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음이의어에 대한 내용은 차이나타운(동음이의어) 문서 참고하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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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이나타운의 상징인 패루(牌樓).[1] 인천 차이나타운.[2] | |
한국어 | 차이나타운, 화교촌 |
중국어 | 唐人街[5], 華埠[6], 中國城[7] |
영어 | China Town |
일본어 | 中華街, チャイナタウン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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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차이나타운은 전통적 중화권인 양안삼지(중국 본토, 대만, 홍콩/마카오) 이외의 나라에서 해외 거주 중국인, 대만인 혈통의 화교들이[8] 집단적으로 모여서 사는 곳을 일컫는 말이다.화교 네트워크가 광범위한 만큼 전세계 각지에 분포하고 있다.
중국어에서는 주로 당런지에(唐人街/당인가)라 부른다. 여기서 당런(唐人/당인)은 물론 중국 당나라 사람이 아닌 현대 중국인, 대만인이다. '고려'나 '조선'이 'Korea'의 의미로 현대 한국과 해외에 있는 교포의 범칭으로 쓰이는 것과 똑같다. 그래서 동명의 영화도 중국어 제목이 당인가다.
한편 일본에서는 츄카가이(中華街/중화가)라고 부르는데 양안삼지(중화권)에서 쭝화지에[9](中華街)라 하면 전 세계의 차이나타운이 아닌 요코하마, 고베, 나가사키 등 일본 속의 차이나타운만을 가리켜 쓰는 편이다.
영어권에서는 물론 차이나타운(China Town)이며 한국은 화교의 이주 역사가 짧다 보니 영어인 차이나타운을 그대로 쓴다. 한자로는 중화가(中華街)를 쓴다. 사실 한국어로는 차이나타운으로 붙여서 쓰는 것이 용법상 맞다.
해외에선 화교들의 영향력이 강해지고 부를 축적하여 경제적인 실권자가 되자 화교들의 거점이 되었다.
한 예로 서양에서 가장 영향력이 강한 차이나타운은 미국의 샌프란시스코와 영국 런던, 페루 리마 차이나타운이며 아시아에선 일본의 요코하마 차이나타운/고베 차이나타운[10] 및 나가사키 차이나타운[11], 그리고 싱가포르, 쿠알라룸푸르, 방콕의 차이나타운이 손꼽힌다.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차이나타운은 필리핀의 수도 마닐라에 있는 비논도(Binondo)라는 지역인데 1590년대 당시 필리핀을 식민 지배하던 스페인이 가톨릭으로 개종한 후 피난해 온 푸젠성 및 광둥성 출신 중국인 이민자들을 위한 자치지구를 마련하기 위해 건설했다.
하지만 이들은 이후 멕시코 및 쿠바, 푸에르토리코로도 재이주했다. 이런 역사 덕에 필리핀 화교들은 대거 스페인화되어 성명부터 스페인어이고 가톨릭을 믿으며 스스로를 스페인인으로 여기게 되었다. 호세 리살의 가문이 스페인화된 화교 가문이다.
2. 역사
최초의 시작은 북송 시기 해외무역을 하던 무역상들의 중간 보급소였다고 하며 일반적으로 알려진 것은 청나라 말기에 노동자 계통의 한족 중국인들이 해외에서 거주하는 장소이다.아편전쟁 패전 후 청에서 쿨리를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 오세아니아, 남아공, 말레이 반도 등으로 송출하면서 해외로 이주하는 중국인들이 생겨났으며 이들 중엔 호키엔[12] 및 광동 지방 출신이 가장 많았다.
특히 멕시코, 쿠바, 캐나다, 푸에르토리코, 페루 등 아메리카와 싱가포르, 말레이시아 등 해협식민지에 쿨리가 대거 들어갔으며 홍콩이 영국의 영토가 된 후 영국, 호주, 뉴질랜드로도 화교들이 많이 유입되었다.
현재는 원래 화교를 송출하던 중화민국이나 노동자를 송출하는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에서는 화교의 현지화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중화민국의 노력 덕에 차이나타운에 가면 생각보다 현지화된 모습과 전통 문화가 보존된 모습도 보인다.
그러나 중화인민공화국은 정작 전 세계 자원개발 및 인프라 투자사업인 일대일로를 진행하는 과정에서 현지인은 전혀 고용하지 않고 중국인 노동자만 쓰고 중국산 원자재만을 사용하면서 헛수고한다는 비판을 받는다.
과거 한국이 아라비아반도의 여러 공사 현장에 일할 현지인 노동자나 기술자가 없어서 한국인 노동자나 기술자를 쓴 경우와 다르게 아프리카나 자원개발을 한참 하는 파키스탄 같은 다른 개발도상국에는 싼 인건비 및 실업자인 현지인들을 얼마든지 써도 되는데도 불구하고 꼭 중국인 노동자를 데려가니 반중 감정을 부채질한다.
물론 이 경우는 어디까지 중국 대륙에서 진출하는 노동자, 기업의 경우고 남아프리카 공화국, 호주, 뉴질랜드 및 싱가포르[13] 등에서 오래 살아온 화교들은 모국을 중화민국으로 인식하며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은 인정조차 안 한다. 당연히 현지 국적을 취득한 지 오래며 단지 남아공 화교 및 중국계 호주인들의 고향이라고 할 수 있는 푸젠성, 광동성이나 대만 및 홍콩에 지인 및 가족 등 연고가 있을 뿐이다.
그리고 똑같이 화교가 많이 건너간 동남아시아의 싱가포르 역시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대게 말레이시아 및 브루나이 친척 및 지인 등이 있을 뿐이다. 애초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정체성을 싱가포르인(Singaporean)에 두고 중국인(Chinese)으로 불리는 걸 끔찍히 싫어한다.
남아프리카 공화국 화교만 해도 광동어를 쓰는 광동인들이며 표준 중국어를 못해서 중국 대륙인과는 영어로 소통하여야 하는 처지다. 이들에게 중화인민공화국은 그냥 중국 국토를 참절한 공산비적에 불과할 뿐이다.
화교들이 일찍이 그 나라 국민으로 정착한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에서는 대규모 반화교 폭동이 여러 차례 일어나기도 했다. 안그래도 중국과 견원지간인 베트남에서는 1975년 공산화 이후 화교들을 해외로 대거 추방하여 1979년 중국-베트남 전쟁의 빌미가 되기도 했다.[14]
이런 여파로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의 화교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및 중국계 인도네시아인의 경우는 오로지 경제활동만 할 수 있고 정치계나 사법기관, 권력기관(경찰/정보국) 및 군대 등으로의 진출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물론 국적은 당연히 두 나라 국적이다. 그러나 정치계 진출 및 군입대 등은 제한되어 있는 대신 재계, 학계에서 두각을 나타낸다.
그리고 말레이시아 연방이 인종문제로 말썽을 빚자 연방 축출 직전 등 떠밀려 독립한 싱가포르는 아예 화교들이 주축이 되어 말레이인 및 인도계 싱가포르인들과 힘을 합쳐 건국한 나라다. 당연하지만 싱가포르는 인종문제로 독립한 과거에 대한 반작용으로 인종 간 화합을 강조하여 어느 인종이든 간에 사회적 지위에 아무런 제한이 없고 중국계뿐만 아니라 말레이인 및 인도계도 사회에서 꽤 두각을 나타낸다.[15]
인도네시아 화교는 한술 더 떠서 자바 섬의 화교들은 아예 중국식 성명조차 잊어버리고 현지식으로 산스크리트어 성명을 써서 인도네시아 원주민들과 구별이 불가능하며 종교가 개신교, 특히 루터교인 경우가 대부분이라 종교로만 구분할 정도다. 반면 수마트라 섬의 화교들은 아직까지 민남어를 쓰고 불교도와 개신교도가 섞여 있다.
