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6 14:49:43

제이미 모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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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개막전 선발 투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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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owcolor=#ffc425> 1977 1978~1979 1980 1981 1982
디에고 세기 글렌 애보트 마이크 패럿 글렌 애보트 플로이드 배니스터
<rowcolor=#ffc425> 1983 1984~1986 1987~1989 1990 1991
게일로드 페리 마이크 무어 마크 랭스턴 브라이언 홀맨 에릭 핸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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랜디 존슨 제프 파세로 랜디 존슨 제프 파세로 제이미 모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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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디 가르시아 제이미 모이어 펠릭스 에르난데스 에릭 베다르 펠릭스 에르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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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르코 곤잘레스 로비 레이 루이스 카스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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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이미 모이어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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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PHI_2008_WSChampion.png
MLB 월드 시리즈
우승반지
2008

파일:2003 MLB 올스타전 로고.svg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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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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앨빈 데이비스 데이브 니하우스 제이 뷰너 에드가 마르티네즈 랜디 존슨
댄 윌슨 켄 그리피 주니어 루 피넬라 제이미 모이어 스즈키 이치로
펠릭스 에르난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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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로고.svg 2003년 메이저 리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
짐 토미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제이미 모이어
(시애틀 매리너스)
에드가 마르티네즈
(시애틀 매리너스)

보유 기록
통산 최다 피홈런 522피홈런

시카고 컵스 등번호 49번
스티브 엥겔
(1985)
제이미 모이어
(1986~1988)
프랭크 카스티요
(1991~1997)
텍사스 레인저스 등번호 39번
폴 킬거스
(1987~1988)
제이미 모이어
(1989~1990)
롭 마우러
(1991~1992)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41번
톰 피넨퓨어
(1990)
제이미 모이어
(1991)
안드레스 갈라라가
(1992)
볼티모어 오리올스 등번호 51번
스테이시 존스
(1991)
<colbgcolor=#000000> 제이미 모이어
(1993~1995)
테리 매튜스
(1996~1998)
보스턴 레드삭스 등번호 50번
켄 라이언
(1992~1995)
제이미 모이어
(1996)
마크 브랜든버그
(1996~1997)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50번
케빈 킹
(1993~1995)
제이미 모이어
(1996~2006)
제이슨 데이비스
(2007)
필라델피아 필리스 등번호 50번
애덤 버네로
(2006)
제이미 모이어
(2006~2010)
채드 퀄스
(2012)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50번
짐 밀러
(2011)
제이미 모이어
(2012)
제프 맨쉽
(20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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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Jamie_Moyer_Seattle_Mariners.webp
제이미 모이어
Jamie Moyer
출생 1962년 11월 18일 ([age(1962-11-18)]세)
펜실베이니아 주 셀러스빌
국적
[[미국|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틀:국기|
파일: 특별행정구기.svg
행정구
]][[틀:국기|
파일: 기.svg
속령
]]
학력 세인트 조셉 대학교
신체 183cm / 77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입단 1984년 드래프트 6라운드 전체 135번 (CHC)
소속팀 시카고 컵스 (1986~1988)
텍사스 레인저스 (1989~1990)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91)
볼티모어 오리올스 (1993~1995)
보스턴 레드삭스 (1996)
시애틀 매리너스 (1996~2006)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6~2010)
콜로라도 로키스 (2012)


[clearfix]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한 좌완 투수. 느린 구속에도 불구하고 특유의 타이밍을 뺏는 피칭, 철저한 자기 관리와 성실함으로 많은 나이에도 주전으로 꾸준히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1980년대에 데뷔하여 2010년대까지, 무려 4세대에 걸쳐서 선수 생활을 이어나갔다. 특히 1980/1990/2000/2010년대에서 모두 완봉승을 기록한 유일한 투수이며, 이미 은퇴하고도 늦지 않았을 50세에 나이에 역대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경신하면서 프로선수의 근성을 과시한 것으로 유명하다.

이 점에서 놀란 라이언과 함께, 메이저리그 역사상 최고의 장수 만세, 노장 투혼을 보여준 대표적 사례로 남았다.

