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1 19:41:29

스즈키 이치로

스즈키 이치로의 수상 이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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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시리즈 우승 반지
199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우승 반지
2006 2009

파일:external/oi67.tinypic.com/judbhg.png 1994~1996년 퍼시픽 리그 MVP
쿠도 키미야스
(세이부 라이온즈)
스즈키 이치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니시구치 후미야
(세이부 라이온즈)

파일:external/oi67.tinypic.com/judbhg.png
1994~2000년 퍼시픽 리그 베스트 나인 외야수 부문

파일:external/oi67.tinypic.com/judbhg.png
1994~2000년 퍼시픽 리그 골든 글러브 외야수 부문

파일:Logo_of_AL_Alt.png 2001년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사사키 가즈히로
(시애틀 매리너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에릭 힌스키
(토론토 블루제이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1년 아메리칸 리그 MVP
제이슨 지암비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미겔 테하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파일:MLB Logo.png 2007년 메이저 리그 올스타 게임 MVP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J.D. 드류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1년 아메리칸 리그 실버 슬러거 외야수 부문
마글리오 오르도녜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다린 어스태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후안 곤잘레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마글리오 오르도녜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버니 윌리엄스
(뉴욕 양키스)
가렛 앤더슨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7년 아메리칸 리그 실버 슬러거 외야수 부문
블라디미르 게레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저메인 다이
(시카고 화이트삭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마글리오 오르도녜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카를로스 쿠엔틴
(시카고 화이트삭스)
조쉬 해밀턴
(텍사스 레인저스)
그래디 사이즈모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9년 아메리칸 리그 실버 슬러거 외야수 부문
카를로스 쿠엔틴
(시카고 화이트삭스)
조쉬 해밀턴
(텍사스 레인저스)
그래디 사이즈모어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토리 헌터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제이슨 베이
(보스턴 레드삭스)
칼 크로포드
(템파베이 레이스)
조쉬 해밀턴
(텍사스 레인저스)
호세 바티스타
(토론토 블루제이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1~2010년 아메리칸 리그 골드 글러브 외야수 부문
저메인 다이
(캔자스시티 로열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닉 마카키스
(볼티모어 오리올스)

파일:MLB Logo.png 2006년 메이저 리그 필딩 바이블상 우익수 부문
창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알렉스 리오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파일:MLB Logo.png 2009~2010년 메이저 리그 필딩 바이블상 우익수 부문
프랭클린 구티에레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저스틴 업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1년 아메리칸 리그 플레이어스 초이스상 뛰어난 신인
테런스 롱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에릭 힌스키
(토론토 블루제이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4년 아메리칸 리그 플레이어스 초이스상 뛰어난 선수
알렉스 로드리게스
(텍사스 레인저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데이비드 오티즈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1년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노마 가르시아파라
(보스턴 레드삭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4년 아메리칸 리그 타격왕
빌 밀러
(보스턴 레드삭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1년 아메리칸 리그 안타왕
대린 어스태드
(애너하임 에인절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알폰소 소리아노
(뉴욕 양키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4년 아메리칸 리그 안타왕
버논 웰스
(토론토 블루제이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6~2007년 아메리칸 리그 안타왕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더스틴 페드로이아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8년 아메리칸 리그 안타왕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더스틴 페드로이아
(보스턴 레드삭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9~2010년 아메리칸 리그 안타왕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더스틴 페드로이아
(보스턴 레드삭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아드리안 곤잘레스
(보스턴 레드삭스)
마이클 영
(텍사스 레인저스)

파일:Logo_of_AL_Alt.png 2001년 아메리칸 리그 도루왕
조니 데이먼
(캔자스시티 로열스)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알폰소 소리아노
(뉴욕 양키스)

보유 기록(MLB)[1]
데뷔 시즌 최다 안타 242안타[2]
단일 시즌 최다 안타 262안타[3]
최다 연속 시즌 200안타 10시즌[4]
통산 최다 200안타 시즌 10회[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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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chiro Suzuki.jpg
이름 스즈키 이치로
(鈴木 一郎, Ichiro Suzuki)
출생일 1973년 10월 22일 ([age(1973-10-22)]세)
국적 파일:일본 국기.png 일본
출신지 아이치현 니시카스가이군 토요야마정
신체 180cm
학력 아이치공대 부속 메이덴 고교[6]
포지션 우익수, 중견수[7], 투수[8]
투타 우투좌타
프로입단 1991년 드래프트 4라운드 41순위
소속팀 오릭스 블루웨이브 (1992~2000)
시애틀 매리너스 (2001~2012)
뉴욕 양키스 (2012~2014)
마이애미 말린스 (2015~2017)
시애틀 매리너스 (2018~2019)[9]
프런트 시애틀 매리너스 구단 특별 보좌관 (2018)[10]
지도자 타코마 레이니어스 코치 (2019~)
수상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176px-NPB_logo.svg.png 7× 올스타 (1994~2000)
일본 시리즈 우승 (1996)
일본 시리즈 우수선수상 (1996)
퍼시픽 리그 MVP (1994~1996)
골든 글러브 (1994~2000)
베스트 나인 (1994~2000)
쇼리키 마쓰타로상 (1994, 1995)
퍼시픽 리그 타격왕 (1994~2000)
퍼시픽 리그 안타왕 (1994~1998)
퍼시픽 리그 타점왕 (1995)
퍼시픽 리그 도루왕 (1995)
수상파일:MLB Logo.png 10× 올스타 (2001~2010)
AL MVP (2001)
AL 신인왕 (2001)
10× 골드 글러브 (2001~2010)
실버 슬러거 (2001, 2007, 2009)
올스타 게임 MVP (2007)

2× Esurance MLB Award (2005, 2010)[11]
3× 필딩 바이블상 (2006, 2009, 2010)[12]
MLBPAA 매리너스 하트 앤 허슬상 (2008)
2× 플레이어스 초이스상 (2000, 2004)[13]
매리너스 MVP (2001, 2004, 2007, 2009~2010)
AL 타격왕 (2001, 2004)
AL 안타왕 (2001, 2004, 2006~2010)
AL 도루왕 (2001)
말린스 제프 코나인상 (2016)
매리너스 프랜차이즈 성취상 (2019)
파일:external/busblog.tonypierce.com/isY8tSujm9hRG.gif
프로데뷔 20년, 드디어 4000안타를 치다.

1. 개요2. 선수 경력
2.1. 입단 전까지2.2.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2.3. 메이저리그 시절
2.3.1. 시애틀 매리너스2.3.2. 뉴욕 양키스
2.3.2.1. 2012 시즌2.3.2.2. 2013 시즌2.3.2.3. 2014 시즌
2.3.3. 마이애미 말린스
2.3.3.1. 2015 시즌2.3.3.2. 2016 시즌2.3.3.3. 2017 시즌
2.3.4. 시애틀 매리너스 복귀
2.3.4.1. 2018 시즌2.3.4.2. 2019 시즌
2.4. 현역 은퇴
3. 엇갈린 평가 (메이저리그에서의 평가)
3.1. 평가에 관해 의견이 나뉘는 원인
4. 특이한 타격 매커니즘5. 일본에서의 평가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6.1. 그 외 망언 논란과 실상
7. 기타8. 연도별 성적

1. 개요

노력하지 않고 무언가를 잘 해낼 수 있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저는 절대 천재가 아닙니다. 하지만 피나는 노력 끝에 뭔가를 이루는 사람이 천재라고 한다면, 저는 천재가 맞습니다.

천재의 손끝에는 노력이라는 핏방울이 묻어 있기 마련입니다. 제가 일본 최고의 선수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일본에서) 저보다 많이 연습한 선수가 한 명도 없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단 한 번도 저 자신과 맺은 약속을 어긴 적이 없습니다.
스즈키 이치로. "스스로를 천재라고 생각하냐"는 기자의 질문에.

일본의 전 야구선수.

통칭 '이치로(イチロー)'로 널리 알려져 있다. 1991년 NPB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 입단하며 프로 경력을 시작해 9시즌 동안 NPB를 초토화시키고 2001년 MLB(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의 시애틀 매리너스(Seattle Mariners)로 이적해 뛰어난 성적을 꾸준히 냈다. 그것도 28세부터 시작해 메이저리그 역대 최초로 3000안타-500도루-10골드 글러브를 달성한 레전드이자 2000년대 메이저리그 최고의 외야수 중 한 명으로 평가받고 있다.[14]

현재 알버트 푸홀스와 더불어 명예의 전당 첫턴 입성이 거의 확정적인 선수. 통산 기록

2019년 3월 21일, 기자회견을 통해 현역 은퇴를 공식 발표했다.

2. 선수 경력

2.1. 입단 전까지

중학시절까지는 큰 두각을 보이지는 않았지만 지역 강호고인 아이치공대부속 메이덴 고교에 진학하면서 나름 명문고임에도 불구하고 1학년부터 주전을 차지하면서 유명해 지기 시작했다.

고교야구가 그렇듯, 이시절의 이치로는 투수였다. 하지만 타격에 더 재능을 보이며 고교 통산 타율이 무려 .501 이나 되었고 이때부터 이미 재능을 보여주기 시작했다.


당시에는 투수로써의 재능은 타격에 미치지 못했고, 이것이 그의 운명을 갈랐다. 이치로는 원래 본인의 출신지 구단인 주니치 드래곤즈를 희망하고 있었고 스카우터와도 접촉했던 데다가 이때까지만 해도 상위픽 실력은 아니였기 때문에 타지역 구단이 손을 뻗을것 같지 않았던 선수라 무난하게 주니치의 3에서 4픽 지명이 예상되었다.

그런데 막상 드래프트날이 다가오자 주니치 내부에서는 이치로를 두고 투수로써 몸이 덜 만들어진 느낌이라는 이유를 들어 지명순번을 내리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당시 주니치의 담당 스카우터의 말에 따르면 어차피 아무도 안 지명 할것 같으니 5에서 6픽정도로 생각했다고 했는데, 뜬금없이 오릭스가 4픽에서 지명하는 바람에 적잖게 당황했으나 그냥 어쩔수 없지 라는게 당시 지명에 참가했던 구단간부들의 공통적인 생각이었다고 한다.

반대로 오릭스측은 주니치와 마찬가지로 투수 이치로에 대해서는 큰 가능성을 느끼지 못했지만, 당시 스카우터가 우연히도 배팅연습중인 이치로를 본 것을 계기로 타자라면 크게 성공할 재목이라고 생각했다고 한다. 그래서 3픽까지가 끝난 상황에서 원래 상위픽으로 생각했던 선수를 성공적으로 지명했기에, 4픽부터는 보험적인 선수 지명으로 전환했고 그래서 후보에 올랐던 이치로를 과감하게 지명했다고 한다.

어찌 보면 이때가 이치로의 인생의 전환점이었을지도 모른다. 주니치는 이치로를 어디까지나 투수로 보고 픽할 예정이었으니 만일 주니치에 들어갔다고 해도 투수의 야수전환은 어렵고 리스크가 따르기 때문에 초반 몇년은 투수로 굴려져서 성장기를 놓칠 가능성이 있었다. 반대로 실제로 지명에 성공한 오릭스는 처음부터 타자로 키울 생각이었기 때문에 초반 2년에 코칭스탭과의 불화를 빼면 적정하게 야수로써 실력을 쌓을 수 있는 환경을 가지고 프로생활을 시작 할 수 있었다.

참고로 이 주니치의 지명 실패에 제일 크게 분노한 사람은 다름아닌 호시노 센이치 당시 주니치 감독이었다. 이후 호시노는 고교신인은 투수 야수를 처음부터 정해놓고 픽하지 말고 종합적인 운동능력을 보고 픽하고, 입단 후에 실제로 선수를 보고 결정하는게 좋다는 지론을 가지게 되었다고 한다.

2.2.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파일:external/pbs.twimg.com/B7EmaqzCQAAfnYz.jpg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1991년 입단 당시 포지션은 투수. 드래프트 순위도 4위였던 평범한 선수였으나 들어가자마자 타격쪽으로 전향해서 큰 성공을 본 경우다. 특히 데뷔 초창기에는 특유의 시계추 타법으로 더욱 독특함이 두드러졌다.


다만 이 시계추 타법을 못마땅해한 팀 고위층때문에 풀타임시즌이 늦어지게 되었다.[15] 타격왕 출신의 재일교포 타격코치 아라이 히로마사의 지도하에 타격기술을 연마하였다.

1994년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초로 한 시즌 200안타라는 대기록을 세우고, 1995년 리그 우승, 1996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기여한다. 오릭스 블루웨이브의 전신인 한큐 브레이브스의 3연패(1975~77년) 이후 19년만에 우승을 안겨준 것. 일본 통산타율이 무려 .353으로 비공식 역대 최고 타율을 보유하고 있다. 공식 기준인 4000타수에 381타수 부족한 3619타수라서 때문에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이 되지 않으나, 일본 통산 타율 1위인 레론 리가 .320, 2위인 와카마츠 츠토무와 3위인 장훈이 .319, 현재 4위를 달리고 있는 오가사와라 미치히로가 .318이니 거의 넘사벽의 기록이라고 볼 수 있다. 설령 위에 모자란 381타수에서 모두 아웃을 당한다 해도 통산 타율은 .3195로 역대 2위. 여기에 안타 3개만 치면 .32025로 통산 타율 1위가 되는 정도..였으나, 2018년 아오키 노리치카가 NPB 통산 4000타수에 도달하여 타율 .329로 레론 리를 제치고 통산타율 1위를 차지하면서 경우의 수가 날아갔다.

특히 1995년에는 홈런과 볼넷을 제외한 공격 전 부문을 석권한 진기록을 가지고 있다.(이 당시 홈런 또한 1위 고쿠보 히로키와 단 3개차이인 25개였다.) 1994년부터 2000년까지 7년 연속 수위타자 타이틀을 거머쥐고 있었는데, 이것 또한 일본 신기록. 홈런을 제외한 나머지 기록들을 따져보면 가히 오 사다하루, 나가시마 시게오, 장훈, 노무라 카츠야, 오치아이 히로미츠와 같은 NPB의 전설적인 강타자들과 비교해도 전혀 뒤지지않는 통산 성적이라고 볼 수 있고, 타율만 본다면 이들을 월등히 넘어선다.

특히 압권은 2000시즌으로 1994, 1995시즌의 엄청난 임팩트 이후 일본리그 수준을 뛰어넘은 실력탓에 점차 매너리즘[16]에 빠졌던 스스로를 반성하고 4할을 선언한 후 시즌에 돌입 .387 - .460 - .539 - .999 21도루 1도루실패라는 말 그대로 경이적인 성적을 달성하게 된다.

2.3. 메이저리그 시절


MLB 공식 유투브에 올라온, 이치로가 메이저리그에서 세운 기록들을 요약한 영상.

2.3.1. 시애틀 매리너스

파일:2d15b004c3131bae202801ca02f5c86e.jpg
영광의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일본에서 제왕으로 군림했음에도 불구하고 어린시절부터 꿈이었던 메이저리그로의 진출을 위해 메이저리그 스프링캠프에 참가, 그 이후 엄청난 격차를 느끼고 타격폼 전면수정에 들어갔다.[17] 이런 노력은 결국 2001년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메이저리그 시애틀 매리너스로 진출[18]했다. 참고로 이때 이치로의 나이가 한국나이로 29살, 사실상 전성기 중후반이나 되어서 메이저리그로 처음 진출한 것이다.[19]
파일:71F95039-64AE-4EB1-8C01-8DA09E9B5051.jpg
이후 '이치로 신드롬'을 일으키며 진출 첫 해에 신인왕과 아메리칸 리그 수위 타자(타율 0.350),[20][21] 최다안타 1위(242안타), 도루왕(56도루), 리그 MVP를 동시 석권[22]하는 발판이 되었다. 또한 이 때의 기록을 일본에서도 높게 평가해 총리가 주관하는 국민영예상을 주려고 했으나 이치로 자신은 아직 갈 길이 남았다며 거절하였다.[23]

파일:이치로 루키시즌.jpg
파일:C29F1759-1E9B-4882-84B4-1B723D2E8345.jpg
올스타 투표 1위 트로피를 수상하고 있는 이치로(AL)와 베리 본즈(NL)

또한 데뷔 시즌 올스타 투표 1위를 달성했는데 이는 메이저리그 신기록이였다. 거기다 2003년까지 3연속 올스타 투표 1위를 달성했으며 데뷔 시즌부터 3년연속 올스타 1위로 뽑힌것은 더욱 전례가 없는 일이었다.

2002년에는 알폰소 소리아노단 1안타로 밀려 아쉽게 최다 안타왕을 놓쳤다.

2003년에도 베논 웰스에게 단 3안타 차이로 또 최다 안타왕을 놓쳤다...


그리고 2004년에는 1920년 조지 시슬러가 기록했던 257안타의 기록을 84년만에 경신하며 메이저리그 역대 단일시즌 최다인 262안타를 쳤다.[24]

타율 역시 .372으로 압도적인 타격왕을 차지했지만 게리 셰필드, 매니 라미레스약쟁이에게 밀려 외야수 실버슬러거는 사실상 강탈당했다.

또한 세이버메트릭스상으로도 BWAR, FWAR 모두 '리그 1위'를 기록하는 매우 뛰어난 활약을 하며[25] MVP 유력후보로도 거론되었으나 소속팀이 압도적으로 지구 꼴찌(...)를 해버려서 MVP 투표에서 표를 많이 받지 못했다.

그리고 다음년도 좋은 안타페이스를 보였으나 또 재작년과 그전처럼 최다안타 2위로 마감했다.



2007년 올스타 게임에서는 올스타 게임 역사상 최초로 인사이드 파크 홈런호텔을 치면서 올스타 게임 MVP를 수상했다. 여담으로 수상식에 정장을 입고 나온 것으로도 화제가 되었는데 일부에서는 '상을 받는다고 제대로 차려입었네'라는 의견도 있었지만, 사실은 경기 끝나고 부인이랑 식사할 예정이어서 교체된 이후에 옷 갈아입고 밥먹으러 가려는데 직원이 자꾸 가지 말라고 말렸다고 한다. 왜 가지 말라고 하는지 몰랐는데, 나중에 상 받을때야 알았다고... 그리고 며칠 있다가 한국에서는 인사이드 파크 호텔로 용어가 바뀌게 된다.[26]

파일:이치로올스타MVP.jpg

또한 정규시즌 역시 3할5푼이 넘는 고타율로 마감했지만 조금의 차이로 타격왕을 놓쳤다.

