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19-09-08 14:03:08

실향민

失鄕民 / Refugee
1. 개요2. 국내 실향민 및 2세 실존인물3. 관련사항4. 실향민 캐릭터
4.1. 가상 세계관의 실향민 캐릭터
5. 외국의 실향민6. 외국의 실향민 실존인물
6.1. 중국6.2. 일본6.3. 프랑스6.4. 독일6.5. 폴란드6.6. 터키

1. 개요

고향을 잃은 사람. 대표적으로 실향민이라고 하면 대한민국에서는 주로 6.25 전쟁 기간 동안 월남한 이북 출신들을 지칭하는 말이며, 그 외에도 건설로 고향지역이 물에 잠겨 갈 수 없게 되었거나[1] 정태춘처럼 이런저런 시설물(대표적으로, 대추리 평택미군기지)을 짓는 과정에서 고향이 철거돼버린 사람도 실향민이라고 할 수 있다. 단순히 이사이민 또는 국적변경을 한 사람은 언제든 다시 고향에 돌아갈 수 있는 경우 실향민이 아니다. 물론 도중에 전쟁이나 재난으로 고향으로 절대 못 돌아가면 실향민이 되겠지만 말이다. 실제로 많은 이북 출신 실향민들은 한국전쟁 이후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다고 믿었었다. 이 문서에서는 주로 이북 출신 실향민들에 대해 다룬다.

전쟁 이후에 산발적으로 북한에서 나온 새터민들도 고향을 떠나 다시 가지 못하는 신세라는 점에서는 위에서 정의한 실향민과 동일하나, 대개 고향에 대한 그리움보다는 북한에 대한 반감이 먼저 나타나는 경우가 더 많기에 실향민과 동일시하는 것은 무리이다. 물론 증오하는 것은 어디까지나 김정은을 위시로 한 조선로동당 북한 정권이기에 고향 지역 자체는 그리워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반공학생운동기념사업회에서 출간한 한국 학생건국 운동사(1986년에 출간)에 의하면 월남한 청년들(실향민)은 백색테러단에 많이 참가하여 테러단의 지원과 지시로 북한에 원정테러를 많이 하러 갔다고 한다. 이들이 이 단체에 많이 참가한 이유는 자신들의 고향을 뺏어간 북한정권에 대한 분노와 테러단 지도부의 교육도 있지만, 무엇보다도 기회가 되면 고향에 한 번 다녀올 수 있었기 때문이다.

본래 실향민이라는 단어가 한반도에서 사용된 것은 1945년 남북분단 이후로 알려졌지만 사실은 1910년 한일병합 이후 일제조선 양민들의 토지와 가옥 등을 모두 친일반민족행위자매국노 성향의 조선인 대지주들과 일본인들에게 넘겨버렸거나 조선총독부가 총독령 명의로 소유화하는 바람에 졸지에 고향을 잃고 만주중국 등으로 월경하여 피난을 떠나거나 떠돌이 신세를 졌던 것을 계기로 사용되었던 것으로 알려졌고 해방 후인 1945년 남북분단이 되고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였을 때 북한을 탈출하여[2] 남한으로 넘어오게 된 북한 출신의 사람들이 밀집하게 되고 1953년 휴전 성립이 되어서 더 이상 북에 있는 고향에 갈 수 없게 되면서 이 때부터 실향민이라는 말이 본격적으로 사용되었다.

