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Korea baseball national team |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Japan baseball national team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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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원래부터 스포츠 한일전은 정치적인 상황이나 역사적인 배경까지 더해져 그야말로 불꽃튀는 응원전이 전개되곤 한다. 특히 야구는 양국이 프로리그를 보유한 세계에 몇 없는 국가라서 기본적인 실력이 있는 편인데다, 국제대회에서의 맞대결도 자주 펼쳐지기 때문에 특별함이 있다.[1]한국도 물론이지만 일본도 야구 한일전에 각별하다. 한일전의 TV중계 광고 단가가 타 국가와의 대항전보다 더 높게 나오며 관중 역시 무조건 매진되기 때문에[2] 일본 야구계도 각별하게 신경쓰는 라이벌전이다.
2006년 WBC 첫 대회에서 1라운드, 2라운드, 4강까지 세 번이나 맞붙어서 명승부를 펼치자 시청률은 대박을 쳤고 라이벌 기믹이 형성되기 시작했다. 이후 2007년 베이징올림픽 아시아 예선의 한일전은 일본에서 평균 25% 최고 32%를 기록했다.[3] 그리고 2009년 WBC 결승에서는 최고 시청률이 60%까지 올랐다. 이러한 이유로 일본 매스컴과 야구 관계자들은 한일전에 대한 관심이 매우 높다. 2013년과 2017년 대회 당시 한국 대표팀이 WBC에서 광탈하면서 한일전이 무산되자 일본 측에서 흥행 때문에 아쉬워했다.
경기적인 면에서도 야구 한일전은 명승부가 많았다. 특히 야구의 인기, 인프라, 객관적인 전력에서 일본이 한국을 압도함에도 불구하고, 한일전에서 압승을 한 경우가 드물고 생각보다 많이 졌다는 사실에 일본도 자존심이 상했다.[4] 하위리그인데 자꾸만 거의 대등한 수준의 경기가 나오기 때문에 일본 입장에서는 이겨도 찝찝한 눈엣가시같은 존재이다.[5]
이렇다보니 일본은 한국 야구 대표팀을 라이벌로 의식하고 한일전에 진지하게 임하기 시작했다.[6] 특히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에 패해 4위로 대회를 마친 후 거의 시사보도급 분석 프로까지 내보낼만큼 민감하게 반응했다.[7][8] 다른 팀에겐 다 져도 일본에게만은 이겨야 한다는 우스갯소리가 한국 내에 있는 만큼 일본 역시 한국전만큼은 이겨야 한다는 의견이 많다.[9][10]
그러나 2010년대 중반부터 오타니 쇼헤이로 대표되는 1990년대 중반생부터 이어지는 일본 야구 신인풀의 최전성기가 열리고 반대로 1990년대생 이후로 대부분의 스포츠 유망주들이 축구로 편중되어 야구에 10년이 넘는 장기 골짜기 세대가 발생한 대한민국[11]과 전력 차이가 지나치게 벌어지는 바람에 이런 업셋도 사라졌고 전력대로 대한민국이 무난하게 완패하는 패턴이 이어지고 있다. 결정적으로 2023 WBC에서 충격적인 경기 내용 끝에 13대4로 패하며 한국은 8강 진출에 실패한 반면, 일본은 해당 대회에서 7전 전승으로 우승을 차지하였다. 따라서 현재 양국은 어디까지나 내셔널리즘에 입각한 라이벌일 뿐, 진정 스포츠적으로 팽팽한 라이벌로 분류되기 어려운 형국이다.[12]
한편, KBO 리그의 허구연 총재와 NPB의 사카키바라 사다유키 커미셔너가 2023 아시아프로야구챔피언십 경기가 열리고 있는 도쿄에서 양국간의 야구 교류와 관련한 사항에 대해 논의했다. #
2. 성인 국가대표
대한민국 | VS | 일본 |
<colbgcolor=#ffffff,#191919> 37승 2무 71패 | 성인 | <colbgcolor=#ffffff,#191919> 71승 2무 37패 |
7승 15패 | 프로 | 15승 7패 |
30승 2무 56패 | 프로, 아마-아마 | 56승 2무 30패 |
이 간극은 해방 이후에도 이어져 1950년대까지 이어졌다. 일본과의 경기에서는 한국 선수들은 이를 악물고 경기를 펼쳐왔지만 번번히 이기지 못하며 7전 7패를 기록했다. 이처럼 한일전에서 굴욕적인 성적을 기록하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이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을 상대로 승리를 거둔 것은 해방후 18년이 흐른 1963년이었다. 1963년 서울 동대문야구장에서 개막한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 1차 리그에서 한국과 일본이 맞붙었는데 이때 동점 홈런과 결승타점을 기록한 박현식의 맹활약으로 5:3, 대한민국 대표팀이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뒤이은 2차 리그에서는 우승을 결정짓는 맞대결이 펼쳐졌는데 신용균의 완투, 3타점을 기록한 김응룡을 앞세운 한국 대표팀이 승리하고 1963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사상 야구 국제대회 첫 우승 트로피를 들어올렸다. 특히 이때는 반일감정이 극에 달한 시절이었기에 승리 기념 카퍼레이드를 했을 정도였고 숙적 일본을 꺾고 최초로 국제대회 우승을 차지했기에 반응이 더욱 뜨거웠다.
1971년 아시아선수권대회에서는 김영조 당시 대표팀 감독이 당뇨병으로 대회 중 쓰러지는 사건이 벌어졌다. 이때 최종전은 다름 아닌 일본이었다. 그러나 대표팀의 방망이는 불탔고 8:3으로 대승을 거두며 숙적을 꺾음과 동시에 우승을 차지했다.
