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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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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특별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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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욕 맨해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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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티 오브 런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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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도쿄도


1. 개요2. 도시의 역사
2.1. 기원2.2. 과거의 도시2.3. 현대의 도시2.4. 도시의 기준
3. 도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
3.1. 도시 내부의 지역 분화3.2. 인구 공동화 현상
4. 도시의 입지 조건5. 도시 문제6. 도시 문화7. 명칭 및 어원
7.1. 대명사로서의 도시
8. 관련 이야기9. 도시의 종류10. 관련 문서11. 기타 문서12.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도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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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도시(, city)는 마을보다 큰 규모의 영구정착지로, 도회지(都會地)라는 의미로 사용될 경우에는 어촌과 대비하여 상공업이 발달한 번잡한 지역을 이르기도 한다.

표준국어대사전의 정의에 따르면 '일정한 지역의 정치ㆍ경제ㆍ문화의 중심이 되는, 사람이 많이 사는 지역'이다. 도시는 통상 수천에서 수만 명 이상의 사람이 모여 주택, 교통, 위생 시설 등을 갖추고 생활하는 지역 사회의 허브라 할 수 있다. 인류가 농경사회로 들어서면서 떠돌아 다닐 일 없이 정착하여 생활을 하게 되었고, 잉여 농산물의 집산과 비축을 통한 인구 밀집도가 증가하고 다른 지역과의 교류가 이루어지면서 마을이 더욱 커져 갔다. 그리고 독자적으로 정치적인 기능을 수행하는 단위로 성장하면서 도시로 발전하게 된다.

도시는 인류가 만들어낸 부산물들이 빼곡하게 모여 있다는 점에서 자연 상태와는 대척점을 이루는 인류 문명의 상징이다.[1]

2. 도시의 역사

2.1. 기원

  • 가장 오래된 집단 정착의 흔적은 터키 남부의 괴베클리 테페(Göbekli Tepe) 유적에서 찾을 수 있다. 이 유적은 신석기 시대의 극초기에 건설되었으며, 현재까지 밝혀진 가장 오래된 유물은 기원전 96세기 이전이다. 일부 학계에서는 이 유적이 '신석기 혁명'으로 대표되는 농경과 문명의 관계를 재정립할 수 있는 실마리라고 주장하기도 한다. (해당 문서 참조.)
  • 현재까지 밝혀진 제일 오래된 '돌로 만든 성벽을 갖춘 유적지'는 팔레스타인예리코(Jericho)이다. 예리코에서 발견된 접붙이 무화과는 기원전 94세기의 것으로 밝혀졌다. 예리코는 BC 14세기 예리코의 전투에서 히브리인들에게 멸망당해 초토화하기 이전까지 수천년간 교통의 요지에 자리잡아 번영을 구가한 고대 도시였으며, 농경 발달사에서도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참고로 고대의 예리코는 현재의 예리코와 꽤 거리가 떨어져 있어 20세기 초반 유적이 발굴되기 전까지는 전설 속의 도시로 취급되었다.
  • 지금까지 알려진 것 가운데 가장 먼저 도시의 특성을 만족했다고 알려진 유적지는 터키 아나톨리아 반도의 콘야 인근에 위치했던 차탈회위크(Çatalhöyük)이다. 1958년 처음으로 존재가 보고되었으며, 방사성 동위원소를 통한 연대 측정 결과 기원전 7천 년경 건설된 것으로 추정되었다. 신석기 문명으로서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는 그림들은 물론 다수의 방을 가진 가옥집단, 제사의 흔적, 신상 등이 출토되었다. 을 끼고 있으며 5,000여 명으로 추정되는 많은 인구, 고도화된 생활상이 촌락에서 도시로 발전해가는 집단주거지의 특성을 보여준다.
  • 문명 시대의 도시 발달사에서는 BC 40세기로 추정되는 수메르우르(Ur)가 출발점으로 꼽힌다. 이 시대부터 제대로 된 기록이라는게 등장하게 되었고 군장 단계를 넘어서는 이 출현해 체계화된 도시국가로서의 면모를 보여주기 시작한다. 이 역시 19세기 중반에서야 그 존재가 확인되었고 20세기 초부터 본격적인 발굴과 연구가 진행되었다. 중학교 수준에서는 이 우르를 최초의 도시로 꼽는다.

2.2. 과거의 도시

파일:도시의 형성.png

지역과 시대, 문화에 따라 도시의 형태가 제각각이었다. 하지만 공통점이 있으니, 중앙에 통치자의 성이나 궁정, 시청이 존재했다는 것. 그리고 그 바로 옆은 관리들이, 그 옆은 일반 시민들(주로 상공인)이 자리잡았다. 그리고 그 도시를 둘러싸는 성벽이 쌓였다.

