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수정 시각 : 2024-11-03 19:05:53

창경궁 명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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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모정 미확인 건물지 집춘문
대온실 관덕정
창덕궁 춘당지관풍각 국립어린이과학관
병경문 성종 태실 앙부일구
풍기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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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선당 일영대 수문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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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표시가 붙은 건물은 현재 창덕궁 영역이다.
경복궁 · 창덕궁 · 창경궁 · 덕수궁 · 경희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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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명정전 관련 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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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복궁 근정전
景福宮 勤政殿
창덕궁 인정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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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경궁 명정전
昌慶宮 明政殿
덕수궁 중화전
德壽宮 中和殿
경희궁 숭정전
慶熙宮 崇政殿
중화전 건립 이전 덕수궁의 정전은 즉조당이었다.
정문 · 중문 · 금천교 · 정전 정문 · 정전 · 편전 정문 · 편전 · 내정전 · 동궁 · 선원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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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國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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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0호]
{{{#!wiki style="margin:-10px 0"
1.#26 경주 불국사 금동비로자나불좌상
  1. 경주 불국사 금동아미타여래좌상
  2. 경주 백률사 금동약사여래입상
  3. 성덕대왕신종
  4. 경주 분황사 모전석탑
  5. 경주 첨성대
  6. 합천 해인사 대장경판
  7. 창녕 진흥왕 척경비
  8. 창녕 술정리 동 삼층석탑
  9. 구례 화엄사 사사자 삼층석탑
  10. 상원사 동종
  11. 경주 황복사지 삼층석탑
  12. 경주 고선사지 삼층석탑
  13. 경주 나원리 오층석탑
  14. 경주 정혜사지 십삼층석탑
  15. 청주 용두사지 철당간
  16. 순천 송광사 목조삼존불감
  17. 혜심고신제서
  18. 장흥 보림사 남 · 북 삼층석탑 및 석등
  19. 영주 부석사 소조여래좌상
  20. 부석사 조사당 벽화
  21. 하동 쌍계사 진감선사탑비
  22. 평창 월정사 팔각 구층석탑 / 평창 월정사 석조보살좌상
  23. 예산 수덕사 대웅전
  24. 영암 도갑사 해탈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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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51~1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76 이순신 난중일기 및 서간첩 임진장초
  1. 의성 탑리리 오층석탑
  2.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1)
  3.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좌상
  4. 경주 구황동 금제여래입상
  5. 경주 감산사 석조미륵보살입상
  6. 경주 감산사 석조아미타여래입상
  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2-2)
  8. 서산 용현리 마애여래삼존상
  9. 금동신묘명삼존불입상
  10. 개성 경천사지 십층석탑
  11. 금관총 금관 및 금제 관식
  12. 금관총 금제 허리띠
  13. 평양 석암리 금제 띠고리
  14. 경주 부부총 금귀걸이
  15. 도기 기마인물형 명기
  16. 청동 은입사 포류수금문 정병
  17. 백자 철화포도원숭이문 항아리
  18. 청자 참외모양 병
  19. 청자 투각칠보문뚜껑 향로
  20. 청자 구룡형 주전자
  21. 청자 음각연화당초문 매병
  22. 청자 상감모란문 항아리
  23. 김천 갈항사지 동 · 서 삼층석탑
  24. 개성 남계원지 칠층석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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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01~15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101 원주 법천사지 지광국사탑
  1. 충주 정토사지 홍법국사탑
  2. 광양 중흥산성 쌍사자 석등
  3. 전 원주 흥법사지 염거화상탑
  4. 산청 범학리 삼층석탑
  5.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
  6. 백자 철화포도문 항아리
  7. 계유명삼존천불비상
  8. 군위 아미타여래삼존 석굴
  9. 이제현 초상
  10. 안향 초상
  11. 경주 감은사지 동 · 서 삼층석탑
  12. 청자 철화양류문 통형 병
  13. 청자 상감모란국화문 참외모양 병
  14. 청자 상감당초문 완
  15. 청자 상감모란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16. 장흥 보림사 철조비로자나불좌상
  17.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1964)
  18. 금동연가7년명여래입상
  19. 용주사 동종
  20. 안동 하회탈 및 병산탈
  21. 양양 진전사지 삼층석탑
  22.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사리장엄구
  23. 강릉 한송사지 석조보살좌상
  24. 녹유골호(부석제외함)
1.#126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1. 서울 삼양동 금동관음보살입상
