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09 06:12:10

프랭크 로빈슨

프랭크 로빈슨의 수상 이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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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시내티 레즈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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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레드 허친슨 자니 벤치 조 모건 스파키 앤더슨 배리 라킨 데이브 콘셉시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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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로즈 테드 클루스제프스키 프랭크 로빈슨 토니 페레즈 재키 로빈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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볼티모어 오리올스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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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리블랜드 인디언스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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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_logo.png 명예의 전당 헌액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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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랭크 로빈슨
헌액 연도 1982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89.1% (1회)

1956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신인왕
빌 버든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프랭크 로빈슨
(신시내티 레즈
)
잭 샌포드
(필라델피아 필리스)
1961년 메이저리그 내셔널리그 MVP
딕 그로트
(피츠버그 파이어리츠)
프랭크 로빈슨
(신시내티 레즈
)
모리 윌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66년 메이저리그 아메리칸리그 MVP
조일로 베르사예스
(미네소타 트윈스)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
칼 야스트렘스키
(보스턴 레드삭스)
1966년 월드 시리즈 MVP
샌디 쿠팩스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밥 깁슨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1971년 메이저리그 올스타전 MVP
칼 야스트렘스키
(보스턴 레드삭스)
프랭크 로빈슨
(볼티모어 오리올스)
조 모건
(신시내티 레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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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4022500e-7cfe-4ec1-83e8-c022ab9050b9-XXX_7995.jpg
신시내티 레즈 No. 20 볼티모어 오리올스 No. 20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No. 20
프랭크 로빈슨
(Frank Robinson)
출생 1935년 8월 31일
사망 2019년 2월 7일
국적 파일:미국 국기.png 미국
출신지 텍사스 주 보몬트
신체 185cm / 88kg
포지션 외야수, 1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입단 1953년 신시내티 레즈 자유계약
소속팀 신시내티 레즈 (1956~1965)
볼티모어 오리올스 (1966~1971)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1972)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1973~1974)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74~1976)
수상 14× All-Star (1956~1957, 1959~1959(2차), 1961~1962, 1965~1967, 1969~1971, 1974)
2× World Series champion (1966, 1970)
NL MVP (1961)
AL MVP (1966)
World Series MVP (1966)
NL Rookie of the Year (1956)
NL Gold Glove Award (1958)
AL batting champion (1966)
AL home run leader (1966)
AL RBI leader (1966)
기록 Triple Crown (1966)
감독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1975~1977)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1981~1984)
볼티모어 오리올스 (1988~1991)
몬트리올 엑스포스 / 워싱턴 내셔널스 (2002~2006)

1. 개요2. 선수 시절3. 명예의 전당 헌액
3.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4. 지도자 경력5. 사망6. 이모저모

1. 개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역사상 유일한 양대리그 MVP 수상자[1]이자 신인왕, 정규 시즌 MVP, 올스타 게임 MVP, 월드 시리즈 MVP를 모두 수상한 유일한 선수. 1966년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메이저리그 역사상 가장 위대한 타자 중 한 명. 선수로서는 신시내티 레즈볼티모어 오리올스에서 모두 존경받으며 영구결번된 레전드.

한국 야구팬들에게는 김선우에게 영 좋지 않은 대접을 한 것 때문에 그에 대한 인상이 좋지 않지만 메이저리그 최초의 흑인 감독이기 때문에 선수로서도 지도자로서도 메이저리그 역사에 남을 인물이기도 하다. 선수도 감독도 모두 로빈슨이 최초이다.

통산 성적은 21시즌 동안 타율 .294, 출루율 .389, 장타율 .537, OPS .926, 순장타율 .243, 586홈런, 2,943안타, BB/K 0.93, wRC+ 153, 1829타점을 기록했다. 프랭크 로빈슨의 통산 성적

2. 선수 시절

2.1. 신시내티 레즈 시절

신시내티에서 대학을 나와 자유계약으로 레즈에 입단한 로빈슨은 1956년 20세의 나이에 레즈의 외야 한 자리를 차지하였다. 그리고 .290 .379 .558 38홈런 83타점으로 역대 루키 최다 홈런 기록 타이, 그리고 이 당시까지 내셔널 리그 최다 홈런 기록을 이룬다.[2] 당연히 그 해 내셔널리그 신인왕은 로빈슨의 수상. 이후 레즈를 대표하는 간판선수가 되면서 The Judge(심판자)[3]라는 위엄있는 별명을 얻게 된다.