그리고 2009년 9년 연속 200안타 및 아시아인으로는 장훈에 이어 통산 2번째로 3000안타를 달성하였으며, 메이저리그 2000안타도 채웠다. 참고로, 9년 연속 200안타는 야구 초창기었던 때에 윌리 킬러가 1894~1901년에 기록한 8년 연속 기록을 깬 것으로 MLB 최초이다. 홈런과 같은 장타가 안나오던 시절 이전의 그때와는 달리 홈런이 많이 나오고, 변화구가 많이 개발됐다는 점을 감안한다면, 이치로는 세계의 누구와도 비교해서 밀리지 않는 타격실력을 갖추고 있다.

2009 시즌 역시 말까지 3할5푼이 넘는 고타율을 유지하여 타격왕 수상하는 듯 했으나 또 콩라인을 타고 말았다...

여기서 잠깐 이치로가 그동안 엄청 아깝게 놓친 타이틀을 대략 살펴보자면 02,03,05년 안타왕과 07,09년 타격왕 등이 있다.

문제는 이치로는 이때 1위와 차이가 매우 적었을뿐만 아니라 모두 메이저리그 2위에 해당하는 기록을 냈다.. 한마디로 이치로 위 5년동안 꾸준히 메이저리그 전체 2위에 오르는 기록을 냈지만 한번도 아메리칸 리그 1위에는 올라보지 못한것이다...[27]

그당시 대약물시대를 거쳐오면서 약쟁이들 때문에 실버슬러거 등 손해본 상들까지 생각하면 이치로로써 매우 아쉬울 수밖에 없는 사례들이다. 거기다 메이저리그에서 손에꼽는 극투수구장인 세이프코필드에서 내내 뛰면서 저런 성적을 낸거니...

2010시즌까지의 MLB 통산 타율 역시 .331[28]이나 된다. 단지 미국으로 건너와서는 장타율이 급락했다.[29]

NPB에서 시계추 타법을 쓰던 시기에는 20개에 가까운 홈런과 5할 이상의 장타율(!)을 매시즌 기록하던 타자였지만 MLB 스프링캠프에서의 쇼크 이후 타격폼을 대대적으로 수정하고 메이저리그에 진출해 풀타임 1번 타자를 맡게 되면서 장타력을 완전히 포기하고 컨택을 극대화시킨, 출루 자체보다는 공을 때리는 것에 집중하는 스타일로 전환했다. 포볼로 진루하는 경우가 상당히 적은 편이고 타율 대비 출루율은 낮은 편이다. 통산 타율 3할 3푼대인데 출루율 4할을 넘긴 적인 단 한 시즌[30]밖에 없을 정도로 배드볼 히터였지만 1번 타자로서는 출루를 최우선시해야 하는거 아니냐는 평가가 있기도 했다.[31]

데뷔 2년차 때부터 미국의 전문가들의 입에서 이치로가 중견수로 옮겨야 한다는 말이 있었다. 전문가들은 이치로 정도의 재능이라면 중견수 수비를 하는 것이 팀에 이득이라는 논리를 주장했다. 실제로 이치로는 한 시즌 중견수로 뛰었는데 우익수 자리에서는 로베르토 클레멘테와 함께 역대 1, 2위를 다투는 괴물같은 수비력을 보이는 반면, 중견수로 옮긴 이후의 수비는 중상위급 정도였다. 즉 우익수 이치로만큼 리그를 압도하는 수비수는 아니었다. 결국 1시즌 지난후 우익수로 복귀하였다. 이치로가 추신수를 싫어해서 중견수로 전환하지 않았다는 말도 있는데 해당 포지션에서 역대 최고를 논하는 수비를 갖춘 선수가 신인을 위해 자리를 옮긴다는 것이 말이 되는지 생각해보자.[32] 추신수 이적 이후 중견수로 전환한 것도 추신수를 비롯한 시애틀이 자랑하던 외야유망주들이 줄줄이 실패한 후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마저도 대체자원이 영입되자 곧바로 우익수로 복귀했다.

타격도 훌륭한데 원래 투수출신아라 어깨도 좋아 송구가 매우 뛰어나다. 전성기 시절에는 우익수 또는 중견수 그 포지션에서 3루, 홈까지 노바운드로 송구가 가능한 엄청난 강견. 호리호리해 보이는 180cm, 77kg의 하드웨어로 믿기지 않는 송구를 던지며, 특히 정확도가 매우 발군이다. 위 동영상에서 역시 강견으로 유명한 블라디미르 게레로를 2번이나 보살하였다. 보살당한 게레로의 허망한 웃음이 인상적이다. 참고로 게레로는 40도루 이상을 한 적이 있는 선수이다. 그냥 느린 선수를 잡은 것이 아니라 어느 정도 주루능력이 있는 선수들이 이치로에게 보살당하는 것이다.

도루는 2009시즌을 제외하고는 5위권 바깥으로 나가 본 적이 없고 성공률은 9시즌 중 세 시즌 말고는 항상 80% 이상에다가 2008 시즌엔 무려 92%였다. 다만 2008시즌을 기점으로 나이에 따른 스피드 저하와 부상 위험 때문에 자제하는 경향이 나타나고 있다. 거기에다 10년 연속 골든글러브에 2000년대 메이저리그 올스타 외야수 부문에도 선정.

2010년에도 200안타를 달성하였다. 이로서 01년부터 10시즌 연속 200안타 달성. 이 연속 시즌 200안타 부문의 기록에서 2위는 Willie Keeler로 1894년!!!부터 1901년까지 8년동안, 3위는 웨이드 보그스의 7년으로 차이가 좀 난다. 2위의 기록이 현대야구가 궤도에 오르기 전인 19세기말~20세기 극초반의 기록이고, 그나마도 이치로 보다 기록이 못했다는 점을 보자면.. 이치로의 위대함이 다시 보이는 부분 사실 이치로 말고는 2010년까지 매시즌 200안타 기록을 이어오는 선수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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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2011년 시즌 초반 타율이 2할 초반대에 머무는 부진을 보이다가, 결국 184안타, 타율 0.272로 시즌을 마감하면서 11년 연속 200안타에 실패했다. 올스타전에도 출전하지 못해 11년 연속 올스타전 출전은 실패. 이러한 결과에 대해 배트 스피드가 느려졌다느니 장타력이 떨어졌다느니 발이 느려졌다느니 속구 대응력이 떨어졌다느니 이런저런 분석이 나오고 있으며 사실 나이가 들었기에 어쩔 수 없다. 정작 본인은 연속 200안타 기록에 대한 중압감에서 해방되어 홀가분하다는 모양.

자기 관리에 관련해서 이치로 본인이 밝힌 에피소드가 있는데, 이치로는 경기 시작하기 직전에 하는 식사는 미국 진출 이후 안정기에 들어온 이후부터 무조건 페퍼로니 피자를 먹는다고 한다.

이는 이치로가 피자를 미친 듯이 좋아해서가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몸의 리듬을 완벽하게 같은 상황으로 만들기 위해서라고 한다. 즉 뱃속에 들어가 있는 음식을 언제나 같은 것으로 해서 컨디션에 의해 변할 요인을 통제하는 것. 그런데 원정경기가 많은 야구 선수 특성상 미국 전역 어디에서도 일정하게 판매하는 음식이 필요 했고, 그 후보가 햄버거와 피자였는데, 햄버거만 먹어서는 아무래도 에너지가 부족하고, 고기 상태에 따라서는 체할 위험이 있는 햄버거는 좋지 않다고 생각하여 피자를 선택했고, 미국 진출 10년 넘는 세월동안 이를 습관화시켜서 경기 전에는 무조건 페퍼로니 피자를 먹고 나서 경기에 임한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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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울러 미국 진출 이후 홈경기 때에는 무조건 아내(TBS 아나운서 출신 후쿠시마 유미코-8살 연상)[33]가 만들어 준 카레만을 아침 겸 점심으로 먹었다. 아내가 없을 때를 대비해서 냉동실에 잔뜩 보관해 두었다가 데워 먹기도 한다(이를 두고, 마츠모토 히토시는 '인도인이라도 그렇게 아침부터 카레를 먹지는 않을 것이다' 라고 우스갯소리를 날리기도 했다. 2010년부터 식빵과 국수로 바꿨다고 한다.# 2013년 10월 6일 가키노츠카이 방송 분에서) 그러고 보면 "결혼해서 제일 좋은 점이 뭐냐?"라는 질문에 "삼시 세끼 인스턴트가 아닌 밥과 국을 먹을 수 있다."라고 대답한 적도 있는데...

이것이 과학적인 근거가 있는지 아니면 단순히 본인의 집착 혹은 심리적 안정을 위해서인지는 모르겠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높은 커리어를 내기 위한 개인의 섬세한 노력 중 하나라는 면에서는 호평을 받을 만하다.[34]

2.3.2. 뉴욕 양키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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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 유니폼을 입고 세이프코 필드에 서다.
2.3.2.1. 2012 시즌
2012년 7월 23일, 시애틀 팬들에게 충격적인 소식이 전해졌다. 이치로가 뉴욕 양키스로 트레이드된 것. 이는 이치로가 팀의 리빌딩을 위해 잭 쥬렌식 단장에게 트레이드를 요청하여 이뤄진 것이라고 알려졌다. 말년에 겸사겸사 우승 반지도 도전할 겸, 시애틀에서 엇갈렸던 이치로와 A로드가 40살 가까이 돼서 한자리에 모이는구나 흥미로운 것은 이치로의 첫 경기가 세이프코 필드 경기라는 점이었고, 열광적인 기립박수를 받고 등장한 첫 타석에서 목례로 답한 뒤 안타를 때려내고 도루까지 성공하며 다시금 기립박수를 받았다.

한편 일본 웹상의 팬들은 이치로 하나만 바라보고 마이너 계약을 감수하며 메이저 리그에 도전한 가와사키 무네노리를 걱정하기 시작했다(...).

8월 19일 對 레드삭스와의 홈경기에서 조시 베켓을 상대로 연타석 홈런을 날렸다. 보기 드문 연타석 홈런인데 아무래도 양키 스타디움의 버프를 받는 것 같다. 또한 2011~2012 시즌에 연속으로 팀에 깽판친 조시 베켓을 향한 나름의 권선징악포이기도 한 듯.

결국 양키스가 지구 우승을 거머쥐고 메이져 와서 11년 만에 처음으로 우승 세리머니라는 걸 해봤다고 한다. 실은 이적 첫 해에 시애틀이 지구 우승을 하긴 했는데 하필 이때가 9.11 테러가 벌어진 해라서 우승 세리머니를 자제하는 움직임 때문에 지구 우승하고도 조용히 넘어갔다고 한다.

그리고 시애틀 말년에 .260대까지 떨어지는 굴욕을 맛 봤으나 순수하게 양키스 이적 후에는 타율 .322를 기록했다. 시즌 통합 타율 성적은 .288로 전성기 포스에 비하면 8번도 치고 좌익수도 보는 등 그렇게 좋은 건 아니였지만, 이적 전에 90경기나 뛰고 2할 6푼대에서 허우적 대던 거 생각하면 많이 올린 편. 처음 이적시에는 다음 시즌 재계약은 힘들고 시즌 중간에 땜빵 정도로 끝날 거라는 관점이 지배적이였지만 시즌 중 성적도 좋고 플옵과 월드 시리즈 성적에 따라서는 가능할 것 같다고 보는 사람들이 많아졌다. 실제로도 포스트시즌에서 롸동자커현이가 잉여가 되어가는 상황에서 데릭 지터와 함께 양키스를 이끌고 있는 상황을 연출하였다.

데릭 지터가 ALCS 1차전에서 부상으로 아웃되고 이적후 처음으로 1번 우익수로 남은 경기를 출장하였으며 .275의 타율로 팀내에서 상위급 성적을 기록하였는데...다른 선수들이 공수 양면에서 거하게 삽을 푸며 팀의 패배를 막지는 못했다.[35] 우승반지가 간절했던 이치로로써는 팀이 원망스러울만한 정도였다.

또한 2012년에는 작년에 떨어졌던 수비폼이 확실이 돌아왔는데 UZR, DEF 등 모든 주요 수비 스탯에서 우익수 부문 리그 1위를 찍었다. 다만 작년의 주춤했던 수비가 감독들의 기억에 남아서인지 아쉽게 골드글러브를 수상하지 못했다. 특히 수상자인 조시 레딕에 비해 이치로가 UZR, DEF 등 모든 수비 스탯에서 앞서있는 상황이었고[36] 한번만 더 수상하면 외야수 골드글러브 수상 단독 2위까지 올라갈 수 있어서 더욱 아쉬운 상황이었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3000안타에 대한 열망이 있는지 오프시즌에 양키스와 2년 계약에 합의하였다. 당초 필라델피아 필리스가 더 높은 금액을 불렀지만 역시 이치로라 금액에 연연하지 않고 양키스에 남았다.
2.3.2.2. 2013 시즌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류현진이 양키 스타디움에서 등판한 인터리그 경기에서는 류현진을 상대로 홈런 포함 2안타를 치고 호수비까지 선보이면서 경기 내용상 완승을 거뒀다.

뒤이어 텍사스 레인저스다르빗슈 유와 양키스의 구로다 히로키의 선발 맞대결로 주목받았던 경기에서 9회 2사 끝내기 홈런을 날리고 이날의 진 주인공이 되었다.


8월 21일 토론토 블루제이스와의 홈경기에선 1회말 R.A. 디키를 상대로 좌전 안타를 쳐내며 미일 통산 4000안타라는 금자탑을 달성했다. 팀 동료들도 덕아웃에서 모두 나와서 축하해주는 장면이 펼쳐졌다. 이것은 타이 콥, 피트 로즈, 행크 아론, 스탠 뮤지얼에 이은 5번째 대기록이자, 마이너를 제외한 프로리그로 한정하면 타이 콥, 피트 로즈를 이은 3번째 기록이다.[37] 리그 운영의 차이 등으로 공식기록으로 인정 받지 못한 지커 스태츠의 기록까지 합하자면 6번째. 하지만 피트 로즈는 자신도 마이너 리그에서 427안타를 더 쳤다고 하면서 이치로의 프로 통산 4000안타에 대해 일본에서 기록한 1278개의 안타를 인정하기 어렵다는듯한 늬앙스의 발언을 했다.

'상대적으로 수준이 낮은 NPB에서 뛴 기록 덕분이지 처음부터 MLB에서 데뷔해 활동했으면 4000안타는 꿈도 못꿨을 거다'라며 폄하하는 의견도 있다. 그러나 반대로 한국프로야구 초창기에 경기수가 적어서 누적에서 손해를 보는 선수가 있듯이 NPB도 MLB보다 경기수가 약간 적어서 안타 누적이 약간 어려웠던 것도 고려해야한다. 거기다가 이치로는 일본에서 프로 데뷔 초기 2년간 팀 감독과의 갈등[38]때문에 1군 경기에 거의 못 나오고 2군 생활[39]을 했기 때문에 2년 가까이 날린 시즌도 있다는 것 역시 고려 대상이다. 처음부터 MLB에서 활동했다면 마이너에서 오래 있다거나 하면서 야구 인생이 달라질수는 있겠지만, 마이너리그 못지 않게 가혹한 걸로 유명한 NPB 2군 생활도 견뎌내고 첫 NPB 1군 풀타임 시즌부터 200안타 신기록으로 리그 최고 타자가 되었던 이치로이기 때문에 지금까지 보여준 모습을 고려해 본다면 MLB에서도 3500~4000안타 정도는 충분히 가능하고 4천안타를 넘기는 타이 콥이나 피트 로즈의 대기록에 도전할 수 있었을 것으로 볼 수 있다.

통산 4000안타를 달성하며 호프집 예약을 해둔 건 좋지만 순수히 2013년 성적만 따지면 좀 안습하다. 특히 타석에서의 기량 하락이 심각한 수준. 원래부터 그다지 차이나지 않는 타율과 출루율 사이의 간극이 약점이었지만 타격왕을 차지할 정도의 높은 타율로 출루율을 올리던 그였다. 하지만 나이 때문에 타율이 수직 낙하를 해 2013년의 최종 타/출/장이 .262/.297 /.342 밖에 되지 않는다. 메이저 리그 평균은 .253 /.318 /.396 이다. 타율이 평균을 약간 상회하긴 하지만 출루율과 장타율이 리그 평균에 크게 뒤쳐지는 마당에 큰 의미를 가지진 못한다.

한마디로 타석에서는 평균 이하의 선수가 되었다. 대신 수비와 주루 센스는 여전히 훌륭해서 이를 무기로 양키스에 도움을 줬다. 다만 2013 시즌에 기록한 WAR는 1.1로, 수비 잘하고 주루 플레이 좋지만 공격이 안 좋은, 전형적인 나이 많은 백업 선수의 스탯을 기록했다. 물론 매우 적은 수준이라 돈값은 톡톡히 하는 활약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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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키스에서도 최상위급 수비를 보여주는 이치로

특히 수비는 UZR, DEF 등 모든 수비 스탯에서 최상위를 찍어 골드글러브 수상이 기대되었으나 작년과 마찬가지로 또 이치로보다 수비 스탯이 떨어지는 선수가 강탈가져가게 되었다..[40] 작년부터 받을거만 다 받았어도 이미 역대 외야수 골드글러브 공동 1위 였을터라 매우 아쉬운 상황 양키스와서 상운이 폭락한거 같다


주자를 묶어놓는 이치로 트릭플레이[41]
2.3.2.3. 2014 시즌
2014년 시범경기에서는 안타를 거의 못 치는 등 부진 하면서 세금과 이치로의 안타는 줄지 않는다는 명언이 있을만큼 화려하고 꾸준한 모습을 보여줬었지만 천하의 이치로도 세월 앞에서는 무기력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 이런 입지 탓인지 다른 팀으로 트레이드를 시도한다는 소리가 계속 나오고 있다. 하지만 본인도 위기의식을 가지고 있는지 시범경기 거의 막바지 몇 경기에서 맹타를 휘두르고 있다. 팬들 역시 부정적인 시선과는 다르게 3000안타를 치고 은퇴하기를 바라고 있다.

