래리 워커의 수상 경력 / 역대 등번호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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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 | 1997 | 1998 | 1999 | 20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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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드 헬튼 | 래리 워커 | 재키 로빈슨 | 켈리 맥그리거 |
명예의 전당 헌액자 | |
래리 워커 | |
헌액 연도 | 2020년 |
헌액 방식 | 기자단(BBWAA) 투표 |
투표 결과 | 76.6% (10회) |
199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MVP | ||||
켄 캐미니티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 |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 → |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
1992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 ||||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바비 보니야 (피츠버그 파이리츠) 론 갠트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 → | 배리 본즈 (피츠버그 파이리츠) 앤디 반 슬라이크 (피츠버그 파이리츠) 래리 워커 (몬트리올 엑스포스) | → |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데이비드 저스티스 (애틀란타 브레이브스) 레니 다익스트라 (필라델피아 필리스) |
199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 ||||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게리 셰필드 (플로리다 말린스) 엘리스 버크스 (콜로라도 로키스) | → |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 | 그렉 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모이세스 알루 (휴스턴 애스트로스) |
199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외야수 부문 실버 슬러거 | ||||
그렉 본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모이세스 알루 (휴스턴 애스트로스) | → |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 → | 블라디미르 게레로 (몬트리올 엑스포스)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새미 소사 (시카고 컵스) |
1998년 ~ 1999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 ||||
토니 그윈 (샌디에이고 파드리스) | → |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2001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타격왕 | ||||
토드 헬튼 (콜로라도 로키스) | → |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 → | 배리 본즈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 |
1997년 메이저 리그 내셔널 리그 홈런왕 | ||||
안드레스 갈라라가 (콜로라도 로키스) | → | 래리 워커 (콜로라도 로키스) | → | 마크 맥과이어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
몬트리올 엑스포스 등번호 33번 | ||||
잭 도허티 (1987) | → | 래리 워커 (1989~1994) | → | 카를로스 페레즈 (1995~1998) |
콜로라도 로키스 등번호 33번 | ||||
크리스 존스 (1993~1994) | → | 래리 워커 (1995~2004) | → | 저스틴 모노 (2014~2015) |
저스틴 모노 (2014~2015) | → | 영구결번 | → | |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등번호 33번 | ||||
마이크 링컨 (2004) | → | 래리 워커 (2004~2005) | → | 래리 비그비 (2006) |
<colbgcolor=#33006f><colcolor=#c4ced4> 콜로라도 로키스 No.33 | |
래리 워커 Larry Walker | |
본명 | 래리 케네스 로버트 워커 Larry Kenneth Robert Walker |
출생 | 1966년 12월 1일 ([age(1966-12-01)]세) |
브리티시컬럼비아 주 메이플리지 | |
국적 | [[캐나다|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메이플리지 고등학교 |
신체 | 188cm / 83kg |
포지션 | 우익수 |
투타 | 우투좌타 |
프로입단 | 1984년 아마추어 자유계약 (MON)[1] |
소속 팀 | 몬트리올 엑스포스 (1989~1994) 콜로라도 로키스 (1995~2004)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 (2004~2005) |
기록 | 30-30 클럽 (1997) |
SNS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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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빌 제임스는 한 가지를 잘하는 선수는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많은 일을 잘하는 선수는 항상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고 자주 말했다. 덧붙이자면, 유명한 일을 하는 사람들은 과대평가되는 경향이 있는 반면, 매일매일 좋은 사람들은 과소평가되는 경향이 있다. 그리고 래리 워커는 그 두 가지 모두를 가지고 있었다.”
미국 최고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인 조 포스난스키의 평가 #
미국 최고의 스포츠 칼럼니스트 중 한 명인 조 포스난스키의 평가 #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1990년대 후반에서 2000년대에 활약했던 강타자로 '올해의 캐나다 야구선수 상'[2]에 해당하는 팁 오닐 상을 9차례 수상한 캐나다 야구선수다.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최초의 캐나다인 타자이며 통산 성적은 17시즌 동안 타율 .313, 출루율 .400, 장타율 .565, 2160안타, 383홈런, 1311타점, 230도루, BB/K 0.74, wRC+ 140을 기록했다.
