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2-03 04:15:22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파일:나무위키+유도.png   2020 도쿄 올림픽에 출전하는 대표팀에 대한 내용은 김경문호/2020년 문서를 참조하십시오.
파일:korea_national_baseball_team_logo_99-removebg-preview.png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Korea Republic National Baseball Team
IOC 코드 KOR
운영주체 파일:5p4rcEr.png KBO
파일:KBSA_logo_(1).png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1]
연맹 파일:WBSC_BFA_logo.png 아시아야구연맹 (BFA)
홈구장 고척 스카이돔(서울)
감독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김경문(Kyong-Moon Kim)
주장
C
김현수(Hyun-soo Kim)
WBC [출전] 4회[2]
[최고] 파일:트위터_은메달_준우승_이모지.png (2009)
프리미어 12 [출전] 2회[3]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2015)
올림픽 [출전] 4회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2008)
아시안게임 [출전] 7회[4]
[최고]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1998, 2002, 2010, 2014, 2018)
라이벌 일본 - 한일전
팀이모지 파일:WBSCPremier12TeamEmoji_KOREA.png
WBSC 랭킹
3위 - / 4987점
(2019년 10월 30일 기준 / #)
1. 개요2. 상세
2.1. 순혈주의2.2. 병역특례를 노린 대표팀 차출논란
3. 역대 대표팀4. 역대 전적5. 과거의 대회
5.1. 세계야구선수권대회(야구 월드컵)5.2. 대륙간컵
6. 역대 로스터7. 역대 유니폼8. 관련 주요 인물
8.1. 1990년대 이전 활동 인물8.2. 1990년대 이후 ~ 2000년대 활동 인물8.3. 2000년대 이후 활동하고 있는 인물
8.3.1. 최다 홈런 TOP 38.3.2. 최다 안타 TOP 38.3.3. 최다 타점 TOP 38.3.4. 최다 도루 TOP 38.3.5. 최다승 TOP 38.3.6. 최다 세이브 TOP 3
9. 관련 문서10. 둘러보기

1. 개요

TEAM KOREA
파일:external/ojsfile.ohmynews.com/IE000954106_STD.jpg 파일:external/m.busan.com/20151216000241_0.jpg
2008 베이징 올림픽 영광의 순간 2015 WBSC 프리미어 12 영광의 순간
아시아의 푸른 대파도 (アジアの青い大波)
일본의 WBC 2009년 총집편 영상[5]에서 일컬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대한민국야구 국가대표팀. 붉은 색이 상징색인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 달리 야구 대표팀은 코발트 블루가 팀컬러다.[6] 2006 WBC 이전에는 남색과 빨간색이 팀 색깔이었다.

파일:korea_national_baseball_team_LOGO_DESCENTE_1.png
데상트가 킷 스폰서일때는 대표팀 BI가 다른데, 나이키마제스틱의 경우에는 가슴 로고를 KBO가 제작한 이미지를 사용하지만 데상트는 타 대표팀도 자신들이 만든 로고를 사용한다는 이유로 자신들이 제작한 로고를 사용한다고 한다. ‘프리미어12’ 대표팀 굿즈, 왜 KBO마켓에선 팔지 않았을까

2. 상세

현재까지 올림픽 야구에서 전승우승을 기록한 유일한 국가이자, 2000년대 중후반에 세계 야구의 다크호스로 떠올랐던 팀이며 아시안게임 야구의 최강자.[7]

역대 로스터 문서를 보면 알 수 있지만 2000년대 전까지는 올림픽이나 아시안 게임 대표팀과 세계선수권 대표팀 멤버가 거의 비슷한데, 애초에 두 대회를 합쳐 대표팀을 뽑았기 때문에 그랬던 것이다. 원래는 아마추어 선수들만 출전이 가능했지만 1998 방콕 아시안 게임부터 프로선수들도 출전할 수 있게 되면서 이후로 점점 대표팀 구성원들이 스타급 플레이어로 채워졌다. 그와 반대로 인지도가 떨어지는 세계선수권대회에는 상무경찰청 소속 선수들을 비롯한 2군 선수들이 주축이 되었다. 한때는 프로팀들이 선수 차출을 꺼려 2005년에는 절반 가량을 상무 선수들로 채운 적도 있었다. 그나마도 당시 대표팀 감독이 상무 감독인 김정택 감독이었기에 가능했던 일.

대만과 일본이 최근 아시아 야구의 영향을 늘리기 위해 국제대회 야구가 없는 기간에도 알게 모르게 국가대표 후보들을 차출해서 교류전을 가지는 것에 비해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은 우물 안 개구리라고 할 정도로 국가대표에 관심이 없다. 그도 그럴 것이 축구와 달리 수익이나 국제대회 여부같은 면에서 리그와 달리 국가대표팀은 대충 대회가 다가오면 후다다닥 준비하던 수준이다. 축구처럼 몇년전에 미리 감독 선임하고 선수 준비하던 거랑 달리 리그 여부가 크게 걸렸기 때문이다. 또한 팬들이나 야구인들이나 국제대회에 선수들을 차출 해가는 것을 반기지 않아서 국제대회를 썩 좋아하지 않으며[8]아예 참가하지 마라라는 의견들도 상당히 강한 것도 한몫 하고 있다. 리그와 반대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에 신경을 많이 쓰는 축구와 달리 야구는 야구 대표팀 감독도 자원봉사급(...)으로 국대감독을 맡는다. 대회가 다가와서야 리그 우승 감독을 대충 국대감독으로 선임하느냐 연봉계약같은 거 없다. 게다가 문제는 야구는 축구처럼 국제대회가 그리 없는데다[9] 리그 경기 수가 많은 만큼, 국제 대회를 많이 만들어도 나갈 여유가 없다든지 여러 모로 차이가 많다.

2013년 WBC에서의 충격적인 결과와,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에서도 금메달을 따기까지의 과정 등을 본 야구팬들은 프로야구의 저변 확대도 중요하나, 대만과 일본의 예를 들어 국가대표에도 신경을 써야 한다며 성토했고[10], 2015년 프리미어 12 우승을 이끈 김인식 감독도 전임 감독제를 추진하는 것이 좋겠다라는 의견을 피력했다. 다만 KBO는 난색을 표했는데 야구가 임시적이지만 올림픽 종목으로 다시들오게 되자 2018년 자카르타 팔렘방 아시안 게임과 2020년 도쿄 올림픽 등 연속으로 큰 대회들이 생기게 되었다. 결국 KBO는 전임감독제를 도입, 선동열 감독을 전임 감독으로 임명했다. 현재 야수 쪽은 국제대회에서 강력한 모습을 보이는 황재균, 김하성, 이정후, 강백호등 자원이 많으나 투수 쪽은 김광현, 양현종, 장원준을 제외하고는 믿음직한 투수가 없는 실정이다. 진짜?[11]

2.1. 순혈주의

국가대표라면 당연히 순혈주의가 강한 것이 당연하다. 하지만 야구에서 가장 큰 국제대회인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같은 경우에는 규정상 조부모의 국적까지 맞으면 해당 국적으로 뛸수가 있다. 알렉스 로드리게스는 2006년 대회엔 미국 대표팀으로, 2009년 대회에는 도미니카 공화국 대표팀으로 참가한 것이 대표적. 그러나 KBO는 이런 규정을 활용하지 못하고 있다는 게 문제다. 전력 강화를 위해선라면 외국에서 뛰는 한국계 선수, 마이너 리그에서 뛰는 선수들을 포섭할 생각까지 해야함에도 KBO는 그런 움직임이 전혀 없다.[12][13] 야수 사정은 그나마 나으나 투수 사정은 암울하다. 10년째 김광현, 양현종을 능가하는 젋은 투수들이 나타나지 않고 있는 실정이고 현재 제일 잘하고 있는 우완투수가 39살의 윤성환 하나일 정도로 답이 없다.

