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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한자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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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유래3. 특징
3.1. 반절 기반의 한자음 도입3.2. 입성의 잔존3.3. 성모 견모(見母)[k], 계모(溪母)[kʰ], 효모(曉母)[x], 갑모(匣母)[ɣ]의 혼란3.4. 운미 [t]의 [l]화3.5. 한국어의 음운 현상의 영향을 받음3.6. 어두의 [ŋ]발음 소실3.7. 중국어 방언과의 관계
4. 관련 문서

1. 개요


한국 한자음이란 한국에서 한자를 읽는 소릿값이다.

2. 유래

한자음은 오랜 시간에 걸쳐서 한국으로 유입되었기 때문에 유래를 특정하기가 쉽지 않다. 오 방언설, 송대 개봉 발음설, 북방 중국설 등이 제시되었으나 딱히 우세한 것은 없다. 최신연구인 이토 지유키(伊藤智ゆき)의 서적(2007)에서는 한국 한자음이 대체로 중국 나라 시대 장안의 발음에서 유래했다는 견해를 내놓기도 했다.# 여러 사서들에 대한 당나라 때의 각주에는 반절로 발음을 표시하였는데, 현재 한국의 한자음과 거의 동일하다.[1]

한국 한자음이 한자의 비교적 오래된 발음을 보존하였음은 분명하다. 다만 성조는 사라졌으며 그 중 일부만 장단음의 형태로 남아있다.

3. 특징

3.1. 반절 기반의 한자음 도입

한국 한자음의 가장 기본적인 특징은 중국의 발음법인 반절(反切)을 그대로 가져온 것이다. 반절이란 한자의 소릿값을 초성/중·종성[2]으로 분리하여 기록하는 것이다. 을 예로 든다면, 동의 반절은 切이라고 쓴다. 德에서 초성인 무성 무기음 ㄷ[t]를 가져오고 紅에서 옹[ong]을 가져와 동[tong](ᅟᅥᆨ + ㅎᅟᅩᆼ)이라는 발음을 재구성하는 방식이다.[3] 이는 음 자체를 가져간 일본과 차이가 크다. 이 때문에 일본어에서는 시대에 따라 한자의 발음이 달라지고 단어별로 같은 한자라도 다른 한자음으로 읽어야 하는 경우가 있는 반면, 한국어는 일부를 제외하면 한자 한 글자에는 한 가지 발음만 존재하므로 항상 같은 발음으로 읽을 수 있다.

그러나 반절 자체가 2개 이상인 한자라면 개개의 발음이 모두 존재한다. 예를 들자면 의 경우 博墨切(ᅟᅡᆨ + ㅁᅟᅳᆨ), 補妹切(ㅗ + ㅁ)이라는 두 개의 반절이 있으므로, '북'(← 븍[4])과 '배'라는 서로 다른 음이 존재한다.

3.2. 입성의 잔존

한국 한자음에는 이미 북경 관화에서는 사라진 입성[5]이 여전히 존재한다.

3.3. 성모 견모(見母)[k], 계모(溪母)[kʰ], 효모(曉母)[x], 갑모(匣母)[ɣ]의 혼란

중국 한자음이 한국 한자음에 들어올 때 대부분의 한자들은 일정하게 수입되어 들어왔으나, 이 4성모의 경우 유난히 혼란이 많았다. 이미 조선 시대 초기의 기록인 동국정운에서부터 이 4성모의 혼란을 설명하였다.[6][7] 원칙대로라면 견모는 ㄱ, 계모는 ㅋ, 효모는 ㅎ, 갑모는 ㆅ으로 들어와야 했지만, 실제로 현실음은 많이 달랐다. 특히 심한 것이 계모(溪母)인데, 계모의 원음은 [kʰ]로 한국어의 ㅋ에 해당하나, 206운상 쾌운(夬韻)에 해당하는 한자들을 제외한 대부분의 한자들이 평음화되어 견모(見母)[k](ㄱ)에 흡수되거나(溪: 켸 → 계, 去 : 커 → 거, 克 : 큭 → 극)[8], 일부는 효모(曉母)[x]에 흡수되었다.(恢 쾨 → 회.) 또한, 견모(見母)에 속하는 한자들이 효모(曉母)로 흡수된 예도 있으며(* 革 격 → 혁), 정 반대로 효모에 속하는 한자가 견모에 흡수된 예도 있다.(喝 할→갈) 갑모(匣母)의 경우 해성부가 견모인 경우 견모로, 이외의 경우에는 효모로 뿔뿔히 흩어졌다.(曷 : ᅘᅡᆯ → 갈, 害 : ᅘᅢ → 해) [9]