2. 선수 생활

2.1. 시카고 컵스

1984년 드래프트에서 6라운드에 시카고 컵스에게 지명되었다.[1] 1986년에 메이저에 입성해 2년간은 5점대 ERA를 기록했지만 3번째 해였던 1988년에는 34경기 202이닝 9승 15패 ERA 3.48을 기록하면서 지난 시즌보다 발전한 모습을 보였다. 1989년 컵스가 우승에 도전하고 싶었는지 텍사스 레인저스와 3:5 트레이드를 단행해서 모이어는 이때 팀을 옮기게 되는데, 이 트레이드는 컵스 최악의 실패작 중 하나다.[2]

2.2. 텍사스 레인저스

1988시즌 종료 후, 컵스와 레인저스 간 3 대 6 대형 트레이드의 일원으로 이적하였다. 함께 이적한 선수로 라파엘 팔메이로와 드류 홀이 있었고, 레인저스 측에서는 미치 윌리엄스 폴 킬거스(Paul Kilgus), 스티브 윌슨, 커티스 윌커슨, 루이스 베니테스, 파블로 델가도가 이적 대상이 되었다.

텍사스 소속 데뷔 등판에서 13K를 잡으며 구단 데뷔전 최다 탈삼진 기록을 가지고 있다. 텍사스에서는 기대만큼의 성적을 기록하지 못하면서 선발 경쟁에서도 밀려났고, 1990년에는 불펜 투수로 주로 등판하였다. 결국 1990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텍사스 통산 2시즌 48경기(25선발) 178.1이닝 6승 15패 4.74 102탈삼진

2.3.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91년에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 입단했지만 여기서도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5월 24일 마이너로 강등되었다. 이후 콜업되지 못하고 10월 14일 방출되었다. 1992년에는 시카고 컵스디트로이트 타이거스의 마이너를 전전했지만 아예 메이저에 콜업되지 못했다.

카디널스 통산 1시즌 8경기(7선발) 31.1이닝 5패 5.74 20탈삼진

2.4. 볼티모어 오리올스

산하 트리플A 로체스터 레드윙스[3] 소속으로 시즌을 시작했다. 6승 무패 1.67을 기록하며 대활약 후 5월 30일 콜업되었다. 1993년에 25경기 152이닝 12승 9패 ERA 3.43이라는 준수한 활약을 하였고, 커리어하이인 20이닝 연속 무실점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에는 점점 부진한 성적을 거뒀고 1995년에는 불펜으로 등판하기도 했다. 그래도 3년 동안 25승을 거두면서 선발진의 한자리를 맡을 정도의 활약상을 보여주었다. 1995년 시즌 종료 후 FA로 풀렸고 보스턴으로 이적한다.

오리올스 통산 3시즌 75경기(66선발) 416.2이닝 25승 23패 4.41 242탈삼진

2.5. 보스턴 레드삭스

보스턴 레드삭스와 1년 계약을 맺어 23경기 90이닝 7승 1패 1홀드 ERA 4.50이라는 쏠쏠한 활약을 하던 중 시애틀 매리너스로 트레이드됐고, 이미 저니맨 신세에 33세라는 나이에 더이상의 활약은 힘들어 보였다. 그러나…

2.6. 시애틀 매리너스

시애틀에서 완전히 달라졌다. 물론 그렇다고 모이어가 리그를 평정하는 투수가 된 건 아니었지만, 주무기인 체인지업을 완벽하게 장착하고 제구력과 상대의 허점을 찌르는 투구가 완성되면서 시애틀에서 본격적으로 전성기를 구가하기 시작해 1996년부터 2006년까지 시애틀에서만 145승을 기록하면서 시애틀의 간판 투수이자 든든한 선발진으로 자리잡았다.

2001년 커리어 처음으로 20승을 올렸다. 사이영상 투표에서는 12점을 득표하며 4위를 수상하였고 이는 개인 커리어하이 기록이다.[4] 시애틀은 이 해 116승으로 거두며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며 모이어 역시 포스트시즌 3경기에서 19이닝 3실점 3승을 거두며 맹활약했지만, 팀은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뉴욕 양키스에 탈락하며 빛이 바랬다.