실향민의 출신을 살펴보면, 황해도[3]가 35%로 가장 많고, 함경북도계가 가장 적다. 남측으로 넘어오기 쉬운 남쪽 지역에 많이 분포한다. 반대로 탈북자는 함경북도계가 압도적으로 가장 많고 황해도계와 강원도계가 극소수이다. 다만 이산가족의 경우 평안도계와 함경도계가 비교적 많은데, 남한과 가까운 황해도계 실향민들은 가족단위로 온 사람들이 많았으나 평안도계와 함경도계 실향민들은 혼자 월남하거나 가족들 중 일부만 월남한 사람들이 많았다. 전쟁 이전에 월남한 사람들은 주로 도시 지역에 정착했고, 전쟁 이후에 월남한 사람들은 군 지역에도 많이 정착했다는 통계가 있다. 경상도강원도, 충청북도에 많이 정착을 한 반면 전라도충청남도에서는 극소수이다. 또, 실향민 2세를 대상으로 자신의 고향을 물으면 어떻게 대답하겠느냐는 설문에 응답자의 46%가 '자신이 태어난 남한의 고향을 말한 뒤 이북계라고 말한다.'라고 응답하였고, 응답자의 42%가 '아버지의 고향은 곧 나의 고향이므로 바로 북한의 지명을 말한다.'라고 응답하여 실향민 2세들의 계승의식이 강력하다는 것을 보여줬다. 다만, 3세로 가면 전자는 몰라도 후자의 비율이 급감하는데, 10대~30대에 해당하는 3세들은 바로 북한의 지명을 말했다간 탈북자로 오해받기 쉬운지라 조부모의 고향에 대한 강력한 프라이드가 없으면 그냥 남한의 출생지를 말한다.[4] 그런 사람이 아예 없진 않지만, 2세들에 비해 찾기가 힘들다.[5] 하지만 옹진군은 다르지. 그냥 옹진 출신이에요라고 어물쩍 넘기기만 하면 남한의 인천광역시 옹진인 줄 알거든 알고보니

사실 실향민이라고하면 대놓고 빨갱이 라고 차별받거나 오해를 받을 수 있지만 오히려 가족과 이별하고 고향을 떠나게 만든 북한 정권과 공산주의에 대한 적개심과 증오감이 남한 본토 출신 사람들보다 많거나 더 심한 경우가 많다. 실향민이 엄청나게 많은 관계로 실향민이면서 정부요직을 맡은 사람들도 엄청나게 많다. 당장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부터가 황해도 출신이고 빨갱이 때려잡는사실상 잡으라는 빨갱이보다 신민당과 국민들 때려잡기 바쁜-최장기 중정부장을 역임한 김형욱도 실향민 출신이며 한국전쟁 초기에 군을 지휘한 채병덕어째 죄다 역사의 오점을 남긴 사람들이..., 베트남 전쟁 당시 당시 파월 국군 사령관을 역임했던 채명신 역시 실향민 출신이다. 한국전쟁 이후부터 국민의 정부까지 실향민 중 정부요직에 오른 사람이 많이 있었다. 대표적으로 제24대 국정원장 임동원 등이 있다.

사실 젊은 세대들이 고향을 남한 쪽의 고향으로 말하는게 당연하다. 일단 실향민 3세대가 되면 조부모 양쪽이 다 실향민일 가능성도 별로 없고 이미 그 실향민이었다는 조부모들도 남한에서 더 오래 살았을 마당에 자신의 조부모가 한국전쟁때 피난민이었다는 정도만 인식할 뿐이다.

실향민의 출생연도가 20세기 초반 및 중반이기에 지금은 돌아가셨거나 나이가 매우 고령이신 분들이 많다. 그래서 대한민국 정부 측에서 북한에게 매달리는 것 중 하나가 바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인데, 이는 우리쪽에 있는 실향민들의 나이가 매우 고령이고, 이들의 죽음은 이산가족 상봉이라는 남북한 연결 매개체를 아예 단절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향민들은 1.4 후퇴 때 가장 많이 남한 쪽으로 넘어왔다. 걔 중 많은 이들이 지금의 부산경상남도에 정착하였다. 한국전쟁 이후 부산은 기존 인구와 더불어 실향민 인구를 갖고 폭풍적으로 성장하여 경상도 제 1의 도시가 되었다. 또한 인천에도 적지 않은 수의 실향민들이 피란 및 정착하였다. 부산이 북한의 다양한 지방에서 내려온 실향민들이 많았다면, 인천은 특이하게 황해도 출신의 실향민들이 유독 많이 내려왔는데 이는 지리적으로 매우 가까웠기 때문이다. 실제로 강화도교동도황해남도 개풍군연안군과 매우 근접하며, 육안으로도 상대방이 매우 잘 보이는 지형이다.