그리고 대중적으로 가장 잘 알려진 한일전 승리는 바로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결승 쓰리런이 터지며 우승한 1982년 야구 월드컵이었다.
하지만 일본의 경우 프로선수가 나가는 경우는 거의 없었고 일본의 프로선수와 맞붙은 최초의 대회는 2000년 시드니 올림픽이었다. 단, 이때 일본의 경우 프로 선수 8명, 사회인 야구 선수 11명, 대학생 5명이 포함된 1.5군 정도의 대표팀. 아시아 예선에서 처음 맞붙은 양 대표팀은 5:3으로 한국의 승리로 기록되었고, 이후 올림픽 예선에서 연장 접전 끝에 7:6으로 승리를 두게 된다. 그리고 또 다시 만나게 된 3, 4위 동메달 결정전에서 심한 담이 걸려 팔도 제대로 안펴지는 등 몸상태가 영 아니었던 선발투수 구대성이 155구 9이닝 1실점 완투를 기록하고 이승엽이 결승타를 치며 3:1 승리를 거두며 동메달을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그후 2004 아테네 올림픽을 준비한 일본은 엄청난 준비를 기울이게 되었다. "우리 목표는 금메달!"이라는 기조아래 일본 야구 역사상 최초로 대표팀 멤버 전원이 일본프로야구에서 날고기는 주전급 선수들로 모조리 채워진 것. 대표팀 감독은 일본의 전설 나가시마 시게오였고 삿포로 돔에서 열린 경기에서 한국 대표팀은 2:0으로 패배하며 올림픽에 진출하지 못하는 결과를 받아들이게 되었다. 당시 삿포로 참사는 일본전보다 대만전 패배가 큰 충격이었다.
그리고 2006년, 세계 야구 대표 대회라는 이름을 내세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열리면서 한국과 일본의 진검승부가 연이어 벌여졌고 특히 2006년과 2009년에는 대회 주최측인 MLB에서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을 밀어주기 위함과 동시에 흥행을 위해 연이어 한일전을 맞붙이는 등의 노답 대진으로 한일 베이스볼 클래식이라는 비아냥을 얻기도 했다. 2015년에는 WBSC가 출범시킨 프리미어 12가 시작되며 더욱 자주 국가대항전을 볼 수 있게 되었다.
단 2000년 이후에도 아시안 게임의 경우에 한국대표팀은 미필 선수 위주의 대표팀 선발이 이루어 지지만, 일본대표팀은 일본의 사회인야구 선수들로 구성된 라인업을 짜기 때문에 사실상 1군과 2군간의 맞대결이라고 볼 수 있게 되는데 가끔 이런 2군급 팀에게 대패를 당하며 메달권에서 멀어지는 사달이 나기도 한다.
참고로 2000년 이후 2016년까지 경기 중반까지는 일본이 압도적인 리드를 가져가는 경우가 많았으나 경기 후반에 대표팀이 뒤집는 경우가 많았다. 실제로 일본의 경우 7회 이전 득점은 한국보다 2배 이상 많이 얻어낸 반면, 8회 이후 득점은 한국이 일본보다 10점 더 많았다.
한국야구가 2000년대에 인프라에 비해서 훌륭한 선수들을 많이 양성해내며 투수쪽으로는 박찬호, 김병현, 류현진, 오승환, 김광현, 윤석민, 구대성, 정대현, 임창용, 봉중근 등이 활약하고 타자쪽으로는 이승엽, 김동주, 김현수, 이대호, 정근우 등이 활약하면서 황금기를 맡이하며 한국-일본이 프로 1군으로 본격적으로 맞붙기 시작한 2003년부터 2009년까지 국제대회 타이틀은 일본에 뒤쳐질지언정 상대전적은 비슷한 시기도 있었는데,[14] 2010년대 이후로는 기존의 황금세대 멤버들이 은퇴하거나 나이가 들며 세대교체가 되면서 국가대표 뎁스가 얇아지며 기존의 한국-일본 야구 인프라 차이대로 다시 상대전적이 벌어지고 있다. 2015년부터 2023년까지의 상대전적을 보면 1승 9패로 한국이 고전하고 있다.[15] 특히 2023 WBC에서는 처참하게 밀리며 13대 4로 대패했다. 그래도 9패를 하는 동안 경기내용에서는 밀렸어도 어떻게 꾸역꾸역 막아내며 스코어상으로 대패는 안했었는데, 이제는 단기전에서의 행운이나 요행수도 안 통할 정도로 전력차이가 벌어졌다. 사실 일본 내 야구 인기와 인프라, 역사까지 생각해보면 2000년대 중후반 한국 대표팀의 선전이 아웃라이어였지, 이게 정상이다.
경기 내용도 2019 프리미어12, 2021 올림픽, 2023 WBC 모두 양상이 비슷하다. 한국 타자들은 선발 투수들은 나름 공략을 잘해내지만 그 다음에 나온 계투진은 공략은 커녕 아예 공을 맞추는 것도 힘들어하며 무기력하게 패배한다. 투수진은 거의 매회 위기를 맞이할 정도로 선발부터 계투진까지 대부분이 구위로 일본 타자들을 압도하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이제는 스트라이크조차도 제대로 던지지 못한다. 투타 모두 극심한 전력차가 있는 실정이다.
사실상 최근 결과를 볼 땐 한국이 일본의 라이벌이니 한일전이니 뭐라고 하는 것이 어려울 정도.