정규시즌에 들어와서는 백업으로서 괜찮은 모습을 보여줬고 .284의 타율과 102개의 안타를 기록하며 14년 연속 빅리그 세 자릿수 안타를 기록했다. WAR는 0.3으로 대체선수 수준의 역할을 했는데, 앞으로 향후 몇년간은 이렇게 선수생활을 할 듯하다. 미일 통산 3000경기 넘게 출장한 상태로, 몇 년 동안 선수생활을 어떻게든 지속한다면 피트 로즈의 기록을 노릴 수도 있는 상황이다. 그리고 마이애미에서 피트 로즈의 기록을 결국 넘어섰다.

돌아보면 전설적인 시애틀 시절에 비하면 확연히 저조한 활약이었지만, NJ.com에서 선정한 양키스의 2010년대 올스타 라인업에 백업 선수로서 선발되었다. 비록 전성기보다는 꺾인 기량이지만 전설의 황혼기에 어울리는 활약을 보여준 나쁘지 않았던 3년간이었다고 할 수 있겠다.

2.3.3. 마이애미 말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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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애미 말린스 유니폼을 입은 모습의 이치로
2.3.3.1. 2015 시즌
2015년, 마이애미 말린스와 1년 계약을 맺었다.

6월 15일 뉴욕의 다나카 마사히로를 상대로 2안타를 치고 역대 안타 38위를 기록한다.

7월 30일 워싱턴 내셔널스와의 경기에서 덕 피스터를 상대로 2900안타를 달성했다.#

8월 15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즈와의 경기에서 상대 선발 하이메 가르시아를 상대로 2913안타, 프로 통산 4191안타를 달성해 메이저리그 역대 2위 타이콥과 동률을 이뤘다. 다음날인 8월 16일에 타이콥을 넘어 단독 2위로 올라섰다. 세인트루이스원정임에도 관중들의 기립박수는 덤.# 1위인 피트 로즈의 4256안타에 가까워졌다.

8월 26일 피츠버그와의 경기에서 역대 82번 째로 통산 10,000타석을 달성했고 시즌 11호 도루도 기록했다.#

10월 4일 필라델피아와의 2015년 시즌 마지막 경기에서 8회말에 중간계투로 깜짝 등판하여 한 이닝을 던지고 1실점을 기록하고 내려갔다. 메이저리그에서 처음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것이었다고... 이치로 본인이 투수로 마운드에 올라보고 싶다 적극적으로 요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애틀 때도 이런 요청을 한 적이 있지만 야수가 마운드에서 공을 던지는 건 이미 승패는 한쪽으로 일방적으로 기울어져서 불펜 투수를 내느니 팬서비스도 겸해 불펜을 아끼려는 용도다. 게다가 불펜에서 몸을 풀거나 마운드에서 실전 피칭을 하다가 갑작스럽게 몸에 이상이 생기면 팀이나 선수 본인에게 손해라서 당시 주전 우익수인 이치로의 요구는 당연히 거절당했다. 마이애미에서는 백업 선수이다보니 가능한 일.

다만 타격 성적은 당연히 좋다고는 할 수 없다. 사실 진작 은퇴해도 이상하지 않은 나이지만 3천안타에 대한 본인의 집념이 워낙 강해 내년에도 계속 메이저리그에 있으려고 할 걸로 보인다.

하지만 수비로는 아직도 최상급으로 골드글러브급 수비력을 보여주고 있다.물론 상운 없는 이치로 아니랄까봐 실제 수상은...


주자를 묶어놓는 이치로의 영리한 수비[42]

그리고 10월 6일 42번째 생일을 눈앞에 두고 마이애미와 1년 연장계약을 맺으며 잔류에 성공했다. 정확히 말하면 2M에 1+1년이며 타석당 보너스가 붙어 있다.#
2.3.3.2. 2016 시즌
스즈키 이치로/2016년 문서로

2016년 8월 8일 콜로라도 로키스전 4번째 타석에서 7회초 3루타를 터뜨리며 개인 MLB 통산 3000번째 안타를 때려냈다. 메이저리그 역대 30번째로 3000안타 클럽에 가입.[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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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한 성적도 눈에띄어 구단 MVP격인 제프 코나인상도 수상했다.

이러한 쏠쏠한 활약으로 시즌 후 계약 연장 옵션 실행은 물론 2018년 옵션까지 추가됐다.
2.3.3.3. 2017 시즌
스즈키 이치로/2017년 문서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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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즌 시작후 바로 3000안타를 기념하는 행사가 열렸으며 이때 무려 이때까지의 모든 안타를 여정을 담은 사진을 모두 손수 붙혀만든 기념물까지 수여받았다. 사실상 마이애미측에서도 이치로를 어느정도 구단 레전드로 대우해주는 듯하다.[44]


그리고 2018년 4월 18일 마이애미 유니폼을 입은 상태로 시애틀팬들의 열렬한 환영을 받으며 세이프코 필드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다음날 홈런을 쳤다!


이치로가 홈런을 치자 환호하는 시애틀팬들의 모습.

2.3.4. 시애틀 매리너스 복귀

2.3.4.1. 2018 시즌

스즈키 이치로/2018년 문서로

3월 5일경 시애틀 매리너스 복귀 소식이 보도되었다. 밥 나이팅게일 트윗

현지시각 5월 3일자 mlb공홈에 브레이킹 뉴스로 이치로가 매리너스의 특별 고문으로 보직을 이동하게 되었고, 2018년에는 더 이상 로스터에 돌아오지 않는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은퇴는 여전히 공식적으로 밝히지 않았지만 20 incredible facts about Ichiro's career 식의 기사들이 나오면서 사실상 다들 이치로 굿바이 하는 분위기다. 물론 본인과 매리너스 측에선 특별 고문은 이번 시즌 한정이고 다음 시즌에 또 복귀 가능성에 대해서 언급했으며[45] 실제로 평소처럼 경기 전 훈련도 전부 소화했지만 이번 시즌의 성적과 불혹을 한참 넘긴 나이탓인지 기대하지 않는 분위기. 사실상 매리너스 측은 어시스트 코치같은 역할이 선수로 뛰는것보다 훨씬 팀에 도움이 된다고 판단하고 있으며 이번 보직 이동을 그에게 제2의 야구인생이 시작되었다는 표현까지 하는걸 보아 오히려 선수복귀보다는 진지하게 코치로서의 이치로를 기대하는게 더 큰 듯 하다.

이치로는 메이저 데뷔때부터 각 팀 감독 및 코치들로부터 가장 툴이 많은 선수로 언급되었으며[46] 과거에 베이스볼 아메리카로부터 21세기 이후 최고의 툴을 가진 선수로 푸홀스, 벌렌더 등을 제치고 1위를 차지한 적도 있을만큼 이치로가 가르쳐 줄 건 차고 넘친다는 평. 여기에 워크에틱까지 뛰어나서 전팀 마이애미에서도 그의 코치 이야기가 물망에 올라간 적이 있다.

여담으로 이날 추신수는 이 소식에 대해 난 한번도 200안타 쳐본적 없는데.. 그의 워크에틱이 그를 슈퍼스타로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라고 언급했다.

다음날 오타니가 경기전 이치로를 찾아가서 인사하려고 하자 이치로는 도망갔고, 오타니는 결국 붙잡아서 90도 각도로 인사했다(...)

12월 23일 고향인 일본 아이치현 도요야마에서 열린 '이치로배 유스 야구대회' 폐회식에 참석해 답답했던 올 시즌을 돌아봤다. 대회에 참가한 한 학생이 '올해 출전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어떻게 훈련을 계속할 수 있었나'라고 묻자, 이치로는 "내가 (경기를) 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꼭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내가 할 수 없다고 생각하면 절대로 할 수 없다"고 답했다. 즉, 자신의 가능성을 미리 결정하지 말고 할 수 있는 것을 최대한 해야한다는 뜻이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12세 소년은 "고교 졸업 후에 이치로 선수와 프로에 가서 대결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자 이치로는 "우선 일본에서 선수로 뛸 경우는 없을 것 같다"면서 "네가 12세라니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내가 51세까지 뛰면 가능한데, 그럴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미국 언론들은 이치로가 시애틀과 연장계약을 한후 2019년 도쿄에서 열리는 오클랜드와의 개막 2연전에 출전하고 은퇴를 선언하는것을 유력하게 예상하고 있다.#
2.3.4.2. 2019 시즌
그러나 예상과 다르게 시애틀 매리너스와 마이너 계약에 합의했다. 일단 3월말에 일본 개막전 로스터에 포함되기로는 했지만 그 이후에는 어찌될지는 아무도 모른다.

일단 2월 23일 오클랜드와의 시범경기에 선발출장해 2타수 1안타 2타점이라는 좋은 성적을 거두고 대주자와 교체되었다.

하지만 이후 시범경기에선 침묵중이고 타율이 1할대를 보이고 있다. 이대로라면 메이저에서의 생존은 장담하기가 힘든 상황. 급기야 3월 10일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와의 시범경기에서 2타수 무안타로 침묵해 타율이 1할대도 무너져 .091을 기록했다.# 3월 14일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의 마지막 시범경기에서도 2타수 무안타 2삼진으로 타율 .080을 기록하며 막을 내렸다. 최종적인 시범경기 성적은 25타수 2안타.

일단 3월 20-21일 도쿄에서 열리는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특별 개막전에는 선발 출장할 가능성이 높지만 미국 언론들은 일본에서의 경기가 이치로의 메이저 커리어의 마지막이 될것이라 보고 있다. 애초 이치로도 시애틀과 계약을 맺을때 개막 2경기에는 메이저 로스터를 보장받는걸로 했기 때문에 본인이 더 잘아는게 아니냔 말까지 나오는중.

3월 20일 도쿄돔에서 열린 특별 개막전에서 선발출장했다. 첫타석은 2루 뜬공으로 물러났고 두번째 타석에서는 9구까지 가는 승부끝에 볼넷을 얻어 출루했고 대주자와 교체되었다. 도쿄돔에는 선수로서의 이치로를 마지막으로 볼 기회라는 인식에서인지 구름 관중이 모였고 이치로 자신도 결국 눈물을 보였다고.#

3월 21일 개막 2차전[47]에서는 8회 초 2사 2루 상황에서 땅볼로 물러나며 아쉽게 마지막 타석을 마무리했다.

9시 37분 현재 기준으로 멋진 은퇴 행사를 하는 중.

은퇴와 관련된 MLB.com 기사는 Ichiro retires after emotional finale in Tokyo을 참조.

2.4. 현역 은퇴

"오늘 게임을 마지막으로 현역생활에 종지부를 찍고, 은퇴하게 되었습니다."

그동안 거론되던 은퇴설에도 불구하고 꿋꿋하게 선수생활을 이어갔으나, 마침내 2019년 3월 21일 도쿄도의 모 호텔에서 기자회견을 가지고, 공식적인 현역 은퇴를 선언했다. 50세까지 선수생활을 이어나가겠다는 말을 지키지 못한 것에 대해서 아쉬움을 나타내기도 했다. 일본에 복귀해서 선수생활을 이어나간다는 선택지는 없었는가라는 질문에 이치로는 없었다고 답변했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해 감독이 되는 것은 '절대 무리'(일본어로 불가능이라는 뜻)라고 답했다.

이 날 경기는 니혼 TV, ESPN에서 중계했으며, 이치로의 은퇴로 오릭스 블루웨이브 시절 선수들은 한 명도 프로야구에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 그리고 3월 21일 이치로의 은퇴는 다음날 거의 모든 스포츠신문의 1면을 장식할 정도로[48][49] 임팩트가 컸다.

처음부터 계약이 일본에서 열리는 개막전까지였다고 한다. 현역 연장이 가능할 정도로 잘 쳤다면 연장 계약도 가능했겠지만 스프링캠프에서 워낙 부진했던터라 본인도 결단을 한 듯.

은퇴 기자회견을 한 다음날 3월 22일, 전일본공수의 배려로 나리타 국제공항에서 출발하여 시애틀로 가는 편명 NH178의 탑승게이트가 51번으로 부여되어 자신의 등번호와 같은 게이트를 통해 출국을 했고, 이후 시애틀 매리너스 산하 트리플 A의 코치로 선임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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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년 9월 14일에는 이치로 데이를 갇고 시애틀 매리너스 역사에 큰 역활을 한 공으로 프랜차이즈 공로상을 수상받았으며 홈에서 열리는 3연전 역시 모두 이치로를 기념하며 진행되었다. 이치로 데이를 앞두고 그가 세계최고 배팅볼투수를 목표로 삼고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2019년 9월 18일에는 '동네 야구' 데뷔를 하기로 결정했다. 정확히는 일본의 사회인야구 중 '풀뿌리 야구'로도 불리는 '쿠사야큐'(草野球)의 팀인 ‘고베 치벤(KOBE CHIBEN)’을 결성하고 감독겸 선수로 활동한다고.

2019년 12월 1일 홋토모토 필드 고베에서 열린 쿠사야큐 데뷔전에서 '투수'로 출전해 131구 16K 완봉승을 기록했다.

3. 엇갈린 평가 (메이저리그에서의 평가)

정확한 타격, 빠른 발, 넓은 수비범위, 강력한 송구능력 등으로 일반적인 기준에서 보면 탑 클래스에 속할 야구기술의 소유자고 실제로도 그에 걸맞는 훌륭한 성적을 남기고 있으나, 개인 기록에만 집착하고 팀을 생각하지 않는다는 말도 있다. 이치로가 몸 담아왔던 팀들의 전력이 결코 약한 팀이 아니었음에도 우승 경력이 오릭스 시절에만 리그 우승은 단 2번, 일본시리즈 우승은 딱 한 번이었음은 물론, 팀이 좋은 성적을 남긴 숫자도 그의 능력과 성적을 감안했을 때 적다는 점에서 그러한 근거를 찾는 일부 야구팬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오릭스는 이치로 이전에는 상위권 팀이긴 했으나 우승과는 거리가 있는 팀이었고, 시애틀은 명단장 팻 길릭의 해임 이후 빌 버베이시 단장 체제로 바뀌면서 노화징후가 보이던 팀 체질 개선에 실패해서 팀 성적이 대폭락한 케이스이다. 그 이전 2001-2003시즌의 시애틀은 아메리칸 리그 서부지구의 강자였다. 선수 혼자서 팀성적을 좌지우지할 수 있는 선수는 야구판에서는 있을 수 없다. 배리 본즈, 블라디미르 게레로, 알버트 푸홀스,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팀원들이 부진할때는 PO진출에 실패했던 것이 현실이다.

오히려 이치로의 시애틀시절 포스트시즌 성적이 "10경기 0.421/0.535/0.474 OPS1.009 3도루"일 정도로 좋았으며 포스트시즌 시애틀 타선에서 가장 활약해준 선수중 한명이었다.

팀성적이 좋을 때는 아무 이야기도 없다가도 팀성적이 나쁘면 이치로가 비판받는데, 이는 과거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겪던 현상으로 팀의 대표선수가 나쁜 성적의 도매금으로 넘어가는 현상이다.

독고다이 스타일의 성향상 한 번 팀이 되면 팀을 중시하는 미국의 스타일과는 매우 안 맞다는 얘기가 있다. 실제로 07년부터 꾸준히 나오는 이치로와 팀메이트간의 불화설이 대표적인데 시애틀 매리너스에서 뉴욕 메츠로 이적한 J.J 푸츠가 이적 전에 시애틀 타임즈라는 지역 신문과 한 인터뷰에서는 '누군지는 말 안 하겠는데 매리너스 안에 팀웍을 망치는 암적인 존재가 한 놈 있어'라는 요지의 발언을 했는데, 99.9%쯤 이치로 얘기라고 한다(...). 그리고 이 후 팀 리더격인 아드리안 벨트레가 인터뷰를 통해서 이치로를 돌려서 깠다. # # 하지만 켄 그리피 주니어라울 이바녜즈는 이치로를 감싸고 두둔했으며 실제 팀 동료들이 이치로와 잘지내는 사진과 이야기 등도 많다.

일단 시애틀 타선은 2004년 이후부터 90년대를 지탱하던 주축선수들[50] 등이 대부분 다른 팀으로 이적하거나 하강세를 기록하면서 이미 전체적으로 팀의 평균타격 수치가 많이 떨어졌다는 사실을. 이치로가 배드볼 히터 소리를 들으며 타율대비 출루율이 상대적으로 안 좋다고 하지만 2005년부터 2010년까지의 기간 동안에 출루율의 평균만 계산해도 이치로가 팀에서 1위였다. 그 외의 경우는 반 이상이 공갈포들만 모인 팀에서 사실상 에이스 역할 타자라는 말이다. 그러다보니 투수들이 이치로가 1번타자임에도 고의사구로 거를 정도가 되었고, 결국 9년차이던 2009년 올타임 리드오프 고의사구 순위에서 139개로 피트 로즈를 제치고 1위로 등극했다. 현역 선수 중에서도 단 11시즌만을 중심타선도 아닌 리드오프로서 뛰고도 웬만한 클린업 히터들과 맞먹는 개수를 기록 중이다. 10년이나 더 뛴 짐 토미와 맞먹는 고의사구 개수로, 2011년 종료 시점에서 7위. #

또한 마이애미에서 만난 동료 선수인 디 고든이 "이치로는 최고의 남자이자 내가 만난 선수들 중 최고의 선수였다. 처음 만난 날부터 매일 그와 함께 할 수 있어서 행복했다"고 밝혔듯이[* 디 고든은 이치로가 은퇴하자 시애틀 타임즈에 전면 광고까지 게제하며 고마움을 표시했다.#

또한 이치로가 강점을 가지는 부분우 바로 시애틀과 의리를 지키며 미치도록 혜자스러운 활약을 했다는 것이다. 먼저 시애틀 시절 이치로의 계약을 살표보자

2001~2003
3년 1400만 달러

2003~2007
4년 4400만 달러

2008~2012
5년 9000만 달러

위에 보듯이 이치로는 선수 시절동안 미친듯한 가성비를 자랑했다. 이미 계약 기간 동안 받은 수상내역하며 달성한 기록만해도 엄청난 수준이며 이때 동안 쌓은 WAR까지 고려하면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최고의 가성비 계약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대약물시절에 뛰면서 모든 부분에서 손해를 많이 봤는데도 말이다. 무엇보다 이치로 자신이 그다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으며 팀과의 의리가 우선이었다. 이는 03시즌 후 FA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미 신인왕, 올스타, MVP, GG, SS 등을 다 쓸어담은 상황에서 고작 4400만불의 계약만을 내고 시애틀에 남아준 것이다. 같은 아시아 타자인 추신수가 올스타 경험이 없는데도 불과하고 이치로의 3배의 가까운 1억 2000만불대의 계약을 하고 팀을 떠난것을 보면 이런 이치로의 결단이 얼마나 대단하며 시애틀팬들이 좋아할 수 밖에 없는 선수라는걸 알 수 있다.

