팀 새먼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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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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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미 리즈 | 브라이언 다우닝 | 척 핀리 | 진 오트리 | 2002 에인절스 | |
바비 커눕 | 딘 챈스 | 팀 새먼 | 마이크 위트 | 개럿 앤더슨 | |
블라디미르 게레로 |
1993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 ||||
팻 리스타치 (밀워키 브루어스) | → | 팀 새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 → | 밥 해멀린 (캔자스시티 로열스) |
199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 ||||
커비 퍼켓 (미네소타 트윈스)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알버트 벨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 | 팀 새먼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매니 라미레즈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알버트 벨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 → |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알버트 벨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후안 곤잘레스 (텍사스 레인저스) |
캘리포니아 - 애너하임 -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등번호 15번 | ||||
커크 맥카스킬 (1985~1991) | → | 팀 새먼 (1992~2006) | → | 랜달 그리칙 (2023) |
티모시 제임스 새먼 Timothy James Salmon | |
출생 | 1968년 8월 24일 ([age(1968-08-24)]세) |
캘리포니아 주 롱비치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그린 웨이 고등학교 - 그랜드 캐년 대학교 |
신체 | 190cm, 90kg |
포지션 | 우익수 |
투타 | 우투우타 |
프로입단 | 1989년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69번, CAL) |
소속팀 | 캘리포니아-애너하임-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1992~200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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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의 전 야구선수. 15년동안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에서만 활약한 원클럽맨이자 프랜차이즈 스타로, 에인절스의 암흑기 시절부터 랠리 몽키와 함께 에인절스가 우승하던 때까지 에인절스와 함께 했던 선수이다.2. 선수 경력
2.1. 아마추어 시절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의 연고지인 롱비치 출신으로, 이후 애리조나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게 된다. 고등학교 때는 대부분의 유명 선수들이 그렇듯 야구 뿐 아니라 미식축구와 농구선수로도 뛰어난 활약을 보였다. 1986년에는 드래프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18라운드 지명을 받았으나, 지명을 거부한 후 애리조나의 그랜드 캐니언 대학교로 진학하고, 1989년 드래프트 3라운드 전체 69번으로 에인절스에 입단한다. 이후 마이너리그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어 1992년 8월 20일 메이저리그로 콜업되었다.2.2. 캘리포니아-애너하임-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1993년 베이스볼 아메리카 유망주 순위 5위로 선정되었다. 비슷한 수준의 (역대) 톱급 유망주들의 성적은 메이저 리그 유망주 순위를 참조. 콜업 이후 주전 우익수 자리를 차지하며 .283의 타율과 홈런 31개, 타점 95개를 기록하였고, 만장일치로 1993년 AL 신인왕이 되었다. 그 해 NL 신인왕은 똑같이 만장일치 득표를 받은 마이크 피아자였다. 1994년에는 초반 슬럼프를 겪었으나, 팀의 레전드 로드 커류에게 타격에 대한 조언을 받아 타격감이 살아나는 모습을 보였다. 1995년 에인절스 프랜차이즈 최초로 3할-30홈런-100타점-100득점을 기록하며 전성기를 맞지만 알버트 벨이라든지, 그 벨을 밀어내고 MVP가 된 모 본이라든지, 9할 승률을 거둔 랜디 존슨 등등 좀 더 좋은 성적을 거둔 선수들이 여럿 있었기 때문에 7위로 MVP 수상에는 실패했고, 대신 우익수 실버슬러거 타이틀을 획득했다.[1] 1997년에는 아쉽게 3할 달성은 실패하지만 129타점을 기록하며 MVP 투표에서 또 7위를 차지했다. 스프링캠프에서 아킬레스건 부상을 입은 1998년에는 자주 부상으로 이탈했지만 3할 타율과 26홈런을 기록하며 MVP 투표 14위에 올랐다. 2000년 8월 18일에는 통산 223홈런을 때려내며 팀 최다 홈런 기록 보유자인 브라이언 다우닝의 기록을 넘었다.[2] 시즌 후 4년 4천만 달러의 연장 계약을 체결했으나 잇따른 부상과 수술의 여파로 2할 초반대의 타율과 17홈런이라는 저조한 성적을 기록했다. 그러나 2002년에는 반등에 성공하며 디비전 시리즈와 챔피언십 시리즈를 승리로 이끌었고, 2002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2차전 때 KIA 타이거즈에서 뛰기도 한 펠릭스 로드리게스를 상대로 9대 9의 균형을 깨는 2점 홈런을 비롯한 맹활약을 시리즈 내내 선보이며 배리 본즈가 이끄는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를 꺾고 우승을 차지한다.우승 이후, 어느덧 30대 중반이 된 새먼 역시 노쇠화를 피할 수는 없었다. 2003년은 출장한 경기의 절반 정도를 지명타자로 출장했으나, 그래도 .275의 타율과 19개의 홈런이라는 나쁘지 않은 성적을 마크했다. 그러나 2004년에는 같은 우익수를 보는 블라디미르 게레로가 팀에 합류하면서 사실상 전업 지명타자로 출장했으나 직전 해보다 타율이 떨어진데다 장타율은 더 큰 폭으로 감소하며 홈런도 2개밖에 기록하지 못했다. 거기다 2005년 부상으로 시즌을 통째로 날려먹은 뒤로는 부진한 성적만을 기록하면서 결국 2006년 은퇴를 선언하게 된다.
