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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싱가포르에 태어나 거주하는 사람. 싱가포리언이라고도 부른다.싱가포르는 다민족/다인종 국가이며 미국인, 캐나다인, 호주인, 뉴질랜드인, 멕시코인, 브라질인 등 타 다민족 국가처럼 국적으로 정체성이 규정된다. 그래서 한국인, 일본인과 달리 특정 민족이 압도적이라고 보기는 힘들다.
말라야가 영국으로부터 독립된 후, 말레이시아의 나머지 지역과 싱가포르와의 갈등이 발생했다. 그래서 당시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로부터 축출되었다. 독립한 후에도 각 민족 간 갈등 해소가 주요 과제였다.
그런 상황에서 리콴유는 중국계 싱가포르인, 인도계 싱가포르인, 말레이인 등 지역 주민들의 화합을 위해 인종차별에 대한 엄격한 규정을 마련했고, 영어를 공용어로 지정하고, 말레이어를 국어로 지정했다.
싱가포르가 74% 중국계 싱가포르인, 13% 말레이인, 9% 타밀인 혈통 인도계 싱가포르인 등의 다민족으로 형성되어 있다 보니 딱히 이게 싱가포르 사람이다라고 단정짓기는 좀 어려울 수 있겠으나 대체적인 공통점은 지독한 현실주의자라고 볼 수 있다.
당장 리콴유 총리만 보더라도 검소하고 절약하는 스타일이며 늘 언제나 나라가 언제 쇠퇴할지 모르는 긴장감을 지녔다고 한다. 그래서 최대 30년 뒤의 일도 예측하여 해결할 수 있는 법을 만들고 만들더라도 항상 결과가 어떻게 나올지 늘 검토하고 생각한다고 한다. 이런 성향인 리콴유가 싱가포르 사람들 전체의 국민성을 대표한다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1]
결과적으로 지금처럼 부유하고 편하게 살 수 있도록 냉정하게 현실을 바라보며 해당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자세를 매일 지니는 타입이라고 보면 된다. 싱가포르는 다민족, 다언어국가에 속해 있어서 각 민족별로 문화가 다른 경우가 많다.
2. 언어
싱가포르는 영어, 표준 중국어, 말레이어, 타밀어가 공용어인 다언어국가이다.싱가포르인들은 영어를 대부분 할 줄 아는 정도가 아니라 사실상의 국어[2]로 사용한다. 제1언어가 영어, 제2언어가 표준 중국어와 말레이어, 타밀어로 모든 간판과 안내방송은 영어로만 쓰이거나 4개 언어를 같이 쓴다. 거리 표지판 등은 영어로만 쓰여 있으며 싱가포르 MRT도 영어로만 안내방송이 나간다. 공항/항만/군사기지/관공서 등 공공장소엔 4개 언어가 병기이다.
중국본토인 노동자가 많아진 차이나타운은 영어가 안 통하는 구멍가게도 있지만 싱가포르 국적자[3]들은 영어 구사를 문제없이 할 수 있다. 싱가포르인들은 다른 민족과의 의사소통 수단인 링구아 프랑카로서 영어를 사용하고 있다. 영어가 없다면 싱가포르 내 3개 인종 그룹은 서로 소통할 수 없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표준 중국어를 중국계 내에서 공용어로 사용한다. 표준 중국어는 중국계 인구의 비중 상 사실상 제2언어이다시피 하며 말레이어, 타밀어와 함께 공공장소에 병기가 가능한 언어다. 이때 문자는 간체자를 쓴다. 민간에선 정체자도 사용한다.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은 거의 타밀어 화자이다. 그러나 인도, 파키스탄 이주 노동자이 많아져서 요즘엔 우르두어, 힌디어, 펀자브어, 네팔어, 벵골어가 많이 쓰이고 있다. 싱가포르가 여초 국가인데다 육체 노동을 담당할 남성 인구가 모자라서 남아시아 국가에서 노동자를 대거 들여와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스리랑카인 노동 이주민이 아주 많다. 이들은 리틀 인디아나 교외 곳곳에 위치한 노동자 전용 기숙사에서 낑겨사는 처지다.
국어로 지정된 말레이어도 말레이인 사회에서 쓰인다. 학교에서 국어인 말레이어 수업이 이뤄지고 있어서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인도계 싱가포르인들도 말레이어는 어느 정도 할 줄 안다. 특히 공무원, 공항이나 항만 근무자 등은 말레이어가 필수이며 인도네시아인, 말레이시아인 관광객들은 싱가포르 내에서 아쉬운 걸 말레이어로 해결하기도 한다.
말레이어 역시 병기 가능한 언어라 공공장소 곳곳에서 찾아볼 수 있으며 브루나이가 아직까지 아랍 문자를 쓰는 것과는 달리 말레이시아와 인도네시아 표준을 따라서 라틴 문자로 표기한다. 리콴유는 아랍 문자로 배웠지만 리셴룽은 라틴 문자로 배웠다.