이는 고대-중세 초기 한국어에서 ㄱ/ㅋ/ㅎ이 변별되는 음소였는지의 여부를 따지는 학문적인 논쟁으로 올라가는데, 적어도 셋 모두가 변별되는 음소는 아니었다는 것이 중론. ㄱ/ㅋ가 서로 변별되지 않았거나, ㅋ/ㅎ가 서로 변별되지 않았거나, 셋 다 변별되지 않았거나 하는 식이다. 이런 현상은 한국 한자음뿐만 아니라 15세기 중세 한국어 어휘에서 ㅋ이 어두에 나오는 어휘가 고작 4개(캐다, 콩, 크다, 키(농기구))밖에 되지 않았던 것이나, 받침의 ㅋ이 16세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점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10]

邯도 마찬가지로 한단지몽등의 사자성어로 쓰일 때 '한'으로 쓰이면서 동시에 강감찬등의 인명으로는 '감'으로도 쓰였다. 이 때문에 한 동안 '강감찬'으로 읽어야 할지, '강한찬'으로 읽어야 할지에 대한 논란도 있었다.

비슷하게도 酵도 한자도 발효(醱酵)라는 단어에는 '효'로 읽고, 무교병(無酵餠)라는 단어에는 '교'로 읽는다. 역시 발견(發見)이라는 단어에서는 '견'으로 읽지만, 알현(謁見)이라는 단어에서는 '현'으로 읽는다.

3.4. 운미 [t]의 [l]화

종성에서 [t] 발음이 났던 글자들이 모두 [l]로 발음되는 것이 가장 큰 특징이다. 중국 방언에서 일어난 음운 현상이 수입된 것으로 보는 견해와 한국에서 독자적으로 일어난 음운현상으로 보는 설, 한자음이 들어오던 시기 한국어 발음에 -t가 없어서, 혹은 개음절 구조였던 고대 한국어에서 매개 모음 사이에 끼어 있던 -t-가 유사한 -l-로 변한 것이 반영되었다는 설로 나뉜다.[11][12][13] 동국정운에서도 종성 ㄹ은 국어에서만 마땅히 쓸 바이며 한자에서는 써서는 안 되는 것이라 지적하였는데, 그 이유는 -l로는 입성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따라서 동국정운에서는 -l을 입성으로 만들기 위해 을 덧대서 내파음으로 만드는 이영보래(以影補來)를 만들었다. 하지만 결국은 쓸데없는 노력이 되고 말았다 예를 들자면 의 본음은 에 가까웠으나 한국에서는 음운 변화로 이 되었다. 범어 Buddha를 佛陀라고 쓴 것은 원래는 '붇타'로 읽힐 것을 염두에 두었겠으나 현재의 한국 한자음은 불타가 원음과 더 멀어졌다. 이 현상과 관련하여, 한국 한자음으로 종성 ㄹ이 들어간 한자 대부분은 일본 한자음에서는 ツ나 チ로 끝나게 된다. 예컨대 喝(갈/カツ), 列(렬/レツ), 一(일/イチ(イツ)), 八(팔/ハチ) 등. 베트남어에도 이 현상이 뚜렷해서, EBS 기초 베트남어의 이강우 강사는 이것만 나오면 "t로 끝나는 건 우리 말로 -ㄹ이랬죠? 그럼 이건 우리말로 뭘까요?"라고 말한다. 낫/녓(一, 일), 비엣(越, 월), 텟(節, 절) 등.

(串)이라고 해서 종성이 [t]로 끝나는 한자가 있긴 하지만, 이는 串의 원래 발음인 '관, 천'과는 다르며, 우리말에서 온 음이기 때문에 한국 한자음이라고 할 수 없다. 다시 말해 한글이 아직 없어서 일본어처럼 한자를 훈독으로도 읽었던 시대부터 '곶'을 표현하기 위해 훈차한 것.[14] 그러니 중국에서 들어온 한자어들은 사실상 전부 'ㄷ' 받침이 'ㄹ'로 바뀌었다고 봐도 무방하다.

