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0-03-17 15:25:53

마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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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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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카오 특별행정구
澳門特別行政區 | Região Administrativa Especial de Macau
파일:마카오 특별행정구기.png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125px-Macau_SAR_Regional_Emblem.svg.png
특별행정구기 휘장[1]
위치
파일:1205px-Macau_locator_map.svg.png
면적
30.5㎢[2]
인문환경
공용어 포르투갈어, 중국어(사실상 광동어)
인구 642,500명(2019 추산)
인구밀도 21,430명/㎢
민족구성 중국인 95.0%, 포르투갈인 2.0%, 기타 3.0%
하위 행정구역
8개 당구
정치
주권 중화인민공화국특별행정구
행정부 수반
(행정장관)
호얏셍
임기 2019년 12월 20일 ~
경제
GDP $539억(2018)
1인당 GDP $81,585(2018)
GDP(PPP) $781억(2018)
1인당 GDP(PPP) $118,098(2018)
신용등급 무디스 Aa3
Fitch AA
HDI 0.909(2018)
화폐 파타카[3]
ISO 3166-1
MO, MAC[4]
도메인
.mo, .mo.cn,[5] .澳門, .澳门
행정구역 한자 약칭
기타
시간대 UTC+8(마카오 표준시)
무비자 입국 양국 모두 90일
여행 경보
여행자제 전 지역[코로나19]


1. 개요2. 상징
2.1. 명칭2.2. 깃발2.3. 노래
3. 역사4. 정치5. 거주 인종6. 언어7. 지리8. 행정구역과 관광지
8.1. 마카오 반도(Península de Macau, 澳門半島)8.2. 타이파(Taipa, 氹仔)8.3. 코타이(Cotai, 路氹)8.4. 콜로안(Coloane, 路環)
9. 교통10. 경제11. 관광12. 교육13. 군대와 경찰
13.1. 군대13.2. 경찰
14. 구급 및 소방15. 문화16. 대외관계
16.1. 중국 본토16.2. 홍콩16.3. 포르투갈16.4. 바티칸16.5. 브라질16.6. 한국
17. 등장 매체
파일:external/www.macaucasinos.com/101830694-macau-skyline.1910x1000.jpg
파일:external/www.pctours.com/macau01.jpg
마카오 전경

1. 개요

동아시아의 도시이자 중화인민공화국에 속한 특별행정구.

전신은 포르투갈의 식민지였던 포르투갈령 마카오였다. 수백 년 전부터 포르투갈인들이 지어온 남유럽풍 고건축과 문화가 남아있어 이색적인 분위기를 간직하고 있어 여러모로 관광객들을 끌어들여 관광산업이 발달해 있다. 이베리아 반도와 중국을 동시에 느낄 수 있다. 역사적인 이유로 인해 마카오는 중국 영토이지만 일국양제가 시행되어 많은 부분에서 본진인 중국 대륙과 분리되어 있다. 마카오는 몇몇 국가 대표팀도 중국과는 별도로 가지고 있고 국제기구에도 중국과는 별도로 가입할 자격이 주어진다.

상당히 작은 면적과 인구를 가진 지역이지만 이 지역이 유명한 이유는 역시 세계 최대 수준의 카지노 도시이기 때문일 것이다. 도박유흥메카로 2007년 이미 라스베가스를 도박 매출에서 추월했고 그 격차는 해마다 크게 벌어지고 있다.

2. 상징

2.1. 명칭

공식 명칭
정체 한자 中華人民共和國澳門特別行政區[7]
간체 한자 中华人民共和国澳门特别行政区
포르투갈어 Região Administrativa Especial de Macau da República Popular da China
한국어 중화인민공화국 마카오특별행정구
약칭
정체 澳門 광동어 Ou3mun4
간체 澳门 표준중국어 Àomén
한국어 마카오 한자
(오문)
영어 Macao(공식)
Macau(민간)
일본어 マカオ
포르투갈어 Macau(공식)
Macao(고어)
에스페란토 Makao(마카오)


이름의 유래는 처음 포르투갈인들이 마카오에 당도했을 때 현지인들에게 여기가 어디냐고 묻자 주위에 있던 '아마 사원'이라는 대답인 '아마 까오(사원)'라는 말을 착각해서 붙여졌다다는 설이 유력하다.

경우에 따라 '마조각(媽祖閣)'을 잘못 들었다고 하는 경우도 있다. '마조(媽祖)'는 중국 푸젠 성을 중심으로 하는 바닷가 지역에 거주하며 그곳을 드나들던 사람들 사이에서 신앙했던 바다의 여신이다.

마카오의 포르투갈어 표기는 Macau. 그러나 역사적으로는 Macao가 쓰였다. 1911년에 포르투갈이 공식 포르투갈어 철자법을 정하면서[8] 강세가 없는 o의 발음 약화 현상을 반영해 라틴어 유래가 아닌 포르투갈어 단어의 강세 없는 o를 u로 고쳤는데 이에 따라 Macao가 Macau로 바뀌었다. ISO 코드가 MO인 것은 옛 철자법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영어에서는 옛 포르투갈어 표기인 Macao와 현재 포르투갈어 표기 Macau가 모두 옳은 표기이며, 2016년 1월부터 마카오 정부에서는 Macao를 공식 영어 명칭으로 채택했다. 그러나 영어권에서도 여전히 Macau라는 표기를 선호하고 있다. 영어 위키백과에서도 Macau를 표제어로 유지하고 있다. 그리고 영어와 포르투갈어에서 Macau라고 쓰든 Macao라고 쓰든 발음이 달라지는 건 아니다. 영어로는 머카우, 포르투갈어로는 마까우 정도의 발음. 한국어 '마카오'나 일본어 'マカオ'는 Macao라는 철자의 영향을 받은 것이며, 2005년 제정된 포르투갈어 외래어 표기법을 따르면 '마카우'가 된다.

통칭과 원어명이 대강 비슷하기라도 한 홍콩[9]과 달리, 마카오라는 이름은 중국어 명칭과는 아예 달라서, 중국어에서는 澳門/澳门이라고 쓰고 오우문(광동어)/아오먼(표준중국어) 비슷하게 발음된다. 말 그대로 '항구의 문'이라는 뜻.

조선왕조실록에도 두 차례 마카오가 등장하는데, 막가외(莫可外)라 음차되어 기록되었다.

2.2. 깃발

현재 마카오(특별행정구)의 깃발은 1993년 3월 31일 전국인민대표대회에서 지정된 것이다.

깃발의 초록색은 번영을 의미하며[10] 연꽃은 마카오를 상징하는 꽃이다. 세 개의 꽃잎은 마카오를 구성하는 세 개의 큰 지역인 마카오 반도, 타이파 섬, 콜로안 섬을 뜻하며 연꽃 앞에 있는 선은 마카오 반도와 타이파 섬을 잇는 카르발류 총독 대교(Ponte Governador Nobre de Carvalho)와 바다를 상징하는 것으로 항만으로서의 마카오의 위치와 역할을 뜻한다. 다섯 개의 노란색 별은 중국 오성홍기의 다섯 개 별에서 유래한 것으로 마카오가 중국의 영토임을 상징한다.

파일:포르투갈령 마카오 기.png
마카오 반환 이전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절에는 이렇게 독자적인 깃발이 있기는 했으나 이는 엄밀히는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의 깃발이고[11], '포르투갈령 마카오' 그 자체를 상징하는 깃발은 따로 없이 포르투갈 국기를 그대로 사용했거나 포르투갈 국기 밑에 문장을 박은 식민지기를 편의상 사용했었다.

마카오 깃발 초안 모음. 대놓고 오성홍기를 박아둔 깃발들도 있다.[12] 그러나 디자인이 촌스러운지 모두 반려되었고, 대신에 이 지역에서 자생하는 연꽃을 넣은 현 깃발이 나온 것이다.

2.3. 노래

마카오를 상징하는 공식적 지위의 노래는 따로 없다. 마카오 대표팀이 경기를 치르는 경우 중국의 국가인 의용군 진행곡을 연주한다.

3. 역사

옆동네 홍콩보다 300여 년이나 빠른 1542년[13]포르투갈 왕국의 교역 기지인 포르투갈령 마카오가 되었으며 대 중국 수출입 거점이었다.

당시 토르데시야스 조약으로 스페인아메리카 신대륙, 포르투갈은 동양을 각각 나눠먹게 되자 포르투갈인들은 동남아시아에 적극 진출했고, 마카오에 오기 앞서 말레이 반도의 말라카를 손쉽게 함락시켰으며 이후 중국으로 접근을 시도해 홍콩 신계 북부 튄문에 쳐들어갔다.

그러나 명나라 관군은 튄문에서 행패를 부리던 포르투갈 콘키스타도르들을 사로잡은 후 불랑기포, 조총 등 그들이 보유한 무기를 일제히 압수했고, 포르투갈인들은 조총 제조법이나 화포 제조법 등을 넘기고 많은 물자를 삥뜯긴 끝에 옆에 있는 주강 삼각주의 조그만 섬으로 옮겨갔는데 그게 현재 마카오 반도였다. 당시는 마카오 반도는 토사가 아직 퇴적되지 않아 섬이었다.

그리고 튄문은 마카오인들이 중심지 삼기에 부적절한게 늪지대와 갯벌뿐이었고 산이 많은 홍콩 지형 상 평지가 너무 적었으며 물을 구하기가 힘들었었다. 그래서 포르투갈인들은 튄문을 버리고 마카오로 이동했다.

포르투갈이 중국에게서 마카오를 얻어낸 것을 "포르투갈인들이 해적을 퇴치한 공로로 명나라 황제가 마카오를 상으로 떼어 주었다"는 이야기가 널리 퍼져 있는데, 이건 18세기에 포르투갈인이 그럴듯하게 보이기 위해 창작한 이야기다.(...) 사실은 1553년에 포르투갈의 콘키스타도르인 호르헤 알바레스 일행이 "배의 화물이 젖어서 잠깐 말리고 싶다"는 구실로 명나라 관리에게 뇌물을 주어 체류하게 된 것이 이 도시의 시초이다.

당시 명나라의 황제로 도교빠(...)라 불릴 정도로 신비주의에 탐닉한 가정제불로장생에 집착해 채향사(採香使)들을 시켜 방방곡곡에서 용연향을 구하게 했는데, 전세계에 연락선이 있는 포르투갈 상인들은 용연향을 비교적 쉽게 구할 수 있어 황제의 환심을 샀다.

