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림 관련 틀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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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광림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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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width=100%><tablebordercolor=#002561> |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1982~1999)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d0ad67> 1982 | 1983 | ||||
김성관 롯데 자이언츠 | 김준환 해태 타이거즈 | 양승관 삼미 슈퍼스타즈 |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 박종훈 OB 베어스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
<rowcolor=#d0ad67> 1984 | 1985 | |||||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홍문종 롯데 자이언츠 | 박종훈 OB 베어스 | 이광은 MBC 청룡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
<rowcolor=#d0ad67> 1986 | 1987 | |||||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 이광은 MBC 청룡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김종모 해태 타이거즈 | 이광은 MBC 청룡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
<rowcolor=#d0ad67> 1988 | 1989 |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고원부 빙그레 이글스 | 김일권 태평양 돌핀스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
<rowcolor=#d0ad67> 1990 | 1991 | |||||
이강돈 빙그레 이글스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해태 타이거즈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해태 타이거즈 | |
<rowcolor=#d0ad67> 1992 | 1993 | |||||
김응국 롯데 자이언츠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김광림 쌍방울 레이더스 | 이순철 해태 타이거즈 |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 |
<rowcolor=#d0ad67> 1994 | 1995 | |||||
김재현 LG 트윈스 | 박노준 쌍방울 레이더스 | 윤덕규 태평양 돌핀스 | 김광림 쌍방울 레이더스 | 김상호 OB 베어스 | 전준호 롯데 자이언츠 | |
<rowcolor=#d0ad67> 1996 | 1997 | |||||
김응국 롯데 자이언츠 |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이병규 LG 트윈스 | |
<rowcolor=#d0ad67> 1998 | 1999 | |||||
김재현 LG 트윈스 | 박재홍 현대 유니콘스 | 전준호 현대 유니콘스 | 이병규 LG 트윈스 | 정수근 두산 베어스 | 호세 롯데 자이언츠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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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rowcolor=#fff>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백인천 MBC 청룡 / 0.412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69 | 이만수 삼성 라이온즈 / 0.340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73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29 | |
<rowcolor=#fff> 1987 | 1988 | 1989 | 1990 | 1991 | |
장효조 삼성 라이온즈 / 0.387 | 김상훈 MBC 청룡 / 0.354 | 고원부 빙그레 이글스 / 0.327 | 한대화 해태 타이거즈 / 0.334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0.348 | |
<rowcolor=#fff>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
이정훈 빙그레 이글스 / 0.360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341 | 이종범 해태 타이거즈 / 0.393 | 김광림 쌍방울 레이더스 / 0.337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346 | |
