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2-10 11:08:53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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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대회 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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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파일:2009wbc_japan.jpg
두 번째 우승
★★

1. 개요2. 경기 결과
2.1. 선발 타순2.2. 선발 수비 포지션
3. 상세
3.1. 1회부터 8회까지3.2. 극적인 동점, 아쉬운 패배3.3. 사인 미스의 비밀
4. 평가5. 여담6. 관련 항목7.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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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2009 WORLD BASEBALL CLASSIC FINAL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c9uogoI1K1sqk8veo7_r2_400.png
대한민국 일본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결승전으로 야구 한일전이 열린 첫 번째 WBC 결승전이기도 하다.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은 1회 대회 당시 미국의 광탈로 인해 어떻게든 미국을 밀어주기 위한 대진을 만들려 했고 그 결과 이론상 한 팀이 특정 팀을 최대 5번까지 만날 수 있기에 '한일간의 5번 승부가 벌어질 수 있다'는 농담도 나왔는데 실제로 성사되었다. 그래서 나온 말이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이 아니라 한일 베이스볼 클래식이다."라는 조롱이었다.

예선과 결선 라운드를 거치며 한국과 일본은 4차례 만나 2승 2패로 동률을 기록했고 최종 매치가 바로 결승전에서 열리며 더하고 뺄것도 없는 역대급 단두대 매치가 결국 성사되었다. 한국은 예선과 본선에서도 일본전 선발로 나온 봉중근, 일본은 예선 A조 승자전 선발로 나온 이와쿠마 히사시가 선발로 등판했다.

2. 경기 결과

파일: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LA 라운드.gif 2009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결승전
2009 World Baseball Classic Final Game

━━━━━━━━━━━━━━━━━━━━━━━━━━━━
3.23(수) 18:00, 다저 스타디움, 54,846명
중계방송사: 파일:MBC 로고 화이트.svg | 캐스터:한광섭 | 해설:허구연
선발 1 2 3 4 5 6 7 8 9 10 R H E B
파일:일본 국기.svg 일본 이와쿠마 히사시 0 0 1 0 0 0 1 1 0 2 5 15 0 6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대한민국 봉중근 0 0 0 0 1 0 0 1 1 0 3 5 1 5
기록지
ESPN 경기 풀 영상
일본 투수기록
투수 기록 이닝 타자 삼진 안타 사사구 실점 자책점 당일 ERA
이와쿠마 히사시 7⅔ 23 6 4 2 2 2 2.50
스기우치 도시야 홀드 1 0 0 0 0 0 .00
다르빗슈 유 블론
승리
2 7 5 1 3 1 1 4.50
한국 투수기록
투수 기록 이닝 타자 삼진 안타 사사구 실점 자책점 당일 ERA
봉중근 4 22 1 6 3 1 0 2.25
정현욱 3⅓ 13 4 4 0 2 2 5.80
류현진 2 0 1 0 0 0 0.00
임창용 패전 2 6 2 4 3 2 2 9.00

2.1. 선발 타순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파일:external/66.media.tumblr.com/tumblr_oc9uogoI1K1sqk8veo7_r2_400.png
타순 선수명 소속팀 타순 선수명 소속팀
1 이용규 KIA 타이거즈 1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2 이진영 SK 와이번스 2 나카지마 히로유키 세이부 라이온즈
3 김현수 두산 베어스 3 아오키 노리치카 야쿠르트 스왈로즈
4 김태균 한화 이글스 4 조지마 겐지 시애틀 매리너스
5 추신수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5 오가사와라 미치히로 요미우리 자이언츠
6 이범호 한화 이글스 6 우치카와 세이이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7 고영민 두산 베어스 7 구리하라 켄타 히로시마 도요 카프
8 박경완 SK 와이번스 8 이와무라 아키노리 탬파베이 레이스
9 박기혁 롯데 자이언츠 9 카타오카 야스유키 세이부 라이온즈
SP 봉중근 LG 트윈스 SP 이와쿠마 히사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2.2. 선발 수비 포지션

파일: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svg

LF

CF

RF

SS

2B

3B

SP

1B

DH

C
[[일본|
파일:일본 국기.svg
]]

파일: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로고 2.svg

LF

CF

RF

SS

2B

3B

SP

1B

DH

C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3. 상세

3.1. 1회부터 8회까지

1회와 2회 연속 2사 1,2루 기회를 놓친 일본은 3회 나카지마 히로유키의 유격수 앞 내야안타와 2루 실책 으로 무사 1,2루 황금의 기회를 잡았다.

