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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켄 그리피 주니어 | ||||||||||||||||||||||||||||||||||||||||||||||||||||||||||||||||||||||||||||||||||||||||||||||||||||||||||||||||||||||||||||||||||||||||||||||||||||||||||||||||||||||||||||||||||||||||||||||||||||||||||||||||||||||||||||||||||||||||||||||||||||||||||||||||||||||||||||||
헌액 연도 | 2016년 |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
투표 결과 | 99.32% (1회) |
켄 그리피 주니어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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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이저 리그 올센추리 팀 일원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이름 | 켄 그리피 주니어 Ken Griffey Jr. | |||||||||||||||||||||||||||||||||||||||||||||||
포지션 | 외야수 | ||||||||||||||||||||||||||||||||||||||||||||||||
득표수 | 645,389 | }}} |
1987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드래프트 전체 1번 지명자 | ||||
제프 킹 (피츠버그 파이리츠 / 3B) | → |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 OF) | → | 앤디 베네스 (샌디에이고 파드레스 / P) |
역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최고액 계약자 | ||||
케빈 브라운 (1999년 7/105,000,000$) | → | 켄 그리피 주니어 (2000년 9/112,500,000$) | → | 알렉스 로드리게스 (2001년 10/252,000,000$)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 ||||
1990 | 1991 | 1992 | 1993 | 1994 |
1995 | 1996 | 1997 | 1998 | 1999 |
2000 | 2004 | 2007 |
1997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 ||||
후안 곤잘레스 (텍사스 레인저스) | → |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 → | 후안 곤잘레스 (텍사스 레인저스) |
2005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올해의 재기상 | ||||
초대 수상자 | → | 켄 그리피 주니어 (신시내티 레즈) | → | 노마 가르시아파라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칼 립켄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 → |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 → | 커비 퍼켓 (미네소타 트윈스) |
1994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게임 홈런 더비 우승자 | ||||
후안 곤잘레스 (텍사스 레인저스) | → |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 → | 프랭크 토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
1998년 ~ 1999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게임 홈런 더비 우승자 | ||||
티노 마르티네스 (뉴욕 양키스) | → |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 → |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
레이첼 로빈슨 (2007) | → | 켄 그리피 주니어 | → | 마리아노 리베라 (2013) |
보유 기록 | ||
단일 디비전 시리즈 최다 홈런 | 5홈런 | 1995 ALDS |
단일 디비전 시리즈 최다 득점 | 9득점 | |
단일 디비전 시리즈 최다 총루타 | 24루타 |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24번 | ||||
해럴드 레이놀즈 (1984~1987) | → | 켄 그리피 주니어 (1989~1999) | → | 임시결번 |
신시내티 레즈 등번호 30번 | ||||
에두아르도 페레즈 (1996) | → | 켄 그리피 주니어 (2000~2005) | → | 퀸턴 맥크라켄 (2006) |
신시내티 레즈 등번호 3번 | ||||
단젤로 히메네스 (2003~2005) | → | 켄 그리피 주니어 (2006~2008) | → | 윌리 타바레스 (2009) |
시카고 화이트삭스 등번호 17번 | ||||
대린 어스태드 (2007) | → | 켄 그리피 주니어 (2008) | → | 크리스 게츠 (2009) |
시애틀 매리너스 등번호 24번 | ||||
임시결번 | → | 켄 그리피 주니어 (2009~2010) | → | 영구결번 |
}}} ||
<colbgcolor=#0c2c56><colcolor=#c4ced4> 시애틀 매리너스 No. 24 | |
켄 그리피 주니어 Ken Griffey Jr. | |
본명 | 조지 케네스 그리피 주니어 George Kenneth Griffey Jr. |
출생 | 1969년 11월 21일 ([age(1969-11-21)]세) |
펜실베이니아 주 도노라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신체 | 190cm / 104kg[1] |
포지션 | 중견수 → 우익수[2]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1987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번, SEA) |
소속팀 | 시애틀 매리너스 (1989~1999) 신시내티 레즈 (2000~2008)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8) 시애틀 매리너스 (2009~2010) |
지도자 |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 타격코치 (2023~) |
기록 | 20-20 클럽 2회 (1998, 1999) |
가족 | 아버지 켄 그리피 시니어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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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야구 선수. 포지션은 외야수였다.
