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29 17:31:56

주니치 드래곤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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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 문서
<colbgcolor=#003570><colcolor=#ffffff> 모기업 관련 정보 모기업 파일:주니치신문 로고.svg 주니치신문
일본시리즈 우승
★★
1954 · 2007
리그 우승
(9회)
1954 · 1974 · 1982 · 1988 · 1999 · 2004 · 2006 · 2010 · 2011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 · 2008 · 2009 · 2010 · 2011 · 2012
시즌별 요약 2022 · 2023 · 2024
경기장 1군 반테린 돔 나고야 · 2군 나고야 구장
지방 홈구장 하마마츠 구장 · 토요하시 시민구장 · 나가라가와 구장
홈 중계 채널 파일:J SPORTS 2 로고.svg
현역 선수 경력 와쿠이 히데아키/선수 경력 · 타카하시 히로토/선수 경력 · 나카지마 히로유키/선수 경력
주요 인물 감독 타츠나미 카즈요시 · 선수회장 야나기 유야 · 투수 주장 오노 유다이 · 야수 주장 오오시마 요헤이
구단 상세 정보 역사 · 선수단 및 등번호 · 역대 선수 · 응원가 · 유니폼 · 10.8 결전 · 4456555 · 도아라
틀 문서
코칭스태프투수포수내야수외야수육성 선수역대 감독영구 결번 | 미스터 드래곤즈
역대 1라운드 지명 선수 | 역대 개막전 선발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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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595><colcolor=#ffffff> 주니치 드래곤즈
Chunichi Dragons
[ruby(中日, ruby=ちゅうにち)]ドラゴンズ
구단 법인명 ㈜주니치 드래곤즈
(株式会社中日ドラゴンズ)
창단 1936년 1월 15일([age(1936-01-15)]주년)
연고지 아이치현 나고야시
구단 연고지 변천 아이치현 (1952~ )
구단명 변천 나고야군 (1936~1943)
산교군 (1944)
주부닛폰 (1946)
주부닛폰 드래곤즈 (1947)
나고야 드래곤즈 (1951~1953)
주니치 드래곤즈 (1948~1950, 1954~ )
홈구장 변천 고라쿠엔 구장(1948)
나고야 구장 (1948~1996)
공식 홈구장 없음 (1951)[1]
반테린 돔 나고야 (1997~ )
2군 구장 나고야 구장 (1997~ )
모기업 주니치신문
감독 73 타츠나미 카즈요시 (立浪和義)
주장 8 오오시마 요헤이 (大島洋平)
22 오노 유다이 (大野雄大)
키트 스폰서 미즈노
마스코트 파일:주니치 드래곤즈 마스코트.svg
샤오론, 도아라(ドアラ), 파오론
구단기 파일:주니치 드래곤즈 구단기.svg
역대
한국인 선수
선동열 (1996~1999)
이종범 (1998~2001)
이상훈 (1998~1999)
이병규 (2007~2009)
송상훈 (2012~2014)
역대
한국인 코치
장훈[2] (1992)[3]
이종범 (2020)[4]
홈경기 중계 채널 파일:J SPORTS 2 로고.svg
링크 파일:주니치 드래곤즈 심볼.svg파일:인스타그램 아이콘.sv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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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본시리즈 우승 (2회)
1954, 2007
센트럴리그 우승 (9회)
1954, 1974, 1982, 1988, 1999, 2004, 2006, 2010, 2011
클라이맥스 시리즈 우승 (3회)
2007, 2010, 2011
아시아 시리즈 우승 (1회)
2007
포스트시즌 진출 (13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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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03570> 일본시리즈 1954년, 1974년, 1982년, 1988년, 1999년, 2004년, 2006년, 2007년, 2010년, 2011년
클라이맥스 시리즈 2007년, 2008년, 2009년, 2010년, 2011년,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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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팀 컬러3. 구단 역사4. 관중수 추이5. 홈 구장6. 유니폼7. 응원8. 마스코트9. 이모저모
9.1. 일본프로야구 대표 콩라인9.2. 한국인 선수와의 인연9.3. 기타 이야깃거리
10. 선수단11. 역대 선수12. 역대 감독13. 역대 성적
13.1. 단일리그 시대13.2. 양대리그 분리 이후
14. 둘러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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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일본프로야구 센트럴 리그프로 야구단. 연고지는 아이치현 나고야시. 소유주는 주니치 신문사 ([ruby(中日新聞社, ruby=ちゅうにちしんぶんしゃ)])[5], 홈구장은 나고야 돔.

1936년 일본프로야구 원년부터 지금까지 존속하고 있는 4개 팀[6] 중 하나로 주부 지방을 대표하는 센트럴리그의 강호이자 인기 팀이었고 한때는 리그에서 요미우리와 더불어 유이하게 비밀번호를 기록하지 않은 팀이었다.

1990년대 한국인들에게 가장 친근한 일본프로야구 구단이였다. 이유는 선동열, 이상훈, 이병규[7], 이종범[8] 등 많은 한국인 선수가 이 팀을 거쳐갔기 때문. 그리고 1982년, 한국에서 MBC 청룡이 창단하자 같은 '드래곤팀' 이라는 이유로 서로 자매구단 결연을 맺기도 했으며, 이는 MBC가 LG가 된 이후에도 계속해서 인연이 유지되고 있는 중이다. 또한, 1987년부터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와도 제휴 중. 당장 본 문서에 나와있는 주니치 드래곤즈의 로고도 다저스의 로고와 같은 영어 폰트로 만들어져 있는 것이다.

2. 팀 컬러

원래 팀 컬러는 일명 '공룡타선' 이라고 불리던, 나고야돔에 비해 작은 구장인 나고야 구장에서 홈런을 양산하는 스타일이었다. 당장에 구단 레전드만 보더라도 에토 신이치, 오시마 야스노리, 야자와 켄이치, 우노 마사루, 오치아이 히로미츠, 타이호 야스아키 등 강타자들이 다수 떠오를 정도.

