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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lbgcolor=#2282b9><colcolor=#ffffff> 김동건 金東鍵|Kim Dong-geon | |
출생 | 1938년 11월 25일[1] ([age(1938-11-25)]세) |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면 (현 황해북도 사리원시) | |
가족 | 배우자 김영진 장남 김주형 장녀 김자영 |
학력 | 서울수송초등학교 (전학)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 (졸업) 경기중학교 (졸업) 경기고등학교 (졸업 / 54회)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육학[2] 58[3] / 학사) |
현직 | 프리랜서 아나운서 가요무대 MC |
경력 | DBS 아나운서 (공채 / 1기) TBC 아나운서 KBS 아나운서 KBS TV본부 국장대우 방송위원 연세대학교 농구후원회 회장 한국아나운서클럽 부회장 삼천리 사외이사 여성유권자연맹 홍보대사 한국아나운서클럽 회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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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어느덧 그렇게 되어가지고 58년째 아나운서를 하고 있습니다.
KBS에서 오랫동안 가요무대를 진행하고 있는 아나운서 김동건입니다.
2020년 9월 3일, 방송의 날 특집 다큐 인사이트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인터뷰에서
대한민국의 아나운서.KBS에서 오랫동안 가요무대를 진행하고 있는 아나운서 김동건입니다.
2020년 9월 3일, 방송의 날 특집 다큐 인사이트 KBS 아카이브 프로젝트 모던코리아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 인터뷰에서
DBS 1기로 아나운서를 시작, TBC와 KBS를 거쳐 현재는 프리랜서로 활동하고 있다. 1963년에 데뷔하여 2024년 현재까지 만 60년 넘게 활동하고 있는 현역이다.
2. 생애
1938년 11월 25일, 황해도 봉산군 사리원면(현 황해북도 사리원시)에서 태어났다. 8.15 광복 이후 월남하여 서울특별시에서 성장했다. 서울수송초등학교에 다니던 중 1950년 6.25 전쟁이 발발하자 경상북도 대구시[4]로 피난을 떠나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5]로 전학하여 졸업했고, 이후 서울특별시로 돌아온 후 경기중학교, 경기고등학교(54회), 연세대학교 문과대학 교육학과[6](교육심리학 전공, 58학번)를 졸업했다.2.1. 경력
1963년 3월 1일 동아방송에 입사하여 아나운서 생활을 시작했으며 이듬해 동양방송으로 이적했다가 1972년 다시 KBS로 옮겨 1993년에 명예퇴직을 할 때까지 KBS의 아나운서로 활동했다. 진행한 프로그램으로는 뉴스파노라마, 11시에 만납시다,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등이 있다.김동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프로그램은 월요일 밤 10시 KBS 1TV에서 방송 중인 "가요무대"를 꼽을 수 있다. 2003년부터 한동안 가요무대의 진행을 전인석 아나운서에게 넘겼다가, 2010년 5월 10일에 복귀했다. 가요무대의 주 시청층인 중장년 시청자들이 김동건의 복귀를 강력히 요구했던 까닭이다. 물론 그 기간 동안 방송을 쉰 것은 아니고 가요무대 1000회 특집(2006년 11월 6일 방영분) 때 출연했고 같은 KBS 1TV에서 '한국, 한국인'이라는 토크쇼를 진행했다. 이 프로그램은 방송시간대가 심야시간대였던데다가 재방송도 안 해서 잘 알려지지는 않았다. 복귀한 뒤로 현재까지도 월요일 밤 10시에 하는 가요무대 진행을 맡고 있다. 현재 지상파 프로그램을 고정 진행하는 전/현직 아나운서 중 최고령/최선임이다.[7]
1985년부터 2002년까지 18년 동안 'KBS 가요대상' MC를 맡은 적이 있다. KBS의 대표 아나운서였기도 했지만 당시 KBS가 방영했던 3대 대중음악 프로그램의 MC였어서 그에게 가요대상 MC 마이크가 주어졌다.[8] 참고로 당시에 가요톱10 진행을 맡았던 아나운서 손범수도 1993년부터 2001년, 2003년부터 2004년 가요대상, 2007년 가요대축제 MC를 맡았는데 1993년부터 9년 간 김동건과 호흡을 맞췄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방송에서 메인 MC 4명 중 한 사람이었으며 이 때문에 1985년 남북 이산가족 상봉 당시에는 무대 진행MC이자 실향민의 한 사람으로서 평양을 방문했다. <이산가족을 찾습니다>를 진행하다가 충격으로 쓰러져 혼절한 출연자에게 응급처치를 하며 "이 무슨 비극입니까..." 하며 눈물을 흘리는 장면은 현재도 방송자료 화면으로 자주 인용되고 있다.
