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9 10:48:17

최영필

{{{#!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 width=320><table bordercolor=#000000> 파일:kt_wiz-Emblem.png kt wiz
2020 시즌 코칭스태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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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 김태균 · 71 이강철 [[감독#s-1.1|
]] · 72 김강 · 73 이승호 · 74 정명원 · 75 최훈재 · 76 박기혁
· 77 강성우 · 78 박철영 · 79 최영필 · 80 박정환 · 81 김인호 · 82 윤요섭 · 83 한윤섭
· 84 이지풍 · 85 한혁수 · 86 김연훈 · 87 박승민 · 88 홍성용 · 90 조중근 · 91 신명철 · - 최만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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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영필의 수상 및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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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5년 한국프로야구 준플레이오프 MVP
홍성흔(두산 베어스) 최영필(한화 이글스) 고동진(한화 이글스)

현대 유니콘스 등번호 36번
김종희(1996) 최영필(1997~2001.06.15) 소중형(2002~2003)
한화 이글스 등번호 60번
유영민(2000) 최영필(2001.06.16~2003) 박성호(2009~2010)
한화 이글스 등번호 11번
고상천(2003) 최영필(2004~2010) 신주영(2011)
SK 와이번스 등번호 85번
구천서(2000~2002) 최영필(2012~2013) 세이케 마사카즈(2014~2015)
KIA 타이거즈 등번호 19번
손동욱(2013) 최영필(2014~2017.06) 이민우(2017.09~시즌 종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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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t wiz No.79
최영필 (崔映弼 / Choi Young-Pil)
생년월일 1974년 5월 13일[1] ([age(1974-05-13)]세)
국적 대한민국
출신지 경기도 수원시
출신학교 수원신곡초-수원북중-유신고-경희대
포지션 투수
투타 우투우타
가족 동생 최영완[2]
프로입단 1997년 현대 유니콘스 1차 지명
소속팀 현대 유니콘스 (1997~2001.6)
한화 이글스 (2001.6~2010)
서울 해치 (2011)
SK 와이번스 (2012~2013)
KIA 타이거즈 (2014~2017)
지도자 kt wiz 잔류군 투수코치 (2018)
kt wiz 2군 투수코치 (2019~ )
1. 개요2. 선수 경력
2.1. 현대 유니콘스 시절2.2. 한화 이글스 시절2.3. 해외 리그 시절2.4. SK 와이번스 시절
2.4.1. 2012 시즌2.4.2. 2013 시즌
2.5. KIA 타이거즈 시절
2.5.1. 2014 시즌2.5.2. 2015 시즌2.5.3. 2016 시즌2.5.4. 2017 시즌
2.6. 은퇴
3. 여담4. 연도별 주요 성적

1. 개요

이젠 1이닝을 못 버티니 옷을 벗는 게 당연하다[3]

현대 유니콘스, 한화 이글스, SK 와이번스, KIA 타이거즈 소속의 투수 및 전력분석원. 現 kt wiz의 코치.

2. 선수 경력

2.1. 현대 유니콘스 시절

수원 유신고등학교경희대학교 체육학과를 졸업하고 1997년 현대 유니콘스의 1차 지명을 받아 입단하였다.

유신고 3학년이었던 1992년에는 우수 투수상을 받은 적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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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가능성 있는 투수 유망주로 주목받았지만, 당시 현대 유니콘스정민태, 임선동, 김수경이라는 다승 공동 1위(18승) 투수들을 원투쓰리 펀치로 보유한 후덜덜한 투수진이 있었기 때문에 최영필의 입지는 상당히 좁았다. 게다가 신인 시절에는 지금과 달리 101이닝 동안 76개의 사사구를 허용하는 제구불안까지 보이며 많은 기회를 잡지 못했다.
그래도 1군에서 1997 시즌에 101이닝, 1999 시즌 88이닝 출전했지만, 4~5점대의 평균자책점으로 뚜렷한 인상을 남기지 못했다. 애석하게도 현대는 그가 활약하던 97 99시즌에는 좋지 못한 성적을 남겼고 정작 우승한 년도인 98 00시즌에는 최영필이 뚜렷한 활약을 펼치지 못했다. 결국 최영필은 2번 다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들지 못하며 우승반지를 끼지 못했다.

2.2. 한화 이글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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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포토로)

결국 2001년 김홍집과 함께 이상열을 상대로 한 3억 원의 현금 트레이드한화 이글스의 유니폼을 입게 된다.

2003년에 선발로 등판하여 딱 한 번 완투승을 거둔 적이 있었지만, 문제는 이게 2002년부터 2004년까지 3년간의 유일한 승리였을 정도로 2001년부터 2004년까지 평균자책점 5~7점대의 그저 그런 선발과 불펜을 오가는 투수로 지냈다.
최영필이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한 것은 김인식 감독이 부임한 2005년부터인데, 8승 8패 5세이브 평균자책점 2.89로 에이스급 활약을 해 줬다. 이 해 롯데 자이언츠를 상대로 무려 5승 1세이브에 32이닝 동안 무실점이라는 기록을 세웠다. 그리고 2005년 준 플레이오프 3차전에서 부진했던 선발 김해님을 구원해 7.1이닝동안 1실점을 기록하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으며 5차전에서는 홈런을 하나 맞긴 했지만 세이브를 기록하며 팀의 PO 진출을 확정지었고, 준플레이오프 MVP도 차지하였다. 플레이오프에서는 3차전에 등판하여 7이닝 비자책 1실점하였으나 팀 타선의 침묵에 의해 패전투수가 되었다. (당시 한화 타선은 두산 베어스와의 플레이오프 세 경기 동안 달랑 1점만을 뽑는데 그쳤다.)