물론 용연향 때문이 아니라도 서양 국가와의 무역이 꽤 구미가 당기긴 했기에, 포르투갈이 마카오를 무단 점거한 것을 묵인해서라도 이곳을 서양 국가들과의 교류를 위한 창구로 써먹을 생각도 있긴 했다.

덕분에 1557년부터는 포르투갈 측에서 매년 뇌물을 주어 거점 구축에 나섰고, 1572년부터는 명나라 조정과 그 뒤를 이은 만주족청나라 조정도 매년 500 냥을 바치는 것을 조건으로 포르투갈인의 마카오 체류를 공식 허용하게 되었다.

당시 명나라는 연안에 왜구중국인 해적들이 들끓어서 골치를 앓았는데 이때의 마카오는 일개 작은 섬에 불과한지라 작은 섬 몇 개나 떼주고 귀찮은 일 없애자는 식으로 영구 임대안을 승인했고 그 이후부터 뇌물이 아닌 정식 임대료, 즉 명 조정에 대해 세금을 지불하고 대신 마카오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이때만해도 법적으로 포르투갈에 주권이 이양된 건 아니었다.[14]

중국은 마카오 이후로는 수백년 간 서양인들에게 이런 창구를 추가로 더 내주려 하지 않았고, 마카오는 중국 대륙 내의 주요 무역거점으로 써먹을 수 있는 땅이었기 때문에 많은 나라들이 탐을 냈는데 네덜란드 동인도 회사는 명청교체기 와중에 포르투갈령 마카오를 침공해서 거의 함락할 뻔 하기도 했다. 하지만 동방교역에 있어서 마카오를 절대로 내줄 수 없는 것은 포르투갈도 마찬가지였는데, 네덜란드인들의 6분의 1밖에 안되는 포르투갈인들은 예수회 수도자들까지 전부 다 동원해서 맹렬히 저항했다. 수학에 능통했던 예수회 수도자들이 계산하고 지휘한(!) 포격이 네덜란드인들을 강타하면서 적의 수가 예상보다 많다고 착각한 네덜란드인들은 도망간다.

지금도 이 전쟁 당시 포격했던 몬테 요새가 마카오의 관광지로 남아있다.

참고로 당시 네덜란드영국, 스페인과 더불어 해양 제국으로서 맹위를 떨친 나라였다.[15]

임진왜란 이후 명나라가 일본과의 교역을 금지하자 마카오는 전성기를 맞았다. 양국의 직접적인 조공무역이 막힌 빈틈을 파고들어 마카오-나가사키 중개무역을 했고 큰 이득을 얻었다. 그리고 명나라와 새로 일어난 여진족이 세운 만주의 청나라가 싸우기 시작하자 양쪽에 홍이포 등 무기를 팔아서 이득을 보았다.

중국이 명나라에서 청나라로 바뀌고 타이완 섬정씨 왕국을 말려죽이기 위해 강력한 해금령을 내리자 마카오도 타격을 입을 뻔했지만 강희제의 신임을 받던 예수회 선교사 아담 샬, 페르디난트 페르비스트 덕분에 큰 타격을 받지는 않았다.

그러나 시대가 변하면서 마카오의 위상은 갈수록 약해졌다.

1700년대 들어 산업혁명영국에서 시작되고, 증기선이 등장하자 배들이 거대해지기 시작했는데, 마카오는 수심이 얕아 대항해시대 초반의 스페인의 갤리온 등 범선은 드나들 수 있었지만 근대 이후의 거대한 배들이 정박하기는 힘들었다.

포르투갈이 근대로 가면서 이웃 스페인, 프랑스, 영국 등에게 휘둘리며 이류 열강으로 떨어지며 상업도 쇠퇴했다. 특히 스페인 압스부르고 왕조펠리페 2세가 이베리아 동군연합을 선언하면서 사실상 스페인과 포르투갈이 합병된 거나 다름없어져서 이때 결정타 크리를 맞아버렸다.

결정타는 옆에 영국령 홍콩이 세워진 것이었지만 그 전에도 마카오는 내리막을 타고 있었다.

1842년 영국아편전쟁을 통해 청나라를 박살내자 서양 열강들이 청나라를 점점 호구로 보기 시작하고 청나라에 불평등조약을 강요해 수많은 이권을 뜯어냈다. 포르투갈도 이에 편승해 1851년1864년에 원래 마카오의 영역에 포함되지 않았던 무인도인 타이파와 콜로안을 점거하고 1887년에 청나라와 베이징 조약을 맺어 마카오를 정식으로 포르투갈 영토로 삼았다.

그러나 1840년에 포르투갈보다 훨씬 강한 나라였던 영국이 마카오에서 멀지 않은 곳에 있는 홍콩 섬난징 조약으로 따내고, 중국과 유럽 국가들의 직접 교역 시대가 열리면서 홍콩이 급속히 성장한 것과 달리 쇠퇴하는 본국처럼 포르투갈령 마카오도 점차 쇠퇴한다.

이때의 역사적인 배경에 라틴 국가들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까지 더해져 마카오 하면 깔끔하고 금융업 위주의 선진국인 홍콩과 달리 북한 공작원 및 중국 공산당 스파이가 득실거리고 삼합회 같은 각종 마피아가 판치는 무법천지 정도로 인식하는 어르신들도 아직 많다.

이게 다 1990년대까지의 마카오에 대한 인식으로 홍콩 영화1970년대1980년대 그리고 1990년대까지 인기를 끌면서 홍콩은 선망의 대상임에 비해 마카오는 옆에 세트로 붙어있는 쩌리(...)로 본것도 있는데다 신상옥 감독도 마카오에서 납북당하는 바람에 납북당하기 좋은 곳이라는 선입견까지 생겼다.

그리고 포르투갈의 친중 및 공산권과의 화해정책 때문에 영국이 반북 성향인것과 달리 포르투갈은 북한에 우호적이었고, 북한인도 마카오에 많이 거주했기 때문에 자연히 마카오에 대한 인식이 처참하게 낮았다.

19세기~20세기 중후반까지의 마카오는 창구로서의 기능은 완전히 홍콩에 밀리고 도박과 매춘으로 생계를 잇는 퇴락한 도시였다.

1847년 도박을 합법화하자마자 200개가 넘는 도박장이 들어섰고 지금은 관광지가 된 펠리시다데 거리는 중국 전역에서 모여든 거대한 홍등가였다.

제2차 세계대전 중에는 연합국에 속한 영국과 달리 포르투갈이 일단 중립국이었기 때문에 홍콩광저우일본군에 점령되었을 때도 마카오는 무사했는데 이때 그쪽 지역의 피난민이 몰려와 인구가 잠깐 증가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 포르투갈은 살라자르 정부 하에서 일본에 우호적인 편이었기에 마카오를 통해 일본에 석유를 약간 팔기도 했었고, 이 때문에 미군의 폭격을 받은 일도 있었다.

일제중화민국을 압박하기 위해 마카오 영사관을 설치하고 중국의 항일 활동을 감시했고, 물론 중국인들의 일제 인사에 대한 습격도 있었다. [16]

1949년 중국 대륙이 공산화되어 중화인민공화국이 새로 들어서자 포르투갈은 중국 인민해방군의 진주를 우려했으나[17] 서방과의 정면 대결을 바라지는 않던 중국은 이곳을 공격하지 않고 오히려 포르투갈의 영유권을 존중했다.

1966년 문화대혁명 당시에는 홍위병들이 야금야금 들어와 점령을 시도한 관갑 사건도 있었으나 포르투갈이 아무리 약체화되었어도 이딴 오합지졸 민간인들은 얼마든지 막을 수 있어서 주둔군 및 국경경찰을 동원해 방어에 성공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마카오 주민들 역시 대부분은 본질적으로 한족 중국인이기에 중국의 문화대혁명의 영향을 받아 마카오에서도 마오주의를 가르치는 학교들이 늘어나고 중국 공산당을 따르는 사람들이 늘어났으며, 당시 반공주의가 강렬했던 포르투갈의 영향으로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 역시 반공주의적 입장을 취하며 이들을 탄압하다가 1966년의 12.3 사건같은 중국계 주민들의 폭동이 일어나기도 했다.

폭동은 진압되었지만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는 이에 반발해 폭동 주동자 석방, 폭동 진압 책임자 처벌, 진압 사과 및 배상 등을 요구하며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에 압력을 가했고, 마카오의 친중공 성향 중국인들도 세금 납부 거부, 철시 등 대대적인 불복종 운동을 벌였다. 포르투갈 정부는 이에 어떻게 할지를 고민하다가, 중국 인민해방군과 허접한 소수의 식민지군이 전쟁을 벌이면 이길 수 없다고 판단하고 중화인민공화국중국 공산당과 커넥션이 있었던 중국계 마카오인들의 중재를 통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의 요구 사항을 받아들였다.

이 일로 굴욕을 당한 포르투갈령 마카오 정부는 반공 색채를 누그러뜨리고, 중화인민공화국을 인정하지 않던 본국의 방침도 무시하고 마카오의 친중공 중국인들을 정계에 들이고 중화인민공화국과 교류하며 중국 국민당의 활동을 금지하는 등 친 중국 공산당 성향을 보였다.

포르투갈 정부는 1974년에 끝이 없는 독립탄압 전쟁에 염증을 느낀 군부가 일으킨 카네이션 혁명 이후 모든 원거리 식민지를 자진해서 포기하기로 했고 당시 포르투갈령 마카오도 같이 중국에 반환하기로 했는데, 오히려 중국이 돌려받는 것을 거부했다.

우선 1970년대 당시는 아직 많은 자본주의 국가들이 대륙의 중화인민공화국이 아닌 대만중화민국을 유일한 정통 중국으로 승인하던 상황이었고 중화인민공화국은 죽의 장막 건너로 얼마 없는 서방과의 협상창구 마카오를 일단 놔두고 활용하는 게 나았다.

그리고 영국이 홍콩 전체의 반환을 거부하고 신계 외곽만 반환한다고 했기 때문에 이래저래 협상이 길어졌고, 중국은 이 문제에 집중해야 했기 때문이다. 중국에게는 홍콩이 당연히 더 중요했다.

하지만 이 때 포르투갈과 중국은 마카오를 '중국 땅이지만 포르투갈 정부가 행정권을 행사하는 곳'으로 해석하는 데 합의하여[18] 언젠가 반환이 이뤄져야 하는 데는 양국이 입장의 일치를 보였고, 포르투갈 정부도 이에 근거해 1976년부터 마카오 정부에 광범위한 자치권을 이양했다.

