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0-15 09:18:12

배대웅

배대웅의 수상 경력 / 역임 직책 / 역대 등번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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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삼성 라이온즈 우승 엠블럼 V1.svg
KBO 리그
우승 반지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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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주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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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2~1983
1984 1985
1986~1988
1989~1990
배대웅
천보성
함학수
장효조
박승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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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대 감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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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대
4대 5대
임태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
이성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8)
임태호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89~1997)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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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8)
<rowcolor=#000> 6대 7대
8대
9대
우용득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1999~2001)
권두조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
김정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1~2002)
이재환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2~2003)
감독 대행
김무관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
<rowcolor=#fff> 9대 10대 11대 12대 13대
감독 대행
박영태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3)
김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4~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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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
김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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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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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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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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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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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3)
김용희 파일:대한민국 국기.svg
(2024~ )
24대 한정 총괄 코치로 직함 변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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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3번
팀 창단 배대웅
(1982~1986)
정윤수
(1988)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73번
결번 배대웅
(1987~1992)
장형석
(1995)
삼성 라이온즈 등번호 86번
결번 배대웅
(1993~1994)
박정환
(1995~2000)
롯데 자이언츠 등번호 72번
조창수
(1988~1989)
배대웅
(1997~1998)
김무관
(2001~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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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image/410/2012/12/13/20121213_1355356425.JPG_59_20121213094407.jpg
배대웅
裵大雄 | Dae-woong Bae
출생 1953년 3월 20일 ([age(1953-03-20)]세)
대구광역시
국적
[[대한민국|]][[틀:국기|]][[틀:국기|]]
학력 대구옥산초등학교 (졸업)
경북중학교 (졸업)
경북고등학교 (졸업)
포지션 2루수
투타 우투우타
프로 입단 1982년 삼성 라이온즈 창단멤버
소속팀 기업은행 야구단 (1972~1977)[1]
포항제철 야구단 (1978~1981)
삼성 라이온즈 (1982~1986)
지도자 삼성 라이온즈 1군 수비·주루코치 (1987~1994)
삼성 라이온즈 1군 수석코치 (1995)
롯데 자이언츠 1군 수석코치 (1997)
롯데 자이언츠 1군 작전·주루코치 (1998)[2]
롯데 자이언츠 2군 감독 (1998)[3]
한화 이글스 1군 작전코치 (2001)
해설위원 TBC 야구 해설위원 (2006)
경력 리틀야구연맹 영남지부장 (2008~2012)
KBO 육성위원 (2009~2011)
종교 무종교개신교

1. 개요2. 선수 경력3. 은퇴 후4. 여담5. 연도별 성적6. 관련 문서

[clearfix]

1. 개요

파일:삼성 라이온즈 시절의 배대웅.png

전 야구선수, 야구코치. 대한민국 야구 국가대표팀 2루수 계보를 잇는 선수 중 하나이며, 삼성 라이온즈 원년멤버이자 초대주장을 역임했다.

2. 선수 경력

1971년 경북고등학교 재학 시절에 남우식, 천보성, 정현발 등의 동기, 1년 후배 황규봉, 이선희 등과 함께 대통령배, 청룡기, 봉황기, 황금사자기에서 모두 우승했다.

어려웠던 가정형편 때문에 고교 졸업 후 바로 실업팀인 기업은행에 입단했다. 1975년 아시아야구선수권대회부터 국가대표 2루수로 자리 잡으며 당시 유격수 김재박과 1981년까지 7년간 키스톤 콤비를 이뤘다. 김재박이 화려한 수비를 자랑했다면 배대웅은 안정적인 수비로 내야진을 이끌었다. 배대웅을 기업은행으로 스카우트했던 김성근 감독은 '포지션은 달랐지만 박진만 같은 선수였다'고 평가했다.[4]

1978년 포항제철 야구단으로 팀을 옮기고, 1982년 프로야구가 출범하며 당시 실업야구선수라면 은퇴를 고려했을 만 28세의 나이로 연고팀인 삼성에 입단했다. 팀 내에서 황규봉 다음 가는 연봉을 받았으며 다년의 국가대표 경험 덕분에 초대 주장을 맡았다.

프로야구 첫 몰수게임의 원인 제공자였다. 1982년 8월 26일 대구시민야구장에서 열린 MBC 청룡전에서 4회말 1사 1,2루 상황에서 정현발이 유격수 땅볼을 치자 배대웅은 병살타를 막기 위해 MBC 2루수 김인식 쪽으로 거칠게 슬라이딩했다. 김인식은 넘어졌다가 일어나선 배대웅의 얼굴을 쳤다. [5] 이 때문에 벤치 클리어링도 일어났고, 심판은 김인식을 퇴장시켰다. 김인식이 퇴장되자 백인천 MBC 감독이 왜 김인식만 퇴장시키냐며 항의하다가 선수들을 모두 철수시켜 몰수게임이 선언됐다. 그런데 정작 당사자끼리는 잘 해결했다. 김인식은 배대웅의 얼굴을 친 후에 바로 사과했고, 동기인데다 오랜 기간 국가대표를 같이 했던 사이라 배대웅도 다혈질적인 김인식의 성격을 잘 알고 있어 사과를 받아줬다. 그리고 이 몰수게임이 있었던 다음날에는 같이 술을 마시며 이 일을 두고 얘기하면서 웃었다고 한다.

