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2 02:12:37

매니 라미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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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마누엘 아리스티데스 "매니" 라미레스 오넬시다
(Manuel Aristides "Manny" Ramirez Onelcida)
생년월일 1972년 5월 30일
국적 도미니카 공화국/미국
출신지 산토 도밍고
포지션 좌익수/우익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91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3위
소속팀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93~2000)
보스턴 레드삭스 (2001~2008)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8~2010)
시카고 화이트삭스 (2010)
탬파베이 레이스 (2011)
이다 라이노스 (2013)
고치 파이팅 독스 (2017)
월드시리즈 우승 반지
2004 2007
2004년 월드 시리즈 MVP
조시 베켓
(플로리다 말린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저메인 다이
(시카고 화이트삭스)
2002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타격왕
스즈키 이치로
(시애틀 매리너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빌 밀러
(보스턴 레드삭스)
2004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홈런왕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양키스)
매니 라미레즈
(보스턴 레드삭스)
알렉스 로드리게스
(뉴욕 양키스)

1. 개요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3.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과 그 이후5. 대만 진출6. 시카고 컵스 시절7. 고치 파이팅 독스 시절8.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9. Manny Being Manny10. 평가11. 연도별 기록

1. 개요

아메리칸리그를 대표하는 돌+I강타자이자 보스턴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데 가장 큰 역할을 한 선수이며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강타자였다.

통산 타율 0.312, 출루율 0.411, 장타율 0.585, 555홈런, 1831타점을 기록했고 30홈런 100타점을 12번 기록했다.

하지만, 약물 복용검사에서 2번이나 걸린 약물 복용자로 추락해버린 약쟁이선수.

2.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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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1년 드래프트 1라운드 전체 13번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지명을 받은 매니 라미레즈는 1993년 확장 로스터에 포함되며 메이저리그 무대를 밟기 시작했고 1994년에는 91경기를 뛰면서 17개의 홈런을 때려내며 신인왕 투표 2위에 오른다.

1995년부터 우익수로 본격적인 주전으로 활약한 라미레즈는 곧장 31홈런, 107타점을 기록했고 1996년에는 33홈런, 112타점을 기록했는데 이 기록은 주로 6, 7번타자로 뛰면서 세운 기록이다.짐 토미가 8번을 치던 시절[1] 기량을 인정받은 라미레즈는 1997년부터 인디언스의 중심타선에 포진되었고 인디언스의 타선을 이끌어나갔다.

1999년에는 165타점[2][3]을 기록하며 무시무시한 타점본능을 보여준 라미레즈는 2000년에는 118경기에만 출장하면서도 122타점을 기록한다.

인디언스에서 매니 라미레즈는 타율 0.313, 출루율 0.407, 장타율 0.592, 236홈런, 804타점, 4번의 실버 슬러거 수상과 올스타전 출장을 기록한다.

그러나 당시 인디언스는 매니를 붙잡을 만한 페이롤을 보유한 팀이 아니었다. 인디언스는 7년간 연평균 1700만달러를 제시했지만 매니를 붙잡기에는 역부족이었고, 결국 매니 라미레즈는 FA시장으로 나온다.

3. 보스턴 레드삭스 시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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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0년 12월, 8년간 1억 6000만달러라는 거액으로 매니 라미레즈는 보스턴 레드삭스와 FA계약했고 입단 회견에서 "뉴욕 양키스의 독주에는 질렸다."라는 말을 남기며 타도 양키스를 밝힌다.

타력에 비해 수비력[4]이 부족했기 때문에 라미레즈는 레드삭스의 좌익수로 활약한다.그러나 수비에서도 안타제조기 스프링캠프에서는 크게 부진하며 먹튀가 되나 하는 우려를 받았지만 이적 첫해부터 곧장 41홈런과 125타점을 기록한 라미레즈는 2번째 시즌에는 타율 0.349를 기록하며 아메리칸 리그 타율 1위를 차지한다.

2003년부터는 미네소타산 약쟁이 흑돼지와 공포의 중심타선을 형성했고 2004년에는 지긋지긋한 밤비노의 저주를 깨면서 월드시리즈 MVP를 받는 등의 큰 역할을 한다.