40세였던 2003년에는 33경기 215이닝 21승 7패 ERA 3.27이라는 커리어 하이급 성적을 기록하며 올스타에 선정되기도 했다. 또한 사이영상 5위를 기록하기도 했다.

2004년에는 44개의 피홈런을 허용하며 AL 1위라는 불명예 기록을 쓰기도 했다. 해당 시즌에는 34경기(33선발) 202이닝 7승 13패 ERA 5.21로 직전 시즌에 비해 크게 부진했다.

시애틀 소속으로 11시즌 324경기(323선발) 2093이닝 145승 87패 1239탈삼진 ERA 3.99 20완투 6완봉를 기록하였다.

2.7. 필라델피아 필리스

2006년 시즌 중에 와일드 카드를 노리던 필라델피아 필리스로 트레이드 된 이후에도 꾸준히 10승 이상을 기록했고, 특히 2008년에는 33경기 196.1이닝 16승 7패 ERA 3.71이라는 나이를 잊은 활약을 하며 팀의 월드 시리즈 진출에 공헌했고, 이후 월드 시리즈에서도 우승하며 나이 45세에 처음으로 밟아본 월드 시리즈에서 첫 우승 반지를 차지해 진짜 인간 승리의 주인공이 되었다. 또한 이때 대학생이 된 아들 앞에서 월드 시리즈 선발 등판을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감동을 주었다.

2009년 후반 부상으로 인한 구위 저하로 월드 시리즈에서는 공을 던지지 못했고,[5] 선발 자리 유지도 불투명한 상황이었으나 2010년 20살 넘게 어린 카일 켄드릭[6]과 5선발 경쟁을 펼친 끝에 당당히 5선발 자리를 꿰찼으며, 조 블랜튼의 부상으로 4선발까지 올라서며, 5월 7일 메이저 최고령 완봉승 기록을 47세 170일로 경신했다.[7] 또한 이로 인해 1980년대, 1990년대, 2000년대 그리고 2010년대에 모두 완봉승을 기록한 유일한 선수로 남게 되었다.

기록을 경신한 후에도 준수한 활약을 펼쳤지만 9승 째에서 부상으로 시즌아웃 되었고, 나이가 나이인 만큼 사실상 은퇴를 하나 했지만 모이어는 은퇴를 선언하지 않고 나이 50이 다 되어서 토미 존 서저리를 받게 되었고, 더 대단한 건 수술 후 1년 간의 재활을 거친 뒤에 복귀하겠다는 의사를 내비쳤다는 것이다.

2.8. 콜로라도 로키스

2011년이 지났음에도 마이너 계약 오퍼조차 나오지 않는 것을 보면 결국 복귀는 요원한 일처럼 보였고, 40세 마이너 계약 & 스프링 캠프 초청선수도 퇴물로 취급받는 메이저에서 50세에 가까운 나이에 투지만으로 살아남기는 힘든 것이 사실이기에 어쩔 수 없는 부분이라고 생각됐지만, 2012년 콜로라도 로키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다. 그리고 3월 23일까지 시범경기에 3경기 9이닝 4피안타 ERA 1.00을 기록했고, 심지어 세 번째 등판에서 4이닝 퍼펙트 투구를 기록하기도 하며 산신령의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음을 증명했다. 마침내 짐 트레이시 감독이 시즌 초반 모이어를 제 2선발로 쓸 것임을 발표하면서 현역 생활을 이어가게 되었다.

첫 두 경기에서는 각각 5이닝 4실점 3자책점과 5이닝 4실점 2자책점을 기록하며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4월 17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7이닝 2실점 무자책점을 기록하며 시즌 첫승과 함께 역대 최고령 승리투수에 등극했고, 5월 16일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와의 경기에서는 회심의 내야안타를 기록하면서 2타점을 기록해 49세 180일로 최고령 승리투수 기록을 경신함과 동시에 메이저 역대 최고령 타점 기록 또한 가지게 되었다.[8] 심지어 매디슨 범가너처럼 자기가 데뷔했을 때는 태어나지도 않았던 투수와 맞대결하는 아스트랄한 기록[9]을 만들어 내기도 했다.