<rowcolor=#fff> 1997 | 1998 | 1999 | 2000 | 2001 | |
김기태 쌍방울 레이더스 / 0.337 | 양준혁 삼성 라이온즈 / 0.342 | 마해영 롯데 자이언츠 / 0.372 | 박종호 현대 유니콘스 / 0.340 | 양준혁 LG 트윈스 / 0.355 | |
<rowcolor=#fff> 2002 | 2003 | 2004 | 2005 | 2006 | |
장성호 KIA 타이거즈 / 0.343 | 김동주 두산 베어스 / 0.342 | 브룸바 현대 유니콘스 / 0.343 | 이병규 LG 트윈스 / 0.337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336 | |
<rowcolor=#fff>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
이현곤 KIA 타이거즈 / 0.337 | 김현수 두산 베어스 / 0.357 | 박용택 LG 트윈스 / 0.372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364 | 이대호 롯데 자이언츠 / 0.357 | |
<rowcolor=#fff> 2012 | 2013 | 2014 | 2015 | 2016 | |
김태균 한화 이글스 / 0.363 | 이병규 LG 트윈스 / 0.348 | 서건창 넥센 히어로즈 / 0.370 | 테임즈 NC 다이노스 / 0.381 | 최형우 삼성 라이온즈 / 0.376 | |
<rowcolor=#fff> 2017 | 2018 | 2019 | 2020 | 2021 | |
김선빈 KIA 타이거즈 / 0.370 | 김현수 LG 트윈스 / 0.362 | 양의지 NC 다이노스 / 0.354 | 최형우 KIA 타이거즈 / 0.354 |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0.360 | |
<rowcolor=#fff> 2022 | 2023 | 2024 | |||
이정후 키움 히어로즈 / 0.349 | 손아섭 NC 다이노스 / 0.339 | 에레디아 SSG 랜더스 / 0.3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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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 1982 | 1983 | 1984 | 1985 | 1986 |
김용희 롯데 / 동군 | 신경식 OB / 동군 | 김용희 롯데 / 동군 | 김시진 삼성 / 동군 | 김무종 해태 / 서군 | |
1987년 | 1988년 | 1989년 | 1990년 | 1991년 | |
김종모 해태 / 서군 | 한대화 해태 / 서군 | 허규옥 롯데 / 동군 | 김민호 롯데 / 동군 | 김응국 롯데 / 동군 | |
1992년 | 1993년 | 1994년 | 1995년 | 1996년 | |
김성한 해태 / 서군 | 이강돈 빙그레 / 서군 | 정명원 태평양 / 서군 | 정경훈 한화 / 서군 | 김광림 쌍방울 / 동군 | |
1997년 | 1998년 | 1999년 | 2000년 | 2001년 | |
유지현 LG / 서군 | 박정태 롯데 / 동군 | 박정태 롯데 / 드림 | 송지만 한화 / 매직 | 우즈 두산 / 동군 | |
2002년 | 2003년 | 2004년 | 2005년 | 2006년 | |
박재홍 현대 / 서군 | 이종범 KIA / 서군 | 정수근 롯데 / 동군 | 이대호 롯데 / 동군 | 홍성흔 두산 / 동군 | |
2007년 | 2008년 | 2009년 | 2010년 | 2011년 | |
정수근 롯데 / 동군 | 이대호 롯데 / 동군 | 안치홍 KIA / 웨스턴 | 홍성흔 롯데 / 이스턴 | 이병규 LG / 웨스턴 | |
2012년 | 2013년 | 2014년 | 2015년 | 2016년 | |
황재균 롯데 / 이스턴 | 전준우 롯데 / 이스턴 | 박병호 넥센 / 웨스턴 | 강민호 롯데 / 드림 | 민병헌 두산 / 드림 | |
2017년 | 2018년 | 2019년 | 2020년 | 2021년 | |
최정 SK / 드림 | 김하성 넥센 / 나눔 | 한동민 SK / 드림 | 양의지 NC / 나눔 | -[a]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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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열 ★ | 윤동균 | 이홍범 | 이홍범 이종도(임시 주장) | 이종도 | |
<rowcolor=#c0281f> 1988~1990 | 1991 | 1992~1993 | 1994 | 1995~1997 | |
김광수 | 김형석 | 김광림 | 김상호 | 이명수 ★ | |
<rowcolor=#ffd700> 1998~2000 | 2001~2002 | 2003 | 2004 | 2005 | |
김태형 ☆ | 안경현 ★ | 김민호 | 안경현 | 김동주 ☆ | |
<rowcolor=#fff> 2006~2007 | 2008~2009 | 2010~2011 | 2012 | 2013~2014 | |
홍성흔 ☆ | 김동주 ☆ | 손시헌 | 임재철 → 이종욱 | 홍성흔 ☆ | |
<rowcolor=#fff> 2015 | 2016 | 2017 | 2018~2019 | 2020 | |
오재원 ★ | 김재호 ★ | 김재호 김재환 (임시 주장) 오재원 (임시 주장) ☆ | 오재원 ☆ ★ | 오재원 오재일 (임시 주장) ☆ | |
<rowcolor=#fff> 2021 | 2022 | 2023 | 2024~ | ||
오재원 김재환 (임시 주장) ☆ | 김재환 | 허경민 | 양석환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ffc81e><tablebgcolor=#ffc81e> | 쌍방울 레이더스 역대 주장 |
