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11-28 20:42:09

전라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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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반도와 그 부속 도서의 지역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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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도
全羅道 | Jeolla-do
파일:전라도 지도.png
위치 한반도 서남부 / 대한민국 서남부
면적 20,913.92㎢
인구 5,146,212명(2019.10월)
광역지자체장 이용섭(광주광역시, 더불어민주당)
김영록(전라남도, 더불어민주당)
송하진(전라북도, 더불어민주당)
인구밀도 246.07명/㎢
행정구역 파일:광주광역시 로고 소형 글자제외.png 광주광역시
파일:전라북도 로고 소형 글자제외.png 전라북도
파일:전라남도 로고 소형 글자제외.png 전라남도
최대도시 파일:광주광역시 로고 소형 글자제외.png 광주광역시

1. 개요2. 역사
2.1. 현대: 인구 유출과 경기 침체2.2. 사료
3. 지리
3.1. 생활권3.2. 도시3.3. 식문화3.4. 사투리3.5. 예술
4. 대학5. 이모저모6. 정치7. 같이보기8. 둘러보기


1. 개요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전라남도의 3개 광역자치단체들을 통틀어 일컫는 명칭. 전라(全羅)도는 고려전주(全州)와 나주(羅州)의 앞글자를 따서 부르던 명칭이 현재까지 이어진 것이다. 인구는 2019년 10월 기준 514만 6212명이다. 다른 말로는 호남(湖南)이라고도 한다. 호남이라는 명칭은 한반도 최초의 인공 저수지라 불리는 김제시 벽골제의 남쪽이라는 설, 금강의 옛 이름인 호강(湖江)의 남쪽이라는 설, 심지어 백제를 멸망시킨 당나라 소정방이 '중국동정호 남쪽 지방과 같이 기후가 온화하고 농사가 주업인 유사한 곳'이라 하여 전라도 지방을 호남 지방이라 칭했다는 설 등이 있다.

조선 8도상 전라도를 현재의 행정구역에 대응시켜 보면 광주광역시, 전라북도, 전라남도, 제주도가 해당되고, 또 1895년 이전의 구획을 기준으로 하면 거기에 충청남도 금산군(1962년까지 전라북도 산하[1])까지 해당된다. 현대에는 '전라도'라는 말이 행정구역적 개념보다는 조선 8도에 따른 역사적 문화적 정치적 지리개념에 가까운데, 이런 의미로 쓸 때도 대개 제주도와 금산군을 제외하는 경우가 99%이다. 제주도는 원래부터 한반도 본토와 떨어져 독자적인 역사와 문화, 생활 양식 등을 지닌 곳이고, 금산군은 충청남도 편입 이후 대전광역시와 밀접한 생활권이 형성됐으며 심지어 대전광역시 통합(편입)론까지 나오기 때문이다. 즉 현행 행정구역상 전라남도·전라북도, 광주광역시만 전라도 또는 호남이라고 부른다는 것.

2. 역사

본래 마한의 영역이었고, 침미다례 등의 나라가 있기도 했고 동부지역은 대가야가 잠시 차지하기도 했다가 삼국시대 후반에 백제에 전체가 편입되었다.

행정구역으로써의 전라도의 형태는 통일신라의 행정구역 체계 9주 5소경에서 이미 완성되었는데, 당시에는 현 전주시를 중심으로 한 전라북도 지역 전주, 현 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한 전라남도 지역 무주가 지금의 전라남북도 영역과 거의 일치한다.[2]

고려의 지방행정구역 : 5도 양계
수도 개경
서경 남경 동경
경기 서해도 교주도 양광도 경상도 전라도
북계(서북면) 동계(동북면)


전라도라는 지명의 어원은 고려 시대 성종이 설치한 12목 중 전주목과 나주목에서 유래하며, 고려시대 현종 때 나주와 전주의 첫글자로부터 전라도를 만드니 광역도의 시작이다. 즉 5도 양계의 시작으로 전라도를 만든 후 300여 년이 지나서 다른 광역도들이 만들어진다. 참고로 당시 지정된 도(道) 단위 행정명 중 현재까지 명칭이 유지중인 지역은 경상도와 이곳 단 둘 뿐이다. 다만 일시적으로 영조 시대 나주에서 일어난 반역으로 영조 11년에 전광도(全光道)라는 명칭으로 바뀐 적은 있었다.# 이 일과 관련해 영조는 경상도에도 영남을 토벌했다며 평영남비(平嶺南碑)를 세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특정 고을에서 역모가 있으면 그 고을의 등급을 낮추었는데, 도명의 유래가 된 고을에서 반역이 일어나면 도의 명칭에서 빼버렸다. 위 기사에서 보다시피 강원도는 원주에서 일어난 반란으로 춘천을 따서 강춘도로 바뀐 적이 있으며, 충청도는 광해군 때 청주, 충주순으로 나란히(...) 반란이 일어나는 바람에 충홍도(충주+홍주)에서 공홍도(공주+홍주)로 바뀌었다가 인조반정 후 충청도로 복귀한 일이 있다. 여튼 전라도는 3년 후인 영조 14년에 나주가 부로 재승격되면서 강원도와 함께 원래 이름을 되찾게 된다.

고대에는 이 지방에 군장국가 단계이던 마한의 여러 소국들이 난립했다. 이 가운데 현재의 대전광역시, 충청남도 천안시, 전라북도 익산시 근방으로 추정되는 목지국이라는 나라의 강력한 영향력에 눌려 특별히 두각을 드러낸 국가는 없는 상태였다. 그리고 결국은 북쪽에서 밀고 내려온 백제에 의해 모두 점령 당하여 본격적인 역사의 무대 에 올랐다. 이런 시각은 백제 근초고왕의 마한 정벌설로 실제 근초고왕이 마한을 공격했는지 조차 불확실할 정도임에도 불구하고 한동안 정설처럼 취급되었지만, 현재는 각종 문헌과 고고학적 연구 등으로 부정되고 있다. 지금은 6세기 초중반까지 강력한 마한 세력이 존재했다고 보는게 학계의 정설이다. 백제 자체가 마한 연맹체의 구성원이였던 만큼 6세기 중반 이후 마한과 백제와의 융화 과정은 사학계의 연구가 진행중이다. 고려 말기 신라 부흥을 외친 이비,패좌의 난이 경상도에서 일어났던 것처럼 백제 부흥을 외친 이연년의 난이 전남 담양에서 일어난걸 보면 백제와 마한의 융화 과정이 그렇게 적대적이였던 걸로 보이지는 않는다.