도시의 핵심은 교통이었다. "모든 길은 로마로 통한다."라는 말이 이를 잘 설명한다. 즉 어느 길을 가든지 로마로 가게 만들 정도로 길이 사방팔방으로 뻗어 있었다는 말. 당시의 교통환경상 속도나 가격 면에서 수운이 최선이었지만,[2] 수운이 가지는 위험성 탓에 거기에만 의존하기도 어려웠거니와 어쨌든 인접지역과의 교류를 위해서라도 육로가 필요했다. 따라서 역참을 통한 군사통신, 대규모 운송을 위해 말과 수레가 잘 다닐 수 있도록 돌길을 깎아서 도로를 만들었다. 이는 병력이 신속히 이동하는 데 쓰였다.

동양과 서양은 개념이 상이했으나, 도시에 한해서는 유사한 편이다.[3] 구체적으로는 좀 차이가 있으나 대략적으로 도식화하면, 통치자의 거처나 공공업무를 위한 장소로서의 성이나 궁정 인근 지역을 둘러싸는 '내성', 중상류층을 수용하는 '외성'이 있었고, 하류층은 종종 외성 밖으로 시가지를 확장하기도 하였으나 관리나 방어 상의 이유로 성벽을 증·개축하더라도 가급적 성내에 수용하려는 편이었다.

고대에는 지중해 세계에서 도시 단위의 국가나 행정구조가 발전하였다. 최초에는 평시 주거지와 유사시 피난처로 구성되었으나, 차츰 양자가 융합되거나 평시 주거지의 규모가 커지고 방어시설이 강화되면서 옛 피난처가 버려지게 되었다.[4] 도시로 편입된 옛 피난처는 아크로폴리스와 같은 종교적 중심지가 되고는 하였다. 고대 도시는 정치·상업·문화·행정 등 제분야의 중심지였고, 인근 촌락은 도시에 종속되었다. 귀족 등 상류층은 주변 농촌에 빌라(villa)나 라티푼디움(latipundium)과 같은 자기 농장을 경제적 기반으로 삼으면서도 관리인을 주재시켜 경영하였으며, 그 자신은 도시에 거주하면서 집정관이나 원로원 등 요직에 앉아 공공업무를 돌보았고, 종종 농장을 방문하여 가산을 관리하였다. 특히 고대 로마는 제정 성립 후 식민시(colonia)-자치시(Municipium)를 거쳐 중심도시(civitas) 단위로 통합하여 통치하였으며,[5] 로마가 체계적으로 건설한 도시들은 상당수가 중세에도 도시나 그에 준하는 대촌락으로서 차후 이어지는 유럽 각지의 개척과 개간, 식민활동 속에서 중심지로서 기능하였다.

고대 말 로마 제국은 역량 고갈과 인접 지역의 발전 속에서 쇠퇴하였으며, 중앙정부는 이러한 압박에 대응하고자 각지 상류층에게 더 많은 공적 부담을 요구하였다. 이에 반발한 상류층은 지방분리주의적 반란을 일으키는가 하면 도시를 벗어나 자기 장원으로 이주하면서 저택을 요새화하였다. 이에 따라 서로마 제국이 멸망하기 전부터 이미 도시는 위축되었고, 한동안 그 추세가 이어지다가 중세 성기 상업의 부흥기를 거치며 다시금 부활하기 시작하였다.[6] 그 과정에서 여러 도시가 자기 역량을 토대로 더 많은 자유와 자치권을 추구하였으며, 지역 영주와 싸워서 쟁취하거나 군주와 제휴하여 자치 정부를 구성하였다.[7] 대표적으로 이탈리아 연안의 여러 도시 공화국이나, 코뮌 운동을 전개한 북이탈리아와 프랑스, 독일 등지의 여러 도시가 있다. 이들 도시민은 군주에게서 특허장(Charter: Privilegien)을 받아 시 참사회(혹은 시 의회)와 법정 등 자체적인 행정체계를 조직했고, 이들은 도시의 이익과 발전을 도모하며 상업발전에 힘을 썼다.[8] 그래서 이 무렵 “도시의 공기는 자유를 만든다.”("Stadtluft macht frei")는 말이 나올 정도였으며, 성 안 사람이라는 뜻의 부르주아라는 말도 이때 등장하기 시작했다. 도시는 그 자체로 특권적인 거주지였다.

