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02 21:39:09

히로시마 도요 카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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NPB セリーグ / NPB 센트럴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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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도요 카프 한신 타이거스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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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미우리 자이언츠 주니치 드래곤즈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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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 도요 카프
Hiroshima Toyo Carp
[ruby(広島, ruby=ひろしま)] [ruby(東洋, ruby=とうよう)]カープ
구단 법인명 ㈜히로시마 도요 카프
(株式会社広島東洋カープ)
창단 1949년 11월 28일
연고지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구단 연고지 변천 히로시마현 (1952~)
구단명 변천 히로시마 카프 (1950~1967)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68~)
홈 구장 히로시마 종합구장 (1950~1957)
히로시마 시민 구장 (1958~2008)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히로시마 (2009~)
2군 구장 히로시마 유우 연습장 (1993~)
모기업 시민구단 (1950~1967)
마쓰다[1][2] (1968~)
감독 사사오카 신지 (佐々岡真司)
킷 스폰서 미즈노
마스코트 파일:Carp_Boya.png 파일:mascot_Slyly.png
카프 보야 [3] 슬라이리[4]
일본시리즈 우승
(3회)
1979, 1980, 1984
센트럴 리그 우승
(9회)
1975, 1979, 1980, 1984, 1986, 1991, 2016, 2017, 2018
센트럴 리그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2회)
2016, 2018
역대
한국인 선수
신성현 (2009~2013)
공식 홈페이지
1979년, 1980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78-야쿠르트 스왈로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81-요미우리 자이언츠
1984년 일본시리즈 우승 팀
1983-세이부 라이온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85-한신 타이거즈
1975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74-주니치 드래곤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76-요미우리 자이언츠
1979년, 1980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78-야쿠르트 스왈로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81-요미우리 자이언츠
1984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83-요미우리 자이언츠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85-한신 타이거스
1986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85-한신 타이거스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87-요미우리 자이언츠
1991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1990-요미우리 자이언츠 히로시마 도요 카프 1992-야쿠르트 스왈로즈
2016년, 2017년, 2018년 센트럴 리그 우승 팀
2015-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 히로시마 도요 카프 2019-요미우리 자이언츠

1. 개요2. 역사
2.1. 여러모로 불안한 시작: 창단 초창기 2.2. 전성기: 1970년대 중반 ~ 1990년대 초반2.3. 암흑기의 재래: 1998년 ~ 2012년
2.3.1. 2011년 시즌2.3.2. 2012년 시즌
2.4. 강팀 완성을 위한 준비: 2013년 ~ 2015년
2.4.1. 2013년 시즌2.4.2. 2014년 시즌 2.4.3. 2015년 시즌
2.5. 마침내 강팀으로!: 2016년 ~ 2018년
2.5.1. 2016년 시즌2.5.2. 2017년 시즌2.5.3. 2018년 시즌
2.6. 다시 최악의 한해를 보내는 히로시마: 2019년
2.6.1. 2019년 시즌
3. 홈구장4. 역대 성적5. 관중수 추이
5.1. 티켓 구하기 너무 어려워!
6. 팀 컬러7. 뛰어난 스카우트진8. 인기와 팬덤9. 모기업 마쓰다와의 관계10. 유니폼11. 대표적인 선수들
11.1. 현역(2019년 기준)
11.1.1. 투수11.1.2. 포수11.1.3. 내야수11.1.4. 외야수
11.2. OB
11.2.1. 투수11.2.2. 포수11.2.3. 내야수11.2.4. 외야수
11.3. 팀 출신 메이저리거11.4. 영구결번

1. 개요

파일:external/www.asahicom.jp/AS20160908001843_comm.jpg
히로시마 카프의 상징 붉은색

일본프로야구 센트럴리그의 프로야구단. 연고지는 히로시마현 히로시마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원자폭탄 공격으로 많은 피해를 입었던 히로시마 시민들에게 꿈과 희망, 그리고 용기를 주기 위해 창단된 아시아 최초의 시민구단으로 다른 구단에 비해 시민구단의 성격이 강하다. 그렇기 때문에 당시 전후 히로시마와 관련된 이야기 등에서 주인공이 카프의 팬으로 등장하는 경우가 많다.[5] 히로시마 팬들의 열정적인 모습과 팀의 컬러가 붉은색이라 팀의 애칭으로 아카헬([ruby(赤, ruby=あか)]ヘル, 붉은 헬멧) 군단이라 불린다.

팀 명칭인 카프는 잉여 잉어란 뜻으로 히로시마를 흐르는 오타가와(太田川)에 잉어가 많이 서식해서, 그리고 원자폭탄 공격으로 무너졌던 도시를 살리자는 강렬한 메세지를 담고 있는 '[ruby(鯉, ruby=コイ)]の[ruby(滝登, ruby=タキノボ)]り(코이노타키노보리)' 즉 '폭포를 거슬러 올라가는 잉어'[6]에서 유래했다. 한편, 팀명인 '카프(Carp)'는 일본프로야구 팀 중 유일하게 복수형 어미인 '-s'자가 안 붙은 팀명…으로 보이지만 실제로 'carp' 단어 그 자체는 단수와 복수를 모두 쓸 수 있는 단어라 사실상 복수형태의 단어다. 보통 영어단어 중 수효가 너무나 많아 셀 수 없는 경우에는 단어 자체가 단수와 복수를 모두 쓸 수 있는 경우가 많다. 특히 동물의 경우 어류나 군집동물들이 이런 경우가 많다(fish, sheep, cattle, deer 등). 참고로 한국의 경우는 KBO 리그 역사상 단 두팀만이 단수로 된 팀명을 가지고 있었는데 MBC 청룡kt wiz이었다. 메이저리그는 30개 팀 전부가 다 팀명이 복수로 되어 있다.

일본프로야구 12개 구단 중 가장 가난한 구단인 현실은 여전하다. 자금력 자체의 문제도 있지만, 애초에 경영진이 돈을 쓸 의지 자체가 없는게 문제. 현재 모기업은 마쓰다이지만 마쓰다 경영진은 적자가 나더라도 구단 경영에는 적극적으로 개입하지 않는다는 방침을 갖고 있다. 그래서 아직까지도 시민구단의 성격이 매우 강하다.

사실 한국에서 야구단을 운영하는 기업은 히어로즈 및 NC를 제외하고는 하나같이 모두 대기업이다. 삼성과 KIA(현대자동차)는 그냥 각각 재계 1,2위를 차지하는 쌍두마차. LG, 롯데, SK, kt, 한화도 재계순위 10위 안에 들고, 그보다 약간 처지는 두산 역시 재계순위 20위 안에는 든다. 반대로 일본프로야구의 모기업은 신문사철도회사 자체로는 재계에 명함 내밀기 어려운 수준이고, 한화와 규모가 유사한 마쓰다가 소프트뱅크와 함께 최대 규모에 해당한다. 요미우리나 한신처럼 애초에 야구단이 돈을 벌거나, 오릭스처럼 모기업이 금융과 관련된 사업을 하거나, 세이부처럼 구단주가 돈을 쓰거나 하는 곳이 자금력을 발휘하게 되는 셈. 여담으로 세이부는 전 사주 사망 후 여러 곡절을 거쳐 모기업이 분열되었다.

그리고 현존하는 NPB 12개 팀 중 일본시리즈를 우승한 지 가장 오래된 팀이다.(1984년 우승, 2018년 기준으로 34년) 여기에 비교 범위를 아시아의 모든 프로 스포츠 리그로 넓힐 경우에도 한 번이라도 우승 경험이 있는 팀 중 우승 기록이 가장 오래된 팀이 이 팀이다.[7] 맨날 우승 못한다고 징징대는 한신 타이거스도 히로시마한텐 딱 1년 밀린다.(2018년 기준 33년) 게다가 우승 년도를 봐도 구단 첫 우승이 세계 프로야구 사상 최후의 70년대 우승팀이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이고 2번째 우승은 세계 프로스포츠 최초 1만패팀이 처음으로 우승한 해이며 세번째이자 마지막 우승이 느그가 프로냐고 야단맞는 반도의 어느 구단이 구단 사상 첫 우승을 한 해이자 한신과는 다른 미국호랑이가 마지막으로 우승한 해이다.

사실 2007년까지 히로시마는 범접도 못할 정도로 우승 못한지 독보적으로 오래된 팀이 버티고 있었는데[8] 2007년 이후로는 히로시마가 이 부문 최고 기록을 갖고 있고, 나머지 11구단은 모두 1984년 이후 우승을 경험했다. 심지어 그 사이에 파리그 뉴비 구단마저 우승을 했다.[9]. 게다가 관서의 아이돌 구단만년 호구왔능가팀과 더불어 센트럴 리그 20세기 최후의 일본시리즈 우승팀 삼연성(?)을 구성 중이다. 이게 얼마나 비참한 시츄에이션인고 하니 퍼시픽 리그의 유일한 20세기 최후의 우승팀이 1996년의 오릭스 버팔로즈(이땐 블루웨이브)란 사실에 견줘봐도 처참하다. 위에 우승년도를 보면 알 수 있지만 1979년, 1980년, 그리고 마지막 우승인 1984년이다. 다시 말해 70년대 후반과 80년대 초반 우승 이후 우승이 현재까지 없다. 당장 삼성 라이온즈가 1985년 전, 후기 통합우승 이후 창단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이룬게 2002년이다. 그리고 이건 KBO 리그 팀들 중 가장 늦은 한국시리즈 우승이다. 그리고 이 때까지 걸린 기간은 17년이다.

여담으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10]와 더불어 한국에서 학원야구를 거치고 진출한 한국 선수가 단 한 번도 1군 무대에서 뛰지 못한 NPB 팀이기도 하다. 나머지 10개 구단은 모두 한국에서 진출한 한국인 선수를 보유한 적이 있다. 드래프트에서 한국인 선수인 신성현을 지명한 적은 있으나, 애초에 신성현은 일본에서 고등학교를 나온 선수였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2. 역사

2.1. 여러모로 불안한 시작: 창단 초창기

1950년 센트럴리그에 참가한 이후 줄곧 안습함을 내달리고 있었다. 당시 세리그 구단이 7개 구단이었는데[11] 1951년에는 다이요 훼일즈[12]에 합병까지 논의될 정도로 경영난이 심각하였으나[13] 히로시마 시민들이 모은 성금으로 합병만은 면했다. 그리고 1952년 짝수로 팀을 맞추기 위해 승률 3할 이하 팀을 타 구단과 합병하기로 결정하면서 가뜩이나 시민구단으로 창단되어 재정적 받침이 없었던 히로시마 카프의 존속을 생각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정도였다.

그러나 당시 팀의 에이스인 하세가와 료헤이가 이끄는 히로시마 카프는 극적으로 3할 승률에 안착, 살아남을 수 있었다. 반면 쇼치쿠 로빈스는 3할 이하로 시즌을 마감하며 다이요 훼일즈와 다이요-쇼치쿠 로빈스라는 이름으로 합병[14], 두 기업이 함께 운영하는 구단이 된다.

하지만 태생적으로 자금이 부족한 시민구단인지라 언제나 재정난에 시달렸고, 늘 성적은 B클래스(4위~6위)를 맴돌았다. 1967년까지 18년 연속 B클래스는 NPB 사상 두번째 최장 기록이다.[15] 결국 1968년 히로시마 시민들이 단체로 현내 대표 기업인 도요공업(東洋工業, 현재의 마쓰다)에 구단 좀 맡아 달라고 탄원하여 결국 마쓰다가 히로시마의 운영을 맡게 되었다. 구단주 마쓰다 쓰네지는 새로 감독에 취임한 네모토 리쿠오 에게 "시즌 전패를 해도 좋으니 히로시마의 기틀을 만들어 달라" 고 요청했고 네모토 감독은 오너의 지시를 받들어 팀을 그해 센트럴 리그 3위로 이끌며 창단 후 첫 A클래스 진입에 성공했다. 그러나 이후 히로시마는 이후 제자리를 찾으며 상황은 그다지 나아지지 않았다. 본격 센트럴 리그 팀들의 맛 좋은 잉어회 또는 구이.

2.2. 전성기: 1970년대 중반 ~ 1990년대 초반

그래도 이런 노력이 결실을 거둬 고바 타케시 감독이 취임한[16] 1975년, 창단 25년 만에 처음으로 센트럴리그 우승을 달성하면서 안습으로 일관하던 구단 역사에 종지부를 찍기 시작했다. 이 해부터 빨간색 유니폼을 입기 시작한 것과 히로시마 전성기의 시작이 겹쳤기 때문에 세간에서 히로시마를 아카헬 군단(붉은 헬멧 군단)이라 부르기 시작하였다. 다만 일본시리즈에선 한큐 브레이브스에게 6전 2무 4패로 우승에 실패했다. 이 때만 해도 한신 타이거스팬들은 꿈에도 몰랐을 거다. 일본시리즈 우승 커리어를 야쿠르트에 이어 히로시마에게까지도 추월당할 줄은. 이후로도 고바 감독의 지휘 하에 1979년[17]과 1980년 일본시리즈 에서 킨테츠 버팔로즈를 상대로 2년 연속 4승 3패의 전적으로 대망의 일본 시리즈 우승의 위업을 달성하였다. 그리고 니시모토 유키오 감독의 콩라인 커리어가 추가되었다. KBO리그의 전설적인 30승 투수로 남긴 장명부가 79,80년 2연패하던 시절에 주전이었고 많은 활약을 하면서 올드팬의 추억에 아직도 남아있다.

그 후에도 1983년부터 1991년까지 A클래스에서 벗어난적이 없었으며 특히 1984년, 9년 전 일본시리즈에서 맞붙었던 한큐 브레이브스를 상대로 현재까지는 최후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차지하였다. 이 당시 팀을 이끌던 선수들은 타자로는 야마모토 코지, 기누가사 사치오, 타카하시 요시히코 등이 중심이 된 호타준족의 타자들이 있었고, 에나츠 유타카, 키타벳푸 마나부, 장명부, 김기태, 오노 유타카, 츠다 츠네미 등의 투수들이 주축이 되어 활약하였다. 1991년에는 프랜차이즈 스타 출신 야마모토 코지 감독의 지휘 아래 리그 우승을 거두며 일본시리즈에 진출, 7차전까지 가며 분투했으나 당시 황금시대에서도 절정을 달리고 있던 세이부 라이온즈에게 패해서 준우승에 머물렀다. 그리고 22년동안 포스트시즌 진출을 하지 못했다. [18]

그래도 1970년대와 1980년대에는 일본의 고도 경제성장으로 인한 활황 덕분에 구단이 어느 정도는 돈을 들일 여력이 있었고, 비교적 드래프트가 공정하게 진행되던 1990년대 초중반까지는 모자라는 자금력을 우수한 스카우팅과 빡센 훈련으로 메우면서 상위권을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FA 제도가 실시되고, 신인 드래프트에서 사실상 자유 스카우트나 다름없는 역지명 등 각종 기괴한 제도가 도입되기 시작한 1990년대 이후에 상황이 크게 달라졌다. 자금력이 풍부한 요미우리 자이언츠 같은 팀들에게 극도로 유리해진 리그 환경에서 카프는 선수들에게 투자는 커녕 있는 선수도 지키지 못하는 상황이 되었고, 팜에서 애써 키운 뛰어난 선수들이 FA나 출혈성 트레이드로 줄줄이 유출되는 등 어려움을 겪었다.

그래서 1991년의 리그 우승 이후 2012년까지 센트럴리그 우승은 고사하고 포스트시즌 진출이 없는 것은 물론이요,[19]타 구단에 비해 재정이 빈약한 탓에 타 팀에게 주축 선수들을 뺏기는 경우가 많았다. 19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프랜차이즈 출신 미무라 토시유키 감독의 조련 아래 오가타 고이치(우익수)[20]-쇼다 고조(2루수)[21]-노무라 켄지로(유격수)-에토 아키라(3루수)-마에다 토모노리(중견수)-루이스 로페스(1루수)-카네모토 토모아키(좌익수)-니시야마 류지(포수)-투수로 이어지는 핵타선 혹은 붉은 악마 타선[22]이 나름 유명했다. 하지만 투수진은 가와구치-기타벳푸-오노의 노쇠화와 츠다 츠네미의 사망, 그 뒤를 이었어야 할 유망주 투수들이 무리한 혹사 기용으로 한두해 반짝한 뒤 부상 -> 기량저하 테크를 타 하나둘씩 사라지는 일들이 반복되면서 투수진 뎁스가 겨우 사사오카 신지 한 명만 풀타임으로 버티는 정도로 매우 얄팍해졌다. 결국 우승 기회에서 번번이 투수진 붕괴로 무너지고, 급기야 자금난 속에서 이 무시무시한 타선을 유지할 길이 없어 에토 아키라를 FA로 요미우리 자이언츠에 내준 것을 시작으로, 카네모토 토모아키, 아라이 타카히로 등이 줄줄이 한신 타이거스로 이적하면서 히로시마는 한신의 팜(=2군)이 아니냐는 우스개소리가 생길 정도로 주축 선수들의 전력 유출이 심각했다. 심지어는 앤디 시츠, 네이트 민치, 그렉 라로카, 데니스 사파테 등 우수한 외국인 선수들도 마찬가지로 타 팀으로 빠져나가는 신세를 겪었다!

2.3. 암흑기의 재래: 1998년 ~ 2012년

1998년부터 2012년까지 15년 연속 B클래스를 기록했으며, 게다가 앞으로도 별로 좋아질 건덕지가 안 보였기 때문에 난카이 호크스 - 후쿠오카 다이에 호크스 팀의 암흑기에 세운 20년 연속 B클래스 기록을 갈아 치울 최유력후보로 거론되고 있었다(…).[23]

2000년대 들어서는 타 구단, 특히 한신의 팜 구단이라는 오명을 들을 정도로 스타플레이어의 유출이 심각했다. 카네모토 토모아키, 앤디 시츠, 아라이 타카히로 등이 모조리 FA로 한신 타이거스로 적을 옮긴건 상당히 유명하다. 거기에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진출까지… 정말 꿈도 희망도 없어보였다. 하지만 2013년 CS에서는 멋지게 복수에 성공하였다! 그리고 구로다도 2015년 복귀!

2009년에 오랫동안 써온 히로시마 시민구장을 뒤로하고 일본 최초의 비대칭 야구장인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로 옮기고, 유니폼도 새롭게 바꾸면서 이미지 쇄신을 감행하고 있다. 거기에 프랜차이즈 플레이어인 노무라 켄지로가 전격 감독으로 취임하면서 과거 '붉은 악마 카프'의 재현을 많은 팬들이 바라왔다. 그런데 현실은

여담으로 2009년 교류전 당시 치바 롯데 마린스와의 막장 경기가 유명한데, 2009년 6월 10일 QVC 마린 필드에서 열린 경기에서 히로시마의 선발투수 콜비 루이스의 맹활약으로 치바 롯데가 잔루만 11개에 13삼진을 당하며 완봉패(...)를 기록했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바로 다음날 경기에서 2:23으로 롯데에게 탈탈 털린 안습한 상황을 연출했다(...) 특히 치바 롯데는 6회말에만 무려 20명의 타자가 타석에 들어섰다. 1이닝 타자이순 성공, 12안타 4사사구 15타점 15득점을 기록하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단일이닝 최다득점 기록을 세웠다. 6회말만 무려 48분이 걸렸을 정도. 스코어보드에 A, B도 아니고 F를 새길 기세 그리고 롯데의 3번 타자 오마츠 쇼이츠한 회에 타석에 3번이나 서는 진기록을 세웠다. 6회말 선두타자이자 오오마츠의 바로 앞 타자였던 후쿠우라 카즈야는 도중에 교체되면서 2연타석만 기록.

