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5 19:17:18

리키 헨더슨

리키 헨더슨의 수상 경력 / 보유 기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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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1989 199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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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구결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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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o.9 No.24 No.27 No.34
레지 잭슨 리키 헨더슨 캣피시 헌터 롤리 핑거스
No.34 No.42 No.43 파일: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로고.svg
데이브 스튜어트 재키 로빈슨 데니스 에커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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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예의 전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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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8년 헌액된 인물
<rowcolor=#003831> 등번호 이름 포지션 활동 기간
43 데니스 에커슬리 투수 1987~1995
32,38, 34 롤리 핑거스 투수 1968~1976
39, 35, 22, 24 리키 헨더슨 좌익수 1979~1984
1989~1993
1994~1995
1998
27 캣피시 헌터 투수 1965~1974
9, 44 레지 잭슨 우익수 1967~1975
1987
34, 35 데이브 스튜어트 투수 1986~1992
1995
- 찰리 핀리 구단주
단장
1960~1981
2019년 헌액된 인물
<rowcolor=#003831> 등번호 이름 포지션 활동 기간
10, 11, 22, 29, 42 토니 라 루사 내야수
감독
1963
1968~1971
1986~1995
14, 17, 21, 28, 35 바이다 블루 투수 1969~1977
19 버트 캄파네리스 유격수 1964~1976
25 마크 맥과이어 1루수 1986~1997
- 월터 A. 하스 주니어 구단주 1981~1995
2021년 헌액된 인물
<rowcolor=#003831> 등번호 이름 포지션 활동 기간
- 코니 맥 감독
구단주
1901~1950
1901~1954
- 에디 콜린스 2루수 1906~1914
1927~1930
- 홈런 베이커 3루수 1908~1914
- 치프 벤더 투수 1903~1914
2 미키 코크런 포수 1925~1933
2, 3 지미 폭스 1루수 1925~1935
10 레프티 그로브 투수 1925~1933
- 에디 플랭크 투수 1901~1914
6, 7, 28, 32 알 시몬스 좌익수
코치
1924~1932
1940~1941, 1944
1940~1945
- 루브 워델 투수 1902~1907
2022년 헌액된 인물
<rowcolor=#003831> 등번호 이름 포지션 활동 기간
30, 3 에릭 차베스 3루수 1998~2010
6 살 반도 3루수 1966~1976
15, 45, 8, 36, 26 조 루디 좌익수
1루수
1967~1976
1982
10 레이 포시 포수
해설자
1973~1975
1986~2021
- 키스 리프먼 팜 디렉터 1971~
- 스티브 부치니크 클럽하우스 매니저 1966~
2023년 헌액된 인물
<rowcolor=#003831> 등번호 이름 포지션 활동 기간
16 제이슨 지암비 좌익수
1루수
1995~2001
2009
26, 7, 4 밥 존슨 좌익수 1933~1942
5, 4 카니 랜스포드 3루수 1983~1992
24, 38, 18 진 테니스 포수
1루수
1969~1976
- 로이 스틸 퍼블릭 어드레스 아나운서 1968~2005
2007~2008
}}}}}}}}} ||

파일:MLB 로고.svg 명예의 전당 헌액자
파일:external/baseballhall.org/Henderson%2C%20Rickey%20plaque%20o_1_0.png
리키 헨더슨
헌액 연도 2009년
헌액 방식 기자단(BBWAA) 투표
투표 결과 94.8% (1회)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MVP
로빈 욘트
(밀워키 브루어스)
리키 헨더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칼 립켄 주니어
(볼티모어 오리올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89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데니스 에커슬리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리키 헨더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데이브 스튜어트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8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윌리 윌슨
(캔자스시티 로열스)
알 올리버
(텍사스 레인저스)
벤 오글리비
(밀워키 브루어스)
리키 헨더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데이브 윈필드
(뉴욕 양키스)
드와이트 에반스
(보스턴 레드삭스)
레지 잭슨
(캘리포니아 에인절스)
데이브 윈필드
(뉴욕 양키스)
윌리 윌슨
(캔자스시티 로열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85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짐 라이스
(보스턴 레드삭스)
토니 아르마스
(보스턴 레드삭스)
데이브 윈필드
(뉴욕 양키스)
리키 헨더슨
(뉴욕 양키스)

데이브 윈필드
(뉴욕 양키스)
조지 벨
(토론토 블루제이스)
커비 퍼켓
(미네소타 트윈스)
조지 벨
(토론토 블루제이스)
제시 바필드
(토론토 블루제이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90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커비 퍼켓
(미네소타 트윈스)
로빈 욘트
(밀워키 브루어스)
루벤 시에라
(텍사스 레인저스)
리키 헨더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호세 칸세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엘리스 버크스
(보스턴 레드삭스)
조 카터
(토론토 블루제이스)
호세 칸세코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켄 그리피 주니어
(시애틀 매리너스)