매리너스 구단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지정된 선수이며, 90년대 MLB에서 압도적인 인기를 갖고있던 슈퍼스타이자, 약물이 미쳐날뛴 시대에 유혹에 넘어가지 않고 꾸준한 자기관리로 통산 630홈런을 쳐낸 진정한 청정 강타자이다.[3] 별명은 'The Kid' 또는 'Junior'.[4]
통산 22시즌 동안 2,671경기에 출장해 11,304타석/9,801타수 2,781안타 524 2루타 630홈런 1,836타점 1,662득점 1,312BB/1,779K, 타율 0.284/출루율 0.370/장타율 0.538, OPS 0.907/OPS+ 136 bWAR 83.8을 기록했다.[5]
하지만 전성기 시절 팀이 지금까지도 월드 시리즈 진출 경력이 없는 시애틀 매리너스였으므로 월드 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했다. 그래서 월드 시리즈 경험이 없는 선수들 중 2번째로 많은 경기에 출장했다.[6]
2. 선수 시절
2.1. 시애틀 매리너스 1기 시절
아버지와 즐거웠던 한 때 |
메이저 리그 역사상 전무후무한 부자(父子) 홈런 |
1993년 156경기 .309 .408 .617 45홈런 109타점 17도루를 기록하면서, 자신의 장타 포텐셜을 터뜨린 그리피는 이듬 해인 1994년, 111경기에 출장해 .323 .402 .674 40홈런 90타점 11도루를 기록하고 아메리칸 리그 MVP 투표에서 2위에 올랐다. 그러나 8월 12일을 기해 선수노조가 파업에 돌입하면서 당시 로저 매리스의 시즌 최다홈런인 61홈런을 경신할 기회를 놓치게 된다.[11][12]
파업의 여파가 이어지던 1995년, 다이빙 캐치를 하다 손목이 골절되어 72경기 .258 .379 .481 17홈런 42타점 4도루에 그치게 된다. 하지만 그 해 부상에서 복귀한 그리피는 팀의 아메리칸 리그 서부 지구 우승을 이끌었고, 디비전 시리즈에서는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승리하기까지 하면서 선봉장 역할을 했다.
그러나 이듬 해인 1998년, 161경기에 출장해 .284 .365 .611 56홈런 146타점 20도루를 기록하고 홈런 더비에서 우승한 그리피였지만, 옆 동네에서 약쟁이 듀오가 전설로 남을 홈런 레이스를 벌이는 바람에 크게 주목받지 못했다. 1999년에도 .285 .384 .576 48홈런 134타점 24도루를 기록하고 올스타전 홈런 더비를 2연패한 그리피였지만, 새 구장인 세이프코 필드가 악명 높은 투수친화 구장이었기 때문에 선수들의 의견을 모아 펜스를 앞으로 당겨줄 것을 요구했지만 팀은 이를 거부하게 된다.[14] 그리고 어느 날 홈런일 줄 알았던 타구가 펜스 앞에서 중견수에게 잡히게 되자 그리피는 팀에게 트레이드를 요구하게 된다.[15]
시애틀은 뉴욕 메츠가 내민 옥타비오 도텔, 로저 세데뇨, 아르만도 베니테스 또는 데니스 쿡이라는 카드가 맘에 들었으나, 그리피가 이를 거절하자 결국 신시내티 레즈가 내민 마이크 카메론, 브렛 톰코, 안토니오 페레즈, 제이크 메이어라는 카드를 수락하고 그리피를 신시내티로 보낸다.[16]
시애틀에서 그리피는 11년 동안 연평균 140경기에 출장해 .299 .380 .569 36홈런 105타점 15도루 wRC+ 142 OPS+ 136 fWAR 6.2 bWAR 7.9를 기록했다.
2.2. 신시내티 레즈 시절
트레이드 직후 신시내티와 9년 $112.5M 연장 계약을 체결했는데, 이 당시에는 역대 두 번째로 1억 달러를 넘는 계약[17]이자 당시 역대 최대 규모의 계약이었다.[18]
2000년, 145경기에 출장해 .271 .387 .556 40홈런 118타점 6도루를 기록한 그리피는 공교롭게도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타격 코치를 하고 있던 아버지의 앞에서 통산 400홈런을 기록하게 된다. 그러나 이후 그리피는 급격하게 부상으로 주저앉게 된다.[19][20]
이로 인해 2005년 다시 부활하기 전까지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를 깎아먹게 된다.[21] 흔히 '위대한 전반 10년과 처절한 후반 10년'의 예시로 2000년대와 2010년의 알버트 푸홀스를 드는데, 그 이전 시대인 1990년대와 2000년대의 예시가 바로 주니어였던 것이다.
2004년 6월 21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와의 경기에서 통산 500홈런을 기록했다.[22][23] 부상만 아니었어도 최연소 500홈런을 기록했을 그리피지만, 지미 폭스의 말년이 그랬던 것처럼 부상에 발목잡혀 당시에는 네 번째로 어린 나이에 통산 500홈런을 기록했다.
2005년, 그리피는 128경기에 출장해 .301 .369 .576 35홈런 92타점을 올리며 부활을 알리게 되고, 갓 재정된 올해의 재기 선수상의 내셔널 리그 첫 수상자가 된다. 하지만 당시 30대 중반이었던 그리피 역시 나이를 이기지는 못하고 2006년에는 109경기 .252 .316 .486 27홈런 72타점, 2007년에는 144경기 .277 .372 .496 30홈런 93타점 6도루를 기록하는데 그쳤다.