그러나 1997년에 현재의 홈 구장인 나고야 돔[9]을 홈 구장으로 쓰기 시작하면서 이후 1년의 조정기간을 거친 뒤 팀을 순식간에 수비적인 투수 중심으로 재편하였다. 현재는 일본프로야구 12구단 중 가장 수비적인 야구를 하는 팀이 되었으며, 이러한 수비적인 팀 컬러는 호시노 센이치 감독이 정립한 이래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을 거쳐 완성되어 지금까지도 이어지고 있다. 이러한 이유 때문에 국내에서는 간간히 FC 주니치라는 별명으로도 불리고 있다. 이 때문에, 2010년대 이후로는 고질적으로 투신타병이 팀 컬러로 자리잡아[10] 2022년에는 26경기 영봉패라는 불명예 기록을 세우고, 타카하시 히로토, 오가사와라 신노스케 등 에이스 투수들의 승리가 막장 타선 때문에 날아가는 상황이 늘어나고 있으며 주니치 투수들이 대표팀에 꼽히면 타자들이 주니치보다 점수를 잘 내줘서 행복야구를 하고 왔다는 소리가 나온다(...).

특히 2000년대 중반, 오치아이 감독이 집권하던 시기에는 투수진의 경우 다른 팀에 갈 경우 못해도 3, 4선발쯤은 할 것 같은 선수들이 중계 혹은 2군 대기 중일 수준으로 탄탄하다는 평가를 받았으며, 야수진은 전 포지션이 골든글러브 후보로 꼽힐 정도로 야수진 또한 막강했다.

그러나 2010년대 이후로는 그 당시의 중심선수들의 대체 선수 육성 미흡과 드래프트 실책 등의 이유로 세대교체에 대실패했고[11], 그 여파로 과거에는 압살했던 히로시마 도요 카프요코하마 DeNA 베이스타즈에게도 밀림과 동시에 최약체 자리까지 물려받는 신세로 내려앉았다. 더불어서 과거와는 달리 그 투수친화 구장을 홈으로 끼고도 요미우리, 히로시마, 요코하마, 세이부, 소프트뱅크 같은 팀들에게 밥먹듯이 10실점 이상을 내주는 경기가 속출하고 있다.

또한 굉장히 보수적인 경영을 하는 팀인데, 지방지 신문사가 모기업인 특성상 자회사인 드래곤즈도 상당히 보수적인 경영과 팀 문화를 가지고 있다. 원래 언론사는 기업문화가 경직되고 보수적인 편인데 더군다나 오랜 세월 나고야에서 확장도 축소도 잘 안 해오며 지내온 팀이라 굉장히 보수적 색채가 강하다. 좋게 말하면 연공서열인 거고 나쁘게 말하면 공무원스러운 문화. 그래서 확실히 타 팀보다 장기근속하는 선수가 많은 편으로 일본프로야구 최고령 등록선수였던 야마모토 마사를 비롯 30대 후반~40대까지 선수생활을 하는 베테랑들이 타 팀보다 많은 편이며, FA역시 FA로 나가는 선수도 들어오는 선수도 적은 편이다. 한번 뽑은 선수를 가족처럼 오래오래 가는 문화로 코칭스탭이나 감독도 교진처럼 극단적이지는 않지만 자팀 선수 출신을 선호하는 편이다. 또한 드래프트에서 신인을 뽑을 때도 구단의 영향권인 지역(아이치현, 기후현, 미에현 동부, 시즈오카현 서부) 출신을 선호하는 편이다. 물론 초특급 신인의 경우에는 당연히 추첨을 불사하고 지명을 하지만 그 추첨에서 떨어지거나 그런 스타 후보 선수들이 드래프트에 나오지 않을 때는 팔이 안으로 굽는 지명을 다른 구단보다 두드러지게 하는 편이다.

장점이라면 역시 베테랑들이 잘 해줄 땐 경험많은 베테랑들로 안정된 성적을 낼 수 있고, 또 오래 뛴 선수들은 일종의 브랜드화가 되어 상품도 잘 팔리지만, 2010년대처럼 세대교체에 실패했을 시 베테랑이 오래오래 해먹으니 대체자원이 준비되어 있지 않아서 길고 긴 암흑기에 빠질 수가 있다.

2010년대 이후로는 재정난에 시달리고 있어 어려운 상황에 처해있다. 모기업 경영이 날로 악화되고 있기 때문. 주부 지방 일대를 중심으로 신문사와 방송국 사업을 하지만 시대가 발전함에 따라 종이 신문과 TV 방송은 스마트폰인터넷의 등장으로 인해 쇠퇴하고 있는 실정이다.[12] 이 때문에 암흑기에 빠져 있는 팀 상황을 자금력의 힘을 빌려서 타파하기도 힘든 상황. 오노 유다이의 다년계약 자금을 마련하려고 모기업 소유의 부동산을 담보로 대출을 신청하는가 하면 2022년 이후 연봉총액이 그 카프를 제치고 12구단 중 가장 낮은 12위에 위치했을 정도로 자금 사정이 좋지 않다.

세대교체에 실패해 전력이 약해져버린 약팀인데다 모기업의 자금난으로 인해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니 선수들과의 연봉 협상에서 크고 작은 잡음이 생길 수 밖에 없고 이에 불만을 가진 일부 선수들이 FA 등을 통해 타 팀으로 떠나버리게 된다. 그에 따라 이들을 대상으로 한 관련 상품들은 악성 재고로 남게 되어 수익 감소로 이어지고 구단은 다시 야구를 통한 수익 감소로 경영난이 지속되는 악순환이 반복되는 것.

이러한 팀 상황 때문에 일부 팬들은 주니치 신문이 구단을 매각해서 현재의 모기업보다 자금 사정이 좋고 구단 경영에 열의를 보이는 기업이 구단을 맡아줄 것을 희망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매각안은 어디까지나 팬들 사이에서 거론되는 사항일 뿐 주니치는 구단을 전혀 매각할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 그도 그럴 것이 기업 입장에서는 팔 이유가 없기 때문.