한반도 실향민의 대표적 마을이나 지역으로는 주로 최북단(경기도 및 강원도 북부) 지역 등에 집중되어 있으며 강원도 속초시 청호동에 함경도 출신 실향민 집단촌인 아바이마을이 있다.[6] 그 외에는 포로수용소가 있었던 경남 지역에 주로 분포하는데, 부산이나 창원 등지에는 '해방촌'이라는 이름이 붙은 동네가 한두 군데씩 꼭 있으며 이북식 정통 냉면을 하는 가게도 도시마다 찾아볼 수 있을 정도.

2. 국내 실향민 및 2세 실존인물

실향민/대한민국 문서로.

실향민에 대해 알고 싶으면 오도민신문5도민신문을 참조.

3. 관련사항

4. 실향민 캐릭터

4.1. 가상 세계관의 실향민 캐릭터

5. 외국의 실향민

20세기는 실향의 시대라 할 만큼 실향민들이 많이 발생했으며, 아래의 사례들은 일부에 불과하다.

독일, 베트남, 예멘의 경우 분단을 청산하고 통일이 완수되면서 자국 영토 내에서는 실향민이 고향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다.

다만 독일의 경우 동서독 분단으로 인한 실향민보다는 제1,2차 세계 대전 당시 영토 상실로 인해 독일 본국으로 추방당한 실향민들이 훨씬 많았는데, 알자스-로렌, 동프로이센, 슐레지엔, 포메른, 포젠 등 구 독일 영토가 2차 대전 종전 이후 폴란드와 프랑스, 소련의 영토로 넘어가면서 연합국이 독일계 거주민들을 대부분을 추방했기 때문이다.[21] 이러한 추방당한 원주민들의 수는 800만이며, 전쟁 중간에 소련군을 피해서 독일 본국으로 도망친 피난민들의 수까지 합치면 무려 1500만명에 이른다.[22]

마찬가지로 폴란드에도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소련에게 넘어간 구 동방영토 출신 실향민들이 존재한다. 이들은 대부분 구 독일령이었다가 제2차 대전 전 후 폴란드에 넘어간 영토에 정착한 경우가 많다.

루마니아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불가리아에 영유권이 넘어간 베사라비아[23]와 북부코비나,[24] 남도브루자[25] 등 과거 루마니아 왕국 시절 구 루마니아령 지역에서 태어난 루마니아인 실향민과 그 후손들이 존재한다.

세르비아 역시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전쟁으로 유고슬라비아 연방이 해체되는 과정에서 크로아티아와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에서 크로아티아군과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 군에게 쫓겨나와 세르비아 본국으로 피난을 간 세르비아계 실향민들과 그 후손들이 있다. 게다가 심지어 이들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나치 독일/이탈리아 왕국 등 추축국의 유고 점령기에 크로아티아의 우스타샤와 보스니아의 SS 한트샤르 여단에게도 학살당한 이력이 있다. 그러나 다만 이들은 유고 내전 당시에도 보스니아계 무슬림 집단들에 대한 인종청소 등 학살을 자행하던 이력이 있었기에 본가인 세르비아의 일부 극우파들을 제외하면 큰 동정은 받지 못한다.하지만 보스니아와 크로아티아 입장에서는 이 놈들이 죄다 세르비아로 쫓겨난 것에 속 후련하다고 느낄거다.

제1차 중동전쟁을 거치며 발생한 팔레스타인의 실향민 문제는 현재진행형이며, 시리아, 요르단, 레바논 등 이웃 국가들에서도 팔레스타인인 난민촌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다. 요르단 같은 경우는 팔레스타인 실향민이 토착 요르단 아랍인보다 더 많을 지경이 되었다.(...)

그리스터키의 경우에도 1923년 인구 교환으로 막대한 실향민이 존재한다. 특히 터키에서 그리스로 교환되어온 그리스계들은 자신들이 살던 지역 이름을 따서 새로운 마을을 건설하는 경우가 많았다. 예를 들면 아테네 인근의 네아(새로운)스미르니 같은 경우. 테살로니키의 축구팀인 PAOK FC도 정식 명칭에 콘스탄티노플이 들어가는데, 원래 뿌리가 이스탄불의 그리스인 축구팀이기 때문이다.