그 흔적이 현재까지 남아 있는데, 한자음의 종성인 ㄹ인 한자에 후행하는 예사소리 중 치경음(ㄷ, ㅅ, ㅈ)만이[15] 된소리로 바뀌는 현상이 바로 그것이다.[16] 이는 불파음에 대한 자음동화와 같은 것이다. 갈등(葛藤)[갈], 불소(弗素)[불], 발주(發注)[발]와 같은 단어들에서 앞 음절의 ㄹ 받침을 ㄷ 받침으로 바꿔서 '갇등', '붇소', '받주' 등으로 읽어 보면 알 수 있다.

그 외에 불(不)의 발음이 ㄷ, ㅈ 앞에서 '부'로 바뀌는 현상도 있다.

3.5. 한국어의 음운 현상의 영향을 받음

한국어의 음운 현상인 단모음화, 구개음화, 원순모음화의 흔적이 보인다. '셩', '샹' 등이 '성', '상'으로 바뀌거나(예를 들어, 星은 桑經切(ᅟᅡᆼ + ㄱᅟᅧᆼ)이라는 반절이 존재하여 원음은 '셩'이었으나 '성'으로 바뀌었다. ㅅ이 그 자체로 구개음이 되었다가 평음으로 회귀한 흔적이다.[17] 跧(원음 좐), 段(원음 돤)이 '전', '단' 등으로 바뀌거나 하여 구개음이 평음이 되거나 개합음이 사라지는 단모음화의 예를 보이며, 傳(원음 뎐)이 '전'으로 바뀌는 구개음화, 北(원음 븍)이 '북'이 되거나 勿(원음 믈)이 '물'이 되는 등의 원순모음화가 보인다. 한국 한자음 중에 '디'나 '티'라고 읽히는 한자가 없는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다.[18] 한 예로, 天地의 원음은 '텬디'였으나[19] 구개음화로 인해 '천지'로 바뀌었으며, 마찬가지로 峙의 원음은 '티'였으나 '치'로 바뀌었다. 분당선한티역부산 1호선대티역(大峙驛)이 峙의 역사적 발음을 반영한 경우다. 長은 집운(集韻)에서 제시하고 있는 반절이 直良切(ᅟᅵᆨ + ㄹᅟᅣᆼ)로 원음은 '댱'이었으나, '쟝'을 거쳐 '장'으로 바뀌었다.

3.6. 어두의 [ŋ]발음 소실

보통화와 한국어서는 어두의 [ŋ] 발음이 소실되었지만 베트남어와 광동어에서는 이 어두의 발음이 보존되어있고[20], 일본어와 민남어 같은 경우에는 어두의 [ŋ](연구개 비음)에서 [ɡ](유성 연구개 파열음)으로 변형되어 발음된다. 그 흔적으로 魚, 五, 銀, 玉을 현대 한국어로 각각 '어, 오, 은, 옥'이라 하는데 일본어에서는 비탁음에서 비롯 된 ギョ, ゴ, ギン, ギョク라고 한다. (어두 위주로는 [g], 일부 어중/어말에서만 [ŋ]) 이 네 글자 역시 과거 중고 시대의 중국어 발음이 [ŋ]이었음이 반영되어 있다.[21]

고대 한국어의 어두에서 연구개 비음(혹은 구개수 비음?)이 나타났는지의 여부는 차치하고서, 훈민정음 창제시기 중세 한국어에서는 어두의 ㅇ, ㆁ, ㆆ가 변별되는 상태가 아님을 해례본 제자해, 합자해에서 확인할 수 있다.[22] ㅇ의 음가를 유성 성문 마찰음 ɦ로 보는 연구자들도 있으나 통상 영성모(零聲母, zero consonant)로 보므로 업모(業母)의 ㆁ나 읍모(挹母)의 ㆆ이 ㅇ의 욕모(欲母)와 마찬가지로 현재 한국 한자음처럼 영성모였다고 보아야 할 것이다.[23] 이는 연산군 대에 발간된 개간법화경언해에서 ㆁ이 과도하게 사용되고 있는 것에서도 유추할 수 있다.[24]