리셴룽은 회고에서 '아버지가 아랍 문자로 신문을 읽으셨다'고 말하고는 했는데 그 아랍 문자가 바로 말레이어였다. 말레이 연방 식민지 당시 말레이어는 아랍 문자로 표기했기 때문이다.[4]
싱가포르에서 국어로 지정되어 있는 언어라 싱가포르 국가도 말레이어 가사로 쓰였고 싱가포르 경찰청, 대한민국 소방청 격인 싱가포르 민방위국, 싱가포르군 등 공공기관의 구호도 모두 말레이어 구호다. 말레이시아 표준을 따르고 있으며 민간 방언은 조호르 지역과 리아우 지역의 방언과 같다.
싱가포르 정부가 언어 표준을 정해서 영어는 영국식 영어, 중국어는 표준 중국어에 간체자 표기로, 말레이어는 말레이시아식 말레이어에 표기는 라틴 문자로 정했다.[5]
3. 종교
싱가포르는 다민족 국가이기 때문에 민족별로 종교가 다르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불교, 도교, 기독교를 믿고 있는데 불교와 도교는 쇠퇴 중이고 기독교 교세가 늘고 있는 추세이다.말레이인은 말레이인이라는 단어는 무슬림을 뜻할 정도로 100% 이슬람 신자이며 인도계 싱가포르인은 힌두교 신자가 과반에 30% 정도로 꽤 많은 이슬람교 신자들이 있고 소수의 크리스탕 및 남인도 포르투갈 식민지 출신 가톨릭 타밀인과 사도 도마 교회 소속 기독교인, 그리고 시크교 신자들이 있다.
불교 및 도교는 거의 50대 이상 기성세대가 믿으며 태국 불교[6] 및 티베트 불교와 혼재되어 한국이나 일본식 동아시아 불교와는 크게 다르고 그나마 젊은 층의 외면으로 새로 공급되는 승려도 없다. 이 나라 승려는 거의 태국인, 스리랑카인, 티베트인, 미얀마인 등 온 외국인 승려나 중노년층들이다.[7]
기독교는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거의 믿으며 중국계 싱가포르인 10 - 20대 및 30 - 40대를 중심으로 믿는 경우가 늘어나고 있다. 필리핀과 같이 동남아시아 내 기독교 신자의 비율이 높은 국가가 싱가포르이다.
특히 성공회, 장로교, 루터교 등 개신교를 믿는 경우가 절반 이상이고 그 다음이 가톨릭인데 말레이시아 가톨릭은 거의 보르네오 소수민족들이 신자이지만 싱가포르 가톨릭은 중국계 신자가 대부분이고 소수의 남인도 구 포르투갈 식민지 출신 크리스탕들이 존재한다.[8]
그 외 정교회 등 다른 기독교 교파를 믿는 중국계 싱가포르인들도 소수나마 존재한다. 싱가포르에 아르메니아 이민이 19세기에 일찍이 들어온 덕에 아르메니아 이민자들에 의해 아르메니아 정교회가 일찍이 소개되어 시청 앞에 교회도 있으며 중국계 신자들도 조금씩 생겨났다만 가톨릭 및 개신교에 비하면 극소수다. 싱가포르에서 기독교 하면 의례 개신교를 먼저 떠올리는 건 한국하고 똑같은데 개신교 국가인 영국의 통치를 받아서이다.
개신교 교파 중 40% 이상을 차지하는 성공회는 한국 성공회의 주교-사제-부제와 달리 주교-목사-권사로 호칭한다. 이는 홍콩 성공회와 똑같다. 주교 밑에 목사가 있는 셈으로 감독 밑에 목사가 있는 감리교와 똑같다. 감리교단이 가톨릭과의 차별성을 위해 감독으로 바꿔 부를 뿐 둘 다 영어로 Bishop, 중국어로 主敎로 호칭된다.
여호와의 증인, 통일교 등 이단으로 간주되는 교파들은 싱가포르의 안보 지형 상 활동이 제약되어 사이비 종교로 규정되어 활동하지 못한다. 그리고 시민들 사이에서도 여호와의 증인에 대해 부정적이다. 그리고 2020년 코로나 사태 때 한국에서 크게 물의를 빚은 신천지예수교 증거장막성전도 비슷한 시기 싱가포르 정부가 국가 안보, 치안 질서를 저해하는 사이비 종교로 지정하고 활동을 막았다.
중국계 중에서 말레이인과 통혼하여 생긴 페라나칸 및 중국계 10-20대 여성들을 중심으로 한 개종자들을 포함하여 소수의 이슬람교도 존재한다.[9]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은 남인도에서 죄수였다가 노동자로 이송된 타밀인 쿨리들로 힌두교 신자가 절반 이상이지만 30%나 되는 무슬림도 무시할 수 없는 숫자다. 무슬림 인도계는 말레이인과 혼혈되어 자위 페라나칸[10]이라는 민족 그룹으로 이어지기도 했고 현재도 인도계 무슬림과 말레이인 간 통혼은 흔하다. 할리마 야콥 현 싱가포르 대통령이 인도+말레이계 무슬림이다.[11]
싱가포르 내 말레이인들은 약 99%가 이슬람교를 믿는다. 애초 말레이인 = 무슬림으로 정체성을 규정해 이슬람 신자가 아니면 말레이인으로 인정도 안 해준다. 만일 이슬람을 떠나면 그 사람은 말레이 공동체에서 제외될 정도로 종교에 정체성을 둔다. 그러기에 인도계 무슬림과의 혼혈도 말레이인으로 인정해준다.