2006 WBC ALL-WORLD TEAM AWARD |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OF | OF | OF | ||||||
SS | 2B | ||||||||
3B | P | 1B | |||||||
DH | C | P | CP |
2006년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미국 대표팀 일원으로 발탁되었다. 그리고 본선 2라운드 대한민국 전에서 3회초에 솔로 홈런을 기록하기도 했다.[24] 이후 시즌에서 자신의 번호 30번에서 3번으로 바꿔 달았는데, 3번으로 바꾼 이유는 그의 세 아이들을 위해서라고 한다.[25]
2008년 6월 9일 플로리다 말린스 원정경기에서 통산 600홈런을 기록했다. 그러나 당시 102경기에서 .245 .355 .432 15홈런 53타점을 기록하고 있던 그리피를 팀은 트레이드 마감시한 전인 7월 31일에 닉 마셋과 대니 리카르를 대가로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한다.
신시내티에서 그리피는 9년 동안 연평균 105경기에 출장해 .270 .362 .514 23홈런 67타점 2도루 wRC+ 118 OPS+ 121 fWAR 1.5 bWAR 1.5를 기록했다.
2.3. 시카고 화이트삭스 시절
시카고 화이트삭스에 합류한 그리피는 41경기에서 .260 .347 .405 3홈런 18타점에 그쳤고, 재계약에 실패해 자유계약선수가 되었다. 이 해 그리피는 두 팀에서 143경기에 출장해 .249 .353. 424 18홈런 71타점을 기록했다.2.4. 시애틀 매리너스 2기 시절
새로운 팀을 구하던 그리피는 친정팀인 시애틀 매리너스와 애틀란타 브레이브스의 접촉을 받게 되었는데, 윌리 메이스의 조언으로 친정팀에서 선수 생활을 마무리하기 위해 시애틀 매리너스와 계약하게 된다.다시 돌아온 친정팀에서 그리피는 밝고 성실한 성격으로 클럽하우스의 분위기 메이커 역할을 했다. 실제 시애틀에서 그리피를 다시 데려온 이유가 바로 이것 때문이라는 것이 중론이었지만, 나이를 이기지 못했으며 투수 친화 구장이던 세이프코 필드의 특성상 성적은 117경기 .214 .324 .411 19홈런 57타점에 그쳤다.
2010년 33경기에 출장해 .184 .250 .204에 홈런 없이 7타점에 그친 그리피는 그 해 6월에 은퇴 선언을 했다.[26] 참고로 그의 마지막 안타는 토론토전에서 때려낸 끝내기안타.
3. 은퇴 이후
2023 WBC 미국 야구 국가대표팀의 타격코치를 맡는다.4. 수상 내역
수상 내역 |
AL MVP (1997[만장일치]) AL 올스타 10회 (1990-1999) NL 올스타 3회 (2000, 2004, 2007) AL 골드 글러브 10회 (1990-1999) AL 실버 슬러거 7회 (1991, 1993-1994, 1996-1999) AL 홈런왕 4회 (1994, 1997-1999) AL 타점왕 (1997) |
5. 명예의 전당 입성
연도 | 득표율(%) |
2016 | 99.3 |
한편, 역대 명예의 전당 입성자 중에서 처음으로 나온 드래프트 전체 1순위 지명자 출신이다.[29] 이전까지 가장 높은 순위에 지명된 명예의 전당 입성자는 1966년 전체 2순위로 지명받은 레지 잭슨이었다. [30]
너무나 당연하게도 자신의 전성기를 보냈던 시애틀 매리너스의 모자를 쓰고 입성하는 것을 선택했고, 투표 결과가 발표된 다음 날, 시애틀 측은 그리피의 24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했다. 이는 재키 로빈슨을 제외하면 매리너스 사상 최초의 영구결번으로, 공교롭게도 그리피 본인이 가장 존경했던 재키 로빈슨 다음으로 지정된 영구결번이기에 그 기분은 더욱 남다를 듯하다.
5.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켄 그리피 주니어 | 26 | 162 | 235 | 61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Center Field (5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켄 그리피 주니어 | 83.8 | 53.9 | 68.8 |
중견수 HOF 입성자 평균 | 71.2 | 44.6 | 57.9 |
6. 플레이 스타일
전형적인 5툴 플레이어로 내셔널 리그에 배리 본즈가 있었다면 이에 견줄 만한 아메리칸 리그의 선수가 바로 켄 그리피 주니어였다.수비에서도 펜스를 넘어가는 공을 걷어내는 등, 날렵하고도 화려한 수비를 통해 10년 연속으로 골드 글러브를 수상했다. 그러나 허슬 플레이로 인한 부상이 신시내티 초기 시절에 한꺼번에 나타나면서 2001년~2004년 약 4시즌 간 부상으로 앓게 만든 원인이 되었으며 이로 인해 세이버상으로는 리그 최악의 수비수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02년도부터 수비에 나섰던 마지막 시즌인 09년도 사이에 기록한 DRS가 -62였고 UZR은 -110이었을 정도.
주루 역시 준수했었는데, 매년 두자릿수의 도루를 기록해온 그리피는 매리너스에서의 위대한 10년 동안 연 평균 15.5개의 도루를 기록했다. 당대 이 정도의 도루 능력을 보여준 거포는 배리 본즈, 2번의 30-30을 기록한 제프 배그웰, 그리고 본격적으로 약을 빨기 전인 알렉스 로드리게스 정도다. 선수 생활의 후반기 10년 동안에는 부상 여파로 주루능력이 크게 감퇴했지만, 인사이드 파크 홈런으로 끝내기 홈런을 기록하는 등 거포치고 준수한 주력을 유지했다.
