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23 06:55:02

삼성 왕조



파일:KBO 로고(세로형).svg KBO 리그 역대 왕조팀
★★★★
1986~1989
파일:해태 타이거즈 엠블럼(1982~1995).svg 해태 타이거즈
★★★★
2011~2014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왕조를 달성한 당시 구단명과 엠블럼으로 서술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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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wiki style="margin: -10px -10px"<table align=center><tablebordercolor=#074ca1><tablebgcolor=#074ca1> 파일:삼성 라이온즈 엠블럼.svg 삼성 라이온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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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삼성 그룹삼성스포츠삼성 라이온즈삼성 라이온즈 2군
주요 인물 구단주·대표이사 유정근단장 이종열감독 박진만2군 감독 정대현주장 구자욱
경기장 1군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 · 포항 야구장2군 경산 삼성 라이온즈 볼파크
스프링캠프 온나손 아카마 볼파크재활 삼성 트레이닝 센터이전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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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52002200520062011201220132014
현재 시즌 삼성 라이온즈/2024년
팬덤 정보 응원가(구단 · 선수)|삼갤삼튜브사자 사랑방사자후김상헌(응원단장)허니크루치어리더대구아재
지역 연고 경북고대구고상원고포철고경주고강릉고설악고도개고예일메디텍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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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주요 인물4. 관련 문서

1. 개요

KBO 리그 소속 프로 야구단 삼성 라이온즈가 2011년부터 2014년까지 4년 연속 페넌트 레이스한국시리즈에서 통합우승을 달성했던 시기. 넓게 보면 한국시리즈 우승에는 실패했지만 리그 최초로 5년 연속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차지했던 2015년도 포함된다.

1986년부터 1989년까지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해태 타이거즈 왕조와 더불어 3회 연속 우승(3-peat)을 달성한 단 둘뿐인 사례이기에 해태 왕조와 마찬가지로 논란없이 왕조의 정통성을 인정받고 있다.

리그에서 전무후무한 4년 연속 통합우승을 이룩했던 시기였기에[1] 왕조가 몰락한 지 [age(2015-10-31)]년이 지난 현재까지도 많은 삼성 라이온즈 팬들에게 인상깊은 추억으로 남아있는 시기다.

2. 역사

2.1. 이전까지의 상황

1982년 한국프로야구 출범에 맞춰 창단한 삼성 라이온즈는 국가대표급 선수들을 많이 배출하는 대구·경북의 고교야구 팜과 삼성그룹의 막강한 자금력을 등에 업고 화끈한 빅볼 야구를 선보이며 리그에서 손꼽히는 강팀으로 군림해왔다. 그러나 리그 최상위권의 공격력과 상반되는 부족한 투수진 때문에 한국시리즈 우승과는 인연이 없었는데,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기 전까지 무려 6번의 준우승을 거쳐야 했을 정도였다. 특히 영호남 지역갈등이 정점에 이르렀던 1980~1990년대에 호남의 대표팀 해태 타이거즈에게 3번이나 한국시리즈에서 패하여 해태는 20여 년동안 아홉 차례 우승한 반면 삼성은 단 한 차례도 한국시리즈 우승을 하지 못한 굴욕을 맛봐야 했다. 사실 삼성도 1985년 전·후기 리그 체제에서 전기 리그와 후기 리그 모두 우승하여 한국시리즈를 소멸시키고 통합우승을 차지한 적이 있었으나, 대다수 KBO 팬들은 물론 삼성 구단조차 한국시리즈를 거치지 않았다는 이유로 이를 공식적인 우승으로 취급하지 않았다. 다른 원년 구단들은 1980년대(OB, 해태, 롯데)와 1990년대(MBC-LG, 삼미-현대)에 이미 첫 한국시리즈 우승을 차지한 반면 삼성만 유일하게 20세기에 한국시리즈 우승을 경험하지 못했다. 심지어 원년 구단이 아닌 한화 이글스조차 1999년 한국시리즈에서 삼성보다 먼저 우승하면서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에 대한 갈망은 더욱 커져갔다.