{{{#!wiki style="margin:0 -10px -5px" {{{#ffc81e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 1990년~1999년 | ||
1990~1992 | 1993 | 1994~1995 | |
이승희 | 신경식 | 최태원 | |
1996 | 1997~1998 | 1999 | |
김광림 | 김기태 | 최태원 |
{{{#!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bordercolor=#131230><tablebgcolor=#131230> | 두산 베어스 2군 역대 감독 |
{{{#!wiki style="margin: 0 -10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bottom: -15px" {{{#20272c,#d3dade | |||||
초대 | 2대 | 3대 | 4대 | ||
강대중 (1983~1984) | 배수찬 (1985) | 이충순 (1986) | 이선덕 (1987) | 감독 대행 이광환 (1987) | |
5대 | 6대 | 7대 | 8대 | ||
이광환 (1988) | 감독 대행 이선덕 (1989~1990) | 윤동균 (1990~1991) | 정연회 (1991~1994) | 손상대 (1995~1996) | |
9대 | 10대 | 11대 | 12대 | 13대 | |
김윤겸 (1997) | 손상대 (1998) | 강태정 (1998) | 손상대 (1999~2003) | 송재박 (2004~2006) | |
14대 | 15대 | 16대 | 17대 | ||
박종훈 (2007~2009) | 김광림 (2010) | 박승호 (2011) | 송재박 (2012) | 감독 대행 김우열 (2012) | |
18대 | 19대 | 20대 | 21대 | 22대 | |
송일수 (2013) | 황병일 (2014) | 송재박 (2015) | 공필성 (2016~2017) | 이강철 (2017) | |
23대 | 24대 | 25대 | 26대 | ||
강석천 (2018~2019) | 박철우 (2019~2021) | 이복근 (2022) | 이정훈 (2023~ ) |
{{{#ffffff [[OB 베어스|OB 베어스]] 등번호 33번}}} | ||||
결번 | → | 김광림 (1984~1993) | → | 서석영 (1994~1995) |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3번}}} | ||||
김기덕 (1991~1993) | → | 김광림 (1994~1997.6.7.) | → | 강영수 (1997.6.8.~1998) |
{{{#fab93d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16번}}} | ||||
공의식 (1996~1997.6.7.) | → | 김광림 (1997.6.8.~1997) | → | 홍민구 (1998~2002) |
{{{#fab93d [[현대 유니콘스|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3번}}} | ||||
곽병찬 (1994~1997) | → | 김광림 (1998) | → | 강필선 (1998~2001) |
{{{#000000 [[쌍방울 레이더스|쌍방울 레이더스]] 등번호 33번}}} | ||||
강영수 (1997.6.8.~1998) | → | 김광림 (1999) | → | 팀 해체 |
두산 베어스 등번호 71번 | ||||
유지훤 (1999~2003) | → | 김광림 (2004~2011) | → | 이명수 (2012) |
NC 다이노스 등번호 71번 | ||||
팀 창단 | → | 김광림 (2012~2016) | → | 김평호 (2017~2018) |
{{{#ffffff [[kt wiz|kt wiz]] 등번호 73번}}} | ||||
김경남 (2014~2015) | → | 김광림 (2017) | → | 김영환 (2018) |
}}} ||
kt wiz 코치 시절. | |
김광림 金光林 | Gwang-lim Kim | |
출생 | 1961년 3월 9일 ([age(1961-03-09)]세) |
대전광역시 유성구 |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공주고등학교 (졸업) 고려대학교 (무역학과 80학번 / 학사) |
신체 | 169cm[1] |
포지션 | 외야수[2]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1984년 1차 지명 (OB) |
소속팀 | OB 베어스 (1984~1993) 쌍방울 레이더스 (1994~1997) 현대 유니콘스 (1997~1998) 쌍방울 레이더스 (1999) |
지도자 | 두산 베어스 2군 타격코치 (2004~2006) 두산 베어스 1군 타격코치 (2007~2009) 두산 베어스 2군 감독 (2010) 두산 베어스 2군 타격코치 (2011) NC 다이노스 타격코치 (2012) NC 다이노스 1군 타격코치 (2013~2015)[3] NC 다이노스 1군 타격보조코치 (2015)[4] 고양 다이노스 타격코치 (2016) kt wiz 1군 타격코치 (2017) 분당구B 리틀야구단 감독 (2018~) |
해설위원 | KBC 야구 해설위원 (2000~2003) |
병역 | 예술체육요원[5] |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야구선수. 前 OB 베어스, 쌍방울 레이더스, 현대 유니콘스 소속의 외야수다.두산 베어스, NC 다이노스, kt wiz의 코치를 하면서 1993년과 1995년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상을 받기도 했다.
