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BSC가 주관하는 U-18 야구 월드컵에 대한 내용은 WBSC U-18 야구 월드컵 문서 참고하십시오.
IBAF Baseball World Cup™ | ||
정식 명칭 | IBAF 야구 월드컵 | |
영문 명칭 | IBAF Baseball World Cup | |
창설 | 1938년 | |
폐지 | 2011년 | |
참가 자격 | IBAF 산하 야구 협회 소속국 중 대륙별 대회 순위 입상국 | |
참가국 수 | 16개국 | |
최근 우승국 | 네덜란드 (2011) | |
최다 우승국 | 쿠바 (25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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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Baseball Worldcup.2011년을 마지막으로 사라진 야구 국제대회로 과거 대륙간컵(Intercontinental Cup)과 국제 야구대회의 양대축이었다. 단 세계 최초의 야구 국제대회였으나 아마추어 선수들이 참가하는 대회였으며 그러한 이유로 월드컵이라는 이름과 달리 흥행성이나 상업성이 전무하다시피 했다.
2. 역사
2011년 야구월드컵 결승전 |
국제야구연맹(IBAF)이 주관해 1938년에 처음 열렸다. 1938년 8월에 영국에서 열린 영국과 미국의 대항전인 "존 무어스 트로피"(John Moores Trophy)가 그 첫 시작으로 홈팀인 영국이 4승 1패로 승리했다. 이듬해인 1939년 쿠바에서 열린 2회 대회부터 대회 이름이 아마추어 월드 시리즈(Amateur World Series)로 바뀌였다. 쿠바, 니카라과, 미국이 참가했으며 1940년 3회 대회에서는 하와이,베네수엘라, 멕시코, 푸에르토리코까지 모두 7팀(하와이는 따로 야구대표팀이 참가)이 참가하며 대회 규모가 커졌다. 그러나 1969년 까지는 북중미 나라들만 참가하는 반쪽짜리 국제대회였다. 1970년에서야 네덜란드[1]와 이탈리아, 1972년 일본, 대만 그리고 서독이 참가하고 1974년에 남아공이 참가하게 된다.
북중미 중심의 대회 운영에 불만을 품은 이탈리아 중심으로 FEMBA(Federación Mundial de Béisbol Amateur)가 창설되어 1973년부터 대륙간컵이 생겨났다. 1976년 양측이 통합하면서 월드컵은 짝수해 대륙간컵은 홀수해로 각각 2년 간격으로 개최되었다.
프로선수들의 참가 유도를 이유로 대회 이름을 1988년 이탈리아 대회부터 야구월드컵 으로 바뀌었다. 그럼에도 미국, 일본, 한국이 실업리그나 대학선발팀을 보내는 통에 야구월드컵이라는 이름에 맞지않은 대회라는 지적이 나왔고, 1990년대 야구가 올림픽에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면서 올림픽이 개최된 해에는 대회를 열지 못하는 등 위상이 점차 추락했다.
2000년대 와서 대륙간컵과 개최햇수를 바꿔 홀수년 개최로 올림픽도 피해보지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가 나오면서 더더욱 대회에 타격이 갔다. 무엇보다 우승상금이나 실질적인 경제적 보상도 없고 아마추어 대회이다보니 스폰서 유치도 어려워 대회 규모나 자금면에서도 어려웠다.
거기다 진정한 세계대회는 하나여야 한다는 MLB의 방침과 야구의 올림픽 퇴출로 인해 IOC로부터 지원을 받지 못한 IBAF의 자금난으로 MLB의 지원이 절실히 필요한 부분도 있어 결국 2011년 파나마에서 열린 39회 대회를 마지막으로 대륙간컵과 같이 폐지되었지만, 야구, 소프트볼 두 국제연맹이 통합된 WBSC가 창립되고 프리미어 12이란 대회로 새롭게 재편되었다.
주관 대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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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대한민국 기준으로 초등학교 6학년 이하. [b]: 대한민국 기준으로 중학교 3학년 이하. [c]: 대한민국 기준으로 고등학교 3학년 이하. [d]: 대한민국 기준으로 20세(세는 나이)에 대학에 진학한 대학교 4학년생 이하 혹은 그 나이에 맞는 고졸 선수. ※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WBSC가 직접 주관하지 않지만 대회 운영에는 참여. |
현재도 월드컵 명칭은 살아있는데 연령대별 야구대회에 월드컵이라는 이름이 붙으며 여자 야구 대회 또한 월드컵이라는 이름을 사용하고 있다.