영국이 전향적으로 홍콩 전체를 반환하고 중국이 특별 행정구역으로 관리하기로 결정한 1984년 중영공동선언 이후 포르투갈 정부는 1987년에 또 다시 반환 의사를 표명하였는데 이번에는 중국이 받아들임으로써 1987년 3월 26일에 홍콩과 유사한 일국양제의 논리로 마카오를 중국에 반환함을 규정한 중국-포르투갈 공동선언을 체결한다. 이에 따라 마카오는 1999년 12월 20일중화인민공화국에 반환되었다.

홍콩과 마찬가지로 최소 2049년까지는 포르투갈령 당시 경제, 정치 시스템에 변화없이 유지할 수 있게 되었고 그와는 별도로 사회주의 체제는 적용되지 않는다.

즉 홍콩처럼 마카오도 사실상 중국 본토 같은 사회주의 체제가 영구 적용되지 않는다. 이를 어기면 포르투갈 정부가 합법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권리가 보장됐다. 물론 현대까지도 그럭저럭 강대국영국과 달리 유럽에서도 소국인 포르투갈은 정치적, 군사적으로 중국에 직접 압력을 가할 수단이 거의 없는 만큼, 그 방법은 마카오 거주자 및 자본의 일괄 철수와 같은 형식이 될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마카오는 홍콩과 달리 중국이 포르투갈령 시절부터 이미 이것저것 많이 영향력을 뻗쳐놓았다. 그래서 중국화된 지 오래라 위의 추정은 별 의미가 없다. 중국 정부가 더 좋은 대안이 없다며 영구지속을 자꾸 전제하는 일국양제는 사실 이러한 마카오식의 중국화된 일국양제다. 홍콩은 이러한 중국화를 거부하여 자꾸 충돌이 벌어지는 것이다.

그리고 홍콩 및 광동성 정부와 공동으로 마카오 옆 주하이시의 일부인 헝친다오를 개발하고 있다. 마카오 대학의 캠퍼스를 주하이 시가 임대 형식으로 떼어줬는데 실질적으로 영구 임대로 보면 되며 점진적으로 마카오의 확장에 헝친다오를 적극 이용할 계획이다.

중국은 이미 사회주의 체제 내 경제특구인 선전이나 주하이, 산터우, 하이난성 같은 곳들보다 별도 국가처럼 취급되는 자본주의 특별행정구들인 홍콩과 마카오가 더 돈이 되는 것을 알고 있으며[19], 따라서 이는 중국이 자발적으로 자신들의 땅 일부를 떼어 내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지 않는 곳으로 만든 최초의 사례라 볼 수 있다. 물론 자치나 민주주의와는 별 상관 없는 별도 관세구역 및 자본주의 경제체제 전면 적용지역[20]인데 하는 김에 사실상의 자치를 허용하는 것뿐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실상 자치가 중앙에서 직접 특별행정구를 운영하는 것보다는 더 효율적이다.

포르투갈 정부는 옛 식민지에 이미 합법적으로 거주하던 주민 및 그 후손 전원에게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하였다. 특히 포르투갈 국적법이 개정된 1981년 11월 19일 이전에 포르투갈령 마카오에서 태어났음을 증명할 수 있다면 혈통과 상관없이 포르투갈 국적을 인정하고 있다. 유럽연합 소속국인 포르투갈 국적이 있으면 사실상 유럽 어디서든 자유롭게 활동할 수 있는만큼 이는 상당한 특혜를 부여한 것이다.

포르투갈이 마카오인 모두에게 국적을 부여한 이유에 관한 설 중 하나는 마카오보다 앞서 1970년대 카네이션 혁명 이후 아프리카 식민지들이 독립할 당시, 3대 이내 포르투갈 본토 태생의 선조가 있는 이를 제외한 나머지 아프리카인들에게는 포르투갈 국적을 부여하지 않았는데, 문제는 식민지 전쟁 당시 포르투갈군의 과반 이상을 차지했던 식민지 태생 주민들이 독립 후 내전이 발발하면서 반역자로 몰려 대거 숙청당하는 학살극이 벌어졌다는 것이다. 이런 경험 때문에 포르투갈 정부는 마카오 주민들에게 국적을 주는 방향으로 선회했을 가능성도 있다.

또한 포르투갈은 대항해시대 이후 오랜 세월동안 역사적으로 심각한 인구 부족에 시달렸는데[21] 경제력이나 시민의식이 매우 낙후된 아프리카 식민지들과 달리 본국 못지않게 시민 의식이 높고 경제력이 있는데다 포르투갈 본국과 문화적 연대가 있는 마카오인들은 잠재적으로 상당히 매력적인 이민자가 될 수 있었던 측면이 있다.

지금도 유럽 연합 역내에서 부유한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투자이민을 가장 많이 받아주는 나라가 포르투갈이다.

어쨌든 이에 따라 반환 이전 마카오에 합법적으로 거주하던 43만 명[22]은 반환 이후에도 포르투갈 국적을 유지할 수 있게 했는데 이는 영국홍콩 주민들을 외면한 것과 비교되는 처사로 평가되고 있다.[23]


마카오 반환식 영상이다. 2년 전 홍콩에서도 유사한 의식을 거행했다.

15세기 포르투갈인들은 일본에서부터 브라질까지 세계 각지를 항해하며 전성기를 이루었지만, 1999년 12월 20일 마지막 동아시아 거점을 반환하면서 이들의 제국은 막을 내리게 된다.

중국 반환 이후, 중국 중앙정부가 인근 도시 주하이인민해방군을 주둔시키고,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대에 막장 치안으로 악명높았던 마카오에서 범죄 타파에 나섰고, 현재 치안은 매우 안정되어 있다.

물론 카지노로 슬슬 이름을 날리면서 고객 끌어모으려고 마카오 주민들 스스로 치안을 정리한 점도 있지만(...) 가장 큰 이유는 새로 조직된 마카오 경찰 덕분이다. 기존 포르투갈 경찰로부터 인원 및 장비를 이어받아 새로 조직된 마카오 치안경찰이 치안향상을 위해 많이 노력했고, 그 결과 2000년대 후반에 들어서 이미지 반전에 성공했다.

또한 배후의 경제특별구인 광둥 성 주하이 시와 연계해 카지노 일변도에서 조금씩 벗어나 여러 제조업도 가동되고 있다. 시진핑이 반부패 척결을 내세우면서 마카오 카지노들의 숨통을 억죄는 판국에 카지노만 고집하는 것도 우스운 일이다.

하지만 유력산업은 여전히 카지노인데 대상이 영미권 관광객으로 바뀌었다.

2006년 홍콩을 처음 1인당 GDP에서 추월하였으며[24], 현재는 관광객 수조차 동등한 수준까지 올리는데 성공하였다. 그리고 2014년에는 스위스를 따돌리고 1인당 소득 세계 4위를 차지했다. 흠좀무. 현재 마카오의 1인당 GDP가 한화 1억원 정도니 말 다 했다.

4. 정치

5. 거주 인종

파일:나무위키상세내용.png 자세한 내용은 마카오인 문서를 참고하십시오.

대부분이 한족 혈통의 광동인으로 그 중에 10% 이상은 토생포인 혹은 마카이엔사라 불리는 토박이 마카오인들이며 이들은 많은 수가 포르투갈인과 혼혈되었다. 개중에 대놓고 성씨가 포르투갈어인 사람들도 있을 정도다. 그리고 토생포인 말고 진짜 포르투갈인도 1-2% 정도 있다. 물론 마카이엔사 중에서 다시 더 산업이 풍부한 홍콩으로 이주하는 경우도 꽤 많았다.

포르투갈의 금융위기 때문에 포르투갈에서 마카오로 이주하는 사람들의 수도 2010년대 들어 급증했다.

6. 언어

마카오의 공용어중국어[25]포르투갈어로 표지판[26] 이나 책, 공문서 등에는 두 언어가 병기되어 있다.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절에는 포르투갈어만이 공용어였지만 1976년에 자치권이 주어진 이후로는 공용어에 대해 특별한 규정을 두지 않다가 1989년에 입법, 사법 분야의 문서를 포르투갈어와 함께 중국어로도 작성하도록 규정했으며, 1991년에는 중국어와 포르투갈어를 공용어로 지정하는 법안을 통과시켰다.

이후 1999년부터 시행된 마카오 기본법에서도 문구만 바꿔 그대로 유지되고 있다.

6.1. 중국어/광동어

중국어는 마카오의 공용어 중 하나로, 표준 방언은 엄밀히 정해져 있지 않으나 실질적으로는 광동어가 널리 쓰인다.

2006년 통계에 따르면 마카오인 중 95%가 일상 언어로 중국어를 사용하며, 그 중 대부분[27]광동어를 일상 언어로 사용한다.

표준중국어(보통화)는 반환 이후 의무 교육을 통해 널리 보급되고 있으며, 보통화가 모어인 화자는 매우 적고[28] 생활 회화에서 널리 쓰이는 수준은 아니지만, 청년 세대는 교육의 영향으로 보통화로 소통이 가능하다.

광동어와 표준중국어 외 중국어 방언[29]을 일상 언어로 쓰는 화자는 전체 인구 대비 6% 정도로 소수라고 치기에는 꽤 있다.

문자는 한국, 대만, 홍콩과 마찬가지로 기본적으로는 정체자 한자를 쓰고 있다. 의무교육에서의 표준중국어(보통화) 과목에서 홍콩이 정체자로 교육하는 것과 달리 중국화된 지 오래인 마카오는 간체자로 교육한다.

6.2. 포르투갈어

10% 정도의 마카오 원주민인 마카오인(마카이엔사, 마카니즈, 土生葡人)[30]들은 포르투갈어를 구사할 수 있다.

한국에서 포르투갈어는 브라질식 포르투갈어가 대세지만 마카오의 포르투갈어는 유럽식 포르투갈어에 가깝다. 물론 남미 포어가 유럽 포어에 비해 영향력이 크다보니 젊은 세대는 대세인 남미 포어에도 관심이 높다.

아직 구 식민모국의 언어인 영어가 많이 쓰이는 홍콩과 달리 마카오에서 포르투갈어의 입지는 그리 높지 않다.

포르투갈어를 일상 언어로 쓰는 사람들은 전체 마카오 인구 대비 0.6%로 영어보다도 적고(...) 의무교육에서 아예 포르투갈어를 가르치지 않는 학교마저 있을 정도이다.

절대 다수 주민이 중국 본토 출신이고 중국으로 반환된 오늘날에는 마카오 인구 중 포르투갈 혈통은 2%도 안 되는데다 원주민인 중국계 마카오인들의 숫자도 대륙인들보다 적은 편이고, 무엇보다 영어 못 쓰면 일자리 질이 낮아지는 등 난감한 경우가 많은 홍콩과 달리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어를 못 써도 난감해지는 경우가 적다. 주변에 포르투갈어 쓰는 나라가 없다보니 밖에 나가 쓸 일이 적은 것도 영향을 미친다.

