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2-10 01:34:15

마이크 햄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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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크 햄튼의 수상 경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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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0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챔피언십 시리즈 MVP
에디 페레즈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마이크 햄튼
(뉴욕 메츠)
크레이그 카운셀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200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투수 부문 골드 글러브
그렉 매덕스
(시카고 컵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크 햄튼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그렉 매덕스
(시카고 컵스 / 로스앤젤레스 다저스 /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9~2003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투수 부문 실버 슬러거
톰 글래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크 햄튼
(휴스턴 애스트로스 / 뉴욕 메츠 / 콜로라도 로키스 /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리반 에르난데스
(몬트리올 엑스포스)

파일:MLB 내셔널 리그 로고.svg 199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다승왕
톰 글래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마이크 햄튼
(휴스턴 애스트로스)
톰 글래빈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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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마이크 햄튼.png
마이클 윌리엄 "마이크" 햄튼
Michael William "Mike" Hampton
생년월일 1972년 9월 9일 ([age(1972-09-09)]세)
국적 파일:미국 국기.svg 미국
출신지 플로리다 주 브룩스빌
신체 177cm / 89kg
포지션 선발 투수
투타 좌투우타
프로입단 1990년 드래프트 6라운드 (전체 161번 / SEA)
소속팀 시애틀 매리너스 (1993)
휴스턴 애스트로스 (1994~1999)
뉴욕 메츠 (2000)
콜로라도 로키스 (2001~2002)
애틀랜타 브레이브스 (2003~2008)
휴스턴 애스트로스 (2009)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 (2010)
지도자 시애틀 매리너스 불펜코치 (2016~2017)
1. 개요2. 선수 경력3. 지도자 경력4. 여담5.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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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미국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활약했던 前 야구 선수로, 선수 시절 포지션은 선발 투수였다.

2. 선수 경력

원래 시애틀 매리너스가 아마추어 드래프트 전체 5라운드에서 지명하였고 데뷔도 시애틀에서 했지만, 이듬해 휴스턴 애스트로스로 트레이드 했고, 그 곳에서 3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는 준수한 투수로 성장하였다. 1999년에는 22승 4패 2.90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하며 사이 영 상 2위와 커리어 하이를 찍었다. 이 때 휴스턴은 역시 20승 이상을 올렸던 호세 리마(1999년 21승 10패 3.58)와 햄튼을 두고 팀의 에이스를 고민하다 결국 호세 리마를 잡는 것으로 선택했고, 이후 햄튼은 2000년 시즌을 앞두고 뉴욕 메츠로 트레이드되어 건너간 뒤[1] 내셔널리그 우승 멤버로 활약했다.

그리고 2001년 시즌을 앞두고 FA 자격을 얻어 8년 1억 2,100만 달러의 당시로서는 메가톤급 대형 계약[2]을 맺고 콜로라도 로키스에 입단했다.

로키스의 구장 쿠어스 필드는 해발고도 1,600m에 위치하고 있는 악명 높은 투수들의 무덤이다. 해발고도가 높은만큼 공기 저항이 적기 때문에 다른 곳보다 공이 더 멀리 뻗어나간다[3]. 1993년부터 리그에 참여한 콜로라도는 그 쿠어스 필드의 특성 때문에 타자들은 40홈런 슬러거들을 자주 배출하고[4] 평범한 타자들도 홈런을 뻥뻥 쳐냈지만, 투수들은 반대로 죽을 맛이었다. 매년 정규리그 팀 방어율 꼴찌를 도맡아 했고, 한참 타고투저였던 1999년에는 팀 방어율 6.01을 기록한 적도 있다. 당연히 팀 전체 실점은 1000점이 넘어갔을 정도. 선발 투수 중 규정 이닝을 채우는 선수도 드물었으며 그중 방어율 3점대를 기록한 선수는 팀 창단 11년이 지난 2004년에야 조 케네디가 최초로 나왔을 정도.