결국 삼성 수뇌부는 라이벌 해태 타이거즈에서 9번의 우승을 이끈 김응용 감독을 영입하기에 이르렀고, 부임 첫 해인 2001년에는 아쉽게 준우승에 그쳤지만 이듬해 2002년 한국시리즈에선 이승엽마해영의 극적인 백투백 홈런으로 첫 우승을 차지하며 오랜 숙원을 풀게 되었다. 이후 2005년 김응용 감독은 제자인 선동열에게 감독직을 넘기고 자신은 삼성 라이온즈 사장으로 영전하였다. 그러나 선수 시절 번번이 삼성의 한국시리즈 우승을 좌절시켰던 선동열에 대한 악감정, 전통적인 삼성 야구와 어긋나는 선동열식 스몰볼 야구에 대한 반감, 양준혁 · 박한이 · 이승엽 등 삼성 프랜차이즈 선수들에 대한 홀대, 그리고 2002년 한일 월드컵 4강 진출의 열기로 인한 한국 야구의 침체기(2002~2008년)가 맞물려 선동열 감독 재임 당시 창단 첫 2년 연속 우승(2005~2006년)을 일궜음에도 선동열호에 대한 삼성 팬들의 여론은 냉랭한 편이었다. 설상가상으로 2009년 13년만에 포스트시즌 진출에 실패하고 이듬해 2010년 한국시리즈에선 SK 와이번스에게 4:0 스윕을 당하면서 팬들의 불만이 폭발하게 되었다. 혹자는 이 시기를 멍게강점기라고 부르기도 하며 2010년대 후반 삼성이 긴 암흑기에 진입하기 전까지 선동열은 1990년대 초반 재임했던 김성근과 함께 삼성 역대 최악의 감독으로 여겨졌었다.[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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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0년 한국시리즈에서 팀이 스윕당할 위기에 처하자 웃고 있는 선동열 감독과 대조적으로 굳은 표정을 보인 류중일 코치

때마침 비자금 사건으로 물러났던 이건희 삼성 회장이 이명박 대통령에게 사면받고 경영 일선에 복귀하면서 삼성그룹의 정치적 상황에 변화가 생기기 시작했고, 이학수 부회장 라인이 정리되자 삼성 구단도 이에 영향을 받아 이학수가 데려온 김응용 사장이 물러나고 김응용이 데려온 선동열 감독도 자연히 물러나게 되었다. 그리고 선동열의 후임 감독으론 선수 시절 삼성의 프랜차이즈 유격수였고 이후 지도자 커리어까지 삼성과 함께한 원클럽맨 류중일 작전코치가 선임되었다. 류중일 신임 감독은 취임식에서 전통적인 삼성의 공격 야구 부활을 선언하며 2010년대를 삼성의 시대로 만들 것을 공언했다.

2.2. 2011년

파일:2011년 한국시리즈 우승.jpg
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5.svg

류중일 감독의 첫 시즌. 선동열 전 감독이 추구하던 스몰볼 야구에서 벗어나 삼성 본연의 공격 야구를 되찾기 시작한 시즌이다. 이를 증명하듯 이 해 페넌트 레이스에서 삼성이 거둔 79승 중 절반 이상인 41승이 역전승이었다. 1번 타자 배영섭신인왕을 수상했고, 4번 타자 최형우는 홈런왕, 타점왕, 장타율왕을 석권하며 2010년대 최고의 좌타 거포로 우뚝 섰다. 또한 선동열 감독 시기와 달리 선발 투수를 길게 끌고 가는 경기 운용이 시작되었다. 불펜에선 JOKKA 라인이 KBO 리그 사상 최강의 퍼포먼스를 보여주었고, 특히 오승환평균자책점 0.63, 47 세이브에 블론세이브는 단 1회에 그치는 등 몬스터급 시즌을 보내 마무리 투수임에도 리그 MVP 후보에 오를 정도였다. 한국시리즈에선 전년도 한국시리즈에서 맞붙었던 SK 와이번스와 다시 만나게 되었는데, 삼성이 시리즈 스코어 4:1로 설욕하는 데 성공하며 2006년 이후 5년만에 우승 트로피를 품게 되었다. 이후 아시아 시리즈에서도 2011년 일본시리즈 우승팀인 후쿠오카 소프트뱅크 호크스를 꺾고 우승을 차지하면서 KBO 리그 역사상 유일무이한 트레블 시즌(페넌트 레이스-한국시리즈-아시아 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다.