하지만 여전히 포르투갈어는 공용어이고 근대 이전부터 마카오에 거주한 사람들인 중국계 마카오인이나 마카오에 사는 진짜 포르투갈인들을 중심으로 아직 많은 마카오인들이 사용하고 있으며, 여전히 공문서 등은 영어/포르투갈어가 중국어와 함께 병기되니 포르투갈어만 알아도 사는데 큰 불편함은 없다.

포르투갈어광동어 둘 다 원어민인 마카오 원주민들은 이 좁은 땅에 43만 명이나 잡아먹고, 그들은 포르투갈 정부가 국적까지 줘서 중국의 통제 밖에 있다.

또한 마카오의 변호사 등 법조인들은 전원 포르투갈인이고, 의사들도 포르투갈인이나 혼혈 마카이엔사가 대부분인데 이것은 포르투갈계 백인이나 이들과 혼혈된 광동인인 마카오 원주민들이 대륙에서 무대뽀로 몸만 내려온 대륙 출신들보다 교육을 더 잘 받았기 때문이다.

이들은 가톨릭을 믿고 포르투갈어, 광동어는 물론 표준중국어영어까지 구사할 줄 아는 엘리트 계층이며 마카오의 의사 등 전문직은 대개 이들과 포르투갈 백인들이 잡아먹고 있다. 그래서 포어를 모르면 거주에는 이런저런 곤란함이 꽤 있다.

그 외에도 가톨릭을 믿는 중국계 원주민인 마카오인들은 아직도 종교 언어로 포르투갈어를 사용하고 자신들을 광동 출신 대륙인들과 구별하는 아이덴티티 비슷하게 삼고 있다.

결국 포르투갈이 허접해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했다기보다는 마카오인의 인구가 대륙 이주민에 비해 터무니없이 너무 적었기 때문이라는 것이 더 올바를 것이다. 중일전쟁 등 중국의 혼란만 없었다면 마카오의 인구는 20~30만 명 선이었을 것이다.

포르투갈어 사용은 지역마다 차이가 있어 근대 이전부터 시가지가 형성되어 있었던 마카오 반도에서는 아직도 포르투갈어를 많이 쓴다. 미국 및 중국 본토의 자본으로 개발된 코타이-타이파 지구에서는 포르투갈어의 중요성이 떨어지는 편이며 되려 표준중국어영어가 잘 통한다.

아시아에서 굉장히 드문 포르투갈어 사용 지역인 만큼 중국은 마카오를 통해 멀리 떨어진 포르투갈어 사용 국가와의 경제 협력을 진전하고자 한다. 현재에는 중국의 일대일로의 영향으로 마카오는 물론 중국 본토에서도 포르투갈어의 수요가 급증하고 있다.#

소수이지만 마카오에서 변형된 포르투갈어인 마카오어도 사용된다. 크리올어의 일종으로서 그들 말로는 Patuá라고 하는데 불어로 사투리를 의미하는 Patois에서 따온 말이다. 하지만 5,000명의 구사자 중 모국어로 사용하는 경우는 50명에 불과해서 소멸위기에 처해 있고 마카오에선 마카오어를 보존하자는 목소리가 존재하고 있다.#

6.3. 기타

마카오에서는 포르투갈어의 범용성이 영어에 비해 떨어지다보니 포르투갈어보다 차라리 영어를 배우는 게 낫다는 분위기가 있다. 특히 포르투갈 국적 부여 대상자도 아닌 일반 광동인들의 경우 어차피 포어를 쓸 일도 없었기에 차라리 영어를 쓰자는 분위기가 강하다.

미국라스베가스카지노 자본이 코타이를 개발한 등의 이유로 이웃 홍콩과는 달리 미국식 영어를 주로 공부한다. 이름도 영문식 이름이 대부분이다. 특히 2000년을 기점으로 매립지인 코타이에 미국라스베가스, 뉴저지 카지노 자본들과 중국 회사들, 홍콩대만의 회사들이 합작으로 투자하여 대규모 리조트를 만들며 현재 타이파 섬과 코타이는 영어가 잘 통한다.

미국의 라스베가스 자본이 중국 자본과 함께 들어온 코타이와 타이파 섬의 경우 미국식 영어가 통용되고 표기 등이 미국식을 따른다. 샌즈 등의 임직원들도 미국 유학을 다녀와 영어를 잘 한다.

아예 영어를 일상언어로 쓰는 사람들[31]이 공용어인 포르투갈어보다도 많을 정도.

영어가 아직까지 안 통하는 쪽은 택시 및 버스, 그리고 마카오 반도로 이쪽은 표준중국어도 잘 안 먹힌다. 알아듣기는 하는데 대답은 광동어로 하고, 몇몇 표준중국어 단어는 아예 못 알아 먹는다.

과거에는 영어가 잘 안통해서 악명이 높았던 곳이다. 광동어/포르투갈어를 모르면 아예 여행이 안 될 수준이었다. 하지만 중국 반환 이후 현재는 마카오 반도 일부만 빼면 영어 통용이 원활한 편이다. 특히 젊은 층은 아주 유창하게 영어를 쓴다. 마카오 국제공항에선 광동어나 포르투갈어를 모르고 영어만 써도 뭐 찾아가거나 할 때 문제없다.

7. 지리

처음 포르투갈이 차지했을 때는 중국본토와 떨어진 섬이라서 해협으로 이어져 있었지만 수백 년간 퇴적을 거쳐 말 그대로 '반도'가 되어버린 마카오 반도와 그 남쪽의 타이파 섬, 콜로안 섬의 두 섬까지 마카오는 크게 세 파트로 이루어져 있다. 현대에는 타이파 섬과 콜로안 섬 사이 지역을 매립해[32] 두 섬이 사실상 붙었고 그 매립지에는 세계 최대 규모의 카지노와 호텔이 지금도 들어차고 있다.

대체로 마카오 반도는 인구밀도가 높은 도시화된 지역, 코타이는 대형 카지노가 널찍하게 자리잡은 곳, 콜로안은 남중국과 포르투갈풍이 섞인 전원지역 풍경을 간직하고 있다.

인구는 약 63만명 정도다. 홍콩의 700만 명보다는 훨씬 적은 숫자라서 마카오의 면적이 더 작은데도 공간 등은 더 널찍하고 거리도 어딘가 홍콩에 비해서 넓다. 홍콩과 한 세트처럼 비슷한 존재라고 생각하기 쉽지만 사실상 도시국가인 홍콩과 비교해도 훨씬 작다. 홍콩은 부산광역시는 커녕 울산광역시보다 좀 더 큰 크기지만, 마카오는 한국 광역시의 일개 구(행정구역) 수준의 넓이이다. 그나마 옛날에는 지금보다도 훨씬 작았는데 간척에 간척을 거듭해 그나마 좀 넓어진 것이다. 작은 면적을 나름대로 극복하기 위해 인구밀도는 상당히 높지만, 그런 점을 감안해도 아주 작은 행정단위에 불과하다. 홍콩과 직접 면적을 비교하면, 홍콩의 중심지인 홍콩 섬(78.59 km2)의 절반이 채 되지 않는다.

8. 행정구역과 관광지


면적은 30.5㎢이다. 서울 노원구 보다 좀 작고 은평구와 비슷한 크기다. 너무나도 작은 면적 때문인지 타이파와 콜로안 사이의 바다를 막아 새 땅을 조성하는 등, 간척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마카오의 인구 밀도는 km2당 19,500명(2014년 Macao Yearbook 기준)이나, 실질적으로 마카오 인구의 99%가 거주하는 반도의 인구만을 계산하면 km2당 54,226명 정도,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Santo António지역은 평방 킬로미터당 118,000명으로, 까우룽 반도와 함께 사실상 세계에서 가장 인구 밀도가 높은 곳 이다. 이를 증명해주기라도 하듯, 마카오에서 방 3칸짜리 노후 아파트 하나를 구매하려면 한화 20억원 정도가 필요하다. 요즘은 마카오 반도에서 괜찮은 아파트는 35-40억 정도는 되어야 한다고.

파일:external/www.hotels-in-macau.com/macau-cotai-districts-map.jpg

마카오는 크게 4개 지역으로 나눌 수 있는데 마카오 반도, 타이파, 코타이, 콜로안이다.

한국이나 일본, 중국, 대만, 홍콩의 처럼 마카오는 당구(堂區)라는 행정구역으로 나뉜다. 그러나 하나의 '법인' 격인 한국, 일본, 중국, 대만, 홍콩의 구와는 달리 마카오의 당구는 법인이 아닌 동네 구획 이름일 뿐이며, 그래서 이름은 구지만 구청같은 게 있는 것은 아니다. 실제 행정은 마카오 특별행정구 정부가 전담한다. 이 당구는 Freguesia라고 하는데 영어의 parish(교구)와 같은 뜻으로 본래 가톨릭 성당 교구를 나타내는 것이었다. 반환 이후 개발된 코타이는 어느 당구에도 속하지 않는다.
포르투갈어 중국어 지역 면적(km2) 인구 인구밀도(명/km2)
노사세뇨라드파티마
Nossa Senhora de Fátima
花地瑪(堂區) 마카오 반도 3.2 244,000 74,218
산토 안토니우
Santo António
聖安多尼(堂區) 마카오 반도 1.1 136,000 118,000
상 라자루
São Lázaro
望德(堂區) 마카오 반도 0.6 33,100 55,166

大(堂區) 마카오 반도 3.4 49,200 15,352
상 로렌수
São Lourenço
風順(堂區) 마카오 반도 1.0 53,700 51,700
노사세뇨라두카르무
Nossa Senhora do Carmo
嘉模(堂區) 타이파 7.6 101,200 12,131
상프란시스쿠샤비에르
São Francisco Xavier
聖方濟各(堂區) 콜로안 7.6 26,700 1,221
코타이
Cotai
路氹(填海區) 코타이 5.8 [33]

포르투갈령 시절과 2001년 이전에는 저 작은 마카오도 마카오 시(Concelho de Macau, 澳門市)와 다스 일랴스 시(Concelho das Ilhas, 海島市)로 나뉘어져 있었는데 마카오 반도가 마카오 시, 나머지가 다스 일랴스 시에 속해 있었다. 지금은 그냥 다 통합해 마카오 특별행정구 정부에서 관리하게 되었다.

