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03-04 16:09:18

선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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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원통형선추(혹은 침통), 초혜집선추, 인장선추, 도장집선추
1. 선추란?2. 역사3. 구성4. 기타5. 관련 문서

1. 선추란?

부채의 고리나 자루에 다는 매듭 장식. 대개 패물을 실로 꿰어 부채에 매다는 형태이다. 옛날에는 주로 남성들이 사용하였다.

2. 역사

선추는 부채의 역사와 함께 시작되었고 조선시대 후기에서 그 발전된 형태를 볼 수 있다. 이 시대에 선추를 달 자격이 있는 사람은 관직에 오른 자여야 했다. 과거 기록에는 자신을 과시하기 위한 목적으로 선추를 땅에 끌릴 정도로 길게 늘어뜨린 것도 있다는 내용이 있다. [1] 일제 강점기에 들어서면서 선추 소지 자격 또한 사라졌다.

최근에는 합죽선 같은 접부채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적어져 선추의 다양성 또한 많이 줄어들었다. 전통매듭을 계승한 무형문화재 및 작가들이 선추를 만들고 있지만 선추는 부채의 부속물인지라 개인 주문제작 혹은 전시에 제출할 작품 몇 점만 만들고 있다. 또한 괜찮은 품질의 패물을 만드는 사람도 적어서 패물 재료를 다루는 장인에게 개별 제작 의뢰를 하고 있는 실정이다.

선추는 접히지 않는 단선보다는 접히는 접선에서 훨씬 많이 볼 수 있다. 이는 남성이 노리개를 사용하지 않기 때문으로 추정할 수 있다.

3. 구성

선추의 핵심은 다회(실)와 패물이다. 패물의 종류는 다양해서 금, 은, 상아, 호박, 조각품 등으로 사치스럽게 장식했지만 실용적인 휴대용 기물들도 사용했다. 향을 적셔서 넣을 수 있는 향갑, 귀이개나 이쑤시개 등을 넣을 수 있는 초혜집, 풍수지리를 볼 수 있는 윤도의 축소판인 패철, 위급시에 침을 꺼내 쓸 수 있는 침통, 작은 도장이 들어 있는 도장갑 등이 있다.

유물에서 볼 수 있는 선추의 기본 구성은 동심결매듭에 패물을 고정하기 위한 작은 매듭 한두개, 패물, 그리고 딸기술이나 방울술로 이루어진다. 그리고 선추의 패물이 크고 화려해질수록 매듭 구성은 간소화된다. 이는 최소한의 장식으로 패물을 돋보이기 위함이며, 본품인 부채보다 부속품인 선추가 돋보이는 것을 막는 의도도 있다. 간혹 동심결매듭까지 넣지 않은 선추도 보이는데 이는 동심결매듭이 풀렸거나 다른 실용적인 목적이 있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선추는 노리개보다 제작 난이도가 낮아 전통매듭을 배웠다면 누구나 만들 수 있다. 다만 제작자에 따라 선추의 완성도는 큰 차이를 보인다. 옷에 다는 노리개와는 달리, 선추는 부채의 부속 장식이므로 너무 튀지 않으면서 부채를 돋보이게 해 줘야 한다. 선추에 매듭 하나만 더 넣어도 과해 보이기 쉬운지라 작가의 역량이 중요하다.

4. 기타

선추는 전통적으로 남성들의 장신구이므로, 본래대로라면 여성에게 어울리거나 여성을 상징하는 매듭이 들어가지 않는다. 물론 선추를 아무나 쓸 수 있는 현대에 와서는 큰 의미가 없지만 전통을 지키고자 하는 작가라면 여성용 선추를 따로 제작한다.

제대로 만든다면 노리개와 마찬가지로 상당히 공이 든다. 요즘에야 합성실을 사다가 바로 만들면 되지만, 옛날에는 누에고치에서 실을 뽑고 염색해서 짜는 사람[2], 만드는 사람[3], 매듭을 짓는 사람[4], 패물 만드는 사람 등 각 분야 별로 장인들이 나뉘어졌다. 게다가 이 모든 것을 수작업으로 제작한다. 당연히 비쌀 수밖에 없으며 이를 소지한 사람의 신분을 짐작할 수 있을 정도였다.

5. 관련 문서



[1] 통상적인 것은 기록하지 않는 조선시대의 특성 상 저런 선추는 시대상 썩 좋지 않다는 의도로 작성하였을 가능성이 대단히 높다.[2] 이를 다회친다라고 표현하며 이것을 하는 사람을 다회장이라고 한다. 다회장은 현재 무형문화재가 없고 매듭장이 전부 하고 있다.[3] 모든 선추가 술을 매단 건 아니었지만 대개는 술이 있었다. 주로 딸기술, 방울술을 달았다.[4] 매듭장이라고 한다. 현재 중요무형문화재 22호로 등재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