3.7. 중국어 방언과의 관계

중국어방언들과 한국 한자음의 유사성도 하나의 연구 거리인데, 일반론이나 여러 계량적인 방법으로 조사한 결과 광동어(월 방언)과 유사도가 가장 높다는 것이 대체로 공통된 연구 결과이다. 연구에 따르면 광동어와 한국 한자음의 상호 이해도는 0.533 정도로, 중국어 문장을 한국 한자음으로 그대로 읽었을 경우 월 방언 화자는 대략 반 정도를 알아들을 수 있다는 뜻이다.

다만 음의 유사도에서 광둥어는 그리 순위가 높지 않았고, 매현(梅縣)의 객가 방언이 가장 유사하다고 한다. 객가인 자체가 폐쇄적인 떠돌이에서 기원한 집단이라 객가 방언이 중국 고대어의 특징을 비교적 잘 보존하였음을 생각하면 한국 한자음도 현대 중국어에서 실종된 중국 옛말의 자취를 일부나마 보존하는 셈. 객가인의 기원은 서진 시대이며, 한국 한자음이 당나라 장안 시절의 유산이라는 것을 생각해 본다면 중국의 한자음이 오랜 역사를 거치면서 많이 변했다는 것을 짐작할 수 있다.

4. 관련 문서



[1] 한국인은 한국식의 한자음 읽는 방법으로 읽으면 각주에 나와있는 발음에 대한 각주를 읽지않아도 각주에서 설명하는 것과 같이 대부분 동일한 음으로 읽는다. 오히려 계속 한자음이 변한 현대 중국에서 당대의 각주를 읽는 것이 까다로운 편이다.[2] 반절법상으로는 성모(聲母)와 운모(韻母)라고 한다. 여기서 운모를 더 자세히 나와서 운두(韻頭)·운복(韻腹)·운미(韻尾)로 나누며, 각각 현대로 치자면 운두는 개합음(介合音; 접근음) 운복은 주모음, 운미는 종성(終聲)에 해당한다. 예를 들어 '권'이라는 발음을 놓고 보면 ㄱ이 성모, ㅜ가 운두, ㅓ가 운복, ㄴ이 운미.[3] 자전은 기본적으로 전주고음(轉註古音) 등 중고(中古) 중국어에서 반절이 되는 것을 따왔기 때문에 음운에 변화가 일어난 현대 중국어(관화)에서는 반절이 맞지 않는 경우가 있다. 위에서 예를 든 東도 현대 중국어(관화)에서는 德紅切이라 할 수 없는데, 東은 1성, 紅은 2성이기 때문이다.[4] 중세 국어에서 원순모음화로 인해 므, 브, 프는 각각 무, 부, 푸로 변하였다.[5] -k, -t, -p로 끝나는 한자음. 다만 후술하는 내용과 같이 한국어에서 -t는 -l로 바뀌었다.[6] "혹은 중국음에 의존하거나 혹은 우리나라 현실음에 따르거나 하여서, 글자의 칠음(七音)과 청탁(淸濁)·사성(四聲)이 모두 변한 것이 있으니, 아음(牙音)(=연구개음)으로 말할 것 같으면 계모(溪母)의 글자가 태반이 견모(見母)에 들어갔으니, 이는 성모(=청탁(淸濁)·사성(四聲))가 (차청(=무성유기음)에서 전청(=무성무기음)으로) 변한 것이고, 계모(溪母)의 글자가 혹 효모(曉母)에도 들었으니, 이는 칠음이 (아음(=연구개음)에서 후음(=성문음)으로) 변한 것이다.[7] 或依漢音或從俚語,而字母七音淸濁四聲,皆有變焉。若以牙音言之,溪母之字,太半入於見母,此字母之變也;溪母之字,或入於曉母,此七音之變也。"-<동국정운> 서문 중-[8] 단 夬만은 유일하게 정반대로 전청이 차청이 된 케이스다. 夬는 원래 "괘"다[9] 중국에서는 갑모(匣母)가 모두 효모(曉母)로 흡수되었다.[10] 정윤자, 한국어 음소 'ㅋ'의 역사적 고찰, 2007[11] 주재진, 한자음 -l 운미 연구의 성과와 과제, 2006[12] 한자를 백제에게서 전파받은 일본 오음(呉音)의 경우, -t 입성을 가지고 있는 글자들은 끝이 チ/ti > tɕi/로 끝나게 되었다. 