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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 틀에서는 국가/시,도 지정 탈놀이만 취급한다. |
▪︎위 사진은 양주별산대놀이의 노장탈이다.
1. 개요
탈은 가면을 뜻하는 순우리말이다.얼굴을 가리는 물건으로, 단순히 신분 노출을 방지하는 목적뿐만 아니라 탈에 새긴 얼굴에 상징적인 의미를 담아 주술적, 종교적인 물건으로 쓰거나[1]라 혹은 창작예술 행위에서도 널리 사용한다. 무언가를 가장함으로서 사람을 속이는 행위를 뜻하는 "~의 탈을 쓴" 이라는 숙어로도 많이 사용된다.
2. 설명
위와 같은 행위는 굳이 '탈'이 아닌 '분장'을 통해서도 구현할 수 있지만 분장이 사용 대상자의 개성을 완전히 커버할 수는 없는 노릇이라[2] 쉽고 빠르며 정확하게 인물상을 묘사할 수 있는 탈을 널리 써왔다. 이러한 점은 기원전 아주 오랜 옛날부터 한민족을 포함한 전 세계 모든 민족들에게서 찾을 수 있는 인류 공통적인 특징이며 그만큼 탈(가면)은 문화권을 막론하고 여러 곳에서 발견되었다.전통적인 재료로는 종이를 여러 겹 두껍게 겹쳐 만들거나 나무를 깎아서 만드는 방식이며 드물게 쇠로 만들기도 했다. 현대적인 재료로는 플라스틱으로 많이 만든다.[3]
얼굴을 가린다는 특징 때문에 진짜 본모습을 숨기는 행위를 '탈(가면)을 쓰다'라고 비유적으로 표현하기도 한다.
3. 탈의 종류
- 탈과 가면은 본디 동일한 뜻이지만 이 문서에서는 이름에 '탈'이 들어가는 가면 위주로 서술한다.
3.1. 백제 기악탈
과장된 얼굴의 전형적인 조선시대의 탈과는 조금 다른데, 상당히 사실적이라 일본의 노멘을 연상케 한다.# 실제로 이 둘은 밀접한 관련이 있는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처용탈과 마찬가지로 아랍인처럼 얼굴색이 짙고 코와 귀가 큰 얼굴이 특징이다.
백제기악(伎楽)은 6세기경 백제시대 서민들이 즐겼다고 추정되는 전통탈춤이다. 본래는 서역, 즉 인도와 티베트 지방에서 유래한 예능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고, 중국 오나라를 거쳐 백제로 들어왔으며 다시 일본으로 전파되었다. 탈의 원형이 일본에 그대로 남아 있는데, 백제의 음악가이자 무용가인 미마지(味摩之)가 스이코 덴노 시절 일본에 귀화해 소년들에게 가르쳤고, 당시 기악에 사용됐던 탈 14가지가 일본 천황의 보물창고 쇼소인(正倉院)에 보관되어 있다. 당시 일본의 불교와 결합되어 널리 퍼져 14세기까지도 공연했었다는 기록이 있다.
남아있는 기록에 의하면 피리와 손장구 쿠레츠즈미(呉鼓)와 징(鉦盤)으로 구성된 반주에 맞춰 일렬로 행진하는 형식의 무언극으로 진행되었으며 남근상을 들고 추는 춤이 포함되어 있었다는 것 정도가 알려져있다. 내용도 현대의 기준으로 보면 상당히 음란하고 난잡한 것들이 많았다고 하나, 남아있는 자료가 워낙 적어 정확히 어떤 구성으로 진행되었는지는 알기 힘들다.
3.2. 의식용 탈
- 처용탈: 처용무에서 쓰는 탈.
- 방상시탈: 장례 행렬에서 악귀를 쫓아내는 신이라고 하며 고려시대 때 중국에서 넘어왔다. 금빛 눈을 4개 달았으며 곰의 가죽을 몸에 두르고 검은 저고리와 붉은 치마를 입었는데 창과 방패를 들고 다닌다. 눈이 두 개인 방상시는 기라고 분류한다. 방상씨탈은 장례 때 사용됐는데 발인행렬의 맨 앞에서 길을 안내하고, 묘지에 도착하면 시신이 들어갈 자리의 잡귀를 쫓았다고 한다. 이 때 사용하는 탈은 종이, 나무, 짚으로 만들어지는데 한 번 쓴 탈은 시신과 함께 묻거나 태워버리고 장례식 때마다 새로 만들어 사용한다. 나무로 된 방상씨는 조정이나 규모 있는 사대부가에서 썼고, 종이로 된 방상씨는 일반 양반층에서 썼으며, 짚으로 엮어서 만든 것은 일반 서민들이 사용하였다.
3.3. 오광대탈
- 북방흑제장군
- 서방백제장군
- 중앙황제장군
- 동방청제장군
- 남방적제장군
- 문둥이
- 작은양반
- 무당
3.4. 사자놀이탈
3.5. 하회탈
3.6. 봉산탈
3.7. 강령탈
- 말뚝이탈
- 사자탈
- 원숭이탈
- 목중탈
- 상좌탈
- 맏양반탈
- 둘째양반탈
- 셋째양반탈
- 도령탈
- 영감탈
- 미얄할멈
- 남강노인탈
- 소무탈
- 노승탈
- 취발이탈
- 용산삼개집
- 마부탈
- 무당탈
3.8. 은율탈
- 마부탈
- 사자탈
- 상좌탈
- 목중탈
- 맏양반탈
- 둘째양반탈
- 셋째양반탈
- 새맥시탈
- 말뚝이탈
- 원숭이탈
- 최괄이탈
- 노승탈
- 할미탈
- 영감탈
- 무당탈
- 뚱딴지집탈[5]
3.9. 기타
- 수영야류
- 수양반
- 차양반
- 셋째양반
- 넷째양반
- 종가도령
- 막둑이(말뚝이)
- 영노
- 영감
- 할미
- 제대각시
- 범[6]
- 사자
- 동래야류
- 원양반
- 차양반
- 모양반
- 넷째양반
- 종가도령
- 말뚝이
- 문둥이
- 영노
- 비비양반
- 영감
- 할미
- 제대각시
- 무당
- 발탈: 발에 씌우는 탈이다. 발탈은 한쪽 발에만 씌운다고 한다.
4. 관련 문서
[1] 북아메리카 원주민인 이로쿼이 연맹의 fasle face mask가 대표적인 예시.[2] 예를 들어 극중 주인공은 무시무시한 눈매를 가진 사람인데 화장만으로 이를 재현하는건 다소 제약이 있고, 만약 가능하더라도 준비 시간이 너무 길다.[3] 이게 어찌 보면 전통을 현대화, 대중화, 상품화 하는데 도움이 될 수도 있다. 전통방식으로 만들면 값이 훨씬 비싼데 어느 나라나 대다수는 서민들이라는 점에서 이런 저가형 제품들이 입문 문턱을 낮춰주는 유리한 면이 있기 때문이다. 물론 전통방식 보존, 계승, 발전 또한 중요하다.[4] 북한 전승 한정.[5] 새맥시탈을 겸용한다.[6] 담비, 담보로도 표기한다. 4과장 사자무에서 사자와 싸우다 잡아먹히는 역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