2.1. 한국 프로 vs 일본 프로
대회 및 라운드 | 한국 | 일본 | 결과 | |
2003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 예선 6경기 삿포로 돔 | 0 | 2 | <colbgcolor=#001836> 일본 승 |
200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아시아 예선 1라운드 도쿄 돔 | 3 | 2 | 한국 승 |
본선 2라운드 1조 에인절 스타디움 | 2 | 1 | ||
준결승 펫코 파크 | 0 | 6 | 일본 승 | |
2007 타이중 아시아야구선수권 | 예선 2경기 타이중 저우지 야구장 | 3 | 4 | |
2008 베이징 올림픽 | 예선 라운드 우커송 경기장 | 5 | 3 | 한국 승 |
준결승 우커송 경기장 | 6 | 2 | ||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1라운드 A조 4경기 도쿄 돔 | 2 | 14 | 일본 콜드승 |
1라운드 A조 6경기 도쿄 돔 | 1 | 0 | 한국 승 | |
2라운드 1조 4경기 펫코 파크 | 4 | 1 | ||
2라운드 1조 6경기 펫코 파크 | 2 | 6 | 일본 승 | |
결승전 다저 스타디움 | 3 | 5 | ||
2015 WBSC 프리미어 12 | 예선 B조 1경기 삿포로 돔 | 0 | 5 | |
결선 토너먼트 4강 2경기 도쿄 돔 | 4 | 3 | 한국 승 | |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 예선 1경기 도쿄 돔 | 7 | 8 | 일본 승 |
결승전 도쿄 돔 | 0 | 7 | ||
2019 WBSC 프리미어 12 | 슈퍼라운드 12차전 도쿄 돔 | 8 | 10 | |
결승전 도쿄 돔 | 3 | 5 | ||
2020 도쿄 올림픽 | 준결승 1경기 요코하마 스타디움 | 2 | 5 | |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 1라운드 B조 4경기 도쿄 돔 | 4 | 13 | |
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 예선 4경기 도쿄 돔 | 1 | 2 | |
결승전 도쿄 돔 | 3 | 4 | ||
프로 1군 상대 맞대결 (올림픽, WBC, 프리미어 12, 지역예선) | 63 | 108 | 7 : 15 |
2.2. 한국 프로 vs 일본 프로+아마[16]
대회 및 라운드 | 한국 | 일본 | 결과 | |
2000 시드니 올림픽 | 예선 5일차 2경기 시드니 베이스볼 스타디움 | 7 | 6 | 한국 승 |
동메달 결정전 시드니 베이스볼 스타디움 | 3 | 1 | ||
1999년 아시아 야구 선수권 대회 올림픽 본선 티켓 예선 | 결승전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5 | 3 | |
프로 vs 프로+아마 (올림픽, 지역예선) | 15 | 10 | 3 : 0 |
2.3. 한국 프로, 아마 vs 일본 아마
대회 및 라운드 | 한국 | 일본 | 결과 | |
올림픽 | 1984 LA | 0 | 2 | 일본 승 |
1988 서울 | 1 | 3 | ||
1996 애틀랜타 | 4 | 14 | ||
아시안게임 | 1990 베이징 | 4 | 1 | 한국 승 |
1994 히로시마 | 5 | 6 | 일본 승 | |
1998 방콕 - 조별리그 | 13 | 8 | 한국 승 | |
1998 방콕 - 결승 | 13 | 1 | 한국 콜드승 | |
2002 부산 | 9 | 0 | 한국 승 | |
2006 도하 | 7 | 10 | 일본 승 | |
2018 자카르타 - 슈퍼리그 | 5 | 1 | 한국 승 | |
2018 자카르타 - 결승 | 3 | 0 | ||
2022 항저우 - 슈퍼 라운드 | 2 | 0 | ||
동아시안게임 | 2013 톈진 - 예선리그 | 3 | 6 | 일본 승 |
2013 톈진 - 결승 | 2 | 4 | ||
4개국 국제대회 | 1999 | 3 | 4 | |
2001 | 3 | 11 | ||
야구 월드컵 | 1976 콜롬비아 | 6 | 4 | 한국 승 |
1978 이탈리아 | 5 | 4 | ||
1980 일본 | 6 | 4 | ||
1982 서울 | 5 | 2 | ||
1984 쿠바 | 4 | 5 | 일본 승 | |
1986 암스테르담 | 3 | 2 | 한국 승 | |
1988 이탈리아 | 0 | 1 | 일본 승 | |
1990 캐나다 | 3 | 4 | ||
1994 니카라과 - 예선리그 | 1 | 12 | ||
1994 니카라과 - 준결승 | 9 | 0 | 한국 승 | |
1998 이탈리아 | 8 | 5 | ||
2001 대만 | 1 | 3 | 일본 승 | |
2003 쿠바 | 0 | 2 | ||
2005 네덜란드 | 5 | 1 | 한국 승 | |
대륙간컵 | 1975 캐나다 | 1 | 0 | |
1977 니카라과 - 예선리그 | 0 | 1 | 일본 승 | |
1977 니카라과 - 결승리그 | 3 | 2 | 한국 승 | |
1981 캐나다 | 2 | 0 | ||
1985 캐나다 - 예선리그 | 12 | 2 | ||
1985 캐나다 - 준결승 | 4 | 3 | ||
1987 쿠바 | 0 | 2 | 일본 승 | |
1989 푸에르토리코 | 2 | 3 | ||
1991 스페인 | 1 | 4 | ||
1993 이탈리아 | 0 | 1 | ||
1995 쿠바 - 예선리그 | 2 | 10 | ||
1995 - 준결승리그 | 3 | 16 | ||
1999 호주 | 2 | 5 | ||
2006 타이중 | 1 | 2 | ||
2010 타이중 - 2라운드 | 8 | 1 | 한국 승 | |