2006년에는 불펜으로 11홀드를, 2007년 5승, 2008년 7승을 거두는 등 나름대로 괜찮은 선발 땜방, 중간계투, 마무리 투수 역할을 해 주며 한화 마운드의 마당쇠로 활약했다. 그러나 2009년과 2010년에는 경기에 얼마 출전하지 못하며 부진했다. 이 때의 여파가 FA 파동의 원인이 된다.

2010 시즌 후 아무도 생각하지 않고 있던 FA를 신청했는데, 10년 동안 한화를 위해 뛰어 온 최영필이 FA를 선언하자 한화 이글스는 무시로 일관했고, 결국 이도형과 함께 2011년 1월 15일까지 어느 구단과도 계약하지 못해 1년 간 KBO 리그에서 뛸 수 없게 되었다.[4]

FA 선언은 다소 의외였고, 한화 이글스는 그의 FA 선언에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 했다. 솔직히 보상 선수를 줘 가며까지 최영필을 영입할 구단은 없을 것이라고는 하나, KBO FA 제도는 어디까지나 선수의 권리 증진을 위한 것이다.

FA를 신청하는 선수를 크게 두 부류로 나누면, 첫 번째가 '나는 다른 구단에서도 탐을 내는 아주 우수한 선수이니 원 소속 구단에서 알아서 잘 대접하라'라는 부류가 되겠고, 요즘 첫번째로 구분되는 선수들중 진짜 대어는 NPB, MLB로 가거나 매머드급 계약을 맺고(김태균, 이대호 등이 그 사례) 그보다 약간 낮은 선수들이 몇몇 돈 많이 쓰는 팀에 간다.(정성훈, 이진영 등이 그 사례) 이런 정도의 선수가 아니지만 두번째가 '다른 구단에서 보상 선수까지 줘 가면서 영입할 정도로 탐을 내지 않는 거를 잘 알지만, 지금껏 팀을 위해 열심히 뛰었고 지금도 팀을 위해 뛸 만한 실력은 충분히 되는 만큼 이에 대한 최소한의 보상은 해달라' 가 2번째 부류 되시겠다. (보상선수 엔트리 확보를 위해 팀과 사전 조율 후 신청하는 경우는 논외로 하자.) 최영필은 누가 봐도 후자였다.

다만 직전해 최악의 성적을 낸 다음해 37세의 노장투수에게 리빌딩을 하는 팀이 어려운 팀사정에 지출을 늘리는게 더 이해가지 않는 행보이며 FA 제도에 대한 개선 또한 절실히 필요함을 잘 드러내주는 대목이다.[5]

당시 한화 이글스일본에서 복귀한 이범호조차 붙잡지 못했고, 수많은 선수들이 줄줄이 군대를 가는 등 전력 누수가 심각했다. 최영필이 A급은 아니라도 지금까지 팀을 위해 10여 년을 열심히 뛰고 선수 생활을 장기간 유지할 만큼 어느 정도 실력?이 되는, 한화에 충분히 도움이 되는 투수일지도 모른다

다만 이 부분에 대해서는 팬들 사이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FA를 선언하기 직전 2년간의 성적이 2009년 평균자책점 10.18, 2010년 평균자책점 7.45라는 완전히 형편없는 수준이었기 때문에 FA 선언해 봤자 잡을 이유가 없다는 것, 박정진조차 2009년까지 성적이 좋지 못하다는 이유로 방출 일보 직전까지 간 것을 보면, FA를 신청하지 않고 가만히 있어도 어찌 될 지 모를 정도였다는 의견도 있다.

평소 레전드에 대한 대우가 좋기로 소문난[6] 한화 이글스지만, FA 선언을 한 것에 대한 보복인지 매몰차게 최영필을 내쳤다. 프런트 자리를 제안했지만 최영필이 선수생활을 지속하겠다며 거절 의사를 밝히자 곧바로 내친 것. 그리고 2011 시즌 한화 이글스는 선발진은 어찌어찌 구축했는데 중간계투가 전멸한 처참한 상황이니….

2.3. 해외 리그 시절

같이 FA를 신청하고 한화에서 밀려나 은퇴를 선언한 동료 피자신이도형과는 달리 선수 생활을 계속할 생각이며, 2011 시즌 미국, 멕시코 리그 등을 거쳐 일본 간사이 독립 리그서울 해치(오사카부 연고, 2010~2011)에서 마무리 투수로 뛰었다.

2.4. SK 와이번스 시절

2.4.1. 2012 시즌

FA보상 권리는 3년간 유지되기 때문에 남은 2년동안 타 구단 이적이 힘들었던 최영필은 2012년 1월 3일 한화구단이 원 소속 구단으로서의 보상을 포기함으로써 다른 구단에서는 한화에 대해 아무런 대가 없이 최영필을 영입할 수 있게 되었다. FA 미아에 대한 구단의 보상 권리 포기는 KBO 사상 최초 사례이다. 다만 투수로서 적지 않은 나이기 때문에 다른 구단에서 영입을 할 지가 걱정됐다.