  2. 금동관음보살입상
  3. 금동보살입상(1968)
  4. 구미 죽장리 오층석탑
  5. 고려말 화령부 호적 관련 고문서
  6. 징비록
  7. 청자 동화연화문 표주박모양 주전자
  8. 금동보살삼존상
  9. 신윤복필 풍속도 화첩
  10. 금동 용두보당
  11. 대구 비산동 청동기 일괄-검 및 칼집 부속 / 투겁창 및 꺾창
  12. 전 고령 금관 및 장신구 일괄
  13. 김홍도필 군선도 병풍
  14. 나전 화문 동경
  15. 정문경
  16. 동국정운
  17. 화순 대곡리 청동기 일괄
  18. 영암 월출산 마애여래좌상
  19. 귀면 청동로
  20. 전 논산 청동방울 일괄
  21. 울주 천전리 명문과 암각화
  22.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6 / 십칠사찬고금통요 권17
  23.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4, 5 / 동래선생교정북사상절 권6
  24. 송조표전총류 권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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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151~2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176 백자 청화‘홍치2년’명 송죽문 항아리
  1. 분청사기 인화국화문 태항아리
  2. 분청사기 음각어문 편병
  3. 분청사기 박지연화어문 편병
  4. 김정희필 세한도
  5. 장양수 홍패
  6. 구미 선산읍 금동여래입상
  7.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1)
  8. 구미 선산읍 금동보살입상(1976-2)
  9. 상지은니묘법연화경
  10. 양평 신화리 금동여래입상
  11. 영양 산해리 오층모전석탑
  12. 천마총 금관
  13. 천마총 관모
  14. 천마총 금제 허리띠
  15. 황남대총 북분 금관
  16. 황남대총 북분 금제 허리띠
  17.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
  18. 황남대총 남분 금목걸이
  19. 토우장식 장경호
  20. 신라백지묵서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10, 44~50
  21. 충주 청룡사지 보각국사탑
  22. 단양 신라 적성비
  23. 경주 단석산 신선사 마애불상군
  24. 금동보살입상(19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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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201~25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max(12%, 7em)"
{{{#!folding [251~300호]
{{{#!wiki style="margin:-10px 0"
<table bordercolor=#fff,#1f2023>
1.#251 초조본 대승아비달마잡집론 권14
  1. 청자 음각'효문'명 연화문 매병
  2. 청자 양각연화당초상감모란문 은테 발
  3. 청자 음각연화문 유개매병
  4. 전 덕산 청동방울 일괄
  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
  6.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9
  7. 백자 청화죽문 각병
  8. 분청사기 상감운룡문 항아리
  9. 분청사기 박지철채모란문 자라병
  10. 백자 유개항아리
  11. 백자 달항아리(1991)
  12. 백자 청화산수화조문 항아리
  13. 포항 냉수리 신라비
  14.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13
  15.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2, 75
  16. 초조본 아비달마식신족론 권12
  17. 초조본 아비담비파사론 권11, 17
  18. 초조본 불설최상근본대락금강불공삼매대교왕경 권6
  19. 청자 모자원숭이모양 연적
  20. 초조본 현양성교론 권12
  21.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32
  22.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15
  23. 귀함별황자총통(1596년조)
  24. 도기 기마인물형 뿔잔
1.#276 초조본 유가사지론 권53
  1.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36
  2. 태종11년이형원종공신록권부함
  3. 초조본 대방광불화엄경 주본 권74
  4. 성거산 천흥사명 동종
  5. 백자 병형 주전자
  6. 영주 흑석사 목조아미타여래좌상 및 복장유물
  7. 통감속편
  8. 초조본대반야바라밀다경 권162, 170, 463
  9.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10. 백자 ‘천’ ‘지’ ‘현’ ‘황’명 발
  11. 백제 금동대향로
  12. 부여 능산리사지 석조사리감
  13. 익산 왕궁리 오층석탑
  14. 양산 통도사 대웅전 및 금강계단
  15. 용감수경 권3~4
  16. 평창 상원사 중창권선문
  17. 부여 규암리 금동관음보살입상
  18. 백자 청화철채동채초충문 병
  19. 나주 신촌리 금동관
  20. 칠장사 오불회 괘불탱
  21. 안심사 영산회 괘불탱
  22. 갑사 삼신불 괘불탱
  23. 신원사 노사나불 괘불탱
  24. 장곡사 미륵불 괘불탱
}}}}}}}}}{{{#!wiki style="display:inline-block; min-width:max(12%, 7em)"
{{{#!folding [301~336호]
{{{#!wiki style="margin:-10px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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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olding [ 번호 없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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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정부상징.svg 대한민국 국보 제226호
창경궁 명정전
昌慶宮 明政殿
소재지 서울특별시 종로구 창경궁로 185 (와룡동, 창경궁)
분류 유적건조물 / 정치국방 / 궁궐·관아 / 궁궐
수량/시설 1동
지정연도 1985년 1월 8일
제작시기 조선 광해군 8년(1616)
파일:창경궁_명정전_전경.jpg
<colbgcolor=#bf1400> 명정전[1]
파일:external/www.heritage.go.kr/img_joseon_wooden_32.jpg
비교적 근거리에서 찍은 명정전
[clearfix]
1. 개요2. 역사3. 정문4. 구조5. 기타6. 대중매체에서

[clearfix]

1. 개요

창경궁정전. 신하들이 임금에게 새해 인사를 드리거나 국가 의식을 거행하는 곳이다.

