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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불교의 사상에 따라 건축된 탑의 종류 중 하나다.법화경에 의하면 “석가모니가 영취산(靈鷲山)에서 법화경을 설파할 때 다보여래의 진신사리를 모셔둔 탑이 땅 밑에서 솟아나오고, 그 탑 속에서 소리를 내어 석가모니의 설법을 참된 진리라고 찬탄하고 증명하였다”라고 한다. 참고로 석가모니가 자신 다음에 부처가 될것이라 수기(예언)을 내린 부처도 다보불이다. 이를 근원으로 세워진 탑이 다보여래상주증명탑, 줄여서 다보탑이다. 즉 절의 대웅전 마당에 다보탑을 세우는 것은 석가모니의 영취산을 절에서 재현하는 의미다.
이 탑의 구조는 대개 옥개(屋蓋) 아래 상층(裳層)을 붙인 조형을 이루고 있다. 중국에서는 732년에 무현의 남동쪽에 처음 세웠으며, 한국에서는 신라 경덕왕 때 김대성이 불국사에 세웠다.
따라서 다보탑이라는 이름을 가진 탑은 세계 각지에 여러 곳이 있지만, 한국에서 다보탑이라고 하면 주로 불국사에 있는 다보탑을 말한다. 이 다보탑은 석조라서 오해하기 쉬우나, 다보탑은 무조건 석조인 게 아니다. 일본에도 이름이 '다보탑'인 탑은 여럿 있으나, 나무로 만들어진 목탑이며 형상도 불국사의 다보탑과는 많이 다르다.
2. 경주 불국사 다보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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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20호 | |
경주 불국사 다보탑 慶州 佛國寺 多寶塔 |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불국로 385, 불국사 (진현동) |
분류 | 유적건조물 / 종교신앙 / 불교 / 탑 |
수량/면적 | 1기 |
지정연도 | 1962년 12월 20일 |
제작시기 | 남북국시대 8세기 |
1986년의 다보탑 |
현재 |
경상북도 경주시 진현동(進峴洞) 불국사 경내에 있는 남북국시대의 화강암제 석탑이다.
535년(법흥왕 22년)에 불국사가 창건한 후 751년(경덕왕 10년) 김대성의 발원으로 불국사가 중건될 때 옆에 있는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과 함께 수축(修築)한 것으로 추정된다.
1962년 12월 20일, 국보 제20호로 지정되었다. 높이 10.29m, 기단 폭 4.4m이다. 불국사 대웅전 앞 서쪽의 석가탑 맞은편에 자리잡고 있는 탑으로 전형적인 쌍탑가람의 배치이다. 두 탑을 현재와 같이 동서로 나란히 세운 까닭은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하는 것을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 법화경의 내용인 다보여래상주증명(多寶如來常住證明)에 따른 것이다.
2.1. 구조와 특징
기단부에는 사방에 보계를 마련하였고, 보계에는 난간을 가설하였던 석주가 남아 있다. 그 위에는 네 모퉁이와 중앙에 사각 석주를 세우고 교차되는 받침을 얹어 갑석(甲石)을 받고 있다. 또 이 기단에는 원래 네 모퉁이에 돌사자를 배치하였으나, 셋은 도둑맞았고 지금은 얼굴 부위가 파손된 1점만 남았다.갑석 위에는 사각형 난간 속에 8각 신부를 두었으며, 다시 8각 갑석을 덮고 8각 난간을 돌린 다음, 그 안에 8개의 죽절형 석주를 돌려 8각 연화석(蓮花石)을 받치고 있다. 연화석 위에는 8개의 주두 모양의 받침으로 옥개석을 받고 있다. 상륜부에는 8각 노반, 복발, 앙화, 보륜, 보개가 거의 완전하다.
순백의 화강암으로 방형의 기단과 사방에 계단과 난간을 만들었다. 초층의 중앙과 4우에 방형 석주를 세워 옥개석을 받치고 있다. 그 위는 팔각 삼층인데, 제1층은 4각으로 난간을 두르고, 제2층은 죽절형 기둥 8개에 싸인 탑신부 둘레에 8각의 난간을 두르고, 제3층은 귀두 모양의 옥개석을 받치고 있으며, 상륜부에도 각 층마다 변화를 주고 있다. 이 탑 기단의 4우에는 돌사자가 있었으나, 그 중 세 개는 분실되고 한 개만 극락전 추녀 밑에 있다.
한국의 석탑 중 일반형을 따르지 않고 아치구조의 특이한 형태를 가진 예로, 이만큼 기발한 의장으로 이루어진 걸작은 그 유례가 없다. 일단 기본적인 형태 자체가 한국의 어떤 다른 석탑과도 닮지 않은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석탑으로, 목조 건물의 복잡한 구조를 단단해서 가공하기 힘든 화강암을 이용해 아름답게 표현하였다. 또한 경쾌하면서도 장려하고 번잡한 듯하면서도 전체의 통일이 잡혀 있으며, 돌을 자유자재로 다룬 기법은 통일신라 석공술의 정수를 보여주는 놀랄 만한 것으로, 이러한 형식의 탑은 중국과 일본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것이다.