파일:MLB 아메리칸 리그 로고.svg 1981년 메이저 리그 아메리칸 리그 외야수 부문 골드 글러브
윌리 윌슨
(캔자스시티 로열스)
드웨인 머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프레드 린
(보스턴 레드삭스)
리키 헨더슨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드웨인 머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드와이트 에반스
(보스턴 레드삭스)
데이브 윈필드
(뉴욕 양키스)
드웨인 머피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드와이트 에반스
(보스턴 레드삭스)

파일:MLB 로고.svg 2001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커미셔너 역사적 공로상
칼 립켄 주니어
마크 맥과이어
새미 소사
(1998)
리키 헨더슨
배리 본즈
토니 그윈
시애틀 매리너스
로저 클레멘스
(2004)

보유 기록
통산 득점 2295점
통산 도루 1406개
통산 도루실패 335개
최다 100도루 시즌 3회[1]
}}} ||
파일:Rickey-Henderson.jpg
<colbgcolor=#003831><colcolor=#ffffff>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No. 24
리키 넬슨 헨리 헨더슨
Rickey Nelson Henley Henderson
출생 1958년 12월 25일 ([age(1958-12-25)]세)
국적
[[미국|]][[틀:국기|]][[틀:국기|]]
출신지 일리노이 주 시카고
신체 177cm / 84kg
포지션 좌익수
투타 좌투우타
프로입단 1976년 드래프트 4라운드 전체 96번 (OAK)
소속팀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79~1984)
뉴욕 양키스 (1985~1989)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89~1993)
토론토 블루제이스 (1993)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4~1995)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1996~1997)
애너하임 에인절스 (1997)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1998)
뉴욕 메츠 (1999~2000)
시애틀 매리너스 (2000)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2001)
보스턴 레드삭스 (2002)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2003)

1. 개요2. 주요 기록3. 플레이 스타일4. 평가5. 명예의 전당 입성
5.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6. 기행 및 일화7. 연도별 성적8.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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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좌완 투수 상대로 도루하는 게 더 쉽다. 눈빛으로 제압할 수 있으니까."[2]
"헨더슨은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다"라는 말은 '하늘은 파랗다'나 '불은 뜨겁다'는 명제와 같다."
ㅡ 역대 랭킹에서 헨더슨을 스탠 뮤지얼루 게릭보다 더 높은 순위에 올린 '토탈 베이스볼'의 설명
Man of Steal
오클랜드 애슬레틱스 소속 미국의 전 야구 선수. 현역 시절 1,406개의 최다 도루 기록으로 유명한 리드오프였다.

2. 주요 기록

그의 경이적인 기록들

통산 성적은 득점(2,295점) 역대 1위, 도루(1,406개)[3] 역대 1위,[4][5] 통산 볼넷(2190개) 역대 2위,[6] 통산 안타(3055개) 역대 21위, 타율 0.279, 출루율(0.401) 역대 56위, 장타율 0.419, OPS .820, 순장타율 .140, BB/K 1.29, wRC+ 132이며, 단일시즌 역대 2위인 130도루(1982)[7] 기록을 가지고 있다. 도루왕은 무려 12회. 첫 도루왕은 2년차이던 1980년에, 마지막 도루왕은 20년차인 1998년에 기록했다. 2년차부터 7년 연속 도루왕, 1년 쉬고 4년 연속 도루왕으로 11번을 채우고, 6년 쉬고 마지막 도루왕을 달성했다. 39세 도루왕은 당연히 역대 최고령이다.

[kakaotv(394345790)]게다가 저런 전설적인 출루, 도루능력을 가진 선수 치고는 한방도 있는 선수로 통산 297홈런을 기록했다. 20홈런을 4차례나 기록했으며 3-4-5 시즌도 두 번 기록했다. 거기에 메이저리그를 대표할만한 거포들이 기록할 만한 OPS 1.0을 넘긴 시즌도 있고(1990년 시즌), 0.9를 넘긴 것만 해도 3번이다. 또한 통산 리드오프 홈런 갯수에서 ML 1위(81개)를 기록하고 있는 점을 고려하면 리드오프의 고질적인 약점인 장타 생산력 역시 매우 뛰어나다고 볼 수 있다. 특히나 70년도부터 92년도까지의 메이저리그는 전형적인 투고타저의 시대로, OPS 0.8만 넘겨도 슬러거로써의 가치를 인정받는 정도인데 이 선수의 경우 그 시대 동안에 0.8이하를 기록한 적이 단 한번[8]밖에 없다는 점은 가히 놀라울 지경.1990년 AL MVP, 1989년 ALCS MVP, 올스타 10회, 도루왕 12회(1980~1986,[9] 1988~1991, 1998[10])의 화려한 성적을 남긴 1번 타자의 상징적인 인물이다. 그나마도 출루율이나 장타율 등의 비율 스탯은 선수로서 기량이 쇠퇴한 시기에도 계속 선수로 뛰면서 까먹었음에도 이런 성적이 나왔다.[11]