그런데 여기서 한 도시에 너무 많은 사람이 몰려 들어 과밀과 혼잡이 빚어지는 문제가 발생하였다. 그 과정에서 위에서처럼 내/외성으로 도시가 나뉘면서 자연히 소속 인원들의 계급이 갈리게 되었고, 바깥의 시민들이 안으로 들어와서 성공하기 위해 더욱 사람이 몰리면서 도시가 발전하게 된다.[9] 이 과정에서 농촌과 도시의 구분이 더욱 두드러지게 되었다.[10] 그런데 도시의 확장속도에 비하여 도시를 체계적으로 운영하는 기술이나 제도 등이 정비되어 있지 않은 까닭에 수도 시설, 공중 위생, 의료기술 낙후, 건축기술의 한계 등 수많은 문제가 발생하게 되었다. 그 탓에 흑사병이 발생했을 때, 저 문제들이 흑사병의 신속한 전염을 유도하게 되었고, 또 한 차례 도시와 상업의 위축을 불러왔다.

때때로 도시는 기념비적 건축물과 마찬가지로 그 도시의 지배자나 통치국가가 지닌 위엄을 상징하는 도구로도 사용되었다. 뭔가 거대하고 화려하며 눈에 띄는 것이 권력자를 칭송하는 업적으로서 제격이기 때문이다. 단적인 예로 이탈리아의 여러 도시 국가(로마, 나폴리, 피렌체, 베네치아 등), 파리, 콘스탄티노폴리스[11], 프라하 등이 있다.

2.3. 현대의 도시

현대식 상하수도와 전기 등 새로운 인프라가 보급됨과 동시에 건축기술의 발달로 고층 건물의 건설, 지하철과 같은 대중교통의 발달 등이 이루어지며 한정된 공간 안에 대량의 인구가 거주 가능해졌고, 따라서 도시의 규모가 과거와는 비교할 수 없이 거대해졌다. 또한 육로 교통 수단이 마차와 수레로부터 자동차기차로 발전하였고, 철도가 놓이고 도로가 발달되며 멀리 있던 도시들이 서로 연결됨에 따라 도시간의 발전이 가속화되었다. 미국의 경우 '대륙 횡단 철도' 등이 생기면서 철길을 따라 마을, 도시가 생기기도 하였다. 여기에 자동차가 발명되면서 철도가 갈 수 없는 곳까지 사람이 멀리 다니게 되었고, "사람들 다니는 곳에 길이 난다"는 말처럼 그 길을 따라 도시들이 확장을 하게 되었다. 이 현상을 스프롤 현상이라고 한다.

고대 그리스-로마 시대에 이미 바둑판식 도시계획이 등장했으나 중세에 동로마 제국과 동아시아 (당나라의 장안 등)를 제외한 곳에선 잊혀졌다가[12] 근대에 와서 다시 도시를 짓기 전에 계획을 짜는 방법이 도입되어 도시가 더욱 체계적으로 조성되었다. 뉴욕의 경우 처음부터 교통을 염두에 두고 계획했다고 하며, 쾰른, 만하임, 런던, 피렌체 등은 고대에 계획적으로 조성된 도시들의 대표적인 예이다.

도시 안으로는 예전처럼 아무렇게나 뒤섞이는 일이 없도록 상업 구역-주거 구역-공업 구역 등으로 분할하여 그어 각자의 특색을 살려 발전하게 했으며, 도심 지역과 인근의 인구밀도가 좀더 낮은 지역이 인프라를 공유하면서 형성된 메트로폴리스, 다시 인접한 메트로폴리스들이 서로 연결되어 인구 1천만 명을 넘어서는 거대 도시권인 메갈로폴리스 등을 형성하였다.

2.4. 도시의 기준

세계 각국의 도시분류 기준이 다르기 때문에 이를 통일하기 위해서 유럽연합 통계국, 유엔인간정주위원회 등 6개기구[13]는 2015년부터 연구를 시작하여 2020년에 결과를 발표하였고, 2021년에 유엔 통계위원회에서 도시의 분류기준을 공식채택 하였다. 이에 따르면 도시는 도시, 준도시, 농촌지역으로 나눠지며 각각의 정의는 다음과 같다.###

기본적으로 전세계를 1㎢의 격자로 나누고 위성사진과 각국의 통계자료를 활용하여 1차적으로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 도시(Urban Center/High-denstiy Cluster): 격자의 인구밀도가 1500명 이상이고, 인접한 격자를 합쳐 인구가 5만명 이상인 지역
  • 준도시(Urban Cluster): 격자의 인구밀도가 300명 이상이고, 인접한 격자를 합쳐 인구가 5천명 이상인 지역
  • 농촌(Rural grid cell): 도시와 준도시에 들어가지 않는 지역

이상 셋의 분류기준을 이용하여 다시 각국의 행정구역에 대입하면, 행정구역별로 다음과 같이 분류한다.
  • 도시(Densely populated area/City): 행정구역 인구의 50%이상이 도시에 모여사는 지역
  • 타운(Intermediate density area/Town and suburb): 도시와 농촌이 혼재된 지역
  • 농촌(Thinly populated area/rural area): 행정구역 인구의 50%이상이 농촌에 모여사는 지역