통일신라 시대에 9주 5소경 체제에서는 지금의 전북에 해당하는 '전주(완산주)'와 전남에 해당하는 '무주(무진주)'로 남북이 분리되어 있었다. 이 무주(武州)는 전북 무주(茂朱)군이 아닌 지금의 광주광역시이다. 문무왕 때 백제 이름을 그대로 가져와 무진주라고 했다가 경덕왕의 지명 한화 정책으로 고친 것. 흔히 견훤이 "무진주를 점령하고 완산주를 도읍 삼았다"라고 하는데 엄밀히 말하면 틀린 거지만 삼국사기 기록에도 무진주라고 나오는 걸 보면 이명으로 즐겨 썼거나 회복 시킨 듯. 한편 섬진강 일대 일부는 강주(현 진주시를 중심으로 한 경남 서부)에 속했다. 옛 가야의 영역.

이후 견훤후백제의 영토를 거쳐 그 때만은 수도권 고려 성종 때까지도 여전히 중국의 지명을 딴 강남도와 해양도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현종이 고려를 5도 양계로 개편하면서 전라도로 퓨전 통합시켜 비로소 모양을 갖춘다.

역사의 변천에 따라 범위가 조금씩 바뀌었는데, 탐라라고 불리운 제주도의 경우 고려 시대까지는 별개의 행정구역이었고 간섭기엔 탐라총관부로 별도 유지되었으며, 조선 태종 무렵부터 몇백년간은 전라도와 묶이게 되었다. 이후 제주도는 해방 직후인 1946년 다시 제주도(道)로 독립한다. 군정법령 제94호

조선 말 대한제국 초기 고종이 전국을 13도로 개편하는 과정에서 전라북도전라남도로 분리되었고 1963년의 행정구역 개편 때는 전라북도 금산군 전체와 현 논산시 남부 지역 일부가 충청남도 금산군 및 논산군으로 편입되어 충청도로 넘어갔다. 때문에 전라북도 북쪽 지방에 사는 연세 많은 분들은 금산이 전라북도라고 말하는 분들이 꽤 있다.

1980년 5.18 민주화운동에서 보듯, 전남도청은 원래 광주에 있었다. 그러나 1986년광주광역시(당시 직할시)가 독립하면서 현재의 1광역시 2도에 이르고 있다(전남도청은 2005년 무안군으로 이전했다).

2.1. 현대: 인구 유출과 경기 침체

가장 높은 지방 인구 유출을 보이고 있으며 이는 심각한 문제 중 하나다.

대한민국에서 가장 경제가 침체된 곳이다 보니, 남녀노소를 막론하고 전국에서 가장 인구 유출이 심각하다. 비수도권 지역의 인구 감소가 예사로운 일이라고 해도 전라도는 특히 심각하다. 당연히 안 그래도 안 좋은 경기 침체를 가속화시켜 전남, 전북, 광주의 gdp는 순위에서 서로 끝을 다투고 있는 악재가 계속되고 있으며, 전국에서도 특히 인구 증대, 재정 자립도, 지역민 복지 수준 등에서 하위권을 차지한다.

영남권 지역이나 충청권 지역에 비해 타 도시나 수도권으로 이탈한 호남 출신 지역민들이 어마어마하게 많다. 이는 인구 증감과 관련된 자료를 살펴봐도 알 수 있다.

1949년 → 2015년 9월 기준
  • 전북 약 205만 → 약 187만(약 18만 감소)
  • 광주•전남 약 304만 → 약 338만(약 34만 증가)

로 타 지역[자료]에 비해 증가세가 정체되있고 특히 전북은 대한민국 총 인구가 약 2018만 → 약 5148만으로 약 3130만명이 증가하는 와중에도 유일하게 인구가 감소한 지역이다.

2018년에는 투표로 선출된 서울특별시 25개 구청장 중에서 구로구, 서초구, 금천구, 중구, 강서구 5개 구청장을 제외한 20개 구청장 출신 지역이 호남이다. 16개 구청장은 광주광역시와 전남 출신이고, 4개 구청장은 전북 출신이다.

2.2. 사료

태조 왕건훈요 10조에서 언급한 '차현(차령) 이남, 공주강(금강) 바깥'이 이 지역으로 받아들여지기도 했고, 이를 두고 지역감정과 결부시키는 의견이 나오기도 하는데, 왕건에 마지막까지 저항했던 세력이 후백제였으니 그의 입장에서는 끝까지 저항한 후백제의 잔존 세력을 견제하고자 하는 의도였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에도 일단 후백제의 주요 세력이자 견훤의 사위였던 박영규가 먼저 투항한 견훤을 따라 투항하였다가 백제 멸망 후에 고려에서 큰 대접을 받았다. 순천 출신 박영규는 고려 3대 왕 정종의 장인이기도 하다. 또한 풍수지리의 비조 도선, 팔공산 전투에서 왕건을 구하고 자신의 목숨을 버린 신숭겸, 6대 성종까지 여섯 임금을 보필한 최지몽도 전라도 출신이다. 무엇보다 고려 왕실 자체가 전라도와 밀접한 관계이다. 태조 왕건의 장자(長子)로서 왕건의 적통을 이어 왕위에 오른 혜종은 전라도 나주 출신이며, 공예태후는 고려 18대 왕 의종, 19대 왕 명종, 20대 왕 신종의 모후이신데 전라도 장흥 출신이다. 고려 8대 왕 현종은 거란과의 전쟁에서 전라도 나주로 몽진을 가기도 하였다. 애초에 '차현 이남, 공주강 바깥'이란 지역이 어디인지 상당히 애매하다. 고려의 여러 기록 등에는 외(外)를 위쪽으로 해석하는 경우가 보이는데 이럴 경우 차현 이남과 공주강 위 즉 그 사이 지역이 된다. 통일 과정에서 있던 청주, 공주의 반란, 통일 후 있었던 천안 부근의 목천 오성 반란 등을 근거로 차현 이남에서 금강 북쪽에 이르는 지역(대략 현재의 충청남도 중부 지역)을 가리킨다는 주장도 있다.