주니치 신문은 한때는 지방지 주제에 일부 전국지를 발행부수를 따버릴 정도로 사세가 대단했는데, 이는 드래곤즈의 역할이 컸다. 스포츠구단을 지니고 있어 스포츠신문에 꾸준히 컨텐츠를 공급할 수 있었기 때문에 종이신문이 몰락해가는 2010년대에도 40만부씩이나 되는 발행부수를 자랑할 수 있었고, 현재도 모기업에게는 효자 컨텐츠 역할을 하고 있다. 구단을 팔아버리면 발행부수가 줄어들고, 광고수입이 줄어드는 식으로 도미노처럼 무너져 내리며, 더군다나 지역민의 충성으로 돈을 버는 지역밀착기업이기에 주부를 상징하는 구단을 팔아 버리면 더이상 주니치신문은 주부를 대표하는 신문으로서의 상징성을 가질 수가 없고, 그렇게 되면 스포츠지를 떠나 본지도 발행부수 폭락은 피할 수가 없다. 더이상 주부를 상징하지 않는 신문을 주부민이 왜 사서 보겠는가. 적자를 좀 내더라도 사세 유지를 위해서는 구단을 가지고 있어야 하는 것. 안 파는 게 아니라 이미 거의 100년이 가까운 세월동안 주부 지역과 주니치 신문, 드래곤즈는 한 몸이 되어버려서[13] 이젠 호랑이 등에 탄 듯한 형세가 되어버려 사정이 어려워도 못 파는 것이다. 더군다나 지역민의 충성이 대단한 구단이라, 아무리 팀이 못해도 최소한의 수입은 유지가 되기에 모기업이 어려워도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면 구단을 굴릴 정도로는 어찌어찌 버틸 수는 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잘하는 선수는 다 나가버리고, FA와 고액용병은 꿈도 못 꾸니 팬이야 속터지겠지만 기업의 사정은 그렇게 되어서 힘든 나날을 보내고 있는 팀이다.

3. 구단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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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관중수 추이

총 관중 일일 평균
2012년 2,080,530명 28,896명
2013년 1,998,188명 27,753명
2014년 2,000,912명 27,790명
2015년 2,049,784명 28,469명
2016년 2,058,381명 28,991명
2017년 2,010,772명 27,927명
2018년 2,110,276명 30,147명
2019년 2,285,333명 31,741명
2020년 378,006명 6,300명
2021년 593,791명 8,363명
2022년 1,807,619명 25,459명
2023년 2,183,950명 30,333명

주부 지방을 대표하는 야구팀답게, 팀이 암흑기에 빠져도 2만 7~8천명대의 평관을 유지하는 반면, 팀이 방어율왕 오노 유다이를 배출하고 시즌 후반부까지 3위 싸움을 벌이며 비밀번호를 탈출하느냐 마느냐로 팬들을 들었다놨다 했던 2019시즌도 3만1천명대로 크게 관중이 늘지 않는다.

일본프로야구 창단부터 주부의 나고야에서 연고지를 한 번도 옮기지 않은 데다가 스폰서도 나고야 지방지인 주니치 신문으로 지역색이 굉장히 강한 팀이라, 아무리 팀이 못 해도 지역을 베이스로 한 콘크리트가 워낙 튼튼해서[14] 관중수가 크게 줄어들지 않는 반면 반대로 아무리 잘 해도 나고야 이외에는 팬이 생기기 힘든 구조로 되어 있어 크게 늘어나지 않는 모습을 볼 수 있다.

비슷하게 세리그 지방연고팀인 한신은 훨씬 인구가 많은 간사이권 전지역+안티 교진 성향의 팬들을 팬베이스 삼고 있어서 밥그릇 자체가 훨씬 큰데다가 확장성까지 있고, 히로시마 카프나 요코하마 베이스타즈 같은 경우 인터넷이나 방송 등을 통한 적극적인 마케팅으로 지역을 넘어 팬덤을 확장시켰으며, 파리그는 아예 리그가 단체로 뭉쳐 합심해 팬덤을 확장하는 식으로 나가는데 주니치는 경영이 일본에서 가장 보수적인 팀 중 하나로 저렇게 언제나 크게 늘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줄지도 않는 팬덤 숫자를 유지하고 있다. 근데 그렇게 운영해도 아이치를 꽉 쥐고 있어[15] 평관수는 일본프로야구 상위권이라 밥그릇 걱정이 없으니 더더욱 보수적인 경영 일변도로 일관하는 구단. 덕분에 일본내에서 주니치 응원하는 사람=100% 나고야 출신이라는 인식이 강하다.[16]

5. 홈 구장

제1구장
파일:external/userdisk.webry.biglobe.ne.jp/124220518574516309225.jpg
반테린 돔 나고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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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구장
파일:Nagaragawa Baseball Stadium_729cff5f.jpg 파일:external/www.rinkoh.co.jp/1_1425104846_12_jp.jpg 파일:1024px-豊橋市民球場.jpg
나가라가와 구장(기후) 하마마츠 구장 토요하시 시민구장

제2구장은 나가라가와 구장, 하마마츠 구장, 토요하시 시민구장이 있다.

6. 유니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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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응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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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마스코트

파일:attachment/DOARA07.jpg

이 팀의 마스코트인 코알라 도아라가 서브컬쳐계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고 있다. pixiv에서도 도아라의 팬아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으며 심지어 figma브랜드의 액션피규어로 출시되기까지 했다. 말 못하는 마스코트가 TV, 라디오에 나오고.. 광고는 물론 책에 음반까지 냈다. 관련상품 중 절대 다수를 차지하는 전 구단 통틀어서 상위권의 인기 캐릭터.[17] 4차원적인 행동 등으로 이상하지만 귀엽긴 하다 라는 반응이 대다수. 하지만 그 역시 2013년 오프시즌의 연봉삭감 바람을 피할 수는 없었다. 시즌 도중 왼손 중지가 골절되는 바람에 퍼포먼스를 할 수 없게 되어 연봉이 식빵 1kg에서 750g으로(...) 25% 삭감되었다고 한다.기자회견 기사



DJ 도아라라는 명의로 음반도 냈는데... 곡조가 너무 노골적이라 "설마 가 만든거 아님??" 생각했고 그 분새 앨범에 수록이 되어서 빼도 박도 못하게 이 분 제대로 확정. 정작 작곡자는 호크스 팬이라는게 함정[18] 그리고 2017년에 곡조만 바꿔서 다시 냈다.