통계청에서는 이 기준을 활용하여 실질적인 도시규모를 가늠할 수 있는 도시화 분석지도 사이트를 개설하였다.
도시화 분석지도

3. 도시에서 일어나는 다양한 현상들

3.1. 도시 내부의 지역 분화

도시 내부에서 상업 시설은 어디에 모여있고, 주거 시설은 어디에 모여있는 현상이 일어나는데 이것을 지역 분화라고 한다. 크게 중심업무지역, 상업 지역, 공업 지역, 주거 지역으로 나눈다. 나타나는 원인은 입지조건이 기능마다 다르게 나타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서 주거 기능은 도시의 중심에 위치하면 지대(땅값)이 높은데 반해서 접근성의 영향을 덜 받는다. 접근성의 영향을 제일 많이 받는 것은 상업기능이지만 회사의 본사같은 경우에는 중심지역에 위치하는데, 일단 자본이 많기 때문에라고 볼 수 있다. 공업 지역은 도심에 위치하지 않는데 넓은 토지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다만, 도심과 너무 떨어지면 교통비 문제가 발생하므로 중간지역에 위치한다. 안산이 그 예이다.

3.2. 인구 공동화 현상

중심 업무 지역은 낮과 밤의 상주 인구 차이가 커서, 밤에는 인구분포에 공백이 생긴다. 다른 말로 '도심 공동화 현상'이라고도 한다. 일어나는 원인은 도시 내부의 지역 분화 때문. 상황에 따라 사회문제를 야기할 수도 있다. 자세한 내용은 항목 참조.

4. 도시의 입지 조건

※ 오늘날은 대부분의 입지조건을 끌어와서 사용할 수 있으므로[14], 옛날 기준으로 서술한다.
  • -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것인 만큼, 과거의 도시들은 대부분 강가에 존재했다(세계 4대 문명이 어디서 일어났는지 생각해보자). 도시의 규모가 커져 그 사용량을 감당하지 못하게 되면, 로마의 경우 물을 끌어오는 수도를 이용하여 해결했다.[15] 혹은 운하(내지 강)를 뚫어서 물길을 트기도 했다.[16]
  • 지형
    • 전략적 - 외부의 적에 대응하기 위해 산을 등지거나 언덕 위, 강이나 호수 등의 섬 등지에 세웠다. 파리[17], 모스크바, 알렉산드리아 등이 이에 해당. 물론 강이나 호수 근처에 세우면 교류에도 유리해진다.
    • 상업적 - 방어를 희생[18] 교류를 통한 국력 증진을 위해 교통이 원활한 강가/해안가는 물론, 평야 지대에 자리잡기도 한다. 가끔 광물지대 바로 옆에 있는 광산촌이 관련 산업까지 발전하면서 도시가 되기도 한다.(중세 독일 등)
  • 풍수지리(동양 한정) - 땅의 기운이 그 위에 생기는 도읍지(수도), 무덤 등에 영향을 끼친다고 생각하여 자연과 어우러지는 지역을 선택했다. 조선의 태조인 이성계와 무학 대사가 함께 지금의 부평 일대를 도읍지 후보로 점찍었다가 나중에 와 보니 고작 봉우리 하나가 모자라서 명당이 못 되었던 "원통이 고개" 이야기는 유명하다. 사실 뒤에 산, 앞에 물(강)을 필요로 한다는 점은 비단 무덤뿐만이 아니라 도시의 요건을 설명하는 것과 똑같다(산=방어, 물=식수 및 장사).[19]

※ 한편 20세기 말부터 최근에 이르기까는 세계화된 글로벌 경제에서의 경제 회로[20]에 도시가 입지하게 되고, 입지할 수밖에 없다는 주장이 현대 지리학자들로부터 제기되기도 한다. 이 때 도시는 세계화의 영향을 받는 것이자 동시에 세계화를 추동하는 것이다. 물론 산업 회로에서 탈락하는 경우 도시가 완전히 없어지지는 않겠지만 도시로서의 성질이 감소하게 된다. 대표적인 예시가 미국디트로이트. 일본에서는 관동도쿄와 대비해 관서오사카도 그런 흐름에 있다는 논의들도 있다.

5. 도시 문제

그러나 지나치게 많은 인구를 좁은 공간에 몰아 넣는 과정에서 문제가 안 생길 수가 없었다. 환경, 범죄, 교통혼잡, 교육 등이 그 대표적인 문제로, 이를 효과적으로 제어하여 유권자들의 표를 사로잡는 것은 언제나 위정자들의 중요한 임무중의 하나였다. 너무 복잡한 도시를 떠나 농촌으로 돌아가는 사람도 대다수. 더군다나 이를 해결하기 위한 시설을 건설을 해줘도 님비, 핌피 현상으로 인해 공공재를 자신의 사유재산으로 생각하는 몰지각한 현상들이 일어나기도 한다.