당시, 고영민이 2루 실책을 범한 아오키 노리치카의 타구는 2루수 정면으로 뻗은 타구였기에 고영민이 충분히 잡을 수 있는 타구였다. 하지만 더블플레이를 노리던 고영민은 타구를 잡기도 전에 타구가 아닌 주자를 보았고 타구는 글러브를 맞고 우익수 쪽으로 흘렀다.[1] 다음 타자 조지마 겐지는 3루 땅볼로 처리했지만 봉중근오가사와라 미치히로에게 우전 안타를 맞고 선취점을 빼앗겼다. 봉중근우치카와 세이이치에게 다시 우전안타를 허용해 1사 만루에 몰렸으나 구리하라 겐타를 3루 땅볼로 5-4-3 병살을 잡아내며 최대 위기를 단 1실점으로 넘겼다.

일본 선발 이와쿠마 히사시의 호투에 3회까지 퍼펙트로 눌리던 한국은 4회 2사 후 김현수의 중전안타로 침묵에서 깨어났다. 이후 김태균이 풀카운트끝에 큰 타구를 쳤지만 아쉽게도 펜스 앞 워닝트랙에서 잡히고 말았다.

한국은 5회에도 절체절명의 위기를 맞이했다. 봉중근이 선두타자 나카지마 히로유키에게 볼넷을 내준 뒤, 히트 앤 런으로 아오키 노리치카에게 안타를 맞아 무사 1,3루의 위기가 된 것. 확실히 피로누적과 함께 일본전에 세번째 선발 등판이다보니 힘에 부치는 것이 느껴졌다. 위기에서 '신산' 김인식 감독의 용병술이 다시 한 번 빛을 발했다. 선발 봉중근에 이어 마운드에 오른 정현욱은 풀카운트 끝에 조지마 겐지를 바깥쪽 변화구로 헛스윙 삼진으로 잡았고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를 삼진으로 잡은 뒤에는 2루 도루를 노리던 1루주자[2]마저 잡아내 순식간에 이닝을 마쳤다.

5회에는 선두타자 추신수가 이와쿠마로부터 장쾌한 동점 솔로 홈런을 터뜨렸다. 이게 얼마나 대단한 거냐 하면, 이와쿠마의 전년도 피홈런 개수는 단 3개.[3] 선발로 1년 내내 200이닝 이상을 뛰고서 1년 동안 단 3개밖에 홈런을 허용하지 않았다는 뜻이다. 그런 이와쿠마에게 홈런을 친 거다. 2회 첫 타석에서 이와쿠마에게 유인구에 속아 맥없이 삼진으로 물러난 추신수는 볼카운트 1-1에서 시속 81마일짜리 몸쪽 커브를 걷어올렸다.[4][5] 쭉쭉 뻗어나간 타구는 좌중간 펜스를 넘었고 타구를 쫓던 일본 중견수 아오키 노리치카는 발을 동동 굴렀다. 이 중견수 담장 뒤로 넘기는 홈런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해설자들도 극찬을 하였다. '홈런이 극히 나오지 않는 이 구장에서 힘조절을 잘했다' 라고 평했다. 한국은 추신수 홈런에 이어 이범호가 삼진으로 물러난 뒤 고영민이 좌익선상 쪽 2루타성 타구를 쳐냈으나 좌익수 턱돌이의 호수비에 걸려 2루에서 아웃돼 상승세를 이어가는데 실패했다. 하지만 이는 명백히 오심이었다. 아웃 판정이 됐으나 느린 그림으로는 명백히 세이프였다. 타이밍 자체는 2루에서 아웃 타이밍이긴 했지만, 우치카와의 송구를 받은 2루수 이와무라 아키노리의 고영민을 향한 태그보다 고영민의 베이스 터치가 더 빨랐다.[6] 이 경기에서 이와쿠마에게 뽑아낸 안타는 단 네 개 였고, 이와쿠마를 상대로 실제로 스코어링 포지션[7]을 밟은 것은 단 두차례에 불과했다.[8] 이외에는 출루는 허용 해도 2루 이상을 허용하지 않은 이와쿠마였기에 이 판정이 더욱 아쉬운 것이었다. 물론, 고영민 뒤의 타자가 당시 컨디션이 안좋았던 박경완박기혁이었으므로 타점이 나오긴 어려운 상황[9]이기는 했지만, 이로 인해 흐름이 끊겨 버렸고 고영민 뒤의 박경완이 포수 팝플라이로 물러나며 홈런으로 다잡은 분위기를 다시 내주었다.

