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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한민국 국보 제126호 | |
불국사 삼층석탑 사리장엄구 佛國寺 三層石塔 舍利莊嚴具 | |
소재지 | 경상북도 경주시 |
분류 | 유물 / 불교공예 / 기타 |
수량/면적 | 일괄 |
지정연도 | 1967년 9월 16일 |
제작시기 | 통일신라시대(8세기) |
1. 개요
佛國寺 三層石塔 舍利莊嚴具. 경상북도 경주시 경주 불국사 삼층석탑에서 발견된 통일신라 시대 사리장엄구 일괄. 불교중앙박물관이 소장했다고 현재는 불국사 성보박물관에서 소장 중이고, 국보 제126호로 지정되었다.2. 내용
금동 방형사리합
무구정광대다라니경
동경, 경옥제곡옥, 구슬 등
은제 사리내합, 외합, 유리병
유리제 사리함
1966년 9인조 도굴꾼들이 석가탑을 도굴하다가 미수에 그친 사건이 있었는데, 그 과정에서 탑이 훼손되어 같은 해 10월 탑을 보수하였다. 그러다 수리 작업 도중 기존 도굴된 층 외의 다른 층에서 발견된 사리함이다. 8세기 신라에서 만든 것이다.
이 사리함 안에서 나온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로 알려졌다. 중국은 정황상 빠르면 후한, 늦어도 수당 교체기를 전후해 목판인쇄가 시작했다고 주장한다. 이능화의 <조선불교통사>에서는 백제 성왕 때 승려 겸익이 인도로 유학갔다 돌아온 후 불경을 목판으로 인쇄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어느 쪽이든 실물이 전해지지 않으므로 석가탑에서 나온 이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목판인쇄물 유물로 공인받았다. 자세한 내용은 무구정광대다라니경 항목을 참조.
함께 들어있던 중수기의 내용이 알려지면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고려시대 중수할 때 넣었다고 보는 설이 나왔지만, 국립중앙박물관에서는 지진 당시 외사리함만이 깨지고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이 들어있던 내사리함은 멀쩡한 상태였던 것으로 결론을 내려 통일신라설의 손을 들어주었다. 참고로 도굴하려고 했던 도굴범들은 체포되었는데, 황룡사지도 도굴했던 도굴범들이어서 경주 황룡사 구층목탑 사리장엄구와 같은 일부 영영 잃어버린 줄 알았던 유물을 되찾는 데 성공했다. 그외에도 남산사 사적, 통도사 승탑 등등을 도굴한 경력이 있는 상습범들이었다. 이들이 훔친 장물을 최종적으로 사들인 사람은 놀랍게도 당시 삼성그룹 회장인 이병철의 형 이병각으로 드러나서 국민들에게 충격을 주었다. #
황금을 금형으로 떠 만들어낸 유물로, 신라시대 불교문화와 금세공기술 및 금속공예사를 연구하는 중요한 자료로 여겨진다. 특히 사리장엄구와 함께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과 불국사 서석탑 중수 형지기(佛國寺西石塔重修形止記)는 8세기 신라시대에 작성된 책으로 그 가치가 매우 높다.
1967년 9월 16일에 일괄 대한민국 국보로 지정되었다.
3. 외부 링크
4. 국보 제126호
1966년 10월 경주 불국사의 석탑을 보수하기 위해 해체했을 때 탑 내부의 사리공에서 발견된 사리장엄유물들이다.
중심부에 놓여졌던 사리외함과 함께 안에는 원구형으로 생긴 은제의 사리 내·외합과 금동사리합,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각종 구슬과 함께 있었다. 사리함의 주위에는 청동제 비천상과 1점의 원형동경과 1/4동경편, 목탑, 경옥제곡옥, 구슬, 향목 등이 놓여있었다. 사리함의 바깥 기단부 바닥에서는 비단에 쌓인 종이 뭉치가 발견되었는데, 종이가 한데 뭉쳐져 글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사리외함은 4면에 덩굴무늬를 좌우대칭의 모양으로 뚫어 새겼으며, 몸체를 받치고 있는 기단부도 무늬를 뚫어 새겼다. 지붕 위에는 덩굴무늬를 새기고 지붕 꼭대기, 모서리, 지붕 마루에는 연꽃으로 장식하였다. 지붕 끝에는 나뭇잎모양의 장식을 달아놓았다. 정교하게 투조된 뚜껑에 보석까지 감입된 8세기 사리기의 걸작이다.