도시가 개별 행정단위로서의 도시가 아니라 대도시권이나 광역권(메트로폴리스, 메갈로폴리스 등)으로 성장하면서 도시 문제는 도시 내부에서보다 도시와 도시 사이에서 일어나는 경우가 많아졌다. 대표적인 것이 서울과 주변 도시 사이, 즉 수도권 내부의 하수도와 오폐수 문제(관련글), 광역버스(관련글 1, 2)나 지하철철도(관련글 1, 2, 3, 4) 등의 교통 문제 등등 다양한 도시와 도시 사이의 도시 문제가 있었고 현재진행형이다. 물론 한국 수도권만 그런 것은 아니고 다른 메갈로폴리스로 꼽히는 지역들의 고질적인 문제에 가깝다.

6. 도시 문화

앞서 게오르그 짐멜 같은 사상가들은 특히 모더니티의 중심에 도시를 놓아두고 주요 연구대상으로 삼았는데, 도시는 당시 사회변동의 무대이자 이전과는 다르게 새로운(모던한) 사회를 설명하는 중요한 지점이 되며 특히 대도시 문화는 근대재현(표상)이라고 할 수 있는 것이기도 하다.

많은 사람들이 활동하는 생동감 넘치는 공간인 만큼 도시마다 문화도 다양하다. 가장 도시적인 문화라면 대규모 상업지구(=쇼핑가(街))가 있겠다. 대다수의 인원(소비자)를 만족시키기 위해 다양화된 소비상품들이 오늘도 소비자들을 유혹하고 있다. 미국에서는 흔히 '다운타운'이라고 부르는 곳이다.

반대로 그 소비자들, 자칭 예술가들이 자신의 끼를 발산하는 장으로 이용하기도 한다. 사람들이 자주 지나가는 쇼핑가의 중심이나 공원 등에서 이들을 볼 수 있다. 또한 과거의 유물-궁궐/궁전, 고성, 성벽, 사찰/사원/신전 등등-을 도시의 일부로 사용함으로써 과거와 현재가 공존하는 신기한 광경을 보여주기도 한다. 차이나타운, 코리아타운과 같이 외국인들이 모여 사는 동네가 도시의 일부분이 되는 경우도 있다.

흔히 대도시 하면 마천루들이 하늘 위로 끝도 없이 쭉쭉 뻗은 건물들이 숲처럼 가득 있는 모습을 상상하지만, 사실 이 정도의 마천루 숲은 세계적으로도 드물다. 이 이미지는 미국 뉴욕시의 맨해튼 시가지 때문에 생겨난 것으로, 이 정도로 빌딩숲이 조성된 곳은 사실상 이곳을 제외하면 없다고 봐도 무방하다. 세계 3대 도시권인 뉴욕, 도쿄권, 그레이터 런던 이 셋만 놓고 봐도 대부분은 중저층의 빌딩들이 대부분으로, 마천루 숲은 전체 도시권에 비하면 매우 작다. 특히 이는 의외로 개발 역사가 오래된 도시일수록 더욱 그러한데, 그 이유는 오래된 만큼 옛날의 저층 빌딩들이 이미 자리를 많이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그렇게 높은 마천루들을 많이 짓는다고 해서 그 건물들이 제대로 기능할 것이라고도 장담할 수 없다. 중저층 위주로 기능하던 도시에 마천루를 여럿 세우면 그 도시권의 사람들을 죄다 욱여넣어야 그 마천루 숲이 기능할 텐데, 그러면 그 주변의 땅은 오히려 활력을 잃는 것이고, 오히려 이는 도시권 자체를 더 압축해 줄여 버리는 효과가 날 뿐이다. 단, 서울특별시홍콩처럼 미어터져서(...) 문제인 곳에서는 그와 같은 마천루 개발이 효과를 볼수 있다.

7. 명칭 및 어원

  • 한국어의 도시(都市)는 원래는 도성시장을 일컫는 말이었지만 의미가 변했다. 권용우 성신여대 지리학과 교수와 변병설 인하대 행정학과 교수에 따르면, 중국에서 '도(都; dū)'는 '궁성'을, '성(城; chéng)'은 성벽을 뜻했는데, 이후 물품을 거래하는 시장이 도시의 주요 기능으로 추가되면서 '도성'과 '시장'이 합쳐져 '도시'가 되었다고 한다.# 일본어 '토시(都市;とし)'와 베트남어 'đô thị' 역시 어원이 같다.
  • 유럽 계통 언어에는 도시를 가리키는 어휘가 여럿 존재하는데, 그 의미는 대체로 비슷한 편이다. 크기로 따지면 작은 순으로 '빌리지(village)', '타운(town)', '시티(city)'가 되며, 한국어 행정구역을 영어로 번역할 때 각각 '리',[21] '읍',[22] '시'를 뜻하는 어휘로 의역되기도 한다.
    • '빌리지(village)'는 인도유럽어로 '씨족', '무리'를 일컫는 어휘 'weik-'에서 유래했다. 보다 직접적으로는 라틴어 '윌라(villa)[23]'에서 왔으며 이는 '거주지', '마을', '장원'을 의미했다. 이것이 프랑스어의 '빌(ville)'로 파생되었고, 다시 영어로 수용되어 '빌리지'가 되었다. 오늘날 '별장'을 뜻하며 한국에서 '소형 공동주택'을 가리키는 빌라 역시 어원이 같다. 이 '빌리지'는 14세기 즈음 하술할 '타운(town)'보다 작은 구역을 의미하는 것으로 의미가 확정되었다.