당시 이와쿠마는 3회까지 퍼펙트, 4회까지만으로 짤라 봐도 단 1피안타로 한국 타선을 그야말로 꽁꽁 묶으며 완벽히 제압하던 중이었다. 이런 상황에서 본인은 잘 막고 있는데, 같은 팀 타자들은 5회까지 6안타 3사사구로 고작 1점만을 뽑았을 정도로 변비 야구를 보여주고 있었으며 와중에 잘 막다가 추신수에게 홈런을 맞았으니 웬만한 투수였다면 흔들렸을 법도 한 상황이다. 하지만, 이와쿠마가 대단한 것이 그런 상황에서 홈런을 내줬음에도 후속타자인 이범호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안정감을 보여주었다는 것이다. 그런 상황에서 흐름을 다시 가져올 법한 고영민의 2루타로 이와쿠마와 찬스를 잘 못살리던 일본 야수들에게 부담감을 주며 일본이 쫓기는 분위기를 조성할 수 있었는데 그 찬스를 날렸으니 한국 입장에서는 아쉬울 법한 오심이었다. 야만없이지만, 오심만 아니었더라면 1아웃에 2루이므로 당시 빈타를 보여주던 박경완박기혁이더라도 한 명만 끈질기게 사사구[10] 등으로 출루를 했더라면 상위타선으로 이어져 이와쿠마에게 더 큰 부담을 줄 수 있었다.[11]어찌됐든, 한국은 결국 이와쿠마를 또 공략해내지 못해 완벽히 제압당한 것이 패인이 되었다.

6회에는 1사후 이용규가 볼넷으로 출루하였으나 이진영의 삼진과 도루사로 득점에 실패하였다. 이용규의 도루사의 경우, 2루에서 베이스 터치와 나카지마 히로유키이용규를 향한 태그가 거의 동타이밍이었으나 아웃판정이 났고 당시에는 비디오 판독이 없었기에 판정이 번복 될 리 없었다.[12] 실제 이용규스톡킹에 나와 도루 당시에, 본능적으로 태그보다 베이스 터치가 빠르다고 생각했다 한다. 16분 20초 부터 해당 발언을 들을 수 있으며, 정확히는 "나는 세이프로 봤었거든. 솔직히. 손이 먼저 들어갔다고 생각했거든. 지금 비디오 판독 있으면 정말 다시 보고 싶어"라고 밝혔으며 본인 스스로는 세이프라는 강한 확신이 있는듯하다. 덧붙여, 모름지기 주자라면 글러브 태그가 빨랐는지 베이스 터치가 빨랐는지 본능적으로 알 수 있다고도 말했다. 당일 경기에서 이와쿠마에게 스코어링 포지션 이상을 얻어낸 것이 단 두 번[13] 뿐이었으므로, 세이프 판정이 나지 못 한 것이 굉장히 아쉬운 부분. 여담으로, 이때 헤드퍼스트 슬라이딩을 시도한 이용규의 헬멧이 깨지는 상황이 일어났으며 수비수가 주자의 진루를 방해했다는 고의성 논란이 제기되었다. 깨진 헬멧은 기념관에 전시되었다고 한다. 당시 포구한 수비수는 다름아닌 나카지마 히로유키. 후술된 7회 나카지마 히로유키의 수비 방해와 더불어 이 이용규의 도루사 당시, 헬맷 깨질 때의 포구하는 수비수도 나카지마였기에, 한국 네티즌들에게 나카지마는 그야말로 집중 포화를 맞았다. 7회 수비 방해는 말할 것도 없고, 6회 이용규의 도루사 당시 포구 위치 선정도 상당히 위험한 플레이였다. 이 때문에, 명승부로 여겨지는 2009 WBC 결승전의 유일한 옥의 티가 나카지마의 비매너 플레이였다는 의견도 많았다. 다 된 명승부에 나카지마 뿌리기... 그리고 이용규의 대회 직후 귀국 당시 모습에 이 사건의 여파로 인한 눈가 옆 상처가 깊이 새겨져 있어 한국 야구 팬들에게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판정 면이든 플레이 고의성 측면이든, 여러모로 말이 많이 나온 장면.