2.3. 2012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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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6.svg

라이온킹 이승엽이 일본으로 떠난 지 8년만에 돌아온 시즌. 이 해 삼성은 시즌 초엔 개막 3연패를 시작으로 4월을 8개 팀 중 6위로 마감할 정도로 상당히 부진하였으나, 6월부터 빠르게 치고 올라오며 결국 예상대로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차지했다. 한국시리즈에선 2010년과 2011년에 이어 3년 연속 SK 와이번스를 상대하게 되었는데, 이번에도 삼성이 시리즈 스코어 4:2로 승리하며 2년 연속 통합우승을 거머쥐었다. 한국시리즈 MVP는 이승엽. 불펜진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리그 최정상급 안정감을 보였고 심창민이라는 신예도 발굴되었으며 중심 타선은 최형우, 박석민에 이승엽까지 가세하여 더욱 강력해졌다. 선발진에선 장원삼이 17승을 거두며 다승왕을 차지했고, 논란이 있긴 했으나 투수 골든글러브까지 수상하였다.

2.4. 2013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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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7.svg

2013 월드 베이스볼 클래식에서 류중일 감독이 이끄는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타이중 참사로 탈락하며 류 감독에 대한 평가가 어느 때보다 급락했고, 시범 경기에서도 사상 첫 9위를 기록하며 불안 요소들을 보였으나 예상대로 페넌트 레이스 우승을 차지했다. 그동안 부진했던 채태인이 비록 규정타석엔 미달했으나 타율 3할 8푼이라는 좋은 성적을 기록했고, 이 해에 극도로 부진한 이승엽도 6월에 한국프로야구 통산 최다 홈런 신기록을 세웠다. 한국시리즈에선 두산 베어스와 14년만에 격돌했는데, 1승 3패로 수세에 몰렸다가 남은 3경기에서 3연승에 성공하며 전무후무한 3년 연속 통합우승의 기적을 이뤘다. 한국시리즈만 놓고 보면 가장 극적으로 우승을 차지한 해.

2.5. 201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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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8.svg

오승환이 일본 한신 타이거즈로 떠났고, 대신 해외 생활을 정리하고 돌아온 임창용이 마무리 투수를 맡게 되었다. 시즌 전 류중일 감독과 용병 투수 릭 밴덴헐크의 재계약이 성사되었고, 용병 타자 야마이코 나바로를 새로 영입했다. 2014년은 2015년과 함께 삼성의 공격력이 절정에 이르렀다고 평가받는 해다. 팀 타율은 0.301을 기록하며 1987년 삼성이 기록한 0.300을 넘어 신기록을 세웠다. 30홈런을 넘긴 타자가 세 명(이승엽, 최형우, 야마이코 나바로)에 네 명의 타자가 평균 타점 99.5를 달성했다.[3] 여기에 발야구까지 갖춰 김상수가 도루 53개를 기록하며 삼성 역사상 첫 도루왕 타이틀을 차지했고, 이 시즌부터 주전 중견수로 자리잡은 박해민과 호타준족 2루수 나바로도 각각 36도루와 25도루를 추가해 그야말로 공격력에서 부족함이 없는 한 해였다. 특히 영입 당시 기대치가 낮았던 나바로가 공 · 수 · 주 모든 면에서 대활약하면서 삼성이 전통적으로 가장 취약한 포지션이었던 2루수 고민까지 해결된 점이 컸다. 다만 오승환이 떠난 마무리 보직에서 임창용이 기대만큼의 몫을 해주지 못하면서 불펜진 약화가 가시화된 것은 아쉬운 점이다. 한국시리즈에선 넥센 히어로즈와 대결했다. 이 당시 넥센은 52홈런 4번 타자, 40홈런 유격수, 201안타 타격왕 등을 보유해 흉악한 공격력을 자랑하던 팀이었고 투수진에서도 20승 선발 투수, 세이브왕 마무리 투수가 존재하던 KBO 역사상 최강의 팀 중 하나로 손꼽혔다. 삼성은 이런 넥센마저도 시리즈 스코어 4:2로 제압하며 전무후무한 4년 연속 통합우승을 이룩하였다. 특히 5차전 9회 말 1점차로 지고 있던 상황에서 4번 타자 최형우의 2타점 끝내기 2루타가 결정적인 승리를 가져왔다. 한국시리즈 MVP는 6경기동안 4홈런 10타점을 기록한 나바로. 2014년은 지금까지도 많은 삼성 팬들에게 최고의 시즌으로 꼽히는 해다.