그러나 5월 들어서 점차 투구 내용이 나빠지면서 부진에 빠졌고, 결국 콜로라도로부터 지명할당 통보를 받았지만 그래도 콜로라도 팬들은 그가 등판했을 때 투구 성적에 관계없이 훈훈한 박수갈채를 보내줬다.

2.9. 이후

6월 볼티모어 오리올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으나 6월 23일 볼티모어에서 메이저 기회를 받지 못하자 스스로 구단에 방출을 요구했고, 이후 FA 자격으로 이번엔 토론토 블루제이스와 마이너 계약을 맺었지만 결국 토론토에서도 방출당했다.

결국 2013년 시즌이 끝나가도록 불러주는 곳이 없어 사실상 은퇴가 아닌가 사람들이 생각할 무렵, 너클볼러로 재기를 시도한다는 이야기가 들려왔다. 찰리 허프팀 웨이크필드에게 여름 내내 개인적인 상담과 교정을 받았다고 하는데, 아무리 너클볼러라 해도 나이 50을 넘긴 투수가 메이저에 다시 발을 들이는 게 쉽겠냐는 평이 대부분이었지만 그래도 응원한다는 사람들이 많긴 했다. 또 이와는 별개로 피칭 아카데미를 열 계획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10]

3. 은퇴

2014년부터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중계진에 참여한다고 하며, 2015년 1월 13일 시애틀 매리너스 명예의 전당 입회 기사가 났고, 8월 9일 세이프코 필드에서 입회식이 열렸다.

명예의 전당은 예상대로[11] 후보 첫해인 2018년에 2.4% (10표)의 득표에 그치며 탈락했다.

4. 피칭 스타일

일반적인 투수들은 90마일 중반대 패스트볼을 던지고 80마일 중반대의 체인지업을 던진다. 그런데 나는 모이어의 체인지업이 72마일(115.8km/h)까지 떨어지는 걸 본 적 있다. 체인지업이 마치 구속을 두 번 줄이고 들어오는 더블 체인지업처럼 느껴진다. 체인지업이라는걸 인식하고 나서 스윙을 하는 순간에도 모이어의 체인지업은 꾸물대며 한참을 날아오고 있다.
제리 헤어스턴 주니어, 모이어의 체인지업에 대해.

영상[12]에서도 나오듯이, 삼진 당하는 타자들이 삼진당할때 얼어버릴 정도로 루킹삼진 비율이 많다. 50세가 되도록 던진 것에서 알 수 있다시피 전형적인 기교파 투수다.[13] 2007부터 2010년까지 4년 동안 속구 평균 구속은 130km를 간신히 찍지만 비슷한 구속대의 투심 패스트볼과 커터, 그리고 이것보다 8km 정도 느린 체인지업[14]을 섞어가며 제구력과 커맨드만으로 메이저 강타자들을 요리했다. 의외로 속구 배합비율이 31.5%, 투심까지 합치면 속구계 볼이 46.2%에 달할 정도로 속구를 자주 구사하며, 그 외에 결정구인 체인지업 구사비율이 27.8%에 이를 정도로 130km의 평균 구속으로도 피칭은 타이밍을 뺏는 것이라는 원리를 철저히 수행하는 투수로, 나이가 들면서 구위가 떨어질 수밖에 없는 투수들이 따라야 할 모범적인 스타일이라고 할 수 있겠다.

5. 수상 내역

수상
파일:MLB 로고.svg 올스타 (2003)
파일:MLB 로고.svg 월드 시리즈 우승 (2008)

