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8-22 02:37:44

프레드 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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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린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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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975 MLB 올스타전 로고.gif파일:1976 MLB 올스타전 로고.gif파일:1977 MLB 올스타전 로고.gif파일:1978 MLB 올스타전 로고.gif파일:1979 MLB 올스타전 로고.gif파일:1980 MLB 올스타전 로고.gif파일:1981 MLB 올스타전 로고.gif파일:1982 MLB 올스타전 로고.png파일:1983 MLB 올스타전 로고.gif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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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 1982 1983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7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제프 버로우스
(텍사스 레인저스)
프레드 린
(보스턴 레드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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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양키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7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신인왕
마이크 하그로브
(텍사스 레인저스)
프레드 린
(보스턴 레드삭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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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디트로이트 타이거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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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 레즈)
프레드 린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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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1690810636139.jpg
프레드릭 마이클 린
Fredric Michael Lynn
출생 1952년 1월 3일 ([age(1952-01-03)]세)
일리노이 주 시카고
국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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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력 엘 몬테 고등학교 - 서던 캘리포니아 대학교
신체 185cm / 83kg
포지션 외야수
투타 좌투좌타
프로 입단 1970년 드래프트 3라운드 (NYY)
1973년 드래프트 2라운드 (BOS)
소속팀 보스턴 레드삭스 (1974~1980)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81~1984)

볼티모어 오리올스 (1985~1988)
디트로이트 타이거즈 (1988~1989)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0)
1. 개요2. 선수 경력

1. 개요

MLB 최초의 신인왕과 MVP를 같은 시즌에 수상한 인물이다.

2. 선수 경력

루키 시즌은 15게임밖에 출전하지 않았기에, 신인 자격을 상실하지 않았다.

풀타임 첫해인 1975년에 23살의 나이로 타 .331, 출 .401, 장 .566, OPS .967, wRC+ 161, fWAR 7.1, bWAR 7.4을 찍고, 만장일치에서 1표 모자른 신인왕 및 MVP를 수상하였다.

커리어 하이 시즌은 1979년으로서, 27살의 나이로 타 .333, 출 .423, 장 .637, OPS 1.059, wRC+ 174, fWAR 8.6, bWAR 8.8을 찍었다.

1979년의 MVP는 양쪽에서 모두 논란거리였다. 그 해 수상자는 AL에선 돈 베일러, NL에선 키스 에르난데스윌리 스타젤이 공동 수상했는데 굉장히 어이없는 성적이었다. 그 해 fWAR 순위에서 양 리그 1위는 NL에서 J.R. 리차드(8.8), AL에서는 린(8.6)이었다. 하지만 리차드는 NL 19위에 그쳤고, 린은 AL 4위에 그쳤다. 더 놀라운 건 NL MVP에 오른 윌리 스타젤은 적어도 그 해엔 NL fWAR 타자 부분에서만 따져도 35위에 머문 선수였다는 것. 무엇보다도 MVP급과는 거리가 먼 2.7 fWAR를 찍었다. 심지어 규정타석도 기록하지 못했던 선수였다(480타석). 실제로 빌 제임스는 가장 멍청한 1970년대 MVP 선정을 윌리 스타젤의 1979년이라고 언급했을 정도였다. 돈 베일러 또한 AL fWAR 타자 부분 25위에 그친 타자이다. 그런데도 두 선수가 MVP를 수상한 이유는 딱 하나. 바로 팀 성적이었다. 포스트 시즌에 진출했었기 때문에[1] 이 상을 수상했다. 1947년의 AL MVP 데자뷰 그 이상 그 이하도 아니었다.[2] 그나마 논란에서 자유로운 선수는 키스 에르난데스였다. NL 전체 2위의 fWAR를 기록했기 때문이다. 2016년의 MLB 기자들이라면 아마 린, 브렛, 리차드, 에르난데즈 중 2명을 골랐을 것이다.#

그 외에는 평범한 성적을 기록, 명전에도 들어가지 못하였다. 1996년에 첫 후보로 올라 5.5%의 득표율을 기록했고 다음 해에 4.7%를 기록하는데 그치며 바로 탈락했다. 사실 초년병 이후 성적이 다소 평범했던 건 무릎 수술만 3차례 받은 걸 포함해 발가락, 허리, 햄스트링 부상 등 엄청난 유리몸이었기 때문.


[1] 특히 스타젤은 젊은 선수들이 많던 피츠버그 팀 분위기를 주도하는 아버지와도 같은 존재였고 인품에 대한 평판도 훌륭한 베테랑이었기에 성적 이상으로 주목을 받았다.[2] 적어도 그 해는 조 디마지오가 받아서는 절대 안 되는 상황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