지난 100년 동안만 해도 대한민국의 강산이 많이 변했는데 다보탑, 석가탑 모두 무려 1천 년이 넘는 세월동안 서 있었으니 아무리 단단한 화강암으로 만들어지고, 나름대로 중간중간 관리를 했다고 해도 천여 년을 훌쩍 넘어간 세월의 흔적이 그대로 배였다.
오랫동안 대한민국의 10원짜리 동전에 새겨져있는 탑인데다가 초등학교 수학여행때 아주 흔하게 경주를 가서 불국사를 둘러보기 때문에 사실 대한민국 사람이라면 다 알고있는 유적이다. 2017년에 나온 대한민국 여권에도 안에 다보탑 그림이 정교하게 그려졌을 정도니 한국의 역사를 대표하는 창의적인 유적이라고 봐도 과언이 아니다.
2.2. 상태
오래 전에 건축된 데다가 본사인 불국사가 한때 폐사지가 되는 등 관리가 자주 소홀한 것에 비하면 복잡한 원형을 많이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상륜부(相輪部)에 보주(寶珠)가 없는 등 세밀하게 살펴보면 유실된 곳이 있다.특히 일제 강점기인 1925년에 일본인에 의해 보수되면서 유물이 많이 훼손되었다. 특히 내부에 있던 사리와 사리장치 등의 유물 및 기단부의 네 마리 사자상 가운데 세 마리가 사라진 것이 큰 타격이었다. 사리장치가 없어진 것은 탑의 원래 용도를 생각하면, 한마디로 말해서 속이 빈 탑이 된 것이다. 돌사자상 네 마리는 1925년 당시에도 사자 4마리 중 2마리만 남아있었다고 하며,[1] 나중에는 둘 중 보존상태가 좋은 하나가 또 없어져 2023년 현재까지도 하나뿐이다. 이 하나는 오랜 세월이 지나며 얼굴 부분이 좀 훼손된 상태라 훔쳐갈 가치가 적어서 아이러니하게도 그 자리를 지켰다.이 한 마리 사자상은 10원 주화의 다보탑에도 자세히 보면 묘사돼 있다.[2] 없어진 사자상 중 1개는 현재 영국 런던의 대영박물관에 보관 중이며 나머지 두 사자상은 행적을 알 수가 없다.[3]
1969년부터 1973년까지 불국사가 대규모 복원을 할 때 같이 보수를 받았으며, 2008년 12월부터 1년간 원형 복원 작업이라는 대규모 보수작업을 거쳤다.
2016년 경주 지진으로 인해 일부가 훼손되었다. #
대한민국 여권 사증 란에 인쇄된 랜드마크 (숭례문, 다보탑)는 원형이 제대로 남지 않은 복원된 상태로 남아있다.
2.3. 국보 제20호
불국사는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 김대성의 발원에 의해 창건된 사찰로, 과거·현재·미래의 부처가 사는 정토(淨土), 즉 이상향을 구현하고자 했던 신라인들의 정신세계가 잘 드러나 있는 곳이다.『삼국유사』에는 김대성이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 석굴암을, 현생의 부모를 위해서 불국사를 지었다고 전해진다. 그러나 그가 목숨을 다할 때까지 짓지 못하여 그 후 나라에서 완성하여 나라의 복을 비는 절로 삼게 되었다.
다보탑과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국보)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29m, 10.75m로 비슷하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가 남아있다.
다보탑과 석가탑(경주 불국사 삼층석탑, 국보)은 우리나라의 가장 대표적인 석탑으로, 높이도 10.29m, 10.75m로 비슷하다. 절내의 대웅전과 자하문 사이의 뜰 동서쪽에 마주 보고 서 있는데, 동쪽탑이 다보탑이다. 다보탑은 특수형 탑을, 석가탑은 우리나라 일반형 석탑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다. 두 탑을 같은 위치에 세운 이유는 ‘과거의 부처’인 다보불(多寶佛)이 ‘현재의 부처’인 석가여래가 설법할 때 옆에서 옳다고 증명한다는『법화경』의 내용을 눈으로 직접 볼 수 있게 탑으로 구현하고자 하기 위함이다.
석가탑을 보면 2단의 기단(基壇)위에 세운 3층탑이라는 것을 쉽게 알 수 있지만, 다보탑은 그 층수를 헤아리기가 어렵다. 십(十)자 모양 평면의 기단에는 사방에 돌계단을 마련하고, 8각형의 탑신과 그 주위로는 네모난 난간을 돌렸다.