2010 타이중 - 5/6위전 | 1 | 2 | 일본 승 | |
아시아선수권 | 1954 마닐라 | 0 | 6 | |
1955 마닐라 | 0 | 7 | ||
1955 마닐라 | 5 | 6 | ||
1959 도쿄 | 1 | 20 | ||
1959 도쿄 | 1 | 7 | ||
1962 타이베이 | 0 | 2 | ||
1962 타이베이 | 1 | 2 | ||
1963 서울 | 5 | 2 | 한국 승 | |
1963 서울 | 3 | 0 | ||
1965 마닐라 | 2 | 4 | 일본 승 | |
1965 마닐라 | 0 | 7 | ||
1967 도쿄 | 2 | 3 | ||
1967 도쿄 | 2 | 15 | ||
1969 타이베이 | 0 | 1 | ||
1969 타이베이 | 1 | 3 | ||
1971 서울 | 2 | 3 | ||
1971 서울 | 8 | 3 | 한국 승 | |
1973 마닐라 | 2 | 3 | 일본 승 | |
1973 마닐라 | 2 | 2 | 무승부 | |
1975 서울 | 4 | 0 | 한국 승 | |
1975 서울 | 0 | 0 | 무승부 | |
1983 서울 - 1차리그 | 3 | 2 | 한국 승 | |
1983 서울 - 2차리그 | 1 | 4 | <colbgcolor=#001836> 일본 승 | |
1985 퍼스 | 5 | 3 | 한국 승 | |
1985 퍼스 | 2 | 6 | 일본 승 | |
1987 도쿄 | 1 | 7 | ||
1989 서울 | 1 | 5 | ||
1991 베이징 - 예선리그 | 2 | 4 | ||
1991 베이징 - 결승리그 | 1 | 4 | ||
1993 퍼스 - 예선리그 | 5 | 6 | ||
1993 퍼스 - 결승 | 4 | 11 | ||
1995 오키야마 | 2 | 3 | ||
1997 타이베이 - 예선리그 | 2 | 3 | ||
1997 타이베이 - 결승 | 8 | 7 | 한국 승 | |
2001 타이베이 - 예선리그 | 1 | 5 | 일본 승 | |
2001 타이베이 - 준결승 | 10 | 2 | 한국 승 | |
2009 지바 | 1 | 7 | 일본 승 | |
2012 타이중 | 0 | 4 | ||
2015 타이중 | 2 | 1 | 한국 승 | |
2017 뉴타이베이시티 | 0 | 3 | 일본 승 | |
2019 타이중·더우류 | 3 | 11 | ||
2023 타이베이·타이중·신베이 | 2 | 5 | ||
프로 vs 아마 / 아마 vs 아마 (아시안게임, 일부 올림픽, 야구월드컵, 야구선수권) | 272 | 373 | 30 : 56, 2무승부 |
3. 주요 경기
- 1982년 세계야구선수권 대회
김재박의 개구리 점프와 한대화의 극적인 쓰리런을 친 경기가 유명하다.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1982년 문서 참조..
-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야구
일본은 프로-아마 혼성팀. 2000년 시드니 올림픽 아시아 예선이었던 1999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에서 구대성의 맹활약으로 4:3 승리를 거두었다. 그리고 대회 조별 예선 22차전에서 7:6 승리를 거둔 김응룡호는 3/4위전에서 또 다시 일본과 맞붙게 되었는데 동메달이 걸린 이날 경기에서는 감기 몸살로 골골대던 구대성이 일본 타선을 상대로 완투승을 따내면서 동메달을 목에 걸었다. 2000년 야구 3~4위전 한국 vs 일본 하이라이트
- 2003년 삿포로 아시아선수권
프로 1군 본격적인 한일전의 시작. 2004 아테네 올림픽 대륙 예선도 겸하여 개최되었기 때문에 아시아선수권에 걸맞지않게 양팀 모두 1군 선수들이 총출동한 대회였다. 한국은 시작부터 대만한테 4:5 로 지는 대참사가 일어나며 올림픽에 나가기 위해서는 일본을 반드시 이겨야 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기 당일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신인 영건 와다 츠요시에게 타선이 침묵하고 정민태가 일본 타선에게 실점을 허용하며 결국 0:2로 패하면서 올림픽행이 좌절됐다.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명실상부 한일전 야구에 제대로 된 불을 지핀 대회. 이전에는 올림픽이나 아시안게임에서 일본이 오로지 아마추어나 프로와 아마추어가 섞인 팀으로 구성하여 대회에 나왔던 반면에 야구의 세계화를 목적으로 한 최대 규모의 야구 국가 대항전이 설립되면서 한국과 일본 모두 KBO, NPB를 넘어서 메이저리거까지 총출동한 멤버로 구성되어 맞붙었다. 아시아 예선과 본선 2라운드에서 2번 만나 일본을 2번 다 잡아내며 파란을 일으켰지만 4강전에서 패하고 말았다.
-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야구
2007 아시아야구선수권에서 1군 대표팀끼리의 맞대결이 펼쳐졌으나 아베 신노스케, 우에하라 고지의 맹활약으로 패배하게 되었고 이날 경기 패배로 인해 결국 김경문호는 대륙별 플레이오프에 진출하게 된다. 이 경기의 결과 때문인지 당시 일본 야구 대표팀 감독이던 호시노 센이치 감독은 "한국은 별거 아니다." "전승으로 금메달 따겠다."는 호언장담을 하게 되는데, 예선 풀리그에서는 이대호의 동점 투런과 9회 김현수의 대타 결승타와 한기주의 불쇼에 힘입어 5:3으로 승리했고,[17] 4강전에서는 만 20살의 김광현의 호투 및 8회 4득점으로 6:2로 승리를 거두었다. 자세한 내용은 2008 베이징 올림픽/야구/준결승 1경기 참조.