3. 역대 입상팀
연도 / 회 | 개최국' | 참가국수' | 우승 | 준우승 | 3위 | MVP |
1938 / 1회 | 영국 | 2개국 | 영국 | 미국 | ||
1939 / 2회 | 쿠바 | 3개국 | 쿠바 | 니카라과 | 미국 | 요한 토레스 |
1940 / 3회 | 쿠바 | 7개국 | 쿠바 | 니카라과 | 미국 | 코니에 마레로 |
1941 / 4회 | 쿠바 | 9개국 | 베네수엘라 | 쿠바 | 멕시코 | 호세 카사노바 |
1942 / 5회 | 쿠바 | 5개국 | 쿠바 | 도미니카 공화국 | 베네수엘라 | 안드레스 플레이타스 |
1943 / 6회 | 쿠바 | 4개국 | 쿠바 | 멕시코 | 도미니카 공화국 | 나틸라 히메네스 |
1944 / 7회 | 베네수엘라 | 8개국 | 베네수엘라 | 멕시코 | 쿠바 | |
1945 / 8회 | 베네수엘라 | 6개국 | 베네수엘라 | 콜롬비아 | 파나마 | 헥토르 베니테즈 |
1947 / 9회 | 콜롬비아 | 9개국 | 콜롬비아 | 푸에르토리코 | 니카라과 | |
1948 / 10회 | 니카라과 | 8개국 | 도미니카 공화국 | 푸에르토리코 | 콜롬비아 | |
1950 / 11회 | 니카라과 | 12개국 | 쿠바 | 도미니카 공화국 | 베네수엘라 | |
1951 / 12회 | 멕시코 | 11개국 | 미국 | 베네수엘라 | 쿠바 | |
1952 / 13회 | 쿠바 | 13개국 | 쿠바 | 도미니카 공화국 | 푸에르토리코 | |
1953 / 14회 | 베네수엘라 | 11개국 | 쿠바 | 베네수엘라 | 니카라과 | |
1961 / 15회 | 코스타리카 | 10개국 | 쿠바 | 멕시코 | 베네수엘라 | |
1965 / 16회 | 콜롬비아 | 9개국 | 콜롬비아 | 멕시코 | 푸에르토리코 | |
1969 / 17회 | 도미니카 공화국 | 11개국 | 쿠바 | 미국 | 도미니카 공화국 | |
1970 / 18회 | 콜롬비아 | 12개국 | 쿠바 | 미국 | 푸에르토리코 | |
1971 / 19회 | 쿠바 | 10개국 | 쿠바 | 콜롬비아 | 니카라과 | |
1972 / 20회 | 니카라과 | 16개국 | 쿠바 | 미국 | 니카라과 | |
1973 / 21회 | 쿠바 | 8개국 | 쿠바 | 푸에르토리코 | 베네수엘라 | |
1973 / 22회 | 니카라과 | 11개국 | 미국 | 니카라과 | 푸에르토리코 | |
1974 / 23회 | 미국 | 9개국 | 미국 | 니카라과 | 콜롬비아 | |
1976 / 24회 | 쿠바 | 11개국 | 쿠바 | 푸에르토리코 | 일본 | |
1978 / 25회 | 이탈리아 | 11개국 | 쿠바 | 미국 | 대한민국 | |
1980 / 26회 | 일본 | 12개국 | 쿠바 | 대한민국 | 일본 | |
1982 / 27회 | 대한민국 | 10개국 | 대한민국 | 일본 | 미국 | 선동열 |
1984 / 28회 | 쿠바 | 13개국 | 쿠바 | 중화 타이베이 | 미국 | 빅토르 메사 |
1986 / 29회 | 네덜란드 | 12개국 | 쿠바 | 대한민국 | 중화 타이베이 | |
1988 / 30회 | 캐나다 | 12개국 | 쿠바 | 미국 | 중화 타이베이 | 티노 마르티네스 |
1990 / 31회 | 캐나다 | 12개국 | 쿠바 | 니카라과 | 대한민국 | 오레스테스 킨델란 |
1994 / 32회 | 니카라과 | 16개국 | 쿠바 | 대한민국 | 일본 | 루루드 구리엘 델가도[2] |
1998 / 33회 | 이탈리아 | 16개국 | 쿠바 | 대한민국 | 니카라과 | 안토니오 파체코 |
2001 / 34회 | 대만 | 16개국 | 쿠바 | 미국 | 중화 타이베이 | 루이스 율리시아 |