그러다 SK 와이번스에서 아킬리노 로페즈와 함께 최영필을 계약금 없이 연봉 7,000만 원에 영입하여 최영필은 2012년부터 다시 마운드에 설 기회를 찾을 수 있게 되었다. 계약 후 최영필이 공주중 야구부에서 뛰던 아들 최종현 군이 중학교를 졸업하자마자 SK의 지역연고인 인천 제물포고로 진학시켰다는 사실이 알려졌고, 3년 후 최영필 부자가 선수로 SK에서 함께 뛰는 것을 기대하는 팬들도 생겼다. 물론 최영필이 2012년의 모습을 유지한다는 조건에서.

그러나 이에 앞서 투수 전준호를 방출하고 그보다 1살 위인 최영필을 데려 온 것 때문에 비판을 받기도 했다. 특히 전준호가 인천 동산고 출신인지라 이제 인천 SK이기를 포기한 것이 아니냐는 말도 나왔다. 실제로 신인 지명에서도 3년째 인천 출신은 없었다.

그렇게 2012 시즌 5월 1군에 올라와... 와이번스의 필승조로 활약 중이다. 한편 한화에서 최영필 버리고 비싸게 FA로 계약한 송신영은 기대에 못 미쳐 한화팬들은 이중으로 배앓이를 했다.

2012년 6월 15일 문학 야구장에서 열린 한화 이글스와의 경기에서 8회초 2대2 동점상황에서 등판, 1과1/3 이닝을 2피안타 1탈삼진으로 막아낸 뒤 팀 타선이 8회말 2점을 내어 역전, 9회에 박희수가 마무리를 함으로써.. 친정팀 한화를 상대로 시즌 첫 승이자 728일만의 승리를 거두었다. 최영필이 필요하지 않다고 내쳤던 그 한화 이글스는 정작 지금 불펜진의 시망상태로서 필요없다고 내친 그 선수한테 1승을 헌납했으니, 인생사라는게 참 알다가도 모를일이다.

구속은 빠르지 않았지만 14⅔이닝을 던지는 동안 볼넷을 단 한개 밖에 내주지 않을 정도로 뛰어난 제구력과 노련한 피칭으로 SK불펜에 큰 힘이 되어주었다.

하지만 그 이후 체력적 한계를 노출하며 6월 말부터 급격히 털리기 시작하여 올스타 브레이크가 넘어갈 시점에는 평균자책점이 5점대로 상승하였다. 9월 이후 출전에서는 연속으로 무실점 경기를 이어가며 방어율 4점대까지 낮췄다. 필승조를 제외한 SK 불펜 대부분이 제구력이 엉망인지라 활약에 비해 이만수 감독의 신임이 두터운 편이었다. 주로 추격조나 동점 상황에서 출전했지만 선발 투수가 일찍 강판된 경우 롱릴리프로도 나왔다

2012 시즌 46경기 53이닝 평균자책점 4.58 1승 2패 5홀드로서 불펜 추격조로는 무난한 성적을 남겼다.투수진이 완전 붕괴된 2012시즌 한화 이글스에 이 정도 중간계투 한명만 있었다면 대단히 유용했을 것이다.

롯데 자이언츠와의 2012년 플레이오프에서 1경기 ⅓이닝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3승 2패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다.

삼성 라이온즈와의 2012년 한국시리즈에서 2경기 3⅔이닝 1피안타 1볼넷 1사구(死球)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고, 팀은 시리즈 전적 2승 4패로 준우승에 그쳤다.

최영필은 2012년 포스트시즌에서 3경기 4이닝 1피안타 1볼넷 1사구(死球) 5탈삼진 무실점을 기록했다.

2.4.2. 2013 시즌

2013년에도 여전히 불펜에서 제 몫을 다해줬는데, 박희수의 부상과 정우람의 입대로 불펜 전력 누수가 심해진 팀 사정 탓에 나이가 있음에도 상당히 자주 등판하였다.

4월 3일 잠실 두산 베어스전에서는 수비 잘 하기로 유명한 최정이 1이닝 2에러를 범한 암울한 상황에서도 침착한 모습을 보이며 예리한 포크볼로 타자를 삼진아웃시켜 주목받았다. 뛰어난 제구력에 연륜이 묻어나는 노련한 피칭, 정교한 변화구 등 뛰어난 투수의 자질을 모두 갖췄으나 나이 탓에 구위가 뛰어나지 않은 편이라 은근히 장타를 많이 맞는다는 점이 단점으로 꼽혔다.

파일:/image/018/2013/05/15/PS13051500069_59_20130515123503.jpg
2013년에는 이만수 감독이 2번째 투수로 등판시키는 일이 잦았는데, 문제는 경기 승패와는 상관없이 무조건 2번째 투수로 등판시키는 선수 운용. 결국 7월 2일 등판을 마지막으로 2군행을 통보받고 다시 콜업되지 못했다. 다행히 부상을 입거나 하지는 않았기 때문에 2군에서는 시즌 끝까지 꾸준히 중간계투로 등판했다.

