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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삼성 라이온즈의 전·후반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열리지 않았다. [B]: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로 인해 개최일 연기, 고척 스카이돔 중립경기 개최.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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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6년 한국프로야구 포스트시즌 | ||
1986 KBO 플레이오프 | 1986 KBO 한국시리즈 | |
(1986 후기리그 챔피언 결정전) |
1986년 한국시리즈 우승팀 | |
해태 타이거즈 | |
MVP | 김정수[1] |
[clearfix]
1. 개요
1986 프로야구 한국시리즈 | |
삼성 라이온즈 | 해태 타이거즈 |
해태 왕조의 본격적인 서막을 알린 시리즈이자, 이미 원년부터 시작되었던 삼성의 준우승 역사를 연장시킨 계기가 된 한국시리즈. 승부 자체도 매 경기 접전 양상으로 벌어졌고, 두 번의 연장전과 5경기 모두 3점차 이내의 치열한 접전이었다. 하지만 그것보다도 1980년대의 거칠었던 관중 문화와 살벌했던 영호남 지역감정을 상징하는 사건들이 더 기억에 남으면서 시리즈의 치열했던 접전이 모두 묻혀버린 비운의 시리즈.
해태 타이거즈는 이 우승으로 프로야구 역사상 처음으로 두 번째 우승을 차지하는 팀이 되었고,[2] 이 때를 기점으로 한국시리즈 4연패를 달성한다.
2. 일정
1986 한국시리즈 삼성 라이온즈 VS 해태 타이거즈 | |||||||
<rowcolor=#ffffff> 경기 | 경기 시간 | 경기장 | AWAY | 결과 | HOME | 방송사 | |
1차전 | 10월 19일 16:00 | 무등 야구장 | 삼성 라이온즈 | 3 | 4 | 해태 타이거즈 | |
2차전 | 10월 20일 18:00 | 2 | 1 | ||||
3차전 | 10월 22일 18:00 |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해태 타이거즈 | 6 | 5 | 삼성 라이온즈 | |
4차전 | 10월 23일 18:00 | 7 | 4 | ||||
5차전 | 10월 25일 16:00 |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삼성 라이온즈 | 2 | 5 | 해태 타이거즈 | |
3. 시리즈 전 상황
특별히 주목해야 할 것은 1986년 1월에 열린 KBO 이사회였다. 1985년 전후기 통합우승으로 한국시리즈가 사라져버리자, 김이 샐대로 샌 KBO는 어떻게든 한국시리즈를 만들기 위해 다음과 같은 안을 제시했고, 그 첫 시행이 바로 1986년이었다. 사실 1984년의 져주기 파동으로 이미 전체 승률 1위에게 한국시리즈 직행권을 주기로 의결한 바 있지만, 1985년에는 삼성이 그 대상인지라 한국시리즈가 사라져서, 어떻게든 한국시리즈를 만들려고 도입한 제도가 바로 아래와 같은 시스템이었다.- 전기 1위, 2위와 후기 1위, 2위 팀에게 포스트시즌 진출권을 부여.
- 한 팀이 전후기 모두 2위 안에 들면 한국시리즈 직행
- 한 팀이 전후기 중 한 번만 2위 안에 들면 플레이오프 진출
- 포스트시즌 진출 팀이 네 팀이면 전기 1위와 후기 2위, 전기 2위와 후기 1위 간의 5전 3선승 플레이오프 후 한국시리즈 실시.
문제는 1986년에 전기리그 1위는 삼성, 후기리그 1위는 OB가 차지했지만, 전기리그 2위와 후기리그 2위는 해태가 차지했다는 점이었다. 정확히는 후기는 두 팀이 공동 1위였는데, 당시에는 공동 1위가 나오는 경우는 3전 2선승제로 리그 우승 팀을 가린다는 규정[3]이 있었다. 그래서 두 팀은 포스트시즌 대진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우승결정전인 한국프로야구/1986년/후기리그 챔피언 결정전을 치렀고 여기서 해태가 져서 2위였다. 그래서 해태는 1986년 플레이오프를 거치지 않고, 바로 한국시리즈에 진출했고, 삼성과 OB는 1986년 플레이오프를 치르게 되었다. 그런데 1986년 플레이오프는 정말 치열한 접전이 되면서 5차전 끝에 간신히 삼성의 승리로 끝난다. OB 입장에서는 2승 1패로 앞선 상황을 못 끝낸 것이 천추의 한이 되었지만, 어쨌든 기다리던 해태는 정말 여유가 넘치는 최상의 시나리오가 되고 말았다.