2003 / 35회 | 쿠바 | 16개국 | 쿠바 | 파나마 | 일본 | 요시우라 다카시[3] |
2005 / 36회 | 네덜란드 | 18개국 | 쿠바 | 대한민국 | 파나마 | 에두아르도 파렛 |
2007 / 37회 | 대만 | 16개국 | 미국 | 쿠바 | 일본 | 제이슨 닉스 |
2009 / 38회 | 분산개최[4] | 22개국 | 미국 | 캐나다 | 푸에르토리코 | 저스틴 스모크 |
2011 / 39회 | 파나마 | 16개국 | 네덜란드 | 쿠바 | 캐나다 | 커트 스미스 |
4. 대한민국 관련 이야기
대한민국은 1976년 콜롬비아에서 개최된 24회 대회부터 첫 출전하였다. 꾸준히 참가해 1980년 대회에서 준우승을, 1982년에는 일본을 꺾고 우승을 했다. 참고로 아마야구 최강이던 쿠바가 빠진 대회였는데, 쿠바가 참가했던 대회에서는 번번이 쿠바에게 발목을 잡혔다. 월드컵 뿐만 아니라 대륙간컵에서도 결승에서 두 번 만나 모두 준우승에 그치고 말았다.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전까지는 중요한 길목에서 쿠바만 만나면 졌기에 국제무대에서 쿠바 공포증 극복에 애를 먹었다.- 1980년 도쿄 대회에서 한국이 처음으로 결승에 올라가 쿠바에게 져서 준우승.
- 1986년, 1994년, 1998년, 2005년 대회에서 쿠바에게 밀려 준우승했다.
연도별 대표팀 명단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역대 로스터 문서를 참조하면 된다.
참고로 프로 선수들로 꾸려진 대표팀이 있었다. 바로 2001년 야구 월드컵때로, 당시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야구 대표팀에 출전시킬 미필 선수의 성장과 더불어 해당 대회에서의 호성적을 거둘 시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때도 간다고 선언했다. 당시 미필이었던 김태균(한화 이글스), 이용훈(삼성 라이온즈), 김상훈(KIA 타이거즈), 이혜천(두산 베어스), 이현곤(연세대), 김민우(한양대)[5] 등 쟁쟁한 신인급 선수들과 이병규(LG 트윈스), 신윤호(LG 트윈스), 정수근(두산 베어스), 심정수(현대 유니콘스), 마해영(삼성 라이온즈) 등의 당대 국내를 휘어잡던 선수들이 대거 참여했다. 또한 이 대회를 중계하기 위해 KBS가 이례적으로 대표팀 전 경기를 중계하기로 결정했다.
처음에는 도미니카와 니카라과를 연이어 잡는 등 5승 1패로 잘 나가다가, 대만에게 패하며 조 4위를 기록, 이어 8강에서 마주한 일본과의 한일전에서도 완패를 당하면서 광탈해 버렸다. 결국 2002년에 미필 선수는 김상훈, 조용준, 정재복, 김진우 만이 참가하게 되었다.
2003년에도 김태균(한화), 최경환(두산) 등이 참가한 대표팀이 참가하기도 했다.
2005년은 최대성(롯데)의 활약으로 깜짝 준우승을 차지했다.
2007년 대회에서는 기대 밖의 호성적(5위)을 기록했다. 프로 2군, 군/경팀, 대학팀 선수들로 팀을 꾸렸으며 강문길 당시 단국대 감독은 권영호 영남대 감독과 최훈재를 코치로 기용했다. 대만은 의외로 1군 정예멤버로 선수단을 구성했는데[6] 한국팀 에이스 황두성이 6이닝을 노히트로 막으며 토너먼트에서 대만을 물리쳤다. 7회가 시작된 뒤 심판은 스트라이크를 볼로 판정을 하고 대만에게 첫 안타를 맞자마자 강문길 감독은 황두성을 곧바로 교체시켰다.
5. 기타
- 쿠바가 넘사벽 최강이던 대회였다. 25번 우승, 4번 준우승, 4강 2번으로 불참한 8번을 제외하면 참가한 대회에서 4강에 못 들어간 적이 단 1번도 없는 엄청난 성적을 자랑했다.