은제 사리내·외합은 계란모양의 뚜껑이 덮인 합으로서 은으로 도금하였으며 8세기 중엽 양식을 보인 화려한 연꽃무늬와 작은 동그라미를 찍어 만든 어자문(魚子文)으로 장식하였다.
금동 방형사리합은 앞·뒷면에 탑을 중심으로 양옆에 보살입상과, 옆면에는 인왕상을 선각(線刻)하였다. 뚜껑에는 3단으로 이루어진 탑 모양의 작은 꼭지가 있으며 합 속에는 향나무로 깎은 작은 사리병이 들어있었다.
이 곳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 중엽에 간행된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으로서,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 되는 곳에 1행 8∼9자의 다라니경문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발견 당시 부식되고 산화되어 결실된 부분이 있었는데 20여 년 사이 더욱 심해져 1988년에서 1989년 사이 전면 수리 복원하였다. 불경이 봉안된 석가탑은 751년 불국사가 중창될 때 세워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 경은 그 무렵 간행된 것으로 인정된다. 또한 본문 가운데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의 집권 당시만 썼던 글자들이 발견되어, 간행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
중심부에 놓여졌던 사리외함과 함께 안에는 원구형으로 생긴 은제의 사리 내·외합과 금동사리합, 무구정광대다라니경, 각종 구슬과 함께 있었다. 사리함의 주위에는 청동제 비천상과 1점의 원형동경과 1/4동경편, 목탑, 경옥제곡옥, 구슬, 향목 등이 놓여있었다. 사리함의 바깥 기단부 바닥에서는 비단에 쌓인 종이 뭉치가 발견되었는데, 종이가 한데 뭉쳐져 글의 내용은 알 수 없다.
사리외함은 4면에 덩굴무늬를 좌우대칭의 모양으로 뚫어 새겼으며, 몸체를 받치고 있는 기단부도 무늬를 뚫어 새겼다. 지붕 위에는 덩굴무늬를 새기고 지붕 꼭대기, 모서리, 지붕 마루에는 연꽃으로 장식하였다. 지붕 끝에는 나뭇잎모양의 장식을 달아놓았다. 정교하게 투조된 뚜껑에 보석까지 감입된 8세기 사리기의 걸작이다.
은제 사리내·외합은 계란모양의 뚜껑이 덮인 합으로서 은으로 도금하였으며 8세기 중엽 양식을 보인 화려한 연꽃무늬와 작은 동그라미를 찍어 만든 어자문(魚子文)으로 장식하였다.
금동 방형사리합은 앞·뒷면에 탑을 중심으로 양옆에 보살입상과, 옆면에는 인왕상을 선각(線刻)하였다. 뚜껑에는 3단으로 이루어진 탑 모양의 작은 꼭지가 있으며 합 속에는 향나무로 깎은 작은 사리병이 들어있었다.
이 곳에서 발견된 『무구정광대다라니경』은 8세기 중엽에 간행된 현재까지 알려진 세계 최고의 목판인쇄본으로서, 너비 약 8㎝, 전체길이 약 620㎝ 되는 곳에 1행 8∼9자의 다라니경문을 두루마리 형식으로 적어놓은 것이다. 발견 당시 부식되고 산화되어 결실된 부분이 있었는데 20여 년 사이 더욱 심해져 1988년에서 1989년 사이 전면 수리 복원하였다. 불경이 봉안된 석가탑은 751년 불국사가 중창될 때 세워졌던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 경은 그 무렵 간행된 것으로 인정된다. 또한 본문 가운데 중국 당나라 측천무후의 집권 당시만 썼던 글자들이 발견되어, 간행연대를 추정할 수 있게 해준다.