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iki style="margin: -10px -10px;" | <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fcc800><tablebgcolor=#fcc800>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25 시즌 코칭스태프 |
{{{#!wiki style="margin:0 -10px -5px; min-height:calc(1.5em + 5px); word-break: keep-all"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5px -1px -11px" {{{#000000,#e5e5e5 | 감독 | 90 고쿠보 히로키 |
1군 | 92 나라하라 히로시(수석코치) · 94 쿠라노 신지(수석투수코치 겸 수석코디네이터) · 71 나카타 켄이치(투수코치) · 72 와카타베 켄이치(투수코치) · 78 무라카미 타카유키(타격코치) · 80 혼다 유이치(내야수비·주루·작전코치) · 87 오니시 타카유키(외야수비·주루·작전코치) · 84 타카야 히로아키(배터리코치) | |
2군 | 74 마츠야마 히데아키(2군 감독) · 73 오가사와라 타카시(투수수석코치) · 97 마키타 카즈히사(투수코치) · 93 무라마츠 아라히토(타격코치) · 82 타카타 토모키(내야수비·주루코치) · 96 키도코로 류마(외야수비·주루코치) · 83 시미즈 마사우미(배터리코치) | |
3군 | 88 사이토 가즈미(3군 감독) · 76 테리하라 하야토(투수코치) · 86 오쿠무라 마사토(투수코치) · 75 오미치 노리요시(타격코치) · 91 카네코 케이스케(내야수비·주루코치) · 98 타카나미 후미카즈(외야수비·주루코치) · 95 호소카와 토루(배터리코치) | |
4군 | 011 오코시 모토이(4군 감독) · 012 카와고에 히데타카(투수수석코치) · 024 펠리페 나텔(투수코치) · 013 모리카사 시게루(타격코치) · 014 사사가와 타카시(내야수비·주루코치) · 015 카마모토 고(외야수비·주루코치) · 016 마토야마 테츠야(배터리코치) · 017 모리야마 료지(투수 재활코치) · 018 나카타니 마사히로(야수 재활코치) · 019 세키가와 코이치(야수 코디네이터) · 020 호시노 쥰(투수 코디네이터) · 021 이데 타츠야(야수 코디네이터) · 022 모리 히로유키(야수 코디네이터) · 023 아라카네 히사오(야수 총괄 겸 수비·주루 코디네이터) | |
코칭스태프 | 투수 | 포수 | 내야수 | 외야수 | 육성선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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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마츠 아리히토의 수상 경력 | |||
{{{#!folding [ 펼치기 · 접기 ] | NPB 일본 시리즈 우승반지 | ||
1999 | 2003 |
NPB 일본 시리즈 우승코치 | |||
2017 | 2018 | 2019 | 2020 |
2004 아테네 올림픽 {{{#bd5c24 동메달}}} |
2004 |
1996년 퍼시픽리그 최다 도루 | ||||
1995년: 이치로 49도루 | → | 무라마츠 아리히토 58도루 | → | 1997년: 마츠이 카즈오 62도루 |
1996년 퍼시픽리그 외야수 베스트나인 |
2003~2004년 퍼시픽리그 외야수 골든글러브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등번호 63번 | ||||
모리 히로유키 (1990) | → | 무라마츠 아리히토 (1991~1992) | → | 우치다 히로타카 (1994~1995)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등번호 23번 | ||||
부머 웰즈 (1992) | → | 무라마츠 아리히토 (1993~2003) | → | 키도코로 류마 (2004~2018) |
오릭스 블루웨이브/버팔로즈 등번호 3번 | ||||
카츠라기 이쿠로 (2000~2003) | → | 무라마츠 아리히토 (2004~2008) | → | 호세 페르난데스 (2009)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등번호 35번 | ||||
크리스 니코스키 (2007~2008) | → | 무라마츠 아리히토 (2009~2010) | → | 도노우에 하야토 (2011~2012) |
<colbgcolor=#fcc800><colcolor=#000000>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No.93 | |
무라마츠 아리히토 [ruby(村松, ruby=むらまつ)] [ruby(有人, ruby=ありひと)] | Arihito Muramatsu | |
출생 | 1972년 12월 12일 ([age(1972-12-12)]세) |
이시카와현 카나자와시 | |
국적 | [[일본| ]][[틀:국기| ]][[틀:국기| ]] |
학력 | 세이료 고등학교 |
신체 | 177cm | 78kg | A형 |
포지션 | 외야수 |
투타 | 좌투좌타 |
프로 입단 | 1990년 드래프트 6순위 (다이에) |
소속팀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1991~2003) 오릭스 블루웨이브/버팔로즈 (2004~2008)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2009~2010) |
지도자 |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 (2013~2015)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3군 외야수비·주루코치 (2014~2016)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군 외야수비·주루코치 (2017~202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1군 타격코치 (2024~) |
프런트 |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스카우터 (2011~2013) |
응원가 | 호크스 시절: 응원단 자작곡[가사1] 오릭스 시절: 응원단 자작곡[가사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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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前 후쿠오카 다이에/소프트뱅크 호크스, 오릭스 블루웨이브/버팔로즈 소속 야구선수. 現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타격 코치.현역 시절엔 빠른 발을 무기로 호크스, 오릭스 2구단에서 준족의 외야수로 활약했으며, 2004 아테네 올림픽 때 국가대표로 선출되어 동메달을 수상했다.
