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4-12 21:59:13

이학수


파일:나무위키+유도.png  
은(는) 여기로 연결됩니다.
동명이인에 대한 내용은 이학수(동명이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 에 대한 내용은 문서
번 문단을
번 문단을
부분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wiki style="margin:14px"<tablealign=center><tablebordercolor=#034ea2><tablebgcolor=#034ea2> 파일:삼성 워드마크 화이트.svg삼성전자
대표이사
}}}
{{{#!wiki style="margin: 0px -10px -5px;"
{{{#fff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1969 ~ 1970

정상희
1970 ~ 1972

조용달
1972 ~ 1973

조우동
1973 ~ 1982

강진구
1982

강진구, 정재은
1982 ~ 1986

정재은
1986 ~ 1987

정재은, 한형수
1987 ~ 1988

안시환
1988 ~ 1989

강진구, 안시환
1989 ~ 1990

강진구, 김광호, 정용문
1990 ~ 1991

강진구, 김광호, 황선두, 윤종용, 김영수, 정용문
1991 ~ 1992

강진구, 김광호, 윤종용, 김영수, 정용문
1992 ~ 1993

강진구, 김광호
1993 ~ 1995

강진구, 김광호, 이윤우
1995 ~ 1996

강진구, 이해민, 김광호, 이윤우
1996 ~ 1997

강진구, 이해민, 윤종용, 이윤우
1997

강진구, 문병대, 진대제, 송용로, 이해민, 윤종용, 박희준, 이윤우
1997 ~ 1998

강진구, 문병대, 진대제, 송용로, 윤종용, 박희준, 이윤우
1998

문병대, 진대제, 송용로, 이학수, 윤종용, 이건희, 박희준, 이윤우
1998 ~ 1999

문병대, 진대제, 윤종용, 이학수, 이건희, 박희준, 이윤우
1999

문병대, 진대제, 윤종용, 이건희, 이윤우, 이학수
1999 ~ 2001

윤종용, 이건희, 이기태, 이상현, 이상완, 이윤우, 이학수, 임형규, 진대제, 최도석, 한용외, 황창규
2001 ~ 2003

윤종용, 이건희, 진대제, 이윤우, 이학수, 최도석
2003

윤종용, 이건희, 이윤우, 이학수, 최도석
2003 ~ 2004

윤종용, 이건희, 이윤우, 이학수, 최도석
2004 ~ 2008

윤종용, 이건희, 이학수, 최도석
2008

윤종용, 이윤우, 최도석
2008 ~ 2009

이윤우, 최도석
2009

이윤우
2009 ~ 2010

이윤우, 최지성
2010 ~ 2012

최지성
2012 ~ 2015

권오현
2015 ~ 2018

신종균, 윤부근, 권오현
2018 ~ 2022

고동진, 김현석, 김기남
2022 ~ 현재

한종희, 경계현
}}}}}}}}}}}} ||

{{{#!wiki style="margin:14px"<tablebordercolor=#034ea2><tablebgcolor=#034ea2><tablealign=center> 파일:삼성 워드마크 화이트.svg삼성전자
인물
}}}
{{{#!wiki style="margin: 0 -10px -5px;"
{{{#fff {{{#!folding [ 펼치기 · 접기 ]
{{{#!wiki style="margin:-6px -1px -11px; color:#034ea2"
경계현 | 고동진 | 권오현 | 권혁빈 | 김광석 | 김기남 | 김영기 | 김재명 | 김제리 | 김종기 | 김종민 | 김준성 | 김현석 | 김현종 | 김훈 | 노태문 | 량멍쑹 | 마크 리퍼트 | 문용석 | 박상권 | 박종천 | 신종균 | 심수옥 | 쓰쓰미 히로유키 | 안지홍 | 양향자 | 원기찬 | 윤부근 | 윤종용 | 이건희 | 이근면 | 이기태 | 이병철 | 이상훈 | 이수빈 | 이영희 | 이인용 | 이재용 | 이학수 | 임형규 | 정광열 | 정상희 | 정은승 | 정준명 | 정재은 | 정현호 | 정형돈 | 정호준 | 조수용 | 진대제 | 최윤호 | 최지성 | 최진균 | 한정민 | 한종희 | 한진우 | 홍종기 | 황창규
}}}}}}}}}}}} ||
파일:이학수.jpg
이학수
李鶴洙 | Lee, Hak-Soo
출생 1946년 6월 25일 ([age(1946-06-25)]세)
경상남도 밀양군 무안면 내진리[1] 198번지[2]
본관 벽진 이씨[3]
학력 마산중학교 (졸업)
부산상업고등학교[4] (졸업 / 52회)
고려대학교 (상학 65 / 학사)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 (수료)
부모 아버지 이헌조, 어머니 민병순
배우자 백운주[5]
자녀 장남 이상훈[6], 장녀 이상희[7], 차남 이상호[8]
1. 개요2. 생애3. 여담4. 창작물에서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삼성전자 전략기획실장(부회장급)을 지냈다.