7. 여담
- 앞선 시대에 활동한 전설적인 대선수 스탠 뮤지얼과 생일이 같은데, 이 두 명은 출신지까지 펜실베이니아 주 도노라 시로 똑같다. 흥미롭게도 주니어의 할아버지는 스탠 뮤지얼과 동네친구 사이로 같은 고등학교 야구부 출신이었다고 한다.
-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미국 대 캐나다의 경기가 열리던 때에 비행선을 타고 애리조나 주 피닉스의 전경을 방송하는 자리가 있었는데, 이 때 JTBC에서 방송을 하던 박노준 해설위원이 Ken Griffey Jr.라는 자막이 뜬걸 보고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오랫동안 뛰며 수위타자도 한 선수"라 소개하는 실수를 저지르기도 했다. 그나마 다음 이닝에 토니 그윈과 헷갈렸다고 인정하며 어물쩡 넘어갈 수 있었지만,[31] 사기꾼 해설로 욕을 왕창 먹고 있던 중이라 저 정도는 그러려니 한다는 반응이 메이저 리그 팬들 사이에서 나왔다.
- 팀 내 분위기 메이커를 도맡아 할 정도로 활발한 성격의 소유자지만, 학창 시절 때 큰 감정 기복과 우울증을 겪으면서 자살 시도까지 한 적이 있었다. 그리피가 17살 때 자살 충동을 느꼈는데, 그 충동으로 아스피린을 277알이나 먹고 병원에 실려간 적이 있었다. 아버지가 준수한 야구 선수였던지라 뛰어난 재능을 물려받을 수 있었지만,[32] 그와 동시에 주위에 대한 압박으로 부담감이 컸다고 하며 이 때문에 자살 시도까지 했다고. 하지만 그런 그리피를 다 잡아준 것은 다름 아닌 어머니였는데, 그리피가 심리적으로 흔들릴 때마다 어머니가 다잡아주었고 이것이 아버지의 재능을 물려받은 것보다 더 큰 성공의 요인으로 보고 있다.
- 어찌보면 재키 로빈슨 데이의 창시자이기도 하다. 그리피는 2007년에 '재키 로빈슨의 데뷔일자인 4월 15일에 42번 저지를 입는 것을 허용해달라'는 건의를 메이저 리그 사무국 측에 했고, 사무국은 이를 받아들여 처음에는 4월 15일에 팀의 흑인 선수 한 명에게만 42번 저지를 입히는 것으로 시작했지만, 이후에는 모든 선수와 코칭 스태프, 심판들까지 42번을 달고 경기에 임하는 것으로 정착되었다. 다만 기원은 재키 로빈슨이 '다음 경기에도 42번이 나오면, 42번을 총으로 쏴버린다.'는 협박을 받자, 다저스의 외야수 진 허만스키(Gene Hermanski)가 '우리가 모두 42번을 입으면 누군지 모르겠지?'라고 말한 것이라 한다.
- 주니어의 장남 '트레이' 켄 그리피 3세가 2016년 드래프트에서 시애틀 매리너스에 24라운드로 지명됐다. 공교롭게도 트레이가 지명된 라운드와 매리너스의 영구결번이 아버지의 번호인 24여서 24 드립이 흥하기도 했다. 그런데 트레이는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의 풋볼팀 와일드캐츠에서 와이드리시버로 활약했고, 결국 인디애나폴리스 콜츠에 언드래프티 자유계약선수로 입단했으나 부상으로 계약해지 되고 이후 마이애미 돌핀스를 거쳐 피츠버그 스틸러스에서 활동했다. 또한, 주니어의 차녀 테이린 그리피는 오빠 트레이가 다니는 애리조나 주립대학교에 진학하여 농구팀에서 가드로 뛰고 있다. 할아버지와 아빠의 백투백을 애기때 보던 장녀는 잘 알려지지 않은거 봐선 이미 결혼하고 평범한 가정주부로 보인다.
- 야구 게임 MLB 더 쇼 17의 커버 모델로 선정되었다.
- 애런 저지와 MLB 더 쇼 18로 게임 대결을 한 적이 있다. 결과는 그리피의 승리.
- 2020년 11월 들어 시애틀을 연고로 하는 메이저 리그 사커 팀인 시애틀 사운더스 FC의 지분을 가족들과 보유하게 됐다고 한다.
- 잘 알려져 있다시피 뉴욕 양키스를 이를 갈 정도로 매우 싫어하는데, 이는 어린 시절 아버지가 양키스 소속이었던 시절에 클럽하우스에 놀러갔다가 당시 감독이었던 빌리 마틴이 어린 꼬마였던 그가 클럽하우스에 있는걸 못마땅하게 여겨 호통을 치며 쫓아냈었기 때문이다. 당연히 어린 마음에 큰 상처로 남게 됐고, 그래서 1999년 트레이드 추진 당시 가기 싫은 팀으로 양키스를 당당하게 언급하기도 해서 양키스 팬들의 뒷목을 잡게 만들었다.