이치로와 유사한 플레이를 하는 선수들은 상당히 많다. MLB에서도 2015년 디 고든만해도 내야수라는 것만 제외하면 이치로랑 플레이 스타일이 많이 닮아있다.또 이치로의 장점은 뛰어난 성적을 데뷔 후 연속 10년 기록했다는 것에 있다. 그리고 그 플레이스타일 속에서 리그 최고의 활약을 했다는 것도 그의 장점. 게다가 데뷔 후 10년(2001~2010) 동안의 경기 출장수도 ML 1위일 정도로 철강왕이라는 점도 높게 평가해야 한다.

무엇보다 시애틀의 이동거리는 메이저리그 1위라 그만큼 피로가 쌓이고 보통 선수들은 나가 떨어지는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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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년 기준으로 이치로의 현역 활동 기간에 이치로보다 높은 통산 WAR를 기록한 타자는 푸홀스, A-Rod, 벨트란, 버크먼#이며 2015년까지 계산해도 푸홀스, A-Rod, 벨트레, 카브레라, 어틀리, 벨트란, 라이트, 오티즈, 테하다 뿐이다. 이 중 약쟁이만 3명이다 이치로의 WAR가 이렇게 높다는 것은 위에서도 언급한 이치로의 꾸준함도 크다.

WAR의 핵심은 1. 부상없이 많은 경기를 2. 좋은 성적을 내며 소화하는 것이다. 그리고 이치로는 2번 항목에서 A급이었고 1번 항목은 S급인 선수였다. 그동안 많은 상과 타이틀을 수상했으며 2009년 시즌까지 리그 5위 밖으로 떨어져 본 적 없는 도루, 매년 10위권 안에 드는 고의사구 등 정상급의 성적을 매년 찍었고 MVP 투표에도 꾸준히 등장했다. 즉 이것을 잘 보여주는 것이 WAR라는 것이다. 이치로가 루키 때 얻은 명성과 10년 이상의 꾸준한 자기관리가 더해져 커리어 후반에 이르러서 그의 진가가 더 빛을 발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이렇게 준수한 성적을 꾸준히 기록하다 보니 이치로보다 뛰어난 아시아 출신 야수가 메이저리그에서 나오려면 많은 시간을 기다려야 할 듯 하다. 거기다 이치로는 시즌 동안 유난히 상복이 많이 없었다고 할 수 있는데 대약물 시대에 뜀으로서 약쟁이들에게 강탈당한 것은 물론이고 설사 약쟁이들의 성적을 그대로 고려하더라도 04시즌 실버슬러거와 12/13 시즌 골드글러브 등을 수상하지 못한 것에 대해서는 아직도 얘기가 많다. 거기다 필딩바이블, 올해의 수비수, 플래티넘 글러브같은 이치로가 강점을 가지는 상들역시 2000년대 후반이나 10년대에서나 제정됐기 때문에 만약 이치로가 약물 시대만 피해 조금더 늦게 나타났다면 더욱 위대한 선수가 되었을 것이다.

전문가들도 이치로는 전무후무한 선수로서 이미 역사에 한 획을 그었으며 실제 가치에 대한 논쟁이 끊이지 않을 것이라 평가한다. 또한 이치로가 현역 메이저리거들 중에서 명예의 전당에 가장 근접한 선수들 중 한 명이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다.# 참고로 리드오프의 포지션으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한 선수는 메이저리그 역사상 매우 드물다. 리키 헨더슨, 크레이그 비지오, 루 브록, 토니 그윈 정도다.

좀 더 쉽게 풀어서 생각해보면, 저 때처럼 OPS 평균 .770~.780이 OPS+ 100으로 측정되는 비정상적인 스테로이드의 시대가 아니라 지금처럼 상대적으로 훨씬 투고타저일 때 다른 선수들이 받고있는 평가를 되새김질해보자. 제이슨 헤이워드처럼 안정적인 주루와 뛰어난 수비력, 그리고 평균보다 약간 높은 타격을 가진 우익수가 8년 1억 8400만이라는 어마어마한 페이를 받고 있고, 빌리 해밀턴이나 엘비스 엔드루스처럼 타격은 반쯤 포기하고 주루하고 수비 위주로 WAR를 쌓는 리드오프들은 이미 그 툴만 가지고도 주전감이다.근데 약쟁이니까 넘어가자 지금 언급한 선수들은 각각 타격, 주루, 수비에 있어 기본적으로 한가지씩은 결함이 있는 선수들임에도 불구하고 FA에서 고액연봉이 기대되거나 이미 계약을 맺은 선수들이다. 그런데 이런 리드오프 류의 타자 중에서 이치로와 동급 소리를 듣거나, 혹은 짭이치로 소리라도 듣는 타자들은 단 하나도 없다. 이치로가 저평가받는 것은 타율대비 출루가 상대적으로 떨어지고 장타생산이 상대적으로 떨어지는 배드볼히터라는 점에서 명전에 오른 리드오프들과 비교해 안좋다는거지, 그 아랫급의 타자들과는 주거니 받거니 2000년대 동안 MVP에서 꾸준히 경쟁하던 타자다. 심지어 타격수치가 몰락하기 전, 그러니까 2010년까지의 Offence 누적수치만 봐도 217.4로 22위다.# 눈여겨봐야 할 것이, 그 위에 있는 타자 중 맨손빠다 괴수의 수치가 256.0이고, 홈런 아니면 삼진인 선풍기가 Off 250대다. 또한 Off 300대 이하의 타자중에서는 유일하게 카를로스 벨트란과 함께 10년동안 공수 다 합쳐서 누적 WAR 50을 넘긴 타자다. 더 이상의 설명이 필요한가?

결론적으로 이치로는 시대보정을 한다고 해도 타격, 수비, 주루 3박자를 전부 갖춘 리드오프로써 평가절하할 요소가 생각보다 별로 없는 몇 안되는 타자다. 수비 혹은 주루 위주로 명전을 간 타자는 데드볼 시대를 제외하더라도 애초에 아지 스미스, 루이스 아파리시오 정도밖에 없다. 이게 무슨 말이냐면, 이치로의 수비가 아무리 좋고 골든 글러브를 10년 이상 탔다는 사실을 상기한다고 쳐도 애초에 우익수로 메이저 커리어를 밟아나갔기 때문에 보정스탯에서 중견수유격수, 3루수 등에 비해서 깎여나가는 포인트가 많다는 것이다.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으로 dwar에서 총 4.2를 기록중인데, 우익수로 평균 성적을 찍어도 마이너스가 나오는 가중치 특정상 올타임 dwar가 양수를 찍는 경우는 정말 흔하지 않다. 만일 이치로가 진짜로 타격 대신 주루와 수비로 WAR의 반 이상을 쌓았다고 해야한다면 최소한 owar와 dwar가 반으로 나눠떨어져야 하는데, 현재 이치로는 owar 47.4에 dwar 4.2를 기록중이다. 보통 dwar 합산이 올타임 두자리 양수를 넘어가는 경우는 센터라인(중견수, 2루수, 유격수)에서 온갖 어시스트와 진기명기 캐치를 하는 선수들 정도가 그나마 가능하지, 심지어 우익수로 dwar 두자리수를 넘긴 선수는 로베르토 클레멘테제이슨 헤이워드, 제시 바필드 단 세명이고 팬그래프 기준으로는 5위.

사실, 이치로의 통산 타격이 다른 3000안타 선수들과 비교했을때 다소 초라한 것 자체는 기록이 말해주는 사실이다. 단순 누적이나 비율이 아니라 조정스탯인 OPS+나 wRC+로 봐도 이치로는 통산 OPS+ 107에 wRC+ 104로 3000안타 타자들 중에서는 가장 낮은 수준인데, 이는 이치로가 대약물시대에 뛰면서 WRC+,OPS+ 등 조정스탯에서 상당히 손해를 봤고 2011년을 기점으로 급격히 노쇠화하면서 전성기의 수준급 공격력을 완전히 상실하고 리그 평균 수준의 타자로 추락해버렸기 때문이다[51]. 그러니까 전성기의 이치로는 분명히 공수주 3박자를 모두 갖춘 훌륭한 선수였고 이 시기의 활약을 바탕으로 이미 명전급 커리어를 쌓았다.

거기다 이런 조정 스탯들보고 평가할때 하나 간과하는 점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이치로가 커리어 거의 대부분을 대약물시대에서 뛰었다는 것이다. 간단하게 설명하자면 대약물시대에는 약물로 인해 타자들의 수준이 비정상적으로 올라갔고 그에 따른 리그 평균이 미친듯이 올라가 있는 상태였다. ops 8할이 wrc100이 되지 않았고 70홈런대 타자가 탄생했으며 팀마다 30~40홈런 타자는 기본으로 한명씩 있는 수준이었다. 당연히 이치로도 리그 평균으로 보정하는 조정 스탯에 따르면 그값이 떨어질 수 밖에 없었다.

한마디로 이치로가 만약 요즘 시대에 뛰었다면 더 좋은 WAR, OWAR, WRC, OPS+ 등 조정스탯 그리고 더 좋은 수상실적을 기록할 수 있다는 말이다.

또한 이치로는 구장에 대해서도 크게 손해를 봤는데 바로 세이프코 필드라는 극투수 구장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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켄 그리피 주니어와의 한 때

이전에는 팀에서 겉돌았던 이치로였지만, 켄 그리피 주니어 덕에 팀원들과의 사이가 많이 좋아졌다고 한다. 참고로 그리피는 이치로의 우상이라고 할 수 있는 선수다. 이치로가 고교야구에서 뛰던 시절부터 그리피의 팬이었다고 하며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던 1995년 오프시즌엔 미국여행을 가서 마이클 조던, 켄 그리피 부자와 만남을 갖기도 했다. 그리고 이 시기에 구입한 켄 그리피 주니어의 져지는 그가 가장 아끼는 소장품 중 하나라고 한다. 2009년 그리피가 시애틀 매리너스로 돌아왔을땐 그리피는 언제나 나의 영웅이었다. 꿈이 실현된거 같다라고 밝히며 누구보다 그리피의 복귀를 환영했다. 기사

3.1. 평가에 관해 의견이 나뉘는 원인

이치로가 거품이었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의 의견은 다음과 같다.
1. 타율 대비 출루율이 부족하며, 장타율 또한 부족하며 OPS 9할을 넘긴 시즌이 단 한번도 없다.
2. 타구 대비 내야안타의 갯수가 많다
3. MVP를 딴 2001년에도 OWAR와 FWAR가 다른 타자들에게 밀리기에 임팩트에 비해 실속이 낮다
4. 3000안타를 친 타자 중에서도 OPS와 WAR가 다른 명예의 전당에 올라간 타자들에 비해 뛰어난 편이 아니다.

반면에 반박하는 의견은 다음과 같다
1. 배드볼 히터인 것은 사실이나 삼진수 역시 많지 않고, 출루율이 타율대비 심각하게 낮은건 사실이나 동시대 타자들과 비교해도 부족하진 않다.
2. 내야안타가 많다는 것은 오히려 이치로의 주루능력이 뛰어나다는 것을 방증한다.
3. 클래식 지표만 따져도 그 해 최다안타, 최다도루, 최고타율 총 3관왕을 차지했다.
4. 테이블 세터로 섰던 타자 중에서 애초에 명전에 간 타자가 많지 않다.
5. 20대 후반에서야 MLB에 진출한 탓에 누적, 에이징 커브 면에서 손해를 보고도 3천안타라는 대기록을 달성했다.

정리하기 이전에 이치로가 활동하던 시기의 MLB의 성격을 돌아볼 필요가 있다. 흔히 타고투저로 대표되는 스테로이드 시기(1994~2009)의 특징은 다음과 같다.
1. 2000년대 후반 이전까지,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자케티 단장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빌리 빈 단장을 대표되는 세이버 친화구단이 주목했던 출루율과 수비실적과 관련해 그 때까지 견적이 완벽하게 잡히지 않았고, 그런거 없이도 우승하는 팀이 많았기에 올드스쿨 스탯(타율, 안타, 홈런)에 비중을 더 많이 둠
2. 타고투저 시기, 보통 OPS .760정도의 기록이 그 해 OPS+ = 100으로 계산되던 때, 타자의 실적은 보통 홈런과 타율, 그리고 타점을 기준으로 타자의 가치를 매김
3. 2000년대 중반부터 헨리 라미레즈, 러스티 그리어, 케빈 유킬리스, 자니 데이먼, 알폰소 소리아노처럼 파워 툴까지 장착한 테이블 세터를 앞 타순에 놓으면서 보다 전통적인 리드오프 스타일의 이치로, 후안 피에르, 라파엘 퍼칼 같은 타자들이 전자와 비교해 저평가를 많이 당했다.

이치로는 1번 타자 중에서도 고타율과 존을 넓게 가져가는 히팅(Z-contact = 93.5%, O-contact = 78.8%, Z-swing = 66.7% O-swing = 28.6%), 그리고 극단적으로 높은 그라운드볼 비율과 상대적으로 많이 낮은 플라이볼 비율 (GB = 55.4%, FB = 23.6%)의 불리함을 뛰어난 주루 능력 (통산 BsR = 95.9)으로 상쇄시키는, 전통적인 리드오프 중에서도 장점과 단점이 매우 극단적으로 갈리는 선수 중 하나다. 같은 시기 또 다른 배드볼 히터로 유명했던 블라디미르 게레로의 컨택과 비교해서 스윙 대비 컨택율 (Z-swing = 84.3%, Z-contact: 89.2%) 이 비교적 높았던 타자인데, 이는 존을 벗어나는 공에 한해서도 마찬가지다 (O-swing = 38.9%, O-contact = 66.8%). 그러나 게레로를 두고 이치로보다 타격이 구린 타자라고는 아무도 말하지 않는 이유는, 비교적 비슷한 타율을 가진 이치로에 비해 볼넷 비중이 좀 더 높고 비교할 수 없는 장타능력을 가진 (통산 장타율 = .553) 슬러거라는 점에서 클래식 스탯을 따졌을 때 당연히 게레로의 손을 들어줄 수밖에 없다. 실제로 세이버스탯을 참고한다 쳐도 순수 배팅능력은 게레로가 이치로보다 한 수, 아니 세 수는 위에 있다. 그러나 게레로의 통산 WAR는 54.3으로, 클래식 누적과 임팩트에 비해 생각보다 그리 높지 않은 수치를 보이고 있다. 사실 세이버로 따지고 보면 간단하다. 송구를 제외한 수비(+ 송구정확도)능력과 주루에서[52] 많이 까먹기 때문이다.

보통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주루와 수비에 있어서 클래식 수치, 즉 수비에러와 도루갯수만 믿으면 안되는 것이, 보다 전문적으로 기록을 재는 세이버 스탯에서는 도루실패수가 도루성공 * 3~4의 마이너스 값을 가지며, 수비에러와 필딩율은 UZR과 DRS[53]로 직결되지 않는다. 세이버매트릭스는 수비범위가 적고 에러 또한 적고 송구 안정적인 야수에 결코 좋은 점수를 주지 않으며, 실책이 어느 정도 있더라도 보다 넓은 범위를 안정적으로 수비해낼 수 있는 야수를 더 높게 평가한다. 주루 또한, 단순히 도루 갯수로만 BsR을 평가하는 것이 아니라, 타구를 쳤을때, 혹은 자신이 주루선상에 있을 때 같은 팀의 타자가 안타를 쳤을 때 얼마나 더 많은 베이스를 밟을 수 있으며, 또한 그 성공 확률이 어느 정도인가를 훨씬 중요하게 평가한다[54]

일단 분명한 것은, 이치로의 출루율과 장타율은 이치로가 기록한 높은 타율에 비해 상대적으로 낮은 것이 사실이다. 단타 위주의 1번 타자라는 것을 감안한다고 쳐도 타율 3할 중반대를 꾸준히 기록한 타자치고는 전성기 10년간을 따진다 쳐도 출루율은 3할 7푼대, 장타율은 4할 3푼대로 Ops가 8할 간당간당하게 넘는 정도이다. 만약에 이 OPS를 가지고 보다 낮은 타율, 가령 추신수처럼 2할 후반대를 기록하는 타자들이 만약에 이런 성적을 기록했다면 타율대비 출루가 높고 공을 신중하게 고른다는 장점 때문에 후자를 더 높게 칠수도 있다.

다만, 여기서 한가지 중요한 점을 아무도 지적못하고 있는데, 다름 아닌 스트라이크 존의 변화이다. 가령, 2010년대 이후로 흔히들 말하는 '추존' 이라고 불리우는 심판의 불합리한 잣태에 따른 스트라이크의 경우, 맷 카펜터, 조이 보토, 마이크 트라웃, 호세 바티스타, 제이슨 워스, 앤서니 리조 등 타율 대비 출루율이 상당히 높이 나오는 타자들의 경우 심판 장난질이나 포수의 프레이밍에 따라서 스트라이크 존이 변하는 경우가적지 않았다. 이 때문에 존 바깥을 벗어난 공에도 스윙을 하거나, 눈 뻔히 뜨고 루킹 삼진을 당하는 경우가 생각보다 빈번히 발생하고, 이것이 실제로 클래식 스탯과 세이버 스탯에 영향을 끼쳤다.