비록, 수비에서는 약점을 많이 노출했지만[5] 그것을 커버해주고도 훨씬 남는 타력이 있었고, 특히 라미레즈는 포스트시즌에서 더욱더 강력한 타자가 되었다.양키스에서 포스트시즌만 되면 방망이대신 삽을 드는 누군가는 각잡고 반성해야 할듯. 근데 걔도 이미 약쟁이로 판명되었잖아?. 보스턴에서 보여준 활약, 더욱이 보스턴이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월드시리즈에서 우승하는데 매우 큰 기여를 한 선수라 노마 가르시아파라의 이적 이후 보스턴에서 가장 사랑받는 선수였다.

매니 라미레즈는 레드삭스에서 8년간 있으면서 타율 0.312, 출루율 0.411, 장타율 0.588, 274홈런, 868타점을 기록했고 6번의 실버 슬러거 수상과 8번의 올스타전 출장을 기록했다.

4.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시절과 그 이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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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external/blog.masslive.com/large_071709mannywood.jpg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다저 스타디움 좌측 파울라인 쪽에 매니우드라는 것까지 만들어서 적극적으로 마케팅에 활용했지만 매니가 약빨다 걸리고 성적까지 시들시들해지자 결국 치워버렸다.(...) 그리고 나중에 저 등번호는 어떤 반도의 좌완 뚱땡이가 쓰게 된다.

매니 라미레즈와 보스턴 레드삭스의 갈등은 점점 심화되어 2008년 6월 5일, 탬파베이 레이스 전에서는 팀 동료 케빈 유킬리스와 다투고 7월에는 라미레즈가 직접적으로 레드삭스를 비난하는등 결국 매니는 7월 31일, 보스턴 레드삭스,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LA 다저스의 삼각 트레이드를 통해 다저스의 유니폼을 입게된다.[6]

그런데 사람이 달라졌다.

강력한 파이팅으로 라미레즈는 다저스의 팀 분위기를 이끌었고 스스로도 불방망이를 휘두르며[7] 다저스의 타선을 이끌어나갔고, 매니 이적 전까지 5할에도 못미치던 성적을 기록하던 다저스는 후반기 대질주를 보여주면서 챔피언십 시리즈까지 진출한다. 다저스 프런트는 이에 감복하여 매니와 2년 $45M의 연장계약을 체결했다.

그러나 2009년 5월 7일 약물검사에서 배란 억제제 사용이 걸리며 50경기 출장 정지를 받으면서 몰락이 시작되었다.[8]

50경기 출장 정지후 돌아왔지만 이후, 예전만큼의 기량은 보이지 못했고 2010년에는 시즌 도중,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트레이드되었으나 또다시 부진.

2010년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선수로 시장에 나온 후에는 탬파베이 레이스와 계약, 레드삭스시절 팀 동료였던 동굴맨과 한 팀에서 뛰게 되었지만 또다시 약물검사에서 걸렸다. 첫 검사에서 양성 반응이 나오자 항소를 했는데, 변호인 측에서 참관한 가운데 실시한 검사에서도 양성 반응이 나오자 데꿀멍. 그에 따라 100경기 출장 정지를 받은 라미레즈는 결국 2011년 4월 8일, 기자회견을 열고 서둘러 은퇴한다.

다시, 메이저리그 복귀를 희망하는 이야기가 나오기도 하지만...... 아내 폭행으로 다시 신문기사에 이름이 오르는등 복귀는 영영 물건너간듯. 메이저리그에서 다시 뛰려면 일단, 100경기 출장 정지 채우고 탬파베이 레이스에 몇년 무료 자원봉사뛰도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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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최근 사진을 보면 한때, 우리가 알던 그 매니 라미레즈가 맞나 싶을정도로 말라깽이가 되어있다. 본인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 복귀하지 못하면 일본프로야구 진출까지 생각한다고 말했지만 몸이 이래서야... 아무리 전성기의 활약이 약빨이었다지만 이건 심봉사의 Before & After보다 심하다(...)근데 심봉사에겐 아주 심각한 모욕인데[9]

결국 2011년 오프시즌 플로리다에서 일본의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입단 테스트까지 참가했지만 당연하게도 불합격 통보를 받았다. 안습. 그리고 다시 메이저리그 복귀를 노리고 있었는데 이미 기량이 떨어진 매니를 잡으려는 팀이 드물며 설혹 복귀를 한다 하더라도 100경기 출장 정지부터 채워야 하기때문에 현실적으로 매니의 복귀는 불가능에 가까울 줄 알았는데…