2. 선수 경력
3. 플레이 스타일
래리 워커는 파워, 스피드, 컨택트, 수비, 어깨 모두를 갖춰 5툴 플레이어라고 불리기에 부족함이 없는 선수였다. 워커는 통산 3회의 타격왕을 차지할 정도로 컨택트가 좋았고 전성기에는 30홈런을 칠 수 있는 파워를 갖추고 있었다. 수비 능력도 출중해서 송구 능력은 당대 최고로 인정받는 수준이었다. 또한 몬트리올 시절인 1993년에는 22홈런-29도루, MVP시즌인 1997년에는 49홈런-33도루를 기록하는 등 준수한 주루 센스도 갖추고 있었다. 더불어, 메이저리그 역사상 커리어 3할 타율, 4할 출루율, 350홈런과 200도루를 달성한 선수는 래리 워커 단 한 명 뿐이다. 여기에 선구안마저 갖춰 7스킬 플레이어라고도 불렸던 워커를 저평가받게 한 요인은 다름 아닌 산사나이라는 것이었다.콜로라도의 홈 구장인 쿠어스 필드는 메이저 리그에서 가장 타자 친화적인 구장으로 악명이 높다. 이 때문에 콜로라도 출신 슬러거들은 그들의 성적에 대해 평가절하받기 일쑤였는데, 워커 역시 쿠어스 필드의 덕을 본 대표적인 타자라는 평가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었다. 하지만 워커는 콜로라도 시절 홈에서 .384 .464 .715라는 괴물 같은 슬래시라인을 기록하면서도 원정에서 .280 .385 .514라는 나름 준수한 성적을 보여주었고 커리어 초기 몬트리올에서 20홈런-3할을 보장하는 선수였는가 하면, 커리어 말기에는 세인트루이스에서도 두 시즌 동안 .560과 .502의 장타율을 기록하는 등 그가 마냥 구장의 힘만으로 커리어를 쌓은 선수가 아니라는 점도 보여주었다.[3] 그리고 MVP를 탄 1997년에는 오히려 원정 성적(OPS 1.176)이 홈(OPS 1.169)보다 더 좋았다.
모든 스킬이 완벽했던 워커에게 단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바로 부상. 140경기 이상 출전한 시즌이 고작 4시즌밖에 되지 않는다. 그래서 뛰어난 비율기록에 비해 누적 기록이 조금 아쉽다. 워커는 고질적인 무릎 부상에 시달렸는데, 원인은 툴플레이어들의 주적으로 악명 높았던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홈구장 스타드 올랭피크의 인조잔디로 추정된다.[4]
4. 명예의 전당 입성
연도 | 득표율(%) |
2011 | 20.3 |
2012 | 22.9 |
2013 | 21.6 |
2014 | 10.2 |
2015 | 11.8 |
2016 | 15.5 |
2017 | 21.9 |
2018 | 34.1 |
2019 | 54.6 |
2020 | 76.6 |
2016년과 2017년에도 각각 11.8%와 21.9%의 득표율로 별 차이 없는 모습을 보였다. 이듬 해인 2018년 34.1%의 득표율로 지난 해보다 12.2% 오른 모습을 보여주었지만 입성은 쉽지 않아보였다. 하지만 2019년 투표에서 전년 대비 20.5%가 오른 54.6%의 득표율을 기록하면서 마지막 해에 극적으로 입성할 희망을 가지게 되었다.
2010년대 후반에 들어 명예의 전당이 세이버매트릭스적으로 재평가된 타자들에게 호의적인 면이 있었고, 마지막 기회인 10년차를 맞이하는 후보들의 투표율이 늘어나는 경향이 있다는 점을 감안하면 래리 워커는 명예의 전당에 입성할 가능성이 있다고 평가받았다. 다만 9년차 득표율이 70% 안팎이었던 팀 레인스와 에드가 마르티네즈와 달리 워커의 득표율은 50% 안팎이라 입성을 장담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래도 좋은 소식이 있다면 2020년 새로 투표 피대상자 자격을 얻는 선수들 중 데릭 지터 정도만 첫 턴에 입성할 것이라고 평가받았고, 바비 아브레우 정도가 장기 투숙할 후보로 평가받을 정도로 경쟁자들이 적다는 점이었다.[5]
명예의 전당에 들어가는 여부가 밝혀지는 2020년 1월 21일에 앞서 그로부터 6일 전에 콜로라도 로키스에서 래리 워커의 등번호 33번을 영구결번했다.
결국 2020년 마지막 10번째 투표에서 온라인 야구팬들이 세이버 스탯을 중심으로 거의 캠페인을 하듯이 워커의 입상을 지지했고 발표 전날까지 결과를 알 수 없던 긴장감 넘치는 상황 속에서 결국 76.6%의 득표율을 기록해 커트라인인 75%를 넘겨 명예의 전당 입성에 성공하게 되었다. 캐나다 출신으로서는 퍼거슨 젠킨스에 이어 두 번째 입성이다.
이로써 래리 워커는 콜로라도 로키스 선수의 첫 명예의 전당행이라는 영광을 안게 됐다.