2020년대로 접어들어가는 시기가 될 때까지도 여전히 김광현-양현종 선발 원투펀치 체계가 유지 중이다. 김광현-양현종이 워낙 리그 최정상급의 퍼포먼스를 보여주기 때문이기는 하지만 그에 근접하는 선수가 없다는 것이 가장 문제. 리그에서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는 최원태, 이영하 등 90년대 후반생 우완 투수들의 성장이 절실하다. 그래도 야수 쪽에서는 이정후, 강백호 등 역대 선수들로 따져봐도 손꼽히는 재능의 선수들이 등장하고 있다는 것은 다행.

2.2. 병역특례를 노린 대표팀 차출논란

아시안 게임 대표팀 혹은 올림픽 대표팀의 경우 상대적으로 약한 선수들만 나오는 대회이니 만큼 병역특례를 노리고 선수를 뽑는 다는 비난이 2010년 후반부터 일고 있다. 사실 1998 방콕 아시안 게임당시 주성노호의 경우에는 대놓고 "한국야구의 미래를 위해 병역특례를 받아야할 미필들만 뽑는다!"고 선언했고, 2000 시드니 올림픽이나, 2003년 아시아야구선수권때에도 미필 위주로 뽑아야 한다는 의견이 주류였다. 이는 프로야구 병역비리 사건이 터졌던 2004년의 스포츠 기사에서도 잘 나타난다.
그리고 아마와 프로가 하나 되어 힘을 합치게 된 첫 번째 국제 행사가 바로 98년 방콕 아시안게임이다. 드림팀으로 불렸던 한국대표팀은 박찬호, 서재응, 임창용, 홍성흔 등 아마와 프로를 총망라한 현역입영대상선수들이 출전하여 모든 선수들이 병역 면제의 혜택을 얻게 되었다.

두 번째 작품은 시드니올림픽. 미국의 글로벌파워에 결승직행이 좌절되었지만, 명실상부한 국가대표팀으로 출전하여 당시까지 입영대상자였던 선수들은 병역면제라는 영광을 누렸다.

물론 중간과정에서 잡음이 일어나기도 하였다. 대표팀 구성이 바로 그것인데, 병역을 해결하지 못한 선수들만으로 구성하자는 의견부터 국제대회 성적을 위해 진정한 국가대표를 구성해야 한다는 생각들이 대립되기 시작하였고, 프로구단들은 팀의 성적을 위해 소속팀 선수들의 대표 차출을 고사하기 시작하였다.
2004년, 프로야구를 위한 변명
그런 의견이 급격하게 바뀌게 된 것은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때부터였다. NC 다이노스kt wiz 창단 이후 불거진 프로야구 질적 저하 논란과 더불어 2013년 타이중 참사로 인해 국가대표팀을 바라보는 시각이 부정적으로 바뀌기 시작했고 이전과 마찬가지로 아시안 게임때 각 구단별 TO를 고려한 미필 배분을 하는 감독과 KBO 기술위에 대한 비판의 목소리가 커졌다. 특히 나지완은 부상으로 제대로 경기를 뛰지 못했음에도 대표팀에 승선, 논란에 불을 지폈다.

그 결과 오지환, 박해민등을 차출했던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에선 선동열호는 국민들로 부터 미움 받는 대표팀이라는 불명예 스런 타이틀을 달았다. 초대 전임 감독이었던 선동열 감독은 불명예 퇴진까지 했다. 2022 항저우 아시안 게임에 출전하는 대표팀 부터는 조금 달라진 기조가 나오지 않는다면 또다시 비판의 목소리가 커질 확률이 높다.

3. 역대 대표팀[14]

파일:대한민국 국기.png ·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dn5wgCMUU1sqk8veo8_r1_500.png 역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History of the Korean Baseball Tea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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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업야구 대표팀
1980
서울컵
1980
야구 월드컵
1982
야구 월드컵
1985
대륙간컵
김응룡호
1980
파일:트위터_동메달_3위_이모지.png |
1980
파일:트위터_은메달_준우승_이모지.png
어우홍호
1982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성기영호
1985
파일:트위터_은메달_준우승_이모지.png
1986
세계야구선수권
1987
대륙간컵
1988
서울 올림픽
1994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996
애틀랜타 올림픽
성기영호
1986
파일:트위터_은메달_준우승_이모지.png
김영빈호
1987
김병우호
1988
김충남호
[[1994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야구|
1994
]]파일:트위터_은메달_준우승_이모지.png | [[1996 애틀랜타 올림픽/야구|
1996
]]
프로선수 참가 시작
1998
방콕 아시안게임
1999
아시아야구선수권
2000
시드니 올림픽
2002
부산 아시안게임
2003
아시아야구선수권
주성노호
[[주성노호/1998년|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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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응룡호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
1999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 [[2000 시드니 올림픽/야구|
2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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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인식호
2002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김재박호
[[삿포로 참사(야구)|
2003
]] 파일:트위터_은메달_준우승_이모지.png
2006
WBC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2007
아시아야구선수권
2008
올림픽 최종예선
2008
베이징 올림픽
김인식호
[[김인식호/2006년|
2006
]]파일:트위터_동메달_3위_이모지.png
김재박호
[[김재박호/2006년|
2006
]]파일:트위터_동메달_3위_이모지.png
김경문호
[[김경문호/2007년|
2007
]]파일:트위터_은메달_준우승_이모지.png | [[김경문호/2008년|
2008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 [[김경문호/2008년|
2008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2009
WBC
2010
광저우 아시안게임
2013
WBC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2015
프리미어 12
김인식호
[[김인식호/2009년|
2009
]]파일:트위터_은메달_준우승_이모지.png
조범현호
[[조범현호|
2010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류중일호
[[류중일호/2013년|
2013
]] | [[류중일호/2014년|
2014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김인식호
[[김인식호/2015년|
2015
]]파일:트위터_금메달_우승_이모지.png
2017
WBC
김인식호
[[김인식호/2017년|
2017
]]
전임감독제
2017
APBC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
2019
프리미어 12
2020
도쿄 올림픽
2021
WBC
선동열호
[[선동열호/2017년|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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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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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경문호
[[김경문호/2019년|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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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
]]
미정
[[-|
2021
]]
† 프로선수 참가 이후인 1998년 이후에도 야구 월드컵에는 대회가 사라지는 2011년까지 대학선수 위주+ 선수들 위주로 대표팀이 구성되어 참가했다.
}}}}}}||
역대 감독 대회 최종성적 전적 비고
경기 승률
초대 주성노 1998 방콕 아시안 게임 금메달 11 11 0 1.000 [15]
1999년 아시아선수권대회
겸 시드니 올림픽 지역 예선
우승
2대 김응룡 2000 시드니 올림픽 동메달 9 5 4 .556
3대 김인식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금메달 6 6 0 1.000
4대 김재박 2003 아시아선수권대회
겸 아테네 올림픽 지역 예선
예선 3위 3 1 2 .333
5대 김인식 2006 WBC 3위 7 6 1 .857
6대 김재박 2006 도하 아시안 게임 동메달 5 3 2 .600
7대 김경문 2007 아시아선수권대회
겸 베이징 올림픽 지역 예선
준우승탈락 3 2 1 .667
2008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
2위 7 6 1 .857
2008 네덜란드 평가전 - 1 1 0 1.000 [A][17]
2008 쿠바 평가전 - 2 1 1 .500 [A][19]
2008 베이징 올림픽 금메달 9 9 0 1.000
8대 김인식 2009 WBC 준우승 9 6 3 .667
9대 조범현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 5 5 0 1.000
10대 류중일 2013 WBC 조별 예선 탈락 3 2 1 .667 -
2014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 5 5 0 1.000 -
11대 김인식 2015 서울 슈퍼시리즈 - 2 1 1 .500 [A]
2015 프리미어 12 우승 8 6 2 .750 [21]
2017 쿠바 평가전 - 2 2 0 1.000 [A]
2017 호주 평가전 - 1 1 0 1.000 [A]
2017 WBC 조별 예선 탈락 3 1 2 .333 -
12대 선동열 2017 APBC 준우승 3 1 2 .667 [A]
2018 자카르타·팔렘방 아시안 게임 금메달 6 5 1 .800
13대 김경문 2019 푸에르토리코 평가전 - 2 2 0 1.000 [A]
2019 프리미어 12 준우승 8 5 3 .625
2020 도쿄 올림픽
역대 대표팀 12개 대회 참가, 7회 우승, 1회 준우승[26] 103 83 20 0.805