반면, 삼진과 볼넷 모두 그렇게 많지 않고, 특히나 이치로처럼 존을 벗어나는 공까지 뛰어난 컨택을 발휘할 수 있는 타자의 경우, 볼넷 비중이 적기 때문에 출루율이 비교적 낮아 OPS에서 손해볼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지만, 이 타격이 성공시 타자는 1루까지 진루할수 있는 제한된 진루에 비해 2루타, 3루타, 혹은 홈런으로 더 많은 진루를 획득할 수 있어 오히려 장타율이 올라갈 수 있는 계기도 된다. 물론 이치로의 경우는 단타 위주의 타자인만큼 2루타 이상의 장타에 있어서 그 수치가 높은 타자는 결코 아니기에 장타율 또한 비교적 낮다. 대신, 뛰어난 주루 센스와 빠른 발을 바탕으로 추가 진루를 통해 높은 득점으로 연결시킬 수 있다. 실제로, 2001년부터 2008년까지 이치로가 기록한 득점은 언제나 100득점 이상이었고, 현재까지도 1398득점으로 여태까지 MLB 모든 선수 중에서 96위를 차지하고 있다. 내야안타 비중이 많으면서 BABIP까지 높은[55], 즉 타구질도 좋다고 평가받는 경우는 생각보다 드물다. 쉽게 말해서 같은 내야안타를 친다고 쳐도 뛰어난 주루 능력을 통해 이를 상쇄할수 있고, 당시 언급되었던 이치로 시프트는 이를 깨기 위해서 상대팀이 취했던 포메이션. 그 시대의 대도 중 하나였던 후안 피에르 조차도 100득점을 넘긴 적이 단 3번에 불과하고, 스캇 포세드닉은 단 한 번, 호세 레예스는 4번이다. 무엇보다 1번타자의 경우, 홈런 갯수가 적고 다음 등장하는 타순의 히팅에 득점가능성이 달려있기 때문에 클린업보다 반드시 득점에 성공할 수 있는 확률이 높은 것이 아니다. 만약에 이치로의 삼진율이 17%를 넘어가고 출루율이 3~4%라는 극단적인 아담 존스 과의 타자였다면 이치로 거품설이 큰 힘을 받겠지만, 전성기만을 포함하지 않고 전체 평균만 따져도 삼진률이 10%, 그것도 SwStr 수치가 평균 5.2%밖에 되지 않는다. 그나마 이치로의 스탯과 비슷하다고 볼 수 있는 배드볼히터의 대표적인 5툴 리드오프였던 칼 크로포드 (외야수, 리드오프, 높은 수비기여도, 상대적으로 낮은 출루율, 빠른 발)조차도 이 수치는 안나온다 (SwStr = 9.3%, K = 14.9%, B = 5.3%).

수비에 있어서 골든 글러브 10개를 자랑하긴 하지만 실제 수비점수가 낮기에 거품이라는 말이 있는데, 이는 정말 상대조차도 할 필요없는 개소리에 불과하다. 이 논리에 따르면, 우익수 통산 최다 골든글러브 수상자(12회 연속) 로베르토 클레멘테나 공수양면에서 큰 활약을 펼친 좌익수 베리 본즈같은 타자들 역시 생각보다 수비수치가 낮다고 거품이라고 까는 것과 다를 바 없는 소리다. 이 주장은 말 그대로 포지션에 따른 수비가중치가 각 구역마다 다르게 주어진다는 사실을 완전히 무시했다는 전제 때문에 망글이다. 아래는 팬그래프 기준 포지션 별 수비 조정점수이다.

포수: 12.5
유격수: 7.5
2루수: 2.5
3루수: 2.5
중견수: 2.5
좌익수: -7.5
우익수: -7.5
1루수: -12.5
지명타자: -17.5

미들라인에 가까운 2루수와 중견수, 우타자가 많은 특성상 강습타구에 심혈을 기울여야 할 3루수가 가중치를 비교적 높이 부여받고, 수비반경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유격수와 , 그리고 가장 중요한 포수의 가중치가 이보다 더 높은 점수를 미리 먹고 들어간다. 송구를 제외하고 생각보다 그렇게 수비에서 높은 점수를 딸 만한 요소가 없는 좌익수 혹은 우익수 쪽과, 포구를 중점적으로 두기 때문에 필딩율 자체가 그렇게 큰 위력을 발휘하지 못하는 1루수의 경우 가중치가 다른 포지션에 비해 당연히 줄어든다. 쉽게 설명하자면, 저기 언급한 클레멘테나 본즈처럼 수비에서 그렇게 큰 능력을 발휘할 일이 없는 자리에서 진기명기 캐치 다 보여주면서 남들보다 훨씬 높은 수비스탯을 스스로 따먹고 골글을 탔다는 소리다. 이치로도 이런 유형의 타자 중 하나이고, 그에 합당한 기록을 충분히 남긴 타자 중 하나이다[56].

당시 외야수 골든글러브에 관해서는 지금처럼 포지션별로 각각 한명씩 준게 아니라 외야수 전원을 기준으로 주었기 때문에 보통 골든글러브를 따는 선수들은 대체적으로 중견수인 경우가 많았다. 당시 이치로와 골글 경쟁을 벌이던 선수만 해도 토리 헌터, 카를로스 벨트란, 먹튀 직전의버논 웰스, 칼 크로포드, 코코 크리스프, 마이크 카메룬, 아론 로완드 등 셀 수 없이 많다. 골든 글러브가 명성빨로 대충준다는 오명을 받고있고 실제로 매해마다 논란이 끊이지 않지만, 가뜩이나 점수타먹기 힘든 우익수를 맡으면서 10년 연속으로 골글을 수상했다는 점은 굳이 폄하될 이유가 없다.

MVP를 딴 시절의 세부기록을 보면, 전체 타자들 중 Off 27.8 (36위), Def 7.8(41위), WRC+ 124(47위), BsR 5.1(3위)를 기록하고 있다. 확실히 클래식 스탯에서 타격 3관왕(도루, 안타, 타율)을 기록한 것과 달리 세부스탯 하나하나 따져보면 BsR을 제외하고 그리 주목받기 쉬운것은 아니다. 다만 이게 합쳐지면 얘기가 달라진다. WAR는 6.0으로, AL에서 5위권 안에 들어간다. 물론 제이슨 지암비나 브렛 분, 알렉스 로드리게스, 로베르토 알로마에 비해서 임팩트 및 실제 기록만 가지고도 이들에 밀리는 것은 사실이다. 다만, 이 때 당시 MVP 선정에 있어서 왠 생소한 동양인이 첫해에 타격 3관왕에 속한 팀은 116승 찍고 AL 준우승을 차지했고, 이치로보다 좋은 성적을 기록한 나머지 4인방은 알다시피 소속팀이 디비전에서 떨어지든가 그 전에 광탈했다(...). 게다가 이 시기에는 MVP 선정시 팀 성적의 비중을 크게두었기 때문에 지금처럼 팀이 꼴지해도 개인스탯으로 MVP받는 시기에는 분명 말이 많았을 수상이기는 하다. 다만, 후자를 생각하면 사실 2012-2013년에 마이크 트라웃을 제치고 MVP를 연속 수상한 미겔 카브레라의 경우도 비판할 요소가 있긴하다[57]. 2016년 현재까지도 팀 성적이 MVP 선정에 어느 정도 영향을 끼치기에, 이는 현재까지도 논란이 많고 이전 수상자들에 한해서 불합리한 선정기준이라고 비판한 요소는 아직까지도 충분히 많다. 이 때문에 MVP까지는 과분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 실제로 같은 팀이었던 브렛 분의 경우 세부스텟에서 이치로를 능가하는 수치가 많았고, 무엇보다 2루수라고 믿을 수 없는 타격능력을 보여주었기에. 다만 생각해보니 롸동자와 지암비는 약물빨이란 걸 생각해보면 그렇게 큰 문제는 아닌거같다. 브렛분도 약물이다 하지만 2004년 BWAR 9.1, FWAR 7.1을 찍고도 MVP 7위에 그쳤기 때문에 MVP가 절대 과분한 선수까지는 아니다. 실제로 MVP를 선정할때 그나마 최근에 들어서 세이버메트릭스를 염두하는 기자들이 많아진거지, 저 당시엔 머니볼이니 소리가 나와도 여전히 투승타타가 만개하던 시절이다.

세이버매트릭스가 대두되면서 이치로는 오히려 클래식 스탯에 가려진 수비기여도와 주루에 있어서 더 높은 점수를 받았고, 이것이 공격에 가중치를 부과하면서 상대적으로 낮았던 OPS와 출루율을 보충하면서 수혜를 받은 축에 속한다. 분명 연간 기록만을 따졌을 때 이치로는 S급이라 부르기에 그 한계가 명확히 그어져 있던 타자이며, 안타갯수에 비해 영양가가 적다고 비판받을 여지는 충분히 제기될 수 있는 타자인 것은 확실하다. 말 그대로 장점을 극대화한 경우지 단점을 보완한 타자는 아니기 때문. 그러나 2001년부터 2010년까지 기록한 비교적 높은 WAR는 이치로가 매년 S급 성적을 계속 남겨서가 아니라, 건강하게 주전으로 많은 경기를 서면서[58] 호성적을 꾸준하게 남겼기 때문이고, 이런 누적스탯이 클래식만큼 차곡차곡 쌓여서 나중에 통산기록을 보았을 때가 돼서야 진가가 발휘되는, 오히려 대기만성형에 가까운 타자 중 하나이다. 실제로 단순히 한 시즌만 짤라서 보면 이치로보다 공격 측면에서 좋은 성적을 기록한 테이블세터는 헨리 라미레즈, 칼 크로포드, 자코비 엘스버리, 그래디 사이즈모어, 추신수 등이 . 하지만 이들은 파워툴을 얻는 대신 알다시피 큰 덩치로 주루와 수비, 공격을 다 갖추려다보니 그 덩치가 오히려 내구소모를 유발하는 양날의 검이 되었고, 실제로 그 여파로 부상횟수가 점점 늘어 전성기가 생각보다 빨리 진 편에 속한다. 즉 , 특급 성적을 기록한 경우는 몇번 있되, 그것이 많은 출장수로 연결되지는 않았기에 이치로보다 뛰어난 선수라고 보기에는 어렵다는 얘기와 일맥상통한다.

WAR를 기준으로 이치로와 대등 혹은 더 높은 기록을 가진 리드오프는 웨이드 보그스, 폴 몰리터, 케니 로프턴, 피트 로즈, 팀 레인스, 로드 커류, 토니 그윈, 크레이그 비지오, 아지 스미스 (사실 수비로 먹고들어간거지만...), 그리고 이쪽계열 끝판왕인 리키 헨더슨 정도가 다다.[59] 이들의 공통점은 이치로만큼 혹은 더 많은 경기를 뛰고, 커리어 하이에 준하는 시즌 기록을 좀 더 오랫동안 남기거나 만만찮은 누적을 쌓은 점이 특징이다.[60]자신의 전성기였던 2000년대 동안에 신인왕+MVP+골글+실슬을 싹슬이한 2001년과 메이저 최다안타 기록을 경신한 2004년을 제외하면 다른 mlb컨텐더들에 비해 S급이라고 보기엔 약간 애매한 지표를 가져서 거품이라는 평가가 꽤 있었지만 대신 수준급 내구력을 바탕으로 누적을 꾸준히 쌓으면서 기록한 초창기 10년동안의 OPS가 리드오프치고는 꽤 높은 0.806이다. 현재는 노화로 인해 수비와 주루를 제외한 공격 수치가 많이 떨어진 편이지만, 선수 말년에는 상당한 클래식 누적치를 가져가면서 명전입성을 확실시 한 매우 이례적인 케이스.

그리고 이치로가 워낙 현역 생활을 오래 유지하고 3천안타라는 엄청난 금자탑을 쌓은 탓에 간과되는 사실이 있는데, 애초에 이치로는 27세라는 늦은 나이가 되어서야 MLB에 입성한 늦깎이 메이저리거라는 것이다. 혹자들은 이치로를 누적빨이라고 평가절하하지만 오히려 누적 기록으로 평가할 때 가장 불리한 선수 중 한 명이 이치로이다. 메이저리그의 평균적인 에이징 커브는 20대 중반에 정점을 찍고[61] 20대 후반이면 하락세가 시작되는데, 이치로는 27세에 MLB에 왔는데도 불구하고 무려 10년동안 올스타에 뽑히는 정상급 기량을 유지했다. 소위 말하는 이치로의 아름다운 10년 마지막 시즌인 2010시즌에 그의 나이는 이미 36세였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이치로가 처음부터 미국에서 뛸 수 있었다면 훨씬 대단한 통산 성적을 기록했을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혹자는 야구에 만약은 없고, 이치로가 미국인으로 태어나서 야구를 시작했어도 별로 달라질 것이 없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하지만 이치로는 20세 약관의 나이에 NPB에서 타율 .385와 역대 최다안타인 210안타를 기록하며 커리어 하이를 찍고 MVP를 탔으며, 도저히 동기부여를 할 수 없어 매너리즘에 빠졌다던 시기에도 타율 .340 이하를 기록해본 적이 없는 타자이다. 그리고 NPB 마지막 시즌에 20세 시즌과 맞먹는 .387 .460 .539을 기록하고 MLB에 진출해 별 적응기 없이 첫 달 .336 둘째 달 .379를 기록한 후 신드롬을 불러일으키며 신인왕, MVP, 골드글러브, 실버슬러거를 싹쓸이했던 타자이다. 즉 이치로는 아무리 낮게 잡아도 20세에 이미 MLB 주전 레벨의 실력을 갖고 있었다고 봐도 무리는 아닐 것이다.

실제로 이치로를 올타임 우익수 5위에 선정한 폭스스포츠는 이치로가 MLB에서 커리어를 시작했으면 피트 로즈의 안타 기록을 넘었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고, 9위에 선정한 ESPN역시 이치로가 27세에 커리어를 시작하고도 3천 안타 타자가 될 것이라는 점을 언급했다.[62] 역대 6위에 선정한 FANSIDED 역시 일본 시절 커리어를 언급하고 있다.

4. 특이한 타격 매커니즘[63]


일단 위의 영상을 반드시 볼 것.

타격 매커니즘이 상당히 특이하다. 물론 각자에게 맞는 타격 매커니즘이 있기 마련이고 그렇기에 특이한 매커니즘이 당연히 있을 수 있지만 이치로의 매커니즘은 그 중에서도 상당히 특이한 편으로 꼽힌다. 야구를 조금이라도 아는 사람은 알겠지만 대개 타격 시에 간결한 스윙을 가져가길 당부하고 퍼져나오는 스윙을 지양하라고 하지만 이치로는 특이하게도 퍼져나오는 스윙을 하고 있다. 즉, 이치로의 타격 이론은 기존의 타격 이론을 완전히 반(反)하는 이론인 것.

위 영상에서도 보이듯이 이치로는 그립 위치를 뒤에 남겨놓는 것이 좋다고 했는데 이렇게 되면 히팅 포인트를 다양하게 가져갈 수 있긴 하지만 스윙이 퍼져나올 수 밖에 없다. 그러면 당연히 배트 스피드가 느려질 수 밖에 없고 특히 사회인 야구인 같이 근력이 기본적으로 낮은 사람이라면 공을 맞히더라도 배트가 밀려 땅볼이 될 가능성이 크다.

그럼에도 이치로가 이런 스윙으로 메이저리그에서 3000안타를 기록할 수 있었던 것은 말 그대로 피나는 노력과 선천적으로 타고난 손목 힘에 기반했다고 밖에 볼 수 없을 듯.

이러한 타격스타일 때문에 하나의 그만의 타격지론이 있는데 바로 "상대 투수의 가장 느린볼을 노리고, 빠른볼에 대응하는 점이다" 이유는 어떤 리스크에도 대응할 수 있는 타격법이기 때문이라고 한다. 이에 대해선 선수들마다 상대법이 다르긴 하지만 일반적인 접근법과 반대이다. 일반적인 경우 느린볼을 기다리다가 치면 갑작스러운 빠른볼에 손도 못쓰고 당해버리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2015년 216안타를 기록한 아키야마 쇼고한테 이치로 스타일에 대해서 물어봤더니 "기본적으로 빠른볼을 기다리고 변화구에 대응하는게 이상적이지 않을까요? 변화구를 기다리다 치면 전 변화구밖에 못칠것 같습니다."라고 했다.

그럼에도 이치로는 상대의 브레이킹 볼인 느린볼에 중점을 맞춘다. 그리고 빠른볼은 그의 타격지론대로 그립위치를 남겨서 타이밍을 맞추는 방법이다. 이렇게 하면 헛스윙 비율이 급감한다고 본인은 생각한다고 한다. 물론 타격센스가 좋아서 가능한 일이지만 본인이 인터뷰에서 밝히기를 "빠른볼을 노리면 좋은 체인지업이나 스플리터에 손도못쓰고 당해버리기 때문이다"라는 대답을 했다.

그래서 PD가 "만약에 공이 너무 빨라서 대응 못하면 어떻게합니까?"라고 하자 이치로는 "스트라이크존을 지나간다면 거의 없다고 생각합니다. 내 컨디션이 나쁘면 못치겠지만, 노멀(컨디션이 정상)이라면 빠른볼에 못쫒아간 적은 거의 없습니다. (그립을 뒤로 남기기 때문에)아무리 빨라도 아슬아슬하게 파울로 만들 수 있습니다."

또한 일반적인 단타형 타자들이 보통 배트를 짧게 잡아 컨택에 더더욱 힘을 실어주는 반면 이치로는 특이하게도 슬러거 유형의 타자들 처럼 배트의 노브 부분에 새끼 손가락을 걸쳐서 잡는다. 다른 단타 유형의 타자들과는 매우 차별화 된 부분.

5. 일본에서의 평가

일본에서는 역대 최고의 선수라는 평가를 받는다. NPB시절 기준으로 공-수-주가 모두 뛰어났을 뿐만 아니라 장타력까지 갖춘 타자였으니까. 데뷔 3년차부터 이치로가 NPB에서 남긴 성적은 홈런 기록만 제외하면 야수로서 낼 수 있는 거의 완벽에 가까운 성적이다.

일단 일본인 남자들에게 야구는 '자존심'과도 같은 종목이다. 2010년대 후반부터는 축구 쪽으로 인기가 약간 쏠리고는 있지만 여전히 일본의 모든 스포츠 중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받는 종목은 야구다. 그런 종목의 역대 최고 선수 중 한명이니 이치로가 받는 평가는 엄청날 수밖에 없다. 오릭스 시절부터 그랬지만 '야구천재'라는 수식어가 항상 따라 붙었으며, 메이저리그에서도 역대 일본 출신 선수 중에서 가장 빼어난 활약을 펼치고 처음으로 MVP를 받은 선수라서 일본 스포츠계에서의 입지는 독보적이다.