2. 데뷔 이전
세이료 고등학교 시절 2, 3학년 때 2년 연속으로 코시엔에 진출했으나 각각 3차전, 1차전에서 패하면서 우승에 다다르진 못했다. 당시 같은 학교 야구부의 2살 아래 후배로 마츠이 히데키가 있었다.이후 고등학교 졸업시즌인 1990년 드래프트에서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의 6순위 지명을 받으며 프로에 데뷔하게 된다.
3. 현역 시절
3.1.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데뷔 시즌이었던 1991년엔 1군엔 출장하지 않은 채 마이너리그로 유학을 다녀왔다. 2년차인 1992년에 처음으로 1군 데뷔를 이뤘고, 이후 1994년까진 간간히 1군에 얼굴을 보이는 정도로만 뛰다 1995년에 규정타석엔 미달했으나 95시합, 369타석에 출장하여 32도루를 기록하며 1번 타자 겸 주전 외야수로 정착했다.1996년부터 본격적으로 1군 주축 멤버로 뛰면서 108시합, 476타석 출장으로 처음으로 규정타석에 도달했으며, 타율 .293/OPS .742, 58도루를 기록하며 마츠이 카즈오와의 경쟁 끝에 마츠이를 8개 차로 누르고 도루왕 및 베스트나인을 수상했다. 다음 해인 1997년에도 풀타임에 가까운 131시합, 551타석 출장으로 42도루를 기록했으나 타율이 .241로 곤두박질쳤고, 설상가상으로 이때까지 통산 0홈런을 기록한 빈약한 장타력 등 빠른 발을 감안해도 좋다고 보기 힘든 공격력을 지적받으면서 1998년부턴 주전에서 밀려난 채 2002년까지 대타, 대수비나 노쇠화가 완연해진 아키야마 코지의 대체 선발로 출장하며 준주전, 백업으로 1군에 머물러야 했다.[3]
그러다가 2003년에 다시 주전으로 도약하여 타율 .324/OPS .854, 150안타 6홈런 57타점 42도루로 커리어하이를 찍으며 팀 후배 이구치 타다히토와 도루왕 경쟁을 벌였으나 8월 후반에 치바 롯데 마린즈와의 후쿠오카 돔 홈경기에서 포구 도중 오른쪽 쇄골 골절상을 당하면서 시즌아웃되는 바람에 이구치에게 도루왕을 내주고 109시합 출장에 그쳤다. 그나마 다행히도 같은 해 일본시리즈에선 어찌저찌 복귀에 성공하면서 다이에의 4년 만의 일본시리즈 제패에 공헌할 수 있었으며 시즌 종료 후 처음으로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2003년 시즌 종료 후 FA 권리 행사를 선언하였고,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하게 되었다.[4]
3.2. 오릭스 블루웨이브 - 버팔로즈
오릭스 블루웨이브로 이적한 첫 해인 2004년에도 무라마츠는 108시합 출장, 타율 .324/OPS .799, 147안타 6홈런 51타점 11도루를 기록하며 도루수는 격감했으나 리드오프로써 뛰어난 활약을 펼치며 당시 암흑기에 빠져있던 오릭스를 지탱했고, 같은 해 2년 연속 골든글러브를 수상함과 동시에 아테네 올림픽 국가대표로 선출되어 동메달을 수상했다.팀이 오사카 킨테츠 버팔로즈와의 합병으로 오릭스 버팔로즈로 바뀐 후에도 주축 외야수로 2007년까지 뛰었으나 2008년엔 발 부상 등으로 83시합 출장에 그치면서 주전에서 밀려났고, 시즌 종료 후 오무라 나오유키와의 트레이드로 6년 만에 모기업이 소프트뱅크로 바뀐 데뷔팀 호크스에 복귀하게 되었다.
3.3.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데뷔팀으로 복귀한 무라마츠였으나 발 부상의 악화로 노쇠화가 완연해지면서 2년간 30시합 출장에 그쳤고, 결국 2010년을 끝으로 은퇴를 선언하며 20년 간의 현역 커리어를 마무리지었다.통산 성적은 1673시합 출장, 타율 .277/OPS .686, 18홈런 393타점 270도루이다.