- 아버지는 월드시리즈 반지가 2개가 있는 반면 본인은 정작 뛰어난 실력에 비해 월드시리즈 반지가 없다.[33]
- 한 시즌 최다홈런은 56홈런(2회)이다.
- 은퇴 이후부터 사진 촬영에 관심을 기울이기 시작하다 랜디 존슨과 마찬가지로 프로 사진촬영가로도 활동 중이다. 2023년 8월 30일에는 리오넬 메시가 뛰고 있는 인터 마이애미의 사진 기사로 등장하기도 했다. # 이후 2024년 3월 20일에는 한국에서 열리는 서울시리즈에 방문해 사진 촬영을 하고 2차전에서는 시구를 했다. 처음에는 니콘 바디를 쓰다가 현재는 소니 바디를 애용한다고 한다. #
- 2023년부터 MLB 9이닝스 광고 모델로 마이크 트라웃과 동시에 선정되었다.[34] 2023년에는 마이크 트라웃의 홈런 타구를 잡아내는 장면으로 깜짝 출연했다. # 2024년에는 마이크 트라웃은 켄 그리피 주니어를 상대로 은근히 MVP가 1번밖에 없다고 디스했고[35] 그에 그리피 주니어가 홈런 630개부터 먼저 치고오라고 맞받아 친다.
8. 연도별 기록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켄 그리피 주니어의 역대 MLB 기록 | ||||||||||||||||||
<rowcolor=#c4ced4>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1989 | SEA | 127 | 506 | 120 | 23 | 0 | 16 | 61 | 61 | 16 | 44 | 83 | .264 | .329 | .420 | .748 | 2.5 | 3.3 |
1990 | 155 | 666 | 179 | 28 | 7 | 22 | 91 | 80 | 16 | 63 | 81 | .300 | .366 | .481 | .847 | 5.0 | 5.2 | |
1991 | 154 | 633 | 179 | 42 | 1 | 22 | 76 | 100 | 18 | 71 | 82 | .327 | .399 | .527 | .926 | 6.9 | 7.1 | |
1992 | 142 | 617 | 174 | 39 | 4 | 27 | 83 | 103 | 10 | 44 | 67 | .308 | .361 | .535 | .896 | 5.3 | 5.8 | |
1993 | 156 | 691 | 180 | 38 | 3 | 45 | 113 | 109 | 17 | 96 | 91 | .309 | .408 | .617 | 1.025 | 8.4 | 8.8 | |
1994 | 111 | 493 | 140 | 24 | 4 | 40 | 94 | 90 | 11 | 56 | 73 | .323 | .402 | .674 | 1.076 | 6.8 | 6.9 | |
1995 | 72 | 314 | 67 | 7 | 0 | 17 | 52 | 42 | 4 | 52 | 53 | .258 | .379 | .481 | .860 | 3.3 | 3.3 | |
1996 | 140 | 638 | 165 | 26 | 2 | 49 | 125 | 140 | 16 | 78 | 104 | .303 | .392 | .628 | 1.020 | 9.7 | 9.7 | |
1997 | 157 | 704 | 185 | 34 | 3 | 56 | 125 | 147 | 15 | 76 | 121 | .304 | .382 | .646 | 1.028 | 9.0 | 9.1 | |
1998 | 161 | 720 | 180 | 33 | 3 | 56 | 120 | 146 | 20 | 76 | 121 | .284 | .365 | .611 | .976 | 6.6 | 6.6 | |
1999 | 160 | 706 | 173 | 26 | 3 | 48 | 123 | 134 | 24 | 91 | 108 | .285 | .384 | .576 | .960 | 4.9 | 4.9 | |
<rowcolor=#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00 | CIN | 145 | 631 | 141 | 22 | 3 | 40 | 100 | 118 | 6 | 94 | 117 | .271 | .387 | .556 | .942 | 5.4 | 5.5 |
2001 | 111 | 417 | 104 | 20 | 2 | 22 | 57 | 65 | 2 | 44 | 72 | .286 | .365 | .533 | .898 | 1.8 | 1.9 | |
2002 | 70 | 232 | 52 | 8 | 0 | 8 | 17 | 23 | 1 | 28 | 39 | .264 | .358 | .426 | .784 | 0.2 | -0.7 | |
2003 | 53 | 201 | 41 | 12 | 1 | 13 | 34 | 26 | 1 | 27 | 44 | .247 | .370 | .566 | .936 | 1.5 | 1.3 | |
2004 | 83 | 348 | 76 | 18 | 0 | 20 | 49 | 60 | 1 | 44 | 67 | .253 | .351 | .513 | .864 | -0.2 | 0.7 | |
2005 | 128 | 555 | 148 | 30 | 0 | 35 | 85 | 92 | 0 | 54 | 93 | .301 | .369 | .576 | .946 | 2.9 | 3.7 | |
2006 | 109 | 472 | 108 | 19 | 0 | 27 | 62 | 72 | 0 | 39 | 78 | .252 | .316 | .486 | .802 | -0.6 | -0.1 | |
2007 | 144 | 623 | 146 | 24 | 1 | 30 | 78 | 93 | 6 | 85 | 99 | .277 | .372 | .496 | .869 | -0.6 | 0.7 | |
<rowcolor=#fff>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08 | CIN CHW | 143 | 575 | 122 | 30 | 1 | 18 | 67 | 71 | 0 | 78 | 89 | .249 | .353 | .424 | .778 | -0.5 | 0.4 |