메이저리그 사무국이 그가 한 시즌을 쉬었음을 감안하여 실은 그냥 선수노조와 싸우기 싫어서라 카더라 출장 정지 경기 수를 50경기로 경감해 줬고, 2월 20일에 오클랜드 애슬레틱스가 그를 연봉 50만 달러에 영입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오클랜드로서는 그냥 싼 복권 긁는 셈. 한 때 2억불의 사나이가 약물 때문에 최저연봉 수준의 선수로 추락했다. 안습. 그런데 애슬레틱스에선 매니의 자리가 없었는지 징계가 풀린 이후에도 메이저리그에 올라오지 못했고 매니가 구단에 FA를 요청하면서 결국 방출당했다.

5. 대만 진출

JUST LIKE THE EX-GIRL FRIEND WHO WILL NEVER RETURN HOMERUN!

미국 ESPN이 3월 7일까지 매니가 팀을 구하지 못하면 대만 프로야구 리그로 가게 될 것이라고 보도했고 결국 대만으로 가는 것이 확정되었다. 팀은 EDA 라이노스[10].

이따 EDA는 매니의 요구에 따라 대형 빌라를 임대해주었으며, 자동차, 운전기사와 경호원 그리고 특유의 헤어 스타일을 관리할 수 있게 전속 미용실까지 제공하는 등 특급 대우를 보장할 것이라고 밝혔다.

2013년 3월 27일 슝디 엘리펀츠와의 개막전에서 지명타자로 출전했으며, 4월 4일 퉁이 세븐일레븐 라이온즈와의 접전에서는 대만 진출 첫 홈런을 뽑아냈다. 덤으로 CPBL 7000번째 홈런의 주인공이라는 타이틀도 얻었다. 한물 간 슈퍼스타이지만 2013년 CPBL의 흥행 보증수표 역할을 했다.2013년 4월 4일 기준으로 매진경기가 17회 중 총 3회 있었는데 이 중 두 경기가 이다 라이노스의 경기였다. 한마디로 말해서 매니 라미레즈 보려고 야구 보러 온 사람이 늘었다는 소리인 셈. 대만에서의 매니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의 선전과 더불어 매니 영입으로 인한 시너지 효과로 대만 프로야구 평균관중이 무려 300%(!)나 상승했다고...

하지만 매니는 기본 3개월 단위의 단기계약인 기존 계약 내용에 따라 계약을 연장하지 않고 3개월만 뛰고 대만을 떠나기로 했다. 소속팀인 EDA는 이미 리그 최고 연봉자인 매니에게 파격적인 연봉인상을 제시하는 등 매니를 붙잡기 위해 노력했으나, 매니 측에서 거절했다고... 매니는 CPBL 통산 49경기에 나와서 타율 0.352 출루율 0.422 장타율 0.555 8홈런 43타점을 기록했다.

여담으로 한 팬이 매니를 응원하겠다고 커다란 사진에다 응원 문구를 적어왔는데 실은 그 사진이 현역 메이저리그 투수인 자니 쿠에토의 사진이어서 해외 팬들에게 큰 웃음을 선사하기도 했다.

이후 6월 텍사스 레인저스 산하 마이너리그팀과 계약을 맺고 마이너리그 경기에 출장했으나 좋은 모습을 보이지 못했고 8월 방출되었다.

6. 시카고 컵스 시절

2014년 5월 말에 시카고 컵스가 산하 마이너 리그 트리플A 팀인 아이오와 컵스의 플레잉코치로 영입했다. 아직 매니가 메이저에 대한 미련을 못 버리고 있어서 코치보다는 선수로 더 뛰지 않겠냐는 게 중론이었지만 아리스멘디 알칸타라, 하비에르 바에즈, 호르헤 솔레어 등 젊은 선수들을 지도하면서 타격코치로 좋은 능력을 보였다[11]. 매니를 영입한 테오 엡스타인도 이 정도로 해줄 줄 몰랐다며 놀랐다고 한다.

하지만 무릎부상으로 마이너리그 일정이 끝나기 전에 아이오와 컵스에서 나왔다. 앞서 언급했듯이 매니는 선수 생활에 미련을 갖고 있어 컵스의 기대처럼 코치로 남아 선수들을 지도할지는 미지수다.