1983년 10월 아웅 산 묘소 폭탄 테러 사건 당시 여의도광장에서 거행됐던 순국 외교사절 합동 국민장이 끝난 후에 열린 '북괴암살폭파만행규탄 궐기대회'의 진행자로 나선 적도 있다.
또한 미스코리아 선발대회를 지상파 TV로 중계하던 때에는 KBS에서 무려 30년 동안이나 거의 전담으로 진행을 맡은 경력이 있다. 미스코리아 선발대회 진행은 이후 프리랜서를 선언하고 1994년과 1995년에 MBC에서 생중계할 때도 진행을 맡았다. 사실상 미스코리아 선발대회의 대명사다.
2023년부로 데뷔 60주년을 기록하는 아나운서로, 현재까지도 최장수 방송활동을 하는 아나운서계의 거목이자 대한민국 아나테이너의 살아있는 터줏대감이며, 그 유명한 아나테이너인 이금희, 손범수, 김성주, 전현무와도 경력이 30년 이상이나 차이가 나는 현존하는 아나운서계의 최고참[9]이다.
3. 여담
- 중후하고 안정된 이미지를 풍기는 베테랑 아나운서이고 이러한 이미지 덕에 KBS 퇴사 이후인 1990년대 중반 쌍용그룹의 이미지 광고도 찍은 적이 있다.
- 고령이 되기 이전에도 가발을 쓰고 있었다고 한다. 가끔씩 연예오락 프로그램에 나오는 KBS 아나운서 후배들이 고정 레퍼토리처럼 가발 비뚤게 쓴 아나운서의 에피소드를 얘기하는데, 그 에피소드의 주인공이다.
- 상당한 동안이다. 1938년생으로 현재 만 [age(1938-11-25)]세며[10] 꽤나 정정하고 목소리도 상대적으로 젊다. 50~60대 시절에 비해 크게 늙지 않았다. 게다가 몸무게도 대학생 시절부터 지금까지 거의 변화가 없다고 한다.
- 실향민이기에 보수 성향이 좀 있다. 정치에 대해 크게 이야기 하진 않지만, 17대 대선에서도 이명박 후보에 우호적인 발언을 하기도 했고 18대 대선 직전에 박근혜 후보가 약속을 잘 지키고 한결 같다고 우호적인 발언을 한 적이 있다.
- 위의 보수 성향 탓인지 참여정부 초창기에 '코드 인사 논란'에 휘말린 적이 있다. 참여정부가 출범한 지 4개월이 지났을 시점, 18년 간 진행해온 가요무대에서 아무런 예고도 없이 "다음주부터 나오지 마라"는 방식으로 퇴출되었던 것이다. 평소에 정치 성향을 내보인 적은 없지만, 보수 인사들과 친분이 있다는 이유로 코드 인사의 희생양이 된 것이 아니냐는 비판이 일었다.[11] 이후 이 논란에 대해서는 거의 함구했고, 2010년 다시 가요무대로 돌아왔을 때에도 과거 이야기는 할 필요 없다며 선을 그었다.
- 1985년 평양 방문 당시, 친구에게 유서를 쓰고 떠났다고 한다. 당시 남북 간의 갈등이 어느 수준이었는지 보여주는 대목이다. 고향이 평양인 어머니(1900년대생으로 당시 70대 후반~80대 중반)가 자신의 북한행을 알고 건강을 해칠 것을 염려해 자신이 북한을 간 사흘 동안은 어머니 방의 텔레비전과 전화를 끊기까지 했다고 한다. 하지만 평양 방문 후 북한도 사람이 사는 곳이기는 하구나 하고 느꼈다고 한다.
- 자녀뻘인 25살 차이나는 김병찬 전 아나운서의 의상을 여러차례 지적한 바도 있다. "진행할 때 선글라스도 쓰고, 노란색·주황색 양복도 입은 적 있다. 주목은 많이 받았지만, 정말 눈물 나게 혼났다."
사실 이건 세대차로 봐야한다
- 1980년 언론통폐합에 따라 TBC가 KBS 2TV로 넘어간 후 최초의 쇼 프로그램인 버라이어티쇼 KBS 새가족을 방영하였는데 이 방송에서 KBS의 대표 아나운서 자격으로[12] MC를 맡았다.