2.3.1. 2011년 시즌

센트럴리그가 전체적으로 혼전양상을 보이면서 시즌 중반까지 이따금(…) 상위권에 올라갔다가 DTD하다를 반복했다. 단 2일이긴 하지만 2위를 기록한 때도 있었고, 올스타전까지 줄곧 3 - 5위 사이를 왔다갔다하면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권을 서성대며 히로시마 팬들의 기대를 부풀려 놨지만, 올스타전 이후로 DTD 시전. 결국 또 5위로 끝났다. 2011년도 역시나로 끝나면서 연속 B클래스 기록을 14년으로 연장했다. 난카이-다이에로 이어진 호크스의 B클래스 20년 연속 기록 갱신에 7년 남았다.

2.3.2. 2012년 시즌

2012년 시즌에는 7월 경까지 4위를 기록하더니, 7월 13일부터 15일까지 열린 원정 경기에서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를 3전 전승으로 이기며 3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코앞까지 올라왔다.[24] 그리고 때마침 요코하마도 야쿠르트를 상대로 3전 전승하면서(…)[25], 히로시마는 야쿠르트와 함께 공동 3위로 올라섰다. 그러고 또 며칠 후에는 결국 야쿠르트를 제치고 단독 3위로 등극하였다.

야쿠르트를 1~2게임 차로 앞선 이후로 초기에는 간혹 도로 뒤집히기도 했지만 그것도 잠시. 오히려 굳히기에 들어갔는지 2012년 8월 31일 기준으로 4위 야쿠르트와 2게임 차이로 우위를 유지했다[26]. 그 기세 그대로만 갔으면 연속 B클래스의 기록을 종결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 사상 첫 진출을 기대…할 수 있었으나,

역시 그동안 값싼 선수들 위주로 스카우트를 해온 탓에 선수층이 빈약해서인지, 오랜만에 피를 말리는 포스트시즌 다툼을 하는 바람에 선수들의 경험부족이 드러난 건지 9월 들어 6승 17패로 내팀내를 시전하면서 3위자리를 야쿠르트에게 내주고 2012년에도 포스트시즌의 꿈은 좌절되었다. 그와는 대조적으로 포스트시즌 경쟁팀이던 야쿠르트는 9월 한달에만 16승 8패의 호성적을 거두면서 고기도 먹어본 놈이 잘 먹는다는 속담만 입증했다. 특히 9월 17~19일 야쿠르트와의 맞대결에서 싹쓸이 3연패를 당한 게 치명타가 됐다.

이 시점에서 비밀번호555455565545554를 찍으면서 결국 15자리로... 불행중 다행이라면 한신 타이거스DTD력이 상상을 초월한 바람에 4위는 수성하였다. 그것도 무려 4년만에(…). 의외로 비밀번호 찍는 동안 6은 한번밖에 안 찍었다. 6위에 워낙 넘사벽의 팀이 자리를 잡고 있어서…

2.4. 강팀 완성을 위한 준비: 2013년 ~ 2015년

2.4.1. 2013년 시즌

히로시마 도요 카프/2013년 항목으로.

2.4.2. 2014년 시즌

히로시마 도요 카프/2014년 항목 참조.

2.4.3. 2015년 시즌

히로시마 도요 카프/2015년 항목 참조.

2.5. 마침내 강팀으로!: 2016년 ~ 2018년

2.5.1. 2016년 시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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히로시마의 우승에는 '왕도'가 없었다
히로시마 도요 카프/2016년 참고.

2.5.2. 2017년 시즌

히로시마 도요 카프/2017년 참고

2.5.3. 2018년 시즌

시즌 시작하기 전부터 리그 3연패를 예상하는 전문가들이 많았다. 전년도 포스트시즌의 실패는 비로 인한 불규칙한 일정과 분위기를 탄 상대팀, 타선의 주축이 두명이나 부상으로 빠지는 악재와 돌대가리 감독의 투수 당겨쓰기가 겹친 불운으로 보는 견해가 대부분. 여전히 센트럴 리그에서 가장 강력한 전력으로 평가받으며 70년대 후반~80년대 초반 이후 최고의 전성기를 구가하는 중이다. 다만 올 시즌 중 FA 자격을 획득하는 마루 요시히로를 필두로 조만간 키쿠치, 노무라 등 주축 선수들의 FA가 차례차례 예정되어 있고 브래드 엘드레드, 크리스 존슨 등 외국인 선수들도 각각 노쇠화와 계약기간 종료 등으로 떠나갈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문제. 돈을 풀어 선수들을 붙잡을 의지를 보여주지 않아온 구단의 경영방침상 이 전성기가 얼마나 지속될 수 있을지는 의문이며, 2018년이 그 전력들을 온전히 데리고 갈 수 있는 사실상 마지막 해일 수 있다는 전망 역시 존재한다. 아무튼 리그 3연패가 세리그에서는 요미우리 자이언츠만 이뤄낸 대업인 만큼 올 시즌에 대한 기대가 크다. 그보다 더 큰 염원이라 할 수 있는 일본시리즈를 우승할 수 있을지는 미지수지만

그리고 시즌 시작하자마자 그러한 전문가들의 예상대로 1위를 달리고 있다. 코어 중의 코어인 4번타자 스즈키 세이야가 부상으로 개막 시리즈부터 조기 이탈하고, 작년 승률왕을 차지하며 급부상한 영건 선발 야부타 카즈키가 컨디션 난조로 불펜으로 강등되는 등의 악재가 있지만, 작년 시원찮은 성적을 보여준 2016년 사와무라상 수상자 크리스 존슨이 부활하고 우익수 자리도 노망주 시모즈루 코우 등이 분전하며 공백을 메웠다. 무엇보다도 FA로이드를 맞았는지 본즈급 스탯을 찍으며 트리플 크라운 설레발이 돌 정도로 좋은 초반 페이스를 보여주는 마루 요시히로가 중심타선을 든든하게 지키고 있다. 하지만 스즈키 세이야가 1군에 복귀하자 무슨 교대라도 하는 듯이 마루가 부상당했다(…). 주축 선수들의 부침과 예상치 못한 DeNA의 초반 연승과 같은 상황 때문에 압도적인 1위라고 할 수는 없지만, 옆동네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가 잘 나갈때마냥 뎁스의 힘을 보여주면서 4월 내내 1위 자리를 무리없이 수성했다.

5월이 되자 중하위권에서 혼전이 벌어지는 사이 오히려 더 격차를 벌리고 있다. OPS 10할을 찍던 마루가 부상으로 빠진 중심타자 한 자리는 도미니카 출신 육성형 용병 자비에르 바티스타가, 중견수 자리는 준족의 기대주 노마 타카요시가 포텐 터진 모습을 보이며 메꿔주고 있고, 우완 에이스 노무라 유스케야부타 카즈키가 부진해 선발진이 조금 헐거워지긴 했지만 오세라-존슨-오카다의 쓰리펀치가 좋은 활약을 보이고 있다. 다나카-키쿠치의 키스톤 테이블세터도 페이스가 올라오고 있으며 포수 아이자와 츠바사도 규정타석 미달이기는 하지만 OPS 9할을 넘기는 좋은 타격을 보여주는 중. 선발 투수 오세라 다이치가 5월 월간 MVP에 선정되는 활약을 보이며 얇은 선발진을 이끌었으며, 19세의 흑인 혼혈 투수인 아두와 마코토가 중간계투로 1군에 올라와 10경기가 넘도록 0점대 방어율을 유지하며 미래 더 큰 성장을 기대하게 했다.

그러나 교류전 시작이 안 좋다. 7-3으로 1차전을 내주고, 2차전은 가져갔는 데 성공했으나 3차전에는 2회에만 10점을 내주며 A로시마 세이부에게 루징을 내줬다. 센트럴 리그 위닝팀이 요코하마와 야쿠르트 뿐이지만 하필 그 요코하마가 2위인지라. 리그내 경쟁도 경쟁이지만 일본시리즈에서 맞붙을 가능성이 높은 잠재 상대팀에게 쉽게 루징을 당함으로써 과연 34년 묵은 숙원을 풀 수 있을지 약간 걱정되는 면도 있다. 그래도 세이부는 상대 리그 수위팀이라고 변명이라도 가능했는데 그 다음 상대인 퍼시픽리그 5위 치바 롯데 마린즈를 상대로도 부진한 경기력을 보이며 1승 2패로 루징 시리즈. 이거에 대해서는 변명의 여지가 없다. 교류전 시작하고 나서 1경기 빼놓고 매경기 7실점 이상 실점을 하는 등 투수진의 부진이 눈에 띈다. 과거 퍼시픽 리그의 호구노릇을 하던 시절로 되돌아가기 싫으면 투수진을 빨리 정비해야 하는 상황. 홈에서 열린 파리그 2위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와의 시리즈는 우천취소로 1경기를 날려 각각 1경기씩을 가져갔다. 첫 경기는 선발 오카다의 연속 볼넷에 이은 스즈키 세이야의 실책성 플레이로 3점을 일찍 내주었지만 이후 선발 오카다와 구원진들이 추가 실점을 허용하지 않고, 9회말 공격에서 마루와 스즈키가 출루한 뒤 노마 타카요시가 끝내기 적시타를 때려내며 '역전의 카프'다운 승리를 가져갔다. 하지만 5선발 나카무라 유타가 나온 다음날 경기는 3회에 7점을 허용하면서 일찌감치 무너졌다. 상술한 아두와, 후지이 코우야같은 신예급 투수나 DeNA-닛폰햄에서 방출된 뒤 줏어온 좌완투수 사토 쇼마처럼 새로운 얼굴들이 중간계투진에 얼굴을 비추고 있지만, 노무라와 야부타의 부진으로 생긴 선발진 구멍이 큰 고민거리로 자리잡은 상황.

그래도 다음 시리즈인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와의 홈 3연전을 스윕하면서 한숨을 돌렸다. 비록 퍼리그 제일의 물타선인 라쿠텐을 상대했다지만 3경기 합쳐 1실점밖에 내주지 않았다. 그러나 오릭스 버팔로즈와의 원정 3연전에서는 3경기동안 7개의 홈런을 얻어맞으며 24실점하며 스윕당했다. 1, 3차전은 이제 막 2군에서 올라온 하위 선발 요원인 후쿠이 유야와 육성형 용병 헤로니모 프랑수아가 털린거니 그렇다 쳐도, 그동안 3선발 역할을 수행하며 팀내 2위의 이닝을 먹은 오카다가 8실점하며 얻어맞은 것은 큰 충격이다. 부진은 교류전 막바지까지 이어졌다. 맞대결 전까지 3연속 루징시리즈를 기록하며 예전같지 않다는 소리를 들은 소프트뱅크를 상대로 시즌 9승을 올리면서 에이스 역할을 해온 다승선두 오세라 다이치를 첫경기 선발로 내세웠으나 4이닝동안 3피홈런 7실점의 최악의 투구로 침몰. 4연패에 빠졌다. 다음날 경기는 크리스 존슨이 6회까지 소뱅타선을 1실점으로 틀어막았으나 7회 올라온 이마무라 타케루가 화끈하게 불을 지르며 역전패. 불펜의 난조로 연패를 5로 늘리면서 교류전 마지막 소뱅 3연전의 루징 시리즈와 3년만의 교류전 루징을 확정지어버렸다.

아직은 리그 내에서 유일하게 승률 5할을 넘고 있고 2위이하가 승률 4할대에서 자기들끼리 물어뜯는 이전투구 양상을 보이고 있어서 여유가 있기는 하나, 교류전에서 경기당 평균 6점에 가까운 실점을 하며 12개 구단 최악의 성적을 거두고 있는 투수진이 분발하지 않으면 3연패나 일본시리즈 설레발은 커녕 예년의 센트럴리그마냥 진흙탕 이전투구의 소용돌이에 끌려갈 가능성도 얼마든지 있다. 포스트시즌 생각까지 하면 교류전 종료 후 휴식기에 재정비가 필요한 상황.

악몽같은 교류전이 끝나고 리그전이 재개되자 다시 2위이하와 게임차를 벌리면서 독주중이다. 교류전 끝나자마자 6연승을 달리면서 2위이하가 자기들끼리 물어뜯는 사이에 다시 치고 나갔다. 7월달 들어와서 리그 내 유일한 승률 5할 이상으로 2위 이하와는 7게임차를 벌리면서 순항중이다. 이는 2위에서 최하위까지의 승차보다도 한게임이 더 많은 승차이다. 게다가 한 팀이 2위로 올라서면 다름 팀이 발목을 잡고 끌어내리는 상황이 반복되면서 적어도 센트럴리그 안에서는 히로시마를 잡을 팀은 없어보인다. 사상 첫 리그 3연패는 확실해 보이나, 교류전에서 퍼시픽리그에 약한 모습을 보여준 터라 34년만의 일본시리즈 우승을 위해서는 지금보다 더 단단한 모습을 보여줄 필요는 있다.

8월에 들어와서 독주체제는 더욱 공고해져서 8월 17일 요코하마 원정에서 백투백투백 홈런을 얻어맞고 패배하며 2년 연속으로 기억폭력을 당하긴 했지만 8월 하순에 매직넘버가 들어왔다. 이 와중에 도미니카 아카데미 출신 육성형 좌완 헤로니모 프랑수아가 157km/h 광속구를 앞세운 탈삼진 쇼를 벌이며 카프로서는 정말 오랜만에 믿음직스러운 필승조 좌완 투수로 발돋움했는데, 8월 한 달에만 18경기에 등판하며 일본프로야구 한 달 최다경기 등판 기록을 경신할 정도로 오가타 고이치 감독에 이해 애니콜로 혹사당했다….[27] 매직넘버가 들어온 후에도 2위 이하 팀들이 9월에 들어와서도 여전히 승률 5할을 넘지 못하는 초유의 사태에 순조롭게 매직넘버가 줄어들어 9월 8일에 매직넘버 10을 기록했다. 9월 4일에는 아라이 타카히로가 2018시즌을 끝으로 현역은퇴를 선언했다. 다만 매직넘버가 들어온 이후 나사들이 풀렸는지 아라이가 은퇴선언을 한 이후 5연패를 기록 중이다. 다만 2위인 야쿠르트도 거의 같이 지는 일이 반복되면서 숫자 자체는 순조롭게 줄어들고 있는 중이다. 그리고 덤으로 이번 시즌은 유난히 최하위 주니치 드래곤즈에게 약한 모습을 보였는데 결국 9월 7~9일 3연전 스윕패로 맞대결에서 13패째를 기록하면서 상대전적 열세를 확정지었다. 대신 요미우리가 워낙에 히로시마의 호구 본능을 발휘해서 압도적 1위이라는거….

9월들어서 타선 침체가 좀 심각한 수준이라 8월에 쾌속으로 줄여가던 매직넘버를 거의 줄이지 못하고 있다. 주니치나 DeNA에게 무기력하게 지는 날도 있고 여러모로 페넌트레이스 후반에 와서 페이스가 급 안좋아진 느낌. 어쨌든 9월 14일에 양리그 최초로 클라이맥스 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다. 매직넘버는 4을 남겨둔 상황.

9월 16일 2위인 도쿄 야쿠르트와의 맞대결에서 이기고, 한신에게서 1승을 뽑아내고, 요코하마 디엔에이와의 3연전을 앞두고 있다. 여기서 위닝 시리즈를 거두거나, 1승 루징 시리즈라도 야쿠르트와 맞붙는 주니치가 1승이라도 거두면 그 뒤 남은 경기를 모두 지고 야쿠르트가 모두 이길 경우를 가정하면 승무패 동률이 되지만 승자승 우세가 되기에 세리그 3연패가 확정되며, 홈에서 우승을 확정짓게 된다.

첫경기인 9월 23일에서는 2-1로 승리하여 매직넘버를 줄였으나 야쿠르트도 이겼기에 잠시 미루었고, 다음 경기는 5-7로 패했다. 야쿠르트도 스윕에 1경기 남기며 또 미루게 생겼다. 마지막 경기에서도 히로시마는 결승 투런 맞고 패배, 주니치는 9회초 2점차 블론에 10회초 제대로 방화하며 3연전 안에 우승하지 못하게 되었다. 주니치 못한다 못한다 했지만 저렇게까지 못할 줄이야. 다행스럽게도 다음 경기가 홈에서 야쿠르트 3연전이라 홈에서 우승 확정 기회는 남아있게 되었고, 여기서 0승 3패 피스윕만 안 당하면 우승을 확정짓는다. 결국 도쿄 야쿠르트를 직접 10-0으로 두들겨패며 리그 우승을 확정, 구단 사상 최초이자 센트럴리그 사상 2번째인 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또한 마츠다 줌줌 스타디움으로 홈구장을 옮긴 이래 처음으로 홈구장에서 우승을 결정지었다.

참고로 이전 3연패를 달성한 팀은 다름아닌 요미우리 자이언츠. 아니 애초에 3연패를 달성한 게 센트럴리그에선 요미우리 단 1팀 뿐이었다.[28] 그것도 여러 번(…). 최근 기록은 2012~2014년 요미우리 자이언츠.

리그 3연패는 했지만 숙원인 일본시리즈 우승의 가능성 여전히 물음표가 남는데 유난히 결정적인 고비를 잘 넘지 못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고 지난 해보다 투수력의 약화가 현저해졌다. 타선도 마루-스즈키-마츠야마의 중심타선과 포수 아이자와가 잘 치고는 있지만 다나카-키쿠치 키스톤 테이블세터진이 다소 부진한 상황. 클라이맥스 시리즈야 통과할 확률이 높겠지만 일본시리즈에서 세이부의 핵타선이나 팀 홈런수로만 따지면 그 핵타선을 뛰어넘는 호크스의 중량타선을 과연 약화된 투수력으로 버틸 수 있을지 우려가 되고 있는 중이다. 다만 호크스는 올해 세이부 원정경기에서의 상대전적이 열세라서 CS에서 탈락할 가능성이 높고 세이부도 마찬가지로 투수진이 시즌 내내 안 좋은 상황이라 희망을 버리는 건 이르다.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가볍게 우승하고 만나는 상대는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 세이부 핵타선이 완전히 식으면서 세이부는 피하고 구단 역사상 처음으로 후쿠오카 연고 구단과 맞붙게 되었다. 하지만 소뱅은 세이부보다 더한 핵타선이다. 2018년 일본시리즈에서는 소뱅의 타선은 그럭저럭 잘 막았으나 상대팀 포수 가이 다쿠야와 다카야 히로아키를 상대로 도루를 시도하다가 단 한번의 성공도 거두지 못하고 무려 8번이나 비명횡사하면서 팀 컬러였던 "기동력 야구"를 살리지 못하고, 상대 타선에게는 요소요소에서 치명타를 얻어맞으면서 결국 또다시 일본시리즈 우승에 실패했다.