3.1. 주요 대표팀

4. 역대 전적

4.1.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역대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전적 순위: 4위
연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4강 3위 7 6 1 26 14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준우승 2위 9 6 3 53 30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1라운드 9위 3 2 1 9 7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1라운드 11위 3 1 2 12 15
합계 준우승 1회 4/4 22 15 7 100 66

4.2. WBSC 프리미어 12

연도 결과 순위 경기 득점 실점
2015 WBSC 프리미어 12 우승 1위 8 6 2 50 19
2019 WBSC 프리미어 12 준우승 2위 8 5 3 38 27
합계 우승 1회 1/1 16 11 5 88 46

4.3. 올림픽[27]

4.4. 아시안 게임

4.5.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 1954년 1회 대회(필리핀): 3위
  • 1955년 2회 대회(필리핀): 3위
  • 1959년 3회 대회(일본): 준우승
  • 1962년 4회 대회(대만): 준우승
  • 1963년 5회 대회(한국): 우승
  • 1965년 6회 대회(필리핀): 준우승
  • 1967년 7회 대회(일본): 준우승
  • 1969년 8회 대회(대만): 4위
  • 1971년 9회 대회(한국): 우승
  • 1973년 10회 대회(필리핀): 준우승
  • 1975년 11회 대회(한국): 우승
  • 1983년 12회 대회(한국): 공동 우승
  • 1985년 13회 대회(호주): 공동 준우승
  • 1987년 14회 대회(일본): 3위
  • 1989년 15회 대회(한국): 공동 우승
  • 1991년 16회 대회(중국): 3위
  • 1993년 17회 대회(호주): 준우승
  • 1995년 18회 대회(일본): 준우승
  • 1997년 19회 대회(대만): 우승
  • 1999년 20회 대회(한국): 우승
  • 2001년 21회 대회(대만): 준우승
  • 2003년 22회 대회(일본): 3위
  • 2005년 23회 대회(일본): 4위
  • 2007년 24회 대회(대만): 준우승
  • 2009년 25회 대회(일본): 3위
  • 2012년 26회 대회(대만): 3위
  • 2015년 27회 대회(대만): 우승
  • 2019년 28회 대회(대만): 4위

5. 과거의 대회

5.1. 세계야구선수권대회[29](야구 월드컵)

  • 1938년 1회 대회(영국)
  • 1939년 2회 대회(쿠바)
  • 1940년 3회 대회(쿠바)
  • 1941년 4회 대회(쿠바)
  • 1942년 5회 대회(쿠바)
  • 1943년 6회 대회(쿠바)
  • 1944년 7회 대회(베네수엘라)
  • 1945년 8회 대회(베네수엘라)
  • 1947년 9회 대회(콜롬비아)
  • 1948년 10회 대회(니카라과)
  • 1950년 11회 대회(니카라과)
  • 1951년 12회 대회(멕시코)
  • 1952년 13회 대회(쿠바)
  • 1953년 14회 대회(베네수엘라)
  • 1961년 15회 대회(코스타리카)
  • 1965년 16회 대회(콜롬비아)
  • 1969년 17회 대회(도미니카 공화국)
  • 1970년 18회 대회(콜롬비아)
  • 1971년 19회 대회(쿠바)
  • 1972년 20회 대회(니카라과)
  • 1973년 21회 대회(쿠바)
  • 1973년 22회 대회(니카라과)
  • 1974년 23회 대회(미국)
  • 1976년 24회 대회(콜롬비아): 6위
  • 1978년 25회 대회(이탈리아): 3위
  • 1980년 26회 대회(일본): 준우승
  • 1982년 27회 대회(한국): 우승[30]
  • 1984년 28회 대회(쿠바): 5위
  • 1986년 29회 대회(네덜란드): 준우승
  • 1988년 30회 대회(이탈리아): 8위
  • 1990년 31회 대회(캐나다): 3위
  • 1994년 32회 대회(니카라과): 준우승
  • 1998년 33회 대회(이탈리아): 준우승
  • 2001년 34회 대회(대만): 6위
  • 2003년 35회 대회(쿠바): 8위
  • 2005년 36회 대회(네덜란드): 준우승
  • 2007년 37회 대회(대만): 5위
  • 2009년 38회 대회(유럽[31]): 9위
  • 2011년 39회 대회(파나마): 6위

5.2. 대륙간컵[32]

  • 1973년 1회 대회(이탈리아)
  • 1975년 2회 대회(캐나다): 6위
  • 1977년 3회 대회(니카라과): 우승[33]
  • 1979년 4회 대회(쿠바)
  • 1981년 5회 대회(캐나다): 4위
  • 1983년 6회 대회(벨기에): 5위
  • 1985년 7회 대회(캐나다): 준우승
  • 1987년 8회 대회(쿠바): 6위
  • 1989년 9회 대회(푸에르토리코): 5위
  • 1991년 10회 대회(스페인): 5위
  • 1993년 11회 대회(이탈리아): 4위
  • 1995년 12회 대회(쿠바): 4위
  • 1997년 13회 대회(스페인)
  • 1999년 14회 대회(호주): 7위
  • 2002년 15회 대회(쿠바): 준우승
  • 2006년 16회 대회(대만): 7위
  • 2010년 17회 대회(대만): 6위

6. 역대 로스터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역대 로스터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7. 역대 유니폼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유니폼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8. 관련 주요 인물

8.1. 1990년대 이전 활동 인물

  • 김재박: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당시 그 유명한 개구리 번트를 달성해내며 팀을 승리로 이끌었다.
  • 박현식: 원조 대표팀 4번타자. 국제대회에서 홈런 타자로서의 재능을 유감없이 발휘했다.
  • 주성로: 전 야구선수 출신으로 프로선수들이 출전한 최초의 대표팀 수장. 한일은행 야구단에서 선수생활을 했으며 은퇴 후 지도자 생활을 시작했다. 인하대학교 감독시절 1998 방콕 아시안 게임의 야구대표팀을 맡아 우승을 이뤄냈다. 그러나 비리 문제로 인하대 감독직에서 불명예 퇴진했다. 우리 히어로즈가 창단되면서 스카우트 팀장으로 재직했다.
  • 최동원: 1977년 니카라과 대륙간컵에서 에이스로서 팀 우승을 이끌었다. 당시 쿠바 야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인상적인 모습을 보이며 토론토 블루제이스로부터 영입 제안을 받기도 했다.
  • 한대화: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당시 극적인 홈런을 때려내며 팀 승리에 기여.
  • 선동열: 1982년 세계야구 선수권 대회 결승 한일전 완투승.
  • 김시진: 1982년 세계야구 선수권 대회에 육군 소속으로 나와 활약하였지만, 선동열이나 임호균에 의해 빛이 바랬다. 금메달을 획득했으나 너무 오래전이라 당시에는 소집해제는 커녕 무조건 군생활을 마쳐야 했기 때문이다... 정말 불운 하나는 타고 났다...