태국이나 필리핀에서는 아예 화교가 현지에 동화되어서 시노타이, 시노 필리피노(상글레이)라 불리며 정체성을 민족이 아닌 거주지역으로 두고 현지식 이름과 언어를 1순위로 사용할 정도로 동화되었는데 대부분 푸젠성 출신이지만 민남어나 객가어를 대부분 구사할 줄 모른다. 그래서 이 두 나라에는 차이나타운이 없거나 규모가 크지 않다. 예외적인 경우가 바로 방콕의 후아람퐁역 일대다.
일본의 화교 역사는 일본 제국이 청일전쟁 후 청나라의 대만성이었던 포르모사섬을 식민지로 삼은 뒤 일본 열도에 정착한 대만 출신 한족 본성인들의 후예인데 주로 도쿄 근처인 가나가와현의 요코하마에 정착했다. 현재 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차이나타운도 요코하마에 있으며 게이한신권의 고베 및 규슈 지방에도 차이나타운이 있다. 특히 규슈에 있는 나가사키현 나가사키시의 차이나타운은 도시 규모에 비해 크며 공자를 모시는 문묘가 존재한다. 일본에서는 요코하마, 나가사키, 고베 차이나타운을 3대로 간주한다.
한국에서는 과거에는 인천역 앞과 북창동 등 인천 중구의 화교 거주 지역을 전통적으로 차이나타운이라고 불러왔으나 21세기 들어서는 서울특별시 영등포구 대림동, 구로구 가리봉동 일대 등 조선족 및 한족 중국 대륙인 거주지가 주로 차이나타운으로 불린다.
3. 한국의 차이나타운
한국에서는 고대로부터 중국인들이 드나들거나 정착하는 일은 많이 있었고, 종종 자기네들끼리 사는 이들도 있었으며, 조선후기에도 황조인이라고 해서 명나라 유민들이 대거 유입되기도 햇지만, 이들도 시간이 흐르며, 나중에 동화되었다. 조선 말기인 19세기 말 강화도 조약을 시작으로 주요 항구가 개항하며 한성 근교로 한성의 관문인 인천과 일본과 가까운 부산의 청나라 조계지에 산둥성 출신 한족 농민공들이 노동자 신분으로 대량으로 유입되어 차이나타운이 최초로 형성되었다.
하지만 한국은 이승만 정부와 박정희 정부가 화교가 해외에서 경제적인 실권을 쥐려고 한다고 생각하고 이를 안보적인 문제로 간주하여 그들을 지속적으로 탄압했다.
특히 박정희 정부가 화교에 가했던 탄압 중 하나가 1961년 외국인토지소유금지법으로 화교들의 부동산을 압수하고 소유 규모를 제한하였으며 1963년 화폐개혁[16]을 강행해 화교들이 모아온 재산을 죄다 몰수했다. 심지어 중국집 쌀밥 금지령 온갖 종류의 화교에 대한 억압이 계속되었다.[17]
한국에서는 일제강점기부터 1970년대 중반까지 서울 중구 소공동 화교촌을 중심으로 정부가 탄압으로 차이나타운을 와해시키다시피했다. 일제강점기 초기에 일제 당국은 하세가와쵸[18]를 새로 뚫었는데 이것은 용산으로의 군사 이동을 용이하게 하려는 목적도 있었지만 실제로 화교 상권을 둘로 쩍 갈라버리는 효과도 있었다.
서울시청 앞 플라자호텔 일대는 1970년대 초 재개발이 되면서 화교회관이 들어오기로 되어 있었지만 당연히 이루어지지 못히고 애물단지가 된 부지는 한화그룹이 인수하여 현재의 한화타운[19]이 되었다.[20] 일부러 중국을 크게 무찌른 민족 영웅의 이름인 을지문덕에서 따와서 을지로라 지명을 개칭한 것은 유명한 일화다.
결과적으로는 서울특별시의 보상대책을 한국 정부가 부작위를 통해 이행하지 않았고 나아가 화교 공동체가 박살난 꼴이 되었다.
국부천대 이후 화교들은 자의든 타의든 중화민국 국적이었다. 과거의 한국은 제대로 된 영주권이라는 개념이 없었으므로 화교들의 지위는 영주권자도 아니고 그냥 장기거주 외국인이었다. 영주권도 1980년대부터 본격적으로 지급되었다.
1997년 외환 위기 등을 겪으면서 해외 투자자 문제가 생기자 개선한 것도 사실이다. 이 시기부터 재한화교들이 대거 한국으로 귀화하기 시작했고 한국 여권과 대만 여권을 보유하기 시작했다.
이후 한국 정부도 대만과의 관계 때문에 화교에 대해 우호적으로 접근했는데 2003년 영주권자 지방선거 투표권, 2007년 외국인공무원 임용등의 혜택을 받기 시작했다.
특히 화교 중학교에는 군복 입은 남자 졸업생들이 입대 후 휴가 나와 인사 차 방문하는 경우도 흔했고 지금도 흔하다. 군복무까지 한 한국 화교를 한국인으로 인정하지 않을 이유도 없다.
2010년 이후로 조선족으로 대표되는 중화인민공화국 출신 신화교들이 대거 들어온 현재의 상황에서는 화교의 기준을 어디에 두느냐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중국인[21]들의 한국 내 거주 인구수와 한국 내 중국인 커뮤니티 크기를 보면 결고 작다고 할 수 없다.
부산의 차이나타운은 한국 정부의 대대적인 화교 탄압에 냉전이 끝나자 국제항인 부산항으로 건너온 러시아인, 우즈베키스탄 사람들도 많다. 신화교 구역과 전통적인 한국 화교 구역, 러시아, 우즈베키스탄 등 동구권 구역, 태국 및 인도네시아 등 동남아시아 구역이 나뉘었다.
2015년 이후 대대적 정비를 거치면서 구역이 확실히 나뉘어 사실상 서울의 이태원 같은 다국적 다문화 지구가 되었으며 치안도 부산항 북항 재정비와 함께 동구 일대가 완전히 갈아엎어져 개선되었다.
대구의 종로에도[22] 화교촌이 형성되어 있었다. 경부선 개통 이후 대구의 경제가 성장하며 자연스럽게 화교들이 유입되었고, 한국전쟁 시기를 거치며 피란민을 받아 크게 성장하였으나 위에 설명된 박정희 정부의 철퇴를 얻어맞고 몰락하였다. 지금은 화교 소학교만 남아있는 상황인데, 이것도 건물로 한 겹 둘러쌓여 있어 알아차리기도 어렵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화교들이 대다수 동화되어 흩어져서 살아가고 있거나 시내에서 장사를 하거나 둘 중 하나다.
여담이지만 6.25 전쟁 당시 대량의 중공군이 수장된 파로호를 조롱삼아 차이나타운이라고 지칭하기도 하는데 절대로 하면 안 된다. 중화민국이 여전히 존재하고 범람연맹이 유의미한 상황에서 이런 조롱은 자칫하면 6.25 전쟁에 SC지대 등으로 참전한 화교 참전용사들에게도 모욕이 되는 만큼 절대로 해서는 안 된다. 재한 화교들은 이를 굉장히 싫어한다.
재한 화교들은 1992년 한중수교를 극구 반대했으며 특히 화교학교가 중공에 의해 통제되는 것을 극히 우려했지만 주 한국 대만 대표부를 포함한 대만 정부 기관이 화교학교를 열심히 후원했고 재한 화교들의 반발이 커서 화교학교는 여전히 주 한국 대만 대표부와 가까운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그래서 화교 학교에서는 정체자와 대만식 국어를 교육하고 쑨원 초상화를 걸어놓았으며 대만의 교육 과정과 한국의 교육 과정 위주이며 중국의 교육 과정은 아예 없다.