팀의 1989년생 타나키쿠마루 트리오인 기쿠치 료스케(2루수), 다나카 고스케(유격수), 마루 요시히로(외야수)가 골든 글러브 수상자로 선정되었다. 키쿠치는 6년 연속 수상이며 개인의 통산 6번째 수상이고, 득표수 256은 양대 골든글러브 수상자 18명중 최다득표다. 센트럴리그 2루수 최다 수상자(6회)인 아라키 마사히로(주니치)와 어깨를 나란히 했다. 다나카는 프로 5년차의 첫 수상이며, 사카모토 하야토(요미우리)와 불과 6표 차이밖에 나지 않는 대접전이었다. 다나카는 시즌 전경기(143)에 출장해 수비율 .989를 찍으며 안정된 수비를 선보였다. 구단 유격수로는 2010년의 소요기 에이신에 이어 8년만의 쾌거다. 마루는 6년 연속 수상이며 통산 6번째 수상이다. 베스트나인에는 마루, 스즈키의 주축 외야수 2명과 주전 포수 아이자와 츠바사가 이름을 올렸다. 아이자와는 체력안배나 크리스 존슨이시하라 요시유키를 전담 포수로 둔 등의 기용상 문제가 겹쳐 규정타석에 한참 못 미치는 106경기 377타석만을 소화했지만, .305 .401 .492 OPS .893 13홈런 41타점의 뛰어난 타격성적을 올리며 공격형 포수로서의 모습을 제대로 보여줬다.다만 도루저지율이건 프레이밍이건 수비 관련 수치들은 죄다 별로긴 하다... 13홈런은 카프 구단의 포수로서는 단일시즌 기록이며, 이 해 센트럴리그에서 두 자릿수 홈런을 친 유일한 포수였다. 옆 리그에도 모리 토모야를 빼면 이만한 타격성적을 낸 포수는 없다. 마지막으로 마루는 2년 연속 센트럴리그 MVP에 오르며 커리어하이 시즌의 정점을 장식했다.

오프시즌에는 국내 FA권을 취득한 마츠야마 류헤이와 마루 요시히로의 거취가 화두가 되었다. MVP 마루야 말할 것도 없고, 마츠야마도 저평가받기는 했지만 그래도 3할에 두 자릿수 홈런을 꾸준히 찍어온 강타자라 둘이 나간다면 히로시마의 좌타라인은 사실상 멸종하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구단 입장에서는 다행스럽게도 마츠야마는 FA권을 행사하지 않고 팀과 재계약을 맺었지만, 마루는 FA권을 행사했고 구단은 당연히 '최선의 오퍼를 하겠다'식의 립서비스만 날린 뒤 무대응으로 일관했다. 마루는 결국 요미우리 자이언츠와 5년 30억엔의 대형 계약을 맺으며 팀을 떠나게 되어 에토 아키라-카네모토 토모아키-아라이 타카히로의 히로시마 강타자 유출이라는 슬픈 계보의 후계자가 되었다. 야후옥션에 마루 굿즈가 무더기로 올라온 것은 덤.

그러나 히로시마 프런트는 2019년 1월 마루의 보상선수로 요미우리의 프랜차이즈 스타였던 쵸노 히사요시를 데려오는 대형사고를 쳤다. 요미우리 사랑에 감동해 고향 가까운 팀으로 모셔왔습니다 이에 분노한 요미우리 팬들은 히로시마에 히로시마 출신 오오타케 칸은 물론, 소프트뱅크산 먹튀 모리후쿠 마사히코, 세이부산 먹튀 노가미 료마, 닛폰햄산 먹튀 요 다이칸[29], 야구도박범 타카기 쿄스케를 보상선수로 영업하고 있다(...).

2.6. 다시 최악의 한해를 보내는 히로시마: 2019년

시즌 초까지만 하더라도 요미우리의 V9시대 이후로 처음 나오는 리그 4연패를 할수 있느냐라는 말이 많았으나 히로시마의 에이스인 마루 요시히로를 요미우리에 보내버리는 일이 일어났다. 개막전에서 하라 감독이 복귀한 요미우리를 5:1로 이겨서 첫발이 좋았으나 사건이 일어났다. 바로 히로시마를 25년만의 리그 우승을 안겨주고 리그 3연패로 이끈 오가타 감독이 선수를 폭행한 것! 사건의 전말은 이렇다. 6월 30일 요코하마전에서 11회 초 2-2 동점에 1아웃 주자가 없는 상황에서 타석에 들어선 노마 다카요시가 에드윈 에스코바의 3구를 받아쳤는데 투수 뜬공을 예상하고 고개를 푹 숙이고 천천히 달렸다. 헌데 이 공을 에스코바가 못잡았고 뒤늦게 이걸 본 노마가 전력질주를 했지만 토스 아웃을 당하고 말았다. 결국 양 팀은 12회까지 점수를 내지 못하고 무승부로 경기를 마쳤다.

문제는 이 상황을 본 오가타 감독이 화가 잔뜩나서 노마를 감독실로 불러 싸대기를 여러대 때리는 등의 폭력을 가했다고 한다. 이 사실은 7월 24일에 대대적으로 알려졌고 결국 구단 측으로부터 엄중경고 조치를 받았다고 한다. 히로시마 구단은 엄중경고를 내린 이유도 설명했는데 이전까지 폭행을 쓴 적이 없었기 때문이라는 말도 덧붙였다. 오가타 본인 입장에서 더 난처해진건 안그래도 요즘 일본 내의 체육계 폭력을 뿌리뽑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컸는데 이 사건으로 이 목소리를 한층 더 증폭시킨 것이다.

이후 9월까지 상위권에 있다가 9월 21일 요미우리의 리그 우승이 확정되고 9월 24일 요코하마의 리그 2위도 확정이 되었다. 이제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진출 할 수있는 마지막 티켓은 어떻게든 3위를 지키는 것이었으나 그 조건이 한신이 주니치에게 2연승을 하지 않아야만 히로시마가 센트럴리그 클라이막스 시리즈의 마지막 티켓을 가져 요코하마전에 갈 수 있었으나 9월 30일 한신이 기적적으로 주니치에게 승리를 거두어 한신이 히로시마를 제치고 클라이맥스 시리즈에 가게되었다. 즉 한신이 3위, 히로시마가 4위를 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결과적으로 4년 만에 B클래스를 찍었고, 감독마저 사임했으니 히로시마의 2020년 시즌이 위험해졌다고 보면 되겠다.

2.6.1. 2019년 시즌

이번 시즌에도 전문가들의 지지를 받으며 리그 4연패의 가장 유력한 후보로 지목되었다. 다만 주력이던 마루 요시히로를 FA로 요미우리에게 내준 탓에 이전보다는 요미우리의 손을 들어주는 전문가들의 비중이 늘어나면서 지지율이 좀 떨어진 상황.

개막 3연전은 3년동안 호구로 삼아왔던 바로 그 요미우리를 상대로 한다. 강력한 대항마로 떠오른 상대를 시즌 시작부터 싹을 밟아놓을 필요가 있었고 개막전은 지난 시즌 내내 멘도사에서 놀던 아베 토모히로가 스가노 도모유키를 상대로 때려낸 뜬금포(!!!)[30]와 8회에 터진 타선, 오세라의 8이닝 무실점 역투에 힘입어 깔끔하게 5:0 완봉승으로 기분좋게 출발했으나 이어진 두 경기에서 연패를 하며 전년도에 홈에서 9승 2패로 압도적인 성적을 거두었던 상대에게 예상치 못한 루징시리즈로 시즌을 시작했다. 요미우리와의 개막 3연전 루징시리즈 이후 작년에 유일하게 리그에서 상대전적 열세를 기록했던 주니치 드래곤즈를 상대로 우승후보 대 웃음후보 최하위후보의 대결이라는 말이 무색하게 또 루징시리즈를 기록하며 2연속 루징 시리즈. 그 후에 숙적 요미우리에게 먼지나게 털리고 온 한신 타이거스와의 홈 3연전 첫경기에서 오세라 다이치를 투입하고도 패배하며 2승 5패로 예상을 뒤엎고 시즌 초반 단독 최하위로 추락했다. 결국 요미우리에게 털리고 온 물타선 한신에게 조차 루징시리즈. 3연속 루징시리즈로 아주 출발이 좋지 않다. 상대도 우승후보 라이벌이라고는 하나 작년에 호구를 잡았던 요미우리에 시즌 전 예상에서 최하위 후보인 주니치, 역시 하위권으로 예상되던 한신이라 상황이 더욱 심각하다.

이어 벌어진 야쿠르트와의 3연전의 두번째 경기에서는 3대3으로 팽팽하게 맞선 채로 연장전에 들어갔다 연장 10회초에서만 무려 12점을 내주는 눈뜨고 못볼 경기를 홈팬들에게 보여주면서 15대3의 참패로 4연속 루징시리즈 확정. 개막이후 실책만 17개로 12개 구단 최다 실책을 기록중이며 12점을 내준 것도 실책이 빌미가 된 것으로 동점상황에서 9회에 이어 2이닝 연속으로 등판했다가 패전투수가 된 마무리 나카자키 쇼타가 5실점에 0자책점, 나카자키에 이어 등판한 나카타 렌이 7실점에 3자책점 등 12점을 내주는 동안 자책점은 불과 3점밖에 안되는 기가 막힌 상황을 연출했다. 다음날 경기도 6대2로 패하면서 야쿠르트와의 3연전동안 6득점 31실점으로 싹쓸이 3연패하며 3승9패로 부진의 늪에서 헤어나오지를 못하고 있다. 다음 요코하마와의 3연전으로 리그의 모든 팀과 한번씩 다 붙어보는 상황에서 만약 루징시리즈를 기록하게 된다면 개막이후 부진이 일시적인 모습이 아니라 장기적인 문제가 될 가능성도 있다. 결국 요코하마와의 주말 3연전도 루징으로 막을 내리며 4월 15일 시점에서 센트럴리그 최하위까지 꼬라박았다.

연패를 했던 경기를 돌아보면 16~18시즌동안 카프의 가장 큰 장점이라 할 수 있는 타선과 불펜의 힘이 떨어져 보이는 것을 느낄수가 있는데, 타선의 경우 어찌저찌 추격은 하지만 경기를 뒤집거나 하지는 못하고 있고 불펜은 중요한 상황에서 방화를 시전중이다... 중견수-3번타자 마루의 공백은 양아들 노마 타카요시가 고감도 타격하지만 3할을 쳐도 마루보다 출루율이 1할 낮고 OPS는 0.3이 낮은 똑딱이라는 게 함정을 보여주며 그럭저럭 메워졌지만 주포 스즈키 세이야를 빼면 다나카-키쿠치 콤비와 작년의 지뢰밭 타선을 이끈 마츠야마 류헤이, 자비에르 바티스타, 포수 아이자와 츠바사 등의 주역들이 전부 부진해 득점력이 올라오지를 않고 있다. 특히 부동의 리드오프-주전 유격수인 다나카 코스케가 1할대 초반의 심각한 부진을 겪고 있음에도 전경기 풀이닝 출장 기록을 의식한 듯 결장 없이 줄곧 선발출장하는 것을 비판하는 여론이 많다. 요미우리에게서 보상선수로 빼내 올 때는 그래도 경력이 있으니까 마루 요시히로를 완전히 대체하지는 못해도 어느 정도 공백은 메워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던 초노 히사요시도 1할9푼의 타격으로 팀에 전혀 도움이 안 되면서 요미우리가 괜히 버린 게 아니었다는 평가마저 나오고 있다. 데려올 때는 요미우리의 뒤통수를 친 줄 알았는데 뚜껑을 열어보닌 정작 뒤통수를 맞은 건 히로시마. 선발진도 베테랑 좌완 크리스 존슨이 2경기 ERA 9.00으로 털리고 쿠리 아렌이 전혀 제 역할을 다하지 못하며 불펜의 불안요소를 더욱 긁어댔다. 다만 영건 좌완 토코다 히로키가 데뷔 후의 첫 완투승을 기록하는 등 크게 성장한 모습을 보이며 로테이션 한 자리를 차지한 것은 이 기간 중 딱 하나 밝은 신호.

그래도 요코하마와의 루징시리즈 이후 요미우리전에서 1패 이후에 4월 24일까지 5연승을 기록하며 UTU. 슬금슬금 상위권을 위협하기 시작하고 있다. 이미 꼴찌의 자리는 한신에게 넘겨줬고 3위인 주니치를 2.5게임차로 쫓고 있다. 이후에는 요코하마의 삽질로 인해 이젠 꼴찌는 확실히 DeNA 넘겼고,요코하마가 떨어진 사이 한신이 3위 자리(!)를 꿰차며 아직까지는 그대로 4등이다. 투수진은 4월에 불질을 일삼던 불펜이 안정화되고 선발진도 오세라, 존슨, 노무라 등 기존 전력이 안정감을 되찾고 토코다나 아두와 마코토 등의 영건들이 좋은 투구를 보이며 로테이션에 정착해 점차 개선되는 모습이지만, MVP 마루가 빠지고 기존의 주축 멤버들이 부진하면서 3연패 시절 카프의 가장 큰 장점이던 득점력이 세리그 최하위권까지 떨어져있는 것이 치명적 약점. 여전히 리그를 대표하는 슬러거인 4번 스즈키 세이야, 예년만큼은 치고 있는 키쿠치 료스케아이자와 츠바사, 작년의 도약을 이어가는 노마 타카요시를 빼면 모든 타자들이 멘도사 라인에 걸쳐 있을 정도로 심각한 침체에 빠져있다.
그러나 이후 요미우리와 단 1게임차인 공동 2등에 등극...하였으나 야쿠르트,한신 2팀이나 같이 2등이라서 삐끗하면 정말 힘들어지는 상황이 왔다.그래도 한신과의 첫 경기에서 이기면서 단독 2위 등극. 그리고 5월 23일까지 9연승을 내달리며 5할승부를 하던 요미우리를 제치고 기어코 올라올 팀은 올라온다를 시전하며 1게임차 단독 1위를 확보한다! 3~4월의 그 처절했던 성적이 믿기지 않을 정도.. 그리고 나서 맞이하는 요미우리 3연전. 원정경기이기는 하지만 여기서 위닝 이상을 가져가면 독주체제를 세울 수도 있다.

요미우리와의 1,2위간 3연전에서 2승 1패 위닝시리즈를 거둔다. 이전 경기까지 포함해서 -교진 옆 동네의 제비네11연패를 하고 있는 동안- 11연승[31]을 내달리면서 질주했으나, 일요일 경기에서 아깝게 패배. 그래도 2경기차 1위 자리를 유지.

이후 제대로 맛이 가버린 야쿠르트에게 스윕승을 거두고, 요미우리를 제치고 2위에 오른 한신과 3연전을 벌인다. 3연전 이후에는 교류전이 진행되는 것을 감안하면, 히로시마로서는 최대한 2위그룹과의 승차를 벌려놓을 필요가 있다. 이 3연전에서도 위닝시리즈를 기록하는 등 5월 한달동안 20승1무4패의 어마어마한 성적으로 월간 승수 센트럴리그 타이기록을 세우면서 2위와 4경기차인 상태로 교류전에 돌입하게 되었다. 여전히 센트럴리그 팀 평균자책점 1위를 달리는 투수력이 가장 큰 무기이고 타선도 3번 자리에 고정된 자비에르 바티스타의 타격감이 올라가면서 스즈키 세이야를 받쳐줄 수 있게되어 안정을 되찾고 있다. 다만 1할대 타율의 극도의 부진을 보이고 있음에도 전경기 풀이닝 출장 기록(...)을 꾸역꾸역 이어나가는 주전 유격수 다나카 코스케는 무한 까임의 대상.

다만 교류전에 들어가자마자 다시 퍼시픽리그 알레르기가 되살아나면서 승수를 까먹었다. 세이부, 소프트뱅크, 닛폰햄에 연속 루징시리즈를 내주면서 2위와의 승차가 다시1.5게임차까지 좁혀졌다. 교류전 돌입 전까지 보여주던 모습은 온데간데 없이 패수를 쌓으면서 교류전 통산 성적 11위팀 다운 퍼포먼스를 보이고 있으며 6월 12일 닛폰햄과의 원정경기에서는 전년도 여름 고시엔에서 모교인 가나아시농고를 결승으로 이끌며 일약 전국구 스타로 떠오른 요시다 고세이에게 프로 첫승을 헌납하기도 했다. 이날 요시다 고세이의 공은 좋은 공도 보였으나 아직 프로의 선발투수의 수준과는 좀 거리가 있었고 던지는 공의 80%를 직구로만 던지는 볼배합을 했음에도 불구하고 1회 1사 2, 3루의 찬스를 놓친 이후로는 2회초 쵸노 히사요시의 적시 2루타를 제외하고는 이렇다할 찬스도 못 만든 채로 5이닝 1득점에 그치며 고졸 1년차 신인의 스타 만들기에 일조를 하고 말았다. 그러는사이 요미우리는 교류전에서 가파른 상승세를 타며 히로시마를 턱밑까지 추격했고 결국 6월 18일 지바 롯데와의 경기에서 패배한 히로시마는 이날 오릭스를 상대로 승리를 거둔 요미우리에게 리그 1위자리를 내주고 말았다. 결국 퍼시픽리그 상대로 연속 루징시리즈를 기록하면서 갑작스러운 부진으로 팬들을 당황스럽게하던 4월달에도 안하던 5연속 루징 시리즈로 2011년 이후 8년만에 교류전 최하위 확정. 특히 교류전 마지막 홈경기인 6월 23일 오릭스전은 9회까지 0대0으로 팽팽히 맞서다가 10회초에만 3루타 4개를 얻어맞고 1이닝 피3루타 NPB 신기록을 세워주며 대거 9실점으로 홈팬들에게 4월달에 이어 또다시 못볼 꼴을 보여주는 개망신을 당했다. 그 동안에 교류전에서 우승을 놓고 다툴정도로 선전한 요미우리에게 리그 1위 자리를 내주고 2위로 교류전을 마감했다. 다행이라면 그렇게 못하고도 아직 1위 요미우리를 사정권 안에 놓고 있다는 점. 최근 몇년간 팀의 장기로 자리잡은 7~8월 부스터를 다시 가동시킬 수 있다면 다시 요미우리를 제치고 1위자리에 나서는 것은 물론 리그 4연패의 가능성도 충분하다는 점에서 일단 교류전의 상처는 그렇게 크지는 않다고 할 수 있다. 그러면 뭐해 일본시리즈 우승을 못할텐데

하지만 교류전의 여파가 생각보다 너무나 컸던건지 교류전 후 첫 시리즈인 DeNA 3연전을 1무 2패로 마감하며 선두 교진과의 승차를 전혀 좁히지 못했다. 게다가 곧바로 이어진 최하위 야쿠르트와의 3연전에서 충격적인 스윕패를 당하며 선두와의 승차를 좁히기는 커녕 오히려 7게임 차이로 벌어져버렸다. 이 사이 한신에게 2위자리마저 내주고 3위까지 추락하고 만다. 2016시즌하고 2018시즌에 일본시리즈 우승했었어야 했다 이어 벌어진 한신과의 고시엔 주말원정 3연전 마저도 스윕을 당해 DeNA에게 3위자리 마저 빼앗기고 4위로 꼴아박았다. 그리고 주니치와의 전반기 마지막 원정 3연전에서 마저도 스윕을 당하면서 교류전 최하위에 이어 1999년 이후 20년만에 11연패를 기록했다. 한 시즌에 11연승과 11연패를 다 해내는 어메이징한 팀이다. [32] 인터리그 도입 이후 인터리그 종료후부터 올스타 브레이크까지의 경기를 한번도 승리하지 못한 최초의 팀이라는 전무후무한 기록을 세웠다[33]. 이젠 주니치하고도 자리를 바꿔야 할 위기에 놓였다(반 경기차)(...). 부스터 역분사 심지어 이런 팀이 교류전에서 5승씩이나 했다면서 퍼시픽 리그가 생각보다 약했던 거 아니냐는 웃지못할 우스갯소리마저 나오고 있다.[34] 7월 2일 장기화된 다나카 코스케의 부진에 대응해 내야 뎁스를 키우고자 대타 요원이던 노망주 외야수 시모즈루 코우를 내주고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로부터 26살의 내야수 미요시 타쿠미를 받았다.
??? : 참는것도 한계가 있다 누나 시험하려 들지마라

올스타 브레이크 이후 요코하마와의 경기에서 바로 1승을 따내 12연패는 막았지만, 그 이후 귀신같이 2패를 떠안고 루징시리즈를 당하고 만다. 결국 주니치와도 자리를 바꾸고 5위행. 그리고 나서 만난 상대는 리그 1위 요미우리인데, 요미우리의 천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듯 스윕승을 거두고 다시 3위로 올라선다. 이후 주니치와 야쿠르트마저 스윕하면서 다시 9연승을 달렸지만, 같은 기간 2위 요코하마도 7승 1무 1패를 달리는 바람에 순위 역전에는 실패하고, 30일 요미우리와의 리턴매치에서 패하면서 시즌 두 번째 10연승은 이루지 못했다. 11연승~11연패~10연승을 하는 어메이징한 팀이 될 뻔했다 그래도 거인의 천적답게 위닝시리즈를 따내고 경기차를 계속 좁혀가고 있다. 8월 2일 기준 1위 요미우리와 3게임차 3위.