제도의 허점으로 해태가 한국시리즈에 직행하긴 했지만 전후기 통합 승차가 불과 1.5경기이고 당시 해태와 삼성은 비슷한 투타의 전력을 가지고 있었다. 방어율은 2.86대 2.95로 해태가 약간 앞섰지만 팀타율에서는 .274의 삼성이 .259의 해태보다 앞섰고 홈런수에서는 해태가 99개를 치며 74개의 삼성을 압도하는 장타력을 보여주었다. 길게 얘기할 것 없이 페넌트레이스에서 삼성은 득/실이 475/369, 해태는 474/372로 정말 용호상박의 전력이었다고 할 수 있다. 다만 팀간전적에서는 해태가 삼성에 11승1무6패의 우세를 보였다는 점, 입단 2년째에 방어율 0점대를 기록하며 압도적 구위를 자랑했던 선동열의 존재와 삼성은 1986년 플레이오프를 거쳐 체력소모를 했기 때문에 시작부터 해태의 우세가 점쳐졌다.
4. 엔트리
4.1. 해태 타이거즈
해태 타이거즈 1986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
<colbgcolor=#09081e> 감독 | 1명 | 김응용 |
코치 | 4명 | 김인식, 임신근, 백기성, 박정일 |
투수 | 9명 | 이상윤, 선동열, 김정수, 차동철, 신동수, 김대현, 방수원, 문희수, 김용남 |
포수 | 2명 | 김무종, 장채근 |
내야수 | 8명 | 김봉연, 김일환, 김성한, 서정환, 이건열, 조충열, 차영화, 한대화 |
외야수 | 6명 | 김일권, 김종모, 김준환, 김평호, 송일섭, 이순철 |
4.2. 삼성 라이온즈
삼성 라이온즈 1986년 한국시리즈 엔트리 | ||
<colbgcolor=#fecd00> 감독 | 1명 | 김영덕 |
코치 | 4명 | 정동진, 박영길, 유백만, 우용득 |
투수 | 9명 | 김시진, 김일융, 진동한, 양일환, 권영호, 황규봉, 성준, 송진호, 김훈기 |
포수 | 3명 | 이만수, 손상득, 송일수 |
내야수 | 7명 | 함학수, 김용국, 김성래, 이종두, 오대석, 배대웅, 박승호 |
외야수 | 6명 | 장효조, 허규옥, 장태수, 이해창, 김동재, 홍승규 |
5. 결과
5.1. 1차전
한국시리즈 1차전, 10월 19일 일요일, 16:00, 무등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R | H | E | B | ||
삼성 | 양일환 | 0 | 0 | 0 | 0 | 0 | 0 | 2 | 0 | 1 | 0 | 0 | <colbgcolor=#dcdcdc,#222222> 3 | 6 | - | - | ||
해태 | 선동열 | 0 | 0 | 0 | 0 | 0 | 0 | 0 | 1 | 2 | 0 | 1X | 4 | 11 |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임주완 | 해설: 이호헌 |
해태는 풀타임 첫 해 괴물같은 활약을 선보인 선동열을 앞세워 승리를 자신했지만, 2회 무사 1루, 2루와 3회 1사 1루, 3루 찬스를 날리면서 어렵게 경기를 끌어갔다. 반대로 삼성은 양일환을 선발로 내세운 후 흔들리자 기교파 진동한을 내세웠고, 이게 먹히면서 대등하게 경기를 풀어갔다. 그리고 7회초 공격에서 김평호의 실책성 수비로 이만수가 2루타로 진루한 후 김성래의 2점 홈런으로 선취점을 뽑았다.
그런데 7회말 수비까지 잘 막은 진동한이 공수교대 때 덕아웃으로 들어가던 중 관중이 던진 소주병에 머리를 맞으면서 상황이 묘하게 꼬였다.[4] 일단 삼성은 김시진을 8회부터 올렸지만, 8회말 해태는 김시진 상대로 김성한이 2루타를 치면서 추격했다. 그러나 믿었던 선동렬이 9회초 밀어내기를 기록하면서 경기는 삼성이 이기는 듯 했는데, 9회말 해태는 김일권의 3루타로 1점을 추격했고, 제구 난조를 보인 김시진 상대로 김성한이 행운의 몸에 맞는 공을 기록하면서 극적으로 동점을 이뤘다.