창경궁의 정문 홍화문으로 입궐했을 때 옥천교를 건너 명정문을 통해 바로 정면에 보인다.

2. 역사

파일:동궐도 명정전.png
<colbgcolor=#bf1400> 〈동궐도〉 명정전
1483년(성종 14년) 옛날 태종이 머물던 수강궁 자리에 대비들을 위해 창경궁을 창건할 때 함께 지었다. 이름은 창건 당시 의정부 좌찬성[2] 서거정이 지었으며 상량문[3]우부승지 김종직이 지었다. 다른 궁궐의 정전과는 다르게 남향이 아닌 동향으로, 이는 풍수지리 및 지형 문제에 근거해 배치한 것이다.[4] 이 때문에 성종은 '임금은 남쪽을 바라보고 정치를 하는데 명정전은 동쪽이니 임금이 나라를 다스리는 정전이 아니다'라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그래서 그런지 명정전에서 열린 행사는 크게 중요한 국가행사보다는 규모가 비교적 작은 행사나 왕실의 잔치 등이었다. 명정전에서 즉위식을 거행한 왕은 인종이 유일하다. 창경궁에서 왕이 승하해도 창덕궁에서 즉위식을 올리는 것이 보통이었기 때문이다. 창경궁은 창덕궁에 비해서 정치적 기능보다 생활공간으로서의 기능이 컸던 탓이다.

1592년(선조 25년) 임진왜란 당시 화재로 불탔고 1616년(광해군 8년)에 중건한 뒤 오늘에 이른다. 즉, 명정전은 현존하는 궁궐 정전 중 가장 오래된 건물이다. 따라서 17세기 초 조선 중기 목조 건축 양식을 연구하는데에 매우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조선 후기에 명정전을 가장 알뜰살뜰 사용한 임금은 영조이다. 영조는 정성왕후 서씨가 승하하자 66세가 되던 1759년(영조 35년)에 15세의 정순왕후 김씨를 이곳 명정전에서 계비로 맞아들였다.

일제강점기에 창경궁이 유흥 · 여가시설 창경원이 되면서 일제가 명정전 행각을 철거하고 박석을 걷어 벚나무를 심는 등 크게 훼손했다. 8.15 광복 후인 1963년에 문화재관리국에서 보수했고, 1983년 창경원이 창경궁으로 환원되면서 관련 시설을 서울대공원으로 옮긴 이후 복원, 수리 공사를 하여 1986년에 마무리했다.

3. 정문

파일:상세 내용 아이콘.svg   자세한 내용은 창경궁 명정문 문서
번 문단을
부분을
참고하십시오.

4. 구조


파일:창경궁_명정전_후면.jpg}}} ||
<colbgcolor=#bf1400> 명정전 뒤편에 붙어있는 복도. 왼쪽 복도는 빈양문 및 숭문당과, 오른쪽 복도는 문정전과 붙어있다.[5]
다른 궁궐의 정전에 비해 굉장히 규모가 작은 편이다. 애당초 창경궁이 임금이 정식으로 머물 궁으로 지은 게 아니라 창덕궁에 딸린 대비궁으로 지은 것이라 그렇다. 층도 단층에 터 크기 자체도 경복궁 근정전, 창덕궁 인정전보다 훨씬 작다. 또한 독립된 월대를 가진 다른 정전과 다르게 건물 뒤편에 바로 붙어있는 복도 1쌍만 지나면 바로 문정전, 숭문당, 빈양문 등 다른 건물 영역으로 연결될 정도이다.
  • 석축기단 2단 위에 정면 5칸, 측면 3칸의 1층 전각[6]이다. 양식적인 측면에서 볼 때 공포의 짜임새가 견실하고 쇠서[7]의 곡선이 힘차고 예리한 점, 첨차[8]에 풀무늬를 새긴 수법이 세련된 점, 주춧돌에서 공포까지의 지지체(支持體)와 그 위에 얹은 지붕의 균형이 잘 조화된 점 등에서 조선 전기의 건축양식을 잘 계승하고 있는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몇몇 학자들이 임진왜란 때 불타지 않은 것으로 추정한 적도 있으나 《조선왕조실록》의 기사와 1963년 합각머리 안쪽에서 발견된 묵서명(墨書銘)의 내용이 일치하여, 광해군 때 재건한 것을 확인했다.
  • 외곽을 둘러싸는 16개의 일반 기둥[9]와 내부 전면(前面)에만 배치된 크고 아름다운 높은 기둥 4개[10]로 형성되어 있다. 전면과 후면 어칸에는 꽃처럼 창살을 만든 사분합문, 좌우 협칸에는 삼분합문, 그리고 툇칸에는 이분합창이 설치되어 있고, 좌 · 우 툇칸 이분합창의 하부는 회색벽돌로 12단 쌓아 화방벽(火防壁)으로 조성했다.[11] 좌우 측면 중앙칸에는 삼분합문이 설치되었고, 좌·우 툇칸 이분합창의 하단은 정면을 후면과 마찬가지로 회색벽돌로 12단 쌓았다. 분합문과 창 상부에는 모두 광창[12]을 설치했으며, 내부 바닥에는 전돌을 깔았고, 내부 중앙 뒤에 어좌를 설치했다.출처.