- KBS 아나운서 명예퇴직 1호로 알려져 있다. 명예퇴직과 관련한 내용을 2024년 2월 27일 아침마당에서 밝힌 적이 있다. 데뷔 30년이 되는 1993년, 방송 일을 더 오래 하려면 프리랜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을 하고 사직 의사를 밝혔는데, 당시 부임한 지 얼마 안 된 홍두표[13] 사장과 꽤나 실랑이를 했다고 한다. 그러다가 홍두표 사장이 "명예퇴직 제도를 만들 테니 그때까지 기다려 달라."라는 말을 했고, 딴 방송사에 가지 말고 KBS 프로그램만 진행하는 것을 조건으로 몇 달이 지난 뒤에 명예퇴직을 하고 프리랜서를 선언했다.
- 2020년부터 KBS 가요대상의 풀 영상들이 KBS 공식 유튜브 채널에 연도별로 스트리밍 및 업로드되었을 때, 라이브로 가요대상 스트리밍을 지켜보던 일부 시청자들이 김동건이 거의 빠지지 않고 MC로 너무 자주 나오는 모습을 보고 채팅창에 '동건옹', '또동건', '(이번에도) 동건할배', '가요무대 아저씨'를 비롯하여 '조용히 하세요', '저 아저씨는 맨날 조용히 하래'[14], '콤푸타에 입력' 등의 우스갯소리로 언급하기도 했다.
- 2020년 9월 3일 '방송의 날' 특집회차로 편성된 KBS 다큐멘터리 다큐인사이트 - 모던코리아 "정성을 다하는 국민의 방송"[15] 편에서는 김동건 아나운서의 인터뷰를 토대로 그 시절 KBS의 영상을 입혀 KBS가 걸어온 영욕의 세월을 가감없이 보여주고 있다. 방송보기 방송을 보면 1970~1980년대 굵직한 한국 현대사의 순간마다 어김없이 이 분이 마이크를 잡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16] 이 방송 인터뷰에서 김동건 본인 말로는 "무려 58년을 방송했다"고 한다. 모던코리아의 책임CP인 염지선 PD는 이후 페이스북에서 "K 공장의 포레스트 검프"라고 표현했다. 현실판 포레스트 검프처럼 온갖 현대사의 모멘트에 다 나타나는 인물이었으니 그런 별명이 붙을 만하다.
- 2020년 9월 30일 추석특집 대한민국 어게인 나훈아 콘서트를 진행했다. 나훈아와 인터뷰를 주고 받는데 가장 인상깊은 노래를 '명자'로 꼽았다. 노래 내용이 이북 출신 피란민인 명자의 부모님께서 자신들의 부모님[17]을 평생 그리워하다 돌아가시는 내용으로, 김동건의 어머니 또한 당시 그의 나이 3세에 돌아가셔서 이후에 고향인 황해도에 못 찾아뵙고 있어 공감이 간다고 밝혔다. 여담으로 나훈아가 방송에 출연하지 않던 기간에도 사석에서 자주 만나던 인물 중 한 명이 김동건이라고 한다.
- 송해, 허참과 출신지가 같다.
세부지역은 다르나 미정하지만 2022년 설날에 허참이 세상을 떠나고 같은해 여름 전국노래자랑 송해마저 별세하면서 김신영으로 MC가 교체됨에 따라[18] 가요무대라는 프로그램을 유일하게 지금까지 프로그램을 진행하고있다.
- 전현무가 2012년 KBS를 퇴사하고 프리랜서로 전향하고자 할 때 그의 퇴사를 말린 인물 중 하나였다고 한다.