    • '버러(borough)', 또는 '보로(boro)', '버그(burg)'는 독일어의 '부르크(burg)'나 프랑스어의 '부흐(bourg)', 고대 스칸디나비아어 'borg' 및 고대 프리지아어 'burich'와 같은 어원을 가진다. 원시 게르만어에서 비롯된 말로 '요새', '성채(burgos)'를 뜻하는 'burg'에서 왔으며, 원시 인도유럽어에서 '높은 곳'을 의미하는 'bhergh-'의 파생어이다. 다만, 이 '버러'는 오늘날에는 도시를 가리키는 일반명사로서는 쓰이지 않고, '부르주아(bourgeois)'와 같은 단어나 '에딘버러(Edinburgh)' 등 지명접사로서만 그 흔적이 남아 있다.

    • '타운(town)' 역시 그 어원이 원시 인도유럽어 시대까지 거슬러올라가는 매우 오래된 어휘이다. 가장 오래된 형태는 'dheue-'로서 '종결', '폐쇄', '닫힘'을 뜻했으며, 여기서 파생된 'dhu-no-'는 '울타리', '울타리로 둘러싸인 곳'을 뜻했다. 이는 원시 게르만어로 발전, 고대 영어 어휘 '툰(tūn)'으로 변형되어 '마을', '주거지', '둘러싸인 곳'을 의미하게 되었다. 같은 서게르만어군의 어휘 가운데 고대 독일어 '자운(zaun; 울타리)' 및 고대 네덜란드어 '투인(tuin; 정원)'과는 근연관계에 있으며, 흔한 지명 접미사인 '-ton'이나 '-don'도 같은 어원과 뜻을 가진다. 12세기쯤 '타운'이라는 어휘는 '빌리지'보다 상위의 구역을 지칭하는 것이 되었으며, 더 나중에 들어온 프랑스어 계통의 '시티(city)'에 밀려 하위 단위로 쓰이게 되었다.

    • 오늘날 가장 널리 쓰이는 '시티(city)'는 원시 인도유럽어 'key-'에서 그 흔적을 찾아볼 수 있는데, 이는 '정착'을 의미하는 어휘였다. 더 직접적으로는 라틴어시민을 가리키는 '키위스(civis)[24]'에서 유래했다. 여기서 파생되어 로마 제국 시절 (중심)도시를 '키위타스(civitas)'라고 불렀다.[25] 이 '키위타스'는 다시 고대 프랑스어 '시테(cite)'로 변형되어 오늘날 파리 시의 시테 섬을 가리키는 명칭으로 쓰였다. 이것이 마지막으로 영어에 수입되어 '버러(borough)'를 대체하면서 도시를 가리키는 일반명사가 되었다.

    • 일부 영어 지명에 남아 있는 접미사 '-스테드(stead)'나 독일어의 '-슈타트(stadt)'는 마찬가지로 게르만어에서 비롯하였고, '곳', '장소' 등을 의미하는 말이었는데, 영어 등에서는 몇몇 지명접미사 정도로 쓰인 반면 독일에서는 차츰 도시를 가리키는 말로 변하였다.
  • 상기 어휘들을 보면, 많은 수가 '성'이나 '요새'에 초점을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이는 특히 중세의 도시가 외침을 막기 위해 성벽으로 둘러싸였다는 점과 결부된다.

7.1. 대명사로서의 도시

어떤 문화권에서는 한 도시의 역사적 의미나 영향력이 워낙 큰 나머지 그냥 '그 도시'라고만 불러도 어딘지 알아듣는 경우가 있다.