파일:창경궁_명정전_내부_어좌.jpg}}} ||
<colbgcolor=#bf1400> 명정전 내부[13]
파일:창경궁_명정전의_천장과_내부공포.jpg}}} ||
명정전 천장에 달린 봉황 조각[14]
실내 천장 가운데에는 금박을 입힌 봉황 두 마리가 걸려있다. 아무래도 제후국대비궁으로 지은 것이다 보니 그런 듯하다. 답도에도 봉황이 새겨져 있다.
  • 8.15 광복 이후 명정전 조정 뜰에 품계석[15]을 세워두었지만, 원래는 없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한다. 이 포스팅에 따르면, 품계석은 법궁의 권위를 상징하는 물건이었기 때문에 경복궁, 창덕궁(경복궁 중건 이전 조선 후기 사실상 법궁), 경운궁(대한제국 광무 연간 법궁) 조정에만 세웠다는 것이다. 실제로 조선시대 창덕궁창경궁을 그린 〈동궐도〉와 〈동궐도형〉을 보면, 창덕궁 인정전 뜰에는 품계석이 있지만 명정전 뜰에는 없다. 이밖의 다른 조선시대나 구한말에 제작한 자료에도 명정전 품계석은 보이지 않는다.

파일:창경궁 명정문과 명정전의 축.png}}} ||
<colbgcolor=#bf1400> 홍화문, 옥천교, 명정문, 명정전의 축
동향을 하고 있는데 앞에 이어지는 명정문, 홍화문과 일직선상으로 맞지 않는다.

5. 기타

파일:직접 찍은 명정전 사진.jpg}}} ||
<colbgcolor=#bf1400> 2020년대 초 명정전의 창호
가장 오래된 정전 건물로 역사적 가치가 있으나, 그런 만큼 건물이 낡았다는 지적을 받는다. 그리고 2020년대 초에는 윗 사진의 모습처럼 세살 창문의 창호지가 찢어지고 구멍이 난 상태여서 2024년에 창호지를 보수했다.

6. 대중매체에서

경복궁 근정전창덕궁 인정전에 비해 존재감이 약해서 거의 안 나온다고 봐야 할 수준이다.

파일:2018-04-07 15-44-21.jpg}}} ||
<colbgcolor=#bf1400> 명정전이 나오는 KBS2 《명성황후》의 한 장면
KBS2명성황후》에서 그나마 많이 등장했다. 이 드라마도 원래는 근정전에서 찍을 계획이었으나 당시 보수공사로 촬영이 불가능했기에 어쩔 수 없이 명정전에서 찍은 것이다.
  • 그리고 생뚱맞게도 후삼국시대를 다룬 드라마 《태조 왕건에도 등장한다. 다름 아닌 신라 왕궁이 나오는 장면을 여기서 찍었다. 《태조 왕건》 초반부 회차의 엔딩에도 당당하게 장소 협조에 이름을 올렸다.

[1]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2] 議政府左贊成. 의정부에 속해 3의정(영의정, 우의정, 좌의정)을 보좌하는 직책. 오늘의 국회부의장 격이다.[3] 새로 짓거나 고친 집의 내력이나 공사 과정, 일시 등을 적어둔 글.[4] 이는 창경궁 전체 축이 그렇다.[5]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6] 보통 전통 건축의 경우 1층보다는 단층(單層)으로 말한다.[7] 소의 혀란 뜻으로, 한식 목구조 공포에서 보 방향으로 첨차에 직교하여 거는, 끝을 의 혀 모양으로 장식하여 오려낸 부재를 말한다. 첨차의 뜻은 후술.[8] 공포를 구성하는 나무 부재.[9] 평주(平柱).[10] 고주(高柱).[11] 이것은 창덕궁 인정전도 마찬가지였는데 순종황제의 이어 이후 현재와 같은 머름으로 변했다.[12] 光窓. 어두운 실내를 밝혀주기 위하여 설치하는 창.[13]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14] 사진 출처 - 문화재청 국가문화유산포털.[15] 品階石. 신하들이 서열에 맞게 서있을 위치를 나타내는 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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