승트로피를 먼저 들고, 심지어 캡틴(C) 마크를 박은 유니폼을 입고 축승회에 나타났다고 거세게 비난했다. 괜히 정수빈의 15KS 최고 업적이 딱 타격만 할 수 있을 정도로 손가락을 다치는 바람에 홍성흔을 밀어내고 지명타자를 맡아서라는 말이 나온 게 아니다. 이외에도 홍성흔을 까는 일화가 개념으로 가는 일이 흔했고 흔하다. 2018년 신인들에게 강의하러 왔을 때 두산을 "우리 팀"이라고 칭하자 "왜 두산더러 우리 팀이라고 하냐" 할 정도다.[70] 물론 두산의 실질적인 최초 외부 FA 영입은 장원준으로 본다.[71] 링크에 걸린 세 명의 선수들 뿐 아니라, 외에도 두산에는 모범적인 팀 플레이어들이 많다. 당장 이 시즌 두산 우승의 주역인 4만 해도 죄다 무슨 인터뷰만 했다 하면 동료들부터 언급하는 팀무새들이다.[72] 사실 홍성흔이 좌익수 수비를 본 적이 없는 것도 아닌데, 2016년 시점으로 두산의 주전급 야수들 중 거의 유일하게 수비가 리그 평균 포지션 대비 하급이라는 평가를 받는 김재환보다도 훨씬 못했었던 걸 생각해보면 정말 어이없기 짝이 없는 발언이다..[73] 오재원정작가, 이현호아스정이라고 적었다(!)[74] 다 아시는 대로 김동주는 꼰대짓으로 리더십은 커녕 팀 케미스트리를 망쳐서 2군에 박아버렸지만 이 사실은 이때까지는 외부에 알려지지 않았었다.[75] 포수 2차례, 지명타자 4차례(4년 연속). 포수 및 지명타자 1차례는 두산 소속으로, 나머지는 롯데 소속으로 수상한 것이다. 그러나 2008년과 2010년 지명타자 골글을 제외한 4번은 논란의 여지가 많은 수상이다. 피해자는 박경완이 2번, 페타지니와 김동주가 각 1번.[76] 워낙에 친목의 대가로 알려져 있고 기자들과의 관계가 상당히 좋은 편이라 투표에서 유리한 점이있다고 알려져 있다.[77] 2012년 1월 10일 가짜 홍성흔 트위터가 적발됐었다.[78] 일어나지는 않았지만, 만약 이렇게 되었으면 삼성은 홍성흔이 있기에 굳이 진갑용을 사 올 필요가 없었을것이며, 이승엽이 있는 두산은 어떤 용병 1루수를 데려올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또한 이승엽이 없기에 김기태, 양준혁, 마해영의 포지션운용은 더 편했을것이다. 고로 삼성의 1999~2003년 사이의 막장 포지션운용은 없어지진 않았어도 훨씬 덜했을 것이다. 그리고 두산은 우동수 대신 이동수트리오를 결성하고 부족한 장타력의 장원진이 차지하고 있던 좌익수자리를 외국인선수로 메꿀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페넌트레이스 순위가 그대로 이어졌다고 가정하면 2001년 한국시리즈더욱 흥미진진한 시리즈로 흘러갈 수도 있었다.[79] 대표적으로 고종수으로 알려졌지만 정작 고종수는 이렇게 밝혔으니 인터넷의 루머란 지긋지긋하다.[80] 참고로 이 가발은 전지훈련 갔다가 조성환과 같이 산 거다.. 올스타전 나가면 쓰자고 산 건데 조성환은 잃어버렸다고 한다. 과연 잃어버린 걸까[81] 역대 올스타전 최다득표를 기록하였다.(818,269표) 이 유니폼 홍성흔이 직접 준비한 거라고..[82] 10시즌 올스타전 최종 성적은 5타수 4안타 2홈런 3타점[83] 아버지와 달리 좌투좌타라고 한다. 그 이유는 아빠가 돈 되는 왼손잡이라고 했다고 한다.(...)[84] 근데 이 과정에서 모델에이전시 대표가 출연료를 빼돌렸다가 집행유예를 선고 받았다고 한다 기사[85] 영웅스윙 발언과 이 돌직구 발언을 통해 김성근이 홍성흔을 싫어하나? 라고 의문을 가지는 사람도 있겠지만 김성근 감독은 자서전을 통해 홍성흔이 이타적인 타자고, 팀을 위해 희생한다라고 평가를 내린 적이 있었다. 홍성흔을 비판하기 시작한건 최근의 일이고 각각 모래알 발언과 07, 08년으로 김성근 감독이라면 치를 떠는 롯데팬들과 두산팬들 조차 인정했으니 그리고 두산팬들은 환호했으니 이건 홍성흔 본인에게 문제가 있는게 맞다.[86] 그러나 김성근의 의견이 무조건 옳다고만은 할 수 없다. 홍성흔은 지명타자 전향으로 인한 체력문제 해결로 급격한 타율 향상을 경험했지만, 그가 중심타자의 역할을 수행하게 된 것은 롯데 이적 후 소위 영웅스윙으로 불리는 풀스윙을 완성하면서부터이다. 그의 스윙 변화는 삼진과 병살을 늘렸지만 장타를 늘리는 동시에 다른 어떤 공격스탯에도 피해를 주지 않았다. 나이로 인한 노쇠화를 감안하면 2012년 이후의 모습도 나쁘지 않다. 그의 과도한 부담감으로 인한 찬스에서의 부진과 포스트시즌에서의 부진을 비판한다고 해도, 그것이 스윙 변화와 필연적으로 관계가 있다는 근거는 따로 제시해야 할 것이다. 게다가 홍성흔은 저 말 듣고 후반기에 상당히 잘했다. 포스트시즌에 역시나 삽퍼서 그렇지[87] 이해창도 소싯적에 고아였던 형편 때문에 야구를 그만둬야 할 상황에서 원로 야구인 풍규명이 그를 거두어 주며 야구 생활을 지속하였다. 그런데 풍규명씨의 집에 기거하던 이해창이 어린 시절부터 누나로 모시던 2살 연상인 그의 딸 풍옥희를 임신시키는 사고를 쳤고(...) 이 사실이 들통나자 풍규명은 이해창을 죽일놈 살릴놈 하며 두들겨 팼다고 하지만 그래도 그때까지 자식처럼 키운 정을 끊을 수 없어 일찌감치 결혼시키고 장인-사위지간이 되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