결국 연장 11회말 다시 김성한이 끝내기 안타를 치면서 해태가 4:3의 승리를 기록했다. 승리투수는 연장 10회부터 나온 김정수. 너무 아쉽게 어쩌면 억울하게 진 삼성의 김영덕 전 감독은 경기 종료 후, "진동한이 병에 맞지 않았다면.."하면서 아쉬움을 토로했는데 이게 3차전 이후 발생한 프로야구 사상 최악의 팬 난동의 복선이 된다.
종전 양팀 총합 15개의 사사구를 넘어 17개의 사사구가 나왔으며 포스트시즌 한 팀 최다 탈삼진 기록(삼성 12개)[5] 이 나왔다. 김일권은 2개의 3루타를 기록하며 시리즈 개인 통산 최다 3루타를 기록했고, 패전투수가 된 김시진은 시리즈 통산 최다패전(3패)와 통산 최다실점(16점), 최다자책점(13점), 최다사사구(15개) 등 모든 불명예를 한몸에 안았다.
5.2. 2차전
한국시리즈 2차전, 10월 20일 월요일, 18:00, 무등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삼성 | 김일융 | 1 | 0 | 0 | 0 | 0 | 0 | 1 | 0 | 0 | <colbgcolor=#dcdcdc,#222222> 2 | 8 | - | - |
해태 | 차동철 | 1 | 0 | 0 | 0 | 0 | 0 | 0 | 0 | 0 | 1 | 6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유수호 | 해설: 하일성 |
삼성은 1984년 한국시리즈에서 분투한 주역이자, PO에서 맹활약한 김일융을 선발로 내세웠고, 해태는 차동철을 선발로 내세웠다. 삼성이 1회초 허규옥의 적시타로 먼저 선취점을 뽑자, 해태는 곧바로 1회말 김준환의 홈런으로 동점을 만들었다. 그 뒤로는 팽팽한 투수전 양상이었다.
승부는 7회 갈렸는데, 무사 1루에서 볼넷으로 출루한 박승호 대신 대주자로 나온 발빠른 이해창이 보내기 번트로 진루해 1사 2루가 되었고, 여기서 과감하게 3루를 훔치면서 1사 3루가 되었다. 그리고 배대웅의 유격수 깊은 플라이 때, 과감하게 홈으로 대시하면서 결승점을 뽑아 삼성은 2:1로 승리하며 시리즈를 동률로 맞췄다. 김일융은 해태 타선을 산발 6안타로 틀어막으며 완투승을 거두면서 다시금 큰 경기에 강하다는 자신의 평가를 증명했다.
승리투수는 김일융, 패전투수는 차동철이 되었다.
5.3. 3차전
한국시리즈 3차전, 10월 22일 수요일, 18: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해태 | 이상윤 | 0 | 3 | 0 | 0 | 0 | 0 | 3 | 0 | 0 | <colbgcolor=#dcdcdc,#222222> 6 | 8 | - | - |
삼성 | 김시진 | 3 | 0 | 0 | 0 | 0 | 0 | 2 | 0 | 0 | 5 | 6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 | 해설: - |
승부는 7회초에 갈렸다. 김시진이 연속 볼넷으로 만든 1사 1루, 2루 기회에서 해태는 바뀐 투수 진동한 상대로 대타 김일환이 안타를 쳐서 1사 만루의 절호의 찬스를 잡았다. 하지만 해태 서정환이 친 타구는 2루수 땅볼로 병살 코스였지만, 2루수 김성래가 유격수 오대석에게 준다는 것이 그만 빠지면서 2실점하면서 승부가 기울었다. 여기에 김성한이 승부의 쐐기를 박는 1타점 적시타를 치면서 점수는 6:3.
삼성은 7회말 공격에서 함학수와 이만수의 적시타로 6:5까지 따라 잡았지만, 결국 역전에는 실패했고, 경기는 그대로 해태의 승리로 끝났다. 여기까지는 참 나름 접전인 한국시리즈 경기가 되었겠지만, 경기 종료 후 실책으로 인한 역전패의 허탈함, 1차전 광주에서 진동한이 맞은 일에 분노한 대구 팬들이 경기장 밖에 주차되어 있던 7,000만원짜리 해태 구단버스[6]를 불태워 버리면서 이 경기보다는 경기 후의 대형 사고가 사람들의 입에 아직도 회자되고 있다. 자세한 것은 해태 버스 방화 사건 참조.