2.6. 2015년

파일:2015sl.jpg

시즌 전 배영수권혁이 FA를 통해 한화 이글스로 이적했고, 용병 투수 릭 밴덴헐크는 일본으로 떠나 대신 알프레도 피가로를 영입했다. 야마이코 나바로는 재계약에 성공했다. 이 해에도 삼성의 공격력은 뜨거웠다. 팀 타율은 0.302를 기록하여 2014년 삼성이 세웠던 팀 타율 0.301을 1년만에 넘어섰고, 이는 지금까지도 단일 시즌 최고 팀 타율로 남아있다. 또한 리그 역사상 최초로 10명의 타자[4]가 100안타를 달성하기도 했다. 야마이코 나바로는 타순을 1번에서 3번으로 옮겨 48홈런을 때려내며 2루수 단일 시즌 최다 홈런을 경신했고, 젊은 선수 중엔 구자욱이 발굴되어 데뷔 첫 시즌 23경기 연속 안타 신기록을 세우고 신인왕을 차지했으며 박해민은 타격은 아쉬웠지만 60도루로 도루왕을 차지했다. 선발진에서는 장원삼부진하긴 했으나, 나머지 선발 투수들이 활약하였다. 특히 윤성환은 이 해 17승을 기록하며 개인 커리어 최다승을 달성했다. 한편 타일러 클로이드는 전반기에는 좋은 모습을 보였으나 시즌 중간 미국으로 아내의 출산 휴가를 다녀온 후 급격히 기량이 하락한 모습을 보였고, 전반기 굉장한 활약을 펼쳤던 알프레도 피가로도 원래 선발 투수가 아니었던 탓인지 후반기 들어서 폼이 떨어졌다. 그럼에도 삼성 타선의 득점 지원이 워낙 강력했고, 불펜도 이전보다 많이 약해지긴 했으나 홀드왕 안지만과 세이브왕 임창용이 버티고 있었기에 리그 역사상 최초로 선발 투수 5명 전원 10승[5]을 달성하였다. 삼성은 10월 3일 넥센 히어로즈와의 경기에서 1:0으로 승리하며 5년 연속 페넌트 레이스 우승6년 연속 한국시리즈 진출을 확정지었고, 이렇게 사상 최초의 통합 5연패로 순항하는듯 하였으나...

2.6.1. 몰락암흑기 돌입

파일:Fw34HHz.png
왼쪽부터 윤성환, 오승환, 안지만, 임창용

10월 15일, 한국시리즈까지 2주도 남지 않은 시점에서 TV조선삼성 라이온즈 소속/출신 투수 4명의 원정 도박 혐의를 보도하였다. 이후 후속 보도로 투수 4명의 실명이 공개되었는데, 충격적이게도 삼성의 1선발 윤성환, 셋업맨 안지만, 마무리 임창용과 일본 한신 타이거즈에서 뛰고 있던 삼성 출신 마무리 오승환이 그 주인공이었다. 이들의 혐의는 2014년 한국시리즈를 마친 후 중국 마카오에서 한국인 조직폭력배들이 운영하는 정킷방에서 불법 도박을 즐긴 것으로, 이미 2015년 중반부터 수사기관의 내사가 진행되고 있었다. 이로 인해 한국시리즈를 앞둔 삼성의 팀 분위기는 그야말로 박살이 났다.
경기를 치른 후 더그아웃에서 차분하게 소감을 이야기하던 류중일 감독은 '도박'이라는 단어가 나오자마자 작심한 듯 "큰 경기를 앞두고 누가 우리를 흔들려고 하는지 몰라도 근거 없는 얘기"라고 주장했다. 류 감독은 "그런 의혹에는 일절 대응하지 않겠다"며 "모든 선수가 정상적으로 한국시리즈를 대비한 훈련과 연습 경기에 참여할 것"이라고 했다. 말을 거듭하면서 류 감독의 얼굴은 벌겋게 상기됐다.
2015. 10. 17. 조선일보 기사