이후, 일본은 7회 선두타자 카타오카 야스유키가 좌전안타와 도루를 성공하였고 이치로는 3루 앞 절묘한 기습번트로 무사 1,3루의 기회를 만들었고 2번 타자 나카지마 히로유키가 깨끗한 좌전안타로 역전 점수를 뽑아내며 2:1스코어로 다시 리드를 잡았다. 무사 1,2루의 계속되는 위기에서 아오키 노리치카의 펜스까지 가는 큰 타구를 추신수가 간신히 잡아낸후 2루주자였던 이치로가 3루까지 진루하였고 이후 조지마의 3루 땅볼 때 다시 한번 5-4-3의 병살타를 이끌어내며 위기를 막았다.[14] 여하튼 나카지마의 비매너 플레이는 한국/대만/미국/멕시코 해설가들에게 엄청난 악평을 듣게 되었고 자국인 일본에서는 오히려 쉴드 쳐주다가 무한정 까였다.

현재 해설진도 5회 고영민의 장타코스를 막아내고 어시스트를 기록한 우치카와의 수비[15]와 더불어 펜스에 부딪히며 장타성 타구를 막아낸 추신수, 한국의 2번의 깔끔한 병살타 처리 등 양 팀의 집중력 높은 수비를 극찬하는 모습이 여러번 나왔다.

8회초에는 정현욱이 선두타자 오가사와라 미치히로를 삼진으로 잡은뒤, 우치카와에게 안타를 맞았고, 교체된 류현진이 대타 이나바에게 1루선상의 인정 2루타를 맞은 1사 2,3루에서 이와무라가 희생플라이 1타점을 추가하며 3-1 스코어로 점수차를 벌려졌다.

그러나 한국의 뒷심은 이미 승부가 기울었다고 생각하는 순간 빛을 발했다. 1-3으로 뒤진 운명의 8회, 이범호의 우월 2루타와 고영민의 내야 땅볼로 주자가 3루까지 진루하였고 박경완의 타석을 대신한 대타 이대호가 깊숙한 중견수 희생플라이로 불러들여 다시 2-3으로 따라붙었다. 이후 이와쿠마박기혁을 볼넷으로 내보낸 뒤 교체되었고[16], 교체된 좌완 스기우치 토시야를 상대로 이용규의 잘맞은 타구가 좌익수 정면으로 향하면서 이닝이 종료되었다.