8. 관련 이야기

  • 세계 최대의 도시는 중국충칭이다. 단 이는 행정구역의 인구만을 기준으로 한 것이며, 광역권을 통틀어서 본다면 최대 도시는 중국주장 강 삼각주(광저우, 선전)이다.
  • 세계 최대의 면적을 갖고 있는 도시는 중국나취시이다.
  • 세계에서 가장 작은 면적과 적은 인구를 갖고 있는 도시는 바티칸이다.
  • 예나 지금이나 유럽의 도시들은 아시아에 비해 인구가 적은 편이다. 중근세 유럽에서는 1,500~5,000명만 모여도 도시라고 했고, 르네상스 시대 피렌체는 5만~10만(학자에 따라 다르다)정도에 불과했다. 그러나 이게 전체 인구에 비해 얼마나 많은 인구가 도시에 밀집되어 사는지를 보여주는 도시화율로 보면 다르다. 서유럽의 경우 이미 중세 시기부터 도시화율은 아시아에 비해 높았다.
  • 도시일수록 외모지상주의가 성행한다고 한다.[26]

9. 도시의 종류

10. 관련 문서

11. 기타 문서

12. 나무위키에 문서가 개설된 도시 목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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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문명'과 '문명화(개화)'를 뜻하는 어휘는 각각 Civilization과 Civilize인데, Civil은 도시(city)의 어원인 라틴어 civitas에서 왔고, 이는 곧 도시를 뜻하므로, 문명화란 곧 도시화라고 할 수 있다. 그만큼 인류 문명의 요람이요 정점인 셈이다.[2] 가령 이베리아 반도의 타라코에서 로마로 배를 통해 낮에만 연안항해 하는 것도 육로로 가는 것보다 두 배 이상 빠르고, 비용은 다섯 배나 저렴하다. 오죽하면 바로 옆동네 밀을 두고서 한참 떨어진 외국에서 배로 실어다가 먹지 않으면 굶어죽을 것이라는 어느 중세 이탈리아인의 푸념도 있었을 정도.[3] 중세 영주들의 성(castle)은 거점으로서 인근 영역을 다스리는 군사·행정 중심지였기에 평소에는 영주 본인이나 영주가 임명하는 관리인, 해당 성에 딸린 기사종사, 장인 등 각종 가신과 고용인만 거주하고, 유사시 주변의 성벽으로 보호받지 못하는 각총 촌락이나 장원 등의 거주자들이 성내로 피신하는 방식으로 운영되었다. 반면 도시라면 동양과 마찬가지로 내부 성채(citadel)와 성벽(wall)으로 도시 전체를 보호하였고, 시가지가 확장되는 과정에서 보호받지 못하는 부분도 충분히 성장하면 새로이 성벽을 쌓아 보호하였다.[4] 종종 이런 식으로 버려진 피난처가 여러 세대를 지나면서 완전히 잊혀진 결과, 나중에 그곳을 다시 발견한 후손들이 그 기원을 알지 못해서 이를 두고 신화를 만들기도 했다.[5] 이들 단어는 각각 식민지(colony), 지방자치(municipality), 도시(city)의 어원이 되었다.[6] 고대 말~중세 초기 사이 도시들이 인구유출이 발생하여도 끝내 버려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근본적으로 탁월한 교통 요지에 위치한 점과 교회의 존재 덕이었다. 원래 초기 기독교는 각 도시(civitas)마다 전도를 하여 새롭게 주교구를 만들어나가면서 성장하였는데, 옛 상류층이 대거 이탈한 자리를 주교와 예하 사제단이 메꾸면서 행정능력을 보전하였을 뿐만 아니라 종교 중심지로서 도시의 가치를 존속시켰다. 특히 고대 말 많은 게르만족 이주자들은 장기간의 침공 및 이민 과정에서 설령 종파는 다를지라도 기독교도로 개종하는 경우가 많았고, 이러한 공통점은 토착민과 이주민 간 부드러운 융합에 도움을 주었다.[7] 역설적이게도 이들 도시민과 주로 충돌한 것은 다름아닌 지역교회 주교들이었다. 주교의 보호 하에서 도시기능을 유지하고 농노에서 도시민으로 신분변동하였다고는 해도, 도시민들은 더 확실한 인신상 예속에서의 해방과 자치권을 얻고 싶어했다. 따라서 주교와 도시민은 때로는 말이나 돈으로 협상하거나 무력으로 유혈충돌하면서 각자 권리를 누리고자 하였다. 이러한 기조는 군주-제후 간 암투와 교황-군주 간 정쟁(서임권), 교황-주교 간 갈등(수위권)과 맞물리면서 복잡한 양상을 보였다. 이에 관해서는 코뮌자유도시 문서 참고.[8] 이때를 모티브로 삼은 작품이 늑대와 향신료. 중세 도시 관련 내용은 중세 또는 늑대와 향신료의 상업 관련 고증 항목, 특히 자유도시코뮌 문서를 참조하자.