8.1. 마카오 반도(Península de Macau, 澳門半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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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네스코 세계유산
파일:attachment/unesco-worldheritage.png
이름 한글 마카오 역사 지구
영어 Historic Centre of Macao
프랑스어 Centre historique de Macao
국가·위치 중국 마카오 특별행정구

등재유형 문화유산
등재연도 2005년
등재기준 (ii)[34], (iii)[35], (iv)[36], (vi)[37]
지정번호 1100

마카오를 구성하는 지역 중 하나. 위 지도에서 가장 위쪽 부분으로 중국 본토 주하이와 연결된 반도 지형이다.

16세기 포르투갈인들이 상륙한 이래 정치와 경제, 문화 등 모든 면에서 마카오의 중심지였다. 사실 마카오 특별행정구 안에 타이파, 코타이, 콜로안 같은 다른 지역들이 있지만 이 지역들은 아주 최근에 개발된 곳으로, 원래 마카오라고 하면 당연히 마카오 반도를 칭하는 것이었다.

중국과 이베리아 반도의 분위기가 혼재하여, 혹자는 중국과 포르투갈을 모두 느낄 수 있다는 평가도 한다.

평방 킬로미터당 54,226명 정도, 가장 인구밀도가 높은 산토 안토니우(Santo António) 지역은 평방 킬로미터당 118,000명이 거주한다. 이는 세계에서 (까우룽 반도와 함께) 가장 높은 인구밀도 수준으로서, 마카오에 얼마나 많은 사람이 동경을 품고 본토에서 정착해 내려왔는지 보여주는 사례라 볼 수 있다. 현재는 코타이 등의 개발로 분산이 이루어져서 예전 같진 않다.

아래에 설명할 코타이 스트립의 라스베가스 자본 신흥 카지노 단지 때문에 관광객이 그 쪽으로 약간 분산되긴 했지만 여전히 마카오에 오는 관광객은 당연히 들르는 지역이며 미국 라스베가스계 자본인 MGM, Wynn 위 2 개 카지노는 초 고액 베팅이 주로 이루어지는 슈퍼리치를 위한 카지노로서, 코타이스트립이 시설 대비 저렴한 가격, 수천여 개의 객실로 일반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것과는 다른 행보를 이어가고 있어, 제곱미터당 카지노시설 매출은 여전히 반도 지역이 높다.

그리고 문화재로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으로 지정된 포르투갈령 마카오 식민지 시대의 남유럽풍 건축물들이 거의 다 여기에 있고, 마카오 타워 등의 관광지가 있다. 구시가지 하면 일반적으로 세나두 광장이 유명하지만, 사실 거기 말고도 식민시대의 유럽풍 건축은 마카오 반도 각지에 많은데 유독 세나두 광장에 관광객이 미친듯이 많이 몰리는 편으로, 다른 곳들은 상당히 조용하게 구경할 수 있다.

반도 동쪽에 홍콩 등으로 가는 배(터보젯, 코타이젯)가 출도착하는 페리 터미널이 있다. 공항은 여기가 아니라 타이파 섬 쪽에 있다.

해안에 자꾸 토사가 매립되어 이쪽으로는 조만간 배가 드나드는 게 불가능해질지도 모른다는 말이 있다. 위치가 주장 강 삼각주라 퇴적이 잘 된다.

8.2. 타이파(Taipa, 氹仔)

원래 이었지만 마카오 반도와 3개의 교량으로 연결됐다. 아래 설명할 콜로안과도 별개의 섬이었지만 가운데 땅 코타이가 간척되면서 붙어버렸다.

원래는 작은 어촌 정도로, 타이파 빌리지라고 부르는 작은 포르투갈풍 마을이 있다. 섬 동쪽에 마카오 국제공항이 있으며, 홍콩에서 배를 타고 마카오로 오면 주로 마카오 반도 쪽의 페리 터미널로 가는데 타이파에도 공항 옆에 페리 터미널이 있어서 홍콩으로 갈 수 있다. 배가 뜨는 스케줄은 마카오 반도 쪽보다 조금 뜸한 편. 그래도 2017년 6월 새로운 터미널이 개장한 덕에 출입국심사가 매우 한산해졌다.

8.3. 코타이(Cotai, 路氹)

파일:external/mice.net.au/Cotai-Strip-Resorts-Macao-header-850x250.jpg

타이파 섬과 콜로안 섬 사이 바다를 간척해서 만든 일종의 신도시. 이름 유래는 중국어나 포르투갈어나 타이파와 콜로안에서 한 자씩 따다 붙인 명칭이다(...).

널찍한 땅에 세계 최대의 카지노호텔 베네시안[38]을 비롯한 초대형 카지노 단지들이 밀집해 있다. 여기의 카지노들은 단순한 도박장이 아니라 가족을 위한 복합 엔터테인먼트 시설을 표방하고 있어서, 카지노 자체의 매출이 상대적으로 낮고, 객실이나 엔터테이먼트 관련 매출이 높기 때문에, 단순히 볼거리로만 생각해도 매우 화려하다. 2017년 현재 3조 원 가까운 건설비가 들어간 스튜디오 시티가 오픈했고, 축소한 에펠탑이 있는 파리지앵, 마지막으로 4조원이 넘는 건설비가 들어간 윈 팰리스 호텔 등이 있다. 새로운 호텔들이 건설 중.

온 동네가 카지노와 호텔이라 거주자는 없다시피하다.

8.4. 콜로안(Coloane, 路環)

파일:external/upload.wikimedia.org/Macau_coloane_village_1.jpg

마카오 최남단에 있는 가장 한적한 시골 지역. 여기도 포르투갈령 마카오 시대의 아기자기한 남유럽풍 마을이 있어서 찾는 관광객이 꽤 있다. 콜로안 해변이라는 작은 해변도 있고, [39] 바다를 내려다보는 골프코스, 카지노가 없는 리조트와 이런저런 맛집으로도 유명하다.

위 사진은 후술된 영화 도둑들에도 등장한 성 프란치스코 하비에르 성당인데, 특이하게도 매주 한국어 미사가 열린다. 미사가 열리는 이유는 한국 최초의 신부인 김대건 신부가 여기서 신학을 공부했기 때문이고, 한국 천주교 주교회에서 동상을 세우기도 했다.기사

9. 교통

10. 경제

11. 관광

12. 교육

초/중등 교육은 이웃 홍콩과 유사하지만 사실 마카오에 있는 대학교는 세계 최강급 대학들이 즐비한 홍콩과 달리 세계적으로 우수하다고 하기 어렵다.

마카오는 대학교육이 보편화되어 있지 않기 때문으로 대학진학률 대략 10%정도인데, 평범한 카지노 딜러로 취직해도 초봉 4000만원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10년차쯤 되면 1억 가까이 된다. 일단 마카오의 카지노 딜러는 마카오인만 될 수 있다보니 경쟁이 없어 그렇다. 그나마 대학을 가도 학생들 사이에서 제일 인기 있는건 호텔경영학과나 기계공학과다. 마카오에서 호텔경영학과야 당연히 인기 있을 것 같지만 기계공학과가 의외인데 이유는 카지노 안의 수많은 오락 기구들을 수리, 관리하기 위한 기술 인력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마카오에서 제일 인기 없는 전공이 바로 세계적으로 가장 각광받는 직업인 의사가 되는 의과대학 의예과다.. 투자하는 시간에 비해 얻는게 적기 때문이다.

마카오가 워낙 소득이 높다보니 태국이나 필리핀 등 인접한 동남아시아 국가에서 온 사람들이 많은데 이러한 사람들이 의대 진학을 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특히 필리핀에서 마카오 의대를 많이 진학한다.

교육열도 낮고 이 때문에 교육 수준도 떨어지는지는 모르겠지만[40] 여러 이유로 마카오 내에 정규대학이 여러곳[41]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학에 진학하려는 마카오의 우수한 학생들은 대부분 홍콩이나 중국을 비롯한 외국으로 나가버린다. 연일 잭팟이 터지니 공부할 맛이 안나는듯

마카오 당국도 이 사실에 대해 컴플렉스가 매우 심했다. 결국 마카오는 2009년 중국의 허가를 받아 20억 달러(!)를 투자해 마카오에 근접한 주하이 시의 땅을 사들여 1.09㎢[42] 의 캠퍼스 부지를 확보하고 마카오 국립대학인 마카오대학의 신 캠퍼스를 짓는데 이른다[43]. 마카오가 작심하고 투자한 만큼, 캠퍼스의 기상은 실로 엄청나다. 부지 경계에 인공 수로를 둘러쳐 완벽한 섬으로 만들어 버려 국경을 대체한 데 이어[44], 부지 코앞에 주하이와 마카오를 잇는 국경 검문소와 다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아예 마카오 시내로 연결되는 별도의 해저터널을 파서 출입국 및 세관 문제에 따를 불편을 원천봉쇄해 버렸다... 신규 캠퍼스맵

신 캠퍼스는 2014년에 문을 열었고, 마카오 측은 카지노를 통해 창출되는 엄청난 돈을 마카오대학에 투자해 질 좋은 교육을 보장하겠다고 공언했다.

첫 해인 2015/2016년 입시가 막 치뤄진 때의 결과는 암울하였다. 마카오대학 측에서 목표하는 대학 내 국제학생 비율은 35%지만 홍콩, 대만 등 중화권이나 중국을 제외하면 국제 학생 비율이 0에 가까우며 아직까지도 마카오의 대부분 수험생들은 차라리 가까운 홍콩의 레벨 낮은 대학교를 가거나 돈만 있으면 영미권으로 가버렸기 때문이다.. 본격 한화 2조원이 날아가는 순간

그래도 캠퍼스는 역대급인지라 예쁜 캠퍼스 속에서 휴양을 즐기고 싶어하는(...) 중국 본토 학생들이 많이 지원하는 편이다. 최근에는 꾸준한 투자와 지원으로 대외적인 인식은 많이 좋아진 편이다.

일단 저렴한 학비를 기준으로 최고의 시설 교수진에서 공부할 수 있는 점과 국제화를 위해 CPLP 에 속해 있는 우수 학생들을 유치하면서 제한적으로 국제화된 환경[45]에서 지낼 수 있는 것이 중화권 학생들에게 매력적인 학교로 알려지면서 입결이 상승하였다.

아직도 대다수의 학생들이 중화권과 포어권 학생들로 구성된 점은 결점이지만, 세계 대학 순위(Times Higher Education)에서는 400위대에서 300위대로 꾸준히 상승 중이기도 하며, 이는 2014년 신 캠퍼스로 이전 후 현재 2019년까지 5년의 기간치고는 도드라지는 성과이다.