싱가포르는 말레이 전통 영향으로 영혼이 없다고 생각되는 무신론에 대해 별로 좋지 않게 보고 뭐든 믿으라고 권유하는 환경이다. 바빠서 종교를 특정하지 않은 무종교인이 20% 비중일 뿐 적극적 무신론은 찾기 힘들다. 더구나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기독교 신자도 증가 추세에 있다. 집안은 불교를 믿는데 혼자서 기독교를 믿는 10-20대나 30-40대도 많다. 이는 사립학교들이 기독교 재단이 대부분인 덕이다.
성공회 및 감리교, 가톨릭 사립학교들이 많아서 거기서 영어를 사용하며 성경을 배운 젊은 층이 기독교에 흥미를 갖게 된 것으로 30-40대의 경우 자녀를 출산하여 기독교 신자는 증가 추세이다. 비종교화되는 세계적 추세를 비껴가는 현상이라 잘 이해되지 않을 수도 있는데 유럽이나 아메리카 등 서양은 기독교가 쇠퇴하는 반면 동양에선 오히려 부흥을 맞고 있다.[12]
싱가포르에서 확실히 증가 추세 종교는 기독교와 이슬람교로 기독교는 전술했듯 뭐든 믿을 걸 권유하는 환경 속에서 교육선교의 영향으로 새로 개종하는 젊은 층, 특히 화이트 칼라 직종에 대학 재학 이상 고학력자 중국계에서 인기이고 말레이시아에서 중국계 기독교인들이 건너오기도 하며 이슬람은 남아시아, 중동 등에서 새로운 이민자들이 자주 들어오고 있다.
4. 역사
원래 싱가포르는 말레이 국가로 말레이인이 원주민이었으나 숫자는 적었다. 조호르 술탄국의 부속도서로 원래 밀림만이 우거진 풀라우 우종이라 부르는 보잘 것 없는 섬이었다.19세기 스탬퍼드 래플즈 경의 상륙 후 싱가포르가 영국의 지배를 받으면서 중국인, 인도인들이 쿨리로 이주했다. 이들은 섬 개간을 위해 이주했는데 특히 말레이 반도에 안 그래도 많이 유입되던 중국계 쿨리가 다수였다.[13]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전원 중국 남부, 홍콩, 대만에서 이주했고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은 인도 남부에서 이주했다. 한국에서 생각하는 중국인인 산동성이나 베이징 등 북방 출신 중국인들은 없다고 보면 된다. 북인도 출신처럼 보이는 사람들은 요즘 이민 온 인도인이나 파키스탄인 노동자들이다.
20세기 중반에 싱가포르가 말레이시아와 함께 영국의 지배에서 벗어난 뒤, 잠시 말레이 연방에 속했다. 하지만 말레이 연방 내의 화교가 많이 있어서 인종 문제가 생겼다. 말레이 연방은 중국계 싱가포르인을 견제하기 위해 싱가포르를 독립시켰다. 사실 원래 페낭 섬과 이포에서 독립여론이 강했으나 이 둘은 독립하지 못했고 독립 의지가 없던 싱가포르를 축출했는데 이게 1965년의 일이다.
이때 리콴유는 대국인 말레이 연방에서 덥석 쫒겨나 나라 구실을 못 하는 소국으로 전락하자 눈물을 흘릴 정도였다. 도시국가로서 홀로 생존이 버거운 게 당연해서였다. 특히 막막한 건 당시만 하더라도 형편없이 낮았던 경제력으로 빈곤 문제가 심했고 인종 간 갈등도 마찬가지였다.[14]
그래서 리콴유는 말레이시아와 척을 지지 않으려 애를 쓰는 한편 다시는 인종 문제로 나라가 분열되지 않게 강력하게 혐오 표현이나 인종차별 표현 등을 규제하면서 통합을 강조했고, 싱가포르를 영어권으로 규정했다.
그리고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다수라지만 타 민족도 상당수 어울려 사는 미국,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같은 다민족 국가를 표방했다. 사실 공영주택인 HDB 프로그램 역시 분리되어 있는 다양한 민족들이 같이 살도록 만든 것이었다.
당시 공영주택을 교외 지역에 만든 후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모여 살던 탄종 파가, 센튼 웨이, 클락키,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이 모여 살던 리틀 인디아와 도비 고트 등을 재개발하고 도심 중심 지구로 개편하고 외곽 지역인 비샨, 주롱, 퀸스타운, 유노스, 칼랑, 초아추캉, 창이, 탐피네스 등에 공공임대주택인 HDB를 만들었다.