또한 현재에 와서는 그 경이롭다는 베이스러닝 기록조차 실제보다 저평가(!) 되었다는 말도 있는데, 이는 세이버매트릭스 이전 시기의 경우 UBR(도루를 제외한 타격 후 주루 능력)과 wGDP(더블 플레이 회피 능력)을 BsR에 합산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를 생각하지 않고 단순 BsR 수치만 비교해도 헨더슨은 144.4로 이전 시기의 원조 도루왕(75), 호프집 계속 못가시다가 막턴에 입성에 성공한 인물(100.6), 대표적인 공수겸장 2루수(79), 3000안타 찍은 2000년대 최고의 리드오프(95.3)[12]을 가볍게 제친다. 보통 한 시즌에 BsR수치를 2를 찍으면 평균보다 우수한 주자, 6을 찍으면 압도적인 주자, 8 이상은 그냥 '신'으로 취급받는다. 그런데 리키 헨더슨의 경우 8을 능가한 시즌만 무려 8번에 10을 넘긴 적이 4번 포함, 게다가 제일 높았을 때 BsR 14를 찍은 적도 존재한다.[13] 저 두 개의 값이 빠진 결과만으로도 압도적인 1위를 점유하고 있는데 저 값이 채워지면 WAR 수치가 대략 5~15 정도 더 늘어난다. 이게 채워지면 바로 윗 순위인 루 게릭을 제치며, 알렉스 로드리게스의 WAR 수치와 비슷하거나, 혹은 앞지른다. 가히 빌 제임스의 평이 과장이 아닌, MLB 역사 전체를 통틀어도 단연 최정상급에 해당하는 전설적인 대선수.

리키 헨더슨의 볼넷 기록과 출루율이 경이적인 것이, 상식적으로 생각해봐도 투수 입장에서 본즈 같이 몰린 공 주면 담장 너머로 넘겨버리는 거포 파워히터를 상대할 때는 그래도 홈런 맞는 것보다는 1루로 보내는게 나으니까 최대한 맞지 않게 거르는 방법[14]으로 상대하지만, 리키 헨더슨처럼 발이 빠른 타자는 1루를 밟는 순간 투수들의 악몽 그 자체이므로 차라리 똑같이 1루로 보낼거면 공이라도 덜 던지고 안타를 맞겠다는 식으로 상대하기 마련인데도 자신에게 볼넷을 내줄 의향이 전혀 없는 투수들을 상대로 이만큼의 볼넷을 얻어낸 것이다. [15]

그렇게 뛰어난 성적의 선수였지만 의외로 선수생활이 순탄한 것만은 아니었다. 강철심장을 가졌다는 말과 달리 신체는 의외로 잔부상이 많았고, 600타석 이상 소화한 적이 9번 정도에 그친다. 프로 5년차던 1984년 뉴욕 양키스에 트레이드 되어 4시즌을 뛰다가 1989년 토니 라루사감독의 의향[16]으로 친정팀 오클랜드로 재트레이드. 그런데 오클랜드가 갑자기 재정난을 겪으면서 헨더슨을 다시 토론토 블루제이스로 트레이드하고 1995년 FA자격을 얻어 세번째로 오클랜드에 입단하지만 이미 오클랜드는 이전의 위상을 잃은 가난한 팀으로 37세인 노장 헨더슨을 장기계약할 의사가 없었다.[17] 그때부터 헨더슨은 저니맨이 되어 매년 유니폼을 갈아입으면서도 눈으로만 야구하는 현역으로 활약하며 44살까지 선수생활을 이어가다 2003년 LA 다저스를 마지막으로 메이저리그를 떠났다. [18] 2006년까지 독립리그에서 선수생활을 했고 한때 뉴욕 메츠의 코치[19]로도 있었지만 독립리그의 선수제안을 받고 바로 달려갔을 정도. 이정도면 야구 중독이다. 이 때문에 그는 명예의 전당 헌액 때도 '은퇴 후 5년'이라는 자격 조건에 해당하는지를 두고서 논란이 있었다. 46세에 독립 리그 골든 베이스볼 리그를 마지막으로 선수생활을 확실히 끝냈다.

3. 플레이 스타일

파일:external/cdn.bleacherreport.net/96801692_display_image.jpg
리키 헨더슨의 타격폼
리키 헨더슨은 상체를 대폭 낮추는 타격 자세를 취했는데, 이는 스트라이크존을 최대한 좁혀서 볼을 유도하기 위해서였다.[20] 이와 같이 볼넷을 선호하는 플레이 스타일 때문에 리키 헨더슨은 많은 볼넷을 얻어내는 한편, 공을 지켜보다가 삼진을 당하는 경우도 적지 않았다.[21]

파일:RickyHenderson.jpg
원래 왼손잡이였으나 야구를 시작할 무렵 또래 아이들이 오른손으로 타격하는 것을 보고 당연히 그래야만 하는 줄 알고 부단한 노력 끝에 오른손 타자로 성장했다. 좌투우타, 그것도 리드오프로써 몇배는 유리한 좌타가 아닌 우타 야수로 리그에서 성공한 케이스는 거의 없다. 신시내티 레즈의 라이언 러드윅이나 보스턴 레드삭스의 코디 로스가 현역중엔 대표적인 좌투우타 야수이며, 투수들이 좌투우타를 시도한 경우는 아주 많진 않아도 자주 있다. 랜디 존슨이나 마이크 햄튼, 류현진 같은 선수가 대표적. 부질없는 가정이지만, 만일 그가 처음부터 왼손 타자로 야구를 시작했다면 내야안타 확률이 올라갔을 것이기에 투수들이 느꼈을 공포는 배가 되었을 것이다.[22][23] 이후 왼손으로도 타격을 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버린 헨더슨은 스위치 히터로의 전향을 시도해봤으나 이미 오른손으로 타격하는 것에 너무나 익숙해져버려 좌타석에서의 성적이 형편없어 스위치 히터는 포기하고 이후에도 우타자로 생활했다.