8.2. 1990년대 이후 ~ 2000년대 활동 인물

  • 김인식: 대한민국 대표팀 감독 중 가장 많은 경기를 지휘한 감독. 2015년과 2017년에는 이렇다할 감독 지원자가 나타나지 않아 반 강제로 대표팀을 맡기도 했다. 2000년대 야구 국가대표팀에 있어서 빠질 수 없는 분.
  • 김재박: 위 항목에 있는 분 맞다. 선수시절 커리어는 화려했으나 정작 국대 감독은 말아 드셨다.
  • 구대성: 합법적 병역 브로커,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 완투승으로도 유명한 선수.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도 참가했으며 특유의 멘탈로 대표팀의 뒷문을 튼튼하게 막아냈다. 그야말로 일본 킬러 그리고 2006년 대회에서는 어느 후배 선수에게 그 선수를 대놓고 몸에 맞추라고 이야기하기도 했다.
  • 김동주: 합법적 병역 브로커, 국제대회 깡패. 대학시절이었던 1997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 7경기 14안타 9홈런을 때려낸 것을 시작으로 1998 방콕 아시안게임, 2000 시드니 올림픽, 2002 부산 아시안 게임,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34], 2008 베이징 올림픽[35] 등에 참가해서 대표팀 4번 타자로서 활약했다. 대표팀 타자들 중 이대호, 이승엽과 함께 대표팀 타선 일본 킬러 이승엽 이전 진정한 공포의 4번 타자로 군림했다. 단, 이승엽과 타순 자리는 가끔 바뀔 때가 종종 있었다. 은퇴 후 그의 포지션 후임은 이대호. 특히, 1997년에 있던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서 우에하라 고지를 상대로 4개의 홈런을 친 적이 있다. 비거리는 162M인데 이는 역대 신기록으로 아직도 깨지지 않고 있다.
  • 박재홍(야구): 합법적 병역 브로커, 리틀쿠바. 데뷔시즌 30-30이라는 전무후무한 임팩트를 남긴 박재홍은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부터 2006년 도하참사의 멤버로 활약하였다. 이병규와 더불어 아마야구 깡패로 군림하던 시절 미래의 국대 선수라고 들을 선수로 역시 이병규와 함께 출전하며 팀의 우승과 군면제를 받게 된다. 99년 한일 슈퍼게임 및 아시아 선수권 대회에도 참가하고 2000년 시드니 올림픽 때는 좀 부진을 했으나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에 차출되었으며 2006년에는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국가대표 주장도 되었지만, 팀의 붕괴로 국대 커리어는 거기서 멈췄다. 김동주, 이승엽, 이병규와 함께 국가대표 단골 멤버로 엠엘비파크 타자계의 4천왕 중 하나였다. 별명인 리틀쿠바는 쿠바 선수들처럼 아마추어 야구에서 깡패 같은 실력을 자랑한다는 의미이다.
  • 박찬호: 합법적 병역 브로커, 코리안특급. 원조 브로커의 대부이자 유일하게 당시 메이저 리거 현역 선수로 활동을 했었다. 활약상은 98년 방콕 아시안 게임과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36]에서 선발, 마무리를 가리지 않고 상대팀을 죄다 폭격했었다. 입이 아프다면 두말 없이 일본, 미국, 멕시코라는 강타선 국가대표들을 체인지업 하나로 거의 박살낼 정도의 위력을 뿜어냈다. 대표팀 소집이 끝나고 대회 첫 마무리 투수 올스타에 뽑히는 영광을 보여주나 2009년 WBC 대표팀 발탁 인터뷰때 은퇴를 선언했다. 전 소속팀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서 필라델피아 필리스 이적으로 이리저리 바빴을 것이다.
  • 박진만: 수비의 달인, 국민 유격수. 2000년대에 발탁되어 현재까지 내야 수비 본좌라고 불린다. 김재박류중일의 뒤를 이은 차세대 국가대표팀의 유격수라고 불렸는데, 루키시절부터 은사였던 김재박이 포수 장비를 입혀놓고 수비를 시킨게 그 유명한 일화이다. 그리고, 그 실력은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2008년 베이징 올림픽까지의 두각을 보여줬다. 다만, 타격면에서는 절망이었는데 이전 감독들 모두 박진만을 9번에 박는 경우가 많았다. 이유는 개인 타율을 봐도 갭이 심한 선수라 2009년 WBC 승선을 하였지만, 고된 무릎 부상으로 후임 박기혁이 승선하였다. 그게 국대 마지막 시절이고 그 이후에는 손시헌박기혁 정도가 나섰지만 박진만보다 뛰어난 수비가 나올 리도 없고 물빠따라 기대 이하였다. 강정호, 김재호, 김하성 등 후배들이 가세하면서 공격면에서의 부분이 박진만의 통산 성적을 능가할지는 몰라도 수비만큼은 여전히 박진만이 우위라고 평가하는 전문가들이 많다.
  • 이병규: 적토마, 강한 1번 타자. 1996년 애틀란타 올림픽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국가대표팀 1번 타자와 중견수를 맡았었다. 국대 말기에는 좌익수로 포지션을 변경한 적이 있었다. 아마야구 시절부터 국대 승선을 하여 96년에 처음 대표팀에 차출되어 대회 광탈의 쓴 맛을 본 이 후 1998년 방콕 아시안 게임에 뽑힌다. 홈런 4개를 치며 우승에 일조 한다.(이병규 국대 커리어에 있어서 홈런 4개 전부가 바로 이 대회였다.) 99년 한일 슈퍼게임과 아시안 선수권에도 출전, 2000년 시드니 올림픽 국가대표에도 뽑혀 대표팀 사상 첫 메달 기여를 했다.[37] 2002년 부산 아시안 게임 역시 메달 수훈을 하여 팀의 공로를 확실히 쌓아 올렸다. 그러나 2006년 마지막 국가대표 시절 경험을 하지 말아야 할 나쁜 불운까지 겪었다. 은퇴 뒤에는 이종욱, 이용규 등 후배들이 이병규의 포지션을 번갈아 보고 있는데도 이병규의 성적에 근접도 못하고 있고 그나마 도루 부분은 이용규가 통산 도루에 동률을 이뤄냈다.
  • 이승엽: 합법적 병역 브로커, 국민타자. 이 선수는 참고로 팔꿈치 부상으로 군면제를 받은 상태에서 브로커 역할을 수행해왔던 것이다. 그 진가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 3.4위전 동메달 결정전 마쓰자카 다이스케[38]를 상대로 8회 결승타,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예선에서 8회말 극적인 역전 투런 홈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는 본선 내내 최악의 부진에 빠지며 엄청난 질타를 받았으나 4강에서 일본의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를 울리는 극적인 홈런을 때려내며 팀의 승리를 이끌었다. 결승에서도 선제 투런포를 때리며 진가를 보였다. 그리고 2009년 WBC 2회 대회에서 엔트리 발표 과정에서 역시 박찬호와 은퇴 선언 인터뷰를 했는데 둘 다 똑같이 짠한 표정을 보여줬으나, 갑자기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표팀에 뽑혀서 모두를 깜짝 놀라게 하였다. 물론 팀이 개판 5분전이라 타석에서 밥값을 했지 하나같이 말아먹으며 그대로 대표팀 선수 생활은 끝났다. 물론 복귀에 대해서 말이 많은데 소속팀 류모 감독과 야구팬들이 시켜서 그렇게 된 것이다. 그리고 2000년 이후 대표팀 개인 최다 홈런인 8개의 홈런을 기록 중이다. 그리고 2017년 시즌 종료 후 은퇴를 선언하였다. 아쉬운게 있다면 이 때도 4회 대회가 열렸던 해라 자국에서도 예선전을 경험할 수 있었다. 그러나, 본인에게는 험한꼴을 안봐서 불행 중 다행.
  • 임창용: 창용불패, 국가대표 잠수함. 2018 시즌 기준 유일하게 방콕 아시안 게임 출전 당시 투수 멤버였다.[39] 시즌에는 그냥 노예(야구)였다면 대표팀에서는 편안한 마무리 투수를 지탱을 해 온 잠수함 투수. 해외에서도 볼 수 없는 잠수함 투수로 시속 150km/h 넘나드는 폼으로 선수들을 졸 곧 상대를 했었다.(반대로 정대현은 130km/h 구속으로 대응했다.) 활약상으로는 2002 부산 아시안 게임과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있는데 이 대회만큼은 투수들이 박살난 가운데 류현진, 정현욱, 이승호와 함께 계투진에서 밥값을 했던 선수이다. 그러나, 연장에서 아쉬운 패배를 당했는데 아쉽고도 박수 받을만한 대회였다. 8년 후, 2017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왕고참이였으나 끝내 경험할 수 없는 사태를 경험한 산증인... 연장전에서 뭐 본인도 말아먹고 선수들도 전부 말아드셨다. 한때는 엠엘비파크 투수계의 4천왕 중 하나였다. 그 외 3인은 박찬호, 구대성, 정대현.
  • 손민한: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당시 미국전에서 A로드를 삼구삼진으로 잡아낸 것으로 유명.[40] 그러나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엔트리에 포함되고도 한경기도 뛰지 않아 팝콘 팔러다니냐는 비아냥을 얻으며 팝콘갑이라는 불명예스러운 별명을 얻기도 했다. 그리고 은근히 국제대회 성적이 좋지 않은데, 2000년 시드니 올림픽, 2006 도하 아시안게임에서 평균자책점 6점대를 기록하며 부진했다.
  • 이진영: 국민 우익수[41] 일본 킬러. 일본전마다 미친 듯한 활약을 하는 또 하나의 선수로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당시 호수비로 유명세를 펼쳤으며, 2008 베이징 올림픽에서 준결승전 동점 적시타를 때려 많은 이들의 열렬한 지지를 한 몸에 받았던 선수였다. 2013년 WBC가 그의 마지막 국가대표 경기였으며 은퇴 후 일본의 퍼시픽 리그 팀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 연수를 떠났다. 일본으로 가게 된 계기가 메이저리그팀 LA 다저스에서 뛰던 이시이 가즈히사가 이전 다저스 출신인 코리안특급의 연락으로 인연이 닿았고 그렇게 되어 박찬호가 추천을 했다는데, 기사의 댓글 일부가 개드립으로 번지기도.
  • 정대현: 국가대표 최종병기. 국내리그에서도 최정상급 불펜이었지만 언더핸드 투수를 많이 접하지 않는 외국 선수들을 상대로 한 국제대회에서는 더더욱 절정의 퍼포먼스를 보였다. 경희대학교 재학시절 참가했던 2000 시드니 올림픽에서의 맹활약을 시작으로[42] 2015년 프리미어 12까지 중요한 순간마다 팀을 위기에서 건져냈다. 특히 2008 베이징 올림픽 결승전에서의 마지막 병살은 그의 활약상 중 최고의 장면으로 꼽을 수 있다. 2017 시즌 후 은퇴했다. 아직도 미국 야구선수들에 회자되던 느린 구속으로 타자를 현혹시킨 투수라고 불리는데 간단하게 생각하면 김병현의 반대 버전이라고 할 수 있다. 대표팀 생활을 하면서 삿포로 참사(야구)도하 참사(야구)를 겪은 적은 없으나, 타이중 참사를 겪은 적이 있다. 그래도 마지막 국가대표 경력을 마칠 때는 도쿄 대첩(야구)으로 마무리를 했다. 소속팀은 SK 와이번스 - 롯데 자이언츠를 거쳤다.
  • 봉중근: 봉의사. 메이저~마이너리그를 오가며 선수생활을 하다가 06 WBC에서 국대로 선발되어 불펜자원으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다. 2007 시즌 LG로 국내 유턴 후 2008 시즌 에이스로 활약하며 베이징 올림픽 국대에 승선했으나 미국-대만전에 선발출전하여 난타당했다. 그러나 2009 WBC에서는 김광현이 난타당하고 류현진도 썩 좋지 못한 모습을 보이는 와중에 봉중근이 일본전에 3번 선발 출전하여 호투하면서 봉의사라는 별명을 얻었다. 견제구 동작만으로 이치로를 슬라이딩 귀루하게 만든 것은 덤. 이후에도 10, 14 아시안게임에 국대로 뽑혀 금메달을 획득했다.