- 2009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진정한 한일전의 끝으로 대회 내내 5번이나 만나면서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아니라 한일 베이스볼 클래식이 되어버렸다. 1라운드와 2라운드에거 총 4번 맞대결에 서로 2번씩 치고 받으며 나란히 결승까지 올라갔지만 연장까지 가는 명승부끝에 결국 이번에도 일본에게 패하면서 준우승에 만족해야 했다.
- 2015 WBSC 프리미어 12
2013 타이중 쇼크와 같은 점수차인 0:5로 일본에게 완패했으나 준결승전에서 제대로 복수했다.
- 2017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삐그덕 거리는 한일전 세대라고 봐도 무방한데, 1번째 한일전에서 7:8로 아깝게 패했으나 2번째 한일전 겸 결승전에선 0:7로 대패했다.
- 2019 WBSC 프리미어 12
슈퍼라운드 마지막 일정 경기와 결승전에서 2연속으로 맞붙게 되었다.[18] 그리고 2번 연속 패배하며 준우승을 차지했다.
- 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이강철호/202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일본전 3회초까진 다르빗슈를 상대로 3:0으로 선취점을 뽑아내서 잠시나마 기대감을 자아냈으나[19] 이후 1득점밖에 더하지 못하고 13실점을 허용하며 4:13으로 무기력하게 패배했다.
- 2023 아시아 프로야구 챔피언십
지난번 동일한 이름의 대회에서 2번 연속 패배한 설욕을 이 경기로 갚아야 하는 상황이다.치열한 명승부를 치렀지만 결국 지난 대회처럼 또 준우승으로 마무리했다.
4. 프로팀
KBO 리그 KBO League | 일본프로야구 日本プロ野球 |
- 1991년 / 1995년 / 1999년 한일 슈퍼게임
- 아시아시리즈
- 한일 클럽 챔피언십
과거 일본과 한국의 프로리그는 엄청난 격차를 보였다. 일본에서는 1920년 세미프로리그인 지바우라리그가 개막했고, 1934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의 방일경기를 계기로 1936년에 일본프로야구가 본격적으로 출범했다. 반면 한국은 1970년대 현대건설이 세미프로팀 출범을 시도했지만 한일은행과 제일은행과의 갈등으로 실현되지 못했고 이어 재미교포 사업가 홍윤희가 프로야구 출범을 시도했으나 돈과 어른들의 사정으로 인해 출범되지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1981년 한국야구위원회가 설립되고 1982년에야 비로소 프로야구가 시작되었는데 일본과의 간격은 시간만 따진다면 무려 50여년에 달하는 것이다.[20]
이 격차를 여실히 드러낸 것은 1991년에 열린 한일 슈퍼게임으로 특히 일본 투수들의 포크볼은 한국 선수들이 처음 보는 구종이었고 이 구종에 타자들은 맥을 못추었다. 1995, 1997년에도 일본과의 야구 격차만이 확인되었으나 더이상 한일 슈퍼리그는 열리지 않았고 이후 2005년 아시아 시리즈가 출범하며 다시 클럽 대항전이 열리게 되었으나 한국시리즈와 일본시리즈가 종료된 후 겨울에 열린 대회였던지라 양국 모두 전력으로 경기를 펼치지 않아 큰 의미를 두기엔 어려웠다.
시즌 중에 베스트 멤버들이 참가해 펼쳐지는 축구클럽대항전인 아시아 챔피언스 리그 같은 대회가 열리지 않는 이상 프로팀의 100% 전력 맞대결은 사실상 볼 수가 없는 실정이다. 특히 야구는 한달 내내 경기가 펼쳐지기 때문에 앞으로 이와같은 경기를 보긴 어렵다.[21]
5. 기타
- 성인팀의 경우 2009년 WBC 결승 이후로는 한일전에서 한국이 일본을 상대로 홈팀 신분으로 경기를 치른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5.1. 18세 이하 청소년 대표팀
- 2012년에는 1982년 서울에서 열린 야구 월드컵 이후, 30년만에 IBAF가 주관하는 국제 야구대회가 대한민국에서 개최되었다. 바로 제25회 IBAF 청소년야구선수권대회였는데 이때도 한일전이 열렸다. 9월 6일에 벌어진 한일전에선 한국이 2:4로 패했다. 이감독이 대회 전에 일본 팀이 부정배트를 쓴다는 발언을 하며 신경전을 벌였으나 되려 역효과를 냈다는 평. 우승을 노리던 한국은 콜롬비아, 대만에게도 패하면서 결승 진출도 좌절되었고 5, 6위전으로 밀려났는데 웬걸. 일본도 미국, 콜롬비아, 대만에게 덜미를 잡히면서 결승행이 좌절되면서 5, 6위전으로 밀려나서 9월 8일 2번째 한일전을 치르게 됐다. 남은 건 자존심 대결이지만...한국이 가볍게 3:0으로 승리. 참고로 이날 한국의 선발은 이건욱이었고 일본의 선발은 오타니 쇼헤이였다. 자세한 내용은 대한민국 U-18 야구 국가대표팀/2012 문서 참조.