4. 출연 프로그램
- 1980년 ~ 1987년: KBS1 《뉴스파노라마》
- 1981년: 국풍81 개막식 중계
- 1983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
- 1983년 ~ 1988년, 1992년: KBS2 《무엇이든 물어보세요》
- 1985년: 남북 예술단 교환방문
- 1986년: 평화의 댐 건설 국민 성금 모금방송
- 1985년 ~ 2003년 / 2010년 ~ : KBS1 《가요무대》
- 1986년 ~ 1992년: KBS2 《11시에 만납시다》
- 1985년 ~ 2002년: KBS2 《KBS 가요대상》
- 1988년 ~ 1990년 / 1996년: KBS2 《KBS 연기대상》
- 2001년 ~ 2010년: KBS1 《한국 한국인》
- 2014년: TV조선 《낭만과 논리가 있는 토크쇼 낭만논객》
- 2024년: KBS2 《사장님 귀는 당나귀 귀》 게스트
5. 수상
- 1979년: 한국방송대상 아나운서상
- 1993년: 국민훈장 목련장
- 1993년: 위암 장지연상
- 1993년: 대통령 표창
- 2001년: MBC 명예의 전당 방송인부문
- 2013년: 한국아나운서연합회 한국아나운서대상 특별상
- 2023년: KBS 연예대상 공영방송 50주년 특별 공헌상
[1] 호적상으로는 1939년생이나, 실제로는 1938년생이 맞다.[2] 교육심리학 전공[3] #[4] 원래 기차로 부산으로 가려했지만 아버지께서는 대전에서 내리자고 하셔서 아주 민주적인방법으로 중간지점인 대구에서 내리자고 결정났다고 한다...[5] 대구수성초등학교로 언급되는 경우도 있는데, 1950년 당시에는 경상북도 대구시 상동(현 대구광역시 수성구 상동) 지금의 대구수성초등학교 자리에 경북대학교사범대학부설초등학교(당시에는 대구사범대학부속국민학교)가 있었던 탓이다. 1952년에 대구시 봉산동(현 대구광역시 중구 봉산동)으로 옮겨와 현재에 이르고 있다.[6] 1950년부터 1980년까지 문과대학 소속이었다. 1981년 사범대학으로 소속이 바뀌었다가 1983년 사범대학이 교육과학대학으로 명칭이 변경되어 현재에 이른다.[7] 여성 아나운서 중 현역 최고령자는 이지연 전 아나운서로 현재 KBS 3라디오에서 출발! 멋진 인생 이지연입니다를 진행 중이다. 비슷한 세대의 아나운서 황인용은 일부 프로그램에서 내레이션을 하는 것 외에는 2000년대 이후 방송 출연이 거의 없다.[8] 이 당시 시대상을 알 수 있는 부분으로, 김동건 아나운서가 1992년 가요대상을 진행하며 서태지와 아이들의 팬덤이 내지르는 함성소리에 어쩔 줄 몰라하는 장면이 있다. 팬덤 자체는 1980년대 소방차도 박남정도 김완선도 있었지만 연말 시상식 음향에 지장이 갈 정도로 강력한 화력을 보인 것은 서태지와 아이들이 처음이었다. 이런 변화한 관객 반응은 이 다음 세대인 H.O.T.와 젝스키스, S.E.S., 핑클 등 1세대 아이돌 그룹이 등장하며 완전히 정착했다.[9] 김동건과 함께 1960년대에 데뷔한 아나운서들은 이미 작고하거나, 건강상의 사유로 방송 일선에서 은퇴한 지 10년이 넘었고, 김동건조차도 80대라는 고령으로 2020년 나훈아 특집 콘서트 이후로는 가요무대 MC 활동 외에는 방송 활동을 거의 못 하고 있다.[10] 생존한 유명인 중에는 백낙청 교수, 배우 김영옥, 가수 패티김, 정몽구 현대자동차그룹 명예회장, 김옥두 전 의원 등과 동갑이다.[11] 대표적인 보수 인사인 김동길 박사와 친분이 깊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이기도 하다.[12] 함께 진행한 이영혜 아나운서는 전날 TBC 석간(현 JTBC 뉴스룸의 전신)을 진행한 TBC의 대표 여자 아나운서였다.[13] KBS와 TBC에서 PD로 일했던 방송인으로 오늘날의 KBS 경영 체계를 확립한 인물이다.[14] 대상 발표를 앞두고 대상 수상이 유력한 가수들의 팬덤이 환호성을 올리자 이를 제지하는 멘트였다.[15] KBS의 공식 슬로건 문구이자 로고송 가사다.[16] KBS의 주말 메인뉴스였던 뉴스파노라마 진행을 비롯해 1980년 언론통폐합 이후 첫 쇼 프로그램 진행, 1981년 국풍81 개막식 중계, 1983년 이산가족을 찾습니다 생방송, 1985년 남북 예술단 교환방문, 1986년 평화의 댐 건설 국민 성금 모금방송 등등 여러 중요 프로그램들의 진행을 맡았다.[17] 명자의 친조부모, 외조부모[18] 2024년 3월 31일 방송분부터 남희석으로 재교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