8.3. 2000년대 이후 활동하고 있는 인물

  • 김현수: 2019년 기준 대표팀 최다 안타 1위, 최다 타점 3위 기록중인 국가대표 교타자 3번 타자의 정석, 타격기계. 소속팀 두산 베어스에서는 폭발적인 신인시절에 비해 부침을 많이 겪기도 했지만 국가대표 유니폼만 입으면 훨훨 날아다니던 선수. 2015 WBSC 프리미어 12 초대 MVP와 2009 WBC 베스트 팀으로 선정되었다. 국가대표 좌익수 하면 다들 서슴없이 김현수 라고 말한다. 2018 자카르타 아시안 게임에서는 주장을 맡았지만, 대표팀으로 뛰면서 역대급 커리어 로우를 기록을 했었다. 현. LG 트윈스 외야수로 고정 포지션은 좌익수이며, 가끔 LG 수비진이 시망인지라 1루수도 겸하고 있다. 성인 대표팀을 하면서 의외로 홈런은 없지만, 도루는 있는게 신기할 따름... 그런데 부상과 외적 논란 등으로 네임드 타자들이 본인을 제외하고 김경문호에 전부 승선하지 못해 2019년 기준 유일하게 살아남은 레전드 국가대표 타자가 되었다. 투수까지 범위를 넓혀도 김광현과 양현종만이 남아있다는 점에서 그의 꾸준함을 알 수 있다.
  • 강정호: 한국의 A로드, 국대 거포 유격수.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을 기준으로 2014년 인천 아시안 게임 까지 출전 하여 국대 유격수 현 부분에서는 홈런 1위다. 아무도 그의 아성을 넘은 선수는 없다. 현재 까지도 유격수 본좌 라고 불린다. 2010 아시안 게임 때는 최정의 부상으로 잠시 3루수를 뛰었었다. 원래 강정호가 전도유망한 내야 유틸리티라 상관이 없었다. 입단 당시에 포지션은 포수였었다. 하지만, 잘 나가던 2016년 대형 사고를 치는 바람에 앞으로 국대 승선에 관해서는 어떻게 될 지 미지수다. 현재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팀인 피츠버그 파이리츠 소속 포지션은 3루수[43]
  • 정근우: 통칭 악마의 2루수. 대표팀 최다 안타 2위, 대표팀 최다 도루 기록을 가지고 있는 대한민국 대표팀 최고의 2루수. 2006년 대참사 당시 성인 대표팀 경력으로 프리미어 12 대회를 기준으로 역대 국가대표팀 2루수 올타임 선수로 군림하였다.하지만, 2017 시즌 중간에 무릎 부상이 더더욱 악화되어 2018 시즌 하반기 부터 1루수로 수비 위치로 변경, 더 이상 우리가 아는 국가대표 2루수 정근우 로 나오기는 힘들 것 같다. SK 와이번스 시절에는 리즈 시절이였고 막판 2시즌은 잔부상으로 말아먹고 2013년말 FA를 가져 한화 이글스로 이적해서 제2의 전성기를 도모했으나 2017년 무릎 부상 이 후 지금도 1루수외야수 병행을 하고 있다.
  • 이대호: 조선의 4번타자. 2000년대 이후 대표팀 4번타자 최다 홈런 2위, 최다 안타 2위를 기록중이다. 현재도 국가대표 선수로 남아있다. 2008년 대표팀 당시 팀내 홈런 1위로 이승엽의 부진에 그가 해결사 도모를 맡으며[44], 2010년 광저우 아시안 게임에서도 맹활약을 하였다. 2015 WBSC 프리미어 12 준결승 전 도쿄대첩 결승타의 주역으로 팀의 결승을 올리는데 일조 그리고, 우승을 하였으나. 후배들이 군면제가 되는 대회가 아니였다. 그래도 당시 시원하게 능욕을 선사한건 덤. 후에 인터뷰에서는 김현수와 함께 일본이 지들 우승 하고 싶은거 다 아니깐 맘대로 해라 대신 우승 못하면 개망신 이다 라는 것을 몸소 보여줬다. 과거에는 NPB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MLB의 시애틀 매리너스 소속이자 2017년 부터 현재는 원 소속팀인 롯데 자이언츠에 돌아와 부동의 4번 타자를 맡고 있다.
  • 오승환: 돌부처, 포커 페이스 정대현과 함께 2000년대와 2010년대 국가대표 마운드를 지탱하던 대한민국 대표 마무리 투수 현재도 국가대표 신분, 과거 KBO에 있을때는 삼성 라이온즈 소속이였고, NPB는 한신 타이거스 지금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팀인 콜로라도 로키스 소속으로 대한민국 명실상부 마무리 투수다. 데뷔 첫 국대 경기인 제 1회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는 해외 야구팬들에게 눈도장을 찍은적이 있었다. 후에 2006년 카타르에서 있었던 아시안 게임 흑역사의 주범이였는데 당시 도하 참사(야구)겪으며 오뎅 이라는 달갑지 않는 별명이 있었으며[45], 국내용 이라는 비난을 들었었다. 이 후 베이징 올림픽 때는 무실점 경기 및 안정감이 있는 경기를 보여줬지만, 현지 내에서 컨디션이 좋지 않아 문제가 걸렸었다. 이와 별개로 오승환이 데뷔 했을 때 소속팀 삼성은 매년 포스트 시즌을 진출 했으며 그 2년은 우승을 하였고 아시아 야구 대항전에도 나갔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3년 내내 고생을 했었다. 결국, 2009년과 2010년 초반에 부활 했나 싶더니 다시 나가리가 되어 2년간은 국가대표급 투구는 볼 수 없었다. 2013년 WBC 대표팀 일원으로 나갔으나 팀은 타이중 참사를 겪고 예선 탈락으로 짐을 쌌다. 그리고 2017년 역시 WBC 대표팀으로 발탁 되었으나 무수한 사건사고가 많아서 발탁 금지와 발탁 찬성에 대한 논란이 있어 결국 발탁이 되었다. 허나 또 다시 참사를 당해 예선 광탈을 했다. 지금은 메이저리그로 돌아가 선수생활을 하고 있으며 은퇴하기 전까지 국대 야구 경기가 있으면 언제든지 다시 마무리 투수로 부를지 모른다.
  • 이용규: 커트의 달인 대선배였던, 이병규 이 후 국대 차기 1번 타자로 군림했다. 종박과 함께 한 때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주력 선수 투 톱 이였으며,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과 준우승을 거기에 한 술을 더 떠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금메달의 영광을... 여기까지 어찌보면 국대 리즈시절 및 대한민국 야구 흥행 시기에 맞춰 인기를 얻었으며, 데뷔는 LG 트윈스를 거쳐 전성기 시절 KIA 타이거즈 시절과 현 한화 이글스 소속이며, 예전만해도 엄청난 승부사 기질이였는데 어느새 땅볼만 치면 포기한 듯 그런 표정으로 대충 산책 야구를 한다고 덤으로 까였다. 이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해설을 맡던 박찬호의 일침이 컸는데 이 후로는 좀 사람이 정상으로 돌아왔으나 현재는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의 실력이 모조리 개판이라 국가대항전에 다시 뽑히면 악바리 같은 기질이 다시 나올지 역시 미지수다. 여담으로 일본의 해설자들이 현 외야수인 아오키 노리치카 선수와 많이 비교를 한다. 볼을 잘 고르는 것과 투수와의 승부 기질과 타격센스 및 수비 능력이 비슷하다라고 했다. 서로 비슷한 점은 좌타자.