11월 26일자로 보류선수 명단에서 제외되었다. SK 프런트는 코치 연수를 제의했지만 이번에도 그는 여전히 현역 생활 연장을 선택하며 그 제의를 고사하고 보류명단에서 풀어줄 것을 요청했다.2015 드래프트에서 신인 지명을 받을 아들과 현역 선수로 함께 뛰기를 간절히 바란 끝에 내린 결정이다. 하지만 뛸 팀을 찾지 못해 모교인 경희대학교에서 잠시 인스트럭터로 일하며 기회를 모색했다.

2.5. KIA 타이거즈 시절

2.5.1. 2014 시즌

2014년 3월 20일, 중간계투진에 비상이 걸린 KIA 타이거즈와 연봉 7,000만 원에 계약하며 동생이 뛰었던 팀에 입단했다. 당시 2군코치였던 정회열이 자리를 찾던 최영필에게 입단을 제안했다고 한다.제 2의 최향남?? 그리고 이 기사가 다시금 주목을 받았다. 영입에 관련된 기사들이 보도된 후 불혹을 넘긴 나이와 여러 차례의 은퇴 위기를 넘긴 데 대한 공통점이 주목할 포인트. 그런데 선수 등록 명단 공시일인 1월 31일이 지난 후 영입했기 때문에, 신고선수로 등록되어 실제 1군 등판은 6월부터 가능하다고 한다.#

6월 1일 신고선수 1군 콜업이 가능해지자마자 1군에 올라왔다. 6월 1일 NC전에서 1점차의 아슬아슬한 리드를 잡고 있던 7회 등판, 1⅓이닝을 퍼펙트로 막아 내며 1홀드를 기록, 그동안 박경태한승혁의 투구로 눈이 썩어가던기아팬들을 환호케 했다. 그리고 6월 5일 기아의 마지막 투수로 등판하여 마무리인 어센시오와 매우 대비되는 명품투구를 보여주면서 병맛경기에 지쳐가던 기아팬들의 열렬한 환호를 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605 대첩 참조.

반면 최영필을 방출한 SK는 대신 영입한 신윤호가 2군에서도 털리느라 1군으로 올려보지도 못하고, 박희수박정배가 부상으로 시즌을 접는 등 불펜진이 완전히 무너져내리면서 한화가 밟은 전철을 그대로(…) 따라가며 대조를 이루는 씁쓸한 상황이 연출되었다.

6월 7일 LG전에도 8회에 등판, 1이닝을 10구로 깔끔하게 막았다.

610 대첩에서는 초반부터 무너진 김병현을 이어 등판했고 2이닝동안 35구를 던지며 2실점(1자책)했다.

6월 12일 한화전에서도 7회부터 등판, 2이닝을 삼진 2개를 곁들여 무실점으로 막아냈다.

총체적 난국을 겪고있는 기아의 불펜진 중 몇 안되는 믿을맨이지만 적지 않은 나이를 생각하면 어느정도 관리가 필요할듯. SK 와이번스에서도 잘 던지다가 출장이 늘어나면서 폼이 하락했다.

6월 15일 롯데전에서 심동섭 다음 투수로 등판, 2이닝을 1피안타만 내주고 무실점으로 막았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6월 19일 넥센전에서 8회초 2-1 상황에서 등판, 선두타자인 이택근에게 2루타를 맞았으나 유한준, 박병호, 윤석민을 침착하게 범타처리하며 양현종의 승리를 지켜냈다.

6월 24일 SK전에서 등판했으나 1이닝동안 4피안타 2볼넷으로 무려 5점을 헌납했다. ERA도 0.75에서 4.15로 치솟았다.

그러나 6월 26일 SK전에서 5회 심동섭의 뒤를 이어 다음 투수로 등판하여, 1⅓이닝 동안 1피안타 1탈삼진 무실점으로 호투하였으며, 팀도 8:2로 승리를 하며 시즌 3승째를 올렸다.

시즌을 거듭할수록 최영필은 1~2이닝을 지킬 수 있는 불펜투수로 활용되었고 여전히 3점대의 평균자책점의 성적을 보이며 쏠쏠한 활약을 했다. 젊은 투수들보다도 베짱있는 승부와 제구력으로 승리조로 활약하고 있는 상황.

8월 12일 NC전에서도 양현종 다음투수로 나왔다. 안타를 허용해 무사 2,3루의 위기를 맞았지만 박민우와 조영훈을 삼진으로 잡아낸 후 나성범을 포수 뜬공 처리하면서 위기관리 능력이 무엇인지 확실히 보여주었다.

10월 3일 기준으로 36경기 47.2이닝을 소화하며 ERA 2.83을 유지하고 있다. 타신투병, 기아가 개판화되어가는 상황에서 낸 기록이라 상당한 의미가 있다.그리고, 22살 한현희보다 ERA가 10월 3일 기준으로 0.24 낮고[7], 안지만보다 ERA가 1.13이 낮다! 흠좀무. 하지만 이를 뒤집어 말하면 40을 넘긴 나이에 급하게 데려와서 시즌 중반쯤에야 1군에 올라온 선수가 승리조로 안착했을만큼 14시즌 KIA 불펜진의 상태가 심각했다는 말도 된다.

2014년 시즌 최종 성적은 40경기 53.2이닝 4승 2패 14홀드 52피안타 6피홈런 45탈삼진 16사사구 ERA 3.19로 마무리하였다.