조선시대엔 충청도, 경상도와 함께 '하삼도(下三道)', '삼남(三南)'으로 불리기도 했다. 붕당 정치가 시작되 전 김인후, 이항, 기대승 등과 같은 유학자가 나와 조선 성리학에 큰 영향을 끼쳤고, 붕당 형성에도 기여를 하였다.

선조시기 정여립의 난으로 인해 발생한 기축옥사에 휘말렸다. 직접 연류되어 죽은 사람이 수백명이며[4] 정여립과 무관하게 정개청을 추존한 사실 때문에 금고된 자가 400명, 죄인으로 억울하게 몰린 자가 50명, 그 중 유배형을 당하거나 목숨을 잃은 자가 20명에 달하는 등 호남유림이 와해될 정도로 큰 피해를 입었고 전라도가 반역향으로 일시간 지정되었으나, 정여립 출신 지역이 왕실의 관향인 전주이고 직후 벌어진 임진왜란에서 활약했기 때문에 오래 지속되지는 않았다. 정여립이 전주 출신임을 들어 전주를 엮으려다 본관 자체가 사라진 가문도 있었다. 선조가 "짐이 간악한 정철에게 속아 호남의 어진 선비들이 고초를 겪었다"고 언급하며 호남에 대한 실질적인 복권이 이루어졌다. 호남과는 별도로 정여립 사건 자체는 이후 광해군이 즉위하면서 집권한 북인에 의한 복권시도가 있었으나 인조반정으로 광해군이 폐위되고 북인도 숙청당하면서, 숙종 대에 남인도 경신대출척과 갑술환국으로 축출당하고 권력과 멀어지면서 반란으로 규정되었다.

호남 지역은 정여립의 난으로 호남 내 동인 계열이 많이 숙청되면서 인조반정 이후 노론·소론이 조정에서 정권을 잡게 될 즈음에는 노론·소론의 세가 강했다고 한다. 이는 광산 김씨의 영향이 큰데, 특히 서인의 종장(宗匠) 사계 김장생 가문이 그렇다. 사계 가문은 학문의 연원이 깊고, 종통이 무거워 한양 권문세가들의 기를 꺾을 수 있는 능력을 갖췄을 뿐만 아니라, 한양 명문 거벌들의 종주(宗主) 역할을 하였다. 정여립 사건 이전에도 동인과 서인의 세가 비슷했던 호남 지역과 달리 영남 지역은 북인의 몰락으로 세가 약해진 인조반정 이전에도 남인을 주축으로 동인이 압도적으로 많았고 서인은 극소수였다. 호남 지역은 임진왜란 당시 활약한 의병장 고경명 장군의 경우도 서인이였을만큼 처음부터 동인과 서인의 세가 비슷했던 반면 영남 지역은 북인이 몰락하고 서인 계통의 붕당이 집권한 이후에도 남인이 대세였다.
어느 조선 후기 척제(瘠齊) 이서구(李書九, 1754~1825)라는 사람이 단가 "호남가"를 지은 적이 있다. 이 사람은 1793(정조 17)년과 1820(순조 20)년 두 차례 전라 감사를 역임한 바 있는데, 전라도 곳곳에는 이서구와 관련된 민간 전승이 다수 남아 있다. 이 "호남가"를 보면, 조선 시대 전라도의 여러 고을들이 나와 있다. 여기에는 진산(珍山) 등 누락된 고을도 있으며, 현재는 충청남도로 편입된 금산군 및 전라도에서 분리된 제주도도 포함되어 있다. 아래 시를 자세히 보면 각각의 고을 이름을 의역하여 나름대로 의미와 내용을 부여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서구는 천문, 수리, 풍수에 능했고, 이로 인해 여러 설화를 지닌 인물이기도 하다.
咸平(함평) 天地(천지) 늙은 몸이 光州(광주) 故鄕(고향)을 보랴 하고,
濟州(제주)[5] >漁船(어선) 빌려타고 海南(해남)으로 건너갈 제,
興陽(흥양)에 돋은 해는 寶城(보성)에 비쳐 있고,
高山(고산)에 아침 안개 霊岩(영암)을 둘러 있다.
泰仁(태인)하신 우리 聖君(성군) 藝樂(예악)을 長興(장흥)하니,
三台六卿(삼태육경)은 順天心(순천심)이요, 方伯守令(방백수령)은 鎭安民(진안민)이라.
高敞城(고창성) 높이 앉아 羅州(나주) 風景(풍경)을 바라보니,
萬丈(만장) 雲峰(운봉) 높이 솟아 層層(층층)한 益山(익산)이요,
百里(백리) 潭陽(담양) 흐르는 물은 굽이굽이 萬頃(만경)인데,
龍潭(용담)에 맑은 물은 이 아니 龍安處(용안처)[6]이며,
陵州(능주)의 붉은 꽃은 골골마다 錦山(금산)[7]이라.
南原(남원)에 봄이 들어 各色花草(각색화초) 茂長(무장)하니,
나무 나무 任實(임실)이요, 가지 가지 玉果(옥과)로다.
風俗(풍속)은 和順(화순)이요, 人心(인심)은 咸悅(함열)인데,
異草(이초)는 茂朱(무주)하고, 瑞氣(서기)는 靈光(영광)이라.
昌平(창평)한 좋은 세상 務安(무안)을 일삼으니,
士農工商(사농공상) 樂安(낙안)이요, 父子兄弟(부자형제) 同福(동복)이라.
康津(강진)의 商賈船(상가선)은 珍島(진도)로 건너갈 제,
金溝(금구)의 금을 일어 싸 놓으니 金堤(김제)로다.
農事(농사)하는 沃溝百姓(옥구백성) 臨陂城(임피성)을 둘러 있고,
井邑(정읍)의 井田(정전)법은 納稅人心(납세인심) 淳昌(순창)하고,
古阜(고부) 春陽(춘양) 楊柳色(양류색)은 光陽春風(광양춘풍) 새로워라.
谷城(곡성)에 묻힌 선비 求禮(구례)도 하거니와,
興德(흥덕)하기를 나날이 時習(시습)하니, 扶安齊家(부안제가) 이 아닌가.
우리 湖南(호남) 좋은 法聖(법성) 全州百姓(전주백성)을 거느리고[8],
長城(장성)을 널리 싸고 長水(장수)로 돌렸는데,
礪山(여산)돌 칼을 갈아 南平樓(남평루)에 꽂아 놓으니,
어느 外方之國(외방지국)이 輕擧(경거)할 뜻을 둘까 보냐.

