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30 18:02:10

허준(1970)

허준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folding [ 펼치기 · 접기 ]

파일:Eagles_Champion_v1.png
KBO 리그 한국시리즈
우승반지
1999

{{{#ffffff [[빙그레 이글스|빙그레]]/[[한화 이글스|한화 이글스]] 등번호 5번}}}
조양근
(1992)
허준
(1993~2003.7.23.)
김승권
(2004)
KIA 타이거즈 등번호 68번
정영철
(1997~1998)
허준
(2003.7.24.~2003)
최영완
(2004)
KIA 타이거즈 등번호 15번
박충식
(2002~2003)
허준
(2004)
이용규
(2005~2013)
}}} ||
파일:한화 허준.jpg
{{{+2 허준}}}
許浚 | Heo Jun
출생 1970년 5월 29일 ([age(1970-05-29)]세)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공주고 - 경성대
포지션 유격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93년 2차 1라운드 (전체 9번, 빙그레)
소속팀 빙그레-한화 이글스 (1993~2003)
KIA 타이거즈 (2003~2004)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여담5. 연도별 성적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의 전 야구인이다.

2. 선수 경력

청소년 대표와 국가대표를 거쳐 1993년 빙그레 이글스에 2차 1순위로 입단해 주로 유격수로 뛰었다. 아마추어 시절엔 이종범과 비교될 정도로 대단했던 선수였으나[1] 프로에선 튼실한 수비 솜씨에 비해 타격이 심히 좋지 못했다.

전년도 주전 유격수였던 지화동을 2루수로 밀어내고 주전 자리를 꿰어찼으나 94~95년에는 방위병 복무로 출전 기회가 줄었지만 강병철 감독이 이끌던 한화 이글스에서도 1996년과 1997년에는 주전 선수로 뛰었다.

수비는 분명 좋은 편이었으나 타격에선 낮은 타율에 파워조차 없었기에 타석에서 전혀 위협적이지 않았다. 물방망이의 대명사였다. 다른 선수면 몰라도 하필 마해영을 거르고 뽑은 선수였다. 한번은 파울 홈런을 쳤을 때 해설 위원들이 1년에 홈런 1개 칠까 말까 한 선수[2]라는 드립도 작렬시킨 적이 있다. 이후 한화 이글스에 국가대표 출신 백재호황우구가 연이어 입단하여 선수 생활의 큰 위협을 받았으나 백재호의 2루 겸업과 황우구의 프로 적응 실패로 꾸준히 1군에서 생존했다. 이후에도 유격수로 뽑은 외인 조엘 치멜리스는 수비불안으로 2루수로 전향하고, 신인 이범호는 공격력은 좋았으나 역시 수비불안으로 3루수로 전향하며 허준은 꾸준히 살아남을 수 있었다.

허준의 물방망이 질을 더 이상 참아주지 못했던 한화는 2002 시즌 유격수 용병으로 '아모리 가르시아'라는 용병을 야심차게 뽑아오며 은근 틸슨 브리또 급의 활약을 기대했다. 그러나 부상으로 시즌초반에 퇴출되었고, 허준은 그 시즌에도 103경기를 뛰며 생존에 성공했다. 주로 대수비 등으로 부지런히 뛰며 타율도 2할 5푼 5리나 기록하며 (커리어하이) 다음 시즌을 기대케 했다. 그러나 유망주 육성을 중요시하는 유승안 감독이 새로 부임하며 2003 시즌 구상에서 제외되었다.

결국 시즌 도중에 소속 팀 한화 이글스에서 웨이버 공시 되었는데, KIA 타이거즈가 허준의 영입을 요청함에 따라 한화는 웨이버 공시를 철회하고 현금 300만 원에 트레이드하게 됨으로써 역대 KBO 현금 트레이드 중 최저 금액 트레이드로 남게 되었다. 이 과정에서 한화 측이 KBO 규약상 지급하게 되어있는 이사비 50만 원을 지급하지 않으려고 해 파문이 되었다.[3]

2004시즌 종료 후 은퇴. KIA 팬들의 기억에는 그래도 300만 원어치 활약은 해 줬다 정도로 남아 있는 선수.

이글스 시절 허준은 잦은 부상에 시달리던 다른 내야수들에 비해 꾸준히 제 자리를 지켜준 고마운 선수였고, 내야의 수호신이었다. 하지만 물방망이 때문에 항상 새로운 경쟁자들의 주전경쟁위협을 받아왔고 확고한 주전 유격수로 자리매김하질 못했다. 허준이 떠난 이후에도 한화의 유격수 갈증은 계속되었고 이범호, 틸슨 브리또를 거쳐 2006년 김민재를 FA로 영입하고 나서야 해소되었다.

3. 은퇴 후

은퇴 후에는 야구계를 떠나 부산에서 'THE PARTY'라는 이름의 웨딩뷔페 사업을 시작했고, 이게 잘 되면서 성공한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다. 현재는 더 리본(주) 대표이사로 취임하여 신생회사를 상조업계 2년 연속 매출 1위로 만들어 더욱 성공한 사업가의 길을 걷고 있다.

4. 여담

  • MBC 드라마 허준이 인기를 누리던 2000년도에 커리어 최다인 6개의 홈런을 날렸는데, 그럴 때마다 신문에서는 만병통치 허준 등의 드립을 쳤고 한화 구단에서도 허준 드라마 OST를 등장곡으로 틀어주기도 했다.
  • 과거 마구마구에서는 동일 선수의 타 년도 비싼 카드를 먹기 위해서 허준 선수카드를 넣는 일명 명의 조합이라는 우스갯소리에 가까운 조합법이 있었다.
  • 통산 2,000타석 이상 선 선수들 중 타율, 출루율은 뒤에서 1위, 장타율, OPS, wRC+는 뒤에서 2위이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1993 빙그레 이글스 121383.2278713453343527
1994 한화 이글스 63196.204405101316312
199579170.22438801151819
1996115277.2176012012429019
1997114259.224586011424313
19987846.15271004302
19995427.03710000302
2000130277.2316411063838118
200189224.237539132819922
2002103196.25550502111402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2003 KIA 타이거즈 4486.1861610086113
20041110.00000000001
KBO 통산(12
시즌)
10012151.2204747161918821323159

6. 관련 문서



[1] 아마도 아마시절 쓰던 알루미늄 배트의 영향으로 보인다. 대표적으로 프로대비 이후 멘도사 라인으로 불리던 김종국도 알루미늄 배트를 사용하던 아마에선 제2의 이종범이란 수식어가 붙었고, 수비말곤 바보라 불리던 염경엽도 아마시절에는 타격이 괜찮았다고 한다.[2] 사실 통산 홈런은 19개이고 나름 5개를 넘긴 시즌도 있다. 다만 1994년부터 1999년까지 6년 동안 고작 3홈런에 그쳤던 시절 때문에 이 말이 나온 듯.[3] 여담으로 당시 함께 웨이버 공시를 당한 선수가 신재웅과 허진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