하지만 일본 전국민이 이치로의 실력과 업적은 모두 인정하는 반면 2000년대 중반까지 인간으로서의 인기에 있어서는 호불호가 갈렸던 것이 사실이다. 이는 크게 두가지 이유로 나눌 수 있었다. 첫 번째로 고질라 마쓰이 히데키의 존재 때문이다. 당시 일본 야구계는 이치로와 마쓰이 둘이 양분하고 있었다.[64] 마쓰이 히데키는 일본 야구팬의 80%가 팬으로 자처하는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슈퍼스타로서 어마어마한 팬덤을 업고있었다. 이에 비해 이치로의 오릭스 버팔로스는 그 팬덤의 규모에 있어서 자이언츠에 비할 구단이 못되었다. 이로써 일본전역의 자이언츠 팬들은 자신들의 슈퍼스타인 마쓰이 히데키가 이치로에 가려지는 것을 못마땅해 하였고 라이벌의식에 의해 그를 상당부분 비판했었다.
두번째로 이치로의 개인주의 이미지 때문이었다. 이치로는 선수생활 내내 개인주의적, 이기적 선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 팀의 성적이나 우승보다는 개인 기록을 우선 시하는 선수라는 비판을 받아왔다.[65][66][67] 하지만 2006, 2009 WBC를 기점으로 일본 내에서의 이러한 인식은 완전히 사라졌다. 당시 메이저리그 정상급의 연봉과 위치에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치로는 국가대표팀 합류를 단 한번도 고사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일본인 메이저리거들까지 대회에 합류하도록 전화로 일일이 설득하는 열의를 보였다.[68] 게다가 일본에서 가장 인기있는 야구선수였던 마쓰이 히데키는 부상이 없음에도 단지 팀의 만류로 국가대표팀에 합류하지 않으며 둘의 인기가 완전히 역전되는 상황이 벌어졌다. 이후 이치로는 주장을 맡아 조국을 두 대회 모두 정상에 올려놓음으로써 일본 내에서 위대한 주장으로 불리게 되었다.

일본인들에게 오 사다하루(왕정치) 이후에 가장 영향력 있는 타자라고 할 수 있다.[69]

6.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

한국의 야구경기 중계방송에서 선수들의 이름이 나올 때 다른 일본 선수들은 후쿠도메, 조지마처럼 성만 나오는데 비해 스즈키 이치로만 이치로라고 이름만 나오는데, 등록명 자체를 이치로로 했기 때문이다. 일본에서 스즈키라는 성이 워낙에 흔하기 때문에 d오기 아키라 감독이 특이하게 이름을 등록명으로 하길 권했고 이걸 메이저에서도 그대로 썼다.

06년 WBC 1회 대회, 09년 WBC 2회 대회에서 대한민국을 상대로 명성에 걸맞지 않는 부진한(?) 모습을 보여 많은 한국인에게 그 이미지가 각인되어 있다. 그러다 보니 한국에서는 입치로, 입치료 등으로 불리고 있다. 하지만 한일전에서는 땅볼만 친 것으로 봐서 '츤데레가 아니냐'라는 이야기가 나오고 있다. 그럴리는 없지만 사실이면 흠좀무. 여담으로 이치로의 망언은 일본 대표팀에게 매우 큰 디버프로 작용한다는 특징이 있다.(30년 망언 후의 WBC 1회 대회에서 2연패 등)
  • 앞으로 30년 동안 일본 야구를 이기지 못하게 해주겠다.
    WBC 1회 대회 지역예선 중에서 나온 말이다. 사실 원문은 '대결한 상대가 30년 동안 얕볼 수 없을 정도로 이기고 싶다'으로 인터뷰 전문은 다음과 같다.
    ただ勝つだけじゃなく、すごいと思わせたい。戦った相手が “向こう30年は日本に手は出せないな” という感じで勝ちたいと思う。

    단순히 이기는 게 아니라 엄청나다는 생각이 들게 해주고 싶다. 대결한 상대가 "앞으로 30년은 일본을 함부로 건드리지 못하겠구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기고 싶다.

    그래서 "한국, 타이완 등을 겨냥한 말이 아니냐?"고 하지만, 딱히 특정 국가를 비하하는 발언은 아니라 그냥 "여러분, 우리 일본은 실력이 좀 짱이거든요. 함부로 덤비지 마셈"하는 일종의 자화자찬식의 국뽕성 발언이고 타국 비하라고 보기는 힘들다. 한 마디로, 관용어적인 표현으로 "우리 일본이 더 강하니까 여러분들이 열심히 해서 이겨봐라!" 같은 가벼운 도발성 표현이다. 실제로 일본인들은 상대방이 실력이 부족하다는 평가를 내릴 때 "너는 아직 30년은 멀었다." 같은 말을 사용한다.

    그러나, 이 말이 한국의 매스컴에서 미묘하게 뉘앙스가 바뀌어서 전달된 후에 망언으로 등극하면서 넷상에선 "한국 야구가 일본을 따라오려면 30년은 걸린다"라는 식으로 재차 변형되면서 원문과는 상당히 동떨어진 문장들이 이치로의 망언이라는 타이틀로 상당히 나돌고 있다. 물론, 말하면서 실실 웃는 것도 그렇고 보는 사람에 따라 불쾌하게 느껴질 수도 있으니 영상을 직접 보고 각자 판단하자. 나중에 김병현은 이치로의 말을 듣고 "그냥 만화를 많이 봐서 그런 것 같은데...?"라고 시큰둥하게 반응했다.

    그리고, 이치로 본인은 그 발언을 한 것에 대해 계속 마음이 걸렸는지 2012년 당시 오릭스에 입단한 이대호한테 인사를 하면서 "한국 팬들이 나를 안 좋아할 것 같다. 아직도 나를 미워하지 않느냐?"라고 질문했다고 한다. 그래서 이대호는 깜짝 놀라서 어떻게 대답을 할지 고민하다가 "승부의 세계니까, 그럴 수 있다고 생각하고 한국인들도 이해해 주실 것이다."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말을 들은 이치로는 기분좋은 듯한 표정을 지었다고 한다.기사 ~~그리고 그 대가로 배영수에게 아주 혼쭐이 났다.[70]

  • 내 야구인생에서 가장 굴욕적인 날.
    WBC 1회 대회에서 한국에게 2연패 한 뒤. '똑같은 상대(한국)에게 2번 연속으로 진 게 굴욕이다'라는 의미.

  • 한국을 이기는 방법은 여러 가지가 있다
    WBC 1회 대회에서 3번째로 일본과 한국의 맞대결이 성사되자 이치로가 한 말. 야구는 야구지 WWE가 아니다 앞의 망언에 이어서 이 말까지 나오면서 한국의 대표팀 감독인 김인식 감독님마저 분노시켰다. 그 성격좋은 김인식 감독도 저 말을 듣고 '인생에서 강하게 나가다 보면 자기가 스스로 무너지는 경우가 많더라' 라며 디스.http://www.hani.co.kr/arti/sports/baseball/109592.html 물론, 이치로의 말대로 3번째 경기는 우리가 졌다.

  • 없어. 그런거. 없어. (우리에겐 그런게 있을리가 없잖아?)
    WBC 2회 대회 2라운드 한국전을 앞두고. '한국과 함께 아시아 야구 수준을 높여갈 의식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대한 답변. 실제로 그리 답변한지는 알 수 없지만 보도된 바로는 상당히 비아냥거리는 말투(ね~よ)다. 하지만 이 발언은 박동희 기자의 취재에 따르면, 현장에 있던 기자들 중 아무도 이 말을 들은 사람은 없었다고 한다. 그냥 이 기사를 올린 산케이신문 기자의 날조라고 밝혀졌다. 역시 명불허전 산케이[71]

    그리고 WBC 2회 대회 2라운드 한국과의 경기에서 봉중근에게 조련을 당하는 수모를 겪었다.(…) 이래저래 한국만 만나면 안습.(관련자료) 하지만 "봉중근의 공은 정말 치기 어렵다"고 인정하고[72] WBC 2회 대회 결승전 연장 10회에서 임창용 상대로(...) 결승 2루타를 때려서 일본 우승의 일등공신이 되었다.

6.1. 그 외 망언 논란과 실상

위와 같은 인터뷰들이 이어지면서 이치로 = 망언이라는 공식이 따라 붙게 되었다. 그때문에 이후에 인터뷰가 왜곡되어 전해지는 경우가 있다. 말하자면 그가 망언을 안 했는데 언론이 했다고 하는 사례들.

대표적인 사례로 2013년 6월 20일 "류현진의 공을 눈감고 홈런쳤다."라고 했다는 기사가 떳는데 이건 전형적인 기레기왜곡 기사다. 우선 산케이스포츠와의 인터뷰를 보자.
「(七回、左前に2点適時打)何もアイデアはなかった。振ったら?たった。(狙い打ったように見えたのは)普段の僕がそう見せているということ。(八回の好捕は)?後ろの打球だったので難しかった。点差があったので(積極的に)いってみようと。そしたらうまく入ったという感じ」
(7회 좌전 2타점 적시타) 아무 생각없이 휘둘렀는데 맞았다. (노려친 것처럼 보여진 것은) 평소의 내가 그렇게 보이고 있다는 것. (8회의 호수비는) 바로 뒤로 날아가는 타구였어 어려웠다. 점수차가 있었기 때문에 포구를 적극적으로 가져갔고 그 결과 잘 들어간 느낌.
 
이다. 여기에선 어디에도 눈을 감고 쳤다는 이야기가 나오지 않는데, 기자가 떡밥을 문 "눈을 감았다"라는 표현은 MLB와의 인터뷰에서 등장한다.
"I haven't changed anything," Suzuki said through a translator. "I haven't done anything different. To be honest, I just closed my eyes and swung."
"바꾼 것 없다". 이치로가 통역사를 통해 말했다. "난 다르게 한 것이 아무것도 없다. 그냥 눈을 질끈 감고 스윙했을 뿐이다.'"원문 출처
 
하지만 여기서 "closed my eyes"는 표현상 "운에 맡기고 혹은 마음을 비우고" 정도의 뜻이다.[73] 오히려 인터뷰 내용은 국내 기자들이 쓴 내용과는 전혀 다른것. 이렇게 이치로는 또 까입니다. 결국 다른 기자가 나서서 기자를 까는 기사를 올렸다. 거기다 위의 문구는 류현진의 공을 친것에 대한 말이 아니라 파코 로드리게스의 공을 친것에 대한 말이며, [74] 최근 타격감이 올라온 것에 대한 질문 이었던 거다. [75]

이치로 망언 논란의 시작은 97년 마늘냄새 발언이다. 1997년 10월 31일 인터콘티넨탈 호텔의 한·일 골든시리즈 기자회견에서 양군의 감독 4명(천보성, 김재박, 오오기, 호시노)과 선동렬, 이치로, 야마모토, 이종범, 이상훈, 김동수 등이 참여한 기자회견 자리에서 기자가 한국에 대한 인상을 물어보자, "공항에 내리자 마늘 냄새가 진동했다."고 대답한 것이 그 시초 http://news.donga.com/3/all/19971101/7296189/1이며, 거기에 덧붙인 발언이 "금년('97) 올스타전 때의 일입니다. 선동렬 선배와 대결을 하게 되었는데, 마운드에서 뿜어대는 선동렬 선배의 마늘 냄새는 타석에 서 있는 나를 혼수상태로 빠지게 하며 볼카운트를 잃어버릴 정도였어요."라고 말했는데, 이에 대해 당시 통역을 맡았던 조희준 씨는 "이치로가 농담을 할 의도였다는 부분이 제대로 전달되지 못한 것이 안타깝다"는 의사를 몇 차례 밝힌 적이 있다.기사 이는 한국인이 어떻게 받아들일지 생각을 하지 않은 경솔한 발언이고, 마늘냄새 발언은 혐한들이 한국인을 비하하는 소재로 사용하는 경우도 빈번한 만큼 이는 실수라고 할 수 있겠다.

결국 정리하자면 예전에 생각없이 말을 내뱉은 것은 사실이고, 이후에 그 일 때문에 까이는 것도 사실이라고 정리할 수 있겠다.
사실 일본에선 (~~무슨냄새난다) 가 장난으로 많이 쓰이기도 한다 대표적인 예가 고독한 미식가에 장어냄새가 베었다

7. 기타

  • 위에서도 언급했듯이 일본에서는 イチロー, 미국에서는 ICHIRO 라는 등록명으로 선수 생활을 하였고, 실제로도 그 이름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여담으로 '스즈키'라는 성과 '이치로'라는 이름은 둘 다 일본에서 흔하기로는 다섯 손가락 안에 들 정도로 흔한 성과 흔한 이름이다. 원래 一朗라는 이름은 일본에서 자식을 많이 낳던 시절에 첫째는 이치로, 둘째는 지로(二朗), 셋째는 사부로(三朗), 넷째는 시로(四朗), 다섯째는 고로(그 고로 가 아닌데...?)(五朗) 같은 식으로 짓던 이름. 그런데 스즈키 이치로는 차남이다(…). 형 스즈키 카즈야스(鈴木 一泰)는 디자이너로 기업 상표나 로고, 캐릭터 등을 만든다고 한다.[76]
  • 시애틀의 홈구장인 세이프코 필드에서는 그의 이름을 딴 '이치롤'이라는 스시가 잘 팔린다고 한다.
    파일:3D24A5E6-AEF3-454F-8E4E-203D9EFD3345.png
  • 성격은 일본 내에서조차 전부터 말이 많다. 일단 이미지와는 달리 절대 과묵한 남자가 아니다. 선수이면서 파벌을 만들려 한다든가 대표팀 내에서도 독불장군이라 선수들 사이에서도 평은 안 좋은 편. 심지어는 감독조차 제어하지 못할 수준이라고. 한국에선 일본팀의 리더 정도로 인식하지만 리더로서의 자질은 같은 일본 선수들조차도 평가가 제각각. 워낙에 인기가 많아 묻히곤 하지만 일본 야구팬들 사이에선 오히려 자주 까이는 선수다. 하지만 연이은 WBC 참가와 애국심을 고취하는 듯한 발언, 그리고 2009년 WBC의 활약으로 인해 안티는 많이 줄어든 상태.
  •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때마다 올스타전 당일 같이 소집된 올스타전 선수들을 모아 놓고 일장 연설을 한다고 한다. 평소 언론에 등장할 때면 말실수를 줄이기 위해 무조건 일본어-영어 통역을 대동하지만 이날만큼은 기자들도 보는 자리에서 거침없는 영어로 상대팀인 내셔널리그를 비하하는 욕설과 저주를 퍼붓는다. 2001년부터 시작한 그의 스피치 덕인지 AL은 이후 7년간 올스타전에서 NL에게 7년 연속 올스타전 무패 (6승 1무)를 기록했다. 이젠 올스타전에 모이는 선수들도 하나의 독특한 "의식"의 하나로 여기며 즐기는 수준. 또한 카를로스 페냐, 미겔 카브레라 등 히스패닉계 1루수들에 따르면 못 알아들을 줄 알고 스페인어로 뭐라 했더니 영어로 표현도 못할 스페인어 욕설(...)이 돌아왔다는 등의 흉흉한 소문[78]이 전해지는등 흔히 영어를 못해서 통역 쓴다고 하는 오해와 달리 상당한 외국어 내공을 갖고 있다. 일본에서부터 메이저리그를 꿈꾸며 영어를 공부해왔다고는 하지만 스페인어 트래쉬 토킹 등의 이야기는 흠좀무. 한 번 이치로의 영어실력을 감상해보자




    기자: "가장 좋아하는 미국 속담이 뭐죠?"