그리고 도심 내 포장마차는 정리하고 그 자리에 호커 센터와 같은 재래시장으로 재개발하거나 호주, 뉴질랜드 등과 같이 도심 쇼핑몰을 만들면서 화합을 추구했고 학교 교육 역시 영어 위주 수업, 다양한 인종을 혼성해서 반 편성, 인종차별성 학교폭력 엄벌 등을 시행했다.
도시 디자인 등도 중국식이나 말레이 방식이 아니라 영국, 호주, 뉴질랜드 방식으로 디자인해서 잔디밭이 곳곳에 깔린 도심 속 녹지를 설치해 정원국가를 표방했다. 그 결과 싱가포르는 콘크리트 정글로 숨막힌단 평가를 받는 중화권의 대도시들보다 녹지율이 높다.
이러한 법 덕분에 싱가포르에서는 마천루를 지으면 그 면적에 상응하는 정원을 가꿔야 한다. 그래서 옥상 정원이 많이 있고, 넓은 녹지가 많다. 그리고 싱가포르 도심에 가면 항구나 도심 지역, 주거 지역이 아닌 이상 녹지가 많다.
싱가포르는 대만, 홍콩처럼 야시장 문화가 발달한 것도 맞지만 전반적으로는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와 비슷하게 쇼핑몰이 지역 소중심지 역할을 한다. 그리고 쇼핑몰 안에 대형마트, 백화점 등이 있고 지하철 역과 접근성이 좋은 것도 캐나다, 호주, 뉴질랜드의 영향을 받은 것이다.
이렇게 이 나라는 아세안 회원국이자 호주, 뉴질랜드 등 주변 영미권 국가들처럼 영미권 다민족 국가임을 강조했다. 그래서 독립 직후부터 미국, 영국과 우호적인 관계를 꾸렸다.
결과적으로 독립 후 20년이 지나자 싱가포르는 그대로 영어권 국가에 아세안 회원국으로 자리잡았고 사실상 중국과 거리를 두면서 중국과 관계가 좋지는 않았지만 경제적 이유로 중국과 수교했다. 그러면서도 정치외교적 관계는 대만과 밀접히 맺어 대만에서 싱가포르군이 훈련할 수 있도록 여건을 조성했다.
이러한 민족 통합 정책 그리고 자주국방 덕에 싱가포르는 말레이 연방에서 독립된 뒤 지리멸렬한 개발도상국 신세가 된 말레이시아와 달리 1970년대 신흥공업국으로서 아시아의 네 마리 용이란 이름을 얻었다. 이들 중 1980년에 접어들자 네 마리 용 중에서 싱가포르와 홍콩이 선진국이 되었고 1990년대엔 대만이 그리고 2000년대엔 한국이 선진국에 진입했다.
반면 민족 갈등과 극단주의가 판치는 말레이시아는 싱가포르를 축출해놓고 오히려 민족 간 불신과 타도로 혼란에 빠져 아직까지 중진국에 머물며 주저앉아 버렸다. 싱가포르 독립 당시 말레이시아가 싱가포르를 원조해 주었는데 이제는 말레이시아인들이 조호르바루에서 일자리를 찾아 싱가포르를 통근하는 처지다.
조호르바루 - 싱가포르 국경인 우드랜드나 투아스는 아침마다 말레이시아에서 싱가포르를 출퇴근하는 조호르 주 사람들로 몸살을 앓는다. 더구나 타 지역 말레이시아인들도 싱가포르로 이주하는 사례가 많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을 중심으로 페낭 등에서 새로운 이민이 자주 들어오고 있다.
5. 정체성
말레이시아에서 강제로 축출당해 원하지 않는 독립을 하는 과정에서의 갈등을 통해 싱가포르 고유의 정체성이 형성되었다. 전술한 통합 정책 덕이다. 그래서 중국, 대만, 말레이시아 등과도 구분되는 모습을 보이며 즉석 아시아라는 별명을 얻었다.싱가포르는 캐나다, 호주와 같은 다인종, 다문화 국가로써 각 민족 간에도 조화가 이뤄지고 있으며 동시에 통합 정책으로 싱가포르는 싱가포르라는 고유 정체성이 생겼다. 그리고 싱가포르 정부부터 인종차별 표현에 대해 엄격하게 처벌한다.
그러한 배경 덕분에 문화적으로 중국계 싱가포르인, 말레이인, 인도계 싱가포르인들 고유의 정체성과 동시에 싱가포르인이라는 통합 정체성도 같이 존재한다. 그래서 말레이시아에 비해 인종 간 갈등이 적다. 스위스와 비슷하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이 다수지만 영어권에 아세안 일원임을 강조하며 말레이인들도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가 아니라고 극구 자신들을 분리한다. 인도계 싱가포르인들도 마찬가지이다.
6. 타 민족과의 비교
말레이시아, 홍콩, 싱가포르 세 지역은 모두 과거 영국의 식민지였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그러나 나머지는 크게 다르다.중국계나 인도계 입장에서는 싱가포르가 외국인 비중이 적고 동화 정책이 강했던 인도네시아보다 오히려 각 민족이 공존하는 말레이시아에 더 가까울 수도 있다.