6. 연도별 성적

파일:MLB 로고.svg 제이미 모이어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6 CHC 16 7 4 0 0 87⅓ 5.05 107 10 42 3 45 1.706 80 0.3 0.8
1987 35 12 15 0 0 201 5.10 210 28 97 5 147 1.527 83 2.0 1.4
1988 34 9 15 0 0 202 3.48 212 20 54 5 121 1.322 105 1.8 3.0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89 TEX 15 4 9 0 0 76 4.86 84 10 33 2 44 1.539 82 0.2 -0.6
1990 33 2 6 0 1 102⅓ 4.66 115 6 39 4 58 1.505 84 1.0 0.0
<rowcolor=#FFEF00>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1 STL 8 0 5 0 0 31⅓ 5.74 38 5 16 1 20 1.723 65 -0.3 -0.6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3 BAL 25 12 9 0 0 152 3.43 154 11 38 6 90 1.263 130 3.2 3.0
1994 23 5 7 0 0 149 4.77 158 23 38 2 87 1.315 105 1.9 1.8
1995 27 8 6 0 0 115⅔ 5.21 117 18 30 3 65 1.271 92 1.2 0.5
<rowcolor=#C4CED4>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1996 BOS/SEA 34 13 3 0 0 160⅔ 3.98 177 23 46 2 76 1.388 126 1.6 2.6
1997 SEA 30 17 5 0 0 188⅔ 3.86 187 21 43 7 113 1.219 116 3.2 3.7
1998 34 15 9 0 0 234⅓ 3.53 234 23 42 10 158 1.178 129 5.2 5.6
1999 32 14 8 0 0 228 3.87 235 23 48 9 137 1.241 129 4.7 6.6
2000 26 13 10 0 0 154 5.49 173 22 53 3 98 1.468 83 1.8 -0.1
2001 33 20 6 0 0 209⅔ 3.43 187 24 44 10 119 1.102 120 3.0 3.4
2002 34 13 8 0 0 230⅔ 3.32 198 28 50 9 147 1.075 128 3.8 5.6
2003 33 21 7 0 0 215 3.27 199 19 66 8 129 1.233 132 3.9 4.9
2004 34 7 13 0 0 202 5.21 217 44 63 11 125 1.386 86 -0.2 0.5
2005 32 13 7 0 0 200 4.28 225 23 52 8 102 1.385 98 2.5 2.4
<rowcolor=#FFFFFF>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06 SEA/PHI 33 11 13 0 0 211⅓ 4.30 228 33 51 5 108 1.320 105 1.8 1.9
2007 PHI 33 14 12 0 0 199⅓ 5.01 222 30 66 5 133 1.445 91 1.7 0.1
2008 33 16 7 0 0 196⅓ 3.71 199 20 62 11 123 1.329 117 2.4 2.8
2009 30 12 10 0 1 162 4.94 177 27 43 10 94 1.358 85 0.4 0.5
2010 19 9 9 0 0 111⅔ 4.84 103 20 20 6 63 1.101 84 0.1 0.1
<rowcolor=#C4CED4> 연도 G W L S HLD IP ERA H HR BB HBP SO WHIP ERA+ fWAR bWAR
2012 COL 10 2 5 0 0 53⅔ 5.70 75 11 18 2 36 1.733 82 0.1 0.1
MLB 통산
(25시즌)
618 269 209 0 3 4074 4.25 4231 522 1155 146 2441 1.322 103 48.0 49.8