3.2. 극적인 동점, 아쉬운 패배

9회초 교체된 임창용이 선두타자 이치로에게 우월 2루타를 허용했는데, 다음 타자 나카지마 히로유키의 강습 타구를 고영민의 호수비로 막았다. 이후 아오키 노리치카를 고의사구로 거른 뒤 조지마 겐지오가사와라를 범타 처리하며 위기를 잘 넘겼다. 3-2 스코어의 긴장감이 이어지던 9회말에 올라온 마무리 투수는 일본을 대표하는 마무리 후지카와 큐지[17]가 아닌 다르빗슈 유. 첫 타자 정근우다르빗슈 유의 슬라이더에 속아 삼진아웃 당한 뒤 김현수, 김태균이 연이어 볼넷 출루했다. 1사 1,2루 역전 기회에 추신수가 타석을 맞았으나 낮은 변화구에 삼진으로 물러났다. 9회말 2아웃. 타석에는 이범호가 섰다. 벼랑 끝까지 몰린 한국의 야구팬들은 8회 2루타를 쳐낸 이범호의 방망이만을 믿었다. 1구는 떨어지는 변화구였다. 2구는 몸쪽 빠른 공으로 스트라이크. 그리고 3구째, 이범호는 앞서 정근우가 놓쳤던 다르빗슈 유의 슬라이더를 받아쳤고 타구는 2, 3루 사이를 갈랐다. 대주자 이종욱이 홈으로 전력 질주했고 좌익수 우치카와는 홈승부를 포기했다.

9회말 2아웃에 만든 극적인 동점이었다. 이 안타가 더욱 대단했던 이유는 당시 대회에서 다르빗슈 유는 우타자를 상대로 이범호와의 타석 이전에 22타수 2안타를 기록 중이었다. 즉, 피안타율 0.091로 극강의 모습을 보이고 있었던 중. 그런 다르빗슈 유를 상대로 깔끔한 좌전 안타를 얻어냈으니 극적인 순간에 이범호의 집중력이 대단했다고 볼 수 밖에. 동점타를 허용한 다르빗슈 유는 다음 타자 고영민을 상대로 분노의 156km/h(...)[18]를 기록하며 4구만에 삼진을 잡아냈다. 이닝이 종료되며 연장으로 가게 되었는데, 결과론이지만 한국은 이 때 경기를 끝냈어야 했다. 대주자 투입으로 김현수, 김태균을 교체한 데다가 9회초부터 올라온 임창용의 컨디션도 최고조가 아니었고,[19] 그 뒤에 올라올 투수들도 마땅치 않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연장 10회 점수는 3-3. 일본은 우치카와 세이이치가 우전안타로 출루한 뒤 구리하라 켄타의 희생번트로 이룬 1사 2루에서 이와무라 아키노리의 좌전안타로 1사 1,3루의 찬스를 만들었다. 이후 대타 가와사키 무네노리가 3루수 파울플라이로 물러난 2사 1,3루에서 이와무라의 무관심 도루로 2사 2,3루를 만들었고 오늘따라 츤츤댄 타석에 들어선 이치로가 8구까지 가는 접전을 벌였고 투스트라이크 이후 임창용의 원바운드되는 볼을 파울로 만드는 등 간신히 살아남은 뒤 중견수 앞에 떨어지는 2타점 결승타로 경기를 결정지었다.
이치로의 2타점 적시타
이치로에게 안타를 허용한 후 임창용은 2사 만루의 위기에 몰렸지만 간신히 삼진을 잡아내며 더 이상의 실점을 하지 않았다.[20]

그리고 10회말 다르빗슈 유는 선두타자 강민호를 볼넷으로 내보냈지만 이후 대타 최정을 삼진, 이용규를 중견수 플라이, 정근우를 삼진으로 돌려세우며 경기를 마무리했다.[21]

3.3. 사인 미스의 비밀

당시 상황에서 김인식 감독이 고의사구 지시를 내렸다는 것이 알려지고[22], 임창용의 감독으로 있었던 김응용, 선동열이 관련 인터뷰에서 임창용이 지시를 무시하고 고집을 부려 승부를 한 것처럼 말하는 바람에 더더욱 가루가 되도록 까였다. 그러나 2014년에 나지완을 거르지 않고 상대하다 역전타를 쳐맞는 것을 보고 이 부분은 재조명받게 되었다.