2. 생애

1946년 6월 25일 경상남도 밀양군(現 밀양시) 무안면 내진리에서 아버지 이헌조(李憲祚)와 어머니 여흥 민씨 민병순(1915. 7. 20 ~ ?)[9] 사이의 외아들로 태어났다. 마산중학교, 1965년 부산상업고등학교(52회), 1969년 고려대학교 상과대학 상학과(65학번)를 졸업하고 고려대학교 경영대학원을 수료했다. 노무현 대통령의 고교 1년 선배[10] 이며, 강병철롯데 자이언츠 감독과 고교 동기이고 대학 직속 선배는 이명박 대통령이다.

고려대학교 졸업 후 1971년 1월 제일모직에 입사하여 경리과에서 근무하였다. 1978년 9월 관리과장, 1979년 3월 관리부장으로 재직하다가 1982년 12월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운영1팀장으로 전보되었다. 1984년 2월 제일제당 관리담당 이사로 옮겼다가 1985년 2월 삼성그룹 회장비서실 재무팀 이사으로 전보되었고, 1987년 3월 재무팀 상무이사, 1990년 3월 재무담당 전무이사, 1992년 9월 회장비서실 차장 부사장 등 삼성그룹 회장비서실에서 근무했다.

1993년 12월 삼성화재해상보험으로 옮겨 부사장에 취임했고, 1995년 1월 대표이사 부사장, 1996년 1월 대표이사 사장을 역임했다. 1996년 8월 다시 삼성그룹 회장비서실로 옮겨 비서실차장 사장을 거쳐 1997년 1월 현명관 회장 비서실장의 후임으로 회장 비서실장 사장을 역임했다.

1998년 4월 삼성전자 회장실장 사장 및 삼성그룹 기업구조조정본부 본부장, 이후 전략기획실장 등으로 재임하며 삼성그룹이 외환위기의 피해를 최소화하고 이후 장기 호황으로 가는 발판을 마련했다. 이건희 회장의 각별한 신임 하에 계열사 매각, 빅 딜을 주도적으로 처리했다. 당시 신장암을 앓고 있었지만 업무 때문에 오랫동안 수술을 미뤘던 것은 잘 알려진 이야기다.

이 기간 동안 이재용 사장으로의 3대 세습 작업을 진두지휘했으며, 이 와중에 편법 증여, 대선자금 등 검찰과 특검의 수사를 받기도 하였다. 대법원 판결을 계기로 2008년 이건희 회장과 함께 일선에서 물러났으나 2009년 말 이건희 특별사면 이후 이재용과의 사내 권력 싸움에 패배하고 2010년 말 삼성물산 고문으로 발령받아 삼성 2인자에서 완전히 멀어졌다. 하지만 삼성SDS 이사로 재직하면서 헐값에 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받아 무려 307만주의 삼성SDS 주식을 보유하는 등 현재 1조원이 넘는 재산을 보유하며 월급쟁이의 꿈을 이룬 인물로 평가된다.

3. 여담

  • 2008년 1월 29일 당시 타워팰리스 G동 69층 펜트하우스에 거주하고 있었다. # 지금도 살고 있는지는 불분명하다.
  • 삼성그룹의 수뇌부인 '구조조정본부'에서[11] 본부장으로 일하면서, 그룹 내의 실질적인 2인자 역할을 했다. 이 때문에 삼성그룹의 비자금 문제를 폭로했던 김용철 변호사의 저서 '삼성을 생각한다'를 보면 이학수에 대한 다양한 에피소드가 나온다. 해당 책에 따르면, 이학수는 건강상의 이유로 날생선을 기피해서 를 살짝 익혀서 먹었다고 한다. 그리고 점쟁이에게 점을 보러 갔다가 "당신은 한 사람에게 운명이 달려 있다"라는 말을 들었다고 한다. 이학수는 평소 이 일화를 주변 사람들에게 자랑하듯이 말했다고 한다. 이건희를 받드는 게 자신의 운명이라는 뜻으로 해석했기 때문인데, 이는 곧 '일인지하 만인지상'의 자리 또한 자신의 운명이라는 식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어쨌든 강남구 대치동 소재 본인 소유 빌딩인 'L&B타워' 건립을 밀어 붙이면서 이건희의 심기를 건드렸고, 이 때문에 이건희가 경영에 복귀한 2010년 이후 그룹 내에서 완전히 밀려났다는 이야기가 있다. '지시한 대로 움직이고, 시키기 전에 알아서 일처리를 해 오던 이학수 부회장이 이건희 회장의 조언에 정면으로 반하는 행동을 했기 때문'이라는 삼성그룹 내 관계자 증언이 나왔을 정도였다. #
  • 2010년대 후반 이명박 전 대통령의 검찰 수사 과정에서 검찰에 소환된 이학수가 이명박에게 불리한 증언을 많이 했다고 한다. 삼성그룹의 삼성 다스 소송비 대납사건 등의 핵심적 증언이 이학수의 입에서 나왔다고. 구조조정본부의 수장으로 있으면서, 이재용에 대한 상속 작업이나 그룹 차원의 지저분한 일들을 책임지고 정리하면서 일했던지라, 이학수의 말들 하나하나가 결정적인 증언들이었다고 한다.[12]
  • 한편, 이학수 전 부회장의 삼성그룹 퇴진은 당시 삼성 라이온즈 김응용 사장과 선동열 감독의 해임을 부르기도 했다. 삼성은 2010년 한국시리즈가 막을 내린 후, 그해 12월 초 김응용 사장과 김재하 단장을 퇴진시키는 인사를 단행했고, 30일에는 선동열 감독을 경질했다. 김응용 전 사장, 그리고 김재하 전 단장은 삼성그룹의 2인자로 통하던 이학수 전 부회장과 한 배를 탔던 인사들. 김 전 사장은 이 전 부회장의 부산상고 선배이고, 김 전 단장은 제일모직 근무 시절 이 전 부회장과 함께 한 이력이 있다. 수뇌부가 통째로 교체 되면서, 선동열 감독 역시 칼날을 피할 수 없었던 것이다. # 그리고 이때부터 수뇌부가 대거 교체되며 송삼봉, 류중일로 대표되는 왕조 시기가 시작된다.그러나 그 뒤의 단장 두 명은...

