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브래들리의 수상 이력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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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1D428A> 뉴욕 닉스 No. 24 | |
<colcolor=#fff> 윌리엄 워런 브래들리 William Warren Bradley | |
출생 | 1943년 7월 28일 ([age(1943-07-28)]세) |
미주리주 크리스털 시티 | |
국적 | [[미국| ]][[틀:국기| ]][[틀:국기| ]] |
출신학교 | 프린스턴 대학교 |
신장 | 196cm (6' 5") |
체중 | 92kg (205 lbs) |
포지션 | 스몰 포워드 |
드래프트 | 1965 NBA 드래프트 1라운드 2순위 뉴욕 닉스 지명 |
소속 팀 | 올림피아 밀라노 (1965~1966) 뉴욕 닉스 (1967~1977) |
등번호 | 24번 - 뉴욕 |
정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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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세인트루이스의 인근 도시 크리스털시 출신의 NBA 선수이며, 뉴저지주 상원의원에 당선되면서 정치인이 된 NBA 선수로도 유명하다. 위키피디아나 각종 저서에 있는 그의 커리어를 살펴봐도 믿기 어려운, 어찌보면 무지막지한 먼치킨인 인물.[1]2. 농구선수 커리어
프린스턴 대학에 입학하고 3년 연속 전미 우수선수로 선정되는 등 이름을 날린 브래들리는 1964년 도쿄 올림픽 때 미국 농구국가대표 소속으로 금메달을 획득하기도 했다.우등생이었던 브래들리는 1964년 워싱턴 국회의사당에서 인턴으로 일을 하기도 했으며, 당시의 흑백평등 운동의 흐름을 정계의 가운데에서 목격하기도 했다.
브래들리는 1965년 드래프트에서 뉴욕 닉스에 지명받았지만, 로즈 장학금을 받고 옥스퍼드로 2년 유학을 갈 수 있게 되면서 프로데뷔를 2년 연기했고, 옥스퍼드에서 유학하는 도중 밀라노 농구팀에서 뛰면서 1966년 유로리그에서 우승하기도 했다.
유학을 마치고 1967년 뉴욕 닉스에서 데뷔한 브래들리는 10년 동안 뛰면서 70년대 닉스의 황금기 멤버들과 함께 2번의 우승을 거두며 10년의 프로생활을 마쳤다.
3. 정치가 커리어
민주당 2000년 대통령 선거 경선 후보 |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min-height: 26px;"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 -6px -1px -11px;" | <rowcolor=#0044C9,#0044C9> 정당 | 이름 | 비고 | |
민주당 | 앨 고어 | 당선1 | ||
민주당 | 빌 브래들리 | |||
1 현직 미국 부통령 | ||||
1972 · 1976 · 1980 · 1984 · 1988 · 1992 · 1996 · 2000 · 2004 · 2008 · 2012 · 2016 · 2020 · 2024 |
은퇴 후, 정치가가 된 브래들리는 1978년 뉴저지에서 상원의원에 당선되었고 84년,90년에도 재선에 성공하여 1997년까지 재직했다. 2000년 민주당 대선 경선에서 민주당 내 온건,보수파인 앨 고어 부통령에 대해 진보적인 대안으로 출마했지만 부진한 지지율 때문에 중도 사퇴했다. 그의 정치적 사상은 진보주의에 가까웠지만 세금에 대해서는 중도적인 모습을 보였다.
낙선 이후 브래들리는 정계를 떠났지만 2008년 오바마에 대한 지지를 표명하기도 했고, 오바마 내각에서 후보로 거론되는 등 여전히 영향력이 있었다. 현재는 스타벅스 임원이라고 한다. 여담으로 브래들리의 상원의원 선거활동을 절친했던 필 잭슨이 도왔다고 한다.[2]
3.1. 선거 이력
<rowcolor=#fff> 연도 | 선거 종류 | 선거구 | 소속 정당 | 득표수 (득표율) | 당선 여부 | 비고 |
1978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뉴저지 | | 1,082,960 (55.32%) | 당선 (1위) | 초선 |
1984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1,986,644 (64.16%) | 재선 | |||
1990 | 미국 연방상원의원 선거 | 977,810 (50.44%) | 3선 |
4. 관련 문서
[1] 대선 후보가 될 뻔했고 오랜 기간 상당한 영향력을 발휘했으니 이 정도면 정치 커리어만 놓고 봐도 꽤나 거물이다. 농구는 젊은 시절 잠깐 종사한 정도 수준인데 그 커리어로 명예의 전당에 올랐다. 사실 NBA커리어만 놓고보면 레전드라고 하긴 모자란데, 브래들리는 대학선수로서도 파이널 4 MOP, 올해의 선수상 등 레전드 커리어를 쌓았기에 농구 명예의 전당에 오른 것이다.[2] 필 잭슨은 당시 70년대 뉴욕 닉스의 우승 멤버였고 브래들리와는 친한 친구였다. 30년 후 닉스를 제대로 말아먹고 쫒겨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