1961년에는 .323 .404 .611 37홈런 124타점에 고의사구 23개[4]라는 대단한 퍼포먼스를 보이고 팀도 월드 시리즈에 나가자 생애 첫 MVP를 수상한다. 그러나 미키 맨틀로저 매리스가 홈런 레이스를 펼친 시즌이라 딱히 관심을 끌지는 못했고 팀도 월드 시리즈에서 M&M 듀오의 뉴욕 양키스에게 패배했다. 1962년에는 .342 .421 .624 39홈런 136타점이라는 MVP 시즌보다 더한 성적을 찍지만 올타임 싱글시즌 도루 기록에 도전 중이던 모리 윌스에게 밀려 MVP를 놓쳤다.

그러나 그는 팀에 버림받고 말았다. 1963년부터 3년간 MVP급이라기에는 2% 부족한 성적을 거둔 것도 있었지만 프런트에게 고분고분하지 않은 성격이었던 로빈슨이 아니꼬웠던 빌 드윗 단장[5]볼티모어 오리올스로 그를 트레이드한 것이다. 지금 돌아보면 이 딜은 희대의 조공딜이 되어버렸고, 드윗 단장은 곧 해고되었다.

2.2. 볼티모어 오리올스 시절과 이후

1966년 볼티모어 오리올스로 트레이드 된 그는 다시금 분노의 맹타를 휘둘렀다. 그 결과 .316 .410 .637 49홈런 122타점으로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6]했고, 역대 최초의 양대 리그 MVP 수상이라는 금자탑을 이룩해 쿠퍼스타운 행을 예약한다. 더불어 그 해 월드 시리즈에서도 샌디 코팩스돈 드라이스데일로스앤젤레스 다저스를 스윕하며 우승을 차지하고 자신은 월드 시리즈 MVP를 수상, 볼티모어의 본격적인 리즈시절을 연다.

1967년에도 부상으로 33경기를 결장함에도 트리플 크라운급 페이스를 보인 로빈슨은 1970년에는 자신을 버린 신시내티를 꺾고 볼티모어가 우승을 차지하는데 일등공신이 되었으며 1971년에는 올스타 게임 MVP도 수상하면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로 트레이드되기 전까지 오리올스에서 6년간 연평균 .300 .401 .543 30홈런 91타점을 기록하고 두개의 우승 반지를 얻는 리즈시절을 보냈다. [7] 이에 감복한 구단은 은퇴하기도 전에 팀 최초의 영구결번을 선사한다.

이후 로빈슨은 다저스와 캘리포니아 에인절스를 거쳤고, 1975년부터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선수 겸 감독으로 뛰면서 역사상 최초의 흑인 감독에 등극했다.

그러나 짐 페리, 게일로드 페리 형제와 싸우면서 이들을 트레이드하게 되는 촌극을 빚기도 했고 타격 성적이 부진할 때는 자신의 성적을 위해 직권남용으로 출전한다는 억지스러운 욕을 듣기도 했다. 결국 1976년 3000안타 - 600홈런이라는 윌리 메이스나 달성했을 대기록을 눈앞에 두고 2943안타 - 586홈런에서 선수로서 은퇴를 선언[8]한 그는 감독 일에 집중하게 되지만 1977년 인디언스로부터 해고 처분을 받게 된다.

보다 자세한 이야기를 보고 싶다면 이 글을 참조하기를 바란다. [레전드 스토리] <49> '고독한 싸움꾼' 프랭크 로빈슨

3. 명예의 전당 헌액

1982년 로빈슨은 명예의 전당 첫 투표 대상자가 되어 89.16%의 득표율을 기록하며 한번만에 입성한다. 선수시절의 명성에 비하면 득표율이 좀 낮아보이는데, 하필이면 메이저리그 통산 최다 홈런에 빛나는 행크 애런이 그 해에 같이 투표 대상자가 되는 바람에 관심을 좀 나눠가지긴 했다. 명예의 전당에는 신시내티로부터 버림받은 기억 때문인지 볼티모어 오리올스 모자를 쓰고 갔다.[9]

3.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그레이잉크HOF 모니터HOF 스탠다드
프랭크 로빈슨 35 320 222 66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Right Field (5th)
career WAR7yr-peak WARJAWS
프랭크 로빈슨 107.2 52.9 80.0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73.2 43.0 58.1

4. 지도자 경력

이후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감독과 볼티모어 오리올스 코치로 일하다 1988년 오리올스의 감독직을 맡게 된 그는 첫 스타트부터 감독 부임 전 6연패 뒤 부임 후 15연패, 도합 21연패라는 영 좋지 않은 기록을 세우며 출발하지만, 이듬해에는 54승 팀을 잘 정비하여 87승 팀으로 변모시킨 공로로 올해의 감독상까지 수상한다.