    이치로: "음... '캔자스 시티의 8월은... 면양말 안의 쥐새끼 두마리보다도 더 씨X스럽게 덥다.'" (August in Kansas City... it, it, it's hotter than two rats in a fucking wool sock).[79]


    기자 & 촬영장 스태프: (모두 경악을 하며 미친듯이 웃는다)

    이치로: "짓궂은 팀동료가 가르쳐 줬죠. ㅎㅎ"
  • ESPN의 토드 그리섬은 이치로의 3000안타 달성 기자회견 후 트위터에 “이치로의 3000안타는 놀라운 일이지만. 근데 왜 이치로는 15년 간 미국에서 야구를 하면서 영어를 배울 의지가 없었는가? 나에게는 그것이 놀랍다.”라는 것을 썼다. 그리섬의 발언에 영어우월주의자냐?라는 항의가 ESPN에 다수들어왔다. 근데 사실 그리섬은 제대로 알지 못하고 글을 쓴 것이다. 실제 이치로의 영어 실력은 수준급이다. 현지인과 대화도 가능하며 준수한 문장을 구사할 수 있다. 그럼에도 이치로가 통역을 쓰는 이유는 미묘한 차이로 자신의 발언이 오해가 될까봐. 그리섬은 이치로를 잘 모르고 썼다면서 사과하면서 “미안하다. 이치로가 영어를 유창하게 하는 것 같다. 하지만 내가 봤을 때는 항상 통역이 있었다”라고 항변했다. 이런 글에 대해서 뉴욕 포스트는 “이치로를 15년 동안 취재한 우리들은 그의 언어(일본어)를 배우려고 한 사람이 도대체 얼마나 되는가? 아마도 이치로는 영어를 이해할 수 있게 된 것을 처음으로 후회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리섬과 같은 교만하고 어리석은 말을 알아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라는 조롱을 했다.
  • 기자와 인터뷰했을 때 그가 "텐션이 올라온다"라고 말하는순간 고개를 좌우로 흔드는 게 캡처되었는데 그 잔상이 남는게 필수요소화 되어서 보통 2ch나 니코동에서 "テンション上がってきた"의 설명이나 태그가 붙은 건 머리를 흔드는 잔상이 남는 그림을 의미한다.#
  • '이치로의 레이저 빔으로 인류멸망'이라는동영상이 있는데 2001년 4월 13일 오클랜드 애슬래틱스과의 경기에서 라이트 타구를 3루에 광속으로 뿌리는 장면을 이용한 영상이다. 그냥 재미있는 영상으로 넘겨버릴 수도 있지만, 이치로는 저 한해동안 무서운 활약을 선보이며 메이져 리그 데뷔 첫 해에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MVP, 수위타자, 도루왕, 실버 슬러거, 골드 글러브를 싹쓸이 해버린다(…).(※ 일본 야구계에서는 외야에서 내야로의 빨랫줄같이 빠르고 정확한 송구를 흔히 '레이저 빔'이라고 표현한다. 레이저 빔을 소유한 대표적 선수로 스즈키 이치로, 신죠 츠요시 등이 있다.)
  • 원빈 덕에 굴욕적인 경험(?)을 한 일도 있다고 한다. 영상 대충 내용을 이야기하자면 일본에 와서 호텔로 가던 중인 이치로가 원빈을 보기 위해 몰려있는 팬들을 보고 장난기가 발동해서 타고 있던 차의 창문을 열고 얼굴을 보였는데, 고급차가 지나가니까 원빈이겠거니 하고 몰려들었던 팬들의 반응은... "뭐야. 이치로잖아.." 그리고 우르르 이치로의 차에서 떠나버렸다(...). 원빈 의문의 1승 영상에서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시애틀에서 마무리를 맡기도 했던 사사키 카즈히로. 사실 저 이야기는 농담으로 생각해도 되고, 이치로 전성기 시절, 일본에서의 인기는 상상을 초월해서 이치로에 관한 안드로메다급 농담도 굉장히 유행했었다.
  • '이치류'라는 TV 프로그램에서 일본의 국민밴드 미스터 칠드런의 팬이라고 밝힌적이 있다.
  • 후루하타 닌자부로라는 일본 드라마의 열렬한 팬이었다. 그것이 인연이 되어서인지, 메이저리그 진출 후 오프시즌을 이용해 이 드라마의 파이널 시리즈(3부작) 중 제 2화 '공평한 살인자(フェアな殺人者)'에 출연하였다. 당당한 주연 타이틀롤로 등장하며, 이치로의 연기력(?)을 볼 수 있다. 2006년 1월 4일에 일본에서 방영되었으며, 원래 인기 있는 드라마인 이유도 있고 해서 27.0%라는 높은 시청률을 기록했다.
  • MMDVOCALOID 오리지널 곡 분야에서 나름 알려져 있는 스트리크P(ストリ?クP)[80] 作. 제목도 #51이고 영상이나 가사 자체가 이치로 응원가 내지 찬양가(…). 상기 설명된 바 있는 필수요소 및 경기영상을 MMD로 완벽하게 재현한, 그야말로 재능의 낭비가 무엇인지 잘 보여주는 PV이다.
  • 대부분의 야구팬들이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에 실제로 이치로의 플레이를 접했고 일본프로야구 시절엔 그냥 이치로라는 엄청 잘 하는 선수가 있다더라.....수준으로만 알았던 터라 잘 알려지지 않은 사실이지만, 엄청난 바람둥이다. . 일본에 있을 때 7년 연속 수위타자를 차지하고 심지어 MLB에서 조차 방망이를 거꾸로 잡아도 3할은 너끈한 수준이다 보니 야구에 대한 동기를 잃고 여자 꼬시는 데 몰두했다고. 여자에게 "헤어져도 그 어떤 뒷얘기가 나오지 않게 한다"는 각서도 쓰게 하고 그 각서가 법적 효력을 갖게 하기 위해 변호사와 상담하기도 했다는 일화도 있다. 염문설이 나온 여배우들로 이치로 마키하즈키 리오나 등이 있고, 불륜으로 확정적인 증거가 나온 경우만 2차례로 MLB진출을 앞둔 98년에는 유부녀와 바람을 피다가 남편에게 재판을 하지 않는 대가로 1,250만엔의 위자료를 지불하였고[81] 2001년도에는 샌프란시스코 거주 유학생과의 불륜 섹스 비디오가 걸려서 역시 큰 곤욕을 치뤘다.[82] 불륜설 정리. 참고로 아내가 불임이라 보상심리로 불륜합법을 저지르는 것 같다는 분석도 있다. 물론 불륜과 불임은 아무런 상관이 없으며 어떤 이유로든 불륜이 정당화될 수 없는 것은 물론이다.
  • NLB 기록인 장훈의 3085안타를 넘은 날 장훈이 직접 메이저리그 경기장을 찾아갔다. 배트를 모으는 것이 이치로의 취미인데 자신이 현역시절 썼던 배트에 직필 사인까지 해줘서 3085안타를 기념해 선물을 해주었다. 그날 이치로는 안타를 때려서 3086안타를 기록해서 장훈의 기록을 넘었다. 경기가 끝난 후 촬영 카메라를 대동하고 장훈이 또 다시 찾아가 역사적인 순간을 축하했다.
  • 한국에서는 잘 언급이 안 되지만, 자기가 말하고 싶은 것을 조리있게 잘 전달하는 달변가다. 방송에도 가끔씩 나오면서 미국에 일본인들이 오면 즐겁게 맞이해주며 NPB에서 활약한 선배들에게 예의바르게 행동하고 후배들에게 잘해주는 모습도 보인다. 한국인 선배인 장훈에게도 깍듯이 대한다. 이렇듯 메이저리그에서도 롱런할 수 있었던 자기관리를 포함해 야구인으로써 본받아야할 모범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 메이저리그에서의 역대급 개인 성적에 비해서 가을 야구 운은 없는 편이다. 2001년 압도적인 승률로 시즌을 마감한 시애틀 매리너스에서도 결국 지구 우승은 했지만 월드 시리즈까지는 가지도 못했고, 그 뒤로 뉴욕 양키스마이애미 말린스로 팀을 옮기는 동안에도 팀이 가을 야구와는 거리가 먼 상태였다. 본인의 MLB에서의 가을 야구는 신인왕을 차지했던 데뷔 시즌과 전성기를 지난 시즌 도중 양키스로 트레이드 된 2012년이 전부이다. 그 두번의 출전에서 월드 시리즈 목전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까지는 경험해봤지만 월드시리즈는 경험하지 못했다. 다만 일본에 있을 때 1996년에 소속팀 오릭스 블루웨이브가 일본시리즈를 제패한 적이 있어 1차례 우승 경험이 있다.
  • 2008년 9월 28일 세이프코 필드에서 열린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의 시즌 최종전이 끝나고 3일후인 10월 1일 일본에서 열린 기요하라 가즈히로의 은퇴경기에 직접 참석했었다. 미국과 일본의 시차 및 비행시간등을 고려하면 사실상 경기가 끝나고 바로 날아왔다고 해도 과언이 아닌데 이는 대선배에 대한 예우 및 자신의 예전 소속팀에서 은퇴하는 것에 대한 예우차원으로 볼 수 있다. 정작 시애틀은 그해 리그 최하위로 시즌을 마쳐서 굳이 포스트시즌 기간까지 미국에 있을 필요가 없어서 바로 왔는지도(...)
  • 야구만화 메이저에서도 나온다. 작중 이름은 쿄시로지만 시애틀 연고 팀의 리드오프를 맡는 슈퍼스타라는 묘사와 타격 전 준비 자세가 정확히 그의 시그니처.
  • 한 때 야신으로 추앙받던 한 사람이 매번 스즈키 이치로의 이름을 언급하며 "이치로도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를 해보고 쓸모 없다며 바로 버렸다."며 주장을 펼쳤는데 스즈키는 오히려 근육의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특별 제작된 웨이트 트레이닝 기구를 주문하여 비시즌 겨울에 지내는 일본 호텔 창고를 개조하여 개인 트레이닝 룸을 만들정도로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 댄싱 머신이라 카더라
  • 야구와 관계없는 격투게임 에서도 오마쥬된 바 있다. 철권 7이 바로 그것. 야구방망이를 착용하고 인게임에서 사용하면 야구방망이를 휘둘러 상대에게 대미지를 주는데, 이 때 야구방망이를 휘두르기 전에 캐릭터가 이치로의 타격 준비 자세를 잡고 방망이를 휘두른다.

8.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NPB)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AR
1992 오릭스 40 99 24 5 0 0 9 5 3 3 11 .253 .276 .305 .581 -0.2
1993 43 67 12 2 0 1 4 3 0 2 7 .188 .212 .266 .478 -0.6
1994 130 616 210 41 5 13 111 54 29 51 53 .385 .445 .549 .994 8.2
1995 130 613 179 23 4 25 104 80 49 68 52 .342 .432 .544 .976 10.2
1996 130 611 193 24 4 16 104 84 35 56 57 .356 .422 .504 .926 7.8
1997 135 607 185 31 4 17 94 91 39 62 36 .345 .414 .519 .933 6.4
1998 135 558 181 36 3 13 71 79 11 43 35 .358 .414 .518 .932 5.1
1999 103 468 141 27 2 21 68 80 12 45 46 .343 .412 .572 .984 5.7
2000 105 459 153 22 1 12 73 73 21 54 36 .387 .460 .539 .999 5.7
NPB 통산
(9시즌)
951 4098 1278 211 23 118 529 628 199 384 333 .353 .421 .522 .943 48.3
역대 기록 (MLB)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01 SEA 157 738 242 34 8 8 127 69 56 30 53 .350 .381 .457 .833 6.0 7.7
2002 157 728 208 27 8 8 111 51 31 68 62 .321 .388 .425 .813 4.7 3.5
2003 159 725 212 29 8 13 111 62 34 36 69 .312 .352 .436 .788 5.7 5.6
2004 161 762 262 24 5 8 101 60 36 49 63 .372 .414 .455 .869 7.1 9.2
2005 162 739 206 21 12 15 111 68 33 48 66 .303 .350 .436 .786 3.6 3.9
2006 161 752 224 20 9 9 110 49 45 49 71 .322 .370 .416 .786 5.6 5.3
2007 161 736 238 22 7 6 111 68 37 49 77 .351 .396 .431 .827 6.1 5.8
2008 162 749 213 20 7 6 103 42 43 51 65 .310 .361 .386 .747 4.3 5.3
2009 146 678 225 31 4 11 88 46 26 32 71 .352 .386 .465 .851 5.5 4.7
2010 162 732 214 30 3 6 74 43 42 45 86 .315 .359 .394 .754 4.8 3.7
2011 161 721 184 22 3 5 80 47 40 39 69 .272 .310 .335 .645 0.1 0.6
2012 95 423 105 15 5 4 49 28 15 17 40 .261 .288 .353 .642 1.5 1.6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12 NYY 67 240 73 13 1 5 28 27 14 5 21 .322 .340 .454 .794 0.8 0.2
2012 시즌 합계 162 663 178 28 6 9 77 55 29 22 61 .283 .307 .390 .696 2.2 1.8
2013 NYY 150 555 136 15 3 7 57 35 20 26 63 .262 .297 .342 .639 1.1 1.5
2014 143 385 102 13 2 1 42 22 15 21 68 .284 .324 .340 .664 1.1 1.0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15 MIA 153 438 91 5 6 1 45 21 11 31 51 .229 .282 .279 .561 -0.8 -1.2
2016 143 365 95 15 5 1 22 30 10 30 42 .291 .354 .376 .730 1.3 1.5
2017 136 215 50 6 0 3 20 19 1 17 35 .255 .318 .332 .650 -0.1 -0.3
년도 소속팀 경기수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bWAR
2018 SEA 15 47 9 0 0 0 5 0 0 3 7 .205 .255 .205 .460 -0.4 -0.4
2019 2 6 0 0 0 0 0 0 0 1 1 .000 .167 .000 .167 -0.1 -0.1
MLB 통산
(19시즌)
2653 10734 3089 362 96 117 1420 780 509 648 1080 .311 .355 .402 .757 57.8 59.1
스즈키 이치로 비율 스탯 변화
시즌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wRC+
27살 .350 .381 .457 .838 124
28살 .336 (-.014) .385 (+.004) .441 (-.016) .826 (-.012) 121 (-3)
29살 .328 (-.008) .374 (-.011) .440 (-.001) .813 (-.013) 118 (-3)
30살 .339 (+.011) .384 (+.010) .443 (+.003) .828 (+.015) 121 (+3)
31살 .332 (-.007) .377 (-.007) .442 (-.001) .819 (-.009) 118 (-3)
32살 .331 (-.001) .376 (-.001) .438 (-.004) .814 (-.005) 116 (-2)
33살 .333 (+.002) .379 (+.003) .437 (-.001) .816 (+.002) 117 (+1)
34살 .331 (-.002) .377 (-.002) .430 (-.007) .807 (-.009) 115 (-2)
35살 .333 (+.002) .378 (+.001) .434 (+.004) .811 (+.004) 116 (+1)
36살 .331 (-.002) .376 (-.002) .430 (-.004) .806 (-.005) 115 (-1)
37살 .326 (-.005) .370 (-.006) .421 (-.009) .791 (-.015) 112 (-3)
38살 .322 (-.004) .365 (-.005) .419 (-.002) .784 (-.007) 111 (-1)
39살 .319 (-.003) .361 (-.004) .414 (-.005) .775 (-.009) 108 (-3)
40살 .317 (-.002) .360 (-.001) .411 (-.003) .771 (-.004) 107 (-1)
41살 .314 (-.003) .356 (-.004) .406 (-.005) .762 (-.009) 105 (-2)
42살 .313 (-.001) .356 (0) .405 (-.001) .761 (-.001) 105 (0)
43살[83] .312 (-.001) .355 (-.001) .403 (-.002) .759 (-.002) 105 (0)