2019년 8월 16일 오세라 다이치가 완봉승을 거두며 2위로 올라섰으나, 같은 날 팀내 홈런 선두를 달리는 도미니카 출신 외국인 타자 사비에르 바티스타가 도핑 검사에 적발되었고 17일 일제히 도핑 적발 소식이 보도되었다.(관련 기사(일본어)) 바티스타는 즉각 1군에서 말소되어 자택 근신 처분을 받았으며, 구단에도 벌금 1000만 엔이 부과되었는데 팬들은 벌금이 너무 약하다며 '비싼 외국인 데려오는 것보다 값싸게 약으로 강화하는 게 낫겠네'라는 식으로 비아냥대는 중이다. 올해 새롭게 데려온 외국인도 아니고 2016년 입단해 도미니카의 카프 아카데미에서 육성한 선수라 더 파장이 클 것으로 보인다. 이 여파로 17일 시합에서는 스즈키 세이야가 2015년 이후 4년 만에 3번 타순에 들어섰고, 경기에서 패하며 하루 만에 다시 3위로 떨어졌다. 처음 보도에서는 걸린 약물의 종류는 공개되지 않았으나 출장정지 6개월 처분이 확정된 것과 함께 배란 유도제인 클로미펜이 검출된 것이 공개되었다. 스테로이드 계열 약물을 투여했을 때 발생하는 호르몬 불균형 문제를 완화하기 위한 목적으로 쓰인 것으로 추정된다고.

한편 스즈키 세이야가 시즌 시작 전 바티스타를 놀리며 '바보 외국인' '약 빨았네ㅋㅋㅋ'라고 하는 영상을 인스타그램에 올린 것이 재발굴되어[35] 반 농담으로 예언자 취급 받고 있다.(유튜브)

거인과 DeNA가 앞서가는 가운데 3위는 무난히 확정짓는 듯 했으나.. 9월들어 주니치가 맹렬히 추격을 개시하며 좀처럼 3위를 확정짓지 못하고 있다. 그리고 9월 21일 한신과의 최종전에서 뼈아픈 일격을 당하며 정말로 3위를 장담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공교롭게도 추격해오는 주니치와 딱 2경기만 남겨놓고 있어 졸지에 준 클라이맥스 시리즈를 치르게 생겼다. 2경기 모두 이기면 깔끔하게 3위 확정이고 1승만 거둬도 주니치가 뒤집기 위해서는 남은 4경기 전승이 필요하기 때문에 조금은 유리한 상황이긴 하다. 그러나 2경기 모두 내줄 경우 주니치가 잔여경기에서 2승 2패만 해도 승률에서 뒤지기 때문에 정말로 알수 없게 된다.

9월 22일 경기가 태풍으로 인해 취소되고, 23일 주니치를 상대로 끝내기승을 거두며 일단 한숨 돌리게 됐다. 주니치는 9월 24일 경기에서 DeNA에게 패하며 CS전선에서 탈락했고, 3위 매직넘버가 1이라 남은 1경기를 이기거나 한신이 잔여 3경기에서 1패만 해도 3위 확정이다. 그러나 시즌 최종전에서 주니치에 패배하며 자력으로 CS진출 확정을 짓지 못했다. 이제는 한신이 남은 3경기 중 1경기라도 지길 바라야 하는 처지에 놓였다.

그리고 9/28에 한신이 DeNA에 가볍게 완봉승을 거두면서, 히로시마의 CS 진출여부 주니치와 한신의 시즌 마지막 2연전으로 넘어갔다. 한신이 올해 주니치에게 8승 14패로 절대 열세라는게 위안이지만 야구라는게 열어보기전까지는 모르는 상황. 그리고 9월 29일 정말 한신이 이겨버렸다. 9월 30일 시즌 최종전에서 한신이 이기면 마지막 날에 대역전을 당하게 되는데,[36] 정말로 한신이 이기는 바람에 카프의 시즌은 여기서 끝나고 말았다.

10월 1일 오가타 감독이 마쓰다 스타디움에서 열린 기자회견에서 사임 의사를 밝혔다. 기사

그나마 다행인 건 당연히 FA로 떠날 것으로 예측되었던 노무라 유스케와 아이자와 츠바사가 잔류를 선언했다는 것.

3. 홈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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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 자세한 내용은 항목에.

4. 역대 성적

연도 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성적
클라이맥스 시리즈 출범
2007 5위 히로시마 도요 카프 144 60 82 2 .423
2008 4위 144 69 70 5 .496
2009 5위 144 65 75 4 .464
2010 5위 144 58 84 2 .408
2011 5위 144 60 77 8 .442
2012 4위 144 61 71 12 .462
2013 3위 144 69 72 3 .489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한신)
파이널 스테이지 (0-4 vs 요미우리)
2014 3위 144 74 68 2 .521 퍼스트 스테이지 (0-1-1 vs 한신)
2015 4위 143 69 71 3 .493
2016 1위 143 89 52 2 .631 파이널 스테이지(4-1 vs DeNA)
일본시리즈 (2-4 vs 닛폰햄)
2017 1위 143 88 51 4 .633 파이널 스테이지 (2-4 vs DeNA)
2018 1위 143 82 59 2 .582 파이널 스테이지 (4-0 vs 요미우리)
일본시리즈 (1-1-4 vs 소프트뱅크)
2019 4위 143 70 70 3 .500
NPB 통산 69시즌 9회 우승 9250 4369 4678 346 .483 일본시리즈 3회 우승

5. 관중수 추이

연도별 연 평균 일일 평균
2012년 1,589,658명 (+0.5%) 22,079명
2013년 1,565,598명 (-1.5%) 21,744명
2014년 1,904,781명 (+21.7%) 26,455명
2015년 2,110,266명 (+10.8%) 29,722명
2016년 2,157,331명 (+0.8%) 29,963명
2017년 2,177,554명 (+0.9%) 30,670명
2018년 2,232,100명[37] (+2.5%) 31,001명
2019년 2,223,619명 (-0.4%) 31,319명[38] (+1.0%)

2014년을 기점으로 관중과 팬덤이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고 있다. 현 시점 센트럴 리그에서 요코하마 디엔에이 베이스타즈와 더불어 가장 빠르게 관중, 팬덤이 늘어나고 있는 구단이라고 볼 수 있다. 최근에는 홈 구장 뿐만 아니라 원정 경기까지 꽉 채우는 위엄을 보여준다. A클래스의 위력은 뭔가 다르다.

2017년 구단 최초로 한 시합 평균 3만 관중 돌파 달성에 성공했다.
(지방경기를 제외한 마쓰다스타디움에서 개최한 홈경기만 계산하면, 이미 2015년[39]부터 달성했다.)

새 홈구장 효과에 성적도 좋아지면서, 관중이 점점 많아지기 시작했다. 그 때까지는 "팀이 잘나가니까 인기도 생기네" 정도였는데…

5.1. 티켓 구하기 너무 어려워!

구로다가 복귀한 2015년 시즌부터는 본격적으로 매년 티켓 전쟁을 치르는 중이다. 구로다가 복귀하자마자 8,300장 정도의 연간 지정석이 바로 매진되며, 본격적인 티켓 전쟁의 시작을 알렸다.

선예매 혜택이 있는 유료 팬클럽은 모집 개시 6분만에 정원을 채우는가 하면[40], 2016년부터는 아예 연간지정석 신규가입을 받지 못하고있다.[41] 이도저도 실패한 일반팬은 매년 3월 초의 일반 판매를 노려야하는데, 1월 말부터 매표소 앞에서 텐트 치고 대기하는 수준이다. (2월 말일에 줄 순서대로 정리권을 배부하고 해산시킨 후, 3월 1일부터 정리권 번호 순서대로 티켓을 판매한다.) 게다가 한국처럼 경기 2주 전부터 예매를 시작한다던가 하지 않고 전경기 티켓을 동시에 발매하다보니, 3월 1일에 티켓을 못 구한 팬은 아예 올해 직관을 포기해야한다. 상황이 이러다보니 직관 가고싶으면 연간지정석을 끊은 친구를 미리 사겨두어야 한다는 말이 공공연히 나올 정도.

결국 2018년부터 DeNA · 야쿠르트 · 주니치 경기에서는 원정 응원석[42]의 일부 구역을 홈 응원석으로 판매하는 임시 방편을 도입했으나, 아니나다를까 일반 판매 개시와 동시에 전일정의 모든 지정석 티켓이 매진되었다.

구단 측도 이건 아니다 싶었는지 2019년에는 정리권 추첨권을 배부했는데, 이게 도리어 팬들의 불만을 더 키우고 말았다. 정리권 추첨권이 무슨 소리인가 싶겠지만, 여태까지 선착순으로 배부하던 정리권을 추첨해서 배부하겠다라는 뜻이다. 일본시리즈 티켓도 이렇게 판매하지는 않는다![43] 구단 측은 2.5만장 정도 추첨권을 배부할 것이라 예상했지만 당연히 팬들이 몰렸고, 만에하나를 위해 준비한 5만장을 모두 배부했다. 그 중 당첨 수량은 2100장이니, 당첨 확률은 고작 4.2%. 다시 강조하자면, 저 4.2%는 티켓을 구매할 수 있는 확률이 아니라 티켓을 구매하는 줄에 설 수 있는 확률이다.

이렇게나 티켓 구하는게 힘들어져서 팬들(특히 히로시마 현지인들) 사이에서의 불만은 상당하다. 사실 구장을 처음 지을때만 해도 소규모 지방도시 구단의 특성상 무리하게 거대한 돔 같은 거 짓지 말고 3만석 정도 규모의 적당한 구장을 짓는 것이 목표였고 처음 몇 년간은 그 정도의 기능을 충실히 다했는데, 어쩌다보니 리그를 지배하는 강호에 전국구 인기구단이 되 버리는 바람에 홈구장은 연일 매진세례가... 결국 홈경기 티켓을 못 구한 카프팬은 원정 경기로 발을 돌릴 수 밖에 없는데, 사람이 많은건 원정 경기에서도 마찬가지인지라 똑같은 상황을 연출하는 중이다. 카프의 원정 경기때마다 홈팀 응원석보다 원정팀 응원석을 더 빨리 매진시키고 있으며, 원정팀 응원석을 못 구한 카프팬은 원정 경기의 홈팀 응원석 티켓을 사서들어가 홈팬들 한가운데에서 카프를 응원하는 진상짓을 거의 매경기 연출하고 있다. 이러다보니 자연스레 카프를 싫어하는 타팀팬의 숫자도 급속도로 늘어나고 있다.

6. 팀 컬러

빨갛다.

태생적인 자금 부족으로 도쿄에 있는 모 구단처럼 비싼 외국인 선수를 마구 돈지랄을 하면서 데려올 사정도 못 돼서 일찌감치 아예 도미니카 공화국에 야구 아카데미를 차려놓고 현지에서 소년들을 훈련시켜서 등용하려 했다. 이 과정을 거친 선수 중에 가장 성공한 선수가 메이저리그에서 40-40 클럽에 가입한 알폰소 소리아노이다. 물론 소리아노는 일본에서 두각을 드러내지는 못했고 뉴욕 양키스 입단 후 확 터졌다. 사실 일본에서 제대로 써먹은 선수들은 별로 없다 2013년 시즌 한국프로야구 최악의 먹튀 용병인 에스마일린 카리대 역시 카프 아카데미 출신이며, 일본형 용병을 육성하려는 본래 목표에는 못 미치지만 여전히 운영되고 있다.

구단 상황이 저러니 연봉총액도 12개 구단 중 언제나 최하위권. 때문에 FA 영입을 못 하는건 물론, 대어급 신인 선수들이 히로시마 행을 기피하는 상황이 벌어져 신인 드래프트에서도 크게 재미를 못 본다.[44] 덕분에 훈련이 빡세기로도 유명하다[45]. 그 와중에도 두각을 나타내는 선수들이 매년 하나둘씩 나타난다는 건 스카우팅과 육성의 승리로 볼 수 있는 것이고, 히로시마 팬들의 자랑이기도 하다.

하지만 최근 구단이 어느정도 투자를 하고는 있다. 일본 용병 투수 중 최고 톱 클래스로 꼽히는 크리스 존슨의 연장 계약을 따내기도 했다. 하지만 FA 영입은 없다

시민구장 시절에는 작은 구장의 이점을 살려 장타력을 강조한 타선이 돋보였다. 그렇다고 발이 느린 것도 아니던게, 팀 레전드인 키누가사 사치오, 야마모토 코지, 타카하시 요시히코, 노무라 켄지로, 오가타 고이치, 카네모토 토모아키 등은 리그를 대표하는 호타준족의 선수들이었다. 하지만 그 구장에서도 잘 버텨주던 투수진이 90년대 중후반을 기점으로 무너지면서 긴 암흑기가 시작되었다. 마쓰다 줌줌 스타디움 히로시마로 옮긴 이후에는 상황이 반전되어, 직후 몇 년간은 마에다 켄타로 대표되는 투수진이 강한 대신에 타선이 약한 팀으로 팀컬러가 바뀌었다.

하지만 드디어 2016 시즌에 호타준족 타선이 부활했다. 1~3번 다나카 코스케, 키쿠치 료스케, 마루 요시히로에 중심타선의 아라이 타카히로, 브래드 엘드레드, 스즈키 세이야가 가세하고, 심지어 하위타순이나 대타, 플래툰 요원으로 나서는 아베 토모히로, 마쓰야마 류헤이, 헥터 루나 등마저 쏠쏠히 활약하며 8번 포수, 9번 투수 자리 빼면 타선에 쉬어갈 곳이 없는 리그 최다 득점 팀이 되었다. 모 일본 세이버메트리션의 분석에 의하면 2017년 카프의 타선은 리그 평균과 비교할 때 일본프로야구 사상 2위에 해당하는 득점력을 뽐낸 강타선이라고.#

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와 함께 교류전 최대의 호구. 퍼시픽리그 팀들만 만나면 맥을 못춰왔다. 2016년 시즌 교류전 시점에서 교류전 통산 성적이 12구단 전체 통틀어 요코하마만이 아래에 있는 11위이며, 통산 승률은 .433에 머물러 있다. 라쿠텐보다 밑이다. 2005년부터 2015년까지 교류전에서 5할 승률을 넘긴적이 단 3번뿐이며 그동안 교류전 꼴찌도 3번을 했다. 이처럼 교류전에 보이는 약점은 초반에 좋은 기세를 보이다가도 DTD 테크를 타는데 중요한 요인이 되었다. 강팀이 된 이후에는 교류전은 선방을 해도 일본시리즈를...

7. 뛰어난 스카우트진

히로시마의 등록 선수 연봉 총액은 18억9791만엔으로 추정된다. 일본프로야구(NPB) 12개 구단 중 9위다. 1위 소프트뱅크(41억7577만엔)의 절반에도 미치지 못한다.

그래서 신인 발굴과 육성이 구단 운영의 핵심이 된다. 소노다 도시히코 스카우트 총괄부장은 40년 스카우트 경력에, 업계의 전설로 통하는 인물이다. 히로시마는 전통적으로 장래성이 뛰어난 고교 야수와 고시엔 대회에서 두각을 드러낸 투수 확보를 드래프트 우선 과제로 삼았다. 하지만 2년 연속 리그 5위에 그친 2010년 드래프트부터 방침이 달라졌다. 드래프트 1라운드에서 고교생이 아닌 와세다대 투수 후쿠이 유야를 지명한 것이다.

이때부터 히로시마의 드래프트는 '유망주'보다 '즉시전력감'에 초점이 맞춰졌다. 2011년 드래프트에선 메이지대 에이스 노무라 유스케와 주쿄가쿠엔대의 '판타지스타'였던 기쿠치 료스케를 지명했다. 2012년엔 2016년 최고의 신데렐라로 떠오른 투타 만능 고교생 스즈키 세이야를 지명해 올스타급 야수로 키워냈다. 그리고 2013년엔 대학 넘버원 투수인 오세라 다이치, 사회인야구 최고 유격수 다나카 고스케를 뽑았다. 이들은 2016년 히로시마 우승의 든든한 축이 됐다.

우승 멤버 중 2010년 드래프트 이후 지명 선수가 무려 11명이다. 히로시마는 FA나 값비싼 외국인 선수를 고용하기 어려운 팀이다. 적극적으로 젊은 피를 수혈하려 했다. 그렇다고 어린 유망주의 성장을 오랫동안 기다려줄 여유는 모자랐다.