<rowcolor=#c4ced4> 연도 | 팀 | G | PA | H | 2B | 3B | HR | R | RBI | SB | BB | SO | AVG | OBP | SLG | OPS | fWAR | bWAR |
2009 | SEA | 117 | 454 | 83 | 19 | 0 | 19 | 44 | 57 | 0 | 63 | 80 | .214 | .324 | .411 | .735 | 0.0 | 0.6 |
2010 | 33 | 108 | 18 | 2 | 0 | 0 | 6 | 7 | 0 | 9 | 17 | .184 | .250 | .204 | .454 | -1.0 | -0.8 | |
MLB 통산 (22시즌) | 2671 | 11304 | 2781 | 524 | 38 | 630 | 1662 | 1836 | 184 | 1312 | 1779 | .284 | .370 | .538 | .908 | 77.7 | 83.8 |
9.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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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0년 4월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폴 몰리터 (밀워키 브루어스) | → |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 → | 호세 칸세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
1997년 4월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이 달의 선수 상 | ||||
프랭크 토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 → |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 → | 프랭크 토마스 (시카고 화이트삭스) |
[1] 과거 88kg[2] 중견수 2145경기/우익수 231경기[3] 다만 1998년에서 1999년 사이 시애틀에서 뛰었던 무명의 선수가 클럽하우스에서 단 한 명을 제외한 팀 전원이 약물을 돌렸다는 폭로를 하였다. 이는 그리피가 약물과 연관되었다는 유일한 주장으로, 이 당시 시애틀에는 랜디 존슨, 에드가 마르티네즈, 알렉스 로드리게스, 제이미 모이어, 라울 이바녜즈, 제이 뷰너 등이 있었으며 알렉스 로드리게스를 제외한 다른 선수들이 약물을 했을 확률이 희박하여 신빙성 있는 기록으로 인정되지 않으므로 현재까지도 청정타자로 대우받는다. 또한, 은퇴 후 약물 폭로의 포문을 연 호세 칸세코의 명단에 그리피의 이름은 존재하지 않는다.[4] Junior은 원래 칼 립켄 주니어를 지칭하는 별명이었지만, 그리피의 사기적인 활약으로 자연스럽게 그리피에게 옮겨지게 되었다. 대신 1990년대의 립켄은 루 게릭의 연속 경기 기록을 경신하던 시절이라서 '철인(Iron Man)'이라는 다른 영광스러운 별명이 생기고 이쪽으로 주로 불리게 되었다.[5] 1996년(9.7)-1997년(9.1)에 9를 넘는 bWAR을 기록했다.[6] 1위는 라파엘 팔메이로(2,831경기)이다.[7] 이 해 드래프트에서 크레이그 비지오가 1라운드 22순위로 휴스턴 애스트로스에 지명되었다.[8] 1989년 아메리칸 리그 올해의 신인은 5승 2패 27세이브 ERA 1.96을 기록한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그렉 올슨이었으며, 2위는 163이닝 17승 9패 ERA 3.64 153탈삼진을 기록한 캔자스시티 로열스의 톰 고든이었다.[9] 아무리 전체 1순위 지명의 특급 유망주라고 해도 이 정도로 빠르게 메이저 리그에서 자리잡는 케이스는 드물다. 약쟁이임이 들통난 뒤 몰락했지만, 역대급 포텐셜이라고 평가받은 알렉스 로드리게스도 1993년 지명된 후 1년여 만에 메이저 리그 무대를 밟아보긴 했지만 자리를 잡은 건 1996년부터였고, 현 시점 메이저 리그 최고의 선수로 평가받는 마이크 트라웃도 2009년 지명된 후 약 2년 만에 메이저 리그 무대를 밟고, 그 다음 시즌에야 정착할 수 있었다. 그리피보다 더 빠른 케이스는 역시 배리 본즈 같은 케이스를 제외하면 찾기 쉽지 않다.[10] 같은 시기 내셔널 리그의 배리 본즈와 함께 최고 수준의 수비를 보여줬으며, 골드 글러브 경쟁자였던 버니 윌리엄스와는 다른 수비 스타일로 비교되었다. 윌리엄스는 튀진 않지만 흠잡을 데 없는 수비를 보여주었고, 그리피는 펜스를 넘어갈 것을 막아내고 또 잡아내는 화려한 수비를 보여주었다.[11] 그 해 아메리칸 리그 MVP 수상자는 프랭크 토머스였고, 투표 3위는 알버트 벨이다.[12] 이 해 슈퍼 패미컴용으로 Software Creations이 제작하고 닌텐도가 발매한 켄 그리피 주니어 프레젠트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이라는 게임이 발매되었다.단 메이저 리그 선수 노조의 네이밍 사용권을 따낸 게임이 아니기 때문에, 게임 제목외에 실제 메이저 리그 선수들의 실명은 없고 대부분은 가명 처리되었다.[13] 그 해 아메리칸 리그 MVP 투표 2위는 티노 마르티네즈였고, 투표 3위는 프랭크 토머스다.[14] 여담으로 킹돔의 고별경기인 1999년 6월 27일 경기에서 그리피는 킹돔에서의 마지막 홈런을 기록했다.[15] 트레이드를 요구한 다른 이유로 추측되는 것은, 이웃이자 친한 친구였던 PGA 골퍼 페인 스튜어트(니코보커 패션으로 유명했음)가 비행기 사고로 급사하는 모습을 보게 된 그리피가 최대한 가족과 같이 있기 위해 트레이드를 요구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그리피는 네 팀에만 트레이드 거부권을 풀었는데, 신시내티 레즈,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뉴욕 메츠, 휴스턴 애스트로스였다. 