3.1. 서울시 차이나타운
수도권에서는 2010년대 초반까지는 인천 차이나타운이 보편적으로 알려졌으며 정작 2010년대 초반까지는 서울에는 2010년대 후반 이후 대림동이 신화교 차이나타운으로 대두되기 전까지 차이나타운이 없다고 잘못 아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러나 마포와 서대문 일대에 잔존한 중화민국계 구화교 공동체가 있다.[23]서울시의 전반적 추세를 따라 차이나타운 밖 다른 동네에 거주하는 사례도 많고 인천, 안양, 수원, 성남, 의정부 등 근교의 타 지역으로 간 사례도 있다. 특히 차이나타운이 실제로 보존된 수도권 도시인 인천으로 대거 이사를 가 버렸다.
서울시 마포구 연남동과 서대문구 연희동 근처에 화교들이 모여 사는 공동체가 있으며 이 지역의 중국음식점 거리는 잡지나 인터넷에 여러 번 오르내리면서 새로운 명소로 자리잡았다.[24]
1992년 한중수교 이후 한국으로 이주한 많은 조선족과 중국 대륙 출신 한족[25][26]이 영등포구 대림동과 구로구 구로동 일대에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음식점이나 가게가 들어서고 이 일대의 분위기가 중국 대륙과 비슷해졌다.
조선족은 한국계 혈통이지만 엄연히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을 가지고 중국에 동화된 외국인이기 때문에 차이나타운이라고 보기에 무리가 없다. 그 규모도 상당히 커서 이 일대에는 중국어 간판이 훨씬 더 많을 정도이며 2017년 이후 차이나타운이라는 명칭까지 쓰면서 한국에서 가장 큰 중국인 밀집구역이 되었다.[27]
2017년 이후부터는 이 일대를 공식적으로 차이나타운이라 부르기 시작했으며 훠궈[28], 양꼬치, 마라탕과 동북식 요리를 맛보기 위해 찾아오는 한국인들도 많다. 동북3성에서 온 조선족들의 특성 상 곁다리로 양꼬치 등 몽골 요리의 영향을 받은 만주식 요리를 많이 취급한다. 광진구 화양동, 자양4동의 저개발지역도 영등포구 대림동이나 구로구 가리봉동과 비슷한 젠트리피케이션을 맞게 된다.
청량리역 앞 경동시장 쪽에도 화교들이 살고 있는데 이들 중 많은 수가 한국 여권만 가지거나 한국 여권과 대만 여권을 동시에 소유하지만 일부는 대만 여권만 들고 있는 사람들도 있다.
2020년대에는 중국 대륙 유학생이 많은 경희대학교 앞 회기동에도 차이나타운이 조성되고 있다. 이미 한글 간판보다 간체자 간판이 많이 보일 정도다.
요즘 중국 인터넷 커뮤니티에선 대림동의 조선족 거주 차이나타운이 진짜이고 인천의 원래 차이나타운은 가짜라고 부르는데 그 정도로 대림동 차이나타운은 한국어를 전혀 모르는 중국인이 의식주 및 일자리까지 해결할 수 있는 동네다.
한편 2020년 코로나 판데믹 사태 및 그로 인한 중국의 제로 코로나 탓에 조선족들 중에서 한국을 떠나 중국으로 되돌아간 사람들이 많아서[29] 서울 대림동/가리봉 외 조선족 거주지들은 대거 거주민이 빠져나가게 되었으며 대림동과 가리봉동 일대만 남다시피했다.
이렇게 되면 수도권 차이나타운은 원조 중화민국 차이나타운인 인천 한 곳과 소공동 차이나타운, 그리고 중화인민공화국 신화교 차이나타운인 대림동(서울)과 회기동까지 네 곳이 남을 듯하다.
3.2. 인천 차이나타운
자세한 내용은 차이나타운(인천) 문서 참고하십시오.한국에서 인천과 차이나타운 하면 떠오르는 대표적인 관광지다. 전국 최대의 차이나타운으로 2위인 서울과 부산의 차이나타운도 이에 못 미친다. 인천역에서 내리면 길 건너편에 자리한 중화가(中華街)라고 쓰인 차이나타운의 패루를 볼 수 있다.
수도권에서 사실상 차이나타운은 서울이 아닌 여기만 있다고 인식하는 사람도 많다. 그럴만한 게 수도권에서 제대로 차이나타운 구실을 하는 곳은 여기 하나뿐이며 역사적으로도 정통성이 가장 높다.
대림동 등과 달리 중화민국 국적자 출신 위주[30]의 화교들이 거주한다.[31]
1949년 국부천대 이전에 이주한 대륙 시절 중화민국 출신 구화교들이 거주한다. 서울시 행정구역 내에 남은 사람들이나 타 지역 거주민 일부와 달리 이들은 대개 귀화를 택했는지라 한국 국적, 중화민국 국적을 모두 가지거나 둘 중 하나로 보통 귀화한 한국 국적을 가진다.
인천은 개신교 교세가 큰 도시라 인천의 한국 화교들은 일찍히 개신교, 가톨릭[32]을 믿어와서 종교적으로도 인천의 전체적인 분위기를 따른다. 물론 도교 사원도 존재한다. 참고로 인천 차이나타운은 조선족이나 중국 대륙인은 거의 없다.
여기선 청천백일만지홍기를 쉽게 볼 수 있으며 중국인 거주지에 대한 세간의 부정적 선입견과 달리 치안도 최고 수준이며 사람들도 친절하고 흔한 소란조차 없는 곳이다. 앞서 언급한 대림동 등과 달리 정체자를 사용해 차이가 확 난다. 오히려 대만의 분위기 혹은 영어권에서 가장 깔끔하고 안전한 싱가포르 차이나타운과 분위기가 비슷하며 밤 늦게까지 다녀도 전혀 문제가 생길 일 자체가 없다.
국공내전 - 국부천대 - 6.25 전쟁 등을 겪은 재한 화교들은 반대륙 정서가 강하다. 당장 그 공화춘[33]은 6.25 전쟁으로 큰 참화를 겪어 가게가 망할 뻔했던 적도 있었으며 많은 화교들이 중공군과 싸우려 국군에 합류했다. 특히 재한화교 국군 장병들은 중공군 포로들을 심문하는 일에 투입되었다.[34]
거기에 더해서 중공군에서 내심 중국공산당을 따르지 않았던 반공포로들이 대만과 함께 한국을 정착지로 택하며 재한화교 사회에 녹아들기도 했으니 말이 필요없다.
애초에 재한화교들은 중화민국에 정체성을 두고 자신들이 진짜 중국인이라고 여기며 중국 대륙인을 중국인인 척 하는 오랑캐라고 얕잡아본다. 중국 대륙인보다는 대만인이나 홍콩인 등 타 중화권이나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미국인, 중국계 태국인, 중국계 캐나다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등 국외 중화민국 계열 화교들과 더 가깝다. 당장 대한민국의 화교학교도 중국이 끝내 장악하지 못하고 현재도 대만에서 관여한다.[35] 더 나아가 일각의 중화권에 잘못된 인식에 대한 반발로 청천백일만지홍기를 대거 달게 되었다.