4. 평가

훌륭한 컨택, 뛰어난 선구안, 빠른 발과 언제든 도루를 감행할 수 있는 능력을 고루 갖춘 리드오프이자 역사상 최고의 대도로서 1406도루를 기록하면서 압도적인 통산 도루 1위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24]

압도적인 도루 기록과 그 위엄 때문에 오히려 도루만 잘하는 선수로 알려진 경우도 있지만, 모름지기 도루를 하려면 1루 베이스부터 착실하게 밟아놔야 하기 때문에 그것은 큰 오해이며, 역사상 최고의 리드오프로서 20세기 말 메이저리그를 대표하는 최고의 선수를 논할 때 최우선적으로 언급되는 역대 최고의 선수 중 하나이다. 발만 빠른 선수라면 그 발이 아무리 빨라도 대주자나 대수비로 밀리기 마련이고, 대주자 롤로 통산 몇백도루는 가능할지라도 1000도루를 넘길 수는 없다.

메이저리그 역사상 통산 출루율 4할을 찍은 1번 타자는 헨더슨이 유일하다.[25] 주구장창 볼넷 얻어내서 출루율 올리는 강타자들과는 차원이 다른 것. 도루 역시 2위인 루 브록과의 차이가 무려 468개다. 야구 통산기록 중 배리 본즈의 고의사구를 제외하면 1-2위 사이의 격차가 이 정도로 넘사벽인 것은 없다. 그러다 보니 도루자(CS)도 335개로 당연히 통산 1위이지만, 통산 도루성공률은 81%다. 메이저리그 역대 최고의 리드오프라는 것을 이런 기록만으로도 짐작할 수 있다.

헨더슨의 기록 중 가장 놀라운 것은 도루 갯수 뿐 아니라 그 압도적인 도루 갯수에도 통산 2위, 약쟁이인 본즈를 제외하면 1위인 2190개의 볼넷을 기록하고 있다는 점이다. 투수들 중 헨더슨같은 유형의 선수에게 볼넷을 줄 생각을 하는 투수는 없었을 것임에도 불구하고 그는 웬만한 슬러거를 능가하는 볼넷을 얻어낸 것이다. 그리고 당연하겠지만 고의사구를 제외하면 헨더슨이 압도적인 역대 1위이다. 이 두가지가 모두 조화되어, 헨더슨은 300홈런을 치지 못했음에도 당당히 역대 1위의 득점 타이틀을 얻어냈다.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의 라디오 전담 아나운서 빌 킹은 "리키 헨더슨이 활약하던 1980년대 초 오클랜드 팬들은 1-0으로 리드한 상태에서 경기를 관전하는 일이 다반사[26]였는데 그것은 오로지 리키 헨더슨의 영향이었다."라고 했을 정도. 세이버메트릭스의 창시자인 빌 제임스는 "그를 둘로 나눠도 두 사람 모두 명예의 전당에 들어갈 것"이라며 극찬했다.

5. 명예의 전당 입성

헨더슨의 은퇴 이후 누구나 명전 첫 턴 입성은 확정적이라고 여겨졌던 선수였고, 2009년 명예의 전당 첫 투표에서 94.8%의 득표를 받고 당연히 첫 턴 만에 화려하게 입성했다.[27]

5.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그레이잉크HOF 모니터HOF 스탠다드
리키 헨더슨 50 143 181 53
HOF 입성자 평균 27 144 100 50
  • JAWS - Left Field (3rd)
career WAR7yr-peak WARJAWS
리키 헨더슨 110.8 57.4 84.1
좌익수 HOF 입성자 평균 65.2 41.5 53.3