인도네시아는 애초 독립 과정에서 네덜란드를 무력으로 쫓아내며 반서방 국가가 된 반면 말레이시아는 영국이 평화롭게 자치령 형식으로 놓아주고 영연방 회원국으로 독립했기에 그렇다. 인도네시아에선 네덜란드와 연관된 흔적을 철저히 지웠는데 말레이시아는 영국의 영향력을 고스란히 유지하고 있으며 흔적이 많이 남아있다.[15]
홍콩은 버젓이 중화권으로서 싱가포르와 다르게 광동계 한족이 95%이다. 그래서 홍콩은 명목상으로는 중국의 특별행정구에 속하지만 표준 중국어보다 광동어를 많이 쓴다. 그리고 중국 대륙인이 유입되기는 하지만 이들은 광동성, 푸젠성 등 인근 지역 출신이 아닌 사람이 많아서 어느 정도 이질적이다.
인도네시아인 및 필리핀인 가사 도우미나 파키스탄인, 방글라데시인, 네팔인, 스리랑카인 육체노동자 등 외국인 노동자와 소수의 영국인, 미국인, 캐나다인 및 한국인, 일본인 등 외국인 영주권자 등을 제외하고는 타 민족은 극히 드물며 지리적으로도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와 전혀 연관이 없고 중국의 일부이다.
애초에 남아시아 혈통의 홍콩인이나 홍콩 영주권자인 영국인, 미국인, 캐나다인 및 한국인, 일본인 등은 비중국계 소수민족으로 분류하는데다 이들은 홍콩 영주권자라도 홍콩 여권을 받지 못한다. 홍콩 여권은 조상 중에 청나라 국적, 중화민국 국적, 중화인민공화국 국적자가 있어야 발급 받는다.
홍콩은 언어도 광동어가 메인이며 영어를 통용어로 사용한다. 홍콩인들은 역사적으로 자신들이 중화권 문화를 보존한 광동인이라는 것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그래서 이들은 중국 대륙인과 본인들을 철저히 구분하며 자신들이 중국의 원본임을 강조한다.
사실 이는 대륙이 문화대혁명으로 박살나버린 것이 많은 반면 홍콩은 영국령으로서 중화권 전통 문화를 고스란히 간직해 중화권 전통 문화는 홍콩이 많이 계승하여 그런 게 크다. 홍콩인들은 스스로를 국제화된 중화권 주민으로 분류한다.[16]
종교 측면에서도 홍콩인들은 개신교, 가톨릭을 믿고 중국과 거리를 두고 있다. 특히 민주화 운동에 적극 동참한 가톨릭과 성공회, 감리교, 루터교, 회중교회 신자가 많이 늘고 있으며 가톨릭은 프란체스코 교황의 얼굴이 홍콩 버스 광고판에 등장할 정도로 선교에 적극적이다. 홍콩의 기독교 교세가 1990년대 50만 명에서 2020년대 120만 명으로 급증하였으며 그 중 87만 명이나 되는 숫자가 개신교 신자들이다.
싱가포르도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대부분이라 기독교 교세가 강한 편이기는 하지만 청년층 사이에서 불교와 도교에 대한 중국과 연관을 지은 감정보다는 바빠서 종교에 관심을 갖지 못하기 때문에 거리를 두고 있는 것이다.
홍콩이나 대만에선 쉽게 찾아볼 수 있는 도교 제단이 싱가포르에선 차이나타운에서도 구석에나 있을 정도로 드물다. 도교 사원들은 문화재로 일부러 보존한 곳들이 대부분이며 노인들이나 절이나 도관을 드나든다. 교회는 젊은 중국계 싱가포르인들과 백인들이 어울려서 콘서트장 같은 분위기를 내는 독특한 주일예배로도 유명하다.
싱가포르 교회는 중국계가 메인이라 영어 예배, 감사성찬례, 미사가 기본이며 가톨릭은 필리핀인 가사도우미들을 위해 타갈로그어, 크리스탕들을 위해 타밀어 미사[17]를 따로 드린다.
한인 성당은 여기에 한국어 미사가 추가된다. 한인 성당은 물론 개신교 한인 교회에도 한국인 거주자와 중국계 싱가포르인 그리스도인들이 국제결혼 가정을 중심으로 소수 출석한다.
홍콩인과 싱가포르인 사이는 비슷해 보이지만 전혀 공통점이 없다. 굳이 공통점을 찾자면 둘 다 교육열이 높고 출산율이 매우 낮고, 외부인의 눈으로 보면 근면하고 빡빡한 삶을 사는 사람들이라는 점이다.
차이점이라면 홍콩인들은 싱가포르인에 비해 코미디 프로그램을 좋아하고 모여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며, 홍콩인들은 싱가포르인들에 비해 밖에서 활동하는 것을 좋아한다. 반대로 싱가포르인들은 상대적으로 조용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싱가포르인들은 홍콩인들이 영국인 흉내내는 중국인이라며 지저분하고 시끄러우며 미신에 빠졌다고 편견을 가지며 홍콩인들은 싱가포르인들을 결벽증 환자, 영혼 없는 로봇, 독재에 순응하는 사람 등 편견을 가진다.