[9] 다만, 이러한 구분이 반드시 내성과 외성이라는 형태로 나타나지는 않았다. 좀 더 정확하게는 구시가지신시가지의 형태로 나타났는데, 종종 기존 시가지 인근에 새로운 시가지가 형성되고, 시가지가 확장되고 새로 성벽을 쌓는 과정에서 양자가 합쳐지게 되었으며, 더러는 한 쪽이 다른 쪽을 흡수하기도 했다. 가령 아미앵의 경우는 염색산업의 발달로 구시가지 바깥으로 신시가지가 확장되어나간 사례이고, 생캉탱의 경우는 구시가지 인근에 새로 신시가지가 탄생하였다가 구시가지가 신시가지로 흡수된 사례이다. 특히 후자는 오히려 옛 시가지인 베르망두아 쪽이 생캉탱으로 흡수되어 소멸하면서 도시이름이 아닌 지방이름으로 바뀌게 되었다.[10] 이는 현대 사회까지 계속되고 있다. 도시의 땅값이 올라가느라 못 사는 사람들은 농촌으로 밀려나고...이촌향도, 귀농 등등의 단어의 뜻을 생각해보자.[11] 중세 내내 로마 제국 그 자체를 상징하는, 도시의 대명사이자 명실상부 지중해-유럽세계 최대도시였다. 그래서 현지에서는 "그 도시(η Πόλη)"라고 불렀고, 바랑인 친위대로 근무하던 북유럽 노르드인들은 "대도시(Miklagarðr)"라고 불렀다.[12] 그러나 지형상의 여건으로 콘스탄티노플도 엄격한 바둑판식 도시는 아니었다. 고대 로마의 계획도시도 완전히 허허벌판에 지어지는 게 아니라면, 부분적으로는 옛 거주지의 흔적이 남고는 하였다. 당연하지만, 인구가 늘어나면 도시로 삼기에 좋은 곳부터 이주하거나 발전하기 시작하였고, 도시를 건설할 때도 무주공산보다는 이미 거주지인 곳을 개발하는 것이 더 효율적이었기 때문이다. 오히려 정복지 안정화 차원에서 갈리아나 라인강변 게르마니아에도 식민이주를 위해 대뜸 도시를 지어대던 로마가 비범한 것이다.[13] 나머지 4개 기구는 유럽연합 집행위원회, 국제노동기구, 유엔식량농업기구, 세계은행, OECD이다.[14] 예컨대, 라스베이거스 시는 물과 전기를 수 십 km 떨어진 후버 댐에서 끌어온다.[15] 지금도 그 수도교가 남아 있다. 이 수도교는 스페인, 프랑스 등지에 있다.[16] 아무리 물을 끌어와서 사용 할 수 있다고 해도 이 조건이 제일 큰 영향을 주는지 지금도 세계적인 대도시나 국가 수도들의 대부분은 강의 중,하류 부분에 위치하는 경우가 많다. (더불어 바다까지 가까운 경우도 많다.) 다만 이런 경우는 아주 먼 고대부터 사람이 살았던 곳들이다.[17] 파리는 센 강의 시테 섬에서 시작되었다. 노트르담 성당이 있는 그 섬 맞다.[18] 당연하겠지만 당시의 강대국(카르타고 등등)들은 방어를 먼저 하고 상업을 발달시킨다. 물론 교류에 유리한 곳은 방어에 돈이 많이 들지만 그정도야...[19] 현재에는 전문화된 분과로 발전한 학문들이 과거에는 개화되지 못해 철학이나 사상과 구분되지 않은 경우가 있었다. 종교를 이용해 사회의 질서를 유지하는 것처럼(사막 지역의 종교에서 물이 많이 필요한 돼지를 금지시키는 것처럼) 중요하기는 한데 이유를 모르거나 다른 사람에게 설득 시켜야 할때 교리와 규범을 만들고 그것들을 모아 하나의 사상과 세계관을 만드는 식. 나중에는 반대로 그 세계관을 바탕으로 사건을 해석하는 것을 넘어서 그 사상을 바탕으로 일을 처리하게 된다.[20] 산업 회로, 금융 회로 등등[21] 전근대 정주지를 가리킬 때는 좀 더 예스럽게 '촌(村)'으로 번역하기도 한다.[22] 실제로 과거에는 도시에 상응하는 정주지였다. 예컨대 조선시대 읍성의 주요 소재지는 변방 군사거점을 제외하고는 꽤 큰 고을들이었다.[23] 고전 라틴어로는 '윌라', 교회 라틴어로는 '빌라'라 읽는다.[24] 고전 라틴어로는 '키위스', 교회 라틴어로는 '치비스'라 읽는다. 영어로 시민을 뜻하는 '시티즌(citizen)'역시 여기서 유래했다.[25] 초기 기독교 교회는 이들 도시의 주교 교회를 중심으로 발전하였기에 '키위타스'는 종종 '주교구'로 번역되기도 한다.[26] Plaut, V. C., Adams, G., & Anderson, S. L. (2009). Does attractiveness buy happiness?“It depends on where you’re from”. Personal Relationships, 16(4), 619-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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