  • 윤석민: 크라이, 윤석민상 현, KIA 타이거즈 소속. 한 때는 대한민국 최고의 우완투수로 자리매김을 하나 싶었으나, 부상으로 먹튀가 된 비운의 투수 데뷔 초창기 시절은 중간계투로 뛰었으며, 선배 신용운과 후배 한기주와 함께 서정환 감독 아래서 엄청 굴렸다가 선발로 전환한 투수로 첫 선발인 2007년 리그 최다패인 18개를 적립하며[46] 이듬해 각성하여 방어율 1위 다승 2위를 기록했다. 이 후 개노답 타선 땜에 09/10시즌 10승은 커녕 9승과 6승에 머물며 팀의 계투진들이 개판이라 팀을 위해서 포지션 변경도 마다 했으며, 결국, 그 바램이 왔는지 2011년 정규리그 MVP에 오른다. 그래서 대표팀에 뽑혀 준수한 성적을 거뒀으며, 도하 참사(야구)부터 2013 WBC 매년 국대 경기에 출전도 하며, 특히. 베이징 올림픽 때는 분식회계로 엄청 까였었다. 이유는 선발 투수였던 윤석민을 마무리로 활용한 김경문 감독의 용병술이였는데, 팬들도 의아했지만, 결론적으로 전승우승 이라는 흠좀무한 성적을 냈다는거에 증평이니 다행이였지 1패라도 적립한 순간 역적으로 몰 뻔.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때는 중국/베네수엘라 국가대표팀을 가지고 놀아 한 때 메이저리그에서 당장 통할 것 같다 라는 투수로 거론이 되었으나 메이저 계약을 했지 마이너리그에서 1년간 떠돌다가 메이저 콜업은 못받고 2015년 복귀를 하여 현, 2019년 국내에서 활동. 지금은 수술과 재활을 하며 쉬고 있다.
  • 류현진: 닥터 K, 괴물, 코리안몬스터, 현재 대한민국 최고의 투수이자 박찬호에 이어서 역대 한국인 투수 2위로 평가받고 있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LA 다저스 소속. 그야말로 한국에서 다시 나오기 힘든 사기캐 선수. 데뷔 시절 부터 소년가장이였다. 국내 소속은 한화 이글스였고 당시에도 잦은 출전으로 혹사가 아니냐 라고 할 정도로 정규시즌에 가히 괴물급 성적을 내어 타팀 팬들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였다. 초기 성인 대표팀은 카타르 아시안 게임인 류택배 라고 불릴만큼 까이던 첫 시절이였다. 이 후 기량이 급속히 늘어나자 2008 베이징 올림픽을 기준으로 2010 광저우 아시안 게임 대표팀 일원이였다. 국대 선수들 중 최다승을 가지고 있으며 최다 완봉을 가지고 있을 만큼의 페이스를 자랑한다. 한화 시절에는 정말 눈물겨운 시절을 보내 심히 성적이 안습하다. 2012년이 그의 마지막 경기였는데 넥센 히어로즈를 상대하여 10이닝 1실점[47] 이라는 쾌투를 했음에도 개노답 물빠따 타선 땜에 승리를 많이 못 거둔 것이 아쉽다. 대한민국에서 거둔 승리만 99에 머물러 있으며[48] 포스팅 시스템 제도로 인해 미국으로 진출하여 생활 중(2013년 부터 현재) 류현진의 현재 등번호 99번은 임시결번이며 언제든지 돌아오면 다시 그가 입을 예정이다. 현재, 대한민국 투수 유망주들의 우상이며 레전드로 남아있다. 아쉽게도 소속 팀 시절 현재까지도 우승과는 인연이 없다.
  • 김광현: 커리어 초기 일본 킬러, 00년대 후반~10년대 대표팀 좌완 투톱[49]류현진과 더불어 대한민국 최강 좌완 넘버 2이며 2006년 고교시절 유망주였고[50] 데뷔 초기 1군에서는 그냥 평범한 실력을 가지다가 중간에 2군에 가서 기량을 쌓고 그 해 한국 시리즈 우승 일조를 하며 포텐이 터졌다. 역시 2008 베이징 올림픽이 성인 대표팀으로 일본과의 예선전/준결승 전 일본과의 호투로 구대성 이 후 제대로 된 좌완 파이어볼러 일본 킬러로 별명을 선사 받았으며, 이듬해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는 오히려 분석을 당해 개털리자 3이닝 8실점 콜드게임 패배의 주범으로 찍히며 별명이 일본 킬러가 아닌 힐러로 강등 당하였고 파생 된 별명에선 김콜드 라고 내내 불렸다. 이 후 한동안 부상으로 국가대표 차출이 되지 않았으며 2011년과 2012년은 아예 다른 모두가 알던 김광현이 아닌 그냥 Again 2007로 돌아갔다. 허나 2011년은 김성근 감독의 147구 완투패 경기가 있었는데 이 때 정신나간 투구로 페이스가 완전 망가진 것 그것은 2012년에도 이어졌다. 2013년에는 간만에 규정이닝 10승 투수로 돌아왔지만, 전성기 때에 비하면 평균자책점이 폭등하는등 그리 좋지 않았다. 이후 2014년부터는 전성기 구위는 아니어도 KBO 리그 프런트라인 선발급 김광현으로 돌아왔고 오랜만에 국가대표에 차출되어 인천 아시안 게임 금메달과 프리미어 12 우승에 일조를 했다. 2017년은 수술로 WBC에 참전을 못했다. 아무래도 WBC와는 인연이 꽤 없는 듯. SK 와이번스 최초의 100승을 달성했으며 각종 좌완 투수 기록은 김광현이 쓰고 있다. 송회장님 기록이 워낙 어마어마해서 근접하기는 힘들어보이지만, 일단 양현종과 함께 도전자 후보로 명함이라도 내밀 수 있는 유이한 투수. 복귀 시즌인 2018년에 팀과 개인의 철저한 자기관리로 토미존 수술 후 구위가 전성기때로 회귀하는 매우 희귀한 현상을 보이며 KBO 현역 에이스로 활동을 하고 있다. KBO 최정상급 구속의 포심 패스트볼을 가진 파이어볼러이고, 트레이드 마크이자 결정구는 146km 이상을 기록한 고속 슬라이더.
  • 양현종: 햄종이, 기아팬들 한정 대투수[51] 김광현과 함께 프로에 입단했으나, 1군 초기에는 패전조나 추격조로만 나왔다. 이후 간베 토시오라는 스승인 일본인 투수 코치를 만나 일취월장하여 2009년에 리그 우승을 거뒀다. 이 후에는 다소 부진했는데 2014년부터 2018년까지 포텐이 터져 매년 10승씩 적립을 하고 있다. 단, 팀의 빠따가 가끔 그의 승리에 도움을 주지 못할 때가 있다. 프리미어 12 당시에 '국대 차출 거부' 라는 말을 했다가 무참하게 까인 적이 있었고 2017 WBC에는 참가했지만 아시다시피 고척돔 참사로 팀은 광탈했고 대차게 까였다. 현재까지는 아시안 게임 모두 선발로 나갔는데 대부분 좋은 성적을 냈다고 하는 평. 김광현과 함께 2010년대 KBO 좌완 투톱이며 체인지업을 주무기로 삼고 있다. 동갑내기 김광현과 KBO에서 꽤 치열한 라이벌리를 형성하고 있다.[52]

