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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cd0000><colcolor=#fff> Savoie 사부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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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정 | |||||
국가 | 프랑스 | ||||
레지옹 | 오베르뉴론알프 | ||||
INSEE 코드 | 73 | ||||
중심도시 | 샹베리 | ||||
인문지리 | |||||
면적 | 6,028㎢ | ||||
인구 | 439,750명 (2020년) | ||||
인구밀도 | 73명/㎢ | ||||
하위 행정구역 | |||||
아롱디스망 | 3개 | ||||
선거구 | 4개 | ||||
캉통 | 19개 | ||||
앵테르코뮌 | 17개 | ||||
코뮌 | 273개 | ||||
정치 | |||||
의회 의장 | 에르베 게마르( ) | ||||
의회 | 34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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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알프스산맥 서부 현 프랑스의 사부아(Savoie) 주와 오트사부아(Haute-Savoie) 주에 해당하는 지역. 주요 도시로는 샹베리(Chambéry)와 안시(Annecy)가 있다. 에비앙으로 유명한 에비앙레뱅(Évian-les-Bains), 1924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샤모니몽블랑(Chamonix-Mont-Blanc), 1992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알베르빌(Albertville)은 오트사부아에 속한 마을이다.2. 언어별 표기
프랑스어 | Savoie (사부아) |
이탈리아어 | Savoia (사보이아) |
프랑코프로방스어 | Savouè (사부에) |
독일어 | Savoyen (자포이엔) |
영어 | Savoy (사보이) |
한국에서는 프랑스어인 사부아보다는 영어에서 유래한 사보이(Savoy)로 더 잘 알려져 있었다. 그래서 과거에는 사보이아 공국도 사보이 공국, 사보이아 가문도 사보이 왕조로 불렀으나 현재는 원어 표기를 존중해 사보이보다는 사부아, 사보이아로 더 많이 불리고 있다.
3. 역사
원래는 현재 이탈리아의 발레다오스타와 더불어 사보이아 가문이 800여년간 대대로 세습해온 영토였으나, 이탈리아 통일의 일환으로 1860년 3월 24일 토리노 조약을 체결하여 사르데냐-피에몬테 왕국이 중앙이탈리아 연합주를 합병하는 대신 프랑스 제2제국에 니차(Nizza)와 이 지방(오트사부아 포함)을 할양하면서, 각각 현재 프랑스 공화국의 알프마리팀 주와 사부아 지역이 되었다.이탈리아 왕국은 이 지역을 잃은 것을 두고두고 아쉬워 하였고[1], 제2차 세계 대전 당시 베니토 무솔리니는 프랑스를 침공하여 사부아를 이탈리아의 행정구역으로 재합병하려 했다. 하지만 1943년 9월 나치 독일이 사부아를 점령하면서 실패로 끝났고, 전후 프랑스로 반환되었다.[2]
4. 행정구역
사부아는 알베르빌(Albertville), 샹베리(Chambéry), 생장드모리엔(Saint-Jean-de-Maurienne) 아롱디스망으로 나뉘며, 다시 19개의 캉통, 273개의 코뮌으로 구성된다.5. 정치
오베르뉴론알프 레지옹 의회의 전체 의석 204석 중 사부아에 할당된 의석은 11석이다.6. 기타
주의 문장이 이탈리아의 피에몬테의 문장과 비슷한데, 두 지역 모두 오랜 세월 동안 사보이아 가문의 지배를 받았다는 점을 고려하면 놀라운 사실은 아니다.과거 사보이아 공국 시절 카를로 에마누엘레 2세는 이 지역의 이름을 따 사보이아 기병연대를 창설했다. 당시 사보이아 공국을 구성하던 지역들인 사보이아, 피에몬테, 몬페라토, 살루초 등의 이름을 따 총 5개의 부대를 창설했다. 정식 명칭은 사보이아 제3기병연대(Reggimento "Savoia Cavalleria"[3º])로 사보이아가 프랑스로 할양된 이후에도 왕실의 유래가 된 지역이라 이름을 그대로 유지했다. 막장이었던 이탈리아 왕국군 내에서도 손꼽히는 정예 부대였다. 독소전쟁 때 독일 국방군을 지원하여 파견을 나가 소련군을 상대로 기병 돌격을 해서 격퇴하는 전공을 세우기도 했다.
세계 각지에는 사보이의 이름을 딴 호텔이 여럿 있는데, 영국 런던 스트랜드 구역의 사보이 호텔(Savoy Hotel)[3] 이 가장 유명하다 할 수 있으며, 대부분 이 런던 사보이 호텔의 유명세에 기댄 것들이라 볼 수 있다. 한국에도 서울[4], 대구 등에 사보이 호텔이 있으며, 대한민국 경상남도 창원시 마산합포구(구 마산시) 창원 NC 파크 야구장 옆에도 '사보이 호텔'이란 호텔이 있다. 구 마산시에서 셋밖에 없던 호텔급 숙소였는데, 이 호텔은 위치가 야구장 바로 옆인 덕에 NC 다이노스 선수단 및 마산야구장에 원정 온 팀 선수단이 숙소로 자주 이용했으며, 한창 에릭 테임즈가 KBO를 씹어먹고 다닐 때 호텔 지하에는 테임즈 이름을 딴 '템즈 노래방'까지 있었다(현재는 폐업).
[1] 카밀로 카보우르는 나중에 회고록에서 '인생 최악의 순간이었다.'라고 남겼고, 비토리오 에마누엘레 2세도 조상들의 본관을 넘기는 것을 주저하였다. 당시 사르데냐 왕국의 국방장관 만프레도 판티는 수도 토리노에 맞닿아 있는 완충 지대가 사라져 프랑스 위협에 직접적으로 노출되어 안보상 우려가 생길 것을 경고하기도 했다. 그래서인지 오스트리아와의 전쟁에서 프랑스가 단독강화를 하자 이탈리아는 상하를 가리지 않고 어떻게 우리를 이렇게 헌신짝 버리듯 할 수 있느냐며 격분했다.[2] 반환에서 끝나지 않고 1947년 체결된 파리 조약에 따라 이탈리아는 프랑스에 소 베르나르 고개와 몽스니 고개 일대를 추가로 할양하였고 오늘날 프랑스-이탈리아 국경이 완성되었다.[3] 과거 사보이아 백국의 피에트로 2세가 사보이아 백작이 되기 전 조카인 프로방스의 엘레오노르를 위해 잉글랜드 왕국 헨리 3세 휘하에서 활약한 적이 있었는데 헨리 3세는 피에트로 2세의 공헌을 치하하며 스트랜드와 템스강 사이의 땅을 주었고 피에트로 2세는 여기에 사보이 궁전(Savoy Palace)을 지었다. 피에트로 2세는 조카 보니파초가 전사한 후 사보이아 백작이 되어 런던을 떠난 후에도 궁전은 남았으나 와트 타일러의 난으로 불에 타 사라졌고 헨리 7세에 의해 그 터에 병원이 세워졌다. 이 병원은 19세기까지 남았다가 1864년 화재로 불탔는데 이 자리에 들어선 건물이 바로 사보이 호텔이다.[4] 그 유명한 신상사파가 조양은의 기습공격을 받은 사보이 호텔 습격사건이 여기서 일어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