6. 기행 및 일화

야구장 밖에서는 의외로 순박하고 약간 모자란 동네 형 같은 사람이었다고 한다. 그에 대한 몇몇 일화에 따르면...
  • 도미니카 공화국 선수들의 MLB 진출 러시를 지켜보며 동료에게 '자동차로 몇 시간이면 도미니카 공화국에 갈 수 있느냐?'라고 물었다고 한다. 도미니카는 카리브해 한가운데 떠있는 섬나라다. 참고로 미국과 육로로 연결된 나라는 멕시코와 캐나다밖에 없다.
  • 2004년 월드시리즈가 10월 27일 4-0으로 끝나서 미국의 모든 언론이 보스턴의 '밤비노의 저주' 극복 스토리를 대서특필한 날에(10월 28일) 월드시리즈 6차전 티켓을 구해달라고 보스턴 구단에 전화를 걸어 보스턴 관계자들을 당황하게 만들었다.
  • 그가 2001년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에서 뛸때, 시즌 마지막 경기를 앞두고 통산 2999안타를 기록한 상태였다. 마지막 경기에서 안타 하나만 치면 3천 안타 달성이 확정적인 가운데, 같은 팀의 전설적 선수이자 파드리스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토니 그윈이 은퇴발표후 현역 고별경기를 치르게 되자 자신이 안타를 쳐서 관심이 쏠릴 것을 걱정해 자신을 선발명단에서 제외해줄 것을 자청했었다. 그런 사실을 듣게된 토니 그윈은 헨더슨이 경기에 나오도록 직접 설득했으며 결국 헨더슨은 최종전에 출장해 3천번째 안타를 쳐냈고, 두 레전드 모두 파드리스 팬들의 찬사를 받는 명장면을 만들었다.
  • 원정경기에 가서 호텔에 체크인 할때 항상 가명을 썼다고 한다. 이에 소속팀의 단장들은 그의 여러 가명을 숙지해야 했다고 한다.
  • 3인칭화를 쓰는 사람으로 유명하다. 1995년 오프시즌에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의 케빈 타워스 단장에게 전화를 걸어 "Kevin, this is Rickey. Calling on behalf of Rickey. Rickey wants to play baseball(케빈, 리키입니다. 리키 대신 전화하는 거예요. 리키는 야구가 하고 싶어요.)"라고 말했을 정도. 여기에 확인된 소스는 아니지만, 그는 타격연습 전 라커룸 거울 앞에 알몸으로 서서 "Rickey's the best! Rickey's the best!(리키는 최고야!)"를 외치면서 스윙연습을 했다고 한다. 또한 타석에 들어서기 전에 자신의 배트를 보고 "자 다음 안타를 선물해 줄 녀석은 누구냐."라고 말했다고도 한다. 또한 오클랜드 시절 모 동료 선수는 삼진을 당하고 들어온 헨더슨이 "괜찮아 리키 너는 여전히 최고야."라고 말하는 것을 듣기도 했다고. 다만 리키 헨더슨 본인은 이런 3인칭화와 관련된 에피소드에 대해 '누굴 바보로 아느냐' 면서 불쾌해 하는 상황. 그의 말로는 위의 에피소드들은 모두 날조된 것이며, 그는 3인칭화를 오로지 자책할 때에만 썼다고 한다. 경기에서 실수를 저지른 뒤 덕아웃에서 '리키, 이 바보같은 놈!' 같은 말만 했다는 것이다.
  • 양키스에서 활동하던 시기 어떤 팀메이트에게 'Empire States Building'의 전망이 좋다고 말했다가 그 선수를 폭소하게끔 만들었다. Empire가 아니라 Entire(전체)로 발음했기 때문이다.
  • 뉴욕 메츠에서 활동하던 시기에 존 올러루드에게 '내가 토론토에 있을 때 너처럼 수비할때도 헬멧 썼던 애가 있었지 ㅋㅋㅋ' 이랬다가 올러루드가 어이가 없어서 '그게 전데요'라고 응답했다. 위의 팀 경력을 보면 알겠지만, 이 둘은 93년도에 토론토에서 팀메이트였다(...) 심지어 올러루드가 그 당시 존재감 없는 듣보잡 후보급 선수였냐면 그것도 아닌것이, 올러루드는 93년에 무려 타율 .363을 찍고 MVP 3위까지 한 시즌이다.. 단 MLB.COM의 기사에 따르면 올러루드는 그런 일이 실제로 있었다는 것을 부정했다. 해당 기사에 따르면 메츠 시절이 아닌 시애틀 매리너스 시절 있었던 일로(헨더슨은 2000년 시즌 중에 메츠에서 방출된 뒤 시애틀과 계약했다.) 매리너스 팀 소속의 트레이너가 지어낸 농담이었다고 한다.
  • 아이싱을 하다가 잠들어서 동상에 걸려 3경기 동안 못나왔다. 더 잤었다간 다윈상 받을 기세
  • 96년도에 스티브 핀리가 '님은 대선배이니 (You have Tenure) 버스 아무 자리나 차지해도 됩니다'라고 했는데 자신은 '응? 난 10년 (Ten years)이 아니라 17년간 야구했는데' 라고 잘못 알아들어 핀리를 당황케 했다고 전해진다.
  • 오클랜드 어슬레틱스와 계약하고 받은 100만 달러짜리 수표를 자신의 계좌로 입금 하지 않고 액자로 만들어 집에 전시했다고 한다. 덕분에 구단 경리직원들은 분명히 선수 인건비로 지출해야 할 100만불이 그대로 장부상에 남아있어서 그 이유를 찾느라 고생했다고 한다. 정산하는데 11억이 비는것도 아니고 남아있다
  • 랜디 존슨의 신인 시절에 제대로 신고식을 치러준 케이스가 있었는데. 1989년 당시 신인이던 랜디 존슨을 상대로 1회 말에 등장해 6구 승부 끝에 볼넷으로 걸어나간 뒤 다음 공에 2루를, 그 다음 공에 3루를 훔쳐버렸고, 이에 멘탈이 승천한 존슨은 2번타자의 투수 땅볼까지 놓치면서 헨더슨에게 홈까지 내주고 말았다. 그 후 3회에도 볼넷 후 2루를 훔쳐냈고, 5회에도 볼넷 후 또 다시 2루를 훔쳤으며, 6회에서는 2사 2루에서 볼넷으로 걸어나가 더블스틸로 또 다시 도루에 성공. 그리고 모두 홈을 밟는데 성공했다. 이 날 헨더슨은 4타석 4볼넷 5도루 4득점으로 랜디 존슨을 가지고 놀았다.(...) [28]
  • 은퇴 직전 보스턴 레드삭스에서 단장인 톰 워너가 기념품으로 무엇을 갖고 싶은지에 대한 답변으로 구단주가 가진 메르세데스 라고 답변했다. 단장은 같은 모델의 차를 단기간에 구하는것이 어렵다고 말하자 헨더슨이 '아니, 구단주가 가진 메르세데스 달라고' 라고 했다. 결국 승낙을 받아 구단주의 차를 필드로 끌고왔으나 이에 헨더슨이 '와 ㅅㅂ 이 존나 못생긴 차 누구거임' 이라고 말해 단장과 구단주의 화를 돋구었다고 한다(...). 기억력이 안 좋은 건가 철이 없는 건가 아님 둘 다 그냥 둘 다 없는 듯
  • 명예의 전당 입성 연설에서 고등학교때 까지만 하더라도 미식축구 선수가 되는게 꿈이었고 야구는 그렇게 관심이 없었다고 밝혔다. 당시 어머니가 축구는 몸싸움이 심하고 해서 다칠 가능성이 있으니 야구를 하는게 어떻겠냐고 해서 시작했다고. 역시 엄마 말은 잘 들어야 한다. 그리고 여러 흑인 선배들에게 감사를 표했다. 이때 당시 연설회장에 초대를 받고 참석했던 대선배 레지 잭슨과의 일화를 소개했는데, 무명 시절 사인을 받기 위해 주차장에서 기다렸는데 쌩까고 지나갔다고... 잭슨은 이 말을 듣고 몸을 숨겼다. 어디까지나 웃자고 한 얘기였다. 관련 포스팅
  • 등번호 24번에 대한 집착이 대단해서 오클랜드 어슬레틱스 시절 먼저 그 번호를 달고 있던 터너 워드에게 현금 2만 5천달러를 주고 번호를 바꾼 적이 있다고 한다.