2. 선수 경력
KBO 골든글러브 외야수 부문 수상자 (1993, 1995) |
쌍방울 레이더스 시절. |
공주고 출신으로 1학년이던 1977년에 대통령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차지하면서 개교 이래 최초의 전국대회 우승에 기여하였다.[6] 그 때 인연을 맺은 2년 선배가 바로 김경문.[7] 여하간 공주고의 전력을 바탕으로 꾸준히 활약하면서 고려대학교에 진학했고, 1984년 연고지 팀인 OB 베어스[8]에 1차 지명되어 입단하게 되었다. 다만, 고교 시절에 비해 대학 시절에는 그리 두각을 나타내지는 못한 편.
프로 초년 시절에는 널뛰기 활약을 보였지만, 4년차인 1987년부터 3할 타율을 기록하기 시작하면서 본격적으로 이름을 날리기 시작했다. 하지만 1989년 도루하다가 스파이크에 손가락이 찍히면서 탈골 부상을 입었고, 이 때문에 고생하게 된다. 이 부상의 후유증으로 1990년에는 0.167의 타율을 기록하며 완전히 망쳤지만, 꾸준한 노력으로 극복하면서 마침내 1993년 생애 첫 골든글러브 수상의 영광을 안을 수 있었다.[9]
그런데 골글 수상 직전, OB 베어스는 그를 쌍방울 레이더스의 선발 투수 강길룡을 상대로 최동창과 함께 트레이드해 버린다.[10] 사유는 그의 부족한 클러치 능력 및 낮은 장타력. 거기다가 나이도 32세로 적지 않은 편이었기에 타선 리빌딩 차원에서 트레이드가 진행되었다. 물론 실제로 김광림은 프로 생활 내내 단 한 번도 두자리 수 홈런을 기록한 적이 없었고, 50타점 이상 기록한 적이 없었기 때문에 이유가 틀린 것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여전히 기량이 있었던 교타자였는데다 한 팀에서 10년이나 뛰어온 프랜차이즈 스타를 이렇게 내친 건 분명 OB 구단의 실수였다. 특히 강길룡이 OB에 합류한 후 겨우 6승에 그쳤고, 강길룡의 프로 마지막 시즌이었던 1999년에는 평균자책점이 10점대로 치솟는 등 베어스 역사에 남는 실패한 트레이드가 되었다.[11].
그렇다면 쌍방울로 간 김광림은 어땠길래? 한 마디로 완전히 날아다녔다. 애당초 매일 야구 비디오를 보면서 공부하고 훈련한다고 평판이 좋던 사람이 독기까지 품었으니. 트레이드 첫 해인 1994년에는 트레이드 충격 탓인지 부진했지만, 1995년 0.337의 타율로 생애 첫 타격왕에 올랐고, 홈런도 생애 최다인 7개(...)를 때렸다. 타점 역시 생애 최다인 49타점을 기록하면서 일약 쌍방울 공격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그 결과 1995년 외야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고, 그 해 열린 한일 슈퍼게임에서도 맹활약하면서 대한민국 쪽 MVP가 되었다. 참고로 이 때 나이가 35세로 상당히 노장 축에 들었다. 다른 선수들이었으면 슬슬 기량 하락이 찾아와 은퇴를 준비해야 하는 시점에서 김광림은 제 2의 전성기를 맞은 셈. 1996년에도 0.303으로 2년 연속 3할 타율을 기록, 중심 타선에서 맹활약하며 쌍방울 창단 첫 포스트시즌 진출에 기여했고, 그해 올스타전에서는 미스터 올스타에 선정되어 현대 싼타모를 부상으로 받기도 했다.