2020년대에도 호황을 누리고 있으며 서울의 중국 대륙인 거주지의 거주민이 중국의 제로 코로나로 인해 중국 귀국을 택하거나 한국의 타 지역으로 이주하면서[36] 가리봉동이 축소되었다. 그래서 정통 차이나타운으로서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거기에 수도권 전철 수인·분당선과 강남 등으로의 광역버스 확충으로 서울 동부권이나 수원, 용인, 오산, 성남 같은 경기 동남부권 등 기존 인천에 오기 힘들던 경기도 동부 사람들도 찾게 되어서 더욱 미래가 밝다.
3.3. 부산 차이나타운
부산 동구 초량동에 있는 차이나타운이다. 정식 명칭은 상해 거리로 1993년 부산과 중국 상하이가 자매결연을 한 것을 기념해 지었는데 정작 이 상하이 쪽과는 직접 관련이 없다. 위치는 부산역 앞 도로 건너편이다. 부산역 광장에서 나오면 중국풍이 강한 입구를 쉽게 찾아볼 수 있다.부산 차이나타운은 19세기 청나라 조계지 청관부터 시작하는 긴 역사를 가지고 있지만 현대에 들어오면서 화교들이 동화되며 부산 내 타 지역[37], 울산, 창원, 김해, 양산, 거제 등 근교로 나가서 순수 화교 인구의 숫자는 줄어들고 있고 그 자리는 부산에 거주하는 외국인 이민자들이 채우고 있다.[38]
위치가 위치다 보니 주변은 유동 인구도 많고 서울 수도권인 명동이나 인천에 비해 순수한 차이나타운이라기보다는 더욱 세계화[39]되어 섞여 있는 분위기가 강하다. 다만 부울경은 수도권보다는 조선족이 적은 편이라 이 거리도 조선족보단 러시아, 중앙아시아 등 구 소련 국가의 느낌이 더 많이 섞여 있어 러시아계 한국인 등 동유럽 주민들의 비중이 더 높다.
중화민국 산둥성 출신이 많은 인천 화교와 달리 부산에 거주하는 화교들은 대만 섬 및 중국 남부, 그리고 일본 화교 출신 이주민들이 많으며, 특히 일본 화교 출신인 사람들은 부산 차이나타운의 화교 공동체보다는 부산 내 일본인 공동체에서 어울린다. 그래서 산동, 북경 등 중국 북방 지역 출신인 일반적인 재한 화교들과는 차이가 있다.
이렇듯 인천 화교들과는 근본이 다르기 때문에 여기에는 중화요리 음식점도 서울하고 달리 만두 전문점임을 강조하는 식당이 많고 심지어 중국 음식점이라도 짜장면을 아예 팔지 않는 곳도 몇몇 있다.[40] 특히 만두를 전문점으로 파는 신발원[41]이나 일품향이 대표적이다. 그래도 아무 것도 모르고 찾아온 관광객이나 기타 부산 다른 동네에서 온 주민들 성화에 못 이겨 대부분은 짜장면이나 하다못해 짬뽕이라도 팔긴 판다. 특히 인천 차이나타운에 익숙한 관광객들이 당황하는 경우가 많아서 요즘은 짜장면을 파는 가게가 대부분이다.
이름대로 과거에는 미군 수요도 많았지만 지금은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등 구소련권과 고려인, 한중수교 이후 연변에서 넘어온 조선족, 한족 중국 대륙인으로 거의 대체되고 있다.[42]
1990년대 이후로는 러시아인, 우즈벡인과 조선족, 그리고 한국인 관광객이 더 많은 분위기이라지만 화교 학교가 존재하는 등 여전히 화교들이 있으며 화교들이 많이 거주하던 인근 중구 영주동 충효촌은 화교들이 주축이 되어 2006년에 전국 최초 화교 아파트로 재건축된 곳이다.#
필리핀, 인도네시아, 태국, 베트남 등 동남아시아 사람들도 있고 몽골 요리, 카자흐스탄 요리, 우즈베키스탄 요리 등 실크로드 쪽 요리, 튀르키예 요리나 베트남 요리, 말레이시아 요리, 인도네시아 요리, 태국 요리, 필리핀 요리 등 동남아시아 음식점까지 있는 등 차이나타운이라기보다는 서울의 이태원동처럼 다소 복합적인 분위기가 나며 유라시아타운이라고 불러도 무방할 정도다.
동유럽 국가들에서 많이 먹는 우즈베키스탄 요리, 조지아 요리[43], 카자흐스탄 요리들이 포함된 러시아 요리를 파는 식당이 많으며 고려인들의도 역시 많다. 케밥만 해도 흔히 찾아볼 수 있다. 물론 한국식 중화 요리나 본토식 중화 요리도 많다.
2014년 들어 부산 차이나타운은 보도블럭, 간판 정비를 대대적으로 벌여 매우 깔끔해졌고 특히 내일로 시즌 등 성수기에는 부담없이 활보할 수 있는 분위기가 되었다.[44]
부산역이 바로 앞이니 접근성도 상당히 좋고 중화권 전통 간식거리인 탕후루 등이나 러시아인들을 통해 들어온 달달한 중앙아시아식 간식거리들을 살 수 있는 등 특색도 조금 있어 관광지 중 하나로서의 가능성은 있다.
그러나 여전히 늦은 밤이 되면 분위기가 한껏 으슥해지기 때문에 저녁 이후에 혼자서는 가지 않는 것이 좋으며 이 곳의 식당에 간다면 저녁보단 점심 때 찾도록 하자. 실제로 이 곳은 하절기[45]는 20시부터 익일 5시까지, 동절기[46]는 19시부터 익일 6시까지 한국인은 가급적이면 통행을 자제하는 것이 좋다.
영화 올드보이에서 주인공 오대수(최민식)이 실컷 먹었던 그 군만두집 장성향이 여기 있다. 물론 영화에서는 지역번호 ‘02’로 나오는 등 서울에 있는 것처럼 연출되었다.[47]
직원에 따르면 아직도 일본, 대만, 미국, 유럽, 싱가포르,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서 관광오는 해외 관광객들이 ‘올드보이 만두’를 찾아 일부러 오기도 한다. 영화 내 사랑 내 곁에에도 나온다. 부산 차이나타운과 뒤섞여있는 러시아 거리 부분도 사생결단, 태풍 등 영화 단골 촬영지이다.
최근 차이나타운과 붙어있는 러시아 거리로 들어가는 큰 길 쪽[48]에 다양한 외국인들이 방문하는 지역들이 몇몇 존재한다. 이러한 지역들은 상대적으로 러시아 거리와는 달리 미국적인 모습이 많이 드러난다. 실제로 부산 해군기지에 주둔하는 주한미군이나 방문하는 영국군, 캐나다군 등 우방국 군대들이 다양한 지역들에 많이 방문하고 선호한다.
이렇게 대문은 각각 따로 만들었지만 들어가면 중국계 상점과 러시아계 상점이 섞여있는 분위기라 구역 구분의 의미는 없으나 술집과 환락가[49]가 꽤 밀집된 탓에 아예 청소년 통행제한 구역으로 지정되어 있다.
부산 내 중국계 러시아인과 중국계 동남아시아인은 각각 러시아인 공동체와 동남아시아인 공동체에서 어울린다. 전자는 북방 한족 혈통인 점에서는 일반적인 재한 화교들과 비슷하나 정서적으로는 조상 대에 러시아화되어 러시아와 더 가깝고, 후자는 일반적인 재한 화교들과도 어울리지만 정서적으로는 동남아시아 쪽에 더 가깝다. 애초에 쓰는 말부터 서로 다르다.
3.4. 대구 차이나타운
한국 제3도시인 대구에도 있으나 수도권의 인천처럼 크기는커녕 아랫동네인 부산과 같은 패루도 없을 정도로 규모가 굉장히 작다. 오히려 제3도시의 차이나타운이라는 것이 민망해질 정도다.대구 차이나타운의 존재가 없다시피 한 것은 일단 동성로와 차이나타운이 겹쳐 있고 서울 및 부산이나 인천에 비해 화교 수가 적기 때문이다. 그래서 이들에 비해 유의미한 모습을 보이지 않는다.