2회에 이상윤 대신 구원등판한 김정수가 1차전에 이어 승리투수가 되며 팀의 2승을 모두 책임졌다. 세 번째 투수 차동철은 비록 2차전에선 6회까지 호투하고도 져 패전투수가 되었지만 7회 무사 1루, 2루에서 김정수를 구원하여 위기를 넘겨 세이브를 기록했다.
1차전 패전투수였던 김시진은 7회 1사까지 6피안타 4실점을 기록하며 또 다시 패전투수가 되었다. 1984년 한국시리즈 2패를 포함하여 통산 한국시리즈 전적은 4패가 되었다.
5.4. 4차전
한국시리즈 4차전, 10월 23일 목요일, 18:00, 대구시민운동장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10 | 11 | R | H | E | B |
해태 | 선동열 | 0 | 0 | 0 | 0 | 1 | 0 | 0 | 0 | 2 | 1 | 3 | <colbgcolor=#dcdcdc,#222222> 7 | - | - | - |
삼성 | 권영호 | 0 | 0 | 0 | 0 | 0 | 2 | 0 | 1 | 0 | 1 | 0 | 4 | -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 | 해설: - |
그러나 해태는 9회초 공격에서 김일융 상대로 이순철-김성한-김봉연-김준환이 안타 4개를 집중시키면서 기어이 2점을 뽑아내며 승부를 연장으로 몰고 갔다. 여기에 10회초에는 서정환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내면서 승리하는가 싶었지만, 삼성도 10회말 공격에서 장태수의 내야안타로 동점을 만들면서 경기를 끈질기게 끌고 갔다. 하지만, 연장 11회초 2사 후, 김준환의 안타와 한대화, 차영화의 볼넷으로 만든 만루 찬스에서 장채근이 몸에 맞는 공으로 밀어내기, 서정환의 2타점 적시타로 결국 승부의 쐐기를 박아 7:4 승리를 차지하는데 성공했다.
삼성의 김성래는 4차전까지 3홈런 5타점 4득점으로 날아다녔지만 이상하게도 그가 홈런을 치는 날에 삼성이 지는 징크스에 울어야했다. 해태 유격수 서정환은 6회에 결정적인 에러를 2개 기록하며 패배의 원흉이 될 뻔 했지만 10~11회 연장에서 팀 승리에 결정적이었던 안타를 연속 기록하며 부진을 만회했다. 전날 세이브를 기록했던 차동철은 이번에는 7회부터 등판하여 승리투수가 되었다. 패전투수는 10회부터 올라왔던 진동한.
한편 이 경기 후에도 대구 관중들의 분은 아직 식지 않아서 경찰이 최루탄을 쏴서 관중들을 해산시키기도 하였다.
5.5. 5차전
한국시리즈 5차전, 10월 25일 토요일, 16:00,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 | ||||||||||||||
팀 | 선발 | 1 | 2 | 3 | 4 | 5 | 6 | 7 | 8 | 9 | R | H | E | B |
삼성 | 김시진 | 2 | 0 | 0 | 0 | 0 | 0 | 0 | 0 | 0 | <colbgcolor=#dcdcdc,#222222> 2 | 7 | - | - |
해태 | 김정수 | 1 | 0 | 3 | 0 | 0 | 0 | 0 | 1 | - | 5 | 8 | - | - |
중계방송사: | 캐스터: 정도영 | 해설: 하일성 | 캐스터: 임주완 | 해설: 이호헌 |
해태는 시리즈 2승을 거두고 있던 김정수를 선발로, 삼성은 통산 KS 4패에 이번 시리즈 2패를 기록중이던 김시진을 선발로 내세웠다. 경기 시작은 삼성이 1회초 이해창의 2루타, 장효조의 희생플라이로 1점을, 그리고 이만수의 솔로 홈런을 포함해 2점을 내면서 먼저 앞서 나갔지만, 해태는 1회말 서정환의 안타와 김봉연의 볼넷으로 얻은 2사 1루, 2루의 공격 찬스에서 바로 김종모의 1타점 적시 2루타로 반격에 성공했고, 3회말 공격에서 2사 후에 한대화의 볼넷, 김성한과 김봉연의 안타로 동점을 이룬 후, 김종모의 싹쓸이 좌중간을 가르는 3루타로 역전에 성공하며 4:2로 앞서 나갔다. 그리고 8회말에 김준환의 적시타로 다시 1점을 더 추가하면서 승리를 굳혔다.