그리피는 집이 있던 올랜도에서 가장 가까운 강팀이자 아버지가 잠시 뛰었던 애틀란타로 향하는 것을 원했으나, 당시 애틀란타는 터너 필드 개장 이후 팀 내의 좌타 거포를 정리하던 중이었다.[16] 해당 선수들의 행보를 놓고 결과적인 평가했을 때 레즈에서 제시한 트레이드 카드가 더 나았다고 볼 수 있고, 사실상 해당 트레이드는 매리너스의 승리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마이크 카메론은 매리너스의 위대한 시즌인 2001년 주전 중견수로 활약했고, 브렛 톰코도 4~5선발에서 자리를 지켜줬다. 메츠에서 비슷한 스펙을 가진 선수를 대응한다면 로저 세데뇨와 옥타비오 도텔 정도일 텐데, 도텔이야 MLB 역사상 최고의 저니맨으로 활약했지만, 메츠에서의 첫 두 해에 리그에서 준수한 리드오프로 활약했지만 기량이 급격히 하락한 로저 세데뇨, 그리고 맨날 불만 질러댄 마무리 아르만도 베니테스를 생각한다면 매리너스는 최고의 스타를 떠나보내면서도 남는 장사를 했다.[17] 첫 번째로 1억 달러를 넘긴 계약은 1999년 케빈 브라운이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 맺은 7년 $105M 계약이었다.[18] 그러나 이듬 해 알렉스 로드리게스가 텍사스 레인저스와 10년 $252M 계약을 맺고, 데릭 지터가 뉴욕 양키스와 10년 $189M 연장 계약을 맺는 등 메이저 리그의 계약 규모는 더욱 커져갔다.[19] 이 때 고질적인 부상 부위가 햄스트링이었는데, 이것에 대해서는 시애틀 시절부터 제대로 워밍업을 하지 않고 경기에 나서는 습관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지적이 있었다.[20] 이 부상으로 인해 윌리 모 페냐가 주전 자리에 올라오게 된다.[21] 2001년 111경기 .286 .365 .533 22홈런 65타점 2도루
2002년 70경기 .264 .358 .426 8홈런 23타점 1도루
2003년 53경기 .247 .370 .566 13홈런 26타점 1도루
2004년 83경기 .253 .351 .513 20홈런 60타점 1도루[22] 이 경기의 선발 투수가 봉중근이었다. 봉중근은 이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첫 선발승을 거뒀다.[23]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원정경기임에도 카디널스 팬들은 그의 500호 홈런 달성에 관중들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팬들은 원정 팀에서 기록이 달성되면 너나 할 것 없이 기립박수를 보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86년 만의 우승 당시 구장에 남았던 카디널스 팬들 모두가 박수를 보내주어 품격을 보여줬다.[24] 모두 다 알다시피 그 경기는 최희섭이 댄 휠러의 공을 통타하는 쓰리런 홈런이 터지면서 대한민국이 7-3으로 이겼다.[25]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이 중에 큰 딸은 류현진보다 겨우 1살 어린데, 그것도 할아버지인 시니어와 백투백 홈런을 쳤을 때 이미 2살이었다.[26] 원래는 시즌 종료 후 정상적으로 은퇴하기로 되어있었지만, 경기 중 덕아웃에서 졸았다는 일명 냅게이트(Napgate)라는 구설수에 올라 생각보다 빨리 은퇴를 선언했다.[만장일치] 만장일치 수상.[28] 다만 이 기록을 세운 것에 대해서는 2016년도에 들어서 투표권을 얻는 기자단의 자격의 유지 기간이 현역 은퇴 후 10년까지로 바뀌면서 일명 꼰대들이 사라지면서 가능했다. 종전의 늙은 기자들은 '베이브 루스조차 만장일치로 명전에 입성하지 못했는데 어디 감히'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3년 뒤 진짜로 만장일치를 받은 선수가 나오게 되었다.[29] 재밌는 점은 함께 입성하게 된 마이크 피아자는 62라운드 1390순위 지명으로, 역대 명예의 전당 입성자 중 최저 순위 지명자라고 한다.[30] 그리고 그리피 이후 전체 1순위 지명자 출신 명예의 전당 헌액자는 2012년 은퇴한 치퍼 존스가 되었다. 그 다음 해인 2018년 12월 또다른 전체 1순위 지명자인 해롤드 베인스가 베테랑 위원회 투표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해롤드 베인스는 켄 그리피 주니어보다 먼저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명전 입성은 더 늦게 하게 되었다.[31] 그리피와 그윈은 체형이나 얼굴도 확실히 달라서 서로 헷갈릴 이유가 없다.[32] 빅 레드 머신으로 불리는 1970년대 신시내티 레즈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 통산 타율 .296, 2000안타와 3회의 올스타 출장을 경험한 뛰어난 선수였다. 40세 시즌에 2살배기 손녀(!)가 보는 앞에서 아들과 백투백 홈런을 날렸던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였는지는 입증된다.[33] 메이저리거들은 월드시리즈 반지가 한개도 없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34] MLB 9이닝스는 이를 광고 모델로 선정한 뒤 지급할 수 있는 레전드 카드(모든 세트덱으로 얻을 수 있는 능력)로 생성되었다.[35] 트라웃은 2024년 기준으로 총 3번 수상했다.