키프로스는 터키계의 북부와 그리스계의 남부가 분단 상태를 유지하는 곳인지라 섬 내부에도 그리스계와 터키계 주민 간 실향민들이 존재한다. 터키군의 침공으로 분단되기 전 원래는 그리스계와 터키계가 북부와 남부 여러 곳에서 살았는데 전쟁으로 분단이 되면서 북부 지역에서 살던 그리스계 주민들이 터키군과 터키계 키프로스인 민병대들에 의해 대거 남쪽으로 추방당하고, 섬 남부 지역에서 살던 터키계 주민들이 그리스계에 의해 추방당하면서 북부와 남부 간 인종 비율이 바뀌어버렸다.

대만에서는 실향민들을 외성인이라고 한다. 중국 대륙에도 타이완 성 출신인 사람들 일부가 실향민으로 살고 있지만 그 수가 극히 적고, 더구나 중국의 인구가 워낙 많다보니 존재감이 없다.(..) 이 양측의 경우는 상대측이 평양의 공산정권마냥 말이 안 통하는 천하의 개쌍놈 꼴통집단이 아닌지라 1980년대 말 이후로는 통행이 상대적으로 자유로워졌다.

일본의 경우는 과거 일본 제국 시대에 제국주의적 정복으로 얻은 영토[26]에서 태어났다가 나몰라라 먹튀 뒤통수 쓰리콤보를 맞고 현지에서 죽을 고생을 해가며 쇼생크 탈출을 찍고 간신히 귀국한 사람들이 실향민으로 있다. 이런 사람들을 히키아게샤라고 한다. 외지에서 인양된 사람들이라서(...) 사람이 무슨 침몰선이냐 가라후토(사할린)과 치시마(쿠릴)에서 꼽사리로(...) 함께 일본으로 쫓겨난 아이누족의 경우도 있다. 하지만 독일을 제외한 위의 경우와 달리 제국주의 정복으로 빼앗은 땅에서 태어났다가 쫒겨난 것이기 때문에 일반적인 실향민의 경우와는 달리 그다지 동정대상이 되지는 못하고 있다. 근데 본토 일본인들도 이런식으로 그들을 차별하여 사회문제가 되었었다고 한다.[27]

프랑스에도 피에 누아르라는 프랑스판 히키아게샤들이 존재하는데 이들은 과거 식민시절 알제리로 건너가 그곳에서 터를 잡고 오랫동안 특권층으로 군림하였으나 알제리 전쟁 이후 토지와 재산 등을 잃고 프랑스로 도망쳐와야 했던 자들로 이들 역시 침략으로 남에게서 빼앗은 땅에서 태어났다가 쫓겨난 경우이기에 동정의 가치는 없다.알제리인들은 이놈들 쫓겨난거 보고 기뻐할듯하다.[28]

앙골라, 르완다, 나이지리아, 소말리아, 모잠비크, 시에라리온, 라이베리아 등 한때 내전을 치뤘거나 내전 중인 아프리카 국가들에서 내전으로 개판이 된 조국과 살던 고향이 전쟁터가 되어 고향을 떠난 아프리카 나라들의 난민 또한 실향민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2011년부터 현재까지 진행중인 시리아 내전의 시리아 주민들이 국제적으로 잘 알려진 실향민이라고 볼 수 있다. 이들 중 많은 이들은 죽고 다치거나 피난 도중 팔려가는 등 모진 수모를 당했다. 오직 소수의 시리아 주민만이 서유럽에 도착하여 그들의 정착지를 찾는다. 시리아 사람들이 만약 자신들의 고향으로 돌아가고 싶다면 할 수 있으나, ISIS, 쿠르드 민병대, 미군, 러시아군 및 이란군 또 최근에는 터키군까지 개입된 가운데 그러한 생지옥으로 돌아가고 싶은 사람은 없을 것이다. 돌아가고 싶어도 돌아갈 수 없는 그러한 상황이기에 이들 또한 실향민이다. 다만 2016년 이후 최근에는 러시아의 지원을 받은 시리아 정부군이 반군과 IS들을 대거 토벌하면서 정세가시리아 정부군에게 유리해졌다.