물론 이는 사람마다 취향이 다르며 티격태격하면서도 상호 간 여행, 유학 등 교류가 활발하다. 그리고 홍콩, 싱가포르와 문화가 많이 비슷하기 때문에 오히려 홍콩인과 싱가포르인이 상호 우호적인 경우도 많다.
홍콩과 싱가포르의 공통점 중 하나로는 인도계 종교인 시크교 사원이 있고 펀자브인 시크교도 인구가 2차 대전 이전부터 소수나마 거주해오고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는 영국이 인도인들을 이들 지역으로 데리고 온 것 때문에 생긴 것이다.
그러나 홍콩의 인도인 공동체는 사실상 대부분은 파키스탄, 방글라데시, 네팔, 스리랑카 등 남아시아인 이주노동자들이 중추가 되고 있는 상황이다. 홍콩의 인도계 사회의 시작점은 시크교도와 무슬림 세포이들이었으며 나중에 남아시아 각 국가들에서 이주민들이 들어왔다.
싱가포르 내 인도인 공동체는 시크교도 군인 외에도 훨씬 더 많은 수의 타밀족 노동자들이 유입되었으며 이들 대다수가 19세기부터 2차 대전 이전 기간에 영국의 노동력 조달 정책에 의해 말레이시아 및 싱가포르에 정착하게 된 경우이다. 싱가포르 내에서 북인도 출신은 요즘 남아시아에서 이민 오는 사람들이며 근간은 타밀인들이었고 타밀인들과 북인도인들은 이질적이다.
인도계 싱가포르인은 중국계 싱가포르인, 말레이인에 비해서 입지가 취약한 편이지만, 인구의 9% 가까이를 차지하며 나름 목소리를 내고 있는 편이다. 싱가포르는 말레이시아의 이웃 국가이며 말레이인이 엄연히 원주민이기 때문에 말레이계는 공무원, 경찰, 군인 등의 취업에 있어서 많은 배려를 받고 있다.
인도계 싱가포르인의 입지가 말레이인에조차 밀리는 것과 대조적으로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들은 말레이시아의 의료계에서 두각을 나타내고 중산층에 해당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는 영국의 말레이시아 개발 과정에서 인도계 노동자들이 주로 개발된 지역에 정착한 반면 말레이시아 내 상당수 농촌 지역이 충분히 개발되지 못해서 소득이 늘어나지 못하는 과정에서 벌어진 격차이다.
물론 말레이시아에서 가장 경제적으로 성공한 집단은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이다. 중국계 말레이시아인와 인도계 말레이시아인는 입시에서부터 개인 사업에까지 광범위한 제한을 받지만 그럼에도 여러 가지 요인으로 인해 말레이인보다 부유하다.
한편 중국계 말레이시아인들은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마찬가지로 부지런하고 교육열이 강한 편이며 인도네시아의 중국인들이 강제로 동화를 강요받는 상황과 다르게 오늘날에도 싱가포르와 마찬가지로 독자적인 중화권 문화를 가지고 있고 말레이인과 별개로 갖는 정체성이 강하다.[18]
7. 주요 구성원
7.1. 중국계
新加坡華人 | 新加坡华人 |
Chinese Singaporeans |
많은 숫자가 광동성, 푸젠성, 하이난성에서 쿨리로 이주했으며 특히 상당수 하이난성 이주민들이 있다. 그렇다보니 중국의 개혁 개방 과정에서 광동성의 선전, 산터우, 주하이, 푸젠성의 샤먼, 푸저우 등 개발 사업에서 당시 영국 통치를 받던 홍콩에 회사를 설립한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활약했다.
그리고 1997년 홍콩 반환을 전후해 홍콩과 마카오에서도 신이민이 건너왔는데 이들은 영어가 유창한 엘리트들로 의사, 변호사, 회계사, 변리사, 교수 등 전문직들이었으며 싱가포르 금융업에 있어 핵심이다.
싱가포르는 동남아시아와 오세아니아의 금융 허브라는 특성상 동아시아 중심 허브이자 아시아의 대표 허브인 홍콩과의 연결이 중요한데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이 당연히 키맨들이다.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로작(Rojak)이라는 언어 혼합 현상이 가장 심한 계층으로 특히 10-20대로 가면 아주 심하다. 자기네 방언인 민남어, 광동어 등과 표준 중국어 등 중국어와 영어를 마구 섞어 쓰는 것이 습관화되었다.
이중 말씨 현상도 두드러져 가족들끼리는 중국어를 쓰거나 사석에서 친구들과는 중국어를 쓰지만 대학교나 회사 등 밖에선 철저히 영어를 쓴다.
특히 10-20대로 갈수록 싱글리시가 약해지고 표준 영국식 영어에 가까워진다. 그리고 싱가포르식 영어 특성 상 호주 영어, 뉴질랜드 영어, 홍콩 영어의 영향도 강하게 받는다.