7. 여담

파일:Jamie_Moyer_Family.jpg
  • 3살 연하 전 부인 캐런 모이어가 미인으로 유명했다.[15] 두 사람이 처음 만난 것은 모이어가 시카고 컵스에서 데뷔했을 때 당시 컵스의 캐스터인 전설적인 명 아나운서 해리 캐리가 당시 방송사 인턴으로 갓 들어온 캐런을 소개시켜줘서 결혼에 골인했다고 한다.[16] 또 캐런은 자선 활동으로 유명해서 2011년 펄 벅 재단이 수여하는 올해의 여성상을 수여하기도 했다.[17][18] 부모가 없는 아이들을 위한 캠프를 운영하고 있다. 그리고 아이티 지진 참사 때는 부부의 이름으로 10만 달러의 기부도 했다. 부부 모두 자선 활동과 입양에 관심이 많고, 부부의 이름을 딴 자선 모이어 재단도 운영했다. 2017년에 이혼.[19]
  • 자식이 8명인데 이 중에서 막내 둘은 과테말라에서 입양했다고 하며, 큰아들인 딜런 모이어는 유격수로 활약해 2010년 드래프트에서 22라운드 전체 675번으로 미네소타 트윈스에 지명받았지만 캘리포니아 대학교 샌디에이고 캠퍼스에 진학했고, 이후 2013년 드래프트에서 38라운드 전체 1144번으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지명받아 마이너에서 활약했으나 부진한 성적을 기록하며 2016년 이후 출장한 경기가 없고, 형과 같이 유격수인 동생 허튼 모이어는 2015년 드래프트 7라운드 전체 225번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게 지명받아 활약했으나 2018년 이후로 출장한 경기가 없다.
  • 통산 522피홈런으로 메이저 통산 최다 피홈런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물론 이 기록도 모이어가 25년이라는 오랜 시간동안 꾸준히 메이저리거 투수로서 활약기에 나온 기록이다. 수많은 선수들이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 도전하지만 대부분의 선수들은 메이저리그에 데뷔하지도 못하고 은퇴하는 것이 현실인만큼 절대 불명예스러운 기록이 아니다.
  • 50세가 되도록 현역이었던 만큼 철저한 자기관리를 보여줬다고 하는데, 팀에서 파티가 열려도 음료는 오렌지 주스나 물밖에 안 마셨다고 할 정도였다고 한다.[20][21]
  • 한화 이글스의 레전드 송진우의 롱런의 계기가 되기도 했다. 커리어 초창기에 비해 떨어진 구위로 고전하던 송진우가 메이저리그 중계를 보던 도중 느린 속구에도 불구하고 서클 체인지업과 수싸움을 능수능란하게 구사하며 타자들을 요리하는 모이어의 모습을 보고 영감을 얻어 체인지업을 연마하게 된 것.
  • 통산 9이닝당 삼진 개수 5개 정도의 피네스 피처였으나 온라인 야구게임 마구마구에서는 랜디 존슨이나 스티브 칼튼 수준의 삼진머신이였으며, 실제로 저들과 함께 1티어급 선발 투수로 상당히 높은 가격대를 형성 중이다. 이러한 취급은 속도와 꺾이는 각 모두 흉악한 JM 커터 덕분인데, 게다가 JM 커터는 직구계열 취급이라 세트덱의 직구 보너스를 받아 웬만한 모이어 레어는 JM 커터 최상 정도는 그냥 찍는 편이다. 구위보다는 타이밍을 뺏는 피칭, 그리고 굳이 하나의 구종을 꼽자면 체인지업으로 유명했던 투수였던 만큼 왜 특구가 커터로 정해졌는지도 논란이었다.
  • 그렉 매덕스와는 입단 동기로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한솥밥을 먹었다. 매덕스 본인이 말하길, "나보다 구속이 느린데 마이너리그 시절부터 첫 해 성적이 나보다 좋은 동료가 있었다."고 하며, 자신도 그 친구를 따라 구속 보다는 제구와 구위에 더 신경 쓰는 피네스 피처로 바뀐 계기를 설명해준 적이 있었는데, 그 당시 매덕스 보다도 느린 구속을 가진 투수는 제이미 모이어 뿐이였다. 모이어도 데뷔 시즌 부상 전까지는 매덕스급의 엄청난 구위를 보여줬다.