히로시마의 세대 교체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포지션은 유격수와 중견수, 그리고 우익수다. 다나카 입단 전까지 히로시마의 주전 유격수는 야수진의 캡틴이자 팬들의 성원을 한 몸에 받았던 베테랑 소요기 에이신이었다. 히로시마는 소요기의 출장 시간을 줄이면서 다나카에게 성장 기회를 줬다. 2015년부터 주전 유격수로 발돋움한 다나카는 2016년 센트럴리그 최고의 리드 오프 히터로 거듭났다. 아카마츠 마사토와 아마야 소이치로가 경합하던 중견수 자리에는 2013년부터 마루 요시히토가 풀타임으로 자리잡았다. 마루는 센트럴리그 대표 중견수 대열에 합류했다. 무주공산이던 우익수 자리에는 2015부터 가능성을 보여준 스즈키 세이야가 주전 자리를 꿰찼다.

외국인선수인 브레드 엘드레드와 헥터 루나가 주로 기용되는 좌익수와 3루수를 제외한 나머지 6개 포지션의 평균 연령은 28.17세로 젊다. 노장 1루수 아라이 다카히로를 제외하면 26세다.

긴 안목으로 인내심을 가지면서 선수를 지명한 히로시마 스카우트들이다. 히로시마의 스카우트진은 소프트뱅크와 더불어 최근 5년간 가장 고교 유망주 선택이 뛰어나다는 평가를 받는다. 선수 발굴과 육성이 중요한 팀에서 유능한 이들이 책임을 맡았다.

8. 인기와 팬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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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코하마 베이스타즈와 함께 떠오르는 2010년대의 신흥 인기구단
  • 2014년에 발표한 구단인기 순위에서 292만명이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팬이라고 밝혔고, 이는 요미우리 자이언츠(889만명), 한신 타이거즈(608만명)에 이어 3위의 기록이다.출처/일본어 원문 하지만 이 두 팀의 연고지가 대도시인 점을 감안한다면 팬들의 충성도는 엄청나다고 할 수 있다.[46] 더군다나 히로시마 시의 인구는 119만명, 히로시마 현의 인구는 282만명인데 도요 카프를 응원한다고 밝힌 사람의 수가 히로시마 현 인구보다 많고 히로시마 시의 3배 가까이 되는 셈이다. 2군의 경우에도 히로시마 도요 카프 유우 연습장의 총 입장 관객수가 2만명을 넘어가는데 이는 일본프로야구에서도 최고 수준이다. 유우 연습장의 접근성이 일본의 2군구장 중에서도 독보적으로 최악인 것을 감안하면 더 놀라운 일.
  • 2015년, 구단 최초 200만 관중을 돌파했다.
  • 2016년,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센트럴 리그에서의 맹 활약에 힘입어 히로시마 지역 시청률이 무려 45%에 육박하는 기염을 토해냈다. 25년만의 우승에 히로시마 지역의 TV 중계 시청률은 거의 폭발 수준에 이르렀다. 스포츠닛폰을 비롯한 일본 언론들의 12일 보도에 따르면, 히로시마의 우승이 확정된 10일 요미우리전의 시청률은 히로시마 지역 평균 60.3%를 기록했다. 오후 9시44분부터 9시48분까지의 순간 시청률은 무려 71%에 이르렀다. 중요 경기뿐만 아니라 히로시마 지역 5개 방송국(NHK+4개 민영방송)이 중계한 2017년 정규시즌 95경기의 평균시청률로도 일본경제신문 조사 결과 30% 이상을 기록했다. 민영방송과 공영방송을 막론하고 일본 방송에서 20% 이상의 시청률은 매우 높은 수치라는 점을 고려할 때 이례적인 일.
  • 이렇듯 지방도시 연고 구단이라는 점과 지역밀착형 마케팅, 시민구단으로서의 역사라는 특수성이 더해져서 팬들의 단결력만은 12개 구단 중 최고다. 하지만 이게 꼭 좋은 쪽으로만 나타나지는 않는다. 대표적인 예를 꼽자면 올스타 투표때만 되면 집단으로 실력행사에 들어가는 팬이 가장 많기 때문이다. 이미지만 보면 한신이 가장 많을 것 같지만, 실제로 한신팬은 아무리 한신의 선수라도 성적이 안좋으면 가차없기 때문에 이런 쪽으로는 욕을 안 먹는다. 가장 최근의 사례를 꼽자면 2009년 올스타 투표 마무리 투수 부문에서 방어율 3점대의 나가카와 카츠히로가 투표수에서 임창용의 턱밑까지 쫓아왔던 것. 실제로 마감 3일 전에 나가카와가 블론세이브를 기록하지 않았으면 1위를 했을 것이라는 평가가 지배적이다.[47] 이런 무개념한 모습 때문에 2ch에서는 '그렇게 멍청한 놈들이니까 원자폭탄이나 쳐맞지' 하고 욕하는 사람도 많다. 일본도 지역감정 쩔어준다는 대표적인 증거. 유니폼 빨간애들은 다그런가 천조국의 필라델피아필리스 반도의 타이거즈 비슷하다
  • 그리고 히로시마에서도 카프는 티켓 구하기 어려운 구단으로 이에 대한 팬들의 불만이 상당한 상황. 실제로 1997년부터 매년 3월 1일 연간티켓 발권이 끝나면 일괄적으로 일반석 표를 판매하는 방식을 취해 시즌권, 기업 접대 및 홍보분이 미리 나가고 나머지를 전매업자 및 여행대리점(원정팬을 위한 티켓분)들이 싹쓸이하다 보니 팬들이 티켓을 구하기 어렵다고 한다. 이로 인해 카프가 2000년대 이후 호성적을 거두며 일본의 대표적 티켓 전매사이트 '티켓캠프'에 올라온 히로시마 홈경기 티켓 수가 한신, 요미우리 홈 개최분을 거뜬히 뛰어넘고 인터넷에서 플미충들이 판을 치는 사태가 매년 벌어지고 있어 이에 대한 불만이 폭발하는 중. 한신도 똑같은 일괄판매 방식을 적용 중이나 최근 한신이 부진하면서 티켓을 구하기 쉬워졌다고 한다.
  • 마쓰다주식회사 다음으로 히로시마 구단의 두번째 큰 스폰서는 놀랍게도 히로시마 어시장이라고 한다. 타팀팬들이나 다른 나라 야구팬들은 이것을 가지고 비꼬기도 하지만 그만큼 지역민들의 충성도는 높다 왠지 이 팀이 연상되지 않는가?. 현재는 주요 주주명단에서는 빠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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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성적이 반등한 2013년 경부터 간토지역을 중심으로 여성팬들이 대거 생성되면서 카프 조시(カープ女子)[49]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내는 사회 현상으로 자리잡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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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막: 앞으로도 카프조시가 계속 늘어났으면 좋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려면 계속 성적을 내라[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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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시즌 히로시마 도요 카프 홈 관중 성별 조사. 남성팬보다 여성팬이 더 많다.[51]
  • 2012, 13시즌을 거치며 팀이 젊은 선수들을 주축으로 개편되었고, 짠돌이 구단 탓에 매년 스타선수들을 유출시키며 약체화가 지속되어 팀에 남은 선수들만 고생하는 모습이 동정심을 자극한데다, 응원 방식이 재밌어서 본인이나 가족, 친척, 친지들 모두 히로시마와는 큰 상관이 없는 수도권 지역의 여성들이 대거 히로시마의 팬이 되었다.[52] 여기에 일본의 유명한 토크쇼 아메토--크에서도 히로시마 카프편이 호평받으며 팬층 확산의 기폭제가 되었다. 그리고 2013시즌 후반부터 마치 그 동안의 고생이 보답을 받는 듯 성적이 오르기 시작하면서 21년만에 가을야구 하게되자 하나의 유행이 된 것. 이들이 수도권 지역의 원정경기에 몰려다니기 시작하면서 2013년, 2014년에 도쿄돔에서 가장 많은 관중을 동원한 팀이 최고의 라이벌 팀도 아니고, 지역 라이벌 팀도 아닌 히로시마가 되는 현상까지 발생했고 예전 같으면 그들만의 리그 수준이었던 요코하마 스타디움메이지진구 야구장의 히로시마전 관중동원이 비약적으로 상승했다. 이들 구장에서 히로시마의 경기가 있는 날이면 좌측 외야 스탠드 쪽에 붉은 유니폼을 입은 사람들이 바글바글한데 그게 다 히로시마 팬들이다. 그러나 구단 입장에서는 이들 수도권 지역의 여성 팬들이 경기를 주최하는 수도권 지역 상대팀 영업담당만 신나게 하지 구단의 입장수입에 전혀 도움이 안 되는지라 이들의 열기를 마쓰다 스타디움의 관중동원으로 연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골몰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2014년 5월에는 이들 수도권 지역의 여성 카프팬들을 대상으로 신칸센을 전세내서 히로시마 홈 경기단관응원을 기획하여 호평을 받기도 했다. JR 도카이가 매우 좋아하고 있습니다
상단/하단 스쿼트 응원
  • 또한 히로시마의 특이한 응원으로 '스쿼트 응원'이 있다. 원래는 관중이 많아보이게 하기위한 응원법이었다고. 선수 응원가는 한 번 부르고 그 다음은 선수 이름을 팬들이 앉았다 일어났다를 번갈아가면서 외치는 것인데 재미있으면서도 멀리서 보면 위엄도 있고 인기가 많은 응원 방식다. 살 빼기에도 효과적이라고 한다 올스타전이나 국대경기때 타팀 팬들도 다들 따라하고 싶어서 안달이 날 정도. 보통은 자신이 하고 싶은 순서에 일어나지만, 옆의 상단/하단 응원처럼 나뉠 때도 가끔 있다. 대부분 팀의 외야 응원단이 서서 응원하는 반면 히로시마 서포터즈는 스쿼트 응원을 위해서 공격 때도 앉아있다.
  • 안습한 팀 때문인지 팬들의 성격이 다소 자학적이다. 이 팀의 안습함은 미나미가에서도 나왔던 다음 넌센스 퀴즈에서 그대로 드러난다.
Q: 빨간 모자[53]를 쓰면 눈물을 흘리며 작아지는 것은?
A: 연패중인 히로시마 팬[54]
  • 팀이 비밀번호를 신나게 찍어대던 2000년대 후반[55]에는 히로시마 팬의 10계명이란 것도 나왔었다. 물론 이건 2012년까지의 이야기고 2013년부터는 잘나가는 팀이 되었으므로 해당사항과는 많이 멀어졌다. 그리고 이건 자책성 유머이기 때문에 진지하게 받아들이면 곤란하다.
1. 승패에 연연해하지 말 것. - 어차피 이기고 지는 세상사.
2. 남의 FA 선수를 탐내지 마라. - 그들의 리스트에는 히로시마의 H 따위는 없다 . 만약 H가 보인다면 그건 모기업이 부자로 소문난 규슈 제일 인기팀이나 우리 최대의 상전의 머릿글자를 잘못 본 것이다. C가 보이면 그건 코알라가 마스코트인 팀이다[56]
3. 외국인 선수가 좋은 성적을 내도 좋아하지 말 것. - 내년에 부메랑이 되어 돌아온다.
4. 외국인 선수에 정 주지 말 것. - 잘 하면 다음 시즌에 타팀에서 보게 될 것이고, 못 하면 그 날로 인천행이라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57]
5. FA를 앞둔 선수는 과감히 버려라. - 그들도 사람이다. 승리 또는 돈, 둘 중에 하나는 갖고 싶어한다.[58]
6. 야구는 9회말 2아웃부터다. - 제구병신 나가카와 카츠히로가 올라온 순간부터 상황은 급반전된다.
7. A클래스와 B클래스 사이에는 4차원 공간이 존재한다. - A클래스의 1, 2, 3위는 왕족, 귀족, 성직자 계급이라고 보면 된다.
8. 오늘 누가 안타를 칠 것인가보다 마티 브라운 감독[59]이 언제 베이스를 뽑으면서 항의할까를 기대하라. - 히로시마의 유일한 세일즈 포인트다.[60]
9. 한신은 우리의 상전. - 그들의 수요는 엄청나다. 원활한 공급만이 우호유지의 생명.[61]
10. 가급적이면 KBO 리그(KBO)와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로 눈을 돌리자. - 이게 답.[62]
  • 위에 나열된 팬덤의 특징을 읽어보면 알겠지만 한화 이글스의 2010년대 유입 팬덤과 상당히 유사하다. 근데 팀 성적은 전혀 유사하지 않은게 문제..
  • 포켓몬에서도 잉어킹의 노래로 마켓팅을 하면서 당연히 잉어킹의 날로 잉어킹 유니폼을 한 적이 있다 실제로 히로시마 카프를 모티브로 한 잉어킹스는 포켓몬에서 두번이나 언급 될정도로 포켓몬 세계관에서도 인기가 있는 팀이고 성적도 좋은 팀으로 소개가 되고 있다.
  • 최근에 케모노 프렌즈가 인기를 얻으면서 아라이상이 파크의 위기인 것이다를 카프의 위기 인 것이다! 라고 패러디하고 있다.[64] 더군다나 팀 성적도 좋고 해서 케모노 프렌즈 라디오에서도 이것에 대해 언급을 하였다.
  • 프로레슬러나이토 테츠야가 팬임을 직접 인증하기도 한 팀이다. 최근에는 시구를 직접 했을 정도로 열렬한 팬이기도 하다. 2018년부터는 나이토의 등장곡을 카프 응원단이 응원 구호로 사용한다.

9. 모기업 마쓰다와의 관계

마쓰다주식회사 산하 스포츠단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SanfrecceHiroshima.png 산프레체 히로시마
(축구)
파일:Carp_Logo.png 히로시마 도요 카프
(야구)

본래 시민구단으로 운영되어 왔으나, 성금까지 모으는 정성에도 불구 재정난으로 해체위기에 처한 적도 있고, 고비를 넘긴 이후에도 구단 운영은 계속해서 어려웠다. 결국 1968년, 히로시마 시민들이 히로시마에 본사가 있는 기업 중에서 제일 큰 회사인 도요공업(東洋工業),[65][66] 즉 현재의 마쓰다주식회사에 구단 좀 맡아달라고 지속적으로 탄원한 결과 일단 마쓰다 자동차가 구단을 맡게 되었다. 이에 팀 이름도 히로시마 카프에서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바꾸고 오늘에 이르고 있다. 한때 마쓰다가 돈 없는 기업이라는 이미지가 야구 커뮤니티에 퍼지기도 했으나, 마쓰다 그룹 규모는 한국의 한화 그룹과 비슷하며 현재 일본프로야구팀을 운영하는 기업중에서는 소프트뱅크, 라쿠텐와 더불어 최상위권의 규모를 가진 글로벌 기업이다. 당연히 빅클럽이라 평가받는 한신 전기철도요미우리 신문보다도 규모가 크다.

하지만 실제 지분은 마쓰다 자동차의 창업주인 마쓰다 가문이 가장 많이 가지고 있고 구단주 직 역시 세습되고 있다. 엄밀히 말하면 마쓰다 자동차가 기업 활동의 일환으로 야구팀을 운영한다기보다는 마쓰다 가문의 개인적인 소유에 더 가까운 형태. 그래서인지 지분소유와 경영진 파견만 할 뿐, 팀을 유지시키는 수준 이상의 투자는 하지 않고 있다. 구단주와 모기업의 기본 방침은 예나 지금이나 야구팀을 해체시키지는 않을테니 크게 적자만 내지 말아라 이다. 구단이 자기 힘으로 벌어서 먹고 살아야 되는 것은 여전하다.

이 때문인지 센트럴리그 팀 중에서 연봉이 굉장히 적은 것으로 유명하다. GM역할을 하는 스즈키 키요아키 구단 본부장은 연봉 깎는 데에 있어서는 일본프로야구 최고라는 자학적 네타가 널리 알려져있을 정도... 연봉총액이 매년 꼴찌를 다투며, 10위를 넘긴 적은 거의 없다고 보면 된다. 이렇게 아끼고 아껴서인지 NPB에서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즈,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와 함께 운영 흑자를 내는 네 구단 중 하나로 앞의 두 구단이 도쿄, 오사카라는 일본 굴지의 대도시권을 연고로 한 일본 최고의 인기구단임을 생각하면 스몰마켓 구단으로서는 눈에 띄는 성과라고 할 수 있다. 1975년부터 꾸준히 흑자를 내오고 있으며[67]흑자경영 자부심 하나 추가요 2015시즌까지 40년 넘게 연속 흑자기록을 세우고 있다. 2015시즌의 경우 구로다 히로키의 복귀등으로 인해 매출 148억 엔, 순이익 7억6,000만 엔이라는 역대 최대 흑자를 기록해내기도 했다.

하지만 일각에서는 이런 흑자를 부정적으로 보기도 한다. 팀 연봉을 20억 엔 이하로 맞추라는 것은 구단 내부의 오랜 불문율이고, FA가 시행되고 나서도 10년 가까이 팀내 최고 연봉 선수를 2억엔 선에 묶어두는 게 내부 방침이었을 정도다. 만약 팀내 선수가 FA를 선언하면 요구액에 상관없이 그냥 떠나보내는 게 연례행사였고 이 때문에 팀의 간판이던 에토 아키라, 가네모토 도모아키 등이 FA를 선언했을 때 구단은 잡으려는 의지조차 보이지 않고 이들이 팀을 떠나는 것을 수수방관했다. 그러나 팀의 리더격이었던 가네모토의 FA 이적 후에 선수들의 팀에 대한 충성도가 눈에 띄게 낮아지고, 팀의 상징이자 기둥인 마에다 토모노리에 대한 미적지근한 처우에 구단 내외로부터 쏟아지는 비판의 후폭풍을 견디다 못해 팀의 프랜차이즈 스타급 한두명에 한해서 내부 FA를 인정하기는 했지만 여전히 적당한 수준의 연봉을 제시하는 선에서 머무르고 있다. FA를 선언하는 프랜차이즈 스타급 선수들에 대해서도 상당한 수준의 홈 디스카운트를 요구하고 있으며, 이들의 요구가 과하다고 생각될 경우 가차없이 결별하는 것도 변함 없다. 예외적으로 2016년 구로다 히로키는 6억엔을 받으며 일본프로야구 최대 연봉자인데, 이마저도 팀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라는 상징성과 함께 구로다가 가져오는 흥행효과를 감안하면 그만큼을 메꿀 수 있다는 계산 하에 주는거다.그리고 쿠로다는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적어도 이것의 4배는 되는 연봉을 받을 기회를 박차고 일본으로 돌아온 거다

그리고 메이저리그에서 노릴만한 수준의 선수라면 '더 높은 곳에 도전하려는 선수의 꿈을 이루어준다'는 미명하에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서 선수를 팔아먹고 포스팅비를 챙겨먹으려는 전략도 여전히 유효하다. 팀의 기둥인 마에다 켄타의 연봉을 감당할 의지조차 없어서 포스팅을 통한 해외 진출을 부추겨 결국 보냈다.[68] 2018년 오프시즌에 팀 최고연봉자이던 마루 요시히로가 떠난 것도 이러한 구단의 비용절감 경향의 연장선상이고, 앞으로 키쿠치, 다나카, 노무라, 이마무라, 아이자와 등 다른 팀들이 군침을 흘릴 주축 선수들의 FA가 줄줄이 예정되어있기에 히로시마 팬들은 기껏 이뤄놓은 황금기가 이렇게 지는거냐는 걱정을 해야 될 상황.