7.2. 인도계
சிங்கப்பூர் இந்தியர் |
Indian Singaporeans |
그래도 탑클래스 인도계도 꽤 많다. 주로 대학교수나 변호사, 회계사, 의사 등 전문직인데 이러한 탑클래스 인도계의 경우 부촌에 많이 거주한다. 당장 인도계 영국인들처럼 공학자나 밴처 사업가, 금융업 종사자들이 있는 집단이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이다.
이들은 힌두교가 가장 많지만 힌두교 말고도 이슬람교 신자도 30%나 되며 말레이인과 무슬림 인도계의 통혼도 잦았고 현재도 잦다. 그리고 포르투갈어 성명을 사용하는 기독교를 믿는 인도계도 5% 정도 존재하는 편이다.
7.3. 말레이계
Orang Melayu Singapura |
Malay Singaporeans |
싱가포르 내 말레이인들은 말레이어를 모국어로 쓰며 싱가포르가 영어를 제1언어로 사용하고 있어서 밖에서는 영어를 정식 언어로 사용한다.[19]
10-20대 말레이인들은 영어와 말레이어를 섞어 쓰는 로작(Rojak)이라고 불리는 언어 혼합 현상이 나타난다. 중국계가 이게 가장 심해 차이니스 로작(Chinese Rojak)이라는 말이 나왔지만 말레이인들도 만만치 않다.
말레이인들은 전원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문화적으로도 당연하지만 본고장인 말레이시아나 인도네시아, 브루나이와 매우 가까운 편이다. 정확히는 서부 말레이시아와 정서가 동일하다. 자바인이 주축이고 다민족 국가인 인도네시아나 보르네오의 브루나이인들이 세운 브루나이는 다소 이질적으로 봐도 어쨌든 범 말레이 동포로 취급한다.[20]
불행히도 우리가 잘 아는 최선진국 싱가포르에 사는 사람들임에도 상대적으로 소외된 편이다. 중국계의 경우 아무리 못 살아도 일반적인 서유럽 국가들이나 일본, 한국 등의 서민층 수준은 되고 가끔은 아주 큰 부자들도 꽤 나오는 것과 달리 말레이인은 인도계 싱가포르인과 함께 소외 계층이다.
미국에서 미국 흑인 및 히스패닉의 고충이나 영국에서 파키스탄계 영국인, 영국 흑인의 고충을 이들 말레이인과 인도계가 똑같이 겪는다. 특히 유독 강력범죄에 엮이는 경우가 많아 말레이인을 강력범죄자라고 생각하는 일종의 선입견도 있다.
그렇지만 싱가포르 내에서 이들에 대한 복지 제도가 있고, 공교육 시스템으로 인해 이들 중에서도 중산층 비중이 생각보다 높다보니 미국 흑인이나 히스패닉 극빈층과 같이 되는 경우는 드물다.
7.4. 기타
베트남계 싱가포르인도 상당수 존재하며, 그 외에는 주로 동남아에서 이주한 사람을이 많은 편이다.8. 싱가포르계 이주민
싱가포르계 영국인, 싱가포르계 호주인이 대표적이다. 홍콩인들과 마찬가지로 많은 싱가포르인들, 특히 부호들이 영국, 호주에 진출한다. 특히 영국은 금융, 법률, 회계 부분에서 진출하고 호주나 뉴질랜드 역시 마찬가지이다.전통적으로 홍콩인들이 영국, 미국, 캐나다로 많이 진출했다면 싱가포르인들은 영국, 호주, 뉴질랜드로 진출을 많이 했다. 그래서 캐나다에 친척이나 연고가 있는 홍콩인들처럼 싱가포르인들도 영국이나 호주, 뉴질랜드에 연고가 있는 경우가 많다.
독립 초기에는 영국, 호주, 뉴질랜드로 많이 이민을 가는 케이스가 많았으나 싱가포르가 선진국이 되고 나서는 오히려 이민을 가는 사례가 줄어들었다. 오히려 홍콩 반환 이후 홍콩 등에서 싱가포르로 이민을 가는 케이스가 많아졌다.
호주인 가운데 4만여 명은 싱가포르에서 출생한 경우이고 싱가포르 조상을 둔 경우도 4천여 명 정도에 달한다. 사실 많은 숫자는 아니며 그나마 싱가포르가 아직 독립하기 전이나 갓 독립한 후에 온 사람들이 정착한 경우다.
그래도 숫자는 얼마든지 많아 영국, 호주, 뉴질랜드에 친척을 둔 싱가포르인들이 다수이며 유학 등으로 연고지가 있는 영국, 호주, 뉴질랜드를 고른다. 홍콩에서 유학을 영국, 캐나다로 주로 가는 것과 똑같다.
싱가포르계 호주인 유명 인물로는 제시카 고메즈가 있다. 이 사람은 중국계 싱가포르인과 포르투갈인 혈통이 섞였다.