3. 지리

호남 지역에는 두 개의 평야가 있는데, 하나는 한반도 최대의 평야인 전북 서부의 호남 평야가 있고 다른 하나는 전남 서부에 위치한 나주 평야가 있다. 호남 평야에는 도시가 발달하여 김제시, 전주시, 익산시, 군산시가 있다. 반면 호남 동부는 험준한 산지이다. 특히 전북 동부는 진안 고원으로, 같은 전북 도내의 서부지역과는 완전히 다른 지리적 특색을 가지고 있다.

3.1. 생활권

광주·전남권과 전북권은 대개 노령산맥을 경계로 나뉜다. 다만 노령산맥이 온전히 전남북의 경계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북 동반부는 노령산맥 이남에 있으나 전북이고, 영광군은 노령산맥 이북에 있으나 전남이다. 사실 노령산맥이 전남북 경계에 걸리는 곳은 장성군 - 정읍시, 고창군 뿐.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남쪽으로 내려가면, 전북의 드넓은 호남 평야가 이어지다가 큰 산이 보이는데 이곳이 노령이고 이 산의 호남 터널을 지나면 전라남도이다. 이 노령은 과거부터 전북과 전남을 구분했으며 현재도 전북과 전남의 도시권/생활권/문화권을 구분짓고 있다. 전북과 전남의 사투리 차이도 크게 존재하며 도시권 역시 다르다. 실제로 광주광역시가 전라북도에 도시권을 미치는 범위는 고창군 정도이며 나머지 도시들은 정읍시순창군처럼 전북 남부에 위치해 있어도 전주시의 도시권 영향을 매우 크게 받는다. 광주전남과 전북의 자연적 지리특성이 과거부터 두 지역을 구분지었고 현재도 도시권이 다르기 때문에 같은 호남 지역일지라도 여러가지 면에서 차이가 존재하고 있다. 사투리의 경우 흔히 접하는 전형적인 전라도 방언의 경우, 전남 방언 (그 중에서도 특히 전남 서부 방언)이고, 전북 지역의 방언은 북쪽으로 갈수록 충청방언과 가까워지는 특성이 있다. 익산시는 억양부터가 충청방언이다.

3.2. 도시

광역시로는 광주광역시가 있고, 특례시로는 전주시가 있다. 현재 전남권의 중심 도시는 광주광역시, 전북권의 중심 도시는 전주시이다. 두 지역이 각 권역에서 큰 도시권을 형성하고 있다. 실제로 전남광주광역시를 중심으로 도로가 뻗어나가는 현태로 도로가 건설되어 있으며, 전라북도 역시 전주시를 중심으로 한 교통망이 많이 개설되어 있다. 다만 철도의 중심지는 익산역이 있는 익산시이다.

광주와 전주 이외에도 많은 중소도시가 있다. 전남의 목포시는 전남 서부권의 중심도시 역할을 하고 있으며 순천시는 동부권 중심도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여수시는 거대한 석유화학단지가 있는 공업도시이며 광양시 역시 제철 산업이 발달하고 전남 최대의 항구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전북의 익산시는 호남 철도의 집결요새 역할을 하고 있는 철도의 도시이며 익산국가식품클러스터를 통한 산업이 발전하고 전주의 배후도시 역할을 하고 있다. 군산시 역시 산업이 발달하고 항구가 발달했으며 새만금의 중심도시로 국가적으로 매우 중요시되는 도시이다.

3.3. 식문화

전라도 지역은 식문화가 발달되었다는 인식이 있다. 실제로 전라도하면 음식을 떠올리는 경우가 종종 있다. 홍어, 젓갈[9], 한정식 등이 특히 발달되었다. 남부지방에 위치해 기후가 온화하고 전통적으로 물산도 많고 사람도 많아 식문화가 발달하기 좋은 환경이었다. 특히 산지 지역과 평야 지역이 서로 맛닿아 있는 전주 같은 경우가 음식으로 유명하다. 전라도의 음식이 유명한 이유에는 농업 중심의 전라도에 무언가 한국 음식의 전통이 유지되어 있을 거라는 믿음 때문이라는 설도 있다.#[10]

남부지방의 더운 기후 탓에 양념을 강하게 치고, 물산이 풍부해서 식재료가 다양하다.[11] 음식 종류가 엄청 다양해 상차림에도 많은 음식이 올라간다. 정성을 많이 쏟으며 장식과 구성이 다양하다.

3.4. 사투리

서남방언 참고

3.5. 예술

조선 중후기 권력에서 밀려나거나 귀향한 명사들을 중심으로 양반문화가 발달했다. 16세기 양팽손, 17세기 윤두서, 그리고 19세기 허련을 중심으로 남종화가 발달했고, 성순, 정철, 윤선도 등은 전라도 지역에서 많은 가사문학을 남겼다.

구한말에는 동학농민운동이 시작되었으며, 의병 활동이 활발한 지역 중 하나였다. 남한대토벌 작전으로 씨가 말랐지만.

판소리로도 유명하다. 중고제동편제가 맥이 거의 끊기면서 서남지방 중심의 서편제만이 명맥을 잇고 있어 판소리 구전의 중심지 역할을 가지고 있다.

4. 대학

종합대학으로는 호남을 대표하고 있는 거점국립대학교가 2개 있다. 하나는 전북의 거점 역할을 하는 전북대학교전주시 덕진구에 있고, 또 광주전남의 거점 역할을 하는 전남대학교광주광역시 북구에 있다. 호남에서는 이 두 대학의 규모가 가장 크며 지역사회에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 이외에도 국립대학군산대학교, 목포대학교, 순천대학교, 목포해양대학교가있다

규모가 큰 사립 대학으로는 전라북도 익산시원광대학교가, 광주광역시 동구조선대학교가 있다. 이외에도 우석대학교, 호남대학교, 광주대학교, 동신대학교, 전주대학교 등의 사립학교가 있다.

