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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펼치기 · 접기 ] | 황우구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1998 방콕 아시안게임 야구 종목 금메달 |
1998 |
한화 이글스 등번호 31번 | ||||
부시 (1998) | → | 황우구 (1999) | → | 심재윤 (2000~2001) |
한화 이글스 등번호 14번 | ||||
윤근주 (2000~2001) | → | 황우구 (2002~2004) | → | 문용민 (2005) |
A대표팀 참가 경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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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우구 黃友求 | |
출생 | 1976년 5월 3일 ([age(1976-05-03)]세) |
국적 | [[대한민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동산고 - 인하대 |
신체 | 183cm, 80kg |
포지션 | 유격수, 2루수 |
프로 입단 | 1999년 2차 1라운드 (전체 2번, 한화) |
소속팀 | 한화 이글스 (1999-2004) |
병역 | 예술체육요원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야구 부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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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대한민국의 前 야구 선수이다.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동산고 재학 때부터 고교 국가대표에 선발되곤 했으며, 인하대 재학 시절 주성노 인하대 감독을 따라 1998년 야구 월드컵 및 1998년 방콕 아시안게임 대표팀에 선발되어 주전으로 활약하였다. 이를 눈 여겨 본 한화 이글스는 지화동의 은퇴 및 허준의 물방망이로 고심하던 유격수 포지션 자리에 1999년 신인 2차 지명 때 그를 2차 1순위로 지명했다.2.2. 한화 이글스
데뷔 시즌이었던 1999년 수비 최소 실책으로 잠재력을 보여주나 싶었으나, 부상이 그의 발목을 잡았다.1999년 한국시리즈 당시 부상으로 백재호와 허준에게 유격수 엔트리를 양보해야만 했으며, 2000년 시즌 초반에 급기야 선수협 사태로 대척점을 진 최익성을 신국환과 트레이드하고 나서야 문제가 해결되었다.
이후 이광환 감독 밑에서는 허준과 아모리 가르시아 등의 백업을 맡았고, 유승안 감독 밑에서 타격 포텐이 터지며 드디어 주전 자리를 꿰차나 싶었는데, 2003년 한상훈의 등장으로 다시 백업으로 밀렸고 2004년 시즌 후 부모님의 가업을 잇는다는 이유로 은퇴를 선언했다. 이후 오랜 기간 공수에서 삽질한 이글스의 키스톤 라인을 생각해보면, 이른 은퇴가 매우 아쉬울 뿐...
3. 연도별 주요 성적
역대 기록 | ||||||||||||||||
연도 | 소속팀 | 경기수 | 타수 | 타율 | 안타 | 2루타 | 3루타 | 홈런 | 타점 | 득점 | 도루 | 4사구 | 삼진 | 출루율 | 장타율 | OPS |
1999 | 한화 | 71 | 85 | .176 | 15 | 3 | 0 | 0 | 4 | 7 | 0 | 4 | 24 | .220 | .212 | .432 |
2000 | 70 | 151 | .305 | 46 | 12 | 2 | 1 | 16 | 17 | 1 | 4 | 24 | .325 | .430 | .755 | |
2001 | 101 | 200 | .195 | 39 | 9 | 1 | 1 | 20 | 18 | 3 | 27 | 35 | .302 | .265 | .567 | |
2002 | 43 | 75 | .280 | 21 | 5 | 0 | 2 | 13 | 9 | 1 | 10 | 18 | .368 | .427 | .795 | |
2003 | 63 | 170 | .259 | 44 | 6 | 1 | 3 | 17 | 17 | 1 | 26 | 19 | .360 | .359 | .719 | |
2004 | 29 | 45 | .178 | 8 | 3 | 0 | 0 | 4 | 2 | 0 | 4 | 11 | .245 | .244 | .489 | |
KBO 통산 (6시즌) | 377 | 726 | .238 | 173 | 38 | 4 | 7 | 74 | 70 | 6 | 75 | 131 | .315 | .331 | .64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