대부분의 대구 지역 화교들이 대구 내 타 지역[50]으로 이사거거나 포항, 구미 등 인근 산업 도시 혹은 대구의 위성도시인 경산 등으로 이사가기 때문에 차이나타운이라는 개념이 상대적으로 약하다.
더구나 여기는 약전골목이 같은 블록 내에 인접해 있고 동성로가 근접해 있어서 의미가 거의 없다. 대신 대구화교학교, 차, 문방사우 판매점, 중화 요리 식당은 어느 정도 있는데 그게 전부다. 어떻게 보면 자연적으로 대구의 지역사회에 흡수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렇지만 대구 종로는 차이나타운을 지칭하는 말이 되었고 차이나타운 출신의 화교들이 근처에 동성로나 로데오거리에다 가게를 차려 성공한 경우도 있다. 중화 야끼우동(볶음짬뽕)의 원조인 중화반점[51]이나 태산만두가 유명하다.
교동시장, 대구역, 칠성시장 등에 자리잡은 화교도 있는데 이게 차이나타운이 대구의 최대 도심지인 동성로, 중앙로, 반월당 근처인 까닭이다. 대구 동성로는 서울 명동, 홍대입구역 및 부산 서면과 함께 유동인구가 굉장히 많은 곳이다.
2007년부터 10월 하순에 대구화교중화문화축제가 매년 개최되었지만 2020년에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19 때문에 개최가 중단되었고 2024년까지 이어졌다.
대구와 부산이 같은 경상도권이라서인지,부산화교 출신들이 있다.
3.5. 사라지거나 무산된 차이나타운
- 수도권에는 보편적으로 알고 있는 인천은 물론 서울시에도 원래 차이나타운이 있었다. 명동 주한중국대사관[52] 일대의 거리가 사실상 차이나타운이었고 현재의 회현역 근처 남대문시장 근처부터 서울특별시청 앞까지 화교들이 집단으로 거주하고 있었다.
그러나 앞서 이야기한 화교 탄압이 가장 강하게 행해진 곳이 바로 이곳이었기 때문에 재개발 붐과 더불어 1960년대 말 ~ 1970년대 초의 협잡성 재개발 정책[53] 덕에 대부분의 화교들이 버티지 못하고 뿔뿔이 흩어졌다.[54]
흩어진 화교들은 이민 가거나 대만으로 되돌아 가거나 귀화해서 다른 지역, 특히 수도권에서 차이나타운이 유일하게 보존된 인천으로 대거 갔으며 같은 서울에서도 그나마 차이나타운이 잔존한 서대문구, 마포구 쪽으로 대거 이사갔다.[55]
지금은 한성화교소학교와 일부 수입서적상과 중국 요리 전문점, 중국 전통 상품 전문점이 남아있어서 옛 자취를 그나마 확인할 수 있다. 서울의 중앙우체국 옆 골목을 찾아가면 된다.[56]
- 창원에도 차이나타운이 있었다고 하는데 현재의 창원시 마산합포구 창동 부림시장 일대가 바로 차이나타운이 존재했던 곳이다. 하지만 향토사 전문가들만 알 뿐 마산 사람들도 잘 모른다. 마산의 차이나타운은 경술국치를 전후하여 존속하다가 1930년대 원마산[57]이 커지면서 조선인 상권에 흡수되었으며 현재는 조선족 공동체가 있다.
- 고양은 킨텍스 옆 시유지에 한류월드를 조성하는 계획을 갖고 있었다. 진짜 한국 화교들이 현실적인 이유로 귀화를 택한 현재 타겟은 중화인민공화국의 한족 부유층으로 보인다. 하지만 결국 무산되고 롯데쇼핑의 빅마켓이 들어섰다.
- 제주특별자치도에는 중국 관광객들의 급유입과 중국자본의 투자로 인해 신제주의 한 거리[58] 이름이 중국 바오젠[59]그룹이라는 의약회사와의 투자기념으로 아예 이름이 '바오젠 거리'로 바뀌기도 했다.
이름뿐이 아니라 중국어 간체자 간판으로 도배된건물이 늘어나 제주도의 차이나타운이 될 가능성이 높아 보였으나 2010년대 말 한한령으로 인한 한중관계 갈등, 제주도민들의 반발로 인해 제주어인 '누웨마루거리'로 다시 개명되었다.
3.6. 조성 예정 지역
제주도는 2010년대로 중국인들 유입이 늘어나면서 차이나타운이 새로 생길 낌새에 있으며 각 지자체에서도 중국 자본 유치를 위해 차이나타운 건설을 계획 중이지만 강원도 정동진 차이나타운을 제외하곤 실제로 추진되는 곳은 없다. 이러한 차이나타운은 주로 관광지 형식으로 개발하지 흔히 알려진 형태인 중국인 집단거주주역으로 개발하지는 않는다.평택은 2018년 7월 기준 전세계에서 가장 큰 차이나타운을 만들 계획이었지만 경기경제자유구역에서 못하게 만들었다. 강원도에서도 중국복합문화타운을 지을 예정이었지만 많은 반발로 인해 무산되었다.#
4. 해외의 차이나타운
코리아타운이 없는 지역[60]에서는 한국인 동포들도 자주 찾는다. 대형 쌀포대, 한국 식품[61] 또는 한국 식품을 대체하는 식품은 차이나타운에서 구할 수 있기 때문이다.화교 인구가 많은 캐나다에는 주에 있는 대도시마다 있다. (캐나다 차이나타운 목록) 단, 예외가 하나 있지만. 특히 토론토에는 중국 슈퍼마켓이 많고 라면, 과자, 농산물 중 한국 상품을 많이 취급해 한인들도 많이 찾는다. 한류 열풍 때문인지는 모르지만 웬만한 한국 식품들을 상당수 비치해 놓기도 하고 심지어 아모레퍼시픽과 같은 한국 화장품 상점도 입점하여 있다.
일본은 요코하마와 고베, 나가사키 등지에 차이나타운이 조성되어 있다. 그 중 요코하마 차이나타운은 일본에서 가장 대표적인 차이나타운으로 규모는 일본 최대를 넘어 세계 최대 수준이다.[62]
라틴아메리카에는 멕시코와 베네수엘라, 쿠바는 한인 가게는 없어도 차이나타운은 작게나마 있는 동네도 많아 아쉬운 한국인이나 일본인들은 일단 화인촌으로 가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이 지역 스페인어에서 Chino는 넓은 의미로는 동양인을 의미한다.
멕시코는 멕시코 시티의 바리오 치노(Barrio Chino), 태평양에 면한 메히칼리의 라 치네스까(La Chinesca)가 차이나타운으로 유명하고 미국 국경 티후아나의 라 메사(La Mesa)에도 차이나타운 구역이 있다.
중국계 멕시코인들은 북미, 서유럽, 오세아니아와 달리 멕시코 현지인들과 혼혈된 경우가 많아서 외양으로는 다른 멕시코인과 구별이 안 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먼 조상이 화교라고만 언급된다.
멕시코만 이런 건 아니고 쿠바 아바나의 차이나타운처럼 이름만 차이나타운이고 실제로 중국계 인구가 거의 거주하지 않는 경우도 있다.[63]#
쿠바로 이민 왔던 중국계 인구가 거의 다 남자다 보니 다 혼혈되고 동화되어 버렸기 때문이다. 그래서 지금은 한국계 쿠바인과 같이 모어가 스페인어이고 쿠바인이라는 정체성이 있다.