인터리그 기간 동안에는 도아라가 퍼시픽리그 팀 상징 동물들을 약올리는 광고를 내기도 한다. 이건 동쪽 팀 특기긴 한데

야쿠르트 스왈로즈 마스코트인 츠바쿠로 에이전트(...)이기도 하다.

얘 말고도 샤오롱과 파오롱[19]이라는 용에서 모티브를 따온 애들도 있다.

9. 이모저모

9.1. 일본프로야구 대표 콩라인

일본에서 주니치의 이미지는 만년 2위팀. 이러한 점 때문에 KBO에서는 삼성 라이온즈와, MLB에서는 LA 다저스와 많이 엮인다.[20]

이는 통계로도 증명되는데, 이 팀은 창단 이후 전체 역사에서 2위만 26번, 1950년에 일본프로야구가 양대(2)리그제가 된 이후의 기간만 따지면 센트럴리그 2위만 무려 24번 을 해먹었다. 락라인? 이는 12개 구단 중 최다 2위 기록. 하지만 의외로 20세기 전체 승률은 놀랍게도 일본시리즈 우승도 한 번밖에 못한한신 타이거스에 밀려서 3위이다. 1위야 당연하게도 요미우리 자이언츠다.

사실 세리그 전통의 강호이지만. 맨날 중요할 때 2위만 해대는 통에 리그 우승 경험도 강호의 이미지에 비해서는 매우 적다. 그것이 실제로 실현된 건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 아래 4번 리그 우승을 하기 이전까지 1954년, 1974년, 1982년, 1988년, 1999년의 단 다섯 번 뿐. 숙명의 라이벌 요미우리 자이언츠에게 홈에서 리그 우승을 내준 뼈아픈 기억도 자주 있다.(...). 1994년의 10.8 결전이나, 1996년 10월 6일 나고야 구장 최종전에서 패배하며 요미우리에게 11.5게임차를 뒤집는 역전 우승[21]을 확정지어주는 등 통한의 순간들이 적잖이 있었다.[22]

거기다 중요한 게임에 상당히 약해서, 일본시리즈 진출 횟수는 10번인데 우승 횟수는 고작 2번 뿐이다. 그나마도 두 번째로 우승했던 2007년 시즌[23]의 경우 1위로 진출한 것도 아니고 2위로 리그를 끝낸 뒤 클라이맥스 시리즈에서 1위 요미우리 자이언츠를 발라버리고 올라간 것이 일본시리즈 우승까지 연결된 것[24]. 만년 2위 팀의 명성에 걸맞는 행보였다(...). 팀 첫 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이 1954년이었으니 다음 우승까지 53년이라는 세월이 걸렸다.

그러나 이런 얘기도 다 잘나가던 예전에 하던 배부른 소리. 2010년대 들어와서는 콩라인, 아니 락라인은 커녕 A클래스 꼴찌선인 리그 3위도 힘겨울 정도로 침체기를 겪고 있다.

9.2. 한국인 선수와의 인연

[25]

1996년 선동열이 입단한 뒤로 지속적으로 한국인 선수들과 인연을 맺어왔다. 선동열은 1년의 적응기간을 거치긴 했지만 다카쓰 신고, 사사키 카즈히로와 맞먹는 리그 정상급 마무리 투수로 활약하며 말년을 불태웠고, 그의 뒤를 따라 해태 타이거즈 후배 이종범LG 트윈스의 좌완 에이스 야생마 이상훈도 주니치에서 함께 뛰게 되었다. 일본프로야구의 외국인 선수 1군 출전제한이 4명인 것을 감안할 때 꽤 파격적인 선택이었고, 선동열을 제외하면 사실 완전히 기대에 부응한 것만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성적이 훌륭하다까진 아니어도 나쁘지 않은 정도였고 1999년 나고야 돔으로 옮긴 뒤 첫 리그 우승을 하는 등 당시 팀 성적과 분위기가 꽤 좋았기에 한국 삼총사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사랑받았다.
파일:a0114992_49ac178fd97ed.jpg
이적 첫 해 일본시리즈 우승의 감격을 누리는 이병규.[26]

2007년부터 2009년까지 이병규 선수가 소속했다. 그러나 주니치 역대 최고의 외야수 중 하나였던 후쿠도메 고스케의 포지션을 차지한데다가, 고액을 받는 외국인 선수 치고는 성적이 신통치 않아 언론과 팬들에게 자주 까였다. 그래도 그럴 때마다 뜬금포를 날려대는 통에 참 대놓고 까기는 뭐한 미묘한 상태였다. 그래도 2007년 일본시리즈 우승에 나름 공헌하는 활약을 했고 선수들과 잘 어울리는 모습을 보이며 일부 팬들 사이에서 컬트적인 인기를 얻기도. 그러나 2009년에는 완전히 말아먹었고, 본인은 주니치와 재계약을 원한다고 했으나 결국 팀은 시즌 종료 후 재계약을 요청하지 않으며 LG 트윈스로 돌아오게 되었다.[27] 여담으로 라뱅쓰리런 드립 역시 주니치 시절에 생긴 것이다.(...)

한국 고교야구 선수인 송상훈이 2012년 일본프로야구 신인 드래프트에서 이 팀에 6순위로 지명되어, 한국 고교야구에서 드래프트로 일본프로야구에 진출한 최초의 선수가 되었다. 그러나 입단 1년만에 육성선수로 신분이 바뀌었으며 2014 시즌 종료 후 방출되었다. 이후 한국 선수와의 인연은 끊어진 상황.