이 외에도 영문 위키에 그의 수많은 기행과 괴짜발언이 기록되어있다.

7. 연도별 성적

파일:MLB 로고.svg 리키 헨더슨의 역대 MLB 기록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79 OAK 89 398 96 13 3 1 49 26 33 34 39 .274 .338 .336 .675 -0.7 -0.9
1980 158 722 179 22 4 9 111 53 100 117 54 .303 .420 .399 .820 7.8 8.8
1981 108 493 135 18 7 6 89 35 56 64 68 .319 .408 .437 .845 6.7 6.7
1982 149 656 143 24 4 10 119 51 130 116 94 .267 .398 .382 .780 5.8 6.7
1983 145 622 150 25 7 9 105 48 108 103 80 .292 .414 .421 .835 7.0 6.9
1984 142 597 147 27 5 16 113 58 66 86 81 .293 .399 .458 .857 5.5 6.0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85 NYY 143 654 172 28 5 24 146 72 80 99 65 .314 .419 .516 .934 9.7 9.9
1986 153 701 160 31 5 28 130 74 87 89 81 .263 .358 .469 .827 6.4 6.3
1987 95 440 104 17 3 17 78 37 41 80 52 .291 .423 .497 .920 5.0 4.7
1988 140 647 118 30 2 6 118 50 93 82 54 .305 .394 .399 .793 5.5 6.3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89 NYY/OAK 150 674 148 26 3 12 113 57 77 126 68 .274 .411 .399 .810 8.4 8.7
1990 OAK 136 594 159 33 3 28 119 61 65 97 60 .325 .439 .577 1.016 10.2 9.9
1991 134 578 126 17 1 18 105 57 58 98 73 .268 .400 .423 .823 3.8 4.6
1992 117 500 112 18 3 15 77 46 48 95 56 .283 .426 .457 .883 5.6 5.6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3 OAK/TOR 134 610 139 22 2 21 114 59 53 120 65 .289 .432 .474 .906 4.8 5.0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4 OAK 87 376 77 13 0 6 66 20 22 72 45 .260 .411 .365 .776 2.8 3.5
1995 112 487 122 31 1 9 67 54 32 72 66 .300 .407 .447 .855 2.6 2.9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6 SD 148 602 112 17 2 9 110 29 37 125 90 .241 .410 .344 .754 2.2 1.9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7 SD/ANA 120 509 100 14 0 8 84 34 45 97 85 .248 .400 .342 .742 1.8 1.6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8 OAK 152 670 128 16 1 14 101 57 66 118 114 .236 .376 .347 .723 1.9 2.3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1999 NYM 121 526 138 30 0 12 89 42 37 82 82 .315 .423 .466 .889 2.1 1.9
<rowcolor=#c4ced4>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0 NYM/SEA 123 519 98 14 2 4 75 32 36 88 75 .233 .368 .305 .673 0.5 0.7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1 SD 123 465 86 17 3 8 70 42 25 81 84 .227 .366 .351 .717 0.4 0.5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2 BOS 72 222 40 6 1 5 40 16 8 38 47 .223 .369 .352 .721 0.6 0.4
<rowcolor=#ffffff> 연도 G PA H 2B 3B HR R RBI SB BB SO AVG OBP SLG OPS fWAR bWAR
2003 LAD 30 84 15 1 0 2 7 5 3 11 16 .208 .321 .306 .627 0.1 0.2
MLB 통산
(26시즌)
3081 13346 3055 510 66 297 2295 1115 1406 2190 1694 .279 .401 .419 .820 106.3 111.2