시민주주 형태의 구단이기는 하지만, 마쓰다 경영진의 입김이 매우 세기 때문에 시민들의 의지는 그다지 반영되지 않고 마쓰다 경영진은 투자를 통한 팀의 성적보다는 적자를 내지 않는 것에만 급급하기 때문에 최근 젊은 선수들의 분발로 인한 좋은 성적에도 불구하고 미래가 걱정된다는 의견도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마쓰다 경영진에 대한 비판이 조금씩 올라오고 있지만, 히로시마 미디어 관계자에 따르면 오너의 경영에 대해서 비판적인 기사를 쓰는 미디어는 출입 금지를 당하고, 애초에 지방 구단이라 출입 기자수도 많지 않아 후빨하는 경영에 좋은 평가를 내리는 기사만이 나온다고 한다.[69]

그래도 흑자경영에 대한 집착이 보여주는 보다 긍정적인 사례로는 구단 관련 상품이 매우 풍부하다는 것이 있다. 유니폼, 의류, 응원도구는 물론 식품이나 유아용품에 이르기까지 굿즈의 종류가 다양한 것은 기본이고, 사실상 경기 중 모든 사건사고가 경기가 끝날 때 즈음에는 티셔츠로 만들어질 정도로 상품 개발 및 판매도 매우 신속하다고 한다.

10.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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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년대 후반 ~ 80년대 후반 카프 최전성기의 유니폼. 유니폼의 주인공은 철인 기누가사 사치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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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유니폼. 구 시민구장에서 찍은 사진이다. 모델은 당시 투타의 주역이었던 쿠리하라 켄타와 오타케 칸.[70]

팀의 초창기 유니폼은 그 당시 거의 모든 팀이 그랬듯 검정색 위주의 칙칙한 유니폼이었다. 그러나 1975년 카프 최초의 외국인 감독 조 루츠가 '투쟁심의 상징색'으로 빨간 유니폼을 제안했고, 그 이후 카프가 아카헬 돌풍을 일으키면서 팀 컬러로 굳혀졌다.[71][72] 그러나 처음에는 '초등학교 운동회도 아닌데 다 큰 어른이 부끄럽게 빨간 모자를 써야 하냐'는 불평이 잠깐 있기도 했다고 한다. 2004년까지는 유일하게 완전한 빨간 모자를 쓴 구단이었으나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도 빨간 모자를 쓰면서 유한 팀이 되었다.[73]

유니폼의 경우 원정에는 회색(7~80년대에는 연한 하늘색)과 빨강색 위주로 썼으며, 홈의 경우 흰색과 빨강을 주로 썼다. 그런데 2009년 새 구장으로 옮기면서 유니폼 역시 새로 바꿨는데, 다른 건 괜찮은데 문제는 SK 와이번스 유니폼과 흡사해졌다. 정작 SK 와이번스도 원정 유니폼은 보스턴 레드삭스의 얼트 저지와 매우 흡사하다 시민 중심 체제이니만큼 한신 타이거스[74],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75], 사이타마 세이부 라이온즈와 함께 지역명을 원정 유니폼 전면에 붙이는 몇 안되는 구단이다. 1/3이 몇 안되는 것이었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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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에 시원하게 선보인 데님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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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운 맛을 보여주겠다!!!
2014년에 선보인 특별유니폼. 일명 불닭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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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년에 선보인 특별유니폼. 작년에 비해 임팩트가 다소 떨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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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특별 유니폼. 왼쪽 가슴에 있는 남자의그곳 고추가 특징.

11. 대표적인 선수들

11.1. 현역(2019년 기준)

11.1.1. 투수

  • 12. 쿠리 아렌[76]
    미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난 혼혈 선수다.
  • 13. 야사키 타쿠야[77]
  • 14. 오세라 다이치
  • 16. 이마무라 타케루
  • 17. 오카다 아키타케
  • 19. 노무라 유스케
  • 20. 나가카와 카츠히로
  • 21. 나카자키 쇼타
    현재 카프의 마무리 투수. 형은 세이부의 투수 나카자키 유타.
  • 23. 야부타 카즈키
  • 24. 요코야마 히로키
  • 26. 나카타 렌
  • 28. 토코다 히로키
  • 29. 케무나 마코토
  • 30. 이치오카 류지
  • 34. 다카하시 코야
  • 36. 호리에 아츠야
  • 39. 이이다 테츠야
  • 41. 후지이 코야
  • 42. 크리스 존슨
    2016년 사와무라상 수상. 1964년 진 바키 이후 52년에 외국인 선수 수상이다.
  • 43. 시마우치 소타로
  • 46. 다카하시 미키야
  • 47. 야마구치 쇼
  • 48. 아두와 마코토
  • 53. 토다 다카야
  • 57. 다나카 노리히코
  • 58. 카일 레그널트
  • 59. 키쿠치 야스노리
  • 62. 쟈니 헬웨그
  • 64. 나카무라 쿄헤이
  • 65. 나가이 료타
  • 66. 엔도 아츠시
  • 67. 나카무라 유타
  • 68. 히라오카 타카토
  • 70. 케이시 로렌스
  • 97. 제로니모 프랑수아
  • 98. 에마일린 몬티야

11.1.2. 포수

  • 22. 나카무라 쇼세이
  • 27. 아이자와 츠바사
  • 31. 이시하라 요시유키
  • 32. 시라하마 유타
  • 40. 이소무라 요시타카
  • 54. 후나코시 료타
  • 61. 사카쿠라 쇼고

11.1.3. 내야수

  • 00. 소네 카이세이
    신성현과 같은 고등학교 출신이다.
  • 0. 우에모토 타카시
  • 2. 다나카 고스케
    2017년 도루왕과 출루율 1위를 차지했고, 2017 WBC 대표 경력도 있다.
  • 4. 고쿠보 테츠야
  • 6. 아베 토모히로
  • 7. 도바야시 쇼타
  • 33. 키쿠치 료스케
    현재 일본프로야구 최고의 수비형 2루수로 평가받는다.
  • 35. 미요시 타쿠미
  • 44. 하야시 코타
  • 45. 쿠와하라 타츠키
  • 51. 코조노 카이토
  • 52. 쇼지 하야토
  • 56. 나카가미 타쿠토
  • 63. 니시카와 료마
  • 69. 하츠키 류타로
  • 96. 알레한드로 메히아
  • 99. 후안 산타나

11.1.4. 외야수

11.2. OB

11.2.1. 투수

  • 하세가와 료헤이 (1950 - 1963, 감독 1966 - 1967)
    카프 초기의 에이스. 1952년 "승률 3할 이하 팀 합병 정책" 에 따라 당시 하위권을 찍는 바람에 강제합병 위기에 처한 카프를 다른 팀원들과 분전해 극적으로 승률 3할로 이끈, 카프를 구한 영웅. 완전한 시민구단 체제였던 히로시마 카프 시대의 마지막 감독.
  • 아니야 소하치 (1964 - 1974, 1980 - 1981)
    일본프로야구 최초의 오키나와 출신 선수.
  • 소토코바 요시로 (1965 - 1979)
    1975년 사와무라상 수상자. 통산 노히트 노런 2회, 퍼펙트 게임 1회를 기록했으며, 퍼펙트 게임까지 포함한 노히트노런 3회는 NPB 사상 최고 기록이다. 그러나 이렇게 대단한 기록을 세운 투수도 통산 기록이 131승 136패로 승보다 패가 더 많다. 안습.
  • 가네시로 모토야스 (1971 - 1976)
    후일 청보 핀토스삼성 라이온즈에서 뛰게 되는 투수 김기태(재일교포). 히로시마의 첫 우승이 결정된 경기인 1975년 10월 15일 VS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에서 마무리 투수를 맡아 헹가레를 받은 언더핸드 스로 투수.
  • 이케가야 코지로 (1974 - 1985)
    1976년 사와무라상 수상자. NPB 사상 최다 시즌 피홈런 개수(48개)를 보유하고 있다(...)
  • 키타벳푸 마나부 (1976 -1994)
    정밀기계라는 별명답게 정교한 제구력을 가졌던 투수로 9이닝당 볼넷 허용률은 1.90에 불과했고, 홈플레이트 위에 빈 캔 3개를 두고 공 3개로 쓰러뜨렸다는 일화도 있다. 당시 심판이었던 다나카 토시유키(田中俊幸)는 심판 판정에 자주 시비를 걸어오는 투수라 피곤했다는 증언을 했다. 통산 성적 213승 141패, 방어율 3.67. MVP 1회, 사와무라상 2회 등. 현역에서 물러난 지금은 TV 해설, 각종 쇼 프로그램에 참가하고 있다,
  • 오노 유타카 (1977 - 1998)
    큰 오노(大野)라 불리며 1970년대 말 ~ 1990년대 중후반을 풍미했던 좌완 에이스. 다르빗슈 유가 등장하기 전까지 마지막으로 2년 연속 시즌 1점대 방어율을 기록한(1988, 1989) 투수였다. 이쪽도 선발-마무리 안 가리고 마구 굴려졌으며(148승-138세이브), 커리어의 막바지에 접어든 1997년 시즌에는 42세의 나이로 최우수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따내는 노익장을 과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투수코치로는 양상문급...
  • 야마네 카즈오 (1977 - 1986)
  • 장명부 (1978 - 1982)
    1979, 1980년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 주력 투수 중 한 명.
  • 에나츠 유타카 (1978 - 1980)
    에나츠의 21구. 이거 하나로도 그의 히로시마 시절의 설명은 충분하다.
  • 카네다 토메히로 (1979 - 1981)
    400승 투수인 재일교포 선수 카네다 마사이치의 동생. 롯데 등에서 에이스로 활약한 뒤 커리어를 카프에서 마감했다. 아래 서술할 조카 카네이시의 입단에 영향력을 행사했다고 한다.(...)
  • 카네이시 아키히토 (1979 - 1991)
    400승 투수인 재일교포 선수 카네다 마사이치의 조카. 에이스라 하기엔 부족하지만, 그래도 선발과 중간계투를 오가며 20여 년간 가늘고 긴 선수생활을 이어나갔다.
  • 카와구치 카즈히사 (1981 - 1994)
    80년대 중후반~90년대 초반 카프의 주축 선발투수. 통산 2천 탈삼진을 달성하고 최다 탈삼진도 3번[78]이나 기록할 정도로 타자를 잘 공략하던 투수였다. 1994년 시즌 종료 후 FA를 선언해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하면서 카프의 FA 잔혹사의 시초가 된..인물이라기엔 FA 이적 시기엔 기량 하락이 완연했던 데다가 FA 선언도 돈 때문이 아니라 암 투병 중이던 부친의 치료 때문이었다. 그리고 요미우리 이적 후엔 4년간 고작 8승에 그치고 은퇴하면서 완벽히 먹튀가 되었다(...) 은퇴 후엔 2011~2014년까지 요미우리 1군 투수종합코치를 역임했다.
  • 츠다 츠네미 (1982 - 1991)
    불꽃의 스토퍼란 별명으로 유명했던 투수. 그러나 뇌종양에 걸려 안타깝게도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그리고 카프 구단에겐 돔구장 안 지을 훌륭한 핑계
  • 키토 마코토 (1984 - 2000)
  • 나가토미 히로시 (1986 - 1994)
  • 사사오카 신지 (1991 - 2007)
    138승 - 106세이브를 기록한 카프의 마당쇠. 1991년 사와무라상 수상자로 선발, 중간계투, 마무리 등 보직에 상관없이 정상급의 실력을 보여줬으며, 만약 조금 덜 안습한 팀에서 뛰어서 선발로만 뛰었다면 통산 200승도 가능했을 것이라는 의견도 있다.
  • 타카하시 켄 (1994 - 2008, 2010)
    좌완 투수로 선발과 계투를 오가며 안습한 투수진의 버팀목 역할을 했다. 40세가 되는 해인 2009년에 마이너 계약을 통해 뉴욕 메츠에서 잠깐 중간계투로 뛰다가 방출되었고, 다음 해 일본에서 은퇴했다. 여담으로 그는 1948년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사첼 페이지, 1960년 피츠버그 파이리츠디오메데스 올리보 이후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오랜만에 나온 40대 신인 선수였다. 당연히 이는 메츠 프랜차이즈 최고령 루키 기록이기도 한데, 이 기록의 이전 보유자는 36세의 루키였던 구대성이었다.
  • 요코야마 류지 (1995 - 2014)
  • 야마우치 야스유키 (1995 - 2002)
    1995년 센트럴리그 신인왕. 아이돌 그룹 핑크 레이디의 UFO라는 곡의 안무와 비슷한 동작을 끼워넣어 디셉션을 시도한 'UFO 투구법'이라 불리는 변칙 투구법을 사용한 투수였다. 다만 신인왕 시즌 이후 부상과 기량 저하로 선발 투수로서의 기대치를 만족시키지 못하고 일찍 은퇴해버려 히로시마 암흑기 안습한 투수 뎁스의 원인 중 하나가 되기도 했다. 은퇴 후 오랜 기간 카프의 투수 코치로 활동했다.
  • 키쿠치하라 츠요시 (1996 - 2004, 2011 - 2013)
    2002년 한 시즌 78경기 등판을 기록한 좌완 중간계투 투수. 이는 이나오 카즈히사와 타이를 이루는 당시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경기 등판 물론 이나오는 선발과 중무리를 겸한 더욱 마구잡이 등판이었지만 기록이었지만 이후 JFK(한신)후지카와 큐지나 쿠보타 등이 더더욱 미친 등판기록을 세우며 묻히게 된다.(...) 이 해의 대혹사로 결국 부상이 도져 2004년 오프에 오릭스 버팔로즈로 트레이드되는데, 그곳에서 또다시 71경기에 등판해 33홀드를 기록하며 홀드왕에 오르는 등 준수한 중간계투로 활약했다.
  • 타마키 시게오 (1996 - 2004)
    일본계 브라질인으로, 사회인야구 미쓰비시 자동차 가와사키를 거쳐 드래프트로 입단했다. 중간계투진의 일원으로 뛰었다.
  • 펠릭스 페르도모 (1996 - 1999)
    도미니카 카프 아카데미 출신 외국인 선수. 나름 투구와 타격 모두에 소질을 보여 중간계투대타모두 기용된 적이 있는 특이한 선수였지만, 둘 모두에서 시원찮은 성적만 거두었다.
  • 사와자키 토시카즈 (1997 - 2005)
    1997년 센트럴리그 신인왕. 츠다의 등번호 14번을 이어받은 드래프트 1위의 기대주 우완 투수로 그 구로다 히로키보다도 한 순위 위로 지명된 거물 유망주였다. 하지만 카프의 전전해 신인왕인 야마우치처럼 이쪽도 부상과 기량 저하 테크를 그대로 밟아(...) 신인왕 시즌 외에는 두각을 보이지 못하고 빠르게 선수생활을 접었다. 히로시마의 투수진이 망한 것은 말할 것도 없다. 사와자키 이후 카프 출신 신인왕은 2006년 소요기 에이신, 투수 신인왕은 2011년 노무라 유스케 이전까지 대가 끊긴다.
  • 코바야시 칸에이 (1998 - 2005)
    카와카미 겐신. 다카하시 요시노부. 츠보이 토모치카와 함께 1998년 센트럴리그 신인왕 레이스에 가세한 구원 투수. 그 해 신인왕은 결국 카와카미가 차지했지만 요시노부, 츠보이와 함께 코바야시도 우수 신인으로서 연맹 특별 표창을 받았다. 하지만 그 해의 무리한 혹사 기용 이후 구위가 저하하면서 결국 이른 나이에 은퇴한다. 위에도 신인 투수 혹사 -> 부상, 기량 저하로 조기은퇴 테크를 탄 투수들이 여럿 보이는데
  • 네이트 민치 (1998 - 2000)
    203cm의 장신의 우완 투수. 3년간 카프에서 뛴 뒤 2001~2004년까지 치바 롯데 마린즈에서 뛰면서 평균자책점 타이틀을 1회 획득했다(2001). NPB 생활 7년동안 단 2시즌을 빼고 모두 한 시즌 180이닝 이상을 먹은 이닝 이터선발 투수로 카프에서 1번(1998), 롯데에서 1번(2002)씩 한 시즌 230이닝을 소화한 적이 있다. 투수를 이렇게 굴리니 탈이 안 날리가 있나...
  • 오야마다 야스히로 (1999 - 2007)
  • 오타케 칸 (2002 - 2013)
    2000년대 카프 암흑기의 토종 우완 에이스. 구로다 히로키가 떠나고 마에다 켄타가 터지기 전까지 카프의 선발진을 혼자 이끌던 선수였다. 2013년 시즌 종료 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FA 이적했는데, 오타케가 노쇠화로 로테이션 투수는 커녕 1군도 간당간당한 먹튀가 된 반면 카프가 보상선수로 받아온 이치오카 류지가 주축 셋업맨으로 터지며 아직도 히로시마와 교진팬들 사이에서 명예 카프 선수 취급을 받는다.(...)
  • 케니 레이번 (2005)
  • 마이크 로마노 (2005 - 2006)
    SK 와이번스2007년 한국시리즈 우승에 큰 공헌을 한 외국인 투수 듀오. 원래는 히로시마에서 한솥밥을 먹은 적이 있다.
  • 사이토 유키 (2006 - 2014)
    2번 항목 참조.
  • 이마이 케이스케 (2006 - 2017)
  • 마에다 켄타 (2007 - 2015)
  • 콜비 루이스 (2008 - 2009)
    일본에 오기 전에는 망한 선발 투수였지만, 일본에서 기량을 갈고닦은 뒤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 깜짝 활약을 선보이며 수년간 텍사스 레인저스 선발 로테이션의 일각을 지켰다
  • 후쿠이 유야 (2011 - 2018)
  • 브라이언 벌링턴 (2011 - 2014)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는 데이브 리틀필드의 안 좋은 의미로 전설적인 드래프트 전체 1픽 실패 사례였으나, 히로시마에서는 외국인 선발로 4년간 좋은 활약을 펼쳤다.
  • 데니스 사파테 (2011 - 2012)
  • 듀엔트 히스 (2014 - 2015)
  • 제이 잭슨 (2016 - 2018)

11.2.2. 포수

  • 타케시타 모토아키 (1958 - 1961)
    비교적 일찍 은퇴하여 잘 알려지지 않은 선수였지만, 1985년 고시엔에 참가한 아들을 응원하러 가던 중 일본항공 123편 추락 사고로 목숨을 잃었다.
  • 우에다 토시하루 (1959 - 1961)
    선수로써는 백업에만 머무르다 부상으로 고작 3년만에 은퇴했지만, 이후 지도자로 대성해 한큐 브레이브스 왕조를 이룩한다.
  • 미즈누마 시로 (1969 - 1982)
    70년대 카프의 주전 포수. 1975년 카프의 첫 우승이 결정된 시합의 마무리를 맡고, 에나츠의 21구를 잡은 포수로 유명하다.
  • 미치하라 히로유키 (1972 - 1984)
    1971년 드래프트 1순위로 입단했으나, 선수 시절 내내 미즈누마 시로에게 주전포수 자리에서 밀려 백업포수 정도로 만족해야 했다. 다만 1975년 카프의 첫 우승이 결정된 시합에서 선발포수를 맡기도 했고, 1979년 2번째 우승 당시 마무리를 맡은 바 있다. 은퇴 후엔 카프 2군 코치, 기숙사장으로 일하는 중.
  • 김무종 (1972 - 1982)
    일본에서는 1군 출장이 15경기에 불과한 무명 선수였지만, 해태 타이거즈에서 뛴 첫 시즌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크게 공헌하며 해태 왕조의 서막을 연 포수.
  • 타츠카와 미츠오 (1978 - 1992, 감독 1999 - 2000)
    현역 시절 당시 준수한 수비력과 트래쉬 토크(일본어로 ささやき戦術)로 이름이 높았으며, 요코하마 타이요 훼일즈의 포수 이치카와 카즈마사와 함께 선수와 심판을 농락하는(...) 트릭 플레이로도 이름이 높았다. 은퇴 후 카프의 감독에 부임하기도 했으나 2년 연속 5위만 찍고 사임했다.
  • 니시야마 슈지 (1989 - 2002)
    1992년 은퇴한 타츠카와의 후임으로 90년대 카프의 주전 포수를 맡았으며, 1996년엔 카프 사상 최초이자 현재까지 유일한 규정타석에 도달한 3할 타율 포수가 되기도 했다.