하지만 지도자 경력이 계속될수록, 점차 성적이 나빠졌다. 몬트리올 엑스포스 감독 시절에는 골프나 치러 다닌다고 까이기도 했고 선수 기용에 있어 스탯에 대해 너무 무신경하다는 비판을 듣기도 했다. 선수들이 집단으로 항명하는 불상사를 빚어졌으며, 국내 야구팬들에게는 김선우의 메이저리그 성적을 망친 원흉이라는 원성의 대상이 되었다.[10]

결국 2006년을 끝으로 워싱턴 내셔널스 감독직에서 물러난 그는 다시 감독직으로 복귀하지 못하고 은퇴하였다.

2003년 그레이트 아메리칸 볼 파크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고 2012년에는 오리올 파크 앳 캠든 야즈의 개장 20주년 행사에서 그의 동상이 세워지기도 했다.

2017년에는 프로그레시브 필드 앞에 그의 동상이 세워졌으며 그의 등번호 20번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에서 영구결번이 되었다. 다만 인디언스에서의 결번은 선수나 감독으로서의 활약상 때문에 준 것이 아닌 역사상 최초의 흑인 빅리그 감독이라는 상징성이 반영된 영구결번 조치였기 때문에 설왕설래가 조금 있긴 했다. 피부색이라는 편견을 제외하고 활약상으로 줘야 할 영구결번을 딱히 인디언스에서는 미미한 활약밖에 보이지 못한 로빈슨에게 흑인 감독이라는 인종적인 이유로 영결을 주는 것은 오히려 역차별 아니냐는 논지. 그래도 사상 최초의 흑인 감독이라는 사실은 역사적인 의미가 있어서 영구결번이 되었고 여튼간에 이로써 놀란 라이언에 이어서 두 번째로 3구단 영구결번 선수가 되었다.

5. 사망

2019년 2월 7일 지병인 골수암으로 향년 83세에 세상을 떠났다.

롭 맨프레드 메이저리그 커미셔너는 “메이저리그는 60년 이상 우리의 친구이자 동료이며 전설이었던 로빈슨 전 감독을 잃었다는 사실에 깊은 슬픔을 느낀다”면서 “메이저리그를 대표해 로빈슨 전 감독의 가족과 그의 팬들에게 깊은 애도를 표한다”고 밝혔다. 피터 앙젤로스 볼티모어 구단주는 “로빈슨은 볼티모어 오리올스 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 중 한 명이었고, 야구 역사상 최고의 선수였다”고 강조했다.#

6. 이모저모

  • 오클랜드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시절 NBA반지의 제왕 빌 러셀과 함께 농구팀에서 뛰었다고 한다. 한편 빌 러셀 역시 NBA에서 최초의 흑인 감독으로 기록되었다.

[1]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에서 3차례 MVP를 먹고 10년 계약으로 로스앤젤레스 에인절스 오브 애너하임으로 이적한 알버트 푸홀스는 노쇠화로 인해 성적이 폭락하고 있고, 조이 보토라이언 브론 같은 MVP급 강타자들이 대부분 장기계약으로 한 팀에서 계속 뛰는 추세임을 고려하면, 양대리그 MVP의 기록은 먼 미래에나 다시 나올지도 모른다. 2010년대 후반 들어 MVP를 지낸 타자들 중 전성기 수준 기량을 유지하면서 다른 리그 팀으로 옮길 가능성이 있는 선수는 사실상 없다. 유력 후보였던 하퍼와 트라웃은 각각 같은 리그 팀과 FA계약을 맺거나 팀에 잔류하였다.[2] 1987년 마크 맥과이어가 49홈런을 기록하면서 이 기록을 뛰어넘는다. 내셔널 리그 기록은 2017년에 코디 벨린저가 경신.[3] 그리고 60여년 뒤 또 다른 Judge가 뉴욕에 나타나 리그를 평정하기 시작했다.[4] 4년 동안 23-16-20-20개로 리그에서 고의사구 1위를 먹는다.[5] 2019년 현재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구단주 빌 드윗 Jr.의 아버지이다.[6] 이듬해 칼 야스트렘스키가 타격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 뒤 45년이 지나서야 미겔 카브레라가 트리플 크라운을 달성한다.[7] 볼티모어 오리올스는 월드 시리즈에 7회 진출했고 3회 우승했다. 그중 월드 시리즈 4회 진출과 2회 우승이 로빈슨과 함께 한 6년 사이에 나왔다.[8] 은퇴 시점에서 행크 애런 - 베이브 루스 - 윌리 메이스에 이은 역대 홈런 4위 기록이었다. 2012년 시즌 종료 시점에서는 약쟁이들 때문에 순위가 많이 밀려서 역대 9위를 기록 중.[9] 1998년에야 레즈는 로빈슨의 20번을 영구결번으로 지정한다.[10] 어쩌다 한번 김선우를 칭찬하면 대서특필될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