그밖에 미군 기지가 들어서면서 강제로 축출된 차고스 제도의 원주민이나 핵실험장이 들어선 비키니 섬, 에니웨톡 섬의 원주민들, 이전부터 살던 영토에서 백인 이주민들과 유럽에서 독립한 아메리카 각국 정부의 영토 확장 정책에 내밀려 원주민 보호구역으로 강제 소개된 미국, 캐나다, 칠레, 아르헨티나 등 북남아메리카 국가들의 아메리카 원주민들 그리고 2011년 후쿠시마 원전 유출 사고 당시 방사능 유출로 방사능 오염된 후쿠시마 지역을 떠나 큐슈, 시코쿠, 혼슈 남부, 홋카이도 등 일본 여타 지역으로 이사를 간 후쿠시마 출신 일본인들[29]도 실향민이라 할 수 있다.

6. 외국의 실향민 실존인물

6.1. 중국

6.2. 일본

6.3. 프랑스

6.4. 독일

6.5. 폴란드

6.6. 터키


[1] 코미디언 임하룡이 대표적이다. 남북분단 실향민들은 남북교류나 통일이 되면 다시 가볼 수 있다는 여지라도 남아있지만 이 쪽은 그것마저도 없어졌으니 어떻게 보면 남북분단 실향민보다 더 안습한 사례.[2] 일부는 정권이 싫어서라기보다는 전쟁을 피해 이리저리 옮기다 보니 남한으로 오게 된 경우도 있다.[3] 대표적으로 해주와 같은 서울과 가까운 지역이다.[4] 그러나 그렇다고 실향민 집안의 사람들에게 "북한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 식의 질문은 하지 않는 것이 좋다.물론 그렇다고 이들이 다 보수정당을 옹호하는 것도 아니니 정치 성향도 물어보는 것도 무리 가뜩이나 조부모 내지 부모한테 "고향땅 못가게 만든" 북한에 대한 각종 원망-증오-분노에 가까운 발언들을 들어온 이상 당연히 좋은 반응이 나오지 않는 것은 당연한 것. 실향민 집안들의 정통주의가 센 집안은 명절에도 이북식으로 조반상을 차린다. 떡국대신 만두국 혹은 온면/냉면류로 명절음식을 낸다고 이야기 하는 집안이 있다면 거의 그쪽 집안이니 참고하는 것이 좋다.[5] 그리고 보통 그렇게 대답하는 3세들은 실향민 정통주의에 심취해있는 경우가 많고 자신의 남한 생활을 조부모의 피난 생활의 연장선상으로 간주한다. 뭐, 다 그렇다는 건 아니니 그런 사람 만나더라도 괜히 편견 가지고 대하다가 오해 사지 말자.[6] 속초에 가면 오징어를 피로 싼 순대를 많이 보는데, 이러한 오징어순대는 원래 함경도 토속 음식이다.[7] 수도였던 헬리시움[8] 마오카이가 태어난 뒤틀린 숲은 원래 자운 근처의 리그 경기가 벌어지는 오염된 숲이었으나, 이후 그림자 군도 패치로 그림자 군도에 있는 숲으로 설정이 변경되었다.[9] 올드 시즌에서는 단순히 원수 그 이상이나 이하도 아니였지만, 뉴 시즌에선 둘 다 고향인 갈리프레이를 상실했다는 점을 공유하면서 닥터가 마스터를 미워하면서도 동정하게 되었다.[10] 원래는 사자자리의 눈동자에 해당되는 L-77성의 울트라 일족의 왕자 형제였으나, 사벨폭군 마그마 성인과 그의 수하 괴수인 기라스 형제에 의해 고향이 멸망했다.[11] 드레나이는 원래 에레다르라는 종족으로 모성은 아르거스였지만 드레나이의 전신이라 할 수 있는 예언자 벨렌의 지도 아래 아르거스를 탈출한 에레다르들을 제외한 대부분이 타락하여 만아리 에레다르라는 악마가 되어버린 동시에 아르거스가 불타는 군단의 모성이 되어버렸다.[12] 두 종족 모두 대격변에 추가되었다.[13] 저그의 침공으로 아이어가 털렸다. 아이어는 저그 손에 있지만 칼날 여왕이 아닌 아몬의 통제 아래에 있었고 공허의 유산 시점 이후 프로토스가 탈환하는 데 성공했다.