2002년 70경기 .264 .358 .426 8홈런 23타점 1도루
2003년 53경기 .247 .370 .566 13홈런 26타점 1도루
2004년 83경기 .253 .351 .513 20홈런 60타점 1도루[22] 이 경기의 선발 투수가 봉중근이었다. 봉중근은 이 경기에서 메이저 리그 첫 선발승을 거뒀다.[23] 그리고 세인트루이스 원정경기임에도 카디널스 팬들은 그의 500호 홈런 달성에 관중들 모두가 기립박수를 보냈다.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팬들은 원정 팀에서 기록이 달성되면 너나 할 것 없이 기립박수를 보내주는 것으로 유명하다. 2004년 보스턴 레드삭스의 86년 만의 우승 당시 구장에 남았던 카디널스 팬들 모두가 박수를 보내주어 품격을 보여줬다.[24] 모두 다 알다시피 그 경기는 최희섭이 댄 휠러의 공을 통타하는 쓰리런 홈런이 터지면서 대한민국이 7-3으로 이겼다.[25] 슬하에 1남 2녀를 두었다. 이 중에 큰 딸은 류현진보다 겨우 1살 어린데, 그것도 할아버지인 시니어와 백투백 홈런을 쳤을 때 이미 2살이었다.[26] 원래는 시즌 종료 후 정상적으로 은퇴하기로 되어있었지만, 경기 중 덕아웃에서 졸았다는 일명 냅게이트(Napgate)라는 구설수에 올라 생각보다 빨리 은퇴를 선언했다.[만장일치] 만장일치 수상.[28] 다만 이 기록을 세운 것에 대해서는 2016년도에 들어서 투표권을 얻는 기자단의 자격의 유지 기간이 현역 은퇴 후 10년까지로 바뀌면서 일명 꼰대들이 사라지면서 가능했다. 종전의 늙은 기자들은 '베이브 루스조차 만장일치로 명전에 입성하지 못했는데 어디 감히'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이 상당수 있었다. 그리고 3년 뒤 진짜로 만장일치를 받은 선수가 나오게 되었다.[29] 재밌는 점은 함께 입성하게 된 마이크 피아자는 62라운드 1390순위 지명으로, 역대 명예의 전당 입성자 중 최저 순위 지명자라고 한다.[30] 그리고 그리피 이후 전체 1순위 지명자 출신 명예의 전당 헌액자는 2012년 은퇴한 치퍼 존스가 되었다. 그 다음 해인 2018년 12월 또다른 전체 1순위 지명자인 해롤드 베인스가 베테랑 위원회 투표를 통해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해롤드 베인스는 켄 그리피 주니어보다 먼저 전체 1순위 지명을 받았지만 명전 입성은 더 늦게 하게 되었다.[31] 그리피와 그윈은 체형이나 얼굴도 확실히 달라서 서로 헷갈릴 이유가 없다.[32] 빅 레드 머신으로 불리는 1970년대 신시내티 레즈의 전성기를 이끈 선수. 통산 타율 .296, 2000안타와 3회의 올스타 출장을 경험한 뛰어난 선수였다. 40세 시즌에 2살배기 손녀(!)가 보는 앞에서 아들과 백투백 홈런을 날렸던 것만으로도 그가 얼마나 뛰어난 선수였는지는 입증된다.[33] 메이저리거들은 월드시리즈 반지가 한개도 없는 선수들이 대부분이다.[34] MLB 9이닝스는 이를 광고 모델로 선정한 뒤 지급할 수 있는 레전드 카드(모든 세트덱으로 얻을 수 있는 능력)로 생성되었다.[35] 트라웃은 2024년 기준으로 총 3번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