8. 관련 문서



[1] 빌리 해밀턴, 빈스 콜먼과 동률. 다만 빌리 해밀턴의 경우, MLB 공식홈페이지 기준으로는 1894년 98도루 기록을 찾아볼 수 있지만, 레퍼런스 기준으로는 같은 해 100도루 기록을 찾아볼 수 있다. 여기서는 공식홈페이지의 기록을 따른다.[2] 참고로 한국의 대도 전준호김일권도 이와 비슷한 말을 한 적이 있다. 얼굴을 직접 마주보는 만큼 대략적인 견제 타이밍을 알 수 있기 때문이다라 밝혔다. 그러나 실제로 통계를 내보면 당연히 좌완 투수를 상대할 때의 성공률이나 도루 수가 더 떨어진다. 그 차이를 얼마나 줄일수 있느냐의 문제. 단지 도루를 잘하는 선수들이 좌완투수 상대로 도루할때 "어차피 좌완투수 상대 도루가 더 어려운 걸 다른 사람들도 아니까 성공하면 좋고 아니면 만다"는 편한 마음으로 도루할 때가 많아서 더 편하게 느낄 뿐이다.[3] 당연하지만 세계 1위 기록이며, 통산 1,000도루는 메이저리그 유일, 세계에서 단 2명만이 가지고 있는 대기록이다. 나머지 1명은 바로 일본프로야구 한큐 브레이브스의 황금기를 이끈 슈퍼스타 후쿠모토 유타카.[4] 2위는 938개의 루 브록으로 헨더슨의 기록이 1.5배이다. 메이저리그의 모든 통산기록 중에서 1위와 2위의 차이가 가장 큰 기록이다.[5] 물론 위와 같이 누적 개수로 비교해 볼 수도 있지만 비율로 보면 1위와 2위의 차이가 가장 큰 누적 기록은 배리 본즈의 통산 고의사구 1위(688개)로서 2위 알버트 푸홀스의 기록(302개)의 두 배가 넘는 수준이다. 게다가 푸홀스의 몰락을 생각하면 이 간격은 절대 좁혀지지 않을 것이다. 물론 이는 약쟁이가 약빨 최대로 땡겨서 뻥튀기한 기록이니만큼 실질적으로는 도루 기록이 가장 압도적인 기록이라고 보는 것이 맞겠지만.[6] 1위는 배리 본즈다. 그래도 역대 고의적이지 않은 볼넷 수(2129개)를 계산하면 베리 본즈보다 우위에 있다. 통산 2000볼넷을 넘긴 우타자는 헨더슨이 유일하다.[7] 1위는 138개인 휴 니콜이다(1887). 다만 이쪽은 과감한 주루플레이나 역도루 (3루에서 2루, 2루에서 1루로 귀루하는 주루플레이)까지 도루로 쳤었던 시대였고, MLB가 창설되기 전에 나온 기록이기 때문에 기록 자료가 있긴 하지만 공식 기록으로는 인정하지 않아 사실상 리키 헨더슨이 단일시즌 도루 1위 타이틀을 가지고 있다 해도 무방하다.[8] 1982년: .780. 근데 이 성적으로도 OPS+ 122를 기록했다. 평균점을 가진 선수보다 22% 뛰어난 타격을 가졌다는 말[9] 1987년에는 95경기 출장에 그치며 41도루로 5위를 차지했다. 단 150경기 출장 가정시 64도루 페이스로 해당 시즌 1위인 60개를 넘어서기는 한다.[10] 39세에 66도루를 기록했다.[11] 전성기 기준인 93년까지의 기량만으로 확인했을때 BA: .291, OBP: .406, SLG: 443, OPS+: 140, 도루성공율 81%, 볼삼비 1.42, 2139 안타/220 홈런을 기록했다. 헨더슨의 도루성공율 81%는 1류 대도라면 누구나 비슷한 수치를 기록한다. 그러나 중요한 건 헨더슨은 1406개를 성공시키는 동안 저 성공율을 유지했고, 40세가 훌쩍 넘어서도 계속 도루를 시도했던 선수라는 것이다.[12] 다만 이치로는 20대 중반까지 NPB에서 보냈다는 점을 감안해야 한다.[13] 1983년. 당시 최고 기록. 다만 86년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리드오프 빈스 콜맨이 15.7을 기록하면서 3년만에(...) 경신되었다[14] 약즈시절의 본즈는 약빨고 벌크업을 하면서 파워는 업그레이드 했지만 그 댓가로 주력을 상실해 과거 피츠버그 시절의 호타준족이 아니었다. 때문에 본즈와 땅꼬마들이었던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2000년대 초중반, 본즈의 고의사구는 그야말로 압도적이었다. 