그러나 1997 시즌 기량이 상승한 조원우, 심성보가 외야 주전을 차지하면서 자연히 김광림은 밀려났다. 때마침 현대 유니콘스가 타선 보강을 위해 강영수[12], 공의식을 상대로 한 1:2 트레이드로 데려갔다. 현대로 트레이드된 김광림은 전성기만큼은 아니지만 그래도 대타 및 백업으로 쏠쏠하게 활약해줬고, 선수단 내 최고참이었다 보니 덕아웃 리더 역할도 하면서 1998년 한국시리즈 우승에도 일조, 김광림 개인적으로도 커리어 첫 우승반지를 껴보게 되었다. 하지만 한국시리즈 우승 후 현대는 코치 제안을 했고, 현역으로 더 뛰고 싶었던 마음이 있었던 김광림은 이를 거부하면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렸다. 결국 1999년 쌍방울 레이더스로 돌아와서 1년을 더 뛰었고, 1999 시즌 막판에 은퇴를 선언하고 선수 생활을 마감했다. 그의 은퇴와 함께 쌍방울 레이더스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그래도 은퇴 경기는 하고 떠났다. 만일 쌍방울이 해체되지 않고 남았다면 쌍방울에서 지도자 커리어를 시작할 수 있었겠지만, 현실은...[13]
곱상한 외모와 달리 현역 시절에는 악바리로 유명했다. 다른 선수라면 당연히 경기에 빠질 정도의 부상도 참고 뛰었다고 한다. 투수와의 기싸움에서도 절대 지지 않았다고.
3. 지도자 경력
해설위원으로 활동하다가 2004년 고교 및 대학 선배인 김경문의 두산 감독 취임 이후 두산 베어스의 코칭스태프로 영입되면서 11년만에 친정팀으로 컴백했다. 타격코치를 맡았는데, 전반적으로 두산 팬의 평가는 호의적인 편. 특히 김현수를 발굴하고, 그의 재능을 키우는데 일조했다고 알려져 있다.다만,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으로서는 썩 좋은 평가를 받지 못했다. 2010년 두산 베어스 2군 감독으로 임명되었지만, 1시즌만에 박승호가 2군 감독으로 임명되고, 그는 다시 2군 타격코치가 되었다.
김경문이 NC 다이노스 감독으로 임명되자, 두산 2군 타격코치였던 그도 모종의 스캔들 등으로 어수선했던 두산의 2011 시즌 후 NC 다이노스로 옮겨 2012년부터 NC 다이노스의 타격코치로 활동하게 되었다. NC 팬들은 그를 광림매직이라 한다.
2017 시즌부터 kt wiz로 옮긴다. 다만 kt wiz에서는 팀의 암울한 타선을 보면서 고생중... 폭삭 늙는 소리가 팬들 귀에 들릴 지경이다.[14] 그 때문에 전반기까지만 해도 '이숭용 돌려내라!' 소리가 나오다가 후반기를 기점으로 로하스가 한 손을 놓는 타격폼으로 타격을 교정한 이후 상승세를 탐과 동시에 정현이 후반기에 무섭게 자리를 잡으면서 어느 정도 시즌 초에 비해 평가가 나아진 모습.
2017년 시즌 종료 후 계약 1년만에 성적의 책임을 물으며 해고되었다.[15] 이후 스포츠투아이[16]가 운영하는 야구학교의 분당구B 리틀야구단 감독으로 선임되었다.