특수 대학으로는 교육대학교인 전주교육대학교광주교육대학교가 있고 광주과학기술원도 있다.

5. 이모저모

통계청에 따르면 종교적으로는 한반도 평균(개신교 18%, 불교 22%)에 비해 개신교의 세가 약 20~25%로 강하고, 반대로 불교의 세가 15% 정도로 비교적 약한 편이라 한다. 가톨릭은 호남 지역에 두 개의 교구를 두고 있는데, 광주전남 지역의 천주교 교회(성당)을 관할하는 천주교 광주대교구와 전북 지역을 담당하는 천주교 전주교구가 있다. 최초의 천주교 순교가 일어난 곳이기도 하다. 원불교는 전북교구와 전남교구 이외에 익산의 중앙 총부와 그 주변으로 구성된 중앙교구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고인돌이 많은 지역이기도 하다. 자연석이 아닌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세계 최대 무게 고인돌로 무게가 280톤에 이르는 '핑매바위'가 전라도 화순에 있다. 종교성이 강한 곳으로 3대 신흥 종교가 전부 전라도에서 나왔다. 대한불교 본산 서울 조계사 대웅전도 전라도 정읍에 있던 보천교 십일전을 분해해서 그대로 옮기었다. 또한 조선조 남사고 선생은 '인류 구원의 대도(大道)는 이 땅 조선에서 출현한다. 전라도에서 천지의 기운이 통하니 무극대도(無極大道)이다'라는 예언을 하기도 하였다.

동학농민운동, 호남의병항쟁, 광주학생항일운동, 광주민주화운동등 압제적인 통치에 저항하는 운동이 많이 일어났던 지역이다.

유명한 바둑기사가 많이 나오기도 한다. 정운창(전남 보성), 조남철(전북 부안), 조훈현(전남 목포), 이세돌(전남 신안), 김인(전남 강진), 이창호(전북 전주) , 조치훈 역시 조남철의 조카이고, 박정환 역시 아버지가 광주 출신이다.[12]

간혹 한 글자가 같고 이름이 비슷한 호서(湖西) 지방과 헷갈리는 경우가 있는데, 호서 지방은 과거 충청도를 일컬었던 단어이다.

전라도 음식, 요리가 상당히 발달한 것으로 유명하다. 연예계에서는 박나래, EXID의 서혜린 등 요리 잘하는 호남 사람을 볼 수 있고 그래서인지 한국을 배경으로 하는 창작물에서 요리의 달인이라하면 전라도 출신으로 설정하는 편. 보통 남도 음식으로 통용된다. 종종 다른 지역에서도 전라도이름을 내걸은 식당 등을 찾아볼 수 있다. 반찬이 다양한 백반요리 등이 대표적이다. 이 때문인지 '끼니'를 빠지지 않고 챙기는 걸 굉장히 중요하게 여기는 경향이 있는데, 젊은 층은 덜하지만 중,노년층은 " 한번 빼먹은 끼니는 영원히 못 챙겨 먹는다 "[13] 라는 고정관념이 강해서 끼니를 놓치면 밤늦게라도 반드시 끼니를 챙겨 먹는다. 전북보다 전남지역이 이런 경향이 매우 강하며, 그래서인지 전남지역에 고령층 당뇨병 환자 비율이 높은 편이다. 게다가 전남출신 노인은 반드시 끼니는 챙겨 먹어야 되는 것으로 알고, 거른다는 건 도저히 있을 수 없는 일이기 때문에 식사량을 조절해야하는 환자임에도 불구하고 식사를 꼭 해야겠다고 고집을 부려서 병원이나 요양기관에서 직원들과 마찰이 잦은 편이기도 하다.

한국에서 A형의 비중이 가장 높은 곳이다. 한국에서 A형의 비중은 약 34% 정도인데 호남 지역은 평균 37% 정도에 이른다. 여담으로 전라도와 가장 인접한 제주도는 이와 정반대로 A형의 비중이 약 28% 정도로 한반도에서 제일 적고 B형의 비중이 약 33% 정도로 제일 높다. 혈액형 연구자에 따르면 정착 생활을 주로 하는 농경 사회에서 A형의 비중이 높은 경향을 보이는데 전라도가 전통적으로 농업이 발달한 것과 관련이 있을 수도 있다. 반대로 이동 생활을 주로 하는 기마 민족은 B형의 비중이 높은데 북한 지역이 이를 반영하듯 남한 지역보다 A형 비중이 적고 B형 비중이 높다. A형은 각각 남한 34%, 북한 31%. B형은 각각 남한 27%, 북한 30%. 농경민족은 항상 평화를 사랑하고, 기마민족은 항상 호전적이라는 것도 사실 선입견이다. 중국 한족(漢族)은 자신들은 농경민족이고 평화를 사랑한다면서도 한족이 세운 왕조가 주변 기마민족들을 오랑캐(夷) 취급하며 핍박한 역사가 있기도 하다.

5·16 군사정변 세력들이 자신들의 영향력을 공고히 하기 위해 숙군작업을 할 때 전라도 출신을 '하와이'라고 암호처럼 사용했다. 이밖에도 평안도, 함경도 출신은 각각 '텍사스', '알래스카'란 이름을 붙였으며 그 중에 핵심인 군내 함경도 출신 및 비주류 세력을 배제하기 위한 '알래스카 토벌작전'이란 암호명이 당시 세간에 알려져 회자되기도 했다. 해방 직후 주둔한 미 제24군단이 편의상 자신들이 익숙한 미국 지명으로 한국 지명을 대체해 쓰던 것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민간에서도 이런 식의 표현이 일정하게 통용되었는지 조정래의 <한강>에서도 전라도 사람을 '하와이'란 별칭으로 불렸다는 내용이 나온다.#