일단 테오의 부름에 타격 컨설턴트라는 이름을 달고 다시 시카고 컵스로 돌아왔다.

7. 고치 파이팅 독스 시절

2017년에는 일본의 독립 리그시코쿠 아일랜드 리그 플러스 소속의 고치 파이팅 독스에서 뛰게 되었다. 확실히 오랜 공백을 느낄 수 있는게 비교적 통통했던 현역 시절과 비교해봐도 어마어마하게 살이 쪘다. 약물 적발된 직후의 말라깽이는 어디로 갔는지... 23경기에서 타율 .413, 3홈런, 22타점을 때려내며 왕년의 대타자다운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무릎 수술 때문에 8월에 미국으로 귀국하며 시즌 아웃.

여담으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산하 마이너 선수로 인연이 있던 현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 감독인 알렉스 라미레즈와 방송 대담을 진행하기도 했다.

8. 명예의 전당 입성 여부

일단 첫해인 2017년에는 23.8%를 두번째 해인 2018년에는 22%의 득표율을 기록했다. 세번째 해인 2019년에는 22.8%를 기록.

도핑이 두 번이나 걸린 선수치고 너무 후한 것이 아니냐는 의견이 많다. 빅맥이나 소사 팔메이로가 투표율 10~15 퍼센트였거나 광탈한걸 생각히면 투표 인단의 약물 선수에 대한 인식이 희석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물론 비율 스탯은 소사, 팔메이로보다 좋다. 2인자 이미지가 강하기는 하지만 통산 555홈런에 OPS가 무려 10할에 육박해서 도핑 적발만 아니었으면 당연히 무난하게 명전에 헌액되었을 수준이다.

9. Manny Being Manny


그의 기행 모음집.

원래부터 똘끼가 있긴 했지만 레드삭스 시절 특유의 빛(?)을 발했다.

2002년 취임한 테오 엡스타인 단장은 매니가 훌륭한 타자이긴 하나, 수비 실력이나 여러가지 면에서 오버페이가 심하다고 봤다. 그러다보니 매해 웨이버 공시[12]나 트레이드 시도를 했고 그에 대한 반항으로 똘끼 분출이 시작되면서 상당한 화제가 되었다. 어쨌든 매니는 방망히 하나만으로 연봉 값보다 좋은 활약을 했고, 이러한 활약에 힘입어 보스턴이 우승을 했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테오가 실수할 뻔했다. 만약 테오가 매니를 이적시켰다면 보스턴의 우승은 한참 뒤였을지도 모른다.

그러다 보니 팬들은 Manny Being Manny라는 피켓을 들고 매니를 옹호하게 되었다. 번역하자면 '매니(의 똘끼)는 원래 그래요.', '매니를 좀 내버려 두세요.' 매니가 '매니'하는게 뭐가 문제? 정도.

기행 몇가지를 소개하자면..

1. 1994년 4월 4일, 원바운드로 담장을 넘어간 타구를 홈런인줄 알고 그냥 홈까지 내닫다가 3루심에게 제지. (원칙적으로 원바운드로 담장을 넘어가면 2루타)

2. 2001년 12월 10일, 레드삭스에서 편안함을 느끼지 못한다고 말해서 레드삭스가 독립된 인터뷰실을 만들도록 함. (그러나 쓰지 않음)

3. 2002년 9월 17일, 타석등장시 나오는 노래를 대마초 사용에 관한 가사를 담은 "Good Times"로 바꿈. (가사는 무삭제로)

4. 2003년 8월 29일에는 뉴욕 양키스에서 뛰고 싶다고 이야기했고 그 다음날에는 몸이 좋지 않아 경기에 나설 수 없다고 이야기했지만 친구와 함께 호텔 바에서 함께 있었던 장면이 찍힘.

5. 곧이어 9월 1일에는 감독의 대타 출장을 거부.


6. 2004년 7월 21일에는 팀 동료였던 중견수 자니 데이먼의 송구를 중간에서 컷하려고 불필요한 다이빙 캐치를 시도하다 인사이드 파크 홈런을 허용.

7. 2005년 8월 24일에는 1사 만루에서 땅볼을 치자 1루로 뛰지않아 병살을 당했고 결국 팀 패배에 일조.