다만 요다 츠요시 감독이 2019시즌 종료 후 '과거 주니치는 한국 선수들이 도왔다'면서 한국야구에서 새 전력을 찾아보겠다고 언급. 11월에 개최될 프리미어12에서 한국을 시찰하겠다는 뜻을 내비치기도 했다. 뒤이어 주니치에서 선수생활을 했던 이종범이 주니치에 2군 코치연수를 가게 되면서 인연이 다시 이어지고 있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28]

9.3. 기타 이야깃거리

[29]
  • 구단의 대표적인 응원가로 "燃えよドラゴンズ"(타올라라 드래곤즈)'가 있다. 그래서인지 실제로 홈구장이 불타 없어졌다.(...) 자세한건 주니치 스타디움참고. 주니치가 교진군의 센트럴리그 - 일본시리즈 10연패를 저지한 1974년 나고야 지역 라디오 프로그램에서 처음 만들어진 것이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지금까지도 즐겨 불러지는 응원가로 자리잡았다. 제목은 당시 일본에 개봉해 인기를 끌던 이소룡 주연의 영화 용쟁호투가 일본에서 '불타라 드래곤' 으로 소개된 것에서 따온 것이다. 주니치에도 정식 구단가는 있지만[30] 타올라라 드래곤즈의 인기 때문에 구단가는 있는지 없는지도 모를 수준.
  • 원본인 74년판 이외에도 거의 해마다 새로 녹음되었을 정도로 버전이 많은데, 선동열-이상훈-이종범 한국인 3총사를 데리고 리그 우승을 한 1999년판 중에는 한국삼총사 헌정 버전도 찾아볼 수 있다.# 여담으로 이 곡을 작곡한 야마모토 마사유키(山本正之)라는 사람은 첫 작곡이었던 이 곡이 인기를 얻은 후, 타임보칸의 주제가를 작곡하는 등 애니송 작곡가로서 경력을 이어나갔다. 그래서인지 애니송 가수가 맡는 일이 많아 1987년에는 타이라 이사오(#)가, 2002년 이후로는 미즈키 이치로가 보컬을 담당하고 있다. 한편 실제 구장에서 트는 구장합창편에서는 2, 3절에 타팀을 약하게 조롱하는 가사가 들어가 있다. 잘 들으면 상대 팀명이 우회적으로 들어가 있다.[31] 이 때문에 원정경기에서 트는 버전은 1절에서 중간을 싹 건너뛰고 곧바로 마지막 절로 건너뛴다.
  • 등번호 관련해서 재미있는 점이 있는데, 보통 일본 야구계에서 투수 에이스의 등번호가 18번인데 비해[32] 이 팀은 20번이 에이스 번호로 여겨진다. 스기시타 시게루, 곤도 히로시, 호시노 센이치, 고마츠 다츠오 등이 달았고 선동열도 주니치에서 현역시기에 20번을 달고 활동했을 정도. 게다가 보통 에이스 넘버인 18번의 대우가 매우 나쁜데, 역대 투수들 중 18번을 달고 제대로 활약한 사람이 매우 드물다. 그래서 다른 팀에서 트레이드된 선수나 드래프트 하위 순위에 입단한 신인한테 18번을 냅다 던져준다. 오죽하면 '실력은 없는데 18번을 달고 싶으면 주니치로 가라'는 농담 아닌 농담이 있을 정도. 2019년까지는 마쓰자카 다이스케이름값으로 달고 있다가 결번, 이 후 2023년부터 주니치 유니폼을 입는 와쿠이 히데아키가 달 예정이다.
  • 유명한 애니송을 많이 쓴 가수인 LiSA가 이 야구단과 콜라보를 해 2020년 8월 24일에 신곡을 발표했다.

  • 홋카이도 닛폰햄 파이터즈를 제외한 모든 팀과 신칸센 원정을 통한 신칸센 시리즈가 가능한 팀이다. 도카이도, 산요 선상의 모든 도시들이 4시간 이내 거리에 있어 신칸센을 이용한 이동이 가능하고, 센다이까지 가야하는 도호쿠 라쿠텐 골든이글스 원정도 도쿄에서 신칸센 환승을 해도 4시간 이내에 도착이 가능하다.
  • 오치아이 히로미츠감독이 팀의 두번째 일본시리즈 우승을 선사하지 못했다면 세계 프로야구 역사상 세번째로 오랜 기간 우승이 없는 팀이자 일본 프로야구 사상 최장기간 우승을 하지 못한 팀이란 불명예를 안고 있었을 것이다. 게다가 팀의 첫 우승이었던 1954년도 우승에서부터 두번째 우승을 이룬 2007년까지 걸린 기간이 무려 53년이다. 또한 2007년 우승을 통해 세계 프로야구 사상 최장기간 우승이 없는 팀 리스트에서도 먼저 탈출했다. 이렇게 해서 시카고 컵스클리블랜드 가디언스{당시에는 인디언스} 둘만이 남았으나 9년 후에 컵스 마저도 이 리스트에서 나가고 가디언스 만이 홀로 남게되었다. 아울러 2007년 우승으로 인해 일본 프로야구 최장기간 우승이 없는 팀의 지위를 잉어네한테 물려주고 1회 우승이란 타이틀 마저 칸사이의 호랑이한테 넘겼다. 아울러 ‘헤이세이 년간 우승을 못이룬 팀’ 클럽도 탈퇴했다.

10. 선수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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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 역대 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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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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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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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년 ~ 현재
1대
이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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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6)
2대
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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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7)
3대
네모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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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1939)
4대
고니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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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0~1941)
5대
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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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1~1942)
6대
마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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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2~1943)
7대
미야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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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4)
8대
타케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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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
9대
스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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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6~1948)
10대
아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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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49~1951)
11대
츠보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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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2~1953)
12대
아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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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4)
13대
노구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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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5~1956)
14대
아마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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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7~1958)
15대
스기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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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9~1960)
16대
노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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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1~1962)
17대
스기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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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3~1964)
18대
니시자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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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4~1967)
19대
스기시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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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
20대
미즈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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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9~1971)
21대
요나미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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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1977)
22대
나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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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8~1980)
23대
곤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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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1~1983)
24대
야마우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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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4~1986)
25대
호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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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1991)
26대
타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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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2~1995)
27대
호시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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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2001)
28대
야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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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2~2003)
29대
오치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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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2011)
30대
타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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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2013)
31대
다니시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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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4~2016)
32대
모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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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7~2018)
33대
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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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9~2021)
34대
타츠나미
파일:일본 국기.svg
(2022~)
}}}}}}}}}}}}}}} ||