9. 관련 문서
[1] 주로 해외의 실패 사례를 보면서 확인한다고 한다.[2] 싱가포르의 국어로 정해진 언어는 말레이어이나 이는 상징적인 의미가 크다.[3] 미국과 달리 싱가포르는 시민권자보단 국적자라는 단어를 쓴다.[4] 사실 지금도 말레이시아 곳곳에서 아랍 문자를 병기하고는 한다. 그러나 싱가포르는 아랍 문자를 도입하지 않고 일괄적으로 말레이어 표기를 라틴 문자로 통일했다.[5] 싱가포르 내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전원 광동성, 푸젠성, 하이난성 일대와 대만 출신이며 북방인들이 희박하다. 광동어, 민남어, 객가어 등이 중국계 싱가포르인의 모국어지만 출신지가 각기 달라서 통합 목적으로 표준 중국어를 공용어로 사용하도록 지정했다. 인도계 싱가포르인들 역시 인도 남부와 스리랑카에서 쿨리로 이주해서 타밀어 화자가 거의 전부다.[6] 말레이시아를 거쳐 싱가포르로 온 중국계 태국인들이 소개했다. 팔레라이 사원(관음사) 등 몇몇 절은 아예 태국절이다.[7] 싱가포르 내 구르카 용병의 존재로 일찍이 티베트 불교가 소개되었으며 불교 신자들은 구르카 일원인 부탄인들과 혼혈도 잦았다.[8] 애초 크리스탕은 이름이 이베리아 식이라서 금방 구분된다.[9] 싱가포르 내 페라나칸인 바바(남자)/논야(여자)들은 말레이 전통을 따라서 이슬람교를 믿고 있다. 일부 페라나칸은 중립적인 선택으로 기독교 개종을 택해 2세 이상부터는 중국계 그리스도인으로 살아오는 경우도 많다.[10] 자위는 말레이인을 뜻한다.[11] 참고로 이 사람은 최초의 여성 대통령이다. 말레이인 대통령은 초대 대통령인 유수프 빈 이삭부터였으나 여성은 이 사람이 최초다.[12] 라이벌이자 같은 영국 통치를 겪은 홍콩도 기독교가 증가 추세로 2020년 기준으로 인구의 120만 명이 기독교 신자, 그 중 88만 명이 개신교 신자이다. 1990년대에 50만 명의 기독교 신자, 그 중 30만 명의 개신교 신자에 비하면 급증했다. 홍콩 연예인들도 50대 이상은 대부분 불교 신자인데 요즘 세대인 10-20대 연예인들 중엔 기독교 신자를 흔히 볼 수 있다.[13] 영국의 지배 당시 쿨리를 이주시켜서 수 많은 중국인이 이주한 영향으로 중국계가 다수를 차지한다.[14] 당시만 해도 중국계 싱가포르인, 인도계 싱가포르인, 말레이인은 서로 거주지가 달라 섞이지 않았다. 중국계 싱가포르인은 탄종 파가와 티옹 바루 일대에, 인도계 싱가포르인과 말레이인은 부기스와 칼랑 일대에 살았다.[15] 인도네시아는 네덜란드가 싫어 일본의 영향으로 좌측통행을 택하고 영국식으로 G Floor로 1층을 표기한다. 콘센트도 영국식이다. 제1외국어도 네덜란드어가 아닌 영어를 택했다. 그러나 말레이시아는 영국과 척을 지지 않고 영연방 회원국으로 1959년 독립했으며 말레이시아 경찰의 문장도 영국 경찰의 문장을 약간 변형해 현지화한 것이고 경찰 제복도 영국 경찰을 많이 본받았다.[16] 이는 대만인에게도 해당된다. 대만의 국호가 중화민국이고 중국 전통 문화 역시 대만이 중국보다 더 잘 보존하고 있다. 대만은 미국, 일본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17] 크리스탕은 이베리아식 성명을 쓰지만 싱가포르로 건너온 사람들은 포르투갈어를 못한다. 성명 등에서만 포르투갈 흔적이 남았을 뿐이다.[18] 물론 이 말은 절대 말레이인들이 교육열이 낮다는 의미가 아니다. 오히려 말레이인들은 동남아시아에서 독서율 및 교육 수준이 상당히 높은 편에 속한다. 다만 이게 이슬람주의 신학 교육으로 지나치게 몰려서 문제다. 극단주의자만 잔뜩 양산되고 중국계는 쓸모있는 학문인 법학, 경영학 등을 공부해 재계에선 중국계가 없으면 나라가 거덜날 정도까지 갔다.[19] 싱가포르는 말레이어가 헌법 상 국어로 지정되어 있어서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영어와 표준중국어를 동시에 사용하면서도 말레이어도 어느 정도 할 줄 아는 편이다. 인도계 싱가포르인들의 경우 무슬림 인도계는 대놓고 말레이인과 통혼도 잦으며 말레이어를 능숙히 구사한다. 싱가포르 무슬림의 기본 언어가 말레이어라 인도계 무슬림들도 말레이어는 자유롭게 구사 가능하다.[20] 브루나이는 방언부터 상이하며 아직도 아랍 문자를 사용하지만 싱가포르와는 형제국가나 다름없는 맹방이라 교류가 많다. 상호 무비자 방문도 진작 실시되었고 상호 화폐도 자유롭게 사용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