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30 12:05:58

윤종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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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034ea2><colcolor=#ffffff> 前 삼성전자 대표이사 부회장
윤종용
尹鍾龍 | Yun Jong-yong
파일:윤종용.jpg
본관 파평 윤씨[1]
출생 1944년 1월 22일 ([age(1944-01-22)]세)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호남리[2]
가족 배우자 이수곤, 아들 윤태영, 딸
학력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 (졸업 / 11회)
서울대학교 공과대학 (전자공학[3] / 학사)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대학원 (수료)

1. 개요2. 상세3. 경력4. 여담

[clearfix]

1. 개요

대한민국기업인. 삼성전자 부회장을 지냈다.

2. 상세

1944년 1월 22일 경상북도 영천시 금호읍 호남리에서 태어났다.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고등학교(11회)와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고,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 대학원을 수료했다.

서울대학교 졸업 후 1966년 삼성그룹에 입사하여 한국비료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했다. 그러나 주력사업인 한국비료를 국가에 헌납해야 했고 신규사업동력을 물색하던 중 전자 분야를 택했고 1969년 1월 삼성전자공업(삼성전자 전신)이 생기면서 이동했다.

80년대 중반에 이병철 회장의 눈 밖에 나 현대전자로 이직했고 이후 필립스 네덜란드 본사로 옮겨갔다.[4] 하지만 87년도에 이건희 회장이 취임하자 "한번 떠난 사람은 절대 기용하지 않는다" 라는 선대의 원칙을 뒤엎고 불러들여 VCR 사업 정상화를 맡겼고, 탈모까지 걸리며 성공했다.

삼성전자 도쿄지점장, 기획조정실장, TV·비디오 사업본부장, 종합연구소장을 역임하고 1990년 가전부문 대표에 올랐다. 그러나 이후 삼성전자를 떠나 삼성전기 사장, 삼성전관 사장, 삼성그룹 일본본사 사장 등을 역임하면서 주류에서 밀린 게 아니냐는 평가를 받기도 했지만 1997년 삼성전자의 총괄 대표이사 사장으로 화려하게 복귀하면서 IMF 외환위기를 성공적으로 극복해냈다. 구조조정, 기술혁신, 인재혁신, 브랜드이미지 혁신 등을 주도했다.

현대전자에서 불량품을 줄이기 위해 부실품을 납품한 협렵체 사장들을 불러 직접 사가게 한 것을 벤치마킹해 "새벽품질시장"을 도입하기도 했다.

2000년대 삼성을 '글로벌 톱 전자기업'으로 만든다는 전략을 주도하였고 소니를 필두로 한 글로벌 전자업체들과의 경쟁 속에서 세계 1위의 목표를 달성했다. 12년간의 삼성전자 CEO 생활을 2008년 5월에 마친 후 2011년까지 상임고문을 맡았다.

12년간 CEO를 맡으면서 기쁜 때가 별로 없었다고 하며, 그 이유는 매일 긴장하면서 살았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2004년 삼성전자가 순이익 11조 원을 기록했을 때, 그리고 세계 TV 시장에서 1위에 등극했을 때 보람을 느꼈지만 기쁨을 내색할 수 없었고 곧바로 회사가 위험해진다는 생각부터 했다고 한다.

2011년부터 2015년까지 국가지식재산위원회 위원장을 맡았다.

3. 경력

4. 여담

  • 진지하고 담백한 성격이며 앞에 나서는 것을 워낙 싫어한다. 언론에서 인터뷰 잡기 어려운 기업인이었으며 인터뷰를 잡아도 재미는 솔직히 떨어지는 편이라고 한다. 그러나 성격이 급한 면도 있고 의외로 달변가이며, 한 번 말문을 열면 화제가 이쪽 저쪽으로 옮겨다닌다고 한다.
  • 흡연자다. 인터뷰 내내 담배를 피웠다고 하며 담배를 끊지 못한 이유로 기업을 경영하면서 고민이 많은 점을 꼽았다.
  • 아들 윤태영이 이 사람의 아들로 유명해졌다. 본인의 뒤를 이어 기업 경영인이 되길 바랐지만 아버지의 바람과 달리 연기자 생활을 시작하여 처음에는 말도 섞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러나 아들이 꾸준한 노력 끝에 사람들의 인지도를 얻어가자 인정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주식 투자에서 아들이 성공을 거두자 비결을 물어보기도 했다고.
  • 아들 윤태영의 결혼식을 신라호텔에서 했으며 재계, 정계, 관계인사들이 많이 참석했다. 연예인들은 별도로 마련된 공간에서 식을 봐야했다고 한다. 무뚝뚝한 성격이나 손주를 보자 손주바보가 됐다고 한다.
  • 공과대학 학생들이 전공 45학점만 따도 졸업하는 게 무슨 공대냐고 할 정도로 한국 공과대학이 너무 공부를 안 시킨다고 비판하였다. 본인이 1966년 서울대학교 전자공학과를 졸업하기 위해 전공학점으로 무려 150학점을 따야했다고 술회했다.#
  • '몇 주 갖고 있는데 남의 회사 주총 와서' 짤[5]의 주인공이기도 하다. 삼성전자 주주총회에서 목소리를 높이는 소액주주를 향해 한 발언인데, 목소리를 높이는 소액주주에게 "남의 회사 주총 와서"는 말은 발언하는 소액주주를 주총꾼 취급했다고 봐도 무방하다.

[1] 태위공파-전서공파 35세 종(鍾) 항렬.[2] 파평 윤씨 집성촌이다.#[3] 학창시절에 철학물리학에 관심이 많았으나 철학은 배고프고 수학이 약해 전공을 전자공학으로 정했다고 한다.[4] 네이버 프로필에도 나와있지 않다.[5] 파일:17f90c280ff4fb8cc.jp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