13. 군대와 경찰

13.1. 군대

마카오/군사 항목으로.

13.2. 경찰

파일:20150720-4.jpg

마카오 보안부대휘하의 치안경찰국[46]과 사법경찰국[47]이 맡는다. 이름과는 다르게 마카오 특별행정구 휘하의 주방위군 그런건 아니고(...), 그냥 공안 관련 기관을 한 군데 모아놓은 기관이다. 휘하에 보안부대 사무국, 경찰총국, 치안경찰국, 사법경찰국, 소방국, 징교관리국, 해관을 둔다. 항목 참조.

14. 구급 및 소방

파일:fire-drill_2.jpg

마카오 보안부대 휘하의 마카오 소방국이 담당하며, 구급 업무의 경우 마카오 적십자가 일부 분담한다. 마카오의 소방관경찰공무원이라는 오해가 있는데, 이는 사실이 아니다. 자세한건 항목 참조.

15. 문화

16. 대외관계

중화권 상호관계 관련 문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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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통
하나의 중국, 중화권, 중화권/상호 왕래, 화교, 한자문화권
정치관계 대만/외교, 92공식, 양안관계, 중화 타이베이
정치성향·정체성 범람연맹(친중화민국), 범록연맹(친대파), 대만인(본성인, 외성인, 대만 원주민)
관련 운동 타이완 독립운동(해바라기 운동), 양안통일
기타 타이완성(중화인민공화국), ECFA, TWICE 쯔위 청천백일만지홍기 논란
정치관계 홍콩-본토 관계, 일국양제
정치성향·정체성 홍콩인(민주파, 본토파, 친중파)
관련 운동 홍콩 독립운동, 홍콩 민주화 운동(2014년, 2019년)
마카오인, 마카오-본토 관계
티베트 독립운동, 티베트 망명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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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련 문서
天安門 天安门 法輪功 李洪志 Free Tibet 劉曉波, 타이완 넘버원, 대만민국, 혐중, 반중(한국, 일본), 친중(한국, 홍콩), 중빠, 중국/외교(홍콩/대외관계), 중국인(중국/민족), 중국 대륙, 타이완 섬, 중화민족(중화사상), 중국/경제(홍콩/경제, 마카오/경제), 대만/경제, 중국몽(일대일로), 중국 위협론(미중 패권 경쟁, 미중 무역 전쟁), 중국붕괴론(중진국 함정/중국), 메이드 인 차이나, 중국/사회, 중국/인권, 중국의 현실(홍콩, 마카오의 현실), 대만의 현실 }}}}}}}}}

홍콩의 대외 관계에 대한 언급과 같이, 갈등을 중재해 주는 중재지 역할을 널리 이용하고 있다. 예를 들어 포르투갈-스페인 사이의 갈등[48], 한반도 내부에 경색되어 있는 남북관계라던가, 양안 갈등(중국-타이완, 중국-홍콩 등)의 중재지로 주로 쓰이지만 홍콩 내부에서 중국 본토와의 갈등을 중재해 주기도 한다.

16.1. 중국 본토

이웃 홍콩과 달리 중국 본토 중앙 정부와는 마찰과 갈등이 적은 편이다.

홍콩은 예전 지배국이던 영국이 많이 약해졌어도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강대국이고 경제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최선진국인데 비해 포르투갈은 반환 당시 강대국, 최선진국 대열에서 한참 전에 밀려난 국가였다. 거기에 영어는 전 세계적으로 도움이 되는데, 포르투갈어브라질 정도를 제외 하면 쓰는 나라도 거의 없기 때문에 마카오 사람들이 모국에 대한 미련이 거의 없던 점도 있다.

사실 마카오가 반환되었을 당시에는 치안이 그리 좋다고 말하기도 힘들고 중국본토보다야 훨씬 잘살았기는 했지만 홍콩이나 대만에 비해서 봉급수준이 짜서 잘산다고 보기에는 무리가 있는 수준이었다. 물론 당시 마카오의 1인당 GDP가 홍콩에 뒤쳐지기는 했어도 대만보다는 높기는 했다. 물론 이건 카지노 빨이었고, 실제 봉급수준은 대만보다 못한 수준이었다. 그러던 것이 중국으로 반환된 2000년대 이후로 월급 수준이 이전과 비교도 할수없이 뛰게 되면서 공무원이나 은행원같은 직종들도 사람 구하기가 어려워졌고 중국본토 관광객들이 몰려들면서 공부 안 해도 잘 먹고 잘 살 수 있게 되다보니까 그런감도 없지 않다. 집값도 같이 뛰다보니까 집을 구하는것이 문제일 뿐이다.

그 외에도 홍콩이 영국 직할령으로 완전한 자치가 허락된 적이 한 번도 없었고 현재는 홍콩특별행정구로 항인치항 원칙에 의거해 제한적인 자치가 허용되고 있는 반면, 마카오는 1976년부터 포르투갈의 특수 영토(special territory)로서 속령에 준하는 자치권이 보장되는 곳이었다. 그래서 1976년 포르투갈의 해외식민지 포기 원칙이 발표된 후 마카오정청은 그때까지도 주로 영국인이 구성한 홍콩 정부와는 달리 마카이엔사라 부르는 포르투갈화된 현지 중국인으로 구성했고[49] 총독만이 포르투갈 출신 백인이었을 뿐이었다. 이미 경찰총수, 정무사장 등은 전원 중국인이었다. 그러나 홍콩은 영국 통치 당시 영국인들이 1980년대까지 정부를 구성했고, 반환을 앞둔 1992년에야 반환을 대비해 정무사장 등을 중국인이 하기 시작했으며 그 전엔 경무처장, 소방처장, 입경처장 등 차장급까지만 중국인이 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홍콩은 반환 직전의 순간까지도 영국이 통제권을 완전히 잃은 적은 없었지만, 마카오는 길게 보면 1966년, 짧게 보면 1976년부터 포르투갈이 통제권을 잃고 중국의 영향력 하에 있었다.

현재도 많은 마카오인들은 홍콩과 달리 자유나 서구식 민주주의를 별로 탐탁지 않게 보고 자유보단 질서를 중시한다. 이는 싱가포르와 비슷한 사고방식인데, 과거 본국인 포르투갈이 오랜 군사독재를 겪어 식민지 주민들에게도 3F로 대표되는 우민화 정책을 폈으며, 그 결과 자유나 민주주의 등에 무관심해졌고, 카지노 사업을 통해 먹고사는 문제가 해결되어 민주주의의 필요성을 잘 못 느낀다. 옆동네 홍콩에서 벌어진 민주화 운동들에 대해서도 당연히 미친 짓이라며 폄하할 정도며 서방이 이를 사주했다는 시각도 있을 정도다. 덕분에 마카오인과 홍콩인 간 광동어로 서로 치열한 키배가 벌어지기도 하는데 쌍욕을 섞어가며 살벌하게 벌이고, 이것은 곧 둘의 자존심 싸움이 된다. 식민지 시절부터 이리저리 문어발 뻗어 놓은 중국이 마카오를 중국화시켜서 이제는 별 반발이나 말썽이 없다.

물론 마카오에서 민주화 시위가 아예 없는 것은 아니며, 리커창 총리가 마카오를 방문할 때 행정장관 직선제 등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 # 하지만 확실히 홍콩에 비해서는 그 규모도 작은 편이고, 선거 때마다 민주파+독립파 득표율이 기본 40%는 먹고 들어가는 홍콩과 달리 여기서는 20% 언저리를 맴돈다. 그리고 홍콩에서 종종 볼 수 있는 독립 여론은 마카오에서는 사실상 없다시피하다. 왜 마카오는 홍콩에 비해 민주주의에 덜 열정적인가 심지어 홍콩에서 극심한 반발을 받고 무산된 국가안전법이나 애국주의 교육, 표준중국어에 대한 간체자 도입 교육 등도 마카오에서는 도입되어 시행되고 있다. 그러한 일련의 중국화 정책 일환으로 마카오의 모든 학교들은 중국 국기인 오성홍기도 같이 건다.#

그래서 중국 정부에서는 홍콩 민주파나 독립파에 대해 '"마카오 좀 보고 배우라"'는 이야기를 종종 한다. 2017년에 장더장(張德江) 전국인민대표대회 상무위원장이 홍콩 반환 20주년을 앞둔 시점에 마카오를 방문해 일국양제의 원활한 시행을 칭찬하고 일국양제 지속을 언급한 것을 두고 홍콩의 독립파들을 견제하려는 것이라는 관측이 나왔다. # 그 뒤 2019년 홍콩 민주화 운동 정국 때도 중국이 마카오와 홍콩을 비교하며 마카오의 원활한 일국양제 정책 시행을 다시한번 칭찬하기도 했다.

16.2. 홍콩

마카오는 오랫동안 중국 대륙과의 교류가 막혀 있었고 반면 작은 땅과 많은 인구를 지닌 홍콩과의 교류가 많았다. 이 점은 홍콩도 마찬가지라 페리로 바다를 건너 오가야 하는 불편함을 무릅쓰고 많은 교류가 있어왔다.

그러나 홍콩에 비해 마카오의 인구가 훨씬 적고, 본국 뒷배경에서도 마카오가 훨씬 밀렸기에 아직 홍콩에 밀리는 면이 있다.

위에서 언급했듯 마카오의 화폐파타카이지만 홍콩 달러도 대부분의 경우 통용된다. 그러나 반대로 홍콩에서는 파타카를 사용할 수 없다. 대부분의 관광객들은 홍콩 달러를 대신 사용하며 작은 식당이나 구멍가게에서도 홍콩 달러로 계산이 가능하다.

마카오 내에서는 홍콩 달러와 1:1의 가치[50]로 사용이 가능한데 1983년부터 고정 환율을 실시하고 있기 때문이다.

보통은 홍콩 달러파타카로 지불하면 거스름돈은 파타카로 주는 경우가 많은데, 아예 파타카로 지불해도 홍콩 달러로 거스름돈을 주는 경우도 많다. 파타카로만 잔돈을 주는 악독 영업소들도 있는데 이 때는 강하게 홍콩 달러를 요구해야 한다. 이 경우는 주로 맥도날드스타벅스 등에서 일어난다. 반면 페리 터미널 등에선 홍콩 달러를 내밀면 거스름돈을 홍콩 달러로 꼬박꼬박 준다.

경제 규모는 홍콩이 더 넘사벽으로 거대한데다가 홍콩은 금융업 등 서비스업이 발달해 해외취업을 위해 홍콩으로 이민 가는 마카오인들도 많은 편이다.