아래의 그림은 군사정권 집권 이전인 1958년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인 이진숙이 <팔도인 성격에 대한 선입관념>이라는 주제로 사상계에 게시한 자료로서, 755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내용이다. 755명 중에서 절반은 대학생, 절반은 군인이다. 이 조사에서 전라도의 이미지로 간사하다는 선입견 비중이 제일 높았다. 그렇지만 표본집단이 편의표본으로 이는 무작위 추출도 아니고, 표본집단이 모집단(대한민국)을 대표한다고 할 수 없다. 편의표본의 한 예가 1948년,1953년 킨제이 보고서이다. 물론 그 전에도 여러차례 오류는 증명됐고, 1990년 미국 인구조사국과 1991년 시카고 대학 조사에서도 킨제이 보고서 결과는 허구로 증명되었고, 단지 성이라는 영역에 대한 새로운 접근에 의미를 둔다고 했다. 그래도 킨제이 보고서는 긍정적인 도전이라는 평가라도 받지만 이진숙의 조사는 지역감정 부추기기 외 다른 의미는 없다. 그리고 이 연구 자체가 이중환의 택리지 내용을 "선입관념"이라며 이를 주제로 다루는 연구이다. 조선시대 당시로 치면 정치색이 강했고 이로 인해 몰락한 이중환의 개인적인 의견이 선입관념으로 포장된 것도 문제가 있다. 또한 택리지에는 전라도 뿐만 아닌 다른 지역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도 나와 있는데, 여기서 특정 지역 하나만 꼬집어 쓰는 건 공평한 처사가 아닐뿐더러 당장 아래 자료만 봐도 경상도에 대해서는 진실하다는 택리지의 평가가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폄하하였다. 택리지 저자 이중환은 몰락한 남인으로 같은 남인 지역인 경상도에 대해서는 호의적인 평가를 하였으므로 경상도에 대해서는 질문 자체 수위가 낮기도 했다.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 이진숙은 미 공군 산하 인적자원연구소(HRRI)에서 공산주의에 대한 심리전 프로젝트를 수행하던 전담팀에 협력한 한국인 25인 명단에 들어있던 사람으로, 미8군 심리전과와 육군본부 작전교육국에서 근무하기도 했다. 당시 전라도는 보수였으므로 이런 움직임과 상관없는 것 아니냐는 의견도 있지만, 해방 후 미 군정에 대한 반대, 남한 단독정부 수립은 영구적 남북분단 고착화로 이어질 수 있다는 우려와 좌우대립의 격화 속에 제주 4.3사건, 여순사건 그리고 이어지는 한국전쟁과 휴전 후, 친미 우익 편향의 분위기 속에 군사정권이 집권하게 되는 혼돈의 시대에 미군 심리전 프로젝트에 참여했던 사람이 행한 조사 내용을 순수한 학문적 목적으로만 보기에는 의심스러운 측면이 있다. 또한 보수의 주체도 시대에 따라 변한다. 박정희 前 대통령 부친 박성빈은 1892년 경북 성주에서 동학 접주로 활동했고, 이를 근거로 당시 박근혜 한나라당 대표가 ‘동학농민혁명 참여자 명예회복에 관한 법률’에 따라 혁명 참여자 신청과 유족회 가입을 했다. 당시 동학은 지금으로 치면 급진적인 진보로도 볼 수 있다.

파일:이진숙팔도인.jpg


파일:황상전라도.jpg

이러한 전라도의 지역성을 두고 부정적으로 본 선입견이 이중환의 택리지에 기록된 건, 조선 후기의 양반계층에 퍼졌다기 보다는, 이중환의 공직생활이 호남 출신의 유력 인사와 악연으로 얽혀 순탄치 않았기 때문으로 추정된다. 비슷한 시기에 쓰인 다른 인문지리서인 신증동국여지승람, 동국여지지 등에서는 이런 평가는 찾아볼 수 없다. 목호룡 사건에 연루되어 벼슬에서 물러나고, 처가인 목씨 일가도 남인으로 이인좌의 난에 연루되어 몰락하고, 끼니를 걱정해야 할 정도로 어려웠던 남인 강경파 이중환이 전라도와 평안도를 가보지는 못했다면서 풍수적으로 비판한건 객관성이 결여됐다고 하겠다. 호남 출신 선비 황상은 이("전라도의 풍속을 두고 세상에서는 속이고 경박하다고 하지만")에 대해 반박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택리지는 당시 인쇄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탓에 많은 이본(異本)들이 나왔는데 필사할 때마다 본인 마음에 안들면 글을 바꾸는 경우도 많았다. 사실 이중환이 직접 쓴 택리지 원본과 수정본은 전해지지 않고 있다.

또한 칭찬하거나 원만한 기록은 잊혀지고 자극적인 기록이 부각되는 것으로, 애초에 택리지에는 저자 이중환과 정치색이 같은 남인 지역인 경상도 빼고는 그다지 긍정적으로 인심을 기술하지도 않았다. 평안도 역시 택리지 복거총론 인심조에서는 좋은 평가를 하는듯 하면서도, 택리지 팔도총론에서는 폄훼한다. 택리지 발문에 참여한 이들도 친척인 성호 이익부터 해서 처가 식구들인 목성관, 목회경 죄다 남인 일색이다. 그 외 지역에 대한 평가로도 "평안도는 인심이 순후하며, 경상도는 풍속이 진실하고, 함경도는 굳세고 사나우며, 황해도는 사납고 모질며, 강원도는 어리석고, 경기도는 재물이 보잘것 없고, 충청도는 오로지 세도와 이재만 좇는다"고 했다. 평안도는 암행어사로 다녀온 여필희가 이적(夷狄), 금수(禽獸)라고까지 표현하여 평안도 전체가 들끓었던 적이 있고, 평안도에 대한 차별은 누적되어 홍경래의 난으로까지 이어졌는데 가보지도 못한 평안도에 대해서는 호평하다가 갑자기 악평을 하고, 또 역적으로 몰리까 두려워서인지 왕실의 관향인 전주는 한양과 다를 바가 없고, 기운이 맑다고 극찬하는 등 택리지는 이런저런 정치적 계산에서 자유롭지 못하다.