- 그 뒤, 1년만인 2015년 제27회 WBSC U-18 야구 월드컵에서는 정반대로 일본에게 0:12, 콜드게임으로 참패했다. 한국은 호주를 이기고 3위를 거두긴 했으나 7년만의 대회 우승 좌절도 그렇거니와 공교롭게도 한일전에서 콜드 게임패로 참패했기에 엄청나게 욕을 처먹었다. 그나마 처음으로 대회를 개최한 일본이 미국에게 밀려 2회 연속 준우승을 거둬 한국에서 통쾌해했다. 참고로 일본은 이 대회에서 준우승만 4번이며 한국은 5번 우승해봤다. 그나마도 이걸 아주 못했다고 욕할게 못되는 것이 2008년 우승 이후 최고 성적을 거둔게 이 대회다. 전날 미국에게 통한의 역전패를 당하지 않았다면 최소 준우승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더 아쉬운 대목이었다. 그러나, 오로지 한일전 콜드 게임 굴욕으로 인하여 욕을 펑펑 먹고 7년만에 거둔 4강 선전이 가려져버렸다.
- 2016년 아시아청소년야구대회에서 한일전이 펼쳐졌다. 김민의 호투가 있었지만 결국 수비에서 승부가 갈리며 3:1 아쉬운 패배를 기록했다. 이해 대회 우승은 일본 U-18 야구 국가대표팀이 차지했다.
- 2017년 9월 9일{한국시간으로는 9월 10일},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썬더베이에서 열리는 WBSC U-18 야구 월드컵 슈퍼라운드 3번째 경기에서 일본을 6:4로 꺽고 미국과의 결승전을 치르게 되었다.
8-0 완봉패로 준우승
- 2017년 9월 9일{한국시간으로는 9월 10일}, 캐나다의 온타리오주 썬더베이에서 열리는 WBSC U-18 야구 월드컵 슈퍼라운드 3번째 경기에서 일본을 5:4로 꺾었다. 그 이후 일본은 호주에게 패한 뒤 5위가 확정되었고, 대한민국은 미국에게 패한 뒤 호주와 3,4위전을 하게 되었다
- 2019년 9월 6일에 열린 WBSC U-18 야구 월드컵 슈퍼라운드 2번째 경기에서 소형준의 역투와 8회에 나온 극적인 득점, 그리고 승부치기 까지는 접전 끝에 극적인 승리를 거두었다.
- 2022 WBSC 월드컵에는 오프닝 라운드에서 8:0으로 다승을 거두었지만 동메달 결정전에서 패했다.
5.2. 리틀야구
- 2014 리틀야구 월드시리즈에서 한국 대표팀은 예선에서 일본을 4:2로 누르고 결선에 진출했고, 다시 만난 일본을 12:3으로 개박살낸 후, 결승전에서도 미국 대표팀을 8:4로 꺾고 우승한 후 그라운드에 태극기를 꽂았다. 29년만에 우승한 대표팀은 금의환향했다.
5.3. 여자야구
우선 일본과 한국에는 여자야구 리그들이 존재한다. 일본은 일본여자프로야구, 한국은 한국여자야구대회 및 토너먼트 대회들. 일본은 프로리그에 가깝게 연고지가 존재하고 유소년 야구팀을 운영할 계획을 발표하는 등 준프로야구에 가까운 반면 한국은 선수 이적 등에 제약이 존재하며 스폰서를 받는 팀등이 있지만 실업리그와 사회인야구의 사이에 위치해 있다.[22]대한민국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과 일본 여자 야구 국가대표팀간의 첫 맞대결은 2004년에 열렸다. 일본에서 열린 제4회 여자 야구 월드 시리즈(Women's Baseball World Series)경기였는데 이 경기에서 무려 0:53으로 5회 콜드게임 대패를 당했다. 하지만 도통 알려지지 않아서 한국에서도 일본 신문을 본 이들이 번역하여 올리면서 알려졌을 정도이다. 더불어 이 대회에 대하여 제대로 한국에서도 알려지지 못해 그저 여자야구 세계 선수권 대회로 국내 언론으로 작게 보도되었는데 여자야구 세계 선수권 대회는 아예 없었으며 Women's Baseball World Series는 미국 월드시리즈 이름을 본뜬 여자 야구 이벤트였다가 2004년 일본에서 열린 4회 대회를 국제대회로 확장해서 치러진 것뿐이다. 개최국 일본과 참가국 미국, 인도, 호주, 캐나다, 홍콩, 대만, 한국이 참가하여 한국은 홍콩,캐나다,일본과 경기를 벌여 콜드게임 3전전패에 6득점 93실점을 당했다.
하지만 알아둘 점은, 당시 한국 여자 국대선수가 없어서 한국팀으로 나간 팀은 비밀리에라는 여자야구 동호회팀이었다.
일본 언론도 제법 상세하게 보도하면서 그야말로 맨손의 야구가 좋아서 하는 한국 여인들, 그들을 크게 이겨도 자랑할게 아니며 그녀들이야말로 야구팬이라면 축하해줘야 하는 멋진 선수들이라고 일본 신문들이 찬사했기에 일본 관중들도 잘 알고 있었다.