페루 리마와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 및 상파울루, 브라질리아에도 차이나타운이 있는데 페루는 여기에 광동어 라디오 방송국까지 있다. 페루는 다른 나라와 달리 가족 단위로 건너와서 중국계 혈통과 함께 광동어가 보존되어 있다.
코스타리카에도 중국계 인구가 어느 정도 있다. 글리 출연 배우인 해리 슘 주니어가 코스타리카 출신이다.
전술했듯 페루는 그래도 가족 단위 이민이 많았기 때문에 쿠바보다 사정이 나아서 동양인 외양에 이름만 스페인식이고 가톨릭 믿는 화교가 대부분이다. 애초에 광동어가 보존될 정도로 타 국가보다 사정이 나았던 곳이 페루였다.[64]
치안이 안 좋은 동네로 인식되는 경우가 많은데 사실 이게 한국만 그런 게 아니고 다른 나라에서도 서구권은 같은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부분 밤에 차이나타운을 돌아다니는 건 어지간하면 피하라는 분위기다. 그나마 싱가포르가 제일 안전하다.
북미 국가들의 커뮤니티에서는 종종 "차이나타운에서 사는 게 안전할까요?"라는 글이 올라올 때가 있으며 실제로 뉴욕 등 몇몇 도시의 차이나타운은 치안 안 좋기로 악명 높은 경우가 많다. 대표적으로 뉴욕이나 시카고의 차이나타운 등이 있다. 특히 뉴욕 맨해튼 차이나타운은 더럽고 우범지역으로 이름나 있다. 할렘가[65]보다 더 위험하다고 말하는 사람도 있을 정도다. 물론 일부 예외적인 사례도 있지만 상당수는 위험하다고 한다. 뉴욕 차이나타운의 아이러니한 부분이 하나 있는데, 뉴욕 차이나타운의 중심지인 채텀 스퀘어에는 임칙서의 동상이 있다. 미국과 중국의 우호 관계를 강조하기 위해 세운 것이다. 그런데 앞서 언급했듯이 뉴욕 차이나타운은 우범지역으로 악명높아서 동상 주변에 마약 중독자들이 널부러져 있을 지경이다.
애초에 미국이나 캐나다 등 북미의 차이나타운은 화교들을 몰아넣는 게토였으며 특히 반화교 폭동과 학살도 벌어졌던 곳이다. 그래서 미국사와 캐나다사에서 과거사 반성을 할 때 화교에 대한 학살 및 폭동 사건은 무조건 나온다.
물론 북미라고 다 그런 것은 아니고 미국 보스턴이나 쿠바 아바나에 있는 차이나타운 등은 많이 긍정적으로 바뀐 경우로 건전한 관광지가 됐다. 시애틀은 늦게 개척되고 중국계 미국인, 대만계 미국인이 많아서 생각보다 괜찮다.[66]
따라서 앵글로아메리카나 호주, 영국 등의 차이나타운은 대체로 치안이 안 좋은 곳이 많으나 슬럼가 정화 노력에 이어 정화가 진행되고 있으며 북아메리카라도 차이나타운이 관광지화 된 보스턴, 밴쿠버, 시애틀 등은 또 예외다.
덧붙일 점은 해외의 차이나타운을 가고싶으면 반드시 잘 알아보고 위험한 곳은 피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래 언급되는 싱가포르는 위험한 곳이 없지만 북아메리카와 라틴아메리카, 영국 등은 좀 주의해야 한다. 아메리카에서도 보스턴, 리마, 아바나 등 괜찮은 곳들도 있다. 그냥 막연히 '차이나타운'은 다 이렇겠지 저렇겠지 고정관념을 버리고 방문하고자 하는 동네별로 개별 조사해야 한다.
남아공 요하네스버그에도 차이나타운이 있으며 이들은 광동어를 자신들끼리 쓰고 밖에선 영어를 쓴다. 1996년 황추생이 주연한 괴작 홍콩 영화로 아프리카 귀국자가 에볼라 바이러스를 홍콩에 퍼뜨린다는 엽기적인 내용인 에볼라 신드롬(Ebola Syndrom) 이라는 호러 코미디 영화의 첫 부분이 요하네스버그 차이나타운이다. 이 영화에선 남아공의 크루거 국립공원에 에볼라가 발발하는데 주인공인 황추생이 어쩌다가 바이러스 보균자가 된 상태로 홍콩에 들어오고 그가 중국 요리 레스토랑 종업원이었기에 거기서 음식을 먹은 현지인들에게 감염이 떼로 일어나 난리가 난다. 영화 자체는 전형적인 슬래셔 호러 + 코미디와 성적 묘사가 짙은 B급이다.
말레이시아도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인구가 많아서인지 차이나타운이 전국적으로 많다. 당장 쿠알라룸푸르, 페낭, 조호르바루, 말라카, 이포, 페락 등만 해도 중심지에 한자 간판이 많으며 차이나타운도 싱가포르만큼은 아니지만 크다. 상술한 대로 북아메리카, 남아메리카나 영국 등의 차이나타운에 비하면 훨씬 안전하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다수인 싱가포르도 당연하게 차이나타운이 존재한다. 싱가포르 MRT 동북선 및 싱가포르 MRT 다운타운선 차이나타운역과 톰슨이스트코스트선 맥스웰역 일대다. 이 곳은 19세기 청나라 남부에서 유입된 쿨리들의 초기 거주지 중 한 곳이 관광지화된 곳이다. 차이나타운 외 리틀인디아, 아랍 스트리트 등도 가까이 있어 다인종, 다문화 사회를 느낄 수 있다.
5. 여담
1970~90년대까지만 해도 미국 영화나 게임에서 차이나타운을 소재로 하는 작품들은 아주 많이 볼 수 있었다. 물론 1990년대 중후반까지만 해도 동양에 대한 관심이 적고 정보가 부족했던 탓에 매체에 등장하는 중국인 주인공이 쿵푸와 닌자술을 같이 연습하는 식로 의문의 문화 짬뽕이 이루어지던 것이 일방적이긴 했다. 이때는 한국을 다룬 레모는 거의 이단자격 작품이었으며 그나마 레모에서 묘사하는 한국도 왜색이 강하여 왜곡되었다.[67]그러다 2000년대에 접어들면서 GTA 차이나타운 워즈 처럼 아예 무대를 미국 내 차이나타운 전체로 확장하는 경우도 생겨났으며 중화권 국가들과 교류가 증가하면서 오히려 더 잘 묘사했다는 평가도 존재한다.
여전히 미국에서는 히스패닉, 일본계 미국인 등과 함께 중국계 미국인+ 대만계 미국인이 가장 막강한 소수민족 자리를 차지하고 있어서 매체에는 자주 등장한다. 그 예시로 한국 애니메이션 공룡메카드 15화의 주 배경이 되었다.[68]
6. 주의점
미국, 캐나다의 차이나타운은 물론 영국이나 호주/뉴질랜드 등 영어권 차이나타운 주민 중 영어를 못하는 사람들이 생각보다 많다. 왜 뉴욕 맨해튼이나 런던 등 영어권 국가 도심 한 가운데에 사는 사람이 왜 영어를 못 하냐고 따져봤자다. 차이나타운에서 화교 공동체 내에서만 산 사람들이나 최근 광둥성에서 이주한 광동인들이 섞이다 보니 생각보다 영어가 안 통하는 곳이 많아지는 것이다. 당장 광동어, 민어, 객가어 외에는 소통이 불가능한 경우도 많다. 사실 당장 한국인들도 LA, 토론토, 밴쿠버 등의 코리아타운에서만 살면 영어 한 마디 안하게 되며 멕시코계 미국인들도 몇몇 다양한 지역들과 이달고 카운티 등 멕시코 출신 주민들이 모여사는 카운티들에서만 살아온 사람들은 스페인어만 할 줄 안다.다른 동아시아인들이 종종 방문해서 물건 사주면 반가워할지는 몰라도 근처에 거주하거나 같이 일하거나 하면 그렇게 막 챙겨주거나 반가워하지는 않는다. 그럴만한 게 차이나타운이 크게 생성된 곳은 동양계 인구가 원체 많아 새삼스럽지 않아서이다. 리틀 인디아에서 한국인이 인도, 파키스탄, 네팔 혹은 난민으로 파키스탄인들 사이에 섞여 들어온 아프가니스탄 쪽 언어[69]로 물건 사면 신기하다고 가격을 깎아주거나 하는 것과 다르게 이쪽은 한국인이 중국어로 말해도 그렇게 반가워하거나 하는 경우는 없다.