시즌 이후 경향신문포스트시즌 칼럼을 기재하기 시작했다. '최영필의 투수가 본다' 1회 노장 투수의 눈으로 기고를 하는데 필력이 괜찮은 편.

2.5.2. 2015 시즌


2015년부터, 다시 억대 연봉을 받게되었다. 2009년 1억 이후, 6년만의 억대연봉 재 진입이다.

3월 29일 9회에 등판해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을 기록했고, 9회말 브렛 필의 2점 끝내기홈런으로 구원승의 주인공이 된다.

6월 11일 8회말에 한승혁이 안타와 볼넷으로 만들어낸 무사만루의 위기는 3-5로 앞서가는 기아에겐 큰 위기였다. 하지만 한승혁 뒤에 이어 최영필이 등판하여 실점없이 무사히 조쉬 스틴슨의 선발 승리를 지켜주었다.

6월엔 단 한개의 실점도, 4사구도 허용하지 않는 압도적인 모습을 보여주며 기아의 불펜을 책임지고 있다.

7월 31일 대전 한화전에서는 6회초에 팀이 9대1로 이기고 있는 상황에 올라와서 삼진 2개를 잡으며 좋은 모습을 보였다.

8월 1일 대전 한화전에서는 9:7로 이기고 있던 6회말에 등판하여 연속 2안타를 맞아 무사 1,2루 상황외 되었고 범타 유도 후 다음타자 상대중 공이 빠져 1사 2,3로 위기를 맞았다. 그러나 다음 타자 둘을 연속 풀카운트 삼진으로 마무리하며 KIA 핵심 불펜의 모습을 보여주었다.

2015년 8월 6일 진갑용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KBO 리그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8월 23일 한화전에서는 7회 등판하여 1이닝을 10구로 막아내고 승리투수가 되었다.

9월 21일 6이닝 무실점을 한 양현종 다음 투수로 등판해 2이닝을 막고 내려갔다. 9월동안 필승조로 자주 등판하고 있는데 훌륭한 완급조절로 9월 21일 현재 평균자책점 2.86을 기록하고있다. 하지만 이 경기에서 이명기를 투수 앞 직선타로 더블 아웃을 만드는 과정에서 타구에 오른쪽 손목을 부딪친 것이 화근이 되어 손목 미세 골절로 시즌 아웃이 되고 말았다. 2015년 시즌에 나이가 무색치 않은 최고의 피칭을 보여주면서 영필로 등극했던 시즌이었음을 생각해보면 안타까운 소식.

2015 시즌 후 NC 다이노스박명환손민한이 은퇴했지만, 이들과 달리 최영필은 내년에도 KIA 타이거즈에서 뛴다고 한다. 내년에도 현역! 최고령 최영필의 빛나는 존재감 KIA 타이거즈는 아직 최영필이 필요하다고..... 그러나 KIA 타이거즈 입장에서 객관적으로 봤을땐 최영필의 공백을 메꿔줄 젊은선수층이 얇은게 안타까운 현실인걸 인증한셈..

2.5.3. 2016 시즌


방화들은 최영필 옆에 있으면서도 느끼는게 없는가보다.

스프링캠프를 앞두고 진행된 체력테스트에서 유일하게 테스트 면제 판정을 받았다는 기사가 나왔다. 감독이 그의 체력관리를 믿고 있는 듯. 체력 테스트 진행 당시에는 모교인 경희대 야구 선수들과 함께 일본 와카야마현에서 훈련 중이었단다.

4월 5일 LG전에서 시즌 첫 등판을 하여 무실점으로 홀드를 기록했다.

4월 9일 KT전에 9회말 마무리투수로 등판해 1이닝 1피안타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달성했는데 이날 기록한세이브는 KBO 최고령세이브이다.시즌 첫 SV' 최영필, KBO 역대 최고령 세이브 달성

4월 12일 SK전에 9회말 마무리투수로 등판해 0 ⅔이닝 1피안타 2K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했다. 2사 1루에서 SK의 4번타자 정의윤을 루킹삼진으로 잡는 장면은 백미. 그리고 이 최고령 세이브 기록은 2018년 5월 13일 후배 임창용이 9일 차이로 기록을 깨기 전까지 지속되었다. 나이를 먹을 수록 진화하는 중이다.

그러나 4월 14일 SK전에선 9회말 마무리로 등판해 0.1이닝 3실점으로 극장을 열었다 (...) 박정권에게 끝내기 안타까지 맞으며 패전투수가 되었다.

이후에는 급격한 구위 저하가 보이면서 많은 경기에 투입시키지 않게 되었다. 주로 1~2경기 건너뛰어서 중간계투로 투입.

4월 24일 롯데전에서 1이닝 1실점으로 500경기 출장을 달성했다. KBO 리그 33번째 기록이다.