16.3. 포르투갈

반환 후에도 대개의 구 포르투갈령들이 다 그렇듯 포르투갈 사람들이 아직도 각계에서 상류층으로 꽤 영향력을 발휘한다. 포르투갈어는 마카오 반도에서 통용이 잘 되는 편이고 마카오인 중 포르투갈과 중국의 혼혈들도 많다. 이들을 마카니즈 내진 마카이엔사라고 부르며 마카오의 원주민들 중 절반 이상을 차지한다.

마카오인의 성명 중 포르투갈/스페인식 이름인 하무스(라모스), 주제(호세), 페르난두(페르난도), 카타리나, 루이사, 이사벨라 등의 이름들도 자주 보인다. 홍콩영화 <이사벨라>에 나온 마카오 배우 이사벨라 렁은 원래 이름이 이사벨라 루이사 다 실바(Isabella Luisa Leong Da Silva)라는 포르투갈 혼혈 중국인이며 양락시라는 중국어 성명을 갖고 있다.

2002 한일 월드컵 당시 포르투갈 축구 국가대표팀[51]은 여기에 베이스캠프를 차렸다.

16.4. 바티칸

마카오는 바티칸과도 밀접한 관계이다.

16.5. 브라질

같은 구 포르투갈령 브라질과도 좋은 관계이다.

16.6. 한국

한국 가톨릭 최초의 신학생인 김대건 안드레아, 최양업 토마스, 최방제 프란치스코가 박해를 피해 유학을 와서 공부한 곳이기도 하다. 최방제는 도중에 병사했지만, 김대건과 최양업은 무사히 성장해 신부가 되었다.

정식 외교관계는 한국포르투갈과 1961년 수교하면서 성립되었다. 이후 마카오가 중국에 반환되면서 지금은 자연스럽게 중국의 일부로서 교류하고 있는 상황. 다만 인구 규모가 작고 한국인들도 많지는 않은 편이라, 홍콩 총영사관에서 같이 관리하고 있다.

영어가 통하는 지역 + 쇼핑 천국 + 대도시 관광이라는 여러 가지 메리트가 있는 홍콩과 달리 한국인들의 마카오에 대한 이미지는 포르투갈 옛날 식민지 + 카지노 정도. 실제로 한국인들이 종종 여기서 도박에 빠져 패가망신하기도 한다. <세계의 한국인>이라는 책자에서 마카오편을 보면 한국에서 정치인으로 알아주고 부유하게 살던 어느 사람이 마카오에서 도박에 빠진 끝에 알거지가 되어 마카오 길거리에서 쓸쓸히 쓰러져 죽은 적도 있다고 할 정도이다. 이 책자를 보면 한국인이 거지처럼 지내다가 한국 관광객을 보고 구걸하여 그 돈으로 도박하는 경우도 있으며, 카지노 내에도 관광객들을 상대로 구걸한다고 한다.

하지만 의외로 마카오의 치안은 세계에서 가장 좋은 편이니, 관광 갈 때 동남아처럼 '원 달러걱정은 하지 않아도 된다. 1인당 GDP가 한국의 세 배가 넘는데 그런 걱정 자체가 기우인 셈. 웬만한 호텔 근처라면 새벽 2~3시에도 돌아다녀도 무방할 정도다. 되려 취업난이 심한 한국에서 마카오로 건너가는 사람들도 많이 생기기 시작했다.

마카오가 한국인들에게 홍콩에 비해 무관심을 받는 건 강대국인 영국의 지배를 받은 홍콩과는 달리 역사적으로 서유럽의 빈국인 포르투갈의 식민지배를 받은데다 경제적으로도 딸렸던 것이 크다. 그리고 북한 사람을 찾아볼 수 없는 홍콩과 달리 북한 사람들이 자유롭게 드나들어서 꽤 많이 있는 마카오는 치안 면에서도 충분히 불안을 느낄 만했다. 신상옥 감독 납치 역시 마카오에 있던 북한 공작원들이 벌인 짓으로[52] 이후 마카오는 납북당하기 좋다며 불안해하는 어르신들도 있었다. 물론 대북제재가 실시된 현재 대부분 북한인은 철수했다.

반면 마카오는 한국에 꽤 적극적이어서, 관광객을 끌어들이기 위해 드라마 꽃보다 남자를 후원하거나 엠넷MAMA 같은 한국 TV 프로그램을 유치하기도 했다. 마카오 정부에서는 마카오로 한국인들을 끌어들이기 위해 관광청이 주도하여 활발한 SNS 활동은 물론이고 한국 예술가들을 초빙하여 홍보대사로 만들기까지 했다. 심지어 마카오 내의 대학들마저 한국 유학 박람회에 뛰어들고 있다. 이웃 홍콩에 비하여 저렴한 교육비와 풍부한 재정을 바탕으로 한 발전 가능성을 무기로 내세우는 거 같다.

북한 관련해서 김정남이 이곳에 거주하며 생활하고 있었다. 아무래도 마카오 경찰 및 베이징 중국 중앙정부의 보호를 받는 듯 했고 2007년에는 홍콩 입국을 시도했다 거부당했던 적도 있다. 남한 언론인들을 만나면 그렇게 술을 잘 샀다고... 아들인 김한솔 역시 이 곳에 거주하다 프랑스로 유학가고, 포르투갈 국적을 보유한다. 김한솔은 놀랍게도 가톨릭 신자로서 독실한 그리스도인이며 할아버지와 삼촌이 나쁜 독재자라고 했을 정도였다!!! 결국 김정남은 안전지대인 마카오를 벗어나 말레이시아로 갔다가 쿠알라룸푸르 국제공항에서 북한이 고용한 걸로 보이는 동남아시아 청부 살인업자들에게 독살당했다(...)

한국 영화 도둑들에서 이야기가 전개되는 주요 무대로 등장한다. 등장인물들이 나란히 걸어가는 영화 포스터의 배경인 "행복의 거리"를 비롯하여 마카오 항구와 차이나타운, 카지노의 풍경이 영화 내내 펼쳐진다. 주연인 김윤석의 극중 이름이 "마카오 박"일 정도.

2015년에는 삼성 라이온즈의 몇몇 이 곳에서 원정 도박을 한 정황이 드러나 물의를 빚기도 했다.

17. 등장 매체

모나코라스베가스와 함께 카지노로 유명하고, 범죄조직의 거점으로 자주 등장한다.범죄 조직은 돈이 되는 곳에 있으니까

이웃한 홍콩에는 해피밸리에 위치한 경마장 이외에는 실존하는 카지노가 없다. 그래서 홍콩 영화에서 주인공은 항상 마카오에 도박을 하러 가고는 한다.

가수 싸이의 정규 8집 4x2=8의 타이틀곡 New Face의 뮤직비디오는 마카오의 베네시안 호텔을 배경으로 촬영되었다.
  • 스카이폴
    엄청난 규모의 카지노가 있는 곳으로 등장한다. 악당 파트리스의 카지노 ID칩을 이용해 그의 의뢰비를 획득하고, 라울 실바가 있는 장소를 알게 된다. 물론 이곳에서도 목숨을 건 격투를 벌인다. 위 장소는 슬프게도 마카오에 존재하지 않으며, 영화를 위해 가공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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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일:external/www.katclay.com/Daniel-Craig-James-Bond-Skyfall.jpg
  • 나우 유 씨 미 2
    중반부의 주 배경지. 호스맨 멤버들이 탈출하던 중 모종의 계략으로 여기로 넘어오면서 이야기가 전개된다. 설정상 세계에서 제일 오래된 마술가게가 여기에 있다.
  • 도둑들
    카지노를 비롯, 콜로안 빌리지 등 마카오 여러 군데가 배경인 한국 영화. 홍콩도 같이 나온다.