이 대회가 치러지고 두달도 안돼 비로소 캐나다에서 치러진 제 1회 2004 IBAF 여자 야구 월드컵에서는 한국은 아예 나가지도 못했다. 그리고 4년 뒤 2008년 일본에서 열린 여자 월드컵대회에서 비밀리에팀이 아닌 한국 여자 야구 대표팀이 정식으로 출격해서 이번에는 11점차로 콜드게임으로 졌다. 그래도 4년전을 생각하면 정말 많이 선전했다.[23] 비록 2년 뒤 베네수엘라 대회에서 다시 만나 0-14로 일본에게 졌고 2015년 한국에서 열린 LG컵 국제 야구여자 대회에서 한국 여자 야구대표팀은 결승에 올랐으나 실업여자팀인 일본 아사히 트러스트팀에게 0-16으로 콜드 게임 참패해 준우승하는 등 부진한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2016년 부산 기장군에 위치한 기장-현대차 드림 볼파크에서 열린 제 6회 여자 야구 월드컵 4강에서 마주친 한국은 일본에 6:0으로 패배했지만, 역대 한일전에서 가장 적은 점수 차이를 기록하며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1] 사실 초창기부터 현재까지 꾸준히 일본의 야구 수준이 대한민국보다 몇 수는 높게 평가되어왔으나, 업셋이 자주 일어나는 야구라는 스포츠 종목 특성상 2010년대 중반까지 한일전에서 치열한 경기가 있었다. 그러나 그 이후에는 양국의 격차가 더욱 벌어지며 일본이 연전연승을 하고 있다.[2] 대만과의 경기에도 관중석 상당수가 비어있는 모습이 허다할 정도인데 비해 한국전이 열리는 날은 인산인해에 빈자리가 없다. 이는 한일전 프로들끼리와의 경기는 일본에서 개최하는 경기가 많고 반대로 한국에서는 프로들만 소집하는 한일전에 홈 경기를 치른 적이 없기 때문이다. 그나마 고척 스카이돔 개장으로 한국에서 WBC를 치를 수 있게 되었으나 좌석 수가 적어서 개최 사례가 2017년 대회에 한국이 조에 들어간 1라운드뿐이었고, 2023년 대회 때 한국과 일본이 1라운드 같은 조가 되었을 때는 좌석이 훨씬 많은 도쿄 돔에서 열렸다. 한일전 못지 않게 관중 동원이 꽤 되는 경기는 미국전인데 이마저도 빈자리는 듬성듬성 보이고 국제대회 특성상 미일전은 일본보다는 미국에서 더욱 자주 열린다.[3] 이때 한국은 17%를 기록하였다.[4] 물론 2006년 WBC 준결승과 2009년 WBC 아시아 예선전 첫 대결처럼 압승했던 경우도 있었다. 그러나 김광현을 적극적으로 연구한 결과였고 이후 리매치였던 아시아 예선 결승에서는 바로 영봉패에 볼넷조차 얻지 못한 채 패했다.[5] 물론 초창기에는 일본이 압도적인 점수차로 이기는 일이 많았지만 시간이 지날수록 한국의 경기력도 상승하여 이제는 아예 지더라도 일본을 정말 진빠지게 하는 상태로 몰아붙이는 경우가 비일비재했다. 게다가 정석대로 하는 일본 야구에 비해 한국은 여러 작전을 동원한 응용 플레이에 능한지라 일본의 허를 찌르는 일도 부지기수였다.[6] 물론 현재도 미국을 가장 의식하고 최대의 라이벌로 여기기는 하나 자국 프로리그를 더욱 중시하고 국가대항전에 전력을 다하지 않는 미국과는 진검승부를 가리기 어렵다. 다만 2023 WBC에서는 미국도 꽤 진지하게 임하였고 그러한 미국을 상대로 우승을 차지하며 일본 야구의 저력을 선보였다.[7] 일본의 내로라하는 야구 원로들이 총출동해 훈수를 두는 자리까지 마련되었다. 다만 원로가 훈수를 두는 자리까지 마련한 것은 한국에 패한 것을 떠나 일본 야구 역사상 최악의 행보를 보인 것 때문이다. 2015 프리미어 12을 기준으로 하면 호시노 감독이 오타니 쇼헤이를 불펜 대기를 시키고 G.G 사토가 오재원의 타구를 놓쳐 경기를 완전히 말아먹은 것이다.[8] 이제는 한국과 대항전을 가지게 되면 일찍부터 전력분석에 들어가는 등 부산한 움직임을 보인다. 특히 새로 국대에 합류했거나 일본에서도 알려진 선수들에 대해서는 한국 야구에 밝은 전문가들을 초청해 나름 여러가지 분석과 대응책을 내놓기도 한다.[9] 게다가 2006년 1회 WBC부터 일본 대표팀은 자국의 야구 인기를 바탕으로 일본 국내에 큰 이미지를 심었다. 멤버 또한 초호화로 이른바 꿈의 팀(Dream Team). 그런데 이 시기가 2006년인데 한류 이미지나 한국에 대한 경제, 라이벌 심리 등이 딱 맞아 떨어진데다 아시아 최강을 자부하던 대표팀이 한 수 아래라 생각하던 팀이 거의 대등한 경기를 펼치니 일본 입장에서도 한국 야구를 높게 평하였다.[10] 게다가 한일전에서 패하면 감독들은 언론에서 크게 비난받는다. 이런 스트레스가 커서 한번 정상에 오른 감독들은 다시는 대표팀을 안 맡으려 하는 케이스가 크다. 비단 감독 뿐 아니라 선수들 역시 마찬가지로 한일전에서 패하면 부진했던 선수에 대한 비난을 퍼붓는 것으로 유명하다. 일례로 2008년 베이징 올림픽 준결승전에서 패배의 실마리를 마련한 이와세 히토키, G.G 사토 등이 크게 비난받았다. 