5월 11일 kt 와의 홈경기에서 500경기 출장 달성 시상식을 열었다. 이날 경기에서는 1.1이닝 무실점으로 막아내며 다시 부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5월 15일 한화전에 2095일 만에 선발로 등판했다. [8][9] 전날 헥터의 완봉으로 불펜에 여유가 생겨 윤석민, 임준혁의 부상으로 공석이 생긴 선발 자리를 대신해 등판한 듯 보인다. 실제로도 이날 경기1,2회 불안한 출발을 보이다 3회 연속안타2개를 맞고 박준표와 교대하고 마운드에서 내려왔다. 이날 경기 자신의 기록은 2.1이닝 5피안타 1볼넷 2K 1실점

6월 28일 LG전에 다시 선발로 예고되면서 2016년 시즌에만 두 번째로 선발로 등판했다. 당연히 이 때에도 온전한 선발 역할이라기보다는 '첫 번째 투수' 역할이 강했던 등판이었다. 2.2이닝 4피안타 무실점 48구로 임무를 완수하고 마운드를 내려왔다. 시즌 최다 이닝, 최다 투구 수를 기록한 경기였다.

8월 4일 한화와의 3연전 마지막 경기에 선발예고되었고 불붙었던 한화 타선을 상대로 3⅔이닝 2실점으로 막아 주었다.

8월 25일 홈 삼성전에 등판해 1/3이닝 1자책을 기록한 이후 9월 4일까지도 등판 기록이 없다.~사이버투수?~

9월 7일 긴 휴식을 끝내고 등판하여 1.2 이닝 1자책을 기록하였다. 그 후 23일까지 2~5일 간격으로 등판하며 좋은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10월 8일 한화전 경기는 끝내기로 패했지만 3년 연속 10홀드를 달성했다.

참고로 올해는 최영필에게는 굉장히 운이 없는 시즌이다. K/9과 이닝당 피홈런 수치가 모두 좋아지고, 심지어 FIP까지 내려갔음에도 불구하고(그것도 FIP는 4점대에서 3점대 중반으로 수직하강했다!)[10] BABIP이 3할 8푼이나 되는 탓에 3점대 초반의 ERA를 기록하고 있다. 원래대로라면 작년과 비슷한 수준을 기록해야 하지만...

2.5.4. 2017 시즌


지난 3년 간의 활약으로 2017년에도 KBO 리그에서 최영필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면서 현역 최고령 선수 기록을 계속 이어 나가게 되었다. 다만 지난시즌 고군분투에도 연봉이 고작 1천만원 인상되는데 그쳐 말이 많은 상황이다.[11]

참고로, KBO 의 최고령 투수 기록은 대부분 송진우가 가지고 있다. 그런데, 최영필 선수가 2017년에도 계속 등판 기회를 잡게 된다면, 일부 기록을 경신할 가능성이 있다.

일단 시즌 개막 전 맹장이 터져 초반에는 합류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기아 불펜은 火펜이 되면서 그의 공백을 뼈저리게 느끼는 중. 돌아와요 엉엉

드디어 5월 28일에 1군에 등록되었다.

5월 31일 마산 NC전 9회말에 등판했다. 10점차이의 여유있는 상황에서의 등판이었으나 투스트 잡아놓고 연속안타에 아들 뻘 외야수 두명이 아주 좋--은 수비를 보여주며 2실점 하였으나, 흔들리지 않고 여전한 칼제구를 보여주며 마지막 타자를 몸쪽 삼진으로 잡아내며 무난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6월 2일자로 1군에서 말소됐다. 그 후로 한동안 소식이 없었다가 7일 후 들려온 소식은...

2.6. 은퇴

6월 9일 은퇴를 선언했다. 1이닝 못버티니 옷 벗는게 당연하다.라는 명언을 남기고 떠났다. 기아팬들은 통곡 중. 이후 기아의 전력분석원으로 활동할 예정이다. 아쉽게도 아들하고 같이 그라운드에 뛰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그가 은퇴한 후에도 기아의 불펜은 활활 타오르면서 최영필은 연전연승을 기록중이다. 특히 9월에 불펜들은 9회말 최다 점수차 역전패라든가 한 이닝 10실점등의 최절정을 찍고 있다.

결국 기아의 8년만의 우승 순간, 최영필은 선수가 아닌 전력분석원으로서 덕아웃에 남아 그라운드에서 얼싸안고 춤을 추는 선수들을 지켜보고만 있어야 했다. "저 자리에 꼭 한 번은 서 보고 싶었는데..." 라고 말했다고.[12]

시즌이 끝나고 전력분석원으로 잔류할 것으로 예상했지만, 고향팀 kt의 잔류군 투수코치로 가게 되었다. 대체적으로 아쉽지만 고향팀에서도 코치로 잘하라는 반응이다. 사실 현장에서 좀 뒤떨어진 전력분석원보다 잔류군이라도 일단은 현장에서 일할 수 있는 것이 코치로써의 미래를 생각하면 더 나은 편이다.

2019년에는 2군 코치로 승격되었다.