8. 관련 문서


[1] 이때 2라운드에서 컵스에 지명된 선수가 그렉 매덕스이며, 심지어 1986년으로 메이저 데뷔년도도 같다. 물론 제이미가 대졸 선수라서 4살이 많지만.[2] 이때 텍사스로 건너간 선수 중 한 명이 라파엘 팔메이로다.[3] 2021년부터는 워싱턴 내셔널스 산하 트리플A 구단이다.[4] 당시 AL 사이영상 수상자는 뉴욕 양키스 소속의 로저 클레멘스였다.[5] 이 해에 불펜으로 근근이 선수생활을 이어갔던 한국 선수가 바로 박찬호였다. 박찬호는 5선발 자리를 두고 제이미와 경쟁하다가 탈락해 5선발 자리를 내주며 구원투수로 등판했다. 이 시절 제이미 모이어에게 체인지업 그립을 전수 받았다고 한다.#[6] 이 해 필리스에 영입된 로이 할러데이에게 멘토링을 받기까지 했다. 나중에 조 블랜튼이 부상을 당하면서 기어이 5선발을 꿰찼고, 4년 동안 5선발 역할을 하게 됐다.[7] 이전까지의 최고령 기록은 46세 188일에 기록한 필 니크로였다.[8] 심지어 이는 투수 무덤이나 다름 없는 팀에서 기록했다는 것에서 값지다.[9] 선발 투수간 나이 차이 많이 나기로 역대 3위인데, 1, 2위가 사첼 페이지였다. 20년 이상 풀타임 메이저리거로서 이런 기록을 쓰는 건 전무후무하다. 범가너는 타격에 일가견이 있는 투수답게 모이어에 대해 "치기 힘들더라."라는 찬사를 보냈다.[10] 당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의 경기를 중계하던 SPOTV 해설진도 이에 대한 언급을 했는데, 맷 하비호세 페르난데스가 피칭 아카데미를 열어도 그 선수들의 피칭 메커니즘을 제대로 배울 수 있는 아이들이 얼마나 있겠냐며 그런 면에서 모이어의 아카데미는 정말 배울 게 많을 것이라는 요지의 이야기를 했다. 하비나 페르난데스는 천부적으로 타고나야 하는 강속구를 기반으로 하는 피칭을 하기 때문에 아마추어에게 가르쳐준다고 배울 수 있는 메커니즘이 아니기 때문.[11] 클래식 스탯 기록인 269승-4074이닝-2441탈삼진은 훌륭하지만, 이게 무려 25년 동안 버티고 버티며 쌓은 성적이고 300승-3000탈삼진과 같은 마일스톤은 달성하지 못한 점, 세이버 스탯 및 비율 스탯이 명전급은 절대 아니고 임팩트가 없다시피하다는 점으로 인해 모이어의 입성은 불가능하다는 의견이 지배적이었다.[12] 5분 48초부터는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령 투수 승리 기록을 만들었을 때이다.[13] 70마일대도 있고, 81마일 정도로 찍히는 듯. 가장 빠른 구종이 최고구속 85.3마일의 싱커다.(...)[14] 사람에 따라서는 메이저리그 역대급 마구로 손꼽히는 페드로 마르티네스의 체인지업보다 모이어의 체인지업을 더 높게 평가하기도 한다. 체인지업은 함께 사용되는 패스트볼의 구위에 따라 그 위력이 더욱 배가될 수 있는데, 페드로에게는 그 체인지업에 버금갈 만큼 무시무시한 패스트볼이 있었던 반면 모이어의 패스트볼은 당시 기준으로도 최하위권의 구속을 자랑(...)했기 때문이다. 페드로 쪽이 체인지업의 말도 안되는 무브먼트와 강력한 직구를 가지고 타자를 요리했다면 이 쪽은 직구와 크게 차이가 없는 구속의 체인지업을 이용해서 타자들의 타이밍을 뺏은 쪽.[15] 참고로 부친이 ESPN 농구 해설자로 유명한 디거 펠프스. 노터데임 대학교 농구부의 감독으로 20년을 재직했다.[16] 독실한 가톨릭 신자라서 결혼식은 혼인성사로 했다고 한다.[17] 오드리 햅번, 힐러리 클린턴, 코라손 아키노, 그리고 이희호 여사가 이 상의 수상자다.[18] 남편인 제이미 모이어도 메이저리거의 영광 중 하나인 로베르토 클레멘테 상을 2003년에 수상했다.[19] 정확히는 졸혼으로, 그들 사이에 자식이 워낙 많기에 지금도 꾸준하게 교류중이라고 한다.[20] 신인 시절에는 남들과 비슷한 자기관리를 하였는데, 텍사스 시절 놀란 라이언의 자기관리와 트레이닝을 옆에서 보고 큰 충격을 받아 그날부터 물과 우유, 오렌지 주스를 제외하곤 절대 마시지 않았다고 한다.[21] 훈련도 철저하게 진행하였다고 하는데, 필라델피아 시절 투수 코치는 모이어에 대해 "내가 본 투수들 중 체력적인 준비가 가장 철저한 투수다. 등판 사이 훈련 프로그램이 정말 고되고 철저하게 짜여져 있다. 자신이 하고 있는 일에 대해 거의 종교적일 정도로 성실하다. 요즘 선수들은 해낼 수 없을지도 모른다." 라고 한 바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