서유럽이나 앵글로아메리카 등에서는 종종 러시아, 우크라이나 타운에서 차이나타운, 리틀도쿄보다 더 저렴한 가격으로 한국 음식, 한국 식자재를 팔 때도 있다. 도시락 라면, 당근 김치 같은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배추김치도 가끔 나온다. 물론 한국인이 드문 곳이면 한국 식자재를 구하는 현실적 이유로 다른 문화권 마트는 대게 뒷전이 된다.
[1] 현판에 중화가(中華街)라고 쓰여 있다.[2] 명색이 차이나타운인데 좌측 하단 간판엔 중화 요리가 아니라 냉면이 적혀 있어 다소 의아하게 여길 수 있다. 하지만 인천 차이나타운과 그 주변은 일제강점기 때부터 냉면으로 유명했던 인천에 속해 있는 만큼 냉면 맛집이 상당히 많이 있는 편이며 대림동 같이 대한민국의 다른 차이나타운에서도 정말 많은 집들이 냉면을 팔고 있다. 한국식 냉면도 있고 나름 땅콩 등을 넣어서 중화풍의 맛을 내는 집들도 있다.[3] 2023년 5월 기준으로 도로 표지판이 없어졌다. 이유는, 차이나타운이 도로의 짝수 주소 쪽에(제물량로 266 근처)에 있는데 표지판이 홀수 번호로 되어 있다. 그리고 애초에 < 269 제물량로 265 > 라고 되어 있으려면 숫자 방향이 반대로 되어 있어야 한다. 현재는 < 270 제물량로 266 > 으로 고쳐져 있다.[4] 가운데 평양냉면 가게도 2020년 8월 기준으로 횡성소머리곰탕집으로 변경되었다.[5] 당나라 당, 사람 인, 거리 가[6] 빛날 화, 부두 부[7] 가운데 중, 나라 국, 재 성[8] 원래 해당 국가 국적을 갖고 있으면 화예, 중국/대만 국적이면 화교로 분류하는게 중국의 일반적 분류지만 한국 등 외국에서는 편의상 화예를 화교라고 부른다.[9] 표준 중국어. 홍콩은 광동어 사회이지만 그냥 영어로 차이나타운이라 하는 경우가 일반적이다.[10] 고베 차이나타운은 고베 모토나치에서 걸어서 2분 거리에 있고 난킨마치라고 부른다. 만두류가 200엔, 북경오리 스낵랩이 200엔~300엔, 탄탄멘이 300엔 하는 싼 가격에 여러 중국요리를 조금씩 맛볼 수 있어서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현지인들에게도 인기가 많은 편. 중식 뷔페도 많다.[11] 나가사키 짬뽕이 생긴 곳이다. 에도 막부 이후 중국, 포르투갈, 네덜란드와 교류가 많은 곳이 나가사키이다.[12] 지역을 말할 때는 푸젠성이지만 중국계 싱가포르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등 동남아시아 각국에 이주한 중국인들의 출신지 및 그쪽 문화를 말할 때는 호키엔이라고 한다. 푸젠이라고 하면 현재의 중국 푸젠성인 줄 안다. 호키엔(Hokkien)은 푸젠(福建)의 민남어 발음에서 유래한 것으로, 민남어와 그 지방의 문화를 의미한다. 한국의 복건이라는 독음은 알아듣지 못한다.[13] 화교가 진출한 국가 중에서 유일하게 화교가 다수 인구비중을 차지하는 독립국가다.[14] 베트남계 싱가포르인 및 베트남계 말레이시아인의 상당수가 중국계 베트남인들의 후손이며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 등에 많이 거주한다.[15] 싱가포르 대통령은 오히려 소수계를 우대하여 할리마 야콥 전 대통령은 말레이인과 인도계 싱가포르인의 혼혈인 프라나칸이었으며 현 대통령인 타르만 샨무가라트남은 인도계 싱가포르인이다. 싱가포르의 비비안 발리크리슈난 외무장관도 인도계 싱가포르인과 중국계 싱가포르인의 혼혈인 친디안(Chindian)이며 싱가포르 초대 대통령 유수프 빈 이샥 역시 말레이인이었다.[16] 그 시절만 해도 한국 화폐 단위는 환이었다. 그걸 현재 쓰는 원으로 새롭게 화폐를 바꾸면서 종전 환을 많이 가진 외국인은 교환을 못하게 만들었다.[17] 영챔프에서 연재되었던 '내 파란 세이버'란 만화에서 이 내용이 언급되었다. 주인공의 집이 중국요리집이었는데 주방장이 화교로 손화명(자신은 '슨거허민'이란 본토 발음으로 불려지는 것을 선호한다.)이란 이름을 갖고 있었다. 화교들이 겪는 규제로 불편해하다 나중에는 한국을 떠난다.[18] 현재의 소공로[19] 시청 앞 플라자 호텔이다.[20] 원래는 린든 B. 존슨 미국 대통령 방한 당시 화교촌부터 남산 밑 해방촌까지가 그대로 미국 TV 전파를 타면서 이것은 나라 망신이랍시고 재개발해야 한다는 이야기가 재미교포를 중심으로 나온 것이 계기였다.[21] 조선족과 한족 모두 포함[22] 이름은 서울의 종로와 동일한 의미이다. 동성로-서성로-달구벌대로-국채보상로로 둘러싸인 구간인데, 나이가 젊다면 약령시라는 이름이 더욱 익숙할 것이다.[23] 수도권 화교들은 서울시에서도 차이나타운을 형성했으나 단지 인천 차이나타운 규모가 커서 인지도가 밀렸고 서울에 살던 재한 화교들은 대거 인천 등 수도권 타 지역으로 많이 이사갔는데 이거는 서울 수도권의 전반적 추세다.[24] 이 지역에서 가장 유명한 화교 요리사가 바로 이연복이다.[25] 산둥 출신이 대다수인 인천 화교들과 달리 주로 동북 3성 출신이 많다.[26] 2017년 기준으로 영등포구 내에 조선족을 포함한 중국인 거주인구가 25,000명을 넘어섰다.[27] 조선족들의 언어 습관만 해도 한국어를 잘 못하고 중국어와 연변 사투리를 섞어 쓰거나 아예 보통화만 쓴다. 한국인과 조선족 사이에서 태어난 2세들도 많은데 이들은 한국어, 중국어를 1대1로 섞어 쓰는 경우가 많다.[28] 훠궈는 무한리필로 파는 집이 상당히 많은 편이다.[29] 제로 코로나가 한참일 때는 한중 비행편도 거의 소멸하다시피 할 정도여서 조선족들의 중국 귀국이 불가피했다.[30] 현재는 대거 귀화를 택해 대부분 한국 여권과 중화민국 여권을 모두 소지하거나 한국 여권만 소지하고 남성은 병역의무까지 부담하고 있으며 절대 외국인이 아니고 버젓한 한국 사회 구성원이다.[31] 관광지로서는 이 곳이 대표적이지만 실제 중국 대륙에서 이주한 중국인들이 모여 사는 거주지로서는 보통 대림동이나 가리봉동 등 서울 내에 위치한 차이나타운을 얘기한다. 