탑이 건립된 시기는 불국사가 창건된 통일신라 경덕왕 10년(751)으로 추측된다. 목조건축의 복잡한 구조를 참신한 발상을 통해 산만하지 않게 표현한 뛰어난 작품으로, 4각, 8각, 원을 한 탑에서 짜임새있게 구성한 점, 각 부분의 길이·너비·두께를 일정하게 통일시킨 점 등은 8세기 통일신라 미술의 정수를 보여주고 있다.
안타깝게도 다보탑에는 일제에 나라를 빼앗겼던 설움이 고스란히 전해져 온다. 1925년경에 일본인들이 탑을 완전히 해체, 보수하였는데, 이에 관한 기록이 전혀 남아 있지 않다. 또한 탑 속에 두었을 사리와 사리장치, 그 밖의 유물들이 이 과정에서 모두 사라져버려 그 행방을 알 수 없게 되었다. 그리고 기단의 돌계단 위에 놓여있던 네 마리의 돌사자 가운데 3마리가 일제에 의해 약탈되어, 이를 되찾기 위한 노력이 오래전부터 있었으나 아직까지 그 행방을 알 수가 없으며, 현재 1마리의 돌사자가 남아있다.
2.4. 여담
- 탑 모양이 특이하면서도 한국적이라 '한국의 상징'으로 다보탑이 쓰이는 경우가 상당히 많다. 예를 들어 대한민국 여권은 구형 디자인에서는 모든 속지에 다보탑이 그려져 있었고, 신형 디자인에서도 여러 랜드마크 중 하나로 들어가 있다.
* 대한민국 원의 십원 주화에 각인되는 바람에 본의아니게 한국인이 가장 많이 모습을 보는 탑이며, 복잡하게 생겨서 음모론 갖다붙일 여지가 많아서인지 화폐 관련 괴담에도 단골로 출연한다. 의외로 한국 동전에서 유일하게 볼 수 있는 랜드마크이다.[4]
- 일본 도쿄 한복판 하라주쿠에 다보탑을 빼다박은 조형물이 서 있었던 적이 있다. 모양은 다보탑 모양으로 세웠지만 불탑인 다보탑과 직접적인 관계는 없고, 실은 경술국치를 일제 측에서 기념하기 위해 세웠던 한일합방기념탑(日韓合邦紀念塔)이었다. 일제도 다보탑을 한국을 대표하는 문화재로 여겼던 듯 하다. 이 탑은 광복 이후로도 수십년을 더 서 있다가 1964 도쿄 올림픽 등을 거치며 한국인들의 눈에 띄기 시작하자 1970년대에 슬그머니 해체했다고 한다.
- 기단 4곳에 계단이 있어서 계단을 밟아보려는 사람들이 꼭 있기 때문에 탑 계단에 올라가지 말라는 표시가 있다.
- 비슷하지만 전혀 다른 분야의 단어에 장난삼아서 다보탑이라는 말을 집어넣는 경우가 종종 있다. 다포탑 전차라든지...
- 오래 전 롯데백화점 본점에 거대한 샹들리에를 설치했는데 거꾸로 보면 다보탑을 형상화했다.
- 라이즈 오브 네이션즈에서는 아시아 지역 국가의 고대-고전-중세 시대 사원 건물 모델로 등장한다.
- 이누야샤 애니메이션에서 귀신을 봉인한 탑의 이름이 더빙판 기준으로 다보탑이다.
2.5. 외부 링크
[1] 두 마리를 훔쳐간 후보 중 하나가 통감 소네 아라스케. 그는 석굴암에서도 대리석 탑을 훔쳐갔다.[2] 한때 유행했던 화폐 관련 괴담으로 10원의 이 사자 부분을 노태우의 음모란 소문이 돌기도 했다. 동전에 예전엔 없었던 아주 조그만 뭔가가 추가돼 있으니 이걸 노태우가 대통령이 되기 위해 몰래 불상을 새겨넣었다든가 하는 것이다. 물론 모델이 된 실제 다보탑에 버젓이 있으므로 인터넷이 없어 검증이 쉽게 되지 않던 시절의 뜬소문일 뿐이다.[3] 일제강점기에 현진건이 쓴 <불국사 기행>에 따르면 두 마리는 도쿄의 어느 요릿집 입구에 장식으로 세워져 있고 요릿집 주인이 가져가고 싶거든 어마어마한 돈을 가져오라며 내주지 않고 있다는 소문이 있었다고 한다. 관동대지진이나 도쿄 대공습 때에 영영 소실되었을 가능성도 있다.[4] 50원은 쌀, 100원은 이순신 초상, 500원은 학. 발행 중지된 동전들도 1원은 무궁화, 5원은 거북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