김정수는 5이닝 2실점으로 삼성 타선을 막으면서 시리즈 3승을 거두었고, 이 3승으로 인해 1986년 한국시리즈 MVP가 되었다. 선동열이 6회부터 나와 세이브를 챙기면서 마지막 우승 장면을 같이 했고, 김시진은 한국시리즈 3패를 더 적립하고 말았다. 통산 5패.
6. 여담
- 우승 후에 해태 김응용 전 감독은 5차전을 빼고는 나머지 3승은 우리가 잘 해서 이긴 것이 아니기에 다음 해에는 더 전력을 보강해서 우승에 도전하겠다고 선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었다.
- 김정수는 이 때의 활약을 시작으로 한국시리즈에서만 7승을 거두며, 한국시리즈 최다승 투수가 되었다. 그래서 별명도 가을까치.
- 반대로 김시진은 1984년에 이어 또 다시 한국시리즈에서의 악연을 풀지 못했고, 그 결과 한국시리즈 7패라는 기록을 남기고 만다.
- 3차전을 삼성이 패하면서 분노한 대구 시민들이 해태 버스 방화 사건을 일으키고 난 뒤부터 삼성은 한국시리즈 12연패(敗)라는 충격적인 기록을 작성하고 만다. 즉, 이 해 한국시리즈 3차전~5차전 내리 3연패를 하고, 1987년과 1990년에는 모두 4전 전패를 기록하는 바람에 그런 불명예 기록이 이어진 것이다. 이런 경악스런 연패 기록은 7년이 지난 1993년 한국시리즈 2차전에서야 겨우 끊게 된다. 이에 비견될 기록으로는 2020년 한국시리즈 4차전부터 2021년 한국시리즈 전 경기를 패한 두산 베어스의 한국시리즈 7연패(敗)[7]나 1989년 KS 2차전~1992년 KS 2차전까지 한국시리즈 10연패(敗)를 기록한 빙그레 이글스-한화 이글스 정도.
- 당시 버스 방화 사건이 터지면서 해태 매니저가 김응용 감독에 "감독님 불이 났습니다, 불이!"라며 울고불고 울상을 짓자 김응용은 대뜸 허허 웃으면서 "야 이 녀석아 불난 집에 복 든다는 말 몰라?" 라며 대인배같이 받아쳤다고. 그리고 이 말은 사실이 되어 결국 해태가 승리했다. 전설의 타이거즈에서 송유석이 술회하기를 본인의 월급 20만원을 찾아서 구단 버스 밑에 넣어놨는데 버스가 불타면서 돈도 같이 불타버렸다고 한다.[8]
- 당시 해태 타이거즈의 주치의었던 임채준 박사의 말에 따르면 우승이 결정됐을 당시 한큐 브레이브스 소속 코치 2명이 있었는데[9] 그 중 한 명이 웃으면서 나중에 삼성 선수단이 오면 버스를 불태워버리는게 어떻겠냐라는 말을 꺼냈다고 한다. 라이벌 의식을 부추겨 관중도 늘어나고 대한민국 프로야구도 발전하지 않겠느냐라는 이유였다고 하는데 실제로 했다간... 출처
- 이때 1차전 관중은 12,822명이었고, KBO 측에서는 극적으로 홈팀이 승리했기에 2차전은 그 이상의 관중이 들어올것이라 예상했지만 2차전 관중은 8,398명으로 집계되었고 실제 입장은 6천명 정도여서 내야는 찼지만 외야는 휑했다고 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당시는 예매를 구장에서도 했지만 추가로 서점이나 레코드 가게 등에 일정 티켓을 배부하여 경기 전전날까지 팔게 한 다음에 티켓 판매금과 남은 티켓을 회수하는 시스템이었는데, 예매처마다 암표상들이 돌아다니면서 티켓을 빼돌렸던 것. 그러니 KBO는 예매가 매진되었다고 알고 있고 그 소식을 받은 언론들도 예매 전쟁이라고 기사를 연일 실어댔기에 실제로 야구를 보러 와야 할 관중들이 아예 경기장 오는걸 포기해 버린 것이다. 그러자 표가 많이 남아버린 암표상들은 경기운영본부로 쳐들어가서 남은 티켓을 환불해달라고 생떼를 썼다고 한다. 조폭처럼 협박을 해대기도 했다고 하지만 공권력을 동원해서 내쫓아버렸다.