하지만 이미 2015년 중반부터 수사가 진행중이었기에 류중일 감독과 삼성 프런트가 주축 선수들의 도박 의혹을 정말 몰랐을 가능성은 낮다. 윤성환, 안지만, 임창용 3인의 한국시리즈 엔트리 포함을 놓고 거센 논란이 일어났고, 결국 류중일 감독은 10월 25일 KS 미디어데이에서 이 세 명을 제외한 한국시리즈 엔트리를 발표했다. 그렇게 두산 베어스와의 2015년 한국시리즈가 시작되었다.
파일:external/image.yachin.co.kr/23114393.jpg
야구친구 최훈 카툰의 한국시리즈 1차전 평

1차전 삼성의 선발은 알프레도 피가로. 두산 타선이 피가로를 무너뜨리면서 두산이 5점차까지 앞서 나갔지만 이후 삼성이 추격을 시작했고, 7회 말 야마이코 나바로함덕주를 상대로 3점 홈런을 때려내면서 1점차까지 따라붙었다. 거기에 두산 1루수 오재일의 포구 실책이 겹치며 삼성이 2득점, 역전에 성공하여 극적으로 1차전을 가져갔다. 그러나 여기까지였다.[6]

2차전부터 삼성은 투타할 것 없이 무너져 내리며 두산에게 시리즈 스코어 4:1로 무기력한 패배를 당했다. 선발진은 모두 제 몫을 하지 못했고, 4 · 5번 타자인 최형우박석민은 극악의 타격감을 보여주었다. 특히 최형우는 21타수 2안타로 한국시리즈 타율과 출루율 모두 1할을 밑돌았으며 타점 하나조차 기록하지 못했다. 그나마 투수 중 차우찬이 분전했으나 이미 기울어진 판을 뒤집기엔 역부족이었다. 이렇게 삼성의 통합 5연패 도전은 허무하게 좌절되었고, 영원할 것 같았던 왕조도 두 자릿수 준우승(10회)을 기록하며 끝이 났다.

삼성은 2011년부터 계속되어 온 우승 행진 속에서 선수층이 점점 얇아지고 있었다. 타선에선 배영섭, 정형식, 박해민, 구자욱 등 신예들이 제법 나타났고 야마이코 나바로라는 괴물급 용병 타자도 등장했지만 투수진에서 새로 발굴된 선수는 심창민 정도뿐이었다. 삼성 투수진은 정현욱, 오승환, 배영수, 권혁 등이 연달아 이탈하고 장원삼이 노쇠화하는 과정에서 릭 밴덴헐크, 임창용 등 외국인 선수나 국내 복귀 선수로 땜질하며 버텨왔는데, 여기서 1선발, 셋업맨, 마무리까지 한국시리즈 엔트리에서 빠지게 된 것은 매우 치명적이었다. 그렇기에 통합 5연패 실패의 아쉬움을 뒤로 하고 슬슬 리빌딩을 시작해야할 시점이었으나...

2016년부터 삼성 라이온즈는 구단 역사상 유례없는 암흑기에 돌입했고 이는 현재까지 진행중이다.[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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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99688.png

3. 주요 인물

감독 이하 선수들은 가나다 순으로 나열함.

4. 관련 문서


[1] 3년 연속 통합우승으로 기준을 낮춰도 삼성 라이온즈가 유일무이하다. 삼성보다 앞서 4년 연속 한국시리즈 우승을 달성했던 해태 왕조(1986~1989)도 통합우승은 1988년뿐이었다.[2] 삼성이 긴 암흑기를 겪고 있는 현재로선 김한수, 허삼영(2022년 한정), 박진만 등 선동열보다도 나쁜 평가를 받는 감독이 여럿 나타났기에 상대적으로 재평가된 부분이 있다.[3] 이승엽 101타점, 최형우 100타점, 채태인 99타점, 야마이코 나바로 98타점.[4] 구자욱, 박해민, 야마이코 나바로, 최형우, 박석민, 이승엽, 박한이, 이지영, 김상수.[5] 윤성환 17승, 알프레도 피가로 13승, 차우찬 13승, 타일러 클로이드 11승, 장원삼 10승.[6] 이 경기는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에서 삼성이 거둔 마지막 승리이고, [age(2015-10-26)]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삼성의 마지막 포스트시즌 승리로 남아있다.[7] 그나마 2021년 플레이오프 진출에 성공하며 비밀번호(7년 이상 연속 포스트시즌 진출 실패) 작성은 막았지만, 2022년 곧바로 하위권에 복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