[1] 국가가 아니므로 국장이 아니라 그냥 휘장이다. 중국어로는 구휘(區徽)라고 한다.[2] 반환 당시에는 16.92㎢(대략 서울특별시 광진구 수준의 면적)였다. 간척 사업으로 코타이 섬을 개발하면서 커진 것이다. 대한민국에서 면적이 가장 작은 도시인 구리시의 면적과 거의 비슷하다.[3] 홍콩 달러도 법정 화폐는 아니지만 널리 통용된다.[4] ISO 3166-2에 중국의 하위 행정구역으로써 형식적으로 CN-MO를 할당해두었지만 사실상 MO, MAC만이 쓰인다.[5] 중국국가 코드 최상위 도메인인 .cn 산하에 형식적으로 할당해 놓았으나 잘 쓰이진 않는다.[코로나19]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감염증으로 인한 경보[7] 양자는 거의 비슷하되 '별'이 別과 别로 다르다. 중국 대륙(본토)에서 번체자(정체자)를 써야 할 때 쓰는 표준 자형은 간화자와 동일한 别이지만, 대만에서는 別을 쓴다(대한민국과 일본에서도 別을 씀). 여권 표지에 번체자인데도 别을 쓰는 이유는, 마카오는 행정상으로 중국에 속해 있고, 중국에서 <간화자총표(簡化字總表)>에 없는 번체자(구자형(舊字形)이라고 한다.)를 써야 할 경우에는 중국에서 쓰는 신자형(新字形)을 따라야 하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학술 목적으로 쓰는 번체자도 그러하다. 한편 澳 자의 형태도 두 종류가 있는데, 대만이나 대한민국·일본의 폰트로는 釆이 들어가 있는데 반해 중화인민공화국의 폰트로는 米가 들어가 있는 형태로 렌더링된다. 유니코드에서는 양자를 다른 글자로 취급하지 않고 있다. 중국 대륙(본토)의 표준 자형은 澳 자를 정체자와 간화자 모두 米가 들어간 형태로 적도록 하고 있지만, 마카오를 비롯해서 실제 정체자가 쓰이는 지역에서는 釆자가 들어간 형태의 자형이 꽤 많이 쓰인다. 여권에 적혀 있는 澳 자는 澳의 두 형태(약칭에 단 주석 참고) 중 어느 쪽인지에 대해서는 확인바람. 澳 자의 경우 인터넷에 있는 마카오 여권 사진으로는 식별이 어려워서 실물을 봐야 확인할 수 있을 듯. 희미하지만 米 모양 위에 선 하나가 더 확인되므로 釆로 쓰이는 것으로 보인다. 손으로 쓰거나 일부러 본을 떠서 쓰지 않는 이상 이쪽도 釆 들어간 澳를 쓰는 듯 어느 한자든 무슨 상관이랴... 정 궁금하면 마카오 당국자에게 물어보자[8] 그 전에는 민간 관행에 의존했다. 지금의 영어와 유사한 방식이다.[9] 광동어 '헝껑'/표준중국어 '샹깡'으로 광동어 발음이 영어 통칭과 거의 비슷하다.[10] 초안 중 하나로 홍콩과 똑같은 빨간색 바탕을 사용한 것도 있었으나 기각되었다.[11] 한국에서 중앙정부기관 앞에 붙는 정부상징과 비슷하다.[12] 홍콩 깃발 초안 중에서도 오성홍기 기반인 깃발들이 있었다.[13] 무려 명나라 가정제 시대다. 홍콩 섬영국 해군이 상륙한 건 1841년이다.[14] 이렇게 주권은 중국에 있지만 실제 통치권은 유럽 국가가 행사하는 모델은 현대사에까지도 영향을 끼쳤다. 홍콩 반환 협상 당시 영국은 반환 이후의 홍콩 통치제도를 이런 식으로 하자고 제안했던 것. 중국이 주권을 가지되 영국이 홍콩에서 자치권을 행사하는 방식이었다. 중국의 사회주의 체제와 홍콩의 기존 자본주의 체제가 맞지 않기 때문에 이런 고육지책이 나왔다. 물론 중국이 이 방식을 거부하고 대신 역제안한 일국양제(1국가 2체제)로 협상이 타결됐기 때문에 영국이 제안한 모델은 도입되지 못했다. 그리고 포르투갈령 마카오도 똑같이 중국에 반환된 뒤 일국양제를 시행 중이다.[15] 이 때 달아난 네덜란드인들이 이후 대안으로 스페인인들을 몰아내고 대만을 식민지로 만들었다. 하지만 얼마 안 가 대대적으로 침략해 온 정성공에게 쫓겨나고 남명정씨 왕국이 들어섰다 강희제의 친정으로 만주족의 손에 떨어져 청나라 영토가 된다.[16] 당시 일본은 마카오도 포르투갈의 아시아 식민지였던 동티모르을 점령했던 것처럼 무력으로 점령하려고 하지는 않았다. 그 이유는 티모르에는 연합군(호주군, 네덜란드군, 영국군)이 들어와 있었기에 명분이 섰지만 마카오에는 연합군이 없었다.[17] 홍콩의 경우 강대국인 영국, 그리고 영국과 동맹국인 미국이 배후라 아직 허접한 나라였던 중국, 그리고 농민군 수준을 못 벗어났던 신생 인민해방군이 어찌 할 수 없었다. 잘못 건드리면 미국과 전쟁할 판이었다. 그러나 마카오의 지배국 포르투갈은 이미 허약해질 데로 허약해진 약체가 된 지 오래라 인도처럼 식민지 무력회수가 가능했다.[18] 중국은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당시부터 포르투갈령 마카오영국령 홍콩에 대해 "중국 땅(주권)이지만 영국/포르투갈이 행정권을 행사하고 있으며, 주권과 치권은 불가분이므로 반드시 반환받아야 한다"는 입장을 고수했다. 포르투갈은 1974년에 중국의 이러한 입장을 인정한 것이다.[19] 이들 지역들도 결국엔 사회주의 체제가 적용되며 따라서 중국본토 내에 적용되는 모든 규제에 발이 묶여버렸다. 이는 국제 비즈니스에 치명적이다.[20] 이리 되면 중국 본토 내의 사회주의 규제들이 완전히 적용되지도 않고 페이스북, 유튜브, 트위터 등 다국적 기업들의 마케팅에 꼭 필요하지만 중국본토 내에서는 막혀있는 SNS의 사용도 가능하며 이래저래 장점이 많다. 경제자유지수에서 상위권을 차지하는 것은 당연하다.[21] 남자들이 툭하면 배 타고 멀리 아프리카남아메리카호르무즈인도고 다 나가버려 다 죽어버린 까닭에 짝 없는 여자들도 많았다.[22] 대부분 19세기 이전부터 살아온 중국인들인 마카오인(마카이엔사, 마카니즈)들이다. 20세기가 되어 대륙에서 유입된 광동인들은 포르투갈 국적을 못 받았다. 이들은 포르투갈어도 못 한다. 이 사람들은 반환 이후 중국(마카오) 국적을 받았다.[23] 영국 정부로서는 홍콩 반환 후에도 계속 영국 국적을 유지하게 해주는 게 쉬운 일이 아니었다. 인구가 몇십만에 불과한 마카오와 달리 홍콩은 인구가 700만 명이 넘어서 본국 소속 지역인 스코틀랜드(500만 이상), 웨일스(300만 이상), 북아일랜드(200만 미만) 인구보다 많다. 물론 영국 국적 유지를 희망했던 홍콩인들이 영국 본토로 이주하지는 않겠지만(중국에 반환된 홍콩에 '외국인' 자격으로 계속 거주할 수도 있으니까. 실제로 캐나다호주 국적을 얻은 홍콩인들은 1997년 이전 일시적으로 이민했다 시민권 취득 후 되돌아온 사람들이며 그 자녀들에게도 해당 국적이 넘어가 꽤 많은 젊은 층이 중국 정부의 통제 밖에 있다.) 그래도 영국 정부로서는 부담스럽다. 게다가 영국 출산율이 한국, 일본만큼 심각하다면 모르지만 인도파키스탄 출신 이민자들의 출산율이 너무 높아서 합계 출산율이 선진국치고는 꽤 잘 나와서 인구가 부족하지도 않기 때문에, 영국은 무책임하다고 욕 먹는 쪽을 감수한 것으로 볼 수 있다. 한때 영국은 홍콩인들을 북아일랜드로 이주시키는 방안도 검토했지만 기각되었다.#. 만약 마카오도 홍콩처럼 수백만 명이 거주하는 지역이었다면, 포르투갈 역시 국적을 주지 않았을지도 모른다. 이런 의미로는 마카오의 인구가 얼마 안 된게 다행일지도 모른다. 어차피 중국본토 출신 광동인들은 포어도 못하고 가톨릭을 믿지도 않아 마카오인으로 치지도 않았는지라 진짜로 마카오인으로 칠 만한 사람 수는 애초 적었다.[24] 물론 삶의 질은 아직까지 홍콩이 앞선다.[25] 사실상 광동어이다.[26] 그러나 옆동네 홍콩과는 다르게 땅 크기가 하도 작아서 도로나 거리에 표지판이 영어로 적혀있고 밑에 중국어(광둥어)로 적혀 있는 홍콩과는 반대로 도로 표지판이 거의 없다(...).있다고 해봐야 마카오 국제공항이나 시내에 근방에 2~3개 정도 붙어있는 정도고 거리명 표지판은 아주 자그마케(...) 표시되어 있다. 물론 거리 안내판 등은 이쪽도 잘 되어 있는 편이다.[27] 전체 인구 대비 85%[28] 전체 인구 대비 3.2%[29] 주로 민남어, 치우차우어, 객가어이다.[30] 이들도 한족에는 포함되지만, 19세기부터 조상이 마카오에 살았던 순수 마카오 토박이들이며 포르투갈인과 혼혈도 잦았다. 오늘날 마카오 인구의 80% 이상은 20세기 근대에 들어와서야 마카오로 이주한 대륙 출신이다.[31] 전체 인구 대비 1.5%[32] 두 지역의 이름을 합쳐 코타이라 부르는 곳이 매립지이다.[33] 카지노, 호텔 천국이라 거주자가 사실상 없다시피 하다.[34] 오랜 세월에 걸쳐 또는 세계의 일정 문화권 내에서 건축이나 기술 발전, 기념물 제작, 도시 계획이나 조경 디자인에 있어 인간 가치의 중요한 교환을 반영[35] 현존하거나 이미 사라진 문화적 전통이나 문명의 독보적 또는 적어도 특출한 증거일 것[36] 인류 역사에 있어 중요 단계를 예증하는 건물, 건축이나 기술의 총체, 경관 유형의 대표적 사례일 것[37] 사건이나 실존하는 전통, 사상이나 신조, 보편적 중요성이 탁월한 예술 및 문학작품과 직접 또는 가시적으로 연관될 것[38] 이탈리아 베네치아의 수로를 실내(!)에 재현해놓았다.[39] 드라마 꽃보다 남자의 촬영지이다.[40] 오죽하면 한겨레신문 계열 주간지 한겨레21에서 2007년 마카오 반환 7주년 기사에서 마카오 교육의 실태를 꼬집기도 했다. 심지어 2012년에는 마카오대학에서 보안요원들이 한국어 강사로 일하던 교수를 붙잡는 사건이 발생해 학생들이 항의하고, 홍콩 총영사관 측에서 마카오 경찰국에 경찰영사를 보내 조사하기도 했다.[41] 마카오대학, 마카오관광대학, 마카오과학기술대학, 마카오시립대학 등.[42] 이와 캠퍼스 면적이 비슷한 한국의 대학은 한서대학교(1.1㎢), KAIST (1.14㎢)가 있다. 두 학교 모두 면적 순위로는 국내 10위권 밖으로 그다지 큰 편이 아니라 여길 수 있지만, 마카오 영토 면적에 비하면 무려 3.3%로 엄청난 크기이다.[43] 구 캠퍼스와 함께 운영하는게 아니라, 대학 전부를 주하이로 이전시켰다.[44] 사실상 국경으로 간주하여, 본토 측 외곽에서 인민해방군이 추가로 방비를 실시한다고 한다.[45] 마카오는 포르투갈어가 공용어인 포어권으로 아시아에서 거의 유일하다.[46] 행정경찰[47] 사법경찰, 다시말해 경찰수사관[48] 식민 지배 등에 얽힌 미로 같은 복잡한 관계로 보면 된다.[49] 이런 포르투갈화된 중국계 혈통의 사람들인 마카오 원주민들을 중국에선 토생포인이라 부르는데, 해석하면 토착 포르투갈인으로 이들에게 포르투갈 피가 섞여서 그렇게 불러왔다.성 명도 포르투갈 성씨와 중국 성씨를 같이 쓰기도 하고 언어도 광동어포르투갈어를 같이 써서 1949년 이후 급증한 중국 대륙 출신 광동인과 확연히 구분됐다. 지금도 이 43만 명의 토생포인들과 그들과 광동인 간 혼혈인들은 전원 포르투갈 국적으로 중국의 통제 밖에 있고, 광동인 출신들은 중국의 통제 안에 있는 마카오 특별행정구 소속 중국 국적이다.[50] 정확히는 1홍콩 달러 = 1.03 마카오 파타카로 홍콩 달러가 조금 가치가 더 높다.[51] 현재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 감독인 파울루 벤투도 여기에 소속돼 있었다.[52] 이들은 조총련계로 일본 국적을 지니고 있어 의심을 받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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