콜로라도는 매번 이러한 투타 불균형으로 무너지던 팀의 밸런스를 개선하기 위해 고심하던 중, 28세라는 젊은 나이에 FA자격을 얻었던 뛰어난 땅볼유도형 투수 마이크 햄튼을 주목했던 것이다. 게다가 그 당시 한참 세이버매트릭스를 통해 땅볼유도형 투수의 가치가 날로 치솟고 있었기 때문에, '투수들의 무덤'에서도 통할 유형일거라는 가능성을 믿고 과감하게 큰 돈을 질렀다. 그리고 그것이 잘못되었다는 것을 2년이 지나고 나서 알게 되었다. 이때 같이 사온 데니 네이글(5년 5150만 달러)과 쌍으로 먹튀짓을 하며 팀을 나락으로 떨어뜨렸다.[5]

대체로 콜로라도 시절인 2001년과 2002년 모두 싸잡아서 까는 경향이 있지만, 계약 첫 해인 2001년의 경우, FA 계약 이후의 마이크 햄튼 치고는 나름대로 선전한 편이다. 산에 올라간 효과로 피안타나 피홈런이 증가한 것은 어쩔 수 없지만, 대부분의 세부 지표는 전성기 시절과 비슷했다. 사실 2001 시즌의 경우 6월까진 '덴버의 등불'이라 불리며 꽤 긴 기간 2점대 방어율을 유지하는 등 로키스가 원한 에이스 역할을 제대로 해주는 듯 했지만, 6월말 그해 월드시리즈 우승팀인 애리조나 다이아몬드백스전에서 3이닝 7자책으로 무너지면서부터 속수무책, 결국 후반기에 부진하면서 시즌을 망쳤다.[6] 2001년 시즌 최종 성적은 14승 13패 ERA 5.41.

2001년 연봉과 기대치에 비해 성적이 너무 안나오자 자신감을 잃었는지 2002년 시즌도 7승 15패 ERA 6.15로 시원하게 말아먹었다. 결국 더이상 안되겠다고 판단한 콜로라도는 계약기간이 2년밖에 지나지 않았는데도 불구하고, 2002년 시즌 종료 후 햄튼을 트레이드 블록에 올리게 된다.

이 와중에 플로리다 말린스가 뜬금없이 햄튼의 잔여연봉을 뒤집어 썼다. 원래 2002 시즌을 마치고 콜로라도와 플로리다가 4대2 트레이드를 감행해서 햄튼을 플로리다로 넘겼는데, 2003년 시즌 개막 직전, 이번에는 플로리다에서 햄튼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로 넘긴 뒤 투수 두명을 받아오는 트레이드를 하면서 햄튼은 애틀란타 소속이 되었다. 결론적으로 플로리다는 햄튼을 한 경기도 써보지도 못하고 잔여연봉 8500만 달러 중 무려 5000만달러를 콜로라도와 분담해서 부담하게 된 것.

사실 투수에게 8년 계약을 줄 때부터 먹튀 논란이 불거지기 시작했는데, 이 때부터는 본격적으로 '리그 대표' 먹튀로 올라섰다. 애틀랜타로 이적한 첫 해인 2003년, 190이닝에 14승 8패, ERA 3.84를 기록하며 선발투수 치고는 평균 성적을 냈었는데 이전에 받은 게 있어서인지 여전히 돈값 못한다고 까였고, 2004년에는 평균자책점이 4.28로 치솟았다. 여담으로 그해 시즌 초 죽을 쓰다가 랜디 존슨이 퍼펙트게임을 기록한 경기에서 상대 선발투수로 등판, 9이닝 2실점 완투패를 기록했다. 그리고 이후에도 다시 죽을 쒔다. 명예회복에 나섰지만 2005년 부상을 입었다. 게다가 부상 부위는 팔꿈치여서 토미 존 서저리를 받았다.

2006년은 시즌 초부터 수술 재활로 인해 진작에 시즌아웃, 2007년에 복귀를 준비하다가 수술 부위에서 통증이 가시지 않고 몇 가지 문제가 확인되어 다른 수술을 받는 바람에 다시 시즌아웃. 계약 마지막 해인 2008년에는 이제 복귀하나 했는데 이번엔 스프링캠프 막바지에 흉근 부상. 결국 2008년 7월 말에 전열에 복귀할 수 있었다. 2008년 8월 6일 샌프란시스코전에서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하면서 무려 3년만에 선발승을 따내긴 했지만, 긴 부상과 재활로 인해 과거와 같은 성적을 기대하기에는 무리였다.