3. 은퇴 이후
2012년에는 2002년 월드 시리즈 우승 멤버인 트로이 퍼시벌, 데이비드 엑스타인과 함께 시구를 했다.#같은 해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후보로 올랐는데, 첫 투표에서 0.9%의 득표율로 광속탈락하고 말았다. 아무리 프랜차이즈 스타라고는 하지만, 후보로 올라온 수많은 경쟁자들에 비해서는 통산 성적이 아쉬운 편이기 때문. 비슷한 이유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의 암흑기를 이끈 데일 머피도 15년 동안 명전 투표에서 물을 먹고 최종 탈락했다.
2015년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4. 플레이 스타일
우타 거포 외야수로, 하필 스테로이드 시대에 활동한 데다 투수 친화 구장인 에인절 스타디움에서 뛰어 많이 저평가되지만 전성기인 1995년에는 .594의 장타율을 기록하기도 한 상급의 슬러거였다. 선구안 역시 좋아서 2004년과 부상으로 한 시즌을 거른 2005년을 제외한 커리어 내내 1할 정도의 타출갭을 유지했으며, 새먼이 기록한 970개의 볼넷은 에인절스 역대 최다로 남아있다. 반면 주루 툴은 딱 평균 수준이었고, 수비력은 평균 이하였다. 거기다 1998년부터 잔부상도 잦아져 .282/.385/.498라는 준수한 비율스탯에 비해 많은 누적을 쌓지 못했고, 명예의 전당 입성도 그대로 실패했다.5. 여담
- 새먼의 등번호 15번은 에인절스에서 영구 결번 선포만 안 했지 사실상 영구 결번 취급이다. 그래서 댄 해런이 에인절스로 올때 달고 싶어하던 등번호였으나 새먼이 쓰던 것이라 24번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그 후 2020년에 포수 제이슨 카스트로가 15번을 달면서 해제되나 싶었는데, 카스트로도 15번이 새먼의 등번호임을 알자 시즌 시작 전 16번으로 번호를 고쳤다.[3]
- 단 한 번도 올스타에 뽑힌 적이 없다. 대약물시대로 불릴 만큼 스타 외야수들과 슬러거들이 즐비했던 90~2000년대 선수임을 가정해도 꽤 특이한 기록이다. 같이 외야를 봤던 짐 에드먼즈나(1995), 개럿 앤더슨(2002, 2003, 2005), 대린 어스태드(1998, 2000)등은 에인절스 외야수로 올스타에 선발된 전력이 있고, 심지어 1995년 단 한시즌만 3할을 치고 멘도사 라인 위쪽에서만 놀던 수비형 유격수 개리 디사시나(現 에인절스 3루코치)도 1995년 그 해 올스타에 뽑혔다는 점에서 정말 더럽게 운이 없었던 케이스라고 볼 수 있다. 때문에 통산 299홈런이라는 LA 에인절스 통산 2위 홈런 기록은 올스타에 단 한 번도 뽑힌 적 없는 선수중 통산 홈런 1위라는 비운의 기록으로도 같이 남았다.[4]
- MLB 퍼펙트이닝 15에서는 LA 에인절스의 첫 번째 PAA, 즉 레전드 선수로 출시되었다. 왜 2002년을 출시했는지는 의문.
6. 관련 문서
[1] 사실 1995년 MVP 투표는 언론과의 관계가 나쁜 벨을 물먹이려고 본을 밀어주는 느낌이 강해 당시로도 논란이 많았다. 본이 새먼보다 앞선 수치는 타점과 홈런 뿐이고, 나머지 타율이나 출루율, 장타율, WAR 등 모든 수치에서는 새먼이 우위를 차지했다.[2] 이후 마이크 트라웃이 2020년 9월 6일, 300홈런을 치며 새먼의 기록을 경신한다.[3] 여담이지만 16번은 개럿 앤더슨이 에인절스 시절에 달았던 번호이기도 한데, 앤더슨은 새먼만큼 커리어를 쌓지 못했고 원클럽맨도 아닌지라 평범한 등번호로 남았다. 그래도 2009년과 2010년 16번을 단 사람이 없던 것을 보면 아마 임시결번으로 남았던 모양이다. 앤더슨이 은퇴한 후 행크 콩거가 16번의 새로운 주인이 되었다.[4] 로저스 혼스비도 올스타에 뽑힌 적이 없고 통산 301홈런을 때려내기는 했지만, 올스타전은 혼스비의 커리어 말년인 1933년부터 시행되었다. 참고로 저 기록의 통산 2위는 지역 라이벌인 LA 다저스의 에릭 캐로스. 두 선수 모두 신인왕 출신에 중심타자로 활약했지만 올스타전에 한번도 못나갔다는 점이 닮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