이후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한 펜데믹의 여파로 인한 집합금지 때문에 리틀야구단 운영이 어려워지면서 이를 타개하기 위해 2021년 11월 말 분당구 이매동 이매역 바로 앞 번화가의 한 건물에 김광림 야구학교를 오픈했다.[17]
이후 야구학교와 리틀야구단 감독을 병행하면서 1기 출신인 청담고 최지웅이 6라운드에 KIA에 지명되면서 첫 결실을 맺었다. #
4. 여담
- 1988년에는 개막전에서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장호연이 선발 투수로 낙점되었는데, 원래는 장호연이 등판할 경기가 아니었으나 당초 선발 등판 예정이었던 김진욱이 경기 전날 연습 도중 김광림의 타구에
영 좋지 않은 곳을 가격당하며 부상으로 이탈했다. 결국 대체선발로 장호연이 등판하였는데 이 경기가 최초의 개막전 "노히트 노런" 경기가 되었다.[18]
- 컴투스프로야구2021에 1997년 카드가 쌍방울 소속으로 구현되어 있다. 시즌 중에 트레이드되었는데 오류인 듯 싶다.
- 후배들에게 빠따를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특히 잘생긴 후배들에게는 사랑의 매질을 가했다고 한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출장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84 | OB | 83 | 151 | .245 | 37 | 7 | 1 | 2 | 21 | 18 | 4 | 13 | .344 | .305 |
1985 | 91 | 165 | .309 | 51 | 4 | 0 | 1 | 15 | 23 | 9 | 7 | .357 | .337 | |
1986 | 101 | 256 | .246 | 63 | 10 | 0 | 1 | 23 | 21 | 6 | 30 | .297 | .323 | |
1987 | 102 | 342 | .327 | 112 | 9 | 7 (2위) | 2 | 17 | 59 (2위) | 13 | 44 | .412 | .403 | |
1988 | 101 | 311 | .312 | 97 | 21 (3위) | 4 (3위) | 2 | 28 | 45 | 8 | 31 | .424 | .372 | |
1989 | 72 | 211 | .275 | 58 | 6 | 5 (4위) | 1 | 13 | 29 | 14 | 19 | .365 | .333 | |
1990 | 82 | 188 | .165 | 31 | 6 | 3 | 1 | 21 | 16 | 1 | 21 | .245 | .246 | |
1991 | 108 | 361 | .307 | 111 | 19 | 6 | 3 | 36 | 49 | 20 | 38 | .418 | .372 | |
1992 | 119 | 383 | .287 | 110 | 16 | 3 | 1 | 31 | 45 | 13 | 33 | .352 | .340 | |
1993 | 117 | 430 | .300 | 129 | 18 | 3 | 3 | 32 | 49 | 13 | 42 | .377 | .358 | |
연도 | 소속팀 | 출장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4 | 쌍방울 | 119 | 388 | .240 | 93 | 15 | 4 | 4 | 31 | 56 | 20 | 40 | .330 | .311 |
1995 | 119 | 419 | .337 (1위) | 141 (3위) | 17 | 1 | 7 | 49 | 60 | 16 | 53 | .432 | .406 (4위) | |
1996 | 126 | 449 | .303 | 136 | 19 | 6 (2위) | 2 | 49 | 69 | 15 | 48 | .385 | .368 | |
연도 | 소속팀 | 출장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7 | 현대 | 117 | 346 | .292 | 101 | 14 | 5 (5위) | 2 | 32 | 43 | 9 | 40 | .379 | .362 |