참고로 실제로 결승타를 맞기 직전 2사 1,3루 상황에서 1루수가 베이스에서 떨어져서 1루 주자가 견제 없이 2루로 뛰게 놔두었고, 도루 상황에서 포수도 2루로 공을 던지지 않았다[23]

훗날 하일성 전 KBO 사무총장이 KBS 아침마당에 출연, 당시 상황을 회고하며 김인식 감독에게 어떻게 지시했냐고 묻자 그가 말하길 "내가 일어서서 적극적으로 거르라고 지시했어야 했는데 그러질 못했다. 모두 내 탓이다."

하지만 김인식은 이후 아침마당에서의 발언에 대한 인터뷰에서 "위기의 상황, 1루가 비었고 상대가 강타자야. 상훈이도 알겠지만 두가지 방법 중 하나를 택하잖아. 볼을 던지다가 상대타자가 말려들지 않으면 자연스럽게 거르는 거고, 포수가 완전히 일어나서 고의사구를 던지게도 하지. 임창용에게 볼넷 사인을 냈다. 양상문 투수코치한테 확인도 했어. '창용이가 사인을 본 거지'라고 물었더니 '확인했습니다'라고 답하더라고. 그런데 공이 한복판으로 가네. 사실 이해가 잘 안됐어. 그런 상황이라면 벤치에서 '거르라'는 사인이 안나와도 공을 뺄 것 같은데. 당시 언론에는 밝히지 않은 얘긴데…. 불펜에 (좌완)류현진이 있었으니까, (좌타자)이치로를 상대하게 하려 했어. 그 다음에 임창용을 내세우려고 했지. 그런데 임창용이 굳이 이치로부터 던지겠다고 한다는 거야. 본인에게 직접 확인은 못했어. 감독으로서 '이상하다'고 생각은 했는데 임창용의 뜻을 따랐지.[24] 결승전이 끝나고, 다음날 아침 창용이를 불렀어. 커피한잔 하자고. '사인을 봤냐'고 물었는데 창용이는 '못봤습니다'고 답하더라. 지금 생각해봐도 잘 모르겠네. 확실한 건 '포수보고 일어나서 공을 받으라'는 지시를 안했으니까. 내 잘못이라고 한 거지. 감독이 책임져야할 부분이고."라고 말했다.


일본의 "카리스마 백서"라는 프로그램에서 이 사건을 분석한 프로그램을 방영하였고, 그 프로그램에 의하면 당시 투수코치인 양상문이 감독의 지시를 따르지 않고 임창용에게 고의사구 사인을 전하지 않았다는 사실이 밝혀져 또다른 논란을 낳았다. 하지만 당 프로그램에 출연한 김인식 감독과 양상문 코치는 프로그램이 자신들이 실제로 한 이야기와는 많이 다른 방향으로 방송을 했다며, 통역이 말을 잘못 전한 것이거나 일본 취재진이 내용을 왜곡한 것이라며 반박하였다.#

양 코치는 "내가 감독님의 지시를 어긴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이야기했으며, 김 감독은 "양 코치에게 어렵게 승부하라는 지시를 두번이나 내렸고, 이 내용이 전달됐는지 확인까지 했다. 고의볼넷을 내주라는 의미는 아니었으나, 승부가 여의치 않을 땐 정면대결을 피하고 볼넷을 내주라는 의미도 있었다."라고 말하였다.

그런데, 강민호가 3년이나 지나서 자기 잘못이라며 자백했다.

4. 평가

일본 입장에서는 참으로 안 풀렸던 경기. 한국이 5안타 5사사구(5볼넷)으로 3점을 낸 반면, 일본은 15안타 6사사구(5볼넷 1고의 사구)로 5점을 간신히 내는 변비야구를 했다.

한국입장에서는 반대로 5점만 내준게 용할 정도로 힘든 경기였다. 거의 매이닝 위기를 맞았고, 나올 수 있는 투수자원들이 한정되어 있어서 확실히 일본 타자들이 이전보다 공략을 잘해서 고전했다.[25] 또한 타자들이 이와쿠마 히사시를 제대로 공략하지 못한 것도 아쉬운 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국 야구의 빠른 성장을 세계에 알린 데 의의가 있다고 할 수 있는 대회였다. 아무리 변수가 많은 단기전이었다고 해도 당시 28년의 짧은 역사를 가진 한국프로야구가 그보다 50년 더 앞선 일본프로야구 선수들과 나름대로 대등하게 맞섰다는 것도 한국 야구 팬들의 자긍심을 고취시킬 만했다.[26] 비록 일본과는 5번이나 만나게 되니 결국 4, 5차전에서 2연패하며 양국의 수준 차이를 극명히 드러내기는 했지만, 그래도 1차전을 제외하면 모두 나름 팽팽한 승부였다는 것은 자랑할만한 결과라 할 수 있겠다.