11.2.3. 내야수

  • 시라이시 카츠미 (1950 - 1956)
  • 고바 타케시 (1958 - 1969, 감독 1975 - 1985)
    카프에서 뛰던 현역 시절 도루왕을 2번 차지했고, 후에 감독으로서 카프의 최전성기를 이끌었다.
  • 아난 준로 (1956 - 1967, 감독 1986 - 1988)
  • 기누가사 사치오 (1965 - 1987)
    아래 영구결번 항목 참조.
  • 미무라 토시유키 (1967 - 1983, 감독 1994 - 1998)
    카프의 첫 리그 우승 당시 주전 유격수. 감독으로서는 1990년대 강타선을 육성한 것으로 이름이 높으나, 투수진의 붕괴를 막지 못하면서 20년 비밀번호의 첫 스타트를 끊기도 했다. 2009년 심부전으로 사망.
  • 이영구 (1973 - 1982)
    김무종처럼 무명의 2군 선수였으나, 장명부가 동생처럼 아끼던 선수라 그를 따라 삼미 슈퍼스타즈로 이적했다.
  • 게일 홉킨스 (1975 - 1976)
    카프의 첫 우승 당시에 주전 1루수로 활약했던 외국인 선수. 1975년 10월 15일 카프의 첫 우승이 결정된 고라쿠엔 구장에서의 요미우리 자이언츠 전에서 우승을 확실히 결정짓는 3점 홈런을[79] 날렸고 이 홈런은 지금까지도 카프 전성기의 명장면으로 회고되고 있다.
  • 타카하시 요시히코 (1975 - 1989)
    1970년대 중반 ~ 1980년대 카프의 돌격대장 역할을 맡았던 호타준족의 스위치 히터 유격수.
  • 오사나이 타카시 (1976 - 1991)
    1980년대 중후반 팀의 1루수, 외야수 준레귤러로써 준수한 장타력을 주무기로 활약했다. 후에 요코하마로 이적해 2년간 뛰다가 은퇴한 후 카프, 오릭스에서 타격코치로 일했다. 여담으로 베이스타즈 시절 응원가가 현재 베이스타즈 좌타자 전용 응원가로 쓰이는 중이다.
  • 코바야카와 다케히코 (1984 - 1996)
  • 쇼다 코우조 (1985 - 1998)
    대한민국에서 여러 팀의 타격코치로 눈에 익은 그 분 맞다. 일본프로야구에서 2차대전 전후 유일한 무홈런 수위 타자 기록을 갖고 있다. 준족의 스위치 히터 2루수로 활약했다.
  • 웨이드 로돈 (1989 - 1990)
    철인 키누가사 사치오의 은퇴 공백을 메우기 위해 데려온 3루수로 뛰어난 수비를 보여주며 1989년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여담으로 카프는 이 선수를 데려오기 전에 랜디 존슨이란 이름의 내야수를 데려왔으나 발목 부상 때문에 떠나보냈고 그 대체자로 들여온 것이 로돈.
  • 노무라 켄지로 (1989 - 2005, 감독 2010 - 2014)
    도루왕, 30-30 클럽, 통산 2000안타 등을 기록하며 90년대 내내 카프의 돌격대장 역할을 맡은 호타준족의 프랜차이즈 유격수. 2010년대 초반 감독직을 수행하면서 리빌딩에도 수완을 보이며 이후 카프의 주력들이 될 선수들을 육성했다.
  • 에토 아키라 (1989 - 1999)
    1990년대 카프에서 쟁쟁한 강타자들 사이에서도 4번을 맡았던 거포 3루수이자, 히로시마의 주축선수 FA 유출 잔혹사의 시발점.
  • 마치다 코지로 (1992 - 2004)
  • 기무라 타쿠야(야구선수) (1995 - 2006)
  • 루이스 로페즈 (1996 - 1997, 2000 - 2002)
    1996, 1997년 2년 연속 센트럴리그 타점왕에 오른 강타자 1루수 용병이었다.
  • 히가시데 아키히로 (1999 - 2015)
  • 아라이 타카히로 (1999 - 2007, 2015 - 2018)
    팀의 중심 거포 -> FA 이적으로 금지어행 -> 친정팀으로 금의환향하며 은퇴라는 흥미로운 커리어를 보낸 오른손 강타자. 재일교포 선수로도 잘 알려져있다.
  • 에디 디아즈 (1999 - 2002)
    2003년 SK 와이번스, 2004년 한화 이글스에서 뛴 적이 있는 내야수.
  • 쿠리하라 켄타 (2000 - 2015)
    아라이 타카히로가 떠난 뒤 4번 타자를 맡은 오른손 강타자 1루수.
  • 앤디 시츠 (2003 - 2004)
    강타자 유격수로, 라로카와 함께 일본에서는 보기 드문 장타형 키스톤 콤비를 꾸렸다. 2005년 한신 타이거즈로 이적해 2005~07년 3년 연속으로 1루수 골든글러브를 수상했다. 밀워키 브루어스의 에이스이던 메이저리거 벤 시츠의 사촌.
  • 그렉 라로카 (2004 - 2005)
    2004년 40홈런을 넘기며 아라키 마사히로와 함께[80] 2루수 베스트나인에 오른 거포 내야수. 특이 사항으로 2007년 오릭스 버팔로즈에서 한 시즌 28개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해 일본프로야구 단일시즌 최다 HBP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 소요기 에이신 (2006 - 2017)
    2루수 히가시데와 함께 2000년대 중후반 카프의 리드오프-키스톤 라인을 지탱한 유격수. 2006년 신인왕, 2010년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다.
  • 스캇 시볼 (2008 - 2009)
    KIA 타이거즈에서 뛰었던 그 특이한 이름(...)의 외국인 선수 맞다. 한국에서 방출된 뒤 카프에서도 별다른 기대 없이 싼 값에 줏어갔으나, 두 자릿수 홈런을 때리는 깜짝 활약을 보이며 2008년 한 해 동안 아라이 타카히로가 떠난 타선의 구멍을 메꾸는 데 성공한다. 일본에서의 시볼의 활약에 대한 장성호의 반응(...)
  • 신성현 (2009 - 2013)
    덕수중 졸업 후 교토국제고로 유학, 2008년 드래프트에서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김무영과 함께 한국에서 태어난 한국 국적자로서는 최초로 일본프로야구 구단에 지명되었다. 그러나 단 한번도 1군 출전 기회를 잡지 못하고 2013년 말 방출되었으며, 이후 고양 원더스를 거쳐 2015년 한화 이글스에 입단했다.
  • 브래드 엘드레드 (2012 - 2018)
    아래의 짐 라이틀을 제치고 카프 프랜차이즈 사상 최장기간 재적한 외국인 선수. 미국에서는 위의 벌링턴과 함께 데이브 리틀필드 단장 시절 피츠버그 파이어리츠의 망주들 중 하나였다. 2m가 넘는 거구에서 뿜어져나오는 파워가 진퉁이라 2014년 홈런왕을 차지할 정도였지만, 워낙 큰 체구인데다 본 포지션은 1루수이지만 1루/코너 외야 소화가 가능한 마츠야마나 다른 외국인 선수들, 나중 가서는 1루밖에는 소화할 수 없는 프랜차이즈 스타 아라이와의 기용상 문제로 계속 외야수 알바를 뛰는 바람에 잔부상이 많아 풀타임 출장에 다소 무리가 있는 선수였다. 다만 그 잔부상을 카프 구단측에서 지랫대로 삼아 연봉상승을 억제할 수 있었기에(...) 오히려 가늘고 길게 재계약을 할 수 있었다. 일본 진출 초창기에는 삼진은 많고 볼넷은 적은 전형적인 공갈포였지만 2016년을 기점으로 30대 후반의 나이에 오히려 출루능력을 향상시키며 비율스탯을 개선하는데 성공해 2016~17년 카프 강타선 부활의 일원으로 활약했다. 2018년 바티스타나 메히아 등 도미니카 카프 아카데미 출신의 더 값싼 옵션들이 생기자 시즌 종료 후 자유계약으로 풀렸고 사실상 은퇴수순을 밟았다.

11.2.4. 외야수

  • 야마모토 카즈요시 (1961 - 1975)
  • 미즈타니 지츠오 (1966 - 1982)
  • 야마우치 카즈히로 (1968 - 1970)
  • 야마모토 코지 (1969 - 1986, 감독 1989 - 1993, 2001 - 2005)
    아래 영구결번 항목 참조.
  • 짐 라이틀 (1977 - 1982)
    엘드레드 이전 카프 프랜차이즈 사상 최장기간 함께했던 외국인 선수. 1980년 일본시리즈 MVP, 베스트나인 1회, 골든글러브 4회를 차지한 공수겸장의 외야수였다.
  • 에이드리안 가렛트 (1977 - 1979)
    1978년 카프의 외국인 선수로서는 최초로 40홈런을 친 거포 외야수. 동생인 웨인 가렛트도 형과 비슷한 시기에(1979~1980)에 주니치 드래곤즈에서 뛴 바 있다. 하지만 형과 달리 동생은 특별한 활약은 보여주지 못하고 2년만에 방출되면서 그대로 은퇴했다.
  • 야마자키 류조 (1977 - 1993)
  • 나가시마 키요유키 (1980 - 1990)
    NPB 최초의 등번호 0번. 1984년 일본시리즈 MVP. 골든글러브를 4번이나 차지한 준수한 수비력의 외야수였다.
  • 릭 란셀로티 (1987 - 1988)
    일본프로야구 사상 최고의(?) 공갈포 용병. 일본에서의 등록명은 이름을 다르게 읽은 '리차드 란스'였다. 1987년에 39홈런을 치며 홈런왕을 차지했으나, 규정타석 채운 타자 중 꼴찌인 .218[81]의 타율을 기록하며 일본프로야구 사상 2번째의 최저타율 홈런왕 기록을 세웠다[82]. 여담으로 같은 해 수위타자를 차지한 팀 동료 쇼다 고조무홈런 수위타자였다.(...) 다음 해에는 아예 1할대 타율을 찍는 완벽한 공갈포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시즌 도중에 퇴출되었다.
  • 오가타 고이치 (1987 - 2009, 감독 2015 - 2019)
    두 자릿수 홈런의 펀치력과 1995~1997 3년 연속 도루왕을 차지한 빠른 발을 겸비한 외야수였다. 감독으로서는 센트럴리그 3연패를 달성하며 리그에서는 절대강자의 모습을 보였으나 3연패 기간동안 단 한번도 일본시리즈를 제패하지는 못했고 결국 2019시즌 최종성적 4위를 끝으로 감독직을 내려놓았다.
  • 마에다 토모노리 (1990 - 2013)
    노모 히데오, 후루타 아츠야, 사사키 카즈히로, 신조 츠요시등을 배출한 1989년 드래프트 최후의 생존자. 젊었을 적엔 3할 타율, 20-20, 골든글러브급 수비를 가진 정상급의 외야수였으나 아킬레스건 파열 부상만 2번 당하는 등 커리어 내내 부상에 시달리며 주루능력과 수비력이 빠른 속도로 감퇴했다. 그럼에도 상당한 성적을 남겼고 무엇보다도 23년간의 현역생활을 모두 카프에서만 보냈다는 점에서 히로시마 암흑기 팬들에게는 구로다 히로키만큼이거나 그 이상으로 존경받았던 선수.
  • 아사이 이츠키 (1990 - 2006)
  • 마티 브라운 (1992 - 1994, 감독 2006 - 2009)
    화끈한 허슬 플레이로 팬들의 사랑을 받았던 외국인 선수였다. 선수 은퇴 후 마이너리그 감독을 맡다가 카프의 감독으로 취임했는데, 그 성질머리는 어디 안 가서 심판 판정에 베이스를 뽑으며 항의한다는지[83] 하는 화끈한 액션을 보여주며 팬들을 즐겁게 했다.(...) 하지만 감독 시절 성적은 5-5-4-5를 찍으며 비밀번호 연장에 공헌했다. 퇴장당한 경기에서의 승률은 높다
  • 카네모토 토모아키 (1992 - 2002)
    히로시마 시절이었던 2000년 30-30 클럽에 가입하는 등 타선의 핵심으로 활약했다. 90년대 후반 가네모토-오가타-마에다의 외야진은 공수주를 겸비한 당대 일본 최고의 외야진으로 평가받았다. 하지만 카네모토 빼면 다들 부상이 많아서
  • 시마 시게노부 (1995 - 2011)
    별명은 레드 고질라. 투수로 입단하였다가 타자로 전향하였다.
  • 히로세 준 (2001 - 2016)
  • 아마야 소이치로 (2002 - 2018)
  • 마루 요시히로 (2008 - 2018)
    뛰어난 출루능력과 호타준족의 모습을 보여주며 2010년대 카프 중흥의 핵심으로 활약한 중견수. 2017~2018 센트럴리그 MVP를 탈 정도로 맹활약했으나 18년 오프시즌에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떠나 팀의 중심타자 FA 잔혹사의 계보를 이었다.

11.3. 팀 출신 메이저리거


어째 출신 메이저리거도 일본인 선수보다 외국인 선수가 더 많다. 안습. 예비 메이저리거들의 멘탈 트레이닝 센터

11.4. 영구결번

히로시마 도요 카프 영구결번
No. 3 No. 8 No. 15
기누가사 사치오 야마모토 코지 구로다 히로키

3. 기누가사 사치오 : 카네모토 토모아키 이전에 철인이라 일컬어졌던 남자. 2215경기 연속 출장 기록을 가지고 있다. 루 게릭이 가지고 있던 연속출장기록을 넘긴 기록으로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에서도 이 부문만큼은 기누가사의 기록을 인정했다. 하지만 몇 년 뒤 칼 립켄 주니어가 갱신한다. 504홈런, 266도루, 2543안타, 통산타율 .270. 야마모토 코지와 호타준족의 콤비로 히로시마를 이끌었다.

8. 야마모토 코지 : 히로시마 프랜차이즈 최고의 레전드. 일명 미스터 아카헬. 536홈런, 231도루, 2339안타, 통산타율 .290의 강타자였다. 1980년대 카케후 마사유키와 함께 센트럴리그 홈런왕 경쟁을 했고, 시원한 장타력 뿐만 아니라 정상급의 외야수비능력까지 갖춘 선수였다. 현재 명구회 부회장이며, 베이징 올림픽 때 수비주루 코치였다.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는 일본 대표팀 감독을 맡았다.

15. 구로다 히로키 :FA를 포기하고 히로시마에 남았으며, 메이저리그에서도 거액의 제시를 거절하고 선수생활의 마지막을 히로시마에서 보내고 싶다고 했던 그야말로 미스터 히로시마. 물론 성적 역시 미일통산 203승을 거뒀으며, 승운이 지독하게 없었던 선수임을 감안하면 훨씬 고평가 되어도 될만한 투수였다. 2016년에 팀을 일본시리즈에 진출 시키고 은퇴를 선언하였으며 구단에서는 메이저리그 진출 이후 계속 15번을 비워둔것과 같이, 은퇴가 결정 된 일본시리즈 종료 다음날 영구결번으로 지정한다고 발표하였다.

마에다 토모노리의 1번은 2018년 시즌이 끝나고 스즈키 세이야가, 노무라 켄지로의 7번은 2012년 시즌이 끝나고 3루수 유망주 도바야시 쇼타가 번호를 물려받았으며, 키타벳푸 마나부의 20번은 2002년까지 결번 처리가 되었다가 볼질 나가카와 카츠히로가 계승한 상태.