물론 수도권 전체로는 인천 월미도 차이나타운이 단연 최고의 인지도를 자랑한다.[32] 가톨릭은 교적 시스템 때문에 다른 한국인들과 섞여서 인천교구 소속 성당에 출석한다. 개신교는 중화감리교회가 재한화교끼리 모이는 교회라 아직까지 국어로 예배를 진행한다.[33] 설립자 우희광 일가도 이 시기 잠시 피난을 갔으며 1953년 전쟁이 끝나고 다시 문을 열었다. 다행히 공화춘은 파괴되진 않았으나 화교 종업원들이 난입한 북한군이나 중공군에 의해 수난을 겪었다.[34] 소수민족인 위구르인 포로는 6.25 전쟁에 참전한 튀르키예군이 심문하였다. 같은 튀르크어족 언어를 써서 둘은 입말이 유사하다. 재한화교들은 한족뿐만 아니라 중국어를 할 줄 아는 몽골인, 회족 등 포로들도 심문했고 고급 정보도 빼냈다.[35] 중국공산당의 지원을 받는 공자학원과는 다른 개념이다. 심지어 공자학원도 공자와 무관하다. 공자 후손인 쿵더청도 대만에 있고 중공에 대한 반감이 강하다. 쿵더청은 공부가주를 중국공산당이 멋대로 만들었다고 보고 우리 가문엔 그딴 술이 없다며 화를 내기도 했다.[36] 물론 코로나 방역 완화를 기점으로 다시 돌아온 경우도 있기는 하다.[37] 서면, 동래, 해운대 등 신도심 지역[38] 서울과 비슷하게 울산, 창원, 김해, 양산, 거제 등 교외 산업 도시나 신도시로 가는 경우가 많다. 부산 도시철도 2호선, 부산김해경전철 등 동남권 광역전철 등이 많이 이용된다.[39] 당장 중국뿐만 아니라 러시아, 카자흐스탄, 우즈베키스탄 같은 중앙아시아 국가 등 구소련 국가들과 태국, 인도네시아 같은 동남아시아 출신들도 많은데 부산항이 국제항이라 러시아 선박이 냉전 종식 후 부산에 많이 드나들기 때문이다.[40] 짜장면이 인천 차이나타운에서 처음 생겨난 음식이기 때문이다.[41] 특히 이 곳은 백종원의 3대 천왕에도 나온 이래로 매일 줄서서 기다릴 정도로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는데 군만두가 상당한 별미로 알려져 있다.[42] 조선족 중 헤이룽장성 출신들은 러시아어와 몽골어도 섞어 쓴다. 부산은 대게 하얼빈 등 헤이룽장성 출신들이 모였고 연변인이 주류인 수도권과 약간 다르다.[43] 낀깔리, 하차푸리 등.[44] 그런데 간판 정비를 하면서 키릴 문자로 된 러시아 상점들까지 중국 분위기 나는 빨간 간판으로 전부 통일해 버렸다.[45] 3월~10월[46] 11월~2월[47] 맞은편 중국집 장춘방도 올드보이 촬영지라고 하고 있다. 촬영을 두 곳에서 한 듯하다.[48] 부산역으로 건너가는 횡단보도 바로 뒤쪽.[49] 현지 주민들에 의하면 요즘은 거의 동남아 출신 여성들로 대체되었다고 한다.[50] 수성구, 달서구, 북구, 동구 등 신도심[51] 가게 이름이 말 그대로 중화반점이다.[52] 청나라 시기부터 주한청국공사관이었으며 신해혁명으로 중화민국이 건국된 후 한중수교 이전까지는 대만, 즉 자유중국 대사관이었지만 1992년 과거 중공이라 부르던 중화인민공화국과의 한중수교를 계기로 주한 자유중국 대사와 자유중국 외교관들이 국교단절 후 한국을 떠나면서 중화인민공화국이 그 자리를 꿰찼다.[53] 이 시기 밀어붙이는 개발을 주도했던 서울특별시장이 그 유명한 불도저 시장 김현옥이었다.[54] 관련하여 뒷이야기 손정목 서울시립대학교 도시공학과 명예교수의 '서울 도시개발 이야기' 제2권에 소상하게 나와 있다. 손 교수가 당시 서울시 당국에서 근무하던 공무원이었기 때문이다.[55] 한국 사회에 대거 동화된 1990년대 이후에는 서울의 전반적 추세를 따라 신도시가 개발된 일산신도시, 분당신도시, 평촌신도시, 산본신도시, 고잔신도시, 동탄 등 신도시로 가는 사람도 많아졌다. 특히 서대문이나 마포 거주 화교들은 가까운 고양 및 파주에 많이 이사갔다.[56] 그 영향인지 대사관 건물을 엄청 거대하게 신축했다. 명동을 걷다보면 보이는 중화 양식의 고층빌딩이 바로 그것이다. 우체국 건물 못지 않게 거대한 크기를 자랑한다.[57] 현재의 동서동 알대[58] 제주도민, 특히 토박이 도민들이 '제원'이라고 부르는 지역인데 이 지역의 오랜 아파트인 제원아파트의 이름을 따서 '제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고 있다.[59] 한국식 독음으로 보건[60] 대표적으로 라틴아메리카 국가들 그리고 남아공이 있다.[61] 신라면이나 진라면 등 한국식 라면이나 3분요리 시리즈에 초코파이까지 있다.[62] 다만 이건 아시아 지역에서고 전세계적으로는 아마 북아메리카, 서유럽의 차이나타운들이 유명하다.[63] 이민 당시 성비가 10:1에서 100:1인 경우가 많았었다.[64] 성씨가 스페인식으로 치환되어 이름만 보면 모르다가 중국식 이름을 확인해주면 그제서야 화교라고 아는 경우도 흔하다.[65] 오히려 할렘가는 정화사업으로 지금은 꽤나 안전해진 곳도 있긴 하며 몇몇 곳은 관광지화가 진행된 곳도 있다. 단, 안심해서는 안 된다. 개선 가능성이 잘 안 보이는 위험한 지역이 많기 때문이다.[66] 보스턴은 그냥 다운타운과 융화되어 사실상 차이나타운이라 구분짓기 뭐할 정도로 부정적인 이미지가 굉장히 많이 옅어진 케이스다. 실제로 조금만 걸어가면 바로 강을 낀 하버가 있고 대형 빌딩들이 곳곳에 위치해 있다. 애초에 보스턴 자체가 미국에서 가장 치안이 좋은 도시로 손꼽히는 곳이다.[67] 1990년대와 2000년대만 해도 서양에서는 한국을 일본의 부속품 정도로 생각했지만 한국은 일찍이 한글이 있었고 언어적인 동질성이 강하기 때문에 외국어인 데다 한국어와 언어적 유사성이 적은 일본어를 굳이 공용어로 채택할 이유도 없었고 일제강점기의 한국어 탄압 정책 등으로 인해 일본어는 오히려 배척 대상이 되었다. 해방되고 나서는 일본 방식의 시스템은 미국, 영국, 서유럽 등 서구 시스템으로 전면 교체했다.[68] 타이니소어 살타사우루스가 채집된 곳이 바로 이곳이다.[69] 힌디어나 우르두어, 파슈툰어 등인데 한국에선 아예 존재감도 없는 언어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