8.3.1. 최다 홈런 TOP 3[53]

순위 이름 통합 홈런 대회별
WBC 프리미어 12 올림픽 아시안 게임
1위 이승엽 8개 5개[54] 0개 3개 0개
2위 이대호 7개 0개 1개 3개 3개
3위 강정호 5개 1개 0개 0개 4개
추신수 5개 2개 0개 0개 3개

8.3.2. 최다 안타 TOP 3

순위 이름 통합 안타 대회별
WBC 프리미어 12 올림픽 아시안 게임
1위 김현수 43개 14개 11개 10개 18개
2위 정근우 37개 7개 12개 9개 7개
3위 이대호 34개 10개 6개 9개 9개

8.3.3. 최다 타점 TOP 3

순위 이름 통합 타점 대회별
WBC 프리미어 12 올림픽 아시안 게임
1위 이대호 40점 7점 7점 10점 16점
2위 이승엽 29점 10점 0점 13점 6점
3위 김현수 28점 2점 13점 4점 9개

8.3.4. 최다 도루 TOP 3

순위 이름 통합 도루 대회별
WBC 프리미어 12 올림픽 아시안 게임
1위 정근우 9개 2개 2개 1개 4개
2위 이병규 7개 0개 0개 4개 3개
이용규 7개 2개 1개 1개 3개
3위 정수근 6개 0개 0개 6개[55] 0개

8.3.5. 최다승 TOP 3[56]

순위 이름 통합 성적 대회별
WBC 프리미어 12 올림픽 아시안 게임 평가전
1위 류현진 6승 1패 1홀드 1승 - 2승 1승 2승 1패[57][58]
2위 윤석민 5승 1패 1홀드 1세이브 2승 1패 - 2승 1패 1세이브 1승 -
손민한 5승 3패 2승 - 1승 1패 1패 2승[59]
김광현 5승 3패 1패 2승 2패 1승 - 2승[60]
5위 봉중근 4승 1홀드 2승 - - 1승 1승[61]
양현종 4승 2패 - 2승 1패 - 2승 1패 -

8.3.6. 최다 세이브 TOP 3[62]