즉, 이런 지역품평이 비단 어느 특정 지역에만 국한되었을 것이라 보는 것 역시 옳지 않은 일이다. 맹자에는 항산항심(恒産恒心)이란 말이 있다. "경제 여건이 어느 정도 뒷받침되어야 비로소 좋은 인심을 기대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곳간에서 인심이 난다는 우리 속담과 유사한 말이다. 특히 조선 후기로 갈수록 이렇게 각박하게 다른 지역에 대한 악평이 두드러지는 건, 갈수록 극한 대립으로 사화가 빈번하게 일어났으며, 권력과 이에 부산된 재물들이 서울 4대문 안의 유력 세도 가문에 의해 독과점되고, 인사가 공평, 공정하게 이루어지지 않았다는 것을 시사하는 것이기도 하다.

또한 지역마다 정서적 차이가 있을 수 있다. 영남은 검소함이 미덕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이를 인색함으로 오해할 수도 있고, 호남은 베푸는게 미덕이지만 다른 지역에서는 이를 낭비와 사치스러움으로 오해할 수도 있다. 영남은 남인을 지지하지만, 호남은 동인 몰락 이후 정치에 크게 관심도 안보이고, 동인의 후신인 남인 편을 딱히 드는 것도 아니고, 전국에서 가장 많은 정자와 누각을 보유하고, 이런 곳들에서 풍류를 즐기는 모습이 학문도 안하고, 놀고 먹는다는 식의 호의적으로 보이지 않을 수도 있다. 그렇지만 국가가 위기에 처하면 가장 먼저 발벗고 나서는 곳이 전라도이기도 하다. 이순신 장군의 '호남 없이는 나라도 없다 (若無湖南 是無國家)’ 하지만 위의 말은 곡창지대로서 전라도가 의미가 있었다는 것이지 호남의 정신을 칭찬하는 말로 판단할 수 없다는 주장이 지배적이다. 애초에 대부분의 의병장과 의병은 영남 출신이고, 호남 지주들은 일본에 땅을 바치고 항복하기를 원했다.

'호남 없이는 나라도 없다. 약무호남 시무국가(若無湖南 是無國家)’ 글이야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이 구절은 이순신 장군이 전라좌수영 전라도 여수를 떠나 한산도로 군진을 옮기는 시점에 즈음하여 그 동안의 소회를 밝히며, 1593년 7월 16일에 친구인 사헌부 지평 현덕승에게 쓴 편지에 나오는 구절이다. 사적인 편지에 호남의 지정학적인 전략적 중요성을 언급하기보다는 정황상 그 동안 생사를 넘나들며 함께 지낸 호남 사람들에 대한 마음을 표현했다고 볼 수 있고, 나라가 백척간두의 위기에 처한 상황에서 그나마 지탱할 수 있었던 것은 호남이 있었기 때문이라는 의미로 보는게 타당하다고 하겠다. 또한 임진왜란 직전 정여립 사건으로 호남 유림이 와해되어 힘들었지만 결국 일어서니, 당시 서애 류성룡이 호랑이 장수가(범장) 나타나 든든하다고 하였던, '바다에는 이순신, 육지에는 선거이'라고 기록된 선거이(宣居怡)는 전라도 보성 출신이다. 예를 들어 임진왜란 전투 중에서도 대혈전으로 꼽히는 2차 진주성 전투에서는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 전라도 화순 출신, 충청도 병마절도사 황진(黃進) 전라도 남원 출신, 사령관 격인 김천일(金千鎰) 의병장 전라도 나주 출신, 형제 의병장 강희보, 강희열 전라도 광양 출신...등. 결국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최경회 전사, 황진 전사, 김천일 전사, 강희보 전사, 강희열 전사, 김천일 아들 김상건 전사, 고경명 아들 고종후 전사...임진왜란에서 영남 의병들도 활약했지만 호남 의병들도 그에 못지 않았으니, 2차 진주성 전투에서 왜군 10만명에 대적해 1만이 안되는 6,7천의 인원으로 싸웠고, 호남 의병은 3500명이 참전하여 3500명이 순절하였다.

조선조 정조는 전라도는 조선 팔도에서 가장 어질고 절개와 의리가 있는 고장이라며 ‘최명현절의지향(最名賢節義之鄕)’이라는 찬사의 글을 남기기도 하였다. 대동여지도를 제작한 김정호는 '전라도는 조선 팔도에서 가장 축복받은 땅'이라는 글을 남겼다. 택리지 이중환의 재종조부이자 몰락한 남인 가문 출신인 성호 이익의 학문을 사숙(私淑)하던 다산 정약용은 생애 초기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인 평을 남기기도 하였으나 훗날 전라도 강진에서 유배생활 후 그의 문집 '여유당전서'에서 '전라도사람들은 참으로 어질고 정(情)이 많은 사람들'이라는 평을 남겼으며, 나중에 돌아가서도 서신 등을 왕래하며 죽을 때까지 교류하였다.그렇다고 해서 정약용이 호남을 타 지역보다 높이 평가한 것은 아니다. 여유당전서에서 호남은 영남만큼의 질박함이 적어 이름난 가문이 나오지 못했다라고 했을 정도이다. 이는 정약용이 학문적으로 영향을 받은게 남인이고, 남인 세력이 강한 지역이 영남이기도 해서 생애 초기 그런 글을 남겼을 수 있다. 노론의 후손들은 100년이 지나서도 정약용의 저서는 보지 않는다고 할 정도이다. '여유당전서'는 다산 정약용이 남긴 500여 권의 저술을 집대성한 문집으로, 정약용 생애 초기 전라도에 대한 부정적인 언급과 생애 후기 전라도에 대한 긍정적인 언급이 둘 다 있다.