백제에서의 한자음에는 -t 입성이 있었다는 얘기. 참고로 한음(漢音)의 경우 ツ/tɯ > tsɯ/로 끝난다.[13] 반면 광둥어대만어, 하카어등 남방 방언의 경우는 /t/ 종성이 잘 보존되어 있다.[14] 이 한자를 고구려어로도 '곶'이라고 읽는 것으로 확인되었다. '고치' '구치' 와 같은 말로 표기되어 있으며 '입' 이라는 뜻이다.[15] 이 중 ㅈ은 비록 치경구개 파찰음이나, 본래는 치경 파찰음(/ts/)이었던 것으로 추정된다.[16] ㄱ, ㅂ은 각각 연구개음, 양순음이지 치경음이 아니므로, ㄹ이 종성인 한자 뒤에서도 된소리로 발음되지 않는다. '불가(不可)', '별반(別般)'을 [불까], [별빤]으로 읽지 않는다. 한편, '물가(物價)'의 경우는 [물까]로 읽지만 이는 사잇소리 현상에 의하여 뒤에 있는 예사소리가 된소리로 바뀌는 경우이다. 이는 한글 '물가'도 같다.[17] 사실 1930년대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 이전에는 성, 정, 청이라는 음은 철자상으로 존재하지도 않았다. 'ᅟᅥᆼ'이 오로지 ㅅ, ㅈ, ㅊ 뒤에만 온다는 것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다. 1933년의 한글 맞춤법 통일안에서는 현실 발음에 따라 ㅅ, ㅈ, ㅊ 뒤의 모든 j를 떨어뜨리고(샤, 쟈, 챠 → 사, 자, 차) ㄷj, ㅌj를 모두 ㅈ, ㅊ으로 바꿨는데(댜, 탸 → 자, 차), 이렇게 하면서 본래 셩, 뎡/졍, 텽/쳥이었던 음이 모두 성, 정, 청으로 바뀌었다. 한글 점자에서 성, 정, 청의 표기에 ㅅ+ᅟᅧᆼ, ㅈ+ᅟᅧᆼ, ㅊ+ᅟᅧᆼ을 사용하는 것에서 당시 한국어 철자법이 어떠했는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18] 다만 역사적으로 볼 때 '디'나 '티' 같은 표기법은 일제강점기 전까지 통용되어 왔다. 최남선경부텰도노래(京釜鐵道歌)가 대표적인 예이다.[19] 실제로 상고음 검색기에서 天의 반절을 他前切(ㅏ + ㅈᅟᅧᆫ)로 제시하고 있다.[20] 그래서 Nguyễn를 표기할 때 ㆁ 발음이 소실된 한국에서는 '응우옌, 구엔, 응원' 등 별의 별 표기법이 속출할 수밖에 없었다. 조선 초 같았으면 ᅌᆌᆫ으로 깔끔하게 끝냈을 것이다. 그나마 '응우옌'이 가장 가깝다.[21] 일제강점기 초기의 일어교육을 부분적으로 다룬 김동인김연실전에서 が행을 어두인데도 [응아\]행으로 발음한다는 내용이 제법 자세하게 나온다. 학교를 ガクコウ[응아구고우]라고 쓰고 ガッコー[응악꼬-]라고 읽는다는 부분.[22] "그러나 그 소리는 ㅇ과 비슷하므로 운서에서 ㆁ[疑\]과 ㅇ[喩\]은 많이 서로 섞여 쓰인다.[而其聲與ㅇ相似 故韻書疑與喩多相混用\]", "첫소리의 ㆆ과 ㅇ은 서로 비슷하므로 우리말에서는 통용할 수 있다.[初聲之ㆆ與ㅇ相似 於諺可以通用也\]"[23] 홍용기, 15세기 한자 초성의 현실음 소고, 2002[24] 차익종, 개간법화경언해의 한자음에 대하여,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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