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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싱가포르에 있는 베트남 혈통의 싱가포르인들이다. 대다수는 중국계 베트남인 혈통을 물려 받았다.[1]2. 역사
베트남 전쟁 당시 사이공이 북베트남에 함락되자 보트피플들이 남베트남을 탈출했는데 주로 베트남 내 화교였다. 이들은 태국, 말레이시아, 싱가포르, 호주, 뉴질랜드 등 주변 국가들이나 홍콩.마카오 및 대만 같은 중화권 등지로 탈출했는데 전술했듯 독립한 지 아직 얼마 안 된 싱가포르에도 난민으로 왔다.[2]이 때 부유했던 베트남 화교 난민들은 대부분이 광동성 출신과 푸젠성 출신들이라서 민남어, 광동어, 객가어 등 현지에서 쓰는 중국어 방언을 알아서 크게 문제가 없어서 싱가포르로 대거 귀화하기도 했다. 그리고 고학력자였다보니 영어 구사력도 좋았다.[3]
문제는 순수 베트남인 보트피플들이다. 이들은 아예 중국어도 영어도 못해서 대부분 적응하지 못했다. 그래서 이런 베트남 난민들은 차라리 영국령으로 베트남 난민을 영국 정부의 정책에 의해 수용하던 홍콩을 거쳐서 캐나다, 호주/뉴질랜드, 미국 등으로 이민갔다. 킨족(베트남인) 보트피플 사이에는 미군을 도왔던 라오스, 캄보디아의 몽족들도 같이 따라가서 캘리포니아 롱비치 및 프레즈노에 대거 정착하기도 했다.
물론 현재는 싱가포르가 2023년 1인당 GDP 기준으로 세계 3위로 세계 9위 정도인 미국에 비해서 잘 사는 나라지만 1960년대 갓 독립한 싱가포르는 아직 개발도상국으로 현재 싱가포르로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민 오는 태국, 인도네시아, 필리핀, 미얀마 같은 주변의 타 동남아시아 나라가 더 잘 살아서 경제 원조를 해주던 처지였다.[4]
싱가포르가 현재처럼 선진국으로 거듭난 것은 리콴유의 경제 정책이 성공한 1987년 이후의 일이며 거기에 홍콩 반환의 반사이익도 받았는지라 이 때부터 일본을 추월하기 시작했다. 일본이 쇼와 시대 말기 헤이세이 시대 초기인 1980년대 말과 1990년대 초에 절정을 찍고 일본 경제가 쇠퇴할 때 싱가포르 경제는 성장했다.[5]
1960년대 초에는 태국의 타이항공이 싱가포르에 무상으로 관람차를 건설해주고 리콴유가 미얀마,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필리핀 정도로만 먹고 살자고 할 때였었다. 그 시절에 싱가포르는 미국, 영국, 호주의 지원을 받기 위해 베트남 난민을 수용할 수 밖에 없었다.
한편 1970년대 후반에 중월전쟁을 겪은 통일 베트남에서 화교들을 대거 추방할 때 많은 수가 싱가포르에 오기도 했다.[6] 이들 베트남 화교들은 전술한 것처럼 광동인들로 광동어를 모어로 썼으며 표준 중국어를 할 수 있는 이도 많아 싱가포르에 정착하기가 쉬웠다.[7]
이들 베트남 화교 출신들은 현재는 거의 중국계 싱가포르인에 동화되어 겉으론 잘 드러나지도 않으며 다들 자본가나 전문직들이었기에 부유한 건 당연하다.[8] 실제로 남베트남 시기 자본가였거나 전문직이었고 이들은 말레이시아, 대만, 홍콩으로도 많이 갔다.
자연히 이들 베트남 화교들은 2020년대 시점에선 중국계 말레이시아인 및 중국계 싱가포르인의 일부로 자연스레 흡수되었다. 21세기에 들어서는 누가 베트남 화교 출신인지조차 모른다.
3. 현재
싱가포르에서 베트남인들의 인구는 15000명 정도이지만 이는 베트남 출생에 베트남인으로서 정체성을 가진 이들의 숫자에 불과하고 사실은 더 많다. 왜냐하면 베트남인 난민들은 대부분 광동인, 호키엔, 객가 위주의 중국계 베트남인들이고 이들은 중국계가 많던 싱가포르에 적응을 쉽게 해서 사실상 베트남 출신 중국계 싱가포르인이라 봐도 무방하기에 그렇다.이는 홍콩도 마찬가지라서 홍콩에서 생각보다 베트남이 고향인 노인들이 많이 보인다. 당장 영웅본색 감독인 서극도 중국계 베트남인 출신이었고 베트남 전쟁 이후 홍콩으로 이주한 케이스이다. 참고로 홍콩이나 현재 광둥성, 푸젠성, 하이난성과 베트남 북부는 문화적으로 유사하다.