5. 여담

  • 한국은 졌지만 잘 싸웠다라는 평가를 들을 만한 경기를 보여주었다. 이후 한국은 WBC에서 조별리그조차 통과하지 못하여 이 경기가 현재까지 한국의 WBC 마지막 토너먼트 경기로 남아있다.
  • 이 경기 이후로 2015 프리미어 12를 제외하면 사실상 한국 야구의 전성기가 종말을 고했기에, 최대 적기였던 이때 wbc 우승을 놓친 것은 한국 입장에서 굉장히 아쉽게 되었다. 현 시점에서 일본과의 전력차도 이때와는 비교도 안될정도로 멀리 벌어져 버렸고, 이 대회 이후로 미국이나 도미니카 공화국 등등 여러 야구 강호들도 제대로된 메이저리그 올스타급 라인업을 지속적으로 내보내고 있기에 사실상 한국의 우승은 요원해져 버렸기 때문.
  • 일본은 15년 뒤인 2024 WBSC 프리미어 12에서 조별리그와 라운드 토너먼트에서 연이어 이긴 대만에게 막상 결승에서 완봉패하면서 준우승했다. 바로 이 2009년 대회에서 한국이 일본을 2번 이기고 결승에서 패해 준우승한 결과를 재현한 셈이다. 일본은 1군 선수진을 이끌고 홈경기 결승전에서 대만에게 완봉패했고 27연승을 달리던 일본 1진 국대팀 연승도 깨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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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어필을 하자면 고영민은 좋은 판단을 고려했으나 캐치를 하지 못하여 그렇게 된 것이라고.[2] 이때 타이밍상으로는 세이프였지만 오버 슬라이딩으로 베이스에서 손이 떨어졌고, 이 틈을 노린 박기혁이 재치있게 아오키를 태그, 아웃시키는데 성공했다.[3] 참고로, 이와쿠마가 피홈런 3개의 기록으로 마친 2008년은 풀 로테이션을 돌며 200이닝을 넘긴 시즌이었다. 즉, 200이닝 넘게 뛰고도 3개 밖에 안맞은 시즌. 이 기록은 정확히 50년 만에 나온 대기록. 자세한 내용은 2008년 이와쿠마 피칭 내용 참조.[4] 당시 느린 화면에 잡혔을 때, 추신수의 배트에 공이 맞는 순간 이와쿠마는 고개를 숙였다. 임팩트를 보아하니 홈런임을 직감하였던듯..[5] 추신수의 홈런 당시 이와쿠마의 표정을 클로즈업한 영상 2분 경 부터 해당 장면이 나온다. 맞자마자 홈런임을 직감하고 고개를 떨구는 이와쿠마의 모습이 인상적이다.[6] 당시 2루에서의 느린 그림. 1시간 26분 48초 부터 해당 장면이 나온다.[7] 2루 이상[8] 정확히는 추신수의 홈런 그리고 8회 이범호의 2루타가 전부였다. 즉, 이날 경기 8회까지 중에 2루 이상을 밟아본 주자가 추신수, 이범호 단 둘 뿐이었다는 것.[9] 이 때문에 이 경기를 언급할 때, 이 오심이 자주 언급되지는 않는다. 두 타자의 타격을 봤을 때, 후속타 불발로 득점이 나오기 어려웠을 것이라 추측했기 때문으로 보인다.[10] 실제로 박기혁은 8회에 이와쿠마와 풀카운트 접전 끝에 볼넷으로 출루했다.[11] 애당초 야구 단기전에서 장타는 매우 중요한데 그 장타가 날라가고 주자도 루상에서 아예 지워졌으니, 스코어링 가능성 자체가 사라진 것이므로 후속 타자가 누구든 오심이 아쉬울 수 밖에 없는건 매한가지다.