- 재일교포 출신으로 3년간 삼성의 에이스로 활약했던 김일융의 KBO 리그 고별무대가 되었다. 그리고 시리즈 직후 김영덕 전 감독은 재계약을 포기하며 팀을 떠나 1년의 휴식기를 거쳐 빙그레 이글스의 2대 감독이 되었는데 거기에서도 4번의 준우승을 추가하고 말았다.
- 2024년까지 타이거즈가 자신들의 상징인 호랑이띠인 해에 우승을 차지한 유일한 한국시리즈다. 1998년과 2010년에는 8개 팀 중 5위를 기록하여 포스트시즌 진출조차 실패했고[10], 2022년에는 10개 팀 중 5위로 와일드카드 결정전에 진출했지만 1경기만에 탈락했다.
- 1986년 당시 한국시리즈 우승 당시 서울종합운동장 야구장에 모인 해태 팬들은 목포의 눈물과 김대중을 연호했다. 1980년대 해태팬들은 왜 한국시리즈가 열린 야구장에서 "해태"와 "김대중"을 연호했나?
- 그러던 중 1987년 한국시리즈가 광주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홈팀으로 우승으로 5차전을 서울에서 하기로 했으나 4차전에서 해태 타이거즈가 4번이나 승리하는 바람에 무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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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원년 이후 신인 선수가 한국시리즈 MVP를 수상한 첫 사례다.[2] 이후 한 팀의 두 번째 우승은 1992년의 롯데 자이언츠가 차지할 때까지 무려 6년이나 나오지 않는다.[3] 그 후 2020 시즌부터 공동 1위가 2팀이 나왔을 경우에 한해 이 2팀이 상대전적이 앞선 팀의 홈구장에서 단판승부 1위 결정전을 치르기로 했는데, 다음 해인 2021 시즌에 kt wiz와 삼성 라이온즈가 나란히 공동 1위가 되어 대구 삼성 라이온즈 파크에서 KBO 리그/2021년/정규시즌 1위 결정전을 치렀다. kt가 이 경기를 승리하여 한국시리즈에 직행했다.[4] 당시 무등야구장 덕아웃 지붕 위는 넓은 공간이 있어서 관중들이 신문지를 깔고 술판을 벌이고 특히 원정팀 덕아웃 위에서는 술에 취한 관중들이 원정팀 선수들을 향해 욕을 하는 것은 기본이고 침을 뱉고 물병 또는 깡통을 집어던지는 등의 기괴한 사건이 잦았다. 이날 삼성 덕아웃 위에서도 극성팬들이 술판을 벌였고 진동한의 역투에 격분한 관중이 소주병을 집어던졌다고 한다.[5] 다만 이건 타이 기록이다. 이미 1984년 한국시리즈 3차전에서 최동원이 삼성타선을 상대로 9회까지 완투하며 12탈삼진을 먼저 기록하였다.[6] 1985년식 AM919 모델이었다.[7] 현재 진행중이다. 만약 두산이 한국시리즈에 진출해 패배가 이어지면 이 기록은 계속해서 갱신되는 것.[8] 참고로 이때 불탄 버스나 선수 소지품 변상 문제를 가지고 삼성 측과 KBO가 갈등을 빚었지만 결국 전부 다 삼성 측에서 변상했다. 그래서 일부 해태 선수들이 돈을 좀 더 받고자 원래 버스 안에 없던 물건까지 거짓말해서 그만큼의 배상금도 받아내기도 했다고. 다만 송유석은 짬에서 밀린지라 저때 월급 20만원에 대한 이야기를 못했다고 한다.[9] 해태의 마무리 훈련을 위해 초빙되었던 코치였다고 한다.[10] 이 두 번의 전년도인 1997년과 2009년에는 모두 우승했다.[11] 여기도 옆동네 라이온즈가 타이거즈에게 안방에서 떡실신당한 시리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