조선의 법은 명나라 대명률을 따랐는데 이에 의하면 도읍에서 먼 유배지일수록 무거운 처벌인데, 한양에서 경기도 정도로 귀양을 보내는건 가벼운 처벌이고, 제일 심한 귀양은 함경도 추운 고장으로 보내는 귀양으로 이건 고생하다 얼어 죽으라고 보내는 귀양이다. 한양에서 멀리 보내도 따뜻한 남쪽 지방 즉 전라도로 보내면 책 읽고 지내며 살만한 편으로 귀양을 어디로 보내는가를 보면 조정 분위기를 알 수 있다. 또 한가지는 절도, 그러니까 섬으로 보내는 귀양으로, 이는 죽일 생각은 없는데 한양하고 연결고리를 완전히 끊고 싶을 때 보내는 것이다. 일례로 백사 이항복의 유배지는 함경도 북청으로 정해지는데, 당시 남쪽이냐, 북쪽이냐를 지켜보던 서인 세력이 이항복의 유배지가 함경도 북청으로 정해지자 광해군과 서인이 척을 지는 계기가 되었다. 실제 백사 이항복은 함경도 북청에서 피를 토하며 고생하다 몇달만에 사망하였다.

한국 현대사에서 정치적 요인과 맞물려 일부 정치 공작 세력들에 의해, 끊임없이 부정적인 수식어가 붙어 수면 위로 떠오르는 지명이기도 하다. 이런 행위들이 발단된 1970년대가 이미 한참 지난 시점인데도, "전라도 출신들은 북한을 추종하고 반 정부투쟁이나 벌이고 있다."라는 식의 갈등 조장 문구들이 버젓이 돌아다니고 있다. 이런 흑색 선전 문구들은 적어도 80년대 ~ 초원복집 사건이 처진 90년대 초반 무렵까지는 건재했던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대에 활발히 활동한 MBC 앵커 신경민은 대학생이던 1970년대에 어느 여학생과 데이트를 하러 만난 자리에서 고향이 전라도라고 대답하자, "내 부모가 전라도 사람과는 연애도 하지 말라고 했다. 나는 전라도 사람과 사귀지 않겠다."라고 말하면서 당장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떠난 일을 겪었다고 한다.[14] 다작(多作)으로 유명한 강준만 전북대 교수가 1995년 11월에 출간한 인문 도서인 <전라도 죽이기>를 보면, 호남 지역에 대해 부정적인 정서가 얼마나 축적되었는지 잘 보여주는 사례들이 나온다. 어느 경상도 출신 독자는 강준만 교수더러 "내 자식들이 행여 전라도 출신 사람들한테 나쁜 일을 당할지 모르니, 나는 전라도 출신 사람들한테 무슨 좋은 일을 해주고 싶지 않다."라는 내용의 편지를 보냈고, 이에 강준만 교수는 그 독자한테 "정말 잔인하십니다!"라고 한탄하는 답장을 보내기도 했을 정도(...). 당시 그런 일들이 있었다 하더라도 정치적 신념이란 부자지간에도 의견이 갈리고, 또 정치적 신념이란 자신의 목숨도 걸 정도이니 이념대립이 극한 시대에 생긴 해프닝으로 보면 되겠다.

6. 정치

정치적으로는 전국에서 가장 강력한 민주당계 정당의 지지 기반이다. TK, 즉 대구 및 경상북도 권역과 반대에 위치해 있다. 정치 성향의 정도는 3개 광역자치단체가 대체로 비슷하지만 굳이 따지면 5.18 민주화운동의 중심지였던 광주광역시가 가장 강하고 그 다음이 전라남도, 전라북도 순이다. 정치 성향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각각 광주광역시/정치, 전라북도/정치, 전라남도/정치에 나와있다. 특히 광주광역시/정치 문서는 호남의 현대 정치사를 압축하여 서술되어 있고, 전주시/정치 문서는 전북권의 정치사가 압축 서술되어 있다.

민주당계 정당이 분열되어 있으면 전라도에서 어느 쪽을 지지하느냐가 관심사가 되는데, 민주당과 열린우리당으로 분당된 2006년 제4회 전국동시지방선거에서는 전북도지사는 열린우리당, 전남도지사와 광주시장은 민주당이 가져갔다. 새정치민주연합 분당으로 더불어민주당국민의당이 등장한 후 전라도는 2016년 20대 총선에서 국민의당에게 많은 지지를 몰아줬으나, 이후 2017년 19대 대선에서는 민주당의 문재인 후보의 손을 들어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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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금산군은 1895년 23부제 실시 때 잠시 공주부에 편입되었다가 이듬해 다시 전라북도로 편입되었고, 1963년 충청남도에 편입되었다.[2] 세부적으로 따지면 경계선은 조금씩은 차이가 있다.[자료] 수도권 약 419만 → 약 2545만(약 2126만 증가), 강원도 약 114만 → 약 155만(약 41만 증가), 충북 약 115만 → 약 158만(약 43만 증가), 대전•세종•충남 약 203만 → 약 379만(약 176만 증가), 대경권 약 320만 → 약 519만(약 199만 증가), 동남권 약 313만 → 약 805만(약 492만 증가), 제주도 약 25만 → 약 62만(약 37만 증가)[4] 기축년 10월부터 이때에 이르기까지 20개월 사이에 죽은 자가 수백 명이나 되었는데, 조신(朝臣)·명관(名官) 중에 죽은 자가 10여 인이었으며#[5] 해방 이후 1946년 제주도(현 제주특별자치도)로 분리되기 전까지 전라도(1896년 이후 전라남도)에 속해 있었다.[6] 문자 그대로 '이 편안히 쉬는 곳'으로도 읽힐 수 있다.[7] 1963년 충청남도로 편입되기 전까지 전라도(1896년 이후에는 전라북도)에 속해 있었다.[8] 여기에서는 '모든 고을의 백성을 거느린다'는 의미로도 읽힐 수 있다.[9] 바다가 가까워서 해산물을 많이 이용한다.[10] 그런데 댓글 반응을 보면 “그런거 모르겠고 그냥 맛있던데?”가 압도적이다.... 거기다 황교익이 한 말이다 보니 신뢰도도[11] 특히 새끼 돼지를 재료로 한 애저나 푹 발효시킨 삭힌 홍어 등이 아주 매니악한(...) 인기가 있다.[12] 반대로 경상도 지역은 유명한 씨름, 유도 선수들이 많이 나온다.[13]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오늘 날짜에 먹을 끼니를 놓치면 한번 지나간 날짜는 다시 돌아오지 못하니까 다시는 못 먹으니.[14] 출처: 신경민의 개념사회/ 신경민 지음/ 메디치미디어/ 2012-02-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