2008년 시즌 후 FA 계약이 만료되며 자유의 몸이 되었고, 이후 2009년 시즌을 앞두고 친정팀 휴스턴 애스트로스와 계약하여 복귀했지만, 로테이션에 뛰었으나 5점대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게다가 2009년 가을에 어깨 회전근에 문제가 생경하여 재건수술을 받는 바람에 2010년도 상큼하게 시즌아웃이다. 다시 복귀를 한다고 해도 그의 나이는 40줄을 바라보고 있어 조용히 은퇴수순을 밟을 확률이 높다. 결국, 2011년 3월 은퇴선언을 했다.

그야말로 먹튀계의 레전드. 먹튀의 아이콘 대런 드라이포트보다 사실 이 분이 더 한게, 드라이포트는 한 팀에서만 먹고 튀었지만, 햄튼은 두 팀에서 먹튀했기 때문. 아니 세 팀인 게, 위에서 설명했듯 플로리다에서는 단 한 경기도 뛰지 않았음에도 돈을 받아냈다.

투수임에도 불구하고 타격 실력이 뛰어나 2001년 콜로라도 로키스 시절에는 홈런 7개를 기록하기도 했다. 이후로 홈런을 매년 한두 개씩 때리곤 했다. 2002년엔 당연히 규정 타석엔 못 미쳤지만 0.344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여담으로 통산 타율이 0.246 통산홈런 16개. 참고로 통산타율이 Big Z보다 높다. 이러한 뛰어난 타격실력은 투수 실버슬러거 최다수상(5회)으로 보답받았다. 베이스볼 레퍼런스 기준으로 그의 통산 타격 WAR은 자그마치 8.2. 참고로 투수로서의 WAR은 20.8

3. 지도자 경력

2015년 11월 24일 자신이 처음 데뷔했던 시애틀 매리너스의 불펜코치로 합류했다.

4. 여담

2016년 1월 6일 발표된 메이저리그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는 첫해부터 단 한 표도 받지 못하고 0.00%로 일찌감치 광탈했다.

놀랍게도 2018년 12월까지 콜로라도 구단으로부터 연봉을 수령했다는 게 알려졌다. 사실 계약기간을 채우지 못하고 도중에 트레이드되었기 때문에 콜로라도 측에서 잔여 연봉을 부담해야 하는데, 당시 구단 자금사정이 좋지 않아 2005년까지만 우선 지급한 뒤 나머지 3년치 잔여 연봉은 2009년부터 연이율 3%에 매년 190만 달러씩 분할 상환하는 방식으로 지급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한다. 그 계약이 2018년 12월에 드디어 끝났다고 한다. 콜로라도 입장에서는 무려 17년 만에 지긋지긋한 햄튼의 흔적을 완전히 지워버린 .

5. 관련 문서



[1] 1999년 겨울 데릭 벨과 함께 메츠로 트레이드되었는데, 이때 휴스턴이 받아온 선수 중엔 옥타비오 도텔이 있다.[2] 햄튼의 계약은 계약 당시 MLB 역대 3번째로 1억달러 이상의 계약이자 최대규모의 FA 계약이었다. 햄튼 이전의 1억달러 계약은 1999년 케빈 브라운7년 105M이었고, 그 뒤를 이어 2000년 켄 그리피 주니어9년 119.5M이 전부였다. 햄튼이 계약한 직후 같은 해에 알렉스 로드리게스(10년 252M), 매니 라미레즈(8년 160M), 데릭 지터(10년 189M)가 줄줄이 계약하며 FA 계약규모 4위로 내려앉지만 투수 중에서는 여전히 1위였다.[3] 그 때문에 구장을 크게 지었는데 이러면 외야 필드가 넓어져서 외야수가 어버버하다간 바로 장타로 직결된다. 때문에 어깨가 매우 좋거나 다리가 빠르고 수비력이 뛰어난 외야수들로 외야를 채우는 경향이 있다.[4] 래리 워커, 단테 비솃, 안드레스 갈라라가, 비니 카스티야, 엘리스 벅스 등[5] 참고로 콜로라도는 땅볼 전략에도 실패한 이후 아예 '휴미더' 라는 공인구의 습도를 조절하는 방식까지 설치 및 채용하며 투수진 강화에 전력을 기울였고, 그 결과 2000년대 후반부터 쿠어스필드는 이전처럼 탁치면 억하고 넘어가는 정도가 아니라 그냥 타자에게 유리한 구장 정도로 파크 팩터가 떨어졌다.[6] 애리조나전 이전까지 11승 3패 ERA 3.06으로 순항하고 있었으나, 애리조나전 이후 후반기 성적은 3승 10패 ERA 7.76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