고의사구가 아니더라도 발 느린 슬러거를 상대 할때는 볼넷을 줘도 상관 없다는 각오로 장타를 치기 어려운 유인구 위주의 승부를 하는 경우가 많다. 다음 타자가 약하면 약할수록 병살타 처리도 쉬워지고.[15] 헨더슨의 장점은 용규놀이 스타일의 커트보다는 좁은 스트라이크존을 아주 정확히 보는 선구안에 있었는데, 이로 인해 커트 위주의 선수들보다는 선채로 삼진을 당하는 일이 많은 편이었다. 용큐놀이 분야의 최고봉은 헨더슨에 이어 역대 리드오프 출루율 2위에 빛나는 루크 애플링을 꼽을 수 있다.[16] 이 시절 오클랜드는 지금의 머니볼 이미지와는 달리 돈을 잘 쓰던 팀이었다.[17] 그래도 1998년에 다시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 계약하며 4번째로 애슬레틱스의 유니폼을 입는다.[18] 사실 이 시기에 비율스탯을 엄청 까먹었고, 말년에는 장타가 아예 실종됐기 때문에 통산 스탯을 보면 그냥 똑딱이로 보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다만 괜찮았던 해도 있었는데 40세 시즌이었던 1999년까지만 하더라도 당시 메츠의 강력한 타선 덕을 봤지만 .315/.423/.466 12홈런 37도루라는 상당한 성적을 내고 있었다.[19] 호세 레예스에게 주루 스킬을 가르치는 전담 인스트럭터로 활동했다.[20] 스트라이크존의 범위에 타자의 어깨가 기준이 되기 때문. 물론 일반적인 타격 자세를 취했을 때를 기준으로 하므로 아예 엎드려서 타격을 한다고 거기에 존이 맞춰지는 것은 아니고 심판 본인이 생각하는 일정한 존을 정해두고 판정을 하지만, 심판도 사람인 만큼 선수의 키나 자세에 영향을 안 받을 수는 없다.[21] 이러한 그의 플레이 스타일때문에 사람들은 리키 헨더슨의 스트라이크존은 히틀러의 심장만큼 좁다고 이야기했다.[22] 파일:external/302e74713a62d96c95844375e9b565fd951e25d412fcfb8b9f2e546a086c4f00.jpg
자신의 메이저리그 통산 도루 신기록 20주년을 기념하는 2011년 4월 30일 경기의 시구를 왼손으로 던졌다.
[23] 한국의 대표적인 왼손잡이 우타 야수로는 이종범이 있다. 본인이 밝히기로는 야구를 시작했을 당시에 왼손 글러브가 존재하지 않았고, 오른손으로 공을 던지니 타격도 당연히 오른쪽에서 해야 하는 줄 알았기 때문이라고. 공교롭게도 한국과 메이저리그의 대표적인 1번 타자들이 모두 오해로 우타가 된 셈.[24] 이 기록은 또 다른 레전드 놀란 라이언의 5714개의 탈삼진과 더불어 아예 경신이 불가능한 기록이며 재미있게도 놀란 라이언이 5000 탈삼진을 달성할때 상대 타자가 리키 헨더슨이었다.[25] 이 부문 2위는 통산 .399의 루크 애플링.[26] 안타든 볼넷이든 출루→도루→진루타→희생플라이 혹은 선두 타자 홈런.[27] 통산 도루 1위, MVP 수상(1990), 월드 시리즈 우승 반지 2개, 3,000안타 달성 등 통산 성적 뿐만 아니라 존재감도 화려한 MLB 역사상 최고의 1번 타자 치고는 의외로 높지 않은 득표율이라고 생각할 수 있는데 약쟁이도 받아주고 마무리투수가 만장일치를 찍은 요즘 시대의 기준에 대입하면 안 되는게, 저 때는 투표인단 물갈이가 일어나기 한참 전이라 첫 해에는 절대 안 찍어준다느니 루스도 만장일치를 못 받았는데 네가 뭔데 그걸 노리냐느니 하는 소리를 해대는 꼰대들도 투표권을 행사하던 때라 저 시대에 95% 가까이를 받았으면 요즘 기준으론 99% 정도는 되는 득표율이라고 봐야 한다.[28] 이때의 영향 때문인건지 아니면 이후에도 몇번 당한 모양인건지 랜디 존슨은 농담으로나마 고의 死구를 심각하게 고려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