이러한 이유로 2020 도쿄 올림픽 일본 대표팀의 감독 이나바 아츠노리는 아예 "한국을 넘지 못하면 금메달은 없다"고 공언했다.[11] 베이징 키즈같은 경우 1990년대 초반생들보다는 낫다는 평가가 있으나, 그렇다한들 대표적인 황금세대인 1982년생들 혹은 1980년대 후반생들에 비하여 전세계적인 관점에서 보았을 때 기본적인 툴 + 전세계 야구계 대비 대한민국의 코칭 스타일이나 매니징 스타일의 후진성으로 인하여 전세계적으로는 그다지 황금세대로 평가받지 못한다. 그나마 투수진의 경우 고교 시절부터 평균 150을 던지는 강속구 투수들이 매년 등장하고 있어서 조금은 낫다.[12] 일본은 단순히 한국보다 야구를 잘하는 수준이 아니라, 세계 레벨에서 비교를 해도 미국과 더불어 ‘야구 양강’으로 불릴 만한 초강국이다. 일본은 미국 다음으로 오랜 야구 역사를 자랑하며 NPB는 세계 2위의 프로야구 리그이다. 또한 WBC 출범 이래 5차례 열린 대회에서 일본은 3차례나 우승을 거머쥐었다. 선수 개인으로 보아도 일본 야구의 전설 스즈키 이치로는 명전 첫턴 입성이 유력한 MLB의 레전드 중 하나이고 현 일본의 국민 스타인 오타니 쇼헤이는 세계 야구를 대표하는 아이콘이다. 게다가 고교야구 대회인 고시엔은 100년이 넘는 역사와 여전한 인기를 자랑하듯 야구 전통이 매우 탄탄하다. 이렇듯 야구의 역사와 인프라, 관심도 등에서도 양국의 차이는 현격한 편이다.[13] 특히 메이지 유신 직후에 야구가 도입되었고 1878년 일본 최초의 야구단인 니이바시 아스레틱 클럽(新橋 アスレチック 俱樂部)이 창단되었기에 이 시점에는 이미 일본에서 야구 기반이 상당히 갖춰진 상황이었다.[14] 두 팀의 A대표팀이 본격적으로 맞붙은 2003년부터 2009년까지 상대전적은 6승 6패.[15] 심지어 최근에는 8연패 중이다.[16] 프로+사회인+대학. 프로 8명, 사회인 야구 11명, 대학생 5명[17] 전해 한일전에서 활약했던 아베는 이 경기에서 도루 저지 2루 송구를 중견수 앞 안타로 만들어버리며 한국의 승리에 일조한다.[18] 올림픽 아시아예선에서 떨어진 뒤 프리미어 12 슈퍼라운드에서 대만에게 충격적인 패배를 당해 올림픽 진출이 불투명해졌지만, 멕시코를 이기면서 올림픽 티켓을 따내는 데 성공했다.[19] 이 경기 전까지 한국이 선취점을 뽑아내면 12승 1패였다.[20] 다만 50년의 시차가 꼭 50년의 실력 차이를 의미하진 않는다. 21세기 현대 야구에 들어서는 투수는 다양한 구종이 등장하고 마구가 개발되며, 타자는 그 다양한 구종을 효과적으로 쳐내기 위해 더 다양한 매커니즘과 스킬을 가진 타격 기술을 연마한다. 게다가 갈수록 발전하는 첨단 과학 정밀 기기와 첨단 의료 기술들을 동원하여 선수들의 부상 치료와 장단점 분석, 선수 개발 및 실력 향상 등이 이루어진다. 이러한 21세기의 기술적 혜택에서 한국프로야구도 예외는 아니기 때문에 프로야구의 늦은 출범이 꼭 그 시차에 비례한 실력적 열세를 의미하진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인프라를 비롯한 여러 분여에서 많이 뒤쳐졌기에 한국프로야구로서도 극복해야 할 숙제가 많았던 것은 사실이다.[21] 한국은 매주 월요일이 휴식일, 일본은 일정에 따라 휴식일이 배정된다.[22] 단, 사회인 야구보다는 실력이 월등하다고 보기도 하는 게 남자 사회인 야구팀들과 맞붙으면 여자 야구팀이 이기는 경우가 더 많다. 사야이에서도 이 내용을 다룬 적이 있다. 다만 이 경우는 팩트검증이 더 되기 전까지는 확실하게 단정짓기 어렵다. 우선 첫째, 한국여자야구에 비해 남자 사회인 야구는 그 층이 매우 다양하다. 소위 선수출신, 선출이 포함된 1부~2부 수준이랑 선출이 아예 없는 실력이 더 떨어지는 3부, 4부, 5부 혹은 그 이하 이렇게 같은 아마 내에서도 실력이 천차만별이며 여자야구팀이 더 많이 이겼다는 게 대체 어느 수준의 사회인 야구팀과 대결하여 이긴 것인지를 더 정확히 따져봐야 한다. 사야이라는 웹툰 작가의 증언 하나로만 가지고 수준차를 논하기는 무리인 셈. 더더군다나 대부분의 스포츠에서 그렇듯이 남녀간의 성대결이면 뭔가 특별한 큰 상금이 걸리거나 전력을 다해 승부해야 하는, 반드시 이겨야 하는 그런 경기가 아닌 이상 남자 쪽에서 봐주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므로 이를 감안하면 단순히 남자 사회인 야구팀을 많이 이겼다고 해서 여자야구 팀의 전력을 함부로 속단할 수는 없다.[23] 4년 전 콜드게임패를 안긴 홍콩을 15-5로 이기며 설욕은 했다. 참고로 여자야구 월드컵에선 일본이 여럿 우승(2014년까지 6번 열린 월드컵 대회에서 우승 4번, 준우승 2번이며 결승에서 캐나다와 호주를 10점차 콜드게임으로 이기고 우승했다. 미국에게는 2012,2014년 3-0으로 이기며 우승)할 정도로 일본여자야구는 세계 최강급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