  • 아마치 슌이치 (1949 - 1951, 1954, 1957 - 1960)
    1954년 팀 사상 최초의 일본시리즈 우승 당시 감독.
  • 요나미네 카나메 (1972 - 1977)
    1974년 20년 만의 센트럴리그 우승으로 요미우리의 V10을 저지할 당시 감독.
  • 다카기 모리미치 (1992 - 1995, 2012 - 2013)
    주니치의 명선수였으나 감독으로선 별로 좋은 성적을 남기지 못했다. 특히 2번째 임기에서는 4456555라는 암흑기를 오픈하는 데 공헌했다...
  • 호시노 센이치 (1987 - 1991, 1996 - 2001)
    주니치의 에이스. 감독직을 맡으면서 2번의 리그 우승을 거두었지만 정작 일본시리즈에선(...)
  • 야마다 히사시 (2002 - 2003)
    한큐 브레이브스의 레전드. 호시노가 물러가면서 감독이 되었으나 2003년 성적 부진으로 시즌 도중 해임당했다.
  • 오치아이 히로미츠 (2004 - 2011)
    주니치의 1988년 센트럴리그 우승을 이끈 선수였고 감독으로선 4번의 리그 우승과 2007년 53년만의 일본시리즈 V2를 이룩한 명장이다. 그러나 4456555 시절 프런트에 있으면서 팀을 망쳤다는 비판이 있다.
  • 다니시게 모토노부 (2014 - 2016)[33]
    요코하마에서 이적한 이후 쭉 주니치의 안방마님이었지만 감독으로서는 B클래스를 전전하더니 19년만의 최하위를 기록했다. 참고로 주니치 역사상 최초로 A클래스에 간 적이 없는 감독이란 아름다운 기록을 남기셨다.
  • 모리 시게카즈 (2016 - 2018)
    위의 다니시게 모토노부가 사실상 해임된 16시즌 후반부터 감독 대행을 맡았으나 팀의 최하위 추락을 저지하지 못했고, 2017 시즌엔 정식 감독이 됐으나 2017, 2018 시즌 모두 5위에 그쳤다.
  • 요다 츠요시 (2019 - 2021)
    2020년에 겨우겨우 3위를 기록하며 4456555로 이어지던 비밀번호를 멈췄으나 바로 다음 시즌 다시 5위로 되돌아갔다.

13. 역대 성적

­ 리그 우승[34]
­ 2위
­ 3위
B클래스

13.1. 단일리그 시대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1936 봄 [35] 나고야군 9 3 6 0 .333
1936 여름 [36] 7 4 3 0 .571
1936 가을 [37] [38] 26 12 14 0 .462
1937 봄 7위/8팀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7위 56 21 35 0 .375
1937 가을 8위/8팀 8위 49 13 33 3 .283
1938 봄 7위/8팀 7위 35 11 24 0 .314
1938 가을 4위/9팀 4위 40 19 18 3 .514
1939 6위/9팀 6위 96 38 53 5 .418
1940 5위/9팀 5위 104 58 41 5 .586
1941 6위/8팀 6위 84 37 47 0 .440
1942 7위/8팀 7위 105 39 60 6 .394
1943 2위/8팀 2위 84 48 29 7 .623
1944 4위/6팀 4위 산교군 35 13 21 1 .382
1946 7위/8팀 7위 주부닛폰 105 42 60 3 .412
1947 2위/8팀 2위 주부닛폰 드래곤즈 119 67 50 2 .573
1948 8위/8팀 8위 주니치 드래곤즈 140 52 83 5 .385
1949 5위/8팀 5위 137 66 68 3 .493