- 쿠바는 13회(1952년) 대회부터 36회(2005년) 대회까지 단 한 번도 우승을 놓친 적이 없었다. 이 기간 중 쿠바가 불참한 네 번의 대회에서만 다른 국가가 우승을 차지했다. 쿠바의 적성국인 미국과 한국에서 개최된 대회에는 불참했고, 1965년 대회는 쿠바 혁명을 인정하지 않았던 콜롬비아 정부에서 비자 발급을 거부했다. 나머지 한 번은 1973년 22회 니카라과 대회다.
- 대륙간컵을 창설했던 FEMBA는 1973년에 월드컵도 개최하여 이 해에는 두 개의 월드컵 대회가 존재한다. 21회, 22회로 분류되어 있지만 실제로는 같은 기간 동안 진행되었다. IBAF에서 개최한 쿠바 대회가 21회, FEMBA에서 개최한 니카라과 대회가 22회로 기록되어 있다. 팀을 나누어 두 대회를 모두 참여한 국가는 푸에르토리코와 멕시코이다.
- 2007년 대회를 앞두고 미국은 쿠바의 10연속 우승을 저지할 목적으로 트리플A 선수 위주로 팀을 꾸렸고 우승에 성공했다. 앞의 대회까지는 주로 더블A 선수들로 팀을 구성했다.
- 60년대부터 80년대 초까진 나름 잘 나가던 대회였다. 중남미의 공산권, 반미국가들과 미국의 대결 구도가 잡히고, 거기에 한국과 일본, 그 외 자잘한 유럽국가들이 참여하면서 반미국가와 자유진영 국가간의 정치적 입김이 어느정도 있었다.
- 아시아 국가 중 야구 월드컵에서 우승한 국가는 대한민국(1982년)뿐이다. 다른 아시아 나라 성적은 일본은 준우승만 1번, 3위만 5번했고 대만이 준우승 1번, 3위 3번했다.
6. 프로가 참가하는 진짜 야구 월드컵은?
이름은 야구 월드컵인데 왜 아마추어가 참가하지?라고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많다. 당연히 IBAF도 바보는 아닌지라, 아마추어가 참가하는 야구 월드컵 말고 FIFA 월드컵처럼 세계 최고의 선수들이 참가하는 메이저 대회를 만들려는 시도를 여러번 했다. 문제는 MLB쪽의 협조가 절실히 필요했다는 점이었고 비협조적으로 나오며 수차례 엎어졌다.최초 기획은 2001년이었다. 1999년 12월에 IBAF 총회에서 2001년에 야구 월드컵을 개최하겠다고 선언했던 것으로 개최국은 대만으로 결정하고 2001년 11월 9일부터 17일까지 열리는 것으로 계획했다. 참가국은 아시아 4개팀, 유럽 4개팀, 중남미 6개팀, 아프리카 1개팀, 오세아니아 1개팀으로 총 16개팀이 참가하는 것으로 결정되었다. 이 소식에 메이저리그 사무국 또한 "시드니 올림픽에서는 메이저리그 선수들이 나가지 못하지만 야구 월드컵이 탄생하면 적극 권유하겠다."고 나서며 잘 진행 되는 듯 보였다. 하지만 수익 문제 등 세부 사항으로 들어가자 인해 메이저리그에서 난색을 표했고 초기 대회는 결국 흐지부지 되었다.
야구 월드컵 창설 문제가 다시 대두된 것은 2002년이었다. 2003년 2월에 제1회 야구 월드컵이 개최될 예정이었지만 메이저 리그쪽에서 미적지근한 반응을 보이며 2005년으로 연기 되었다고 밝힌 것. ##
그리고 2003년 메이저 리그 사무국에서 야구 월드컵 창설을 발표한다. 2003년 아테네 올림픽 예선을 겸한 팬아메리칸 게임에서 미국 대표팀이 멕시코 대표팀 1:0으로 패배하며 광탈해버리자, 위기의식을 느낀 것. 메이저리그 사무국과, 메이저리그 선수 노조는 "야구 월드컵 창설 문제는 반드시 해결해야될 문제."라며 ## 2005년 3월에 미국에서 8개국 혹은 16개국이 모여 최강자를 가리는 대회를 만들겠다는 플랜을 발표한다.
그리고 2006년 최초의 야구 월드컵이 개최되었는데 이 대회가 바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다.[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