순위 이름 통합 성적 대회별
WBC 프리미어 12 올림픽 아시안 게임 평가전
1위 정대현 3홀드 4 세이브 1H 2H 2S - 2S[63]
2위 오승환 2승 2패 3세이브 1W 2S - 1W 1S 1L -
3위 임창용 1승 1패 3세이브 1L 2S - 1S 1W -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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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틀리그 월드시리즈에 진출하는 리틀야구 대표팀(U-12)은 한국 대표팀이 아니라 아시아-태평양 대표자격으로 참가
U-12 U-12 대표팀
U-15 U-15 대표팀
U-18 U-18 대표팀
U-23 U-23 대표팀
U-24 U-24 대표팀
A대표팀 남자 야구 국가대표팀
여자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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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년, 1988년 대회는 시범종목, 정식 종목으로 채택된 1992년 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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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대한축구협회가 운영을 총괄하는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과는 달리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보다 KBO의 영향력이 훨씬 크다. 프로선수 차출과, 전력 분석, 지원금 등 운영 전반은 KBO에서 담당하며, 대한야구소프트볼협회는 아마추어 야구 대표팀의 선발 과정에서 영향력을 행사한다.[2] 연속 4회 출전[3] 연속 2회 출전[4] 연속 7회 출전[5] 12분12초에 언급[6] 그래서 2006 WBC 출범 당시 야구 국대 서포터즈를 조직했을 때 이들 이름이 '파란 도깨비'였다. 2006 WBC 이후 해산해서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7] 농담이 아니라 진담인 게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 은메달을 기록하고 도하 아시안 게임에서 동메달을 획득한 것 이외에는 전부 다 금메달이었으며 전체적으로 봤을때에는 메달이 없는 대회가 단 하나도 없을 정도다. 다만 한국의 경우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획득하면 군면제 혜택이 주어지기 때문에 프로선수를 위주로 내보낸다. 일본, 대만 등 다른 국가들은 아시안게임을 마이너게임으로 여기기 때문에 프로선수를 선발하지 않고 실업팀 위주로 아시안게임 야구 국가대표팀을 구성하고 지금까지 3파전 추세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 따라서 해외 실업팀을 상대로 한국 프로팀이 금메달을 수상한 거로 아시아 최강이라고 하기에는 애매하다.[8] 프로리그가 선진화 하면서 팬들도 이제는 자신이 응원하는 팀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우승하는게 더 중요하게 여겨지는 시대가 되었고 당연히 이에 걸림돌이 되는 요소나 일으키는 방애물은 제거해야 한다는 의견이 커지는 것이다. MLB는 진작부터 이런 분위기가 널리 퍼져있었고, 그 때문에 선수 차출에 매우 부정적이다.[9] 세계적으로 야구를 즐기는 국가도 얼마 안되는데다 그나마 제대로 야구를 하는 나라도 미국, 한국, 일본, 대만이나 쿠바, 그리고 도미니카 공화국 정도에 불과하다.[10] 다만 이 두 국가는 프로야구 선수들을 차출하지 않고 자국의 아마추어 선수들을 내보낼 정도로 야구 인력 저변이 넓지만 한국은 프로야구 선수가 아니라면 국제 대항전 대회를 치를 수 있을만한 인력 수급이 안된다. 한국의 사회인 야구팀들이 일본의 사회인야구팀들 같은 높은 수준의 경기력을 보유한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2군 중에서 추려내려 해도 구단의 반발들이 심하니 난감한 이유다.[11] 2018 아시안게임에서 야수 성적이 투수 성적에 비해 저조하다.이젠 그 장원준도 못한다[12] 다만 2017 WBC의 경우 대상이 된 한국계 선수들, 마이너리거들이 부상에 시달리거나 성적 부진으로 제 몫을 못 하는 등 발탁할 명분이 딱히 없었다.[13] 다만 앞으로도 순혈주의를 고수할 수 있을지 여부에는 물음표가 붙은 상황이다. 물론 지금 당장은 아니라고 하겠지만 장기적인 안목으로 볼때는 혼혈이나 귀화한 외국인이 아니라면 달리 적정 인원수를 채울 수 있는 수단도 없을 수 있다. 야구만 해도 투수는 물론이고 포수쪽은 거의 지원하는 인원도 현저히 적은데다 프로쪽만 봐도 양의지와 같은 선수를 제외하고는 간판스타나 한국 프로야구의 포수를 대표하는 선수의 육성이 전무하다. 투수는 양현종만 빼면 한국 최고의 에이스라 불릴 만한 선수도 없다. 게다가 언급된 투수들 모두 좌완이라는 점도 우려스러운 일인데 우완 정통파는 선동열 이후 거의 사라졌고 앞으로도 나올 기미가 안 보인다는게 더 큰 문제다. 물론 어느 순간에 등장할 가능성도 아주 없는건 아니어도 유망주 가운데서도 모습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 염려스럽다는 것, 이 문제에 대한 대비를 지금부터 시작하지 않으면 한국야구의 미래가 암울해진다.[14] 프로선수들이 참여하기 시작한 98년 아시안 게임 부터.[15] 당시 인하대 감독.[A] 평가전[17] 10:2 승[A] [19] 1차전 6:2 패, 2차전 3:15 승.[A] [21] 당시 KBO 기술위원장. 현역 감독이 아닌 최초의 국대 감독.[A] [A] [A] [A] [26] 본선 기준.[27] 야구가 2012 런던 올림픽부터 올림픽 정식종목에서 제외되었으나 2020 도쿄 올림픽에서 한시적으로 부활했다.[28] 이때는 미국도 예선에서 탈락했다.[29] 영문 명칭으로는 Amateur World Series. 88년 대회부터는 야구 월드컵(Baseball World Cup)이라고 불렀다. 2011년 대회를 끝으로 폐지.[30] 아시아 유일한 우승이긴 하지만 최다 우승국이자 강력한 우승후보 쿠바가 불참했기에 이뤄진 점도 있다.[31]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한 국가가 아닌 한 대륙이 개최. 개최 국가는 네덜란드, 독일, 산마리노, 스웨덴, 스페인, 이탈리아, 체코, 크로아티아 8개국.[32] 인터컨티넨탈컵(Intercontinental Cup)이라고도 한다. 2010년 대회를 끝으로 폐지.[33] 대한민국 야구 대표팀 첫 국제대회 우승.[34] 인생 최초이자 최후의 헤드퍼스트 슬라이딩 사건으로 당해년도 커리어 로우를 찍어버린 비운의 시즌.[35] 시즌 중에 이제는 대표팀에서 내려올 자리 라고 말했을 정도 엄청난 훈련을 했었다고 한다.[36] 금메달, 4강 진출[37] 당시에는 동메달[38] 데뷔 2년차였는데 어지간히 일본 야구계 내에서는 포텐이 터질 실력을 가진 선수였다.[39] 타자로는 박한이가 있었다. 2019년에 불명예 은퇴.[40] 이전 타자 켄 그리피 주니어에게 솔로홈런을 맞고 나서 다음 타자 상대였던 A로드를 상대로 탈삼진.[41] 검색을 하면 이진영의 이름으로 리다이렉트 된다.[42] 이때는 선발투수로 활약을 하였고 나머지 국가대표팀 시절은 릴리프(계투 - 마무리)를 맡았었다.[43] 국내 활동 당시 유격수 였으나 메이저리그 에서 부상을 당한 이 후 아예 3루수로 정착. 국내 활동은 언제 될 지 미지수.[44] 준결승전+결승전에는 이승엽이 미쳐버리자 이대호의 활약이 묻혀진 감이 좀 있었지만 이대호의 파괴력이 없었으면 메달에 접근도 할 수 없었다.[45] 실제로 오뎅 장수가 아니였고 일본의 사회인야구 선수 출신이자 현, 히로시마 도요 카프 소속의 AV 매니아 초노 히사요시였다. 이 선수가 궁금하면 직접 항목을 참조 하기를 바란다.[46] 이것은 한시즌 선발투수 최다패이며 아직도 2000년대에 기록자 중에서는 김영수와 단 둘 밖에 없는 기록인데 그 김영수는 팀이 8888577라는 안습의 타선에 윤석민 처럼 팀이 꼴찌였다.[47] 이 1실점은 현재 메이저에 있는 친구이자 프로 동기 강정호를 상대로 동점 솔로 홈런을 맞은건데 인터뷰에서 실투 라고 본인이 말을 했다.[48] 1승만 했으면 최소경기 및 최연소 100승을 바라 볼 수 있었다. 최연소 100승은 팀 선배인 정민철 해설위원이 가지고 있다.[49] 당연히 실력적으로는 류현진이 김광현보다 훨씬 우위지만 류현진이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 실상 대표팀 1선발은 김광현과 양현종이 도맡았다. 08년 베이징 올림픽 최종예선~본선에서 류현진과 함께 원투펀치였으며, 14년 인천아시안게임-15년 프리미어12에서는 명실상부 1선발이었다. 19 프리미어12에서도 양현종과 함께 원투펀치로 출전할 예정.[50] 세계 청소년 야구 대표팀에서 우승을 하고 MVP를 받은 경험이 있다.[51] 소속팀인 KIA 타이거즈 팬들이 붙히고 주장하는 별명이었으나, 갈수록 국대 에이스라고 불릴만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여러 팬들에게도 쓰이고 있다. 물론 대투수라는 어감 자체가 엄청난 레전드한테 붙이는 별명인 감이 있어서 부정하는 헤비팬 및 타팀팬도 꽤 많다.[52] 이닝, 다승, 탈삼진 등의 스탯에서는 양현종이 앞서며, 평균자책점, WHIP, ERA+ 등에서는 김광현이 앞선다. 한마디로 비율스탯은 김광현, 누적스탯은 양현종으로 정리가능하다. 다만 그 차이가 서로 크게 나지 않아 동급으로 평가받고 있다. 팬들에게는 라이벌 관계이지만 실제로는 동갑내기 친구인지라 인터뷰 때마다 서로를 존중하고 그럭저럭 친한 사이인듯.[53] 홈런을 비롯해 아래 기록들은 자료가 존재하지 않는 올림픽 지역 예선 결과는 제외.[54] 2006년 1개 대회에서만 때려낸 기록[55] 2000년 예선 본선 상관 없이 1개 대회에서만 달성한 기록[56] 2008 올림픽 지역별 플레이프 예선, 대표팀 평가전 기록 포함.[57] 2007 IBAF 아시아 야구 선수권대회 겸 베이징 올림픽 아시아지역예선.(1승)[58]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1승 1패)[59]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60]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61] 2008년 쿠바 평가전 2경기.[62] 2008 올림픽 지역별 플레이프 예선, 대표팀 평가전 기록 포함 세이브와 홀드 합산[63] 2007 아시아 선수권 대회, 2008년 베이징 올림픽 대륙별 플레이오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