3. 여담

  • 40세 이후 통산 WAR 2위다. 1위는 정말로 미세한 차이로 송회장님. 3위 김용수와의 상당한 격차를 통해 이 2명이 얼마나 자기관리를 잘해왔는지 알아볼 수 있다.
  • 유독 에이원 글러브를 고집하는 경향이 있다. 한화 시절부터 쭉 에이원 글러브만 사용.
  • 한화 시절이었던 2005년 5월 21일 심판 판정에 불만을 품고 고의로 빈볼을 던진 후, 심판이 퇴장을 선언하자 글러브를 냅다 집어던지고 쿨하게 걸어 나가는 장면을 연출해 필사마라는 별명이 붙게 되었다. 참고로 빈볼을 맞은 상대는 진갑용이다. 진갑용은 2006년에 구대성의 투구에 맞았을 때 한참 선배인 구대성한테도 불만을 표시했는데, 진갑용 레알 미쳤는 줄 알았다. 1루 가서 제정신 돌아와 엄청 뻘쭘해 함. 정작 동갑내기인 최영필한테는 아무 소리도 못 했고 심판만 애절하게 쳐다 보았다. 최훈이 은퇴 다음날 그린 프로야구카툰 최영필 헌정편의 제목도 필사마였다.
  • 1997 시즌을 마치고 24살이란 나이에 일찍 결혼하여 아들을 두고 있다. 그 아들과 같이 선수로 뛰는 것이 꿈인지라 한화, SK 구단에서 은퇴 후 코치로의 기용, 프런트 전직 제의 등을 제안했으나, 싹 다 거절하고 현역 선수로 뛰었다. 그러나 아들인 최종현은 부상 등 이런저런 이유로 등판 기록이 적었던 터라(제물포고 통산 11 2/3이닝) 2015 드래프트에서 지명을 받지 못했다. 하위 라운드 지명 제의도 있었지만, 경희대학교에 입학했다고 한다. 하지만 아쉽게도 최영필이 2017년 은퇴하며 아들과 같이 그라운드에 뛰겠다는 꿈은 이루지 못하게 되었다.
  • 전술했듯 아들인 최종현도 야구선수이다. 최종현은 2018년 기준으로 경희대 4학년이며 아버지와 같이 프로에서 뛰는 것이 꿈이라고 한다. 그러나 제물포고 시절 3년 통산 11 ⅔이닝밖에 소화하지 못한데다 대학 진학 후에도 1학년 때 9 ⅓이닝, 2학년 때 1 ⅔이닝, 3학년 때 1 ⅓이닝[13], 가장 중요한 4학년마저 사실상 공식전을 마감한 가운데[14] 0이닝 1볼넷 1사구에 그친 터라 사실상 지명을 받기는 쉽지 않아 보인다.일단 최종현은 얼굴책부터 끊고 열심히 연습해야... 결국 최영필이 은퇴하면서 이 꿈은 이루어지지 못했다. 사실 최영필의 꿈은 아들이 고교를 졸업하고 바로 지명되는 걸 가정하고 말한 것이었다고 한다. 대학교에 가는 것을 보고 쉽지않겠다고 생각했지만 그덕분에 경기를 뛰는 목표가 있어 선수생활이 연장된 건 같다고 한다.은퇴 후 인터뷰 기사 그러나 최종현은 2019 드래프트에서도 결국 지명받지 못했다. 경희대가 전국체전에 경기도 대표로 나가지만 여기에서도 등판하지 못하면서 사실상 이대로 선수 생활을 끝내게 될 듯 했으나 졸업 유예를 신청해 1년 더 대학에 남게 됐다. 그러나 신인 2차지명까지 한 대회(대학선수권)만을 남긴 시점까지 고작 2 1/3이닝 투구에 그치면서 신인 지명은 사실상 물 건너갔다.
  • 2014 시즌 후 그의 모교이기도 한 경희대학교에서 비시즌 기간 자율 훈련을 하는 사진이 찍히면서, KIA 팬들에게 베테랑의 표본이라고 칭송받고 있다. 많은 나이에도 철저한 몸 관리를 보여 주는 모습에 칭송을 아끼지 않는 반응. 실제로 아들이 지명을 받지 못하고 경희대학교에 진학하면서 집을 경희대학교 근처로 옮겼다고 한다.
  • 위의 몸 관리 덕에 2016년도 체력 테스트에서는 유일하게 면제 판정을 받았다. 즉 테스트를 따로 안 해도 된다는 판정을 받은 것.[15]
  • 2014 시즌을 끝으로 류택현송지만이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진갑용, 이병규와 함께 KBO 리그에서 가장 나이가 많은 선수가 되었다. 이들 1974년생 선수들의 생일 순서는 진갑용>최영필>이병규진갑용이 최고령 선수이고, 최영필은 진갑용보다 불과 5일 젊은 차고령 선수였는데 진갑용이 2015년 8월에 현역 은퇴를 선언하면서 최고령 선수가 되었다. 이후 2017년 6월 은퇴를 선언할 때까지 최고령 선수였다.
  • 최영필이 만약 고교 졸업 후 바로 지역연고 프로지명을 받았다면 입단했을 팀은 바로 1993년의 태평양 돌핀스이다. 그 때는 놀랍게도 빙그레 이글스도 있던 시절. 그 유명한 노장진과 영필옹 동갑이다!! 2011년 이숭용이 은퇴하며 태평양 출신은 모두 현역에서 은퇴하였다.
  • 불펜으로 전천후 활약을 하는 덕에 전영록의 노래 <사랑은 연필로 쓰세요>를 패러디해서 불펜을 쓰려면 영필로 쓰세요 라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4.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1997 현대 유니콘스 34 101⅓ 4 10 0 0 0.286 4.88 95 14 76 79 63 55 1.66
1998 11 17⅓ 0 1 0 0 0.000 5.19 22 4 6 9 11 10 1.62
1999 40 88⅔ 3 4 1 0 0.429 5.58 106 13 45 53 60 55 1.61
2000 7 10⅓ 0 0 0 1 0.000 4.35 9 2 3 9 5 5 1.16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01 한화 이글스 20 67⅓ 4 4 2 0 0.500 5.48 64 7 38 43 43 41 1.49
2002 14 22 0 0 1 0 0.000 7.77 31 3 16 21 20 19 2.05
2003 13 42 1 3 0 0 0.250 6.86 50 6 24 26 33 32 1.67
2004 14 37 0 3 1 0 0.000 4.14 39 5 12 27 18 17 1.30
2005 40 112 8 8 5 0 0.500 2.89 109 9 36 72 41 36 1.24
2006 30 38⅓ 2 3 0 11 0.400 3.05 34 4 17 34 13 13 1.25
2007 33 99⅔ 5 5 2 1 0.500 4.33 120 7 43 48 50 48 1.60
2008 36 85⅔ 7 8 0 3 0.467 4.73 98 4 41 48 50 45 1.59
2009 13 20⅓ 0 2 0 0 0.000 10.18 31 4 11 11 23 23 2.07
2010 21 54⅓ 1 4 1 0 0.200 7.45 84 13 25 26 46 45 1.9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2 SK 와이번스 46 53 2 1 0 5 0.667 4.58 52 7 12 40 27 27 1.17
2013 22 17⅓ 0 0 1 3 0.000 6.23 24 2 9 11 15 12 1.85
연도 소속팀 경기수 이닝 승률 ERA 피안타 피홈런 4사구 탈삼진 실점 자책점 WHIP
2014 KIA 타이거즈 40 53⅔ 4 2 0 14 0.667 3.19 52 6 16 45 25 19 1.25
2015 59 63 5 2 0 10 0.714 2.86 57 8 10 51 23 20 1.03
2016 54 57⅓ 4 3 2 10 0.571 3.61 74 6 11 54 26 23 1.43
2017 2 1⅓ 0 0 0 0 0.000 20.25 5 0 1 1 3 3 4.51
통산
(20시즌)
549 1042 50 63 16 58 0.442 4.73 1156 124 452 708 595 548 1.51