그 외에도 공수 교대 타임에 그린 몬스터 안에 들어가서 전화를 한다든가 안에서 점수판 조작하는 직원[13]과 노가리를 깐적도 있다. 참고로 다저스 이적 후에도 비슷한 행동을 해서 팀 동료였던 제프 켄트가 '너 뭐함?'이라고 반응하기도 했다.


수비에서는 몸개그로 유명하지만 가끔 이런 것도 잡아준다. 점프 캐치 후 환호하는 외야 관중과의 하이파이브는 덤. [14]


대만에서도 한껏 개그본능을 발휘하는 매니. 하여간 누가 매니 아니랄까봐...

10. 평가

2000년대 최고의 타자중 한 명으로 놓아도 될 정도로 빼어난 기량을 보여준 타자였다. 특히 포스트시즌에서 더욱더 강력한 모습을 보였고 레드삭스가 밤비노의 저주를 깨고 우승을 두 번이나 하는데에 있어 일등공신이었다.

물론, 경기장 내외에서 여러 기행을 보이기는 했고 수비력에서 문제점이 노출되기는 했지만 그걸 덮어주는 타격이 있었다. 더구나 술과 담배를 하지 않고 매일 6시에 일어나 운동을 하는 등 눈에 보이지 않게 철저한 자기관리는 타인의 귀감이 되었다.

그러나 약물검사에서 2번이나 걸리면서 의미 없는 일이 되어버렸다.

다만 약물과는 별개로, 밤비노의 저주를 깨는 것을 포함해 보스턴의 00년대 2번의 우승에 크게 기여했기 때문에 보스턴팬들에게 아직도 사랑받는 선수다. 시간이 흐른 후 보스턴의 우승을 기념하는 의미로 팬웨이 파크에 우승 주역인 매니 라미레즈, 노마 가르시아파라, 페드로 마르티네즈, 쟈니 데이먼 등을 초대했는데, 이때 매니 라미레즈가 던진 공을 쟈니 데이먼이 가로채기했다(..)

여담으로 헬멧이 매우 꼬질꼬질하다. 보통 야구팬들에게도 매니 헬멧으로 유명한데, 투수가 로진가루를 만지듯 타자들도 미끄럼방지를 위해 손에 송진을 묻히는데 보통 헬멧 정수리쯤 발라놓고 손으로 문질문질하는 식으로 묻힌다. 이게 시간이 지나면 송진으로 헬멧이 녹슬고 더러워지는 것. 다만 보통 다량 묻히진 않는데다 시합 끝나면 세척을 해서 KBO의 김주찬이나 김태균 수준의 녹에서 끝나곤 하는데 매니는 액체송진을 듬뿍 묻히는데다 시합후 세척도 안해서(...) 녹만 스는 정도가 아닌 아예 송진이 굳어 우툴두툴해진 헬멧을 쓴다. 첫 사진의 헬멧을 유심히 보자. 여튼 매니의 아이덴티티 중 하나.[15]

11. 연도별 기록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1993 CLE 22 55 9 1 0 2 5 5 0 2 8 .170 .200 .302 .502 -0.6
1994 91 336 78 22 0 17 51 60 4 42 72 .269 .357 .521 .878 1.5
1995 137 571 149 26 1 31 85 107 6 75 112 .308 .402 .558 .960 3.2
1996 152 647 170 45 3 33 95 112 8 85 104 .309 .399 .582 .981 4.3
1997 150 651 184 40 0 26 99 88 2 79 115 .328 .415 .538 .953 4.6
1998 150 664 168 35 2 45 108 145 5 76 121 .299 .377 .599 .976 5.4
1999 147 640 174 34 3 44 131 165 2 96 131 .333 .442 .663 1.105 7.5
2000 118 532 154 34 2 38 92 122 1 86 117 .351 .457 .697 1.154 4.8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01 BOS 142 620 162 33 1 41 93 125 0 81 147 .306 .405 .609 1.014 5.2
2002 120 518 152 31 0 33 84 107 0 73 85 .349 .450 .647 1.097 5.3
2003 154 679 185 36 1 37 117 104 3 97 94 .325 .427 .587 1.014 5.8
2004 152 663 175 44 0 43 108 130 2 82 124 .308 .397 .613 1.009 3.3
2005 152 650 162 30 1 45 112 144 1 80 119 .292 .388 .594 .982 2.9
2006 130 558 144 27 1 35 79 102 0 100 102 .321 .439 .619 1.058 2.9
2007 133 569 143 33 1 20 84 88 0 71 92 .296 .388 .493 .881 1.2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08 BOS/LAD 153 654 183 36 1 37 102 121 3 87 124 .332 .430 .601 1.031 5.9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09 LAD 104 431 102 24 1 19 62 63 0 71 81 .290 .418 .531 .949 2.5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10 LAD/CHW 90 325 79 16 0 9 38 42 1 46 61 .298 .409 .460 .870 1.1
연도 소속팀 경기 타석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득점 타점 도루 볼넷 삼진 타율 출루율 장타율 OPS fWAR
2011 TB 5 17 1 0 0 0 0 1 0 0 4 .059 .059 .059 .118 -0.3
MLB 통산
(19시즌)
2302 9774 2574 547 20 555 1544 1881 38 1329 1813 .312 .411 .585 .996 66.3