[1] 그 외 나머지 기록은 참조.[2] 종전 기록은 로이드 워너의 1927년 223안타.[3] 2004년 시애틀 매리너스. 종전 기록은 1920년 조지 시슬러의 257안타.[4] 2001년-2010년 시애틀 매리너스. 종전 기록은 1894년-1901년 윌리 킬러의 8년.[5] 피트 로즈와 타이 기록. 단, 이치로는 10년만에 달성했다.[6] 愛工大名電. 아이치현 지역의 야구 명문고등학교이다. 일본프로야구 200승 좌완투수 쿠도 키미야스가 선배다. '나고야 전기'가 세운 공대.[7] 일본 시절에 중견수도 보는 유틸리티 외야수였으며 메이저리그에서는 주로 우익수로 나왔지만 중견수로도 총 약330경기를 뛰었고 2007년 시즌은 풀타임 중견수로 뛰면서 골드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만큼 중견수로의 능력도 최상급이다.[8] 본인의 요청으로 정규시즌에서 투수로 등판하기도 하였다.[9]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개막 2연전을 끝으로 은퇴[10] 2018년 5월부터 잠시 선수 현역 생활을 중단하고 프런트로 이동했으나 2019시즌 개막 이전에 현역 선수로 복귀했다.[11] Defensive Player of the Year Award(2005), Dependable Player of the Year Award(2010)[12] 2007년 같은 경우는 풀타임 중견수, 2008년 또한 중견수와 우익수를 나눠 뛰면서 우익수 부문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에 수상을 아쉽게 놓쳤다. 단순 UZR, DEF 등의 수비수치로 보면 메이저리그에 따라올 우익수가 없었다.[13] Outstanding Rookie(2001), Outstanding player(2004)[14] 메이저리그에서 3000개 이상의 안타와 10회 이상의 골드 글러브 수상을 달성한 야수는 이치로를 포함해서 윌리 메이스(3283안타 12GG), 알 칼라인(3007안타 10GG), 로베르토 클레멘테(3000안타 12GG) 4명뿐이고 3,000개 이상의 안타와 500개 이상의 도루를 달성한 야수는 이치로를 포함해서 타이 콥(4189안타 892도루), 호너스 와그너(3415안타 722도루), 에디 콜린스(3315안타 744도루), 루 브록(3023안타 938도루), 리키 핸더슨(3055안타 1406도루), 폴 몰리터(3316안타 504도루) 7명뿐이다. 참고로 여기에 언급된 모든 사람들이 전부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 있다.[15] 특히 도이 쇼조 감독이 싫어했다. 그래서 2년간 2군선수로 지내다가 감독이 오기 아키라로 바뀌고 난 3년차가 돼서야 1군에서 주전 선수로 출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200안타 신기록을..[16] 어떻게해도 계속 타격 1위를 유지하자 동기를 잃어버렸다고 인정했다. 첫 주전 출전인 1994년부터 일본리그에서의 마지막 시즌인 2000시즌까지 7년 연속 타격왕. 그것도 2위와 현격한 격차를 보이는 타격왕이었다. 이 상태에서 지속적으로 동기부여를 주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보아도 무방하다.[17] 특히 "공의 빠르기는 예상했던 정도인데, 볼의 무브먼트가 차원이 다르다"라는 말을 했다. 이는 그 이후 메이저리그에 진출한 마쓰이 히데키 또한 공감했던 부분이었다.[18] 당시 이치로는 51번을 달기 위해 전임 51번이자 매리너스의 준 영구결번자인 랜디 존슨에게 51번의 명예를 더럽히지 않겠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기도 했다고 한다. 물론 2012년에는 스스로 모든 것을 포기하며 뉴욕 양키스(양키스 51번은 프랜차이즈의 레전드 중견수 버니 윌리엄스다.)의 31번 저지를 입게 되지만...[19] 요즘 메이저리그로 진출하는 일본선수들이 보통 한국 나이로도 20대 중반인걸 생각하면 상당히 늦은 시기다.[20] 많은 사람들이 의문을 품을때 당시 시애틀 감독 루 피넬라는 굳건한 신뢰를 보였는데 이치로가 적어도 타율 0.280은 칠 것이라 확신했다.# 물론 이치로는 0.280은 물론이고 0.350을 기록(...)[21] 이치로 데뷔 당시 볼티모어 감독인 하그로브는 1998년 11월, 하그로브 감독은 당시 미국 올스타 팀을 이끌고 일본에서 시범 경기를 가졌는데, 그때 일본의 간판 선수였던 이치로를 처음보았다. 98년에 이미 이치로가 MLB에서 뛰기로 결심했다는 소문이 무성했다. 당시 일본 출신 타자에겐 큰 결정이었다. 당연히 취재진은 하그로브 미국 감독에게 25살에 이미 퍼시픽 리그 최우수선수상 (MVP)을 세 번 받은 이치로를 보고 받은 인상에 대해 물었다. 하그로브 감독은 솔직하게 "이치로는 주자로서 평균 이상이고, 우익수로서 평균 이상의 어깨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MLB 팀에선 4번째 외야수 정도로 밖에 보이지 않네요."라고 밝혔다. 물론 이는 1998년 얘기다. 2001년에 이치로는 아메리칸리그 (AL) 신인상과 MVP를 석권했다. 하그로브는 자신의 발언을 두고 그저 웃을 수 밖에 없었다. 그는 "그래서 제가 스카우트가 아닌가 봅니다"라며 웃었다. 이후 하그로브는 시애틀에서 이치로의 감독을 맡기도 했지만 둘은 잘 어울리지 못했다.#[22] 1975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프레드 린 이후에 2번째. 하지만 바로 전년의 사사키 가즈히로와 더불어 일본선수가 2년 연속 신인왕을 수상하자 일본프로야구에서 뛰다가 온 선수를 과연 신인으로 볼 수 있느냐에 대한 의문이 기자단 사이에 나왔고, 후에 마쓰이 히데키가 신인왕 수상을 실패하는데 주요인이 됐다. 또한 이후 다르빗슈, 다나카 등의 선수들의 신인왕 투표에서도 불리한점으로 작용했으며 그나마 일본에서 뛴 시간이 가장적은 오타니 쇼헤이가 2018년에야 일본 출신 4번째 신인상을 받았다.[23] 최다 안타를 친 2004년에 또 한 번 주려고 했으니 이것 역시 고사하였다.[24] 보통 리그에서 200안타도 잘안나온다는것을 생각해보면.. 더 이상의 자세한 설명은 생략한다.[25] 거기다 이때가 약빨고 날라다니는 타자들이 즐비했던 스테로이드 시대의 전성기라는 것을 생각해보면 정말 놀라운 활약이다.[26] 실제로, 이치로가 인사이드 파크 홈런 기록을 한 며칠 뒤에 2007 한국프로야구 올스타전에서 이택근인사이드 파크 홈런 기록을 세우게 된다. 하지만, 박노준 해설위원이 인사이드 파크 호텔로 말실수를 하는 사건이 터진다. 자세한 것은 항목 참고.[27] 지금도 메이저리그에서는 네셔널리그보다 아메리칸리그가 타고현상을 보이고 있는게 사실이다. 따라서 이치로는 아메리칸리그를 뛰면서 저런 타이틀을 번번히 놓친것뿐만 아니라 리그평균치로 계산하는 OPS+, wRC+ 등 조정스탯에서 WAR 등 까지 따따블로 손해를 본것이다. 거기다 하필 약물시대로 안그래도 리그 평균치가 폭팔한 상황이니 말 다했다...[28] 故장효조 선수도 kbo 통산타율 .331[29] 메이저리그 진출 후에는 타율과 출루율에 비해 장타율이 확 떨어진 것이 눈에 보인다. 컨택을 위해 장타율을 포기했다고 말하지만 타율까지 떨어졌다는 것은...이것이 MLB의 위엄 대신 도루개수와 안타개수는 상승.[30] 2004시즌인데 그때는 타율 커리어 하이 시즌(3할 7푼)이라 비안타 출루가 적어도 웬만하면 출루율 4할을 넘길 수 밖에 없던 때였다.[31] 그래도 클래식적 관점에서나 세이버적 관점에서나 일반 단타라도 볼넷보다 값진것이 맞다. 예로 단타라도 2,3루 혹은 엄청나게 발이 빠른 타자라면 1루로부터도 득점시키는 것이 가능하고 송구,포구 실책등 수비 실패로 베이스를 더 진루할 수 있는 변수도 생길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볼넷은 이러한 모든 변수를 차단시킨다.[32] 이런 경우라면 신인이 수비 위치를 옮기는게 당연한 일이며, 결국 추신수는 중견수로의 컨버전에 실패했기에 트레이드 된 것. 물론 찾아보면 아주 없는 건 아니다. 지구 라이벌 LA 에인절스의 경우 토리 헌터가 스스로 중견수자리를 넘긴 케이스도 있다. 단 본인의 의사가 우선이므로 이치로가 우익수를 원하는 것은 아무런 문제가 되지 않는다.[33] 아직 둘 사이에 애는 없다. 아마 나이가 있어서인지 자식은 요태까지 그래와꼬 아패로도 계속 없을 듯.[34] 비슷한 예로 웨이드 보그스의 경우 경기 전에 무조건 닭고기를 먹었다고 한다. 그 덕에 보그스의 부인은 닭고기 요리에는 반쯤 전문가가 되어 요리책을 출판할 정도였다고. (...) 그런데 웨이드 보그스는 단순히 '비슷한 예' 라고만 하기에는 이런 징크스를 통한 일상 생활의 변수 통제를 거의 80개 가까이 만들어 놓은 선수라서 이치로 보다 훨씬 지독한 경우였다. KBO는 야구선수의 부인에게 있는 경우가 있는데, 박병호의 아내인 이지윤 전 아나운서가 그러하다. 어느 정도냐 하면, 박병호가 먹는 식사에는 무조건 메인요리가 있어야 하며, 일주일 간 그 메인 요리는 다시 식탁에 들여놓지 않는다는 엄격함을 자랑한다고... 그래서 박병호는 이런 아내의 내조를 통해 괴물이 되었다.[35] 주전 타자 4명의 타율을 보자면 스위셔가 .167, 에이로드가 .120, 그랜더슨이 .100 카노가 .075의 성적을 기록하였다.[36] 특히 DEF의 경우 1.5에 가까운 차이를 보였다.[37] 실제로 NYY 중계진은 역대 3번째 프로기록이라고 코멘터리를 달았다.[38] 타격 방식에 대해 의견이 달라서 충돌했다고 한다.[39] 2군을 지배하다시피하는 압도적인 타격 성적을 냈다. 최소한 2년차에는 1군 풀타임 정도가 충분히 가능할 수준이었으나 감독이 잘 쓰지 않고 어쩌다가 백업 야수(대타, 대주자, 대수비용)으로 1군 콜업하면서 경기당 한두 타석 나오게 하고 내리는 정도로 기용했기 때문에 당연히 1군에서 적응이나 성장하기 어려웠던 형편이라 좋은 성적을 낼 수 없었다. 결국 감독이 바뀐 3년차에야 1군 풀타임 생활이 시작되었고 바로 200안타를 쳤다.[40] 특히 수상자인 셰인 빅토리노와의 차이는 작년보다 더 큰 DEF에서는 1.3 UZR에서는 무려 7.3(!)이나 이치로가 더 높았다.[41] 이런 수비들은 수비 스탯에 반영되지 않는다는점까지 생각해보면 이런 영리한 수비들 제외하고도 그 높은 수비 스탯을 찍고도 골드글러브를 못탄것이 아쉬울 수 밖에 없다.[42] 당장 저때가 끝내기 상황이었다는 것을 생각해보자. 만약 정상적으로 수비할려했다면 주자는 이미 홈에 들어왔을 것이다. 거기다 공이 튈 방향까지 예측한것은 정말 소름끼치는 수준이다.[43] 영상 마지막에 이치로를 포옹한 사람은 배리 본즈. 2016년 마이애미 말린스의 타격 코치로 있다가 시즌이 끝나고 짤렸다.[44] 실제로 3000안타, 500도루 등의 마일스톤을 마이애미에 와서 달성하기는 했다. 하지만 뛴 시간이 너무 적기에 영구결번은 힘들다는 시각이다.[45] 해외 홍보차 2019시즌 시애틀의 개막전은 오클랜드와 도쿄돔에서 한다. 그래서 다음 시즌에 이치로가 출전할 수 있는 여지를 남긴 것. 그 이후 출전은 없겠지만 이치로의 홍보효과를 감안하면 개막전만큼은 출전시킬 가능성이 크다.[46] 여기서 말하는 툴은 흔히 말하는 '5툴 플레이어' 등에서 사용되는 표현이 아니며, 훨씬 세분화된 지표를 말한다.[47] 이 날은 키쿠치 유세이의 메이저리그 데뷔일이기도 하다.[48] 심지어 한신 타이거스 기사를 웬만하면 1면에 싣는 데일리스포츠도 이치로를 1면에 실었다. 데일리스포츠의 응원팀이 아무리 한신이고 전적팀 오릭스가 비인기 팀라지만, 고베시에 우승반지를 가져다 줬고 무엇보다 아시아 최고의 야구선수를 무시할 수 있을 리가 없다. 이 날마저 1면을 한신으로 실었다가는 전국민이 분노한다[49] 또한 주니치신문도 당초 주니치 드래곤스의 타카하시 슈헤이를 주니치스포츠 1면에 실었다가 최종판에서 이치로 1면으로 갈아엎었다.[50] 제이 뷰너, 켄 그리피, 에드가 마르티네즈, 존 올루드, 알렉스 로드리게즈, 브렛 분[51] 실제로 조정스탯을 보면 2010년까지의 이치로와 2011년부터의 이치로는 적어도 타격 능력면에서는 그냥 다른 선수라고 봐도 상관없을 정도의 격차가 있음을 알 수 있다. 레퍼런스가 제공하는 Offensive WAR의 경우 2010년까지는 3.2 아래로 내려간 적이 없지만 2011년 이후로는 1을 넘긴 적이 없으며, 팬그래프의 Off를 봐도 2010년까지는 13.1 아래를 기록한 적이 없지만 2011년 이후로는 1.3을 기록한 2016년을 제외하면 전부 마이너스를 기록했을 정도로 극명한 차이를 보여준다.[52] 40도루를 자랑하던 시절에도 도루실패수가 무려 20개, 즉 성공률이 딱 절반에 수렴했다[53] 차이점으로는, UZR은 수비범위를 구획해서 가중치를 각각 다르게 두고 보다 넓은 수비범위 안에서 수비성공을 기록하는 야수에게 가중치를 더 많이 부과하며 보다 여러시즌의 기록을 기준으로 삼으며, DRS는 단 한 시즌의 기록만을 가지고 상태 타자의 타구난이도를 중점으로 수치를 산출한다[54] 이 점을 라이트 유저들이 이해를 잘 못하는데, 좀 더 쉽게 생각해보자. 1루에서 2루를, 혹은 2루에서 3루를 훔치는 도루가 아무리 많다고 쳐도, 선수가 1루에 있을경우 상대 타자가 단타를 쳤을때 1루 -> 2루로 진루하는 것과 3루까지 진루할 수 있는 것은 매우 큰 차이가 있다. 카를로스 벨트란, 체이스 어틀리 등의 타자들이 다른 테이블 세터와 비교해 도루갯수가 많은 편은 아니지만 예상외로 높은 베이스러닝 수치를 기록하고 있는 이유가 바로 이 추가진루에 있어서 성공률이 매우 높기 때문이다. 멀리 안가고, 당장 크리스 브라이언트처럼 도루를 잘 하지 않는 타자가 2016년 메이저리그 결승에서 보여준 갖가지 홈 질주를 생각해보라. 이들이 발이 느려서 도루를 시도하지 않는 것이 아니라, 최근 야구의 특성에 맞춰서 쓸데없는 도루시도를 줄이고 보다 효율적인 진루를 중시하는 방식으로 발전하는 것이다[55] 평균 .339. 이는 5툴 플레이어로 유명한 바비 어브레이유와 같은 수치이다[56] 2010년까지 DRS는 단 한차례 마이너스, UZR은 마이너스를 기록한 적이 단 한 번도 없다[57] 게다가 이치로와 경우는 약간 다르지만 2012년은 칼 야스트렘스키 이후로 오랜만에 등장한 홈런-타점-타율 3관왕을 차지한 타자였으나 WAR는 트라웃보다 무려 3이상 떨어지는 아주 특이한 케이스였다[58] 시애틀에서 활동한 11년간의 평균 타석수는 733타석, 경기수는 159경기에 달한다. 이는 메이저리그의 대표 철강왕인 로빈슨 카노의 뉴욕 시절보다도 더 높다.[59] 케니 로프턴과 승부조작으로 흑역사가 된 피트 로즈를 제외하면 모두 명예의 전당 헌액자이다.[60] 물론 후술하겠지만 이치로는 애초에 메이저리그에 늦게 진출했기 때문에 누적 측면에서 타 선수들에 비해 절대적으로 불리했다.[61] 기존에는 평균 27-28세 정도를 정점으로 보았지만 스테로이드 시대가 끝난 이후 금지약물로 노쇠화를 막는 것이 어려워지면서 하락이 시작되는 시기가 앞당겨졌다.[62] 실제 3천안타 달성 전인 2016년 6월에 쓰인 기사[63] MLB시절 기준이다. 위의 설명에서도 나오듯이 NPB시절과는 타격 메카니즘이 다르다. 물론 NPB에서도 타격 메카니즘은 특이한 케이스였다.[64] 마쓰이 히데키는 일본프로야구시절 이치로의 유일한 라이벌이었다. 오히려 당시에는 거포형 타자인 마쓰이가 이치로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고 있었다.[65] 이는 이치로의 일본시절에 국한된 비판이 아니다.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현재까지도 이치로는 이 부분에 대해 상당한 비판을 받고있다. 실제로 이치로는 팀 동료들과 잘 섞이지 못하는 모습을 많이 보여왔다. 이미 메이저리그 슈퍼스타로 발돋움한 2007년, 2009년 당시에도 팀 동료 선수들이 이치로를 이기적인 선수로 낙인찍고 이치로를 성토하는 분위기가 감돌자 마이크 하그로브 감독이 팀 미팅을 소집해 분위기를 수습하기도 했었다.[66] 메이저리그 진출 당시 하였던 불륜도 이미지을 떨어뜨리는 낙인으로 작용하였다.[67] 댄 코넬리의 기사가 딱 맞는 정보를 제공하므로 그대로 옮긴다. 필자는 2004년 시즌 이치로가 조지 시슬러가 84년간 보유하고 있던 한 시즌 최다 안타 기록(257개)에 도전 하던 것이 생각 난다. 이치로가 262개의 안타로 신기록을 세웠을 때 미국에서 생각보다 많은 관심을 끌지는 못했다. 미국이란 나라가 각종 스포츠 기록에 집착하는 걸 보면 의외였다고 할 수 있다. 그 해 9월, 필자의 한 스포츠 기자 동료가 AL MVP 투표를 앞두고 조언을 구했다. 필자에게 투표권이 있었으면 애너하임 에인절스의 블라드미르 게레로에 1위 표를 주고 이치로에 2위 표를 던졌을 것이라고 말해줬다. 하지만 이치로가 단일 시즌 최다 안타 기록을 세웠던 만큼, 그가 1위 표를 받아도 좋다고 했다. 그 동료는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2004년 매리너스는 99패를 당한 팀이었다. 필자의 동료는 이치로가 팀의 승리 보다는 시슬러의 기록을 깨는 데만 집중했다는 게 분명하다고 했다. 이치로 안타 대부분은 매리너스에게 도움이 안 되는 번트나 단타였다는 점을 들며 말이다. 그의 투표 용지에서 이치로는 5위에도 들지 못했다. 그 동료만 그런 것이 아니었다. 이치로는 MVP 투표 7위에 그쳤다. 하지만 현대 야구 통계학은 필자의 주장을 뒷받침해준다. 대체선수대비 승리 기여도(WAR)는 당시 사용되지 않았으나, 이치로는 2004년 WAR 9.2로 AL 1위에 올랐다.#[68] 실제로 일본인 메이저리거들의 WBC 출전에 있어 이치로의 역할이 매우 컸다는 것이 이후 대회들을 통해 입증되고 있다. 이치로가 대표팀 주장으로 있었던 두번의 대회에 참가한 일본인 메이저리거는 총 7명이지만, 그의 국가대표팀 은퇴 이후 치러진 두번의 WBC에 참가한 일본인 메이저리거는 단 1명이다.[69] 마쓰이 히데키도 NPB시절에는 슈퍼스타였지만 메이저리그에서 남긴 커리어를 본다면 마쓰이를 이치로와 비교하는건 이치로에게 굴욕.[70] 후에 인터뷰를 통해서 구대성이 배영수한테 "화나는데 그냥 데드볼로 맞춰봐"라고 이야기했고, 고의로 데드볼을 던졌다고 고백했다. 물론, 이치로의 발언 의도의 진위가 어쨋든 고의로 데드볼을 맞추는 행동이 절대로 잘한 것은 아니다.[71] 극우 성향 언론사로 일본 내에서도 유명하다.[72] 2009년에 방영된 무릎팍도사 허구연 편에서 허구연이 밝혔다. 당시 이치로는 허구연에게 '정말 한국야구 무섭다. 겁난다. 자신이 없다.' '봉중근은 스니키 패스트볼이라서 공을 알고도 못 치겠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이치로 본인도 한국야구를 상당히 인정하고 있었다는 것. 재미있는 점은 봉중근이 가장 존경하는 선수가 바로 이치로이며, 실제로 이치로의 백넘버인 51번을 달고 뛴다.[73] close eyes 에 정립된 뜻이나 속어적인 의미는 없다. close eyes to 나 with eyes closed 에는 있지만.[74] http://news1.kr/articles/?1183858[75] 참고로 반박기사를 올린 사람은 한화 이글스류현진을 담당하는 이상학기자로 다른 기자들과 달리 개념있는 기사를 쓰는걸로 유명한 기자다.[76] 형의 이름을 보면 알겠지만 일반적인 일본 형제의 명명과는 달리 이 형제는 하나 일()자를 돌림자처럼 쓰는 형제이다.[77] 마에다는 2013년 시즌 종료 후 은퇴했다.[78] 마이너리그 리햅을 뛸 때 아들뻘인 히스패닉 꼬맹이 동료가 홈런을 치자 스페인어로 축하해줬다는 훈훈한(?) 증언도 있다.[79] 원문은 "Kansas City in August is hotter than two rats fucking in a wool sock (8월의 캔자스 시티는 면양말안에서 씹질하는(...) 쥐 두마리보다도 더 뜨겁다)."[80] 오늘도 졌다를 제작한 사람이다. 야빠.[81] 다만 이치로의 말에 따르면 "유부녀인 줄은 몰랐으며 남편에게 지불한 돈은 도리상 지불하였다"고 한다.[82] 유학생 쪽에서 테이프를 녹화하여 주간지에 팔아넘겼다고 한다.[83] 43살 이후 시즌은 15경기를 출전하는 등 큰 의미 없으므로 생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