[1] 2017년까지 KBO 리그 최고령 선수였다. 같은 팀이었던 신범수와는 무려 24살 차이!, 롯데의 2017 1차지명인 윤성빈과는 25살 차이이다.[2] 동생도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다. 포지션 역시 투수였으며, 이쪽은 좌완투수다.[3] 2017 시즌 중반 은퇴를 선언하면서 남긴 말이다. 그렇게 따지면 이 팀은퇴해야 할 몇 명이나 있는 걸까 다행히 2019년에 모두 옷을 벗었다 다만 본인은 투수코치 생활을 시작하면서 이때 했던 말에 대해 '자신의 상황에서야 당연했던 말이나 유망주들에겐 아니다'라는 뉘앙스로 인터뷰를 한 적이 있다.[4] 1월 15일까지 계약하지 못하면 1년간 뛰지 못하는 이 규정은 2012 시즌에 사라졌다. 하지만 정작 진짜 문제인 FA 보상 규정에는 거의 변화가 없으므로, 구단에서 보상 규정을 포기하지 않는 이상 크게 달라진 것은 없다. 보상 문제가 없었다면 애초에 1월 15일까지 계약하지 못할 일도 없었을 것이다.[5] 그러나 당시 손민한 회장 체제의 선수협은 아무런 목소리도 내지 않았다. 각종 이권에만 개입하고, 정작 선수의 권리에는 무관심한 손민한 집행부는 현장 야구인과 언론에서 심각한 비판의 대상이 되었다.[6] 다만 이 당시 한화 프런트구대성의 영구결번 추진 의지조차 없을 정도로 맛탱이가 가 있었다.[7] 다만 한현희가 22경기 22.2이닝을 더 소화했다.콩콩경기 콩콩.콩이닝[8] 마지막 선발등판은 2010년 6월20일, 공교롭게도 당시 한화소속이었다[9] 2016 시즌의 아시아 최고령 선발투수이다.[10] 대신 삼/볼 비율은 약간 나빠졌다.[11] 도박 혐의로 인해 시즌 초 출장정지 징계를 받고 시즌을 절반만 뛰었던 임창용은 연봉이 2억이나 인상되어 이에 관해 말이 많았다.[12] 전술했듯 현대 유니콘스 시절 2번의 한국시리즈 모두 엔트리에 포함되지 않으면서 우승반지를 끼지 못했고, 올해 여름에 KIA에서 은퇴하지 않았더라면 부족한 불펜진 보완을 위해 한국시리즈 엔트리에 포함되어 그토록 고대하던 우승반지를 끼고 은퇴할 수 있었을 것이다.[13] 이때 땜빵선발이라는 기회를 받았는데 1회부터 두들겨맞으면서 2회에 강판당하고 말았다.[14] 경희대는 전국대학야구선수권과 대통령기에서 모두 조기 탈락했고 주말리그(U-리그)에서 부진해 2차지명을 앞두고 열린 대학야구 U-리그 왕중왕전에는 출전하지 못했다.[15] 사실 면제라기보단 감독 동의하에 경희대 야구부원들과 훈련을 하고 있었기 때문에 테스트를 받지 못한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