현재 대부분의 베트남계 후손들은 호커센터[9] 및 재래시장, 베트남 요리 음식점에서 일하지만 일부는 성공해서 은행 및 패밀리 오피스 등 금융계나 외국계 대기업[10]에 다니기도 한다.
사실 중산층의 삶을 사는 베트남 난민 후손들은 중국계 베트남인의 후손이고 킨족이라고 불리는 원래 베트남인들은 외국인 노동자의 일원으로서 인도계 싱가포르인, 말레이인과 비슷한 소득 수준을 갖고 살아간다.
사실상 베트남에서 이주한 사람들은 남자는 대게 공사판 등 막노동판에서 중국인이나 남아시아 외국인 노동자와 같이 일하고 여자는 가사도우미를 한다. 물론 베트남인 엘리트들도 싱가포르에서 전문직으로 근무하기도 한다.[11]
싱가포르가 홍콩보다 필리핀인 가사 도우미가 적은 이유가 이 베트남 여성들 때문이다. 물론 싱가포르인들은 말이 통하는 영어권인 필리핀인들을 영어도 못 하는 베트남 사람들보다 더 선호하여 되려 필리핀 가사도우미들의 몸값이 더 비싸다.
베트남에서 싱가포르로 이주하는 가사도우미 여자들의 경우 대게 시골 출신들이 많으며 세상 물정에 어두워 사기에 휘말려 매춘굴로 팔려가거나 하는 경우가 꽤 있는 듯 하다.
참고로 싱가포르 경찰의 범죄예방 프로그램 <Crime Watch>에서 베트남계 브로커가 인력 송출 회사와 짜고 어리숙한 시골 여자들을 유인 후 겔랑의 메춘굴에 팔아넘긴 사례가 나왔다. 피해자는 영어를 할 줄 몰라 도움을 못 받았다가 간신히 기회를 얻어 도움을 받고 베트남에 되돌아간 것으로 보인다.
4. 관련 문서
[1] 애초 킨족 계열들은 화교가 다수인 싱가포르에 오면 가난한 편에 속하는 인도계 싱가포르인 및 말레이인한테도 도태될 확률이 높았기에 차라리 구미권으로 대부분 이주했다. 그들이 오늘날 베트남계 미국인이 되었다. 반면 중국계 베트남인들은 베트남에서도 못해도 중산층이었고 언어도 광동어 및 민남어 등 남방 중국어 방언들을 사용해서 적응하기 쉬운 환경에 놓여있었기에 대부분 싱가포르 및 말레이시아에 정착했다.[2] 싱가포르와 함께 화교가 많던 말레이시아나 아예 완전한 양안삼지 중화권인 홍콩/마카오와 대만에도 많은 베트남 화교 난민들이 정착했다. 홍콩에서는 구룡성채에 들어가기도 했으며 구룡성채에서 베트남 화교 출신 삼합회가 토착 삼합회를 밀어내며 항쟁이 자주 붙기도 했다.[3] 당연히 리콴유는 이들을 받아들이는데에 찬성했고 남베트남 사회 상류층이자 고급 인재인 베트남 화교들을 아주 좋아했다.[4] 지금은 싱가포르가 미국에 비해 부유하며 미국에 가려는 싱가포르인이 거의 없어서 1999년 아시아 국가 최초로 무비자 정책 대상국이 되었다. 캐나다는 애초에 비자 면제국이고 영국이 1988년에 ESTA 대상국이 된 것을 감안하면 빠르다. 심지어 일본보다도 빠르다. 이후 이듬해인 2000년에 브루나이와 일본으로 확장되었다.[5] 2007년에 싱가포르의 1인당 소득이 그해 일본의 소득보다 높았다.[6] 심지어 공산당에 협조하거나 공산당원이었던 이들 마저 중국 간첩 예방을 위해 추방했다.[7] 물론 2020년대와 다르게 당시 노인들은 표준 중국어는 잘 못했고 객가어, 민남어, 광동어, 치우차우어, 오어 등 방언을 사용하였다. 당시 젊은 사람들(현재 70대~80대)들도 표준 중국어는 서툰 편이었다.[8] 애초에 중국계 싱가포르인들은 상당수가 광동성, 푸젠성, 하이난성, 광시좡족자치구 등 남중국인들이어서 외모도 북베트남 쪽 하고 큰 차이는 없다.[9] 싱가포르의 푸드코트이자 포장마차로 음식이 저렴하고 푸짐해 여기서 다들 식사를 떼운다.[10] HSBC, 삼성, LG 등 싱가포르엔 여러 나라 굴지의 대기업들이 있다.[11] 베트남인들이 많이 진출한 대한민국, 일본, 대만, 홍콩/마카오, 말레이시아, 호주 등에서도 비슷한 모습을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