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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263호 | |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白磁 靑畵山水花鳥文 立壺 | |
소재지 | 경기도 용인시 |
분류 | 유물 / 생활공예 / 토도자공예 / 백자 |
수량/시설 | 1점 |
지정연도 | 1991년 1월 25일 |
제작시기 | 조선 시대[1] |
1. 개요
白磁 靑畵山水花鳥文 立壺. 조선 후기, 18세기 중·후반경에 경기도 광주 왕실 관요(官窯)에서 제작된 한국의 청화백자. 현재 용인대학교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대한민국 국보 제263호로 지정되어 있다.2. 내용
높이 54.8㎝, 입지름 19.2㎝, 밑지름 18㎝.조선 후기, 1700년대에 만들어진 한국의 청화백자로, 18세기 중엽 경기도 광주 일대의 금사리요와 분원리 초기 요에서 조선 왕실의 잔치에 사용할 항아리로 제작되었다.
당당한 양감을 지녀 자태가 빼어나고 청화로 그려낸 화창 안의 사실적인 문양과 그 밖의 장식문양도 우수하고 다양하다. 18세기 한국의 청화백자를 대표하는 작품 중 하나이다.
전체적으로 백자청화산수문호, 백자 청화 산수무늬 항아리 등의 작품과 비슷한 양식을 보여주고 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263호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백자 항아리로, 크기는 높이 54.8㎝, 아라리 지름 19.2㎝, 밑 지름 18㎝이다.
아가리 부분은 수직으로 낮게 있으며, 부드럽게 팽창하여 어깨부에서 팽배되었다가 서서히 좁아진 후, 몸통 아랫부분에서 약간 벌어져 바닥면에 이른다.
항아리의 양감이 풍부하고 아랫부분이 좁아서 보기에 준수하며, 몸통 가운데에 위·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인 흔적이 있다. 몸통 윗부분의 4곳에 푸른색 안료로 4개의 반원를 연결시켜 만든 마름모 형태의 꽃 창을 큼직하게 그린 다음, 그 속에 산수문과 화조석문을 교대로 그려 넣었다.
각각의 꽃 창 안에 도안화된 ‘富’자를 넣어 사다리꼴로 연결시켜 놓았으며, 꽃 창 사이의 위·아래 4곳에도 역시 도안화된 ‘壽’자와, ‘疆’자가 들어있는 원이 있다. 유약은 투명하고 광택이 좋은 백자유로 전면에 고르게 칠해졌고, 표면의 색조는 엷은 회백색이다.
형태가 아름답고 푸른색의 청화 안료로 그린 사실적인 문양들이 우수하고 다양하여, 이 무렵 대표적인 백자 항아리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아가리 부분은 수직으로 낮게 있으며, 부드럽게 팽창하여 어깨부에서 팽배되었다가 서서히 좁아진 후, 몸통 아랫부분에서 약간 벌어져 바닥면에 이른다.
항아리의 양감이 풍부하고 아랫부분이 좁아서 보기에 준수하며, 몸통 가운데에 위·아래를 따로 만들어 붙인 흔적이 있다. 몸통 윗부분의 4곳에 푸른색 안료로 4개의 반원를 연결시켜 만든 마름모 형태의 꽃 창을 큼직하게 그린 다음, 그 속에 산수문과 화조석문을 교대로 그려 넣었다.
각각의 꽃 창 안에 도안화된 ‘富’자를 넣어 사다리꼴로 연결시켜 놓았으며, 꽃 창 사이의 위·아래 4곳에도 역시 도안화된 ‘壽’자와, ‘疆’자가 들어있는 원이 있다. 유약은 투명하고 광택이 좋은 백자유로 전면에 고르게 칠해졌고, 표면의 색조는 엷은 회백색이다.
형태가 아름답고 푸른색의 청화 안료로 그린 사실적인 문양들이 우수하고 다양하여, 이 무렵 대표적인 백자 항아리로 손꼽히는 작품이다.
[1] 문화재청 홈페이지에서는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의 제작시기를 밝히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