13.2. 양대리그 분리 이후

<rowcolor=#ffffff> 연도 정규시즌 순위 최종순위 팀이름 경기수 승률 포스트시즌
1950 2위/8팀 2위 주니치 드래곤즈 137 89 44 4 .669
1951 2위/7팀 2위 나고야 드래곤즈 113 62 48 3 .564
1952 3위/7팀 3위 120 75 43 2 .636
1953 3위/6팀 3위 130 70 57 3 .551
1954 1위/6팀 우승 주니치 드래곤즈 130 86 40 4 .683 일본시리즈 (4-3 vs 니시테츠)
1955 2위/6팀 2위 130 77 52 1 .597
1956 3위/6팀 3위 130 74 56 0 .569
1957 3위/6팀 3위 130 70 57 3 .550
1958 3위/6팀 3위 130 66 59 5 .527
1959 2위/6팀 2위 130 64 61 5 .512
1960 5위/6팀 <colbgcolor=#0066b3><colcolor=#ffffff> 5위 130 63 67 0 .485
1961 3위/6팀 3위 130 72 56 2 .562
1962 3위/6팀 3위 133 70 60 3 .539
1963 2위/6팀 2위 140 80 57 3 .584
1964 6위/6팀 6위 140 57 83 0 .407
1965 2위/6팀 2위 140 77 59 4 .566
1966 2위/6팀 2위 132 76 54 2 .585
1967 2위/6팀 2위 134 72 58 4 .554
1968 6위/6팀 6위 134 50 80 4 .385
1969 4위/6팀 4위 130 59 65 6 .476
1970 5위/6팀 5위 130 55 70 5 .440
1971 2위/6팀 2위 130 65 60 5 .520
1972 3위/6팀 3위 130 67 59 4 .532
1973 3위/6팀 3위 130 64 61 5 .512
1974 1위/6팀 우승 130 70 49 11 .588 일본시리즈 (2-4 vs 롯데)
1975 2위/6팀 2위 130 69 53 8 .566
1976 4위/6팀 4위 130 54 66 10 .450
1977 3위/6팀 3위 130 64 61 5 .512
1978 5위/6팀 5위 130 53 71 6 .427
1979 3위/6팀 3위 130 59 57 14 .509
1980 6위/6팀 6위 130 45 76 9 .372
1981 5위/6팀 5위 130 58 65 7 .472
1982 1위/6팀 우승 130 64 47 19 .577 일본시리즈 (2-4 vs 세이부)
1983 5위/6팀 5위 130 54 69 7 .439
1984 2위/6팀 2위 130 73 49 8 .598
1985 5위/6팀 5위 130 56 61 13 .479
1986 5위/6팀 5위 130 54 67 9 .446
1987 2위/6팀 2위 130 68 51 11 .571
1988 1위/6팀 우승 130 79 46 5 .632 일본시리즈 (1-4 vs 세이부)
1989 3위/6팀 3위 130 68 59 3 .535
1990 4위/6팀 4위 131 62 68 1 .477
1991 2위/6팀 2위 131 71 59 1 .546
1992 6위/6팀 6위 130 60 70 0 .462
1993 2위/6팀 2위 132 73 57 2 .562
1994 2위/6팀 2위 130 69 61 0 .531
1995 5위/6팀 5위 130 50 80 0 .385
1996 2위/6팀 2위 130 72 58 0 .554
1997 6위/6팀 6위 136 59 76 1 .437
1998 2위/6팀 2위 136 75 60 1 .556
1999 1위/6팀 우승 135 81 54 0 .600 일본시리즈 (1-4 vs 다이에)
2000 2위/6팀 2위 135 70 65 0 .519
2001 5위/6팀 5위 140 62 74 4 .456
2002 3위/6팀 3위 140 69 66 5 .511
2003 2위/6팀 2위 140 73 66 1 .525
2004 1위/6팀 우승 138 79 56 3 .585 일본시리즈 (3-4 vs 세이부)
2005 2위/6팀 2위 146 79 66 1 .545
2006 1위/6팀 우승 146 87 54 5 .617 일본시리즈 (1-4 vs 닛폰햄)
2007 2위/6팀 2위 144 78 64 2 .549 퍼스트 스테이지 (2-0 vs 한신)
세컨드 스테이지 (3-0 vs 요미우리)
일본시리즈 (4-1 vs 닛폰햄)
2008 3위/6팀 3위 144 71 68 5 .511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한신)
세컨드 스테이지 (1-1-3 vs 요미우리)
2009 1위/6팀 2위 144 81 62 1 .566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야쿠르트)
세컨드 스테이지 (1-4 vs 요미우리)
2010 1위/6팀 우승 144 79 62 3 .560 파이널 스테이지 (4-1 vs 요미우리)
일본시리즈 (2-1-4 vs 롯데)
2011 1위/6팀 우승 144 75 59 10 .560 파이널 스테이지 (4-2 vs 요미우리)
일본시리즈 (3-4 vs 소프트뱅크)
2012 2위/6팀 2위 144 75 53 16 .586 퍼스트 스테이지 (2-1 vs 야쿠르트)
파이널 스테이지 (3-4 vs 요미우리)
2013 4위/6팀 4위 144 64 77 3 .454
2014 4위/6팀 4위 144 67 73 4 .479
2015 5위/6팀 5위 143 62 77 4 .446
2016 6위/6팀 6위 143 58 82 3 .414
2017 5위/6팀 5위 143 59 79 5 .428
2018 5위/6팀 5위 143 63 78 2 .447
2019 5위/6팀 5위 143 68 73 2 .482
2020 3위/6팀 3위 120 60 55 5 .522
2021 5위/6팀 5위 143 55 71 17 .437
2022 6위/6팀 6위 143 66 75 2 .468
<rowcolor=#373a3c> NPB 통산 86시즌 리그우승 9회 10890 5463 5196 374 .513 일본시리즈 우승 2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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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프로야구 J1리그 B1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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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니치 드래곤즈 나고야 그램퍼스 산엔 네오피닉스