4.1. 명예의 전당 통계(Hall of Fame Statistics)
블랙잉크 | 그레이잉크 | HOF 모니터 | HOF 스탠다드 | |
래리 워커 | 24 | 116 | 148 | 58 |
HOF 입성자 평균 | 27 | 144 | 100 | 50 |
- JAWS - Right Field (11th)
career WAR | 7yr-peak WAR | JAWS | |
래리 워커 | 72.7 | 44.6 | 58.7 |
우익수 HOF 입성자 평균 | 71.5 | 42.1 | 56.8 |
5. 여담
- 앞서 언급했지만 고등학교 시절까지는 캐나다 사람답게 아이스하키 선수를 꿈꿨을 정도로 아이스하키를 매우 좋아했다. 야구선수가 된 이후에도 야구보다 아이스하키를 더 사랑했다고 하는데 이와 관련된 유명한 일화가 있다. 2001년 6월 2일 모처럼 5할 승률에 근접하며 선전하고 있던 로키스는 같은 지구인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와 맞붙게 되었는데 이 날은 콜로라도 애벌랜치와 뉴저지 데블스가 맞붙는 NHL 결승전인 스탠리 컵 경기가 있는 날이기도 했다. 로키스와 자이언츠는 9회까지 5-5로 팽팽히 맞서고 있었고 스탠리 컵은 곧 시작을 앞두고 있었다. 경기가 연장전에 접어들면 스탠리 컵을 볼 수 없다는 생각에 애가 탄 워커는 9회말 타석에서 끝내기 투런 홈런을 날려버린다. 그리고 경기가 끝나자마자 쏜살같이 라커룸 TV 앞으로 달려가 중계를 보았다고 한다.[7] 콜로라도 애벌랜치가 2020년 3월 15일 베이거스 골든나이츠와의 경기에서 긴급 골텐더[8]로 래리 워커를 하루동안 영입하면서 하키 선수 데뷔 소원을 성취했다.
- 캐나다 아이스하키 역사상 최고의 골리인 파트리크 루아와는 절친한 사이다. 1989년 래리 워커가 메이저리그로 콜업된 이후 1995년 한 해를 제외하고는 워커와 루아는 같은 연고지(몬트리올, 덴버)에서 선수생활을 했다.
* 1997년 올스타전에서 랜디 존슨이 던진 강속구가 워커의 머리 위로 날아오는 위험천만한 일이 벌어지는데 존슨이 다음 공을 던지려 할 때 워커는 헬멧을 거꾸로 쓰고 왼쪽 타석이 아닌 오른쪽 타석에서 타격 자세를 취하는 쇼맨십을 보여줬다.[9]영상
- 외모 때문인지 워커의 별명은 불곰이다.
6. 관련 문서
[1] 1984년까지 캐나다 출신 유망주들은 자유계약 신분이었다. 1985년부터 드래프트에 참가하는 것으로 규정이 바뀌었다.[2] 국내에선 메이저리그가 코로나로 인해 단축시즌으로 열린 2020년에 KBO 외국인 선수인 제이미 로맥이 이 상을 받으면서 화제가 되었다.[3] 참고로 커리어 초기 뛰었던 몬트리올의 홈구장 스타드 올랭피크는 전형적인 투수 친화적인 구장이었고, 커리어 말기에 뛴 세인트루이스의 홈구장 부시 스타디움 II는 투타 밸런스가 비교적 균등한 중립구장에서 투수친화형 구장 사이에 가까웠다.[4] 안드레 도슨, 팀 레인스, 블라디미르 게레로 등 몬트리올 엑스포스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레전드급 툴플레이어들은 20대 후반 즈음부터 주루능력을 잃거나 잦은 부상에 시달리는 등의 고초를 겪었다.[5] 참고로 2020년 1월 21일에 발표된 명예의 전당 투표에서 1년차 후보는 지터를 제외하고는 끔찍한 결과가 나왔는데 지터만 99.7% 득표로 명예의 전당에 입성했다. 나머지 후보들 중에서는 바비 아브레우가 5.5%를 받아 겨우 살아남았고, 화이트삭스의 레전드 폴 코너코, OPS형 공갈포 애덤 던, 40-40 클럽에 빛나는 알폰소 소리아노, 단기 임팩트가 강했던 클리프 리 등이 관심받지 못하고 후보 자격을 상실했다. 이렇게 후보들이 상대적으로 약했던 탓에 확실한 비율스탯을 기록한 래리 워커의 지지율이 크게 올랐다.[6] 캐나다 출신인데다 몬트리올 엑스포스의 1990년대 명전급 선수였다는 점에서 엑스포스의 모자를 쓰고 헌액될 최후의 선수로 블라디미르 게레로와 함께 점쳐지기도 했다. 그러나 엑스포스에서 뛴 것은 6시즌에 불과하다.[7] 이런 워커의 정성탓이었는지는 몰라도 애벌랜치는 이 시즌 창단 이후 두번째로 우승했다.[8] 로스터에 등록된 골텐더가 모두 부상일 때에 대비하여 지정하는 임시 골텐더[9] 이는 1993년 올스타전에서 랜디 존슨이 필라델피아 필리스의 존 크럭에게 위협구를 던졌던 상황과 유사했다. 다만 크럭은 워커처럼 타석을 바꾸지는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