1998 | 102 | 216 | .255 | 55 | 8 | 2 | 3 | 21 | 26 | 4 | 31 | .352 | .347 | |
연도 | 소속팀 | 출장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장타율 | 출루율 |
1999 | 쌍방울 | 71 | 144 | .229 | 33 | 5 | 0 | 0 | 12 | 11 | 5 | 15 | .264 | .298 |
KBO 통산 (16시즌) | 1630 | 4760 | .285 | 1358 | 194 | 50 | 35 | 431 | 619 | 170 | 505 | .369 | .351 |
6. 관련 문서
[1] 원래는 173cm였으나 나이가 들어서 키가 줄었다.[2] OB시절에는 중견수로 주로 출장했고, 좌익수 수비도 보았다. 현대에서는 전준호가 처음 중견수를 볼때 좌익수로 나왔다. 이때는 박재홍이 우익수로 뛰기도 했고, 이숭용도 외야 알바를 뛰었다. 외야 틀이 잡히고 나서는 기존의 김인호나 윤덕규는 타격이 부족하거나 나이가 들어 김광림이 자동으로 우익수로 출장하는 등 가리지않고 전 외야 포지션을 다 봤다.[3] ~4월 21일[4] 4월 22일~[5] 1978년 세계청소년야구선수권 대회 준우승[6] 공주고는 1977년 대통령배 우승 이후로 1992년에 노장진의 활약으로 청룡기 전국고교야구대회 우승을 차지했고, 2013년에 대통령배를 36년만에 다시 가져온다.[7] 김경문은 1958년생이긴 하지만 1년 유급한 전력이 있다. 동갑내기인 김시진에게 형이라 부르는 이유도 그것.[8] OB는 1985 시즌 연고지 이전 전까지는 대전이 연고지였다. 1986년부터 빙그레가 연고지로 들어왔다.[9] 이 부상을 제외하면 선수 생활 내내 이렇다 할 중상을 입은 적이 없고, 규정타석에서 빠진 적도 없었기 때문에 한때 고무인간이라 불리기도 했었다.[10] 박동희 기자의 말로는 집에서 전구를 갈고 있다가 그의 팬에 의해 트레이드 통보를 받았다고 한다. 다시 서술하지만, 구단이 아니고 팬에게... 김광림은 처음 들었을 때 만우절인 줄 알았다고.[11] 거기에 OB 이적 첫 해에는 OB 베어스 항명파동의 주범으로 낙인찍히기도 했다.[12] 1993년 시즌 후 쌍방울로 트레이드될 당시 상대였던 강길룡이 그랬던 것처럼 OB 베어스 항명파동의 주범으로 낙인찍힌 적이 있었다. 아이러니하게도 OB 시절 김광림과 팀메이트였다.[13] 다만 1999년 시즌 후 바로 쌍방울의 코치로 선임됐어도 얼마 못 가서 해임됐을 가능성이 크다. 실제로 해체된 쌍방울의 선수단을 모아 창단한 신생팀 SK 와이번스는 당초 쌍방울 코칭스태프들도 고용승계 형식으로 데리고 갔으나, 창단 첫 시즌 종료 후 쌍방울 색깔을 지우겠다며 과거 쌍방울에서 넘어온 코칭스태프 대부분을 정리해고했기 때문이다. 이 시절 쌍방울의 마지막 감독이었던 김준환, 그리고 타격코치 이건열 등이 이러한 정책 때문에 SK에서 잘렸다.[14] 여담으로 김진욱 감독과 김광림 타격코치는 선수 시절에 정말 안 좋은 기억이 있다. 바로 훈련 도중 김진욱이 김광림의 타구에 급소를 맞아서 후대 생산을 못 할 뻔했던 것. 김진욱은 결국 내정되었던 경기에 나서지 못했고 그 경기에서 장호연이 노히트를 달성해버린다.[15] 이 당시 코칭스태프 해고에 대해 논란이 잠시나마 일었었다. 이 논란이 나오자마자 구단 측에서는 코칭스태프의 거취를 결정하기 위해 김진욱 감독과의 상의를 우선적으로 가졌고 김진욱 감독도 그것을 받아들여서 나온 결정이라고 단장이 직접 나서서 단번에 일축하면서 이 논란은 종결되었다.[16] 스포츠 기록을 담당하는 기업이며, 독립야구단 성남 블루팬더스를 운영하고 있다.[17] 전 NC,한화 출신 투수 김병승이 투수 코치를 KIA 출신의 송찬혁이 야수 코치를 맡고 있다.[18] 번외로 2022년 개막전에는 윌머 폰트가 혼자서 퍼팩트 피칭을 보여주고 있었으나 타선의 지원도 못받고 승수 쌓기는 무산 그 역투 덕분인지 뒤늦게 타선이 득점을 하였고, 폰트 다음 후속 투수가 잘 마무리 하여 승리를 하면서 팀 노히터 게임을 만든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