[1] 구단 운영을 맡을 당시의 이름은 도요공업(東洋工業, 동양공업)이었으나 1984년 지금의 이름으로 변경.[2] 실 지분은 마쓰다 기업이 아닌, 마쓰다의 창업주 일가가 가장 많이 가지고 있다. 마쓰다 오너 3세가 1주주, 마쓰다 기업이 2주주이며 3주주도 마쓰다 오너 집안 사람인데 1,3주주 합이 50%정도이며 2주주가 20%정도이다.[3] カープ坊や. 과거에는 주니치 드래곤즈,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 킨테츠 버팔로즈 등 많은 팀들에 '야구 소년'을 모티브로 한 팀 로고나 마스코트 등이 있었으나, 1990년대를 지나면서 대부분 사라지고 현재는 히로시마 카프만 이러한 형태의 팀 로고를 유지하고 있다. 관련 상품 등에도 적극적으로 디자인이 활용되고 있다. 여담이지만 구글에다가 카프 보야 라고 검색하면 이 카프 보야를 각종 콜라보레이션으로 마개조한 사진들이 나돌아다닌다(…).[4] 1995년부터 등장한 마스코트. 이걸 보고 필리 패너틱 베낀 꺼 아니냐고 할 수도 있지만 슬라이리 역시 필리 패너틱을 만든 세서미 스트리트 제작사가 디자인한 캐릭터라 형제 마스코트지, 베꼈다고 할 수는 없다. 경기장에 나오는 탈 마스코트는 슬라이리 뿐이며, 카프 보야는 안 나온다.[5] 대표적인 예로 원자폭탄 투하 전후의 히로시마를 그린 맨발의 겐의 등장인물 곤도 류타는 카프의 광적인 팬으로 나온다.[6] 등용문과 비슷한 맥락이다.[7] 아시아에서 우승 기록이 제일 오래된 팀 2위는 1985년 일본시리즈 우승이 마지막인 한신 타이거스, 3위는 1989년 K리그 우승이 마지막인 K리그1 제주 유나이티드다. 참고로 아시아의 프로 스포츠 리그 중에서 가장 역사가 긴 것이 일본프로야구(1936~)이고 두 번째가 KBO 리그(1982~), 세 번째가 K리그(1983~)다. 대만프로야구는 1989년에 생겼고 J리그, 중국 슈퍼 리그, KBL, V리그 등은 모두 1990년대 이후에 출범했기 때문에 이들 리그 소속 구단의 우승 기록은 모두 히로시마의 일본시리즈 우승 이후 사건이다.[8] 주니치는 1954년 우승부터 무려 53년을 기다려서 일본시리즈 우승을 했다.[9] 그런데 메이저 리그에서 현재 1980년대 이후 우승 못한팀들 가운데 가장 오래된팀이 볼티모어 오리올스인데 1983년 우승을 끝으로 현재까지 감감 무소식이고 그 뒤를 이어 같은 아메리칸 리그 소속인 디트로이트 타이거스가 카프와 동년인 1984년이 마지막 우승년도이다. 그래도 이들보다도 더 안습한 팀이 있으니 바로 해적동네로 마지막 우승이 1979년.[10] 여긴 한국 출신 선수 자체가 간 적이 없다.[11] 1950년 양대리그 출범 당시 센트럴리그 팀은 8개 구단이었으나 이듬해 니시닛폰 파이리츠가 퍼시픽리그 소속인 니시테츠 클리퍼스에 합병되어 니시테츠 라이온즈)가 되면서 7개 구단으로 줄었다.[12] 다이요는 초기에 히로시마에서 가까운 야마구치현 시모노세키시에 적을 둔 적이 있었다.[13] 맨발의 겐에 따르면 운용 비용도 부족해서 선수들이 입석 기차표로 다른 지역으로 이동해야할 정도였다고.[14] 인수합병이 아니다. 인수가 일어난 때는 쇼치쿠가 운영포기한 1955년.[15] 불명예 1위는 20년 연속 B클래스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16] 이 해에는 일본 최초의 MLB 출신 감독인 조 루츠가 감독을 맡으며 시작했다. 캠프에서 워렌 스판을 임시 코치로 대동하는 등 의욕적으로 시작했으나 개막한지 얼마 되지 않아 사퇴했다. 그래도 특유의 빨간 유니폼을 남겨놓고 갔다.[17] 그 유명한 에나츠의 21구가 벌어졌던 시리즈다. 상세한 내용은 해당 항목 참조.[18] 그래서 진출 실패 기간으로만 따지면 히로시마가 퍼시픽 리그의 모팀보다는 비밀번호가 길지만 98시즌 이전에는 1위만 못 했을뿐 A클래스는 찍었기 때문에 98시즌부터 12시즌까지 B클래스 한 기간만 비밀번호에 들어간다. 참고로 소프트뱅크의 전신인 난카이와 다이에는 20년 동안 B클래스만 찍었다!!![19] 센트럴 리그는 초창기부터 2006년까지 규정상 공동 1위팀이 생기는 경우를 제외하면 단독 1위를 한팀만 포스트시즌에 진출할수 있었다. 문제는 센트럴 리그에는 동률 1위팀이 생긴적이 없어서 있으나 마나였다...[20] 현재 카프 감독[21] 현재 KIA 타이거즈 코치[22] 70년대 신시내티 레즈의 별명인 빅 레드 머신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러고보니 이쪽도 붉은 유니폼에 로고 모양이 'C'...[23] 하지만 어떤 해는 바뀐 규정 때문에 피해를 봤는데 그 예로 요코하마 베이스타즈는 5년 연속 A클래스의 마지막 해인 2001년엔 3위를 기록했는데 승률이 4위팀이었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에게 밀렸다. 당시 베이스타즈의 성적은 69승 67패 4무 승률 0.507 이었고 카프의 성적은 68승 65패 7무 승률 0.511이었다. 원칙대로 라면 히로시마가 3위 요코하마가 반 게임차로 4위를 기록해야 되지만 왜 요코하마는 3위 히로시마가 4위가 됐냐면 이 해엔 승률이 아니라 승리 수로 순위를 결정지었기 때문(…)에 히로시마가 비밀번호 끊는데 11년이 더 걸렸다. 이 팀도 2009년에 이 규정 때문에 우승 날려먹었지….[24] 2012년의 대 요코하마 전적은 무려 15승 6패로, 유독 요코하마에게만 강세였다. 아니 요코하마를 제외한 다른 네 팀에게는 전부 근소한 열세였다. 결국 다른 팀과의 대결에서 패한 부분을 제일 만만한 요코하마전에서 메웠다는 소리.[25] 7월 16일부터 18일까지 열린 홈 경기에서 요코하마는 2012 시즌 첫 3연승과 시리즈 스윕을 해냈다. 장하다 색히들아[26] 다만 2위 주니치 드래곤즈와는 여전히 11게임 차이로, 현저하게 밀리고 있다.[27] 6월 말에야 육성선수에서 정식 선수로 계약해 후반기부터 활약했는데도 47경기(2경기 선발) 65이닝을 소화했다. 정말 빠른 페이스로 굴려진 것. 잭슨, 이마무라 등 기존의 필승조를 떠받치던 선수들이 죄다 얻어터지며 구원진 전반이 붕괴한 상황이었던 만큼 프랑수아를 엄청 굴렸는데, 이 상황에서 불펜을 혼자 떠받친 덕분에 프랑수아는 MVP 투표에서 1위표 한 표를 받기도 했다.[28] 퍼시픽리그에서는 난카이, 세이부(니시테쓰 시절 1번, 세이부 시절 2번), 한큐 등 세 팀이 리그 3연패 이상의 경험이 있다.[29] 이 인간은 금액보다 계약기간이 중요하다면서 5년 계약을 하는 바람에(...) 마루의 FA 당시에는 보상선수로 설령 간다고 해도 3년 9억엔을 줘야 했고, 2020년 시즌을 앞두고 보상선수로 가도 2년 6억엔을 줘야 하는 상황이다(...) 이쯤되면 그냥 FA 한 명 영입하는 수준. 차라리 C급 FA 최대어고 나이도 더 어린 외야수 후쿠다 슈헤이를 지르고 말지...[30] 이 홈런이 2019시즌 NPB 1호 홈런이다.[31] 구단 연승 기록이 1984시즌의 12연승.[32] 한 시즌에 두 자릿수 연승과 연패를 다 해본 것도 히로시마가 최초이다.[33] 사실 한 팀 더 생길 뻔했는데… 그 팀은 전반기 마지막 3연전에서 오릭스에 1승을 거둔다. 그래봐야 여기도 단 1승(...)[34] 참고로 2019년 교류전도 변함없이 퍼시픽리그 팀이 압도적인 우세 끝에 막을 내렸었다. 우승팀은 당연히 소프트뱅크[35] 약물 적발 약 2개월 전에 외국인 차별 발언이라며 5ch 등에서 가볍게 논란이 된 적이 있었다.[36] 만약 12회까지 가서 비기면 히로시마가 올라간다. 승률, 승차가 동일할 때의 규정이 센트럴리그와 퍼시픽리그가 다른데, 퍼시픽리그는 양 팀 간의 상대전적으로 가르지만, 센트럴리그는 승수가 많은 팀이(=무승부가 적은 팀이) 올라간다. 승수가 동일할 때 상대전적을 보는 식. 파리그는 상대전적이 동일하면 교류전을 제외한 승률로 가른다.[37] 구단 신기록[38] 구단 신기록[39] 2015년은 30,477명, 2016년은 30,438명.[40] 나머지 11개 구단은 정원 없이 모집한다.[41] 기존 연간지정석 회원 우선 판매만으로 4년 연속 매진[42] 홈팬의 일방적인 응원 때문에 제일 나중에 매진된다. 그래서 원정 응원석 티켓을 끊어서 입석으로 홈팀을 응원하는 비매너 팬들도 속출했다.[43] 일본시리즈의 티켓 판매는, 각 좌석별로 응모해서 당첨되면 그 좌석을 구매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진다. 하지만 카프의 정리권은 줄을 세우는 번호일 뿐이어서, 티켓 상황에 따라 구매할 수 없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다.[44] 때문에 2013년 오프시즌에 대학 투수 최대어로 평가받던 오세라 다이치를 히로시마가 지명했던 일은 카프 팬들에게 놀라운 일로 받아들여졌다.[45] 지금이야 그나마 선수의 권리 의식도 향상되고 과학적인 트레이닝 방식들도 많이 도입되어 '다른 팀들보다 좀 더 훈련량이 많다' 정도지, 7~80년대에는 '훈련 중 수석코치에게 맞았다'던가, '투수들이 연습투구를 너무 많이 던지다 혈행장애를 얻었다'같은 무슨 파도 파도 괴담 류의 에피소드들이 많다.[46] 심지어 서장은 주 히로시마 총영사도 재임 시 마츠다 스타디움에 카프 야구를 보러 간 사진을 올리기도 했다. 그리고 행사 방문해서 축사 읽을 일이 있었는데 카프 경기 끝난 것까지 겹치다 보니 한 시간 동안 늦었다고...[47] 나가카와가 1위가 되는데 거부감을 느낀 다른 팀 팬들이 임창용을 밀었다는 이야기도 있다.[48] 오히려 자기 연고지에서 안티가 가장 많은 건 정상이다.[49] 한국말로 번역하면 카프녀.[50] 여담으로 경기장 외야가 붉은색으로 도배되어 있는데 저기는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의 홈구장인 메이지진구 야구장이다. 히로시마에서 1000km가 넘고 신칸센 타도 네 시간 넘게 걸리는 동네의 야구장을 정복하는 히로시마 팬덤의 위엄[51] 게다가 이쪽도 카프와 똑같이 현재 리그를 씹어먹고 있다. 그러나 아이러니하게도 두 팀 모두 각각의 일본시리즈, 한국시리즈에서는 고배를 마시고 있다. 카프는 16, 18시즌 일본시리즈에서 미역국을 들이켰고, 두산은 17, 18시즌 한국시리즈에서 준우승을 하였다. 그리고 2018 시즌이 끝난 뒤 양 팀의 최고의 프랜차이즈 스타인 마루 요시히로, 양의지와도 이별함으로써 완벽한 평행이론을 보여주고있다. 미친[52] 이들 중에는 본진인 마쓰다 스타디움은 물론 태어나서 히로시마도 한번도 가본 적이 없다는 사람도 꽤 있다.[53] 히로시마 유니폼의 모자 색상이다.[54] 원래 정답은 "양초".[55] 아래 글에 2006년~2009년까지 감독을 했던 마틴 브라운의 이름이 있는 것으로 보아 그의 재임 기간 중에 나온 유머인듯.[56] 실제로 히로시마가 쓰기 이전에 모자에 신시내티 비슷한 C를 쓴 바 있다. C를 쓰기 전의 히로시마는 히로시마의 H와 카프의 C를 합치거나 혼합한 로고를 썼다.[57] 그 대표가 케니 레이번마이크 로마노다.[58] 물론 실제로는 다른 팀으로 옮기면 얄짤없이 까인다. 먼저 간 가네모토 토모아키를 따라 한신 타이거스로 옮겼다가 다시 히로시마 도요 카프로 돌아온 아라이 타카히로는 아직도 팬들의 절반은 용서하지 않았다는 말이 나올 지경. FA 선언 안 한다고 하더니 돈을 보고 한신으로 떠나가며 팬들에게 거짓말을 한 것과 더불어 FA 선언 이후 기자회견 때 FA 선언을 했으면서 눈물 질질 흘리며 카프가 좋아서 괴롭다는 둥 말도 안 되는 언플을 때려 안 그래도 거짓말에 빡친 팬들을 더 빡돌게 만들었기 때문. 하지만 후에 또다시 FA가 되었을 때 한신의 8천만 엔을 거절하고 스스로 고작 2천만 엔으로 연봉을 존나게 후려치고 히로시마로 돌아온 것과 2016년 비록 수상은 못했지만 시즌 막판까지 타점왕 1위에 오르며 리그 우승의 1등공신으로 맹활약해서 대부분의 팬들은 용서를 했다.[59] 1990년대 초 히로시마에서 외국인 선수로 뛰었고 2006년~2009년까지 히로시마 도요 카프의 감독으로 재직했다. 그러나 재임기간 동안 성적은 5위-5위-4위-5위로 4년 연속 하위권. 2010년엔 노무라 카츠야의 후임으로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땜빵성이 짙은 감독을 맡기도 했으나 보기좋게 꼴찌하고 물러났다.[60] 브라운은 히로시마 감독을 맡은 4년간 8회나 퇴장당했다. 독특한 것은 브라운이 심판의 심기를 살피기는 커녕 오히려 의도적으로 퇴장을 유도했다는 것이고 (베이스를 뽑을 때에는 훗날 인터뷰에서 선수의 퇴장에 대한 항의로 '이 정도는 해야 퇴장감이다'라는 액션을 취한 것이라고 설명했으며, 심지어 퇴장 제스처가 나오기도 전에 나가서 심판이 퇴장 지시를 내리지 않기도 했다. 퇴장당할 때 코치에게 남은 경기의 작전지시를 모조리 전달하고 나가는 것은 덤.), 브라운 감독이 퇴장당한 날 히로시마는 7승 1패로 거의 무적에 가까웠다는 것. 그 뒤 라쿠텐 감독을 1년 할 때는 4번 퇴장당했지만 2승 2패에 불과(?)했다.[61] 가네모토 도모아키, 아라이 타카히로, 앤디 시츠가 대표격이다. 근데 아라이는 다시 돌아왔다그리고 2016년 한신이 카프의 승수를 제대로 공급해주며(...) 카프의 리그 우승에 엄청난 도움을 줬다.[62] 그런데 진짜로 메이저리그에 눈을 돌릴 수밖에 없는 게, 한때 카프의 유일한 희망이었던 구로다 히로키가 메이저리그에서 승승장구하고 있었기 때문. 그리고 그 구로다는 2015 시즌에 금의환향했다! 그런데 구로다가 돌아온 이듬해 마에다가 MLB로 가버린 게 함정[63] 마에다 토모노리, 마에다 겐타 / 오시마 타카유키 / 시노다 준페이[64] 카프랑 파크가 발음도 비슷하고 한글에서도 글자만 바꾸면 똑같다. 더군다나 그걸 내뱉는 아라이상은 팀의 베테랑 아라이 타카히로와 이름이 같기도 하고... 아라이상 관련 밈에도 츠라이상 등 아라이 타카히로와 관련된 네타가 있다.[65] 1938년에 창단한 도요 공업 축구단의 후신인 산프레체 히로시마의 대주주이기도 하다.[66] 여담이긴 하지만 한국인들에게는 꽤 중요한 역사적 사실은 도요공업이 태평양전쟁 시절 일본군의 총기를 제조했던 전력이 있는 전범기업이었다는 것이다. 그 와중에 상당수의 조선인들을 공장 노무자로 강제동원하기도 했다.[67] 2009년 기준으로 요미우리는 15억 엔, 한신은 3억 엔, 히로시마는 4억 엔의 흑자를 기록했다.[68] 물론 일본프로야구에서는 흑자 구단 일부 구단 빼고는 다 이런 방식을 취하는데 히로시마는 분명 흑자구단이다(...).[69] 참고로 한국프로야구는 비판적인 기사를 썼다고 해서 구단 출입이 금지되는 경우는 없다고 박동희가 한 인터뷰에서 밝혔다.인터뷰[70] 각각 당시 4번타자와 우완 에이스. 쿠리하라는 이후 2015년 카프에서 방출되어 2016년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에 입단했다가 그해를 끝으로 은퇴, 오타케는 2013시즌 종료 후 FA로 요미우리 자이언츠로 이적했다.[71] 이 때문인지 유니폼과 모자 로고가 MLB의 신시내티 레즈와 흡사하다. 모자 로고는 누가 봐도 신시내티 표절이긴 하지만, 다들 크게 신경쓰지 않는다(...) 뺏긴 빼고 어차피 미국 내에도 비슷한 로고를 쓰는 다른 팀이 있기도 하다.[72] 다만 초기 팀 컬러는 6~70년대 초에 클리블랜드 인디언스의 팀 컬러를 따온 것에 가까웠다. 당시 감독이었던 조 루츠가 인디언스의 코치를 맡은 경력이 있어서였다고. 90년대 이전의 카프 유니폼에 네이비 블루(검은색으로 오해할 수 있는데 검은색은 아니다) 색이 들어간 것이 보일 텐데 바로 이것 때문이었다.[73] 다만, 라쿠텐의 팀 컬러는 정확히 버건디(Burgundy)로 넥센 히어로즈가 팀 컬러로 쓰는 바로 그 색이다.[74] 여기는 기업명칭이 지역명+사업종류라서.[75] 유니폼 교체와 함께 기업명과 같이 부착.[76] 성씨의 표기가 한국의 지명인 九里로 표기된다.[77] 카토 타쿠야에서 2019년 개명.[78] 다만 센트럴리그가 1991년부터 최다탈삼진을 타이틀 시상 대상에 넣었기에 타이틀 수상은 1991년 단 1번.[79] 결승점은 그날 2번 타자였던 미무라 토시유키가 선제 1타점으로 기록하였다.[80] 공동수상에 관한 자세한 사정은 항목 참조[81] 114개의 삼진(60사사구)까지 당하며 최다 삼진 역시 기록했다. 그래도 출루율은 타율을 1할 이상 상회하는 .323에 OPS도 .859를 찍었으니 나름 뛰어난 생산력의 타자였다.[82] 최초는 1974년 킨테츠 버팔로즈에서 38홈런으로 홈런왕에 오른 클라렌스 존스(.226)였다. 이후 2011년 도쿄 야쿠르트 스왈로즈블라디미르 발렌틴이 .228의 타율로 31홈런을 치며 홈런왕 자리에 올라 이 계보(?)를 이어간다.[83] 베이스만 뽑는게 아니라 가끔 모자를 집어 던질때도 있고 뜬금없이 신발이랑 모자를 벗어 가지런히 홈 플레이트 위에 올려놓는둥 여러가지 기행을 많이 선보였다.[84] 도미니카 카프 아카데미를 거쳐간 선수 중 하나. 1995년 일본에서 평균자책점 2.74, 15승 8패, 166탈삼진의 훌륭한 성적을 거두며 1997년 보스턴에 입단하나, 보스턴에서의 2년간 메이저리그 출장은 단 5경기에 불과했다(...). 구단에서도 '미스테리 맨'사이버 투수이라 불리며 먹튀인증을 철저히 했다.[85] 역시 도미니카의 히로시마 카프 아카데미 출신으로 선수생활은 일본에서 시작했다. 당시에는 스위치 히터였으며, 1할대 초반을 찍고 퇴출되었다. 퇴출 후 뉴욕 양키스 스카우트에 눈에 들어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까지 올라갔고, 거기서 포텐셜이 대폭발했다.[86] 이쪽도 역시 카프 아카데미 출신의 도미니카 용병. 96년에서 99년까지 카프에서 뛰며 호타준족의 외야수로 쏠쏠한 활약을 했지만, 당시 자국인 선수만으로도 역대급 외야진을 구축했던 카프에서는 기회가 많지 않아 주로 주전 외야수들이 부상당했을 때를 중심으로 활약했다. 미국에서는 저니맨으로 여러 팀들을 오가며 외야 유틸리티, 백업으로 활동했다.[87] 1981년생, 카프 아카데미 출신. 소리아노처럼 일본에서 아주 잠깐 뛴 뒤 포스팅 시스템을 통해 뉴욕 양키스 행.[88] 텍사스 레인저스 출신으로 어깨 부상과 부진을 겪으며 일본에 왔다가 강심장을 얻고 슬라이더를 익혀서 빅리그 친정팀으로 돌아가서 대성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