한국프로야구 사상 첫 한국시리즈의 마지막 타자였다. 팀이 8:3으로.지고 있던 1982년 한국시리즈 6차전 9회말 2사 후에 타석에 들어서0 땅볼을 쳤고 유격수 유지훤이 1루 송구로 연결하여 시리즈를 끝냈다.

1983 시즌에는 0.285의 타율을 기록하기도 했지만 1983 시즌 후 무릎수술을 하는 등 점점 잔부상으로 결장하는 일이 잦아지며 백업으로 밀려났다. 하지만 은퇴하기 전까지도 경기 후반에 대수비로 들어서 안정적인 수비를 자랑했다. 프로 5년간 통산 실책이 20개로, 1년당 4개를 범한 셈.

3. 은퇴 후

은퇴 후 1987년부터 삼성 라이온즈의 수비코치로 임명되면서 천보성, 황규봉에 이어 삼성 선수 중 세 번째로 코치가 되었다. 삼성에서는 수비코치, 주루코치를 거쳐 수석코치까지 올랐으나 1995년 시즌 후 백인천 감독이 부임하는 과정에서 재계약에 실패하고 팀을 떠나야 했다. 삼성에서 나온 후 롯데 자이언츠한화 이글스에서도 코치를 맡았지만 2001년 한화 코치직을 그만둔 이후 현장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있는 상황이다.

2006년 TBC 라디오 해설위원[6], KBO 육성위원, 리틀야구연맹 영남지부장을 역임했고 현재는 자영업자(식당 운영)로 지내는 중이다.

4. 여담

  • 원래는 종교가 없었지만 나중에 개신교에 입교했다고 한다. 삼성 시절 후배였던 이만수의 간증에 따르면 전도하기 어려운데다가 이만수가 그에게 신앙을 전도하려고 할 때마다 상당히 이만수를 많이 갈군 모양이다. 결과적으로 이후 신앙을 받아들이면서 크리스천이 되었다.[7]
  • 김성근은 배대웅을 김재박과 함께 스냅스로가 좋았던 내야수로 평가했다.출처
  • 김성근의 대표적 흑역사 중 하나인 91년 7월 해태전 이중 오더 사건 때 이를 실행에 옮겼던 사람이 당시 삼성의 수석코치였던 배대웅이다.

5. 연도별 성적

역대 기록
연도 소속팀 경기 타수 타율 안타 2루타 3루타 홈런 타점 득점 도루 4사구 장타율 출루율
1982 삼성 71 235 .230 54 9 0 5 27 30 7 25 .332 .304
1983 78 228 .285 65 10 2 2 22 27 6 25 .373 .353
1984 43 104 .240 25 2 0 0 5 5 4 11 .260 .313
1985 91 161 .273 44 8 1 3 18 18 5 9 .391 .312
1986 72 94 .266 25 3 0 1 11 5 2 6 .330 .310
KBO 통산
(5시즌)
355 822 .259 213 32 3 11 83 85 24 76 .346 .321

6. 관련 문서



[1] 1976~1977년까지 군 복무.[2] ~6월 14일[3] 6월 15일~[4] 이 때의 인연 때문인지 배대웅은 삼성 라이온즈 창단 당시 코칭스태프 선임 문제가 잘 풀리지 않자 서영무 감독에게 김성근을 대안으로 추천했고, 김성근도 이 마음을 고마워했는지 삼성 감독 시절 배대웅에게 3루 코치와 선발 라인업 교환이라는 중책을 맡겼다.[5] 근데 이게 머리를 툭 쳤다는 이야기도 있다.[6] 해설위원을 그만둔 이후, 현장 복귀로 해설을 그만둔 강동우를 대신하여 오랜만에 2023년 7월 12일~13일 광주에서 열리는 삼성과 기아와의 2경기에 특별 해설위원으로 나왔다. 이후에 패넌트 레이스의 후반기부터 김용국이 정식 해설위원으로써 바통을 이어받았다.[7] 비슷한 케이스로 삼성 시절 동료인 장효조도 있다. 원래 불교 신자였는데 현역 시절에는 배대웅과 마찬가지로 이만수의 전도를 무시했지만 은퇴 후에는 아내의 영향으로 개신교로 개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