4. 창작물에서

  • 소설, 만화, 드라마, 영화 등을 막론하고 삼성그룹을 모티브로 한 미디어라면 거의 반드시라도 해도 좋을 만큼 이학수라는 사람을 모티브로 한 캐릭터가 등장한다. 그만큼 IMF 당시 삼성그룹 구조조정을 진두지휘하며 세간에 남겼던 인상이 컸다는 뜻이다.

4.1. 시마 시리즈

일본 만화인 시마 시리즈에서 "이갑수"라는 이름의 "섬상전자"[13]의 사장으로 등장하여 빌런(...)으로 활약한다. 여기서 "10년 내에 일본을 불타는 황무지로 만듭시다!" 라는 명대사를 남긴다.[14] 물론 그걸 보는 한국 독자들은 "피해의식 한번 개쩌네요" 소리밖에 안 나오지만.[15] 그리고 2021년 들어서 시마 시리즈 최신작 시마 상담역에서는, 현실에서 2020년 이건희 회장이 사망하자 작중에서 이갑수 회장을 코로나19로 죽여버렸다.(...)

4.2. 재벌집 막내아들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이항재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웹소설 <재벌집 막내아들>에서 이학수를 모델로 하는 인물이 등장한다. 순양그룹[16] 비서실장 이학재라는 인물로 드라마판에서는 이항재로 이름이 바뀌었다. 또한 산경 작가의 데뷔작인 <비따비>에서도 진성그룹 회장 비서실장 이학재라는 인물이 나오고 <신입사원 강 회장>에서도 마찬가지로 최성그룹 전략본부 이상재 전무가 나오는 등 그의 작품에서 매우 알차게 사용되고 있다.


[1] 벽진 이씨 집성촌이다.[2] #[3] #[4] 강병철롯데 자이언츠 감독과 동기동창이다.[5] 1950년 2월 15일생.[6] 1971년 11월 21일생.[7] 1973년 11월 18일생.[8] 1977년 1월 31일생.[9] 이참공파(吏參公派) 29세 민훈식(閔勳植, 1893 ~ 1959. 3. 3)의 장녀다.[10] 46년생 동갑이지만 노무현 대통령이 국민학교에서 1년 유급을 한 탓에 이학수 측이 선배가 된다.[11] 전신은 삼성비서실이며, 후신은 삼성미래전략실. 이 조직은 국정농단 재판 과정에서 책임을 지고 해체되었으나 현재 삼성전자 사업지원T/F로 사실상 부활하였고 해당 TF를 이끄는 것이 이재용의 이학수 격인 최측근 정현호 부회장이다.[12] 이미 경영 일선에서 물러난 2010년대 초반부터 '이건희 회장과 본인은 '삼성을 생각한다' 책에 나온 것처럼 그리 가까운 관계가 아니다'고 말하고 다녔다는 소문이 많이 있었다.[13] 오타가 아니다. 한국 정발본에서는 섬상이라고 표시되어 있고 작중에서 영어 표기는 SOMSAN이다. 즉 '소무산'인데 일본에서 삼성이 '사무송'으로 읽히는 것을 비튼 것.[14] 참고로 저 말과 비슷한 의미로 반도체 산업 뛰어넘어보자고 했던 사람은 이학수가 아니라 삼성의 반도체 부문 총괄이었던 진대제다. 그리고 실제로 이뤘다.[15] 애초에 일본 전자산업의 몰락은 삼성의 추격도 있지만 스스로 자멸한 것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16] 순양 자체가 삼성을 모티브로 하고 있다. 물론 모티브만 따온거고 세부적인 내용은 여러 재벌 일가의 이야기를 섞어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