[12] 느린 그림으로 당시 상황을 봐도, 세이프인지 아웃인지 단번에 파악하기 굉장히 어렵고 애매하다.[13] 추신수의 홈런과 이범호의 2루타가 전부. 이외에는 출루는 허용해도 2루 이상을 내주지 않은 이와쿠마였다.[14] 1루주자였던 나카지마의 수비방해로 인해 타자주자는 이미 아웃된 상황이었다.[15] 사실 우치카와의 바운드된 볼을 포구하는 핸들링 자체는 뛰어났지만, 이 어시스트는 오심이다. 상술하였듯이, 우치카와의 송구 이후의 2루수 이와무라 아키노리의 태그보다 타자 주자 고영민의 베이스 터치가 명백하게 더 빨랐다.[16] 이날 이와쿠마의 기록은 7.2이닝 4피안타 2볼넷 2실점.[17] 참고로 전년도 후지카와 큐지는 63경기 출전 8승 1패 38 세이브 ERA 0.67이라는 엄청난 성적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저 1패는 이병규의 끝내기 홈런 이본규. 사요나라 호무란~으로 인한 패배. 당시 대회에서도 결승전 직전까지 4경기 4이닝 무실점이라는 좋은 기록을 남기고 있었다. 다만 작년 올림픽에서 이진영에게 8회 동점 적시타를 허용한 바 있었다.[18] 다르빗슈 유의 이 경기 최고 구속이었다.[19] 임창용은 대회 내내 공을 많이 던졌기 때문에 체력적으로 힘에 부칠만 했다.[20] 이때 임창용은 2이닝동안 무려 54구의 투구수를 기록했고, 김인식 감독은 무리한 피칭을 하게 해 임창용에게 미안하다는 발언을 하였다.[21] 여담으로 정근우는 9회말 대타이자 선두타자로 나와 슬라이더에 헛스윙 삼진으로 물러난뒤, 10회말에도 2사 1루에서 마지막 타자로 나왔고, 다시 한번 슬라이더에 속아 삼진 아웃(...)으로 물러났다. 즉, 이날 다르빗슈 유의 첫 아웃카운트와 마지막 아웃카운트를 모두 삼진으로 책임져준 선수...[22] 다만 바로 거르라고 한것이 아닌 유인구로 승부하다가 안되면 거르라는 뜻이었다.[23] 당시 1루 주자였던 이와무라는 "고의4구를 내는 분위기라면 굳이 자신이 도루할 필요가 없었을 것"이라는 생각을 밝힌 바 있다.[24] 임창용이 등판하기 직전인 9회초에 대한 이야기. 즉 아웃카운트 2개만 소화한 류현진에게 선두타자인 이치로 상대를 맡기고, 다음 가타오카 타석에서 임창용을 투입하려 했다는 것이다. 이미 9회 등판 상황에서도 임창용이 이치로를 직접 상대하고 싶어했다는 의지가 강했기에 10회초 타석에서도 본인 의지로 승부에 들어갔다고 김인식 감독은 이해한 것이다.[25] 김인식 감독은 "임창용이 이치로에게 점수를 안 내주고 연장전을 이어 갔더라도 후속 투수로는 일본전 난타를 당했던 김광현과 이재우, 컨디션이 나빴던 오승환 밖에 없었다"고 밝혔다. 더구나 이미 김태균과 김현수를 대주자로 교체한 데 이어 이대호 같은 예비전력들을 기용한 이후였기 때문에 공격력에 있어서 상당한 고전을 할 수 밖에 없었을 가능성도 있었다.[26] 당시 양 선수단의 연봉 총액은 일본이 한국의 17배였다.# NPB의 연봉 자체가 더 높은데다가 이치로(1700만 달러)를 포함한 현역 메이저리거들도 있다보니 격차가 크게 벌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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