[1] 이 당시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타선에는 50홈런, 140타점을 기록한 알버트 벨, 3000안타 - 500홈런을 기록한 에디 머레이, 공포의 8번타자, 나중엔 중심타선으로 이동했지만짐 토미, 전성기로 달려가던 오마 비스켈, 최고의 테이블 세터로 뽑히는 케니 로프턴, 백업 포수로 나서면서도 10개의 홈런을 때린 샌디 알로마등이 포진한 살인타선이었다. 나중에는 최고의 공수겸장 2루수이자 샌디의 동생인 로베르토 알로마가 합류해 비즈켈과 전설적인 '미국과 캐나다 국경을 커버하는' 키스톤 콤비를 구축하기도.[2] 단일시즌 13위에 해당하는 기록이지만 12위까지는 모두 1938년까지 나온 기록으로써, 즉 1939년 이후 1위이다.[3] 그 당시 핵 윌슨의 단일시즌 타점 기록을 깰 선수로 매니와 후안 곤잘레스를 주목했다.[4] 우익수 출신이었기 때문에 어깨는 강했다. 하지만 집중력이 많이 부족해 항상 큰 실수를 하였다.[5] 그래서 입단 초기에는 지명타자로 많이 뛰었지만 1루수비도 못하는 흑돼지가 온 이후로는 어쩔수없이 좌익수로 붙박이 출장을 해야 했다.[6] 대신 레드삭스가 매니 대신 얻어온 좌익수는 제이슨 베이.[7] 다저스 이적 후 타율 .396 17홈런 53타점 ops 1.232 (...) 참고로 불과 53경기동안의 기록이다[8] 이후 7월에 뉴욕 타임즈에서 보도한 바에 따르면 2003년 비공개 도핑테스트에서 걸린 104명의 메이저리거 중 매니의 이름도 올라 있었다고 한다.[9] 혹시 심정수를 약쟁이로 오해하는 사람이 있을까봐 첨언하면, 그의 몰락은 지나친 벌크업의 후유증&라식 수술로 인한 것이며 그가 현대시절 2년간 100홈런을 칠 때 약물을 했다는 증거로 제시되는 사진도 사실은 베어스 시절에 찍힌 사진이다. 결정적으로 그는 신인으로서 잠실구장을 쓰면서도 홈런 3위에 오른 진퉁 거포였다. 삼성시절만 해도 두시즌은 날려먹었지만 한 시즌은 홈런왕, 한 시즌은 홈런 2위에 오르며 파워는 여전하다는 점을 과시했다.[10] 2012년 시즌 후 싱농 불스를 인수하여 구성한 팀이다.[11] 특히 바에즈의 경우에는 그의 가족들과도 친해질 정도로 애착을 뒀다고 한다.[12] 하지만 연봉이 매우 높았기 때문에 클레임을 거는 팀이 없었다.[13] 펜웨이 파크는 아직도 수동으로 점수판을 돌린다.[14] 자세히 보면 손이 마주치진 않았다...[15] KBO에선 두산 시절 최준석과 한화의 김태균이 우둘투둘할 정도의 더러운 헬멧을 썼는데 롯데로 이적 한 후로는 깨끗한 헬멧을 쓰고 김태균도 헬멧의 팀컬러거 주황색에서 검정색으로 바뀐이후 더이상 헬멧에 송진을 덕지덕지 발라놓는 행위를 하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