[스포일러] 하지만 네라짐, 특히 젊은 네라짐들의 고향인 샤쿠라스를 잃었다[15] 지구 집정 연합의 전신으로 지구 집정 연합과 체제가 동일하다.[16] 다만 코프룰루 구역 정착민 2세대와 그들의 후손인 현 테란의 경우 태어날 때부터 코프룰루 구역에 거주하고 있는데다가 지구는 고향이 아니기 때문에 해당사항이 없다.[17] 태사다르가 차우 사라의 정화를 해 버리면서 생명이 살 수 없는 땅이 되어버렸다. 공허의 유산 에필로그 이후 시점인 스타크래프트 에볼루션에서도 이끼 정도만 자라고 있으며, 차우 사라 실향민 모임이 있는 묘사가 있다.[18] 원래는 사망했으나 감염으로 부활하면서 지구로 돌아갈 수 없게 되었다. 지구로 돌아가서 돌연변이 생명체로 비참하게 살 바에 저그로서 사는게 꽤 나을 것이다. 스투코프 본인도 지구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했고[19] 디아블로 2에서 세계석이 파괴되어 아리앗 산이 붕괴당한 이후.[20] 쿠라스트가 증오의 군주 메피스토의 영향에 의해 몰락당한 이후.[21] 2차대전 발발의 구실이 1차대전 종전 이후 폴란드에게로 넘어간 구 독일 제국 영토로 인한 분쟁이었다는 점을 내세워 연합군 측이 일부러 독일계 주민들을 추방시켰다.[22] 그나마 동서독 분단으로 인한 독일의 실향민 세대들은 1990년 독일이 통일이 되면서 자기가 태어난 구 동서독 지역의 고향으로 되돌아가거나 동서 분단으로 잃어버린 재산이나 집, 호적을 어느 정도 되찾기라도 했었다.[23] 각각 해안 지역은 우크라이나에 편입되었고 내륙 지역은 몰도바라는 소연방의 공화국에 재편되어 내륙 지역은 1991년 소련이 해체될 때 몰도바로 독립했다.[24] 1991년에 소련 해체 이후 우크라이나 영토가 되었다.[25] 다만 여기는 역사적으로도 원래 불가리아 영토였었다.[26] 가라후토(樺太) 청 관할지 출신이나 만주국 출신, 일제 치하 조선 출신, 대만 출신 등등[27] 일본 본토에 있던 일본인들이 일본 본토로 쫓겨난 히키아게샤들을 차별한 것은 히키아게샤들이 애초에 식민지로 이주되기 전에 일본 본토에서 빈곤층이자 하층민(여기서 말하는 하층민은 일본의 피차별 계층이자 일본판 천민계급인 부라쿠민을 가리키는 것이 아니라 경제적 지위가 낮은 사람을 의미한다.)이었던 것의 영향이 큰 것도 있다.[28] 일례로 피에 누아르 중 대표적인 인물인 카뮈의 연구에 참여한 김화영 교수는 알제리에 가서 카뮈에 대한 흔적이 철저하게 없어진 것을 아쉬워하면서도 그가 보여준 알제리에 대한 인식을 똑같이 식민지를 겪은 한국인으로선 받아줄 수 없다고 선을 그은 바 있다고 하였다(김화영, 《알제리 기행》 참고).[29] 물론 위의 사례들보다는 자발적이긴 하다.[30] 해당 항목을 보면 알겠지만 원래 연고는 타이난이다. 아버지가 시안에 머물렀을 때 태어난 것.[31] 구벤의 경우는 나이세강을 끼고 있던 도시로, 제2차 세계대전 이후 강 동쪽에 있는 절반이 폴란드에 귀속되었는데 하필 피크는 강 동쪽 출신이었다. 한편 동독 시절 (서부)구벤은 빌헬름 피크의 도시 구벤(Wilhelm-Pieck-Stadt Guben)이라 불렸다.[32] 게르트루트는 1994년에 오빠 호네커가 사망한지 수년 뒤인 2010년에 노환으로 사망하였다.[33] 現 우크라이나 리비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