4. 지도자 생활
은퇴 후 스카우터로 전직하여 2011년부터 2013년까지 토카이, 코신에츠 지방 담당 스카우터로 일했고, 2013년부터 2015년까진 일본 야구 국가대표팀 코치를 역임했다.2014년부터 호크스의 3군 외야수비 및 주루 코치를 역임하게 되면서 코치로 호크스에 복귀했고, 2017년부턴 1군으로 승격하여 외야수비 및 주루 코치 겸 3루 베이스 코치를 역임했다. 2024년부턴 1군 타격코치로 전임했다.
5. 관련 문서
[가사1] ほとばしる闘志 思いは一つだ
(호토바시루 토오시 오모이와 히토츠다)
넘쳐흐르는 투지 마음은 하나다
今だ狙い打ち 行け村松
(이마다 네라이우치 유케 무라마츠)
지금이다 노려치기다 가라 무라마츠
현역 초창기부터 사용했던 응원가로, 소프트뱅크 복귀 후에도 이 응원가를 다시 사용했다.[가사2] 鍛え上げられた躰 そのハートも熱い
(키타에아게라레타 카라다 소노 하-토모 아츠이)
단련된 몸 그 심장(하트)도 뜨겁다
王者の道掴むぞ 魅せろ村松
(오-쟈노 미치 츠카무조 미세로 무라마츠)
제왕의 길을 잡는다 보여줘라 무라마츠
오릭스 이적 직후 새로 마련된 응원가로 팀이 버팔로즈로 바뀐 후에도 이 응원가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은퇴 후 2019년 교류전 때 야마모토 요시노부에게 유용되기도 했다.[3] 그나마 1998년과 2000년에 1차례씩 홈런을 쳐내면서 어찌저찌 통산 무홈런 탈출엔 성공했다.[4] 여담으로 FA로 오릭스에 이적하게 된 이유로 무라마츠 자신이 발에 부담이 많이 가는 인조잔디 구장에서 계속 뛰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 부담이 덜한 천연잔디 구장을 쓰는 구단에서 뛰길 원했고, 천연잔디 구장인 히로시마 시민구장을 쓰긴 하나 FA 영입을 일체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제외하면 이 조건을 만족하는 구단이 야후 BB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쓰던 오릭스밖에 없어서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이 설이 사실이라면 불과 1년만에 오릭스가 킨테츠와의 합병으로 인조잔디 구장인 교세라 돔 오사카로 이전하는 바람에 사실상 무라마츠가 천연잔디 구장을 미끼로 사기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
(호토바시루 토오시 오모이와 히토츠다)
넘쳐흐르는 투지 마음은 하나다
今だ狙い打ち 行け村松
(이마다 네라이우치 유케 무라마츠)
지금이다 노려치기다 가라 무라마츠
현역 초창기부터 사용했던 응원가로, 소프트뱅크 복귀 후에도 이 응원가를 다시 사용했다.[가사2] 鍛え上げられた躰 そのハートも熱い
(키타에아게라레타 카라다 소노 하-토모 아츠이)
단련된 몸 그 심장(하트)도 뜨겁다
王者の道掴むぞ 魅せろ村松
(오-쟈노 미치 츠카무조 미세로 무라마츠)
제왕의 길을 잡는다 보여줘라 무라마츠
오릭스 이적 직후 새로 마련된 응원가로 팀이 버팔로즈로 바뀐 후에도 이 응원가는 그대로 유지되었다. 은퇴 후 2019년 교류전 때 야마모토 요시노부에게 유용되기도 했다.[3] 그나마 1998년과 2000년에 1차례씩 홈런을 쳐내면서 어찌저찌 통산 무홈런 탈출엔 성공했다.[4] 여담으로 FA로 오릭스에 이적하게 된 이유로 무라마츠 자신이 발에 부담이 많이 가는 인조잔디 구장에서 계속 뛰는 것을 불편하게 여겨 부담이 덜한 천연잔디 구장을 쓰는 구단에서 뛰길 원했고, 천연잔디 구장인 히로시마 시민구장을 쓰긴 하나 FA 영입을 일체 하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히로시마 도요 카프를 제외하면 이 조건을 만족하는 구단이 야후 BB 스타디움을 홈구장으로 쓰던 오릭스밖에 없어서라는 설이 있다. 그런데 이 설이 사실이라면 불과 1년만에 오릭스가 킨테츠와의 합병으로 인조잔디 구장인 교세라 돔 오사카로 이전하는 바람에 사실상 무라마츠가 천연잔디 구장을 미끼로 사기를 당한 것이나 다름없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