B1리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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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1951 시즌 중반 공식 홈구장인 주니치 구장(나고야 구장)이 불타 없어졌다.[2] 일본식 이름은 하리모토 이사오(張本 勳). 재일교포.[3] 타격 인스트럭터[4] 2군 연수코치[5] 일본의 지방 신문사이지만 2013년 기준 일 평균 250만부 이상을 발행하는 신문이고 여러 지방 TV 방송국 및 라디오 방송국 지분을 보유하고 있는 방송계의 큰손이기도 하다. 특히 후지 TV 계열국 주식을 많이 보유하고 있어서, 네트워크 내에서도 산케이 못지 않은 영향력을 보유 중. 산케이 신문보다 발행부수가 많고 도쿄와 오사카에 있는 신문사 이외에는 가장 규모가 크기 때문에 전국지에 필적하는 영향력을 갖는다. 논조는 일본에서도 비교적 진보 성향. 하지만 나고야에 공장이 있는 토요타에는 따뜻하겠지 주니치 신문사의 소유 구단이기 때문에 주니치 계열 방송사인 THK, CBC, TVA가 홈 경기 중계권을 보유하고 있다. 나머지 NBN, CTV는 자체제작 중계가 아닌 키국 중계를 사용해 원정 경기를 방송한다. 라디오는 CBC, 도카이라디오가 중계권을 보유하는 중. 지상파가 아닌 위성방송(CS)에서는 J스포츠가 중계를 맡고 있다.[6] 나머지는 요미우리 자이언츠, 한신 타이거스, 오릭스 버팔로즈.[7] 이병규는 자신의 주니치 구단 데뷔 첫해에 우승의 감격을 만끽했다.[8] 이 시절, 조만간 메이저 리그 진출을 노리는 그의 아들을 얻었다.[9] 좌우 100m, 가운데 122m, 펜스높이 4.8m[10] 심지어 무라카미 무네타카와 팀홈런 갯수로 경쟁을 했다.[11] 더 어처구니없는 사실은, 이 사태의 핵심 원인을 제공한 프런트 중 하나가 바로 불과 몇 년 전 감독으로서 주니치의 최전성기를 이끈 오치아이라는 것이다![12] 이는 한국도 다르지 않다. 한국 3대 일간지 조중동 모두 눈에 띄는 수준의 신문 발행부수 감소를 겪었다.[13] 상대적으로 후발주자인 토요타나고야 철도, JR 도카이는 이런 경향이 덜하다.[14] 일본인들은 자기 지역 브랜드에 애착을 가지는 경우가 많다.[15] 주니치의 팬베이스인 아이치현 + 주변 지방(기후현, 미에현, 시즈오카현 서부)을 더하면 대략 경상도 인구수 전체와 비슷하다. 한국은 경상도를 3개 구단이 나눠먹으면서도 개중 가장 큰 롯데가 빅마켓 소리를 듣는 것을 생각하면 주니치가 얼마나 큰 마켓을 독점하고 있는지 알 수 있다.[16] 그런데 의외로 도쿄에서도 팬이 많다. 당연하지만 도쿄는 수도라 전국에서 사람들이 몰려들고 당연히 나고야에서 이사온 사람도 많기 때문. 한국도 서울에 전라도, 경상도에서 상경한 사람 많은 것과 같다.[17] 요즘은 오릭스 버팔로스위협하고 있다.[18] 언급된 Second Heaven도 소프트뱅크의 패배에 아쉬워서 만든 곡이다.[19] 처음에는 샤오롱의 여동생이라는 설정이었으나 나중에 샤오롱이 파오롱을 '여동생이 아니라 그냥 친구 관계'라고 표현하기도 했고, 현재는 샤오롱과 '남매로도, 친구로도 불려질 수 있는 이상한 관계'(兄妹とも友達とも言われている不思議な関係)라는 설정으로 바뀌었다. 현재 샤오롱과 파오롱은 현재 공식 설정에서 성별 불명이라고 나와있다.[20] 삼성은 해태에게, 다저스는 양키스에게 밀려서 계속 준우승만 했었다. 물론 현재 강팀인 다저스와 달리 삼성은 주니치처럼 현재 완벽히 몰락한 상황이다.[21] 이는 '메이크 드라마'라고 불리며 요미우리 팬들에게 역사적인 시즌으로 남았다. 다만 일본시리즈 우승기는 오기 아키라 감독이 이끌고 스즈키 이치로 등이 날뛰던 오릭스 블루웨이브에게 내주었다.[22] 공교롭게도 이 두 경기 모두에서 당시 요미우리의 중심선수이던 오치아이 히로미츠가 활약했다. 오치아이가 끝내 감독으로서 주니치의 콩라인 탈출을 이끌어낸 걸 생각하면 아이러니.[23] 일본시리즈 타이틀을 확정짓는 경기에서 일본프로야구 사상 초유의 합작 퍼펙트 게임으로 승리를 거두었다. 선발 야마이 다이스케가 8회까지 무안타 무사사구 무실점을 기록하며 퍼펙트게임 직전까지 던졌지만 오치아이 히로미츠 감독은 9회에 야마이를 내리고 마무리 이와세 히토키를 올렸는데, 이는 일본 내에서도 논란이 많았다.[24] 참고로 이 당시 이승엽이병규의 맞대결이란 구도까지 생겼던 것으로 유명했다.[25] 99년 세리그 우승 당시 선동열, 이종범, 이상훈에게 헌정된 한국 삼총사ver. 타올라라 드래곤즈. 초반에 라인업이 소개된 후, 다른 노래와 달리 세 선수의 모습을 묘사하는 가사가 등장한다.[26] 구단으로서는 53년만의 우승이었고, 본인도 프로 커리어 첫 우승이었다. 그리고 크보에서는 우승을 못 했다[27] 이병규 선수 본인도 한국 복귀시 '방출당한 게 아니라 그냥 재계약을 하지 않은 것 뿐이다.'라고 웃으면서 얘기했다고.[28] 이는 지극히 현실적인 이유로, 주니치는 현재 12개 구단 중 모기업이 가장 빈약한 구단 중 하나다. 지방신문과 지상파 방송, 라디오, 인쇄업 등 인터넷으로 인해 점점 쪼그라드는 사업을 주력으로 하고 있어서 재정적으로 빈약한 편이라 메이저리그에서 우수한 용병을 데려올 돈은 없고, 한국이나 대만 팜 등에서 가성비 용병을 찾아봐야 하는 처지인 것.[29] 처음 곡인 74년도판. 부른 사람은 밑에도 나오지만 주니치 드래곤즈의 에이스 투수로 활약했고 지금은 예능인으로 활발히 활동 중인 반도 에이지.[30] 현재 사용중인 세번째 구단가는 2015년에 발표된 昇竜 -いざゆけ ドラゴンズ-(승룡 -나아가자 드래곤즈-, 노래는 마츠다이라 켄)이다. 한편 초대 구단가 '드래곤즈의 노래'(1950~1977)는 한신 타이거스의 구단가 롯코오로시, 요미우리 자이언츠의 1-3대 구단가 거인군의 노래와 투혼을 담아서를 작곡하기도 한 고세키 유지의 작품이다.[31] 2절은 센트럴 리그 팀들 호랑이를 쓰러뜨리고(虎を倒して) 잉어를 낚고(鯉を釣って) 하마의 별자리에 먹구름을 끼게만들고(浜の星座に雲をかけ) 제비를 떨어뜨려(燕落として) 큰 남자의 숨통을 끊어 이겨나간다 (大男息の根とめて勝ち進め) 3절은 퍼시픽리그 팀들 사자를 붙잡고(獅子を捕まえ) 를 잡아(鷹を狩り) 성난 소들을 길들여(猛牛馴らして) 바다를 건너(海を越え) 북쪽의 전사도 (北の闘士も) 독수리도 (犬鷲も) 이 제압해 굴복시켜 이겨나간다(竜がねじ伏せ勝ち進め)[32] 이것도 요미우리 자이언츠로부터 시작된 관습. 다만 팀에 따라 다른 등번호를 에이스 번호로 쓰는 경우도 있다. 예를 들어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의 에이스 번호는 21번(스기우라 타다시, 쿠도 키미야스, 와다 츠요시 등이 사용).[33] 2014,2015시즌은 선수 겸임. 2016부터 감독 전임이 되지만 도중 해임.[34] 볼드체는 일본시리즈 우승[35] 3개의 리그로 나누어 열었고 일부 팀들의 미국 원정 및 중도 하차로 우승팀 없음.[36] 3개의 토너먼트로 나누어 열었고 도쿄 대회에서 우승해 승점을 따냈으나 우승팀을 결정할 플레이오프의 경기장을 구하지 못해 우승팀 없음.[37] 리그 도쿄 대회 오사카 타이거스와 공동 우승. 승점 0.5점으로 